옛날 마을에 큰 홍수가 났는데 수형이 반듯한 어린 느티나무 한 그루가 떠내려 오는 것을 이 마을에 이주해 살고 있던 안동 권씨 입향조가 목격했다. 신기하게 여겨 어린 느티나무를 어렵게 건져 자기 집 방안에 두었다. 흙도 없고 물도 주지 않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죽지 않고 살아있기에 집안 좁은 뜰에 심었다. 나무가 점점 자라 집안에 둘 수 없어 좋은 날을 받아 마을 입구 개울가에다 옮겨 심었다.자식이 없던 안동 권씨는 마치 친자식처럼 나무를 돌보았다. 이런 정성 탓인지 나무는 쑥쑥 자라 우람한 모습이 될 때쯤 권씨는 병으로 죽게 되었다. 죽을 때 권씨는 느티나무를 가리키며 “내가 죽거든 저 나무를 나로 알고 술 한 잔 권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무덤 자리를 정한 풍수지리가 ‘무자천손(無子天孫)’터라고 말하고 떠났다.어떻게 슬하에 자식을 두지 못하고 외롭게 죽어 간 권씨의 자손이 천대를 잇는다는 말인가? 마을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하면서 지관의 말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까맣게 잊어버렸다.권씨가 심은 느티나무는 우람하게 커 갈수록 다섯 가지가 동, 서, 남, 북, 중앙 다섯 방향을 상징하듯이 단정하게 자랐고, 권씨의 유언에 따라 마을 사람들이 ‘할배 나무’라 부르며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이때부터 할배 나무는 절 받는 당산목이 되었고, 권씨를 마을 입향조로 모시게 되었다. 아들이 없어 후손은 끊어졌지만, 자손이 없는 권씨의 분신으로 마을 주민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날 제수를 장만해 정성껏 제사를 지내고 있다.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할배 나무는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손자·손녀를 자청한 사람들의 정성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나라에서 풍년 농사를 위하여 저수지를 만든다고 했다. 할배 나무를 그대로 저수지에 수장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사 비용으로 4억 원이 넘는 돈을 감당할 수도 없거니와 7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한자리에서 살아온 할배 나무가 다른 곳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다행히도 포항 노거수회에서 손자·손녀를 자처해 150m 남쪽 산기슭, 포항시 신광면 마북리 70번지로 나이 740살, 키 20m, 가슴 둘레 6.8m인 할배 나무를 이사시켰다.세계에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미담으로 우리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칠월칠석에는 노거수회에서 회원들이 막걸리를 대접하고 천수를 다하기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세월은 쉼 없이 흐르고, 사회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해 가고 있는데 아직도 우리 사회는 자식으로 대를 이어가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부자지간 또는 조손간에 유산을 볼모로 효도 계약서를 쓰기도 하고, 계약 위반을 이유로 무효 소송까지 벌이는 슬픈 일이 벌어지고 있다. 깜냥도 안 되는 자식에게까지 지위와 부를 넘겨주려고 하다 불법, 특혜 의혹에 휘말려 패가망신을 당하고 있는 높은 양반이나 부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무자천손 할배 나무를 본보기로 이제는 뭔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가 이어지고 남는 것은 자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심은 나무가 천 년을 가고 우리가 쌓은 탑이 천 대를 이어간다. 보이지 않는 ‘화향 천리 품향 만리’라 하였으니, 우리의 미풍양속이 만대를 잇는다. ‘무자천손 노거수 설화’에서 나무 생명의 귀중함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노거수는 전통 마을 공동체 문화의 독특한 산물로서 ‘전통 마을 나무’다. 세계화와 첨단과학 시대라 하여 이를 미신이나 원시 토속신앙으로 폄하하는 것은 특색 있는 문화 기반을 바탕으로 하는 세계화의 경쟁 속에서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다.노거수는 분명 독특한 우리의 생명 문화이다. 노거수는 보존 가치가 있는 민속 문화유산이며, 전통 마을 나무로서 민속 생태학적 국민 교육과 녹색 갈증을 풀어줄 중요한 국가 자연자산이다.무자천손 느티나무 설화에서 나무 생명의 귀중함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문학인들이 먼저 옛 노거수 설화에다 오늘날 새로운 문학과 예술의 아름다운 옷을 입혀보면 어떨까? 사단법인 노거수회는…설립연도는 1992년. 이삼우 원장(기청산 식물원)이 노거수를 중요한 자연자산이자 문화유산으로 인식해 시민사회운동으로 경북 포항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했다.설립 목적은 산림환경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와 향토 순례를 통해 노거수. 희귀수목 및 보전 가치가 높은 숲에 대한 보호 운동을 전개하고 출판 및 홍보를 함으로써 산림환경 보전과 향토 사랑 실천운동을 국민 속에 뿌리내리게 하는데 있다.그간 진행한 사업은 ▲산림생태 탐사, 향토 순례 및 기행 ▲노거수. 희귀수목 및 보전 가치가 높은 숲에 대한 보호와 복원, 연구 활동 ▲산림문화의 발굴 및 보전과 창달 ▲법인의 사업과 관련한 홍보 및 출판사업 ▲국내외 관련 학회, 업체, 국제기구와의 교류. 협력 및 정보의 교환 ▲기타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사업 등이다.주요 활동 내용을 살펴보면 ▲노거수 보호, 구명, 조사 활동(399그루) ▲마을 숲 조사(40곳, 마을숲 복원(3곳), 해당화 자생지 복원 ▲포항시 보호수 안전 진단 용역 수행 ▲모감주나무 천연기념물 군락지(371호) 발견 및 지정 ▲내연산 망개나무 군락지 조사 및 국내 최대 개체 보고 등이 있다.가입 자격은 자연 및 노거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가족 단위 활동 역시 권장한다. 임원은 명예회장 이삼우, 회장 이문수, 사무국장 박영규, 회원 강기호 박사(국립세종수목원 본부장) 외 118명이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