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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소연 들어주고 마음 달래주는 친구이자 스승, 신적 존재

등록일 2024-06-12 18:17 게재일 2024-06-1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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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안동 하회마을 삼신당 느티나무
하회마을 삼신당 느티나무는 마을의 결속과 단합의 동기를 부여하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낙동강 물돌이 모래벌판 언덕 마을이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이곳을 방문하여 생일을 맞이하는 등 세계 각국의 유명 인사는 물론 관광객들이 줄지어 찾아오고 있다. 바로 안동 하회마을이다. 마을엔 국가지정문화재만 국보 2점, 보물 2점, 국가민속문화재 9점 등 모두 13점에 이른다. 척박한 강변 모래벌판 언덕 마을에 무엇이 이런 귀중한 문화유산을 품었을까?

곰곰이 마을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없다. 하회마을은 예로부터 경주 허씨 터전에 광주 안씨 문전으로 풍산 류씨 배판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마을 주민들의 성씨 변천 과정을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 조상들이 말하는 풍수지리설에 길지인 배산임수형도 아니고 그 어떤 유형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그리고 보면 마을의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주민의 생활 속에 깃들어 있는 정신문화에 있지 않을까? 안동은 우리 3대 문화권 중에 유교문화의 중심지이며 정신문화의 수도이기도 하다.

약 600년전 풍산 류씨 입향조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삼신당 느티나무는

하회마을 한 가운데서 별신굿판의 시작이자 동신제의 마지막 장소로 쓰여

늘 가까이서 도움 주는 나무야말로 신령이 깃들었다 한들 누가 무어라 할까

하회마을에는 그 옛날 마을을 개척할 당시부터 내려오는 마을 공동행사가 있다. 매년 서낭당, 국신당, 삼신당에 동신제를 지냈다. 그러다 하회탈을 쓰고 별신굿을 해 오고 있다. 그 내력은 하회탈 제작에 대한 전설로부터 시작되었다.

“마을재앙에 마음 아파하며 매일 밤 삼신당 나무에 물을 떠 놓고 재앙을 막아 달라고 정성껏 비는 허 도령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어느 날 신령이 꿈에 나타나서 ‘탈을 깎아, 그 탈을 쓰고 신을 위해 굿을 하면 되느니라. 그런데 탈을 깎는 동안 누구라도 엿 보면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허 도령을 사랑한 마을 김씨 처녀가 그사이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금줄을 넘고 말았다.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치더니 허 도령이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김씨 처녀도 따라 죽었다. 처녀를 기리는 뜻으로 별신굿을 시작했다. 이유야 어쨌든 간에 이는 마을 주민들이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되었고 고난을 극복하고 흥겨움을 안겨주었다.”

마을 주민은 서낭당을 상당, 국신당을 중당, 삼신당을 하당이라 불렀다. 삼신당은 마을 한 가운데 자리 잡고 당집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으며 삼신할매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 대상은 느티나무이다. 약 600년 전 풍산 류씨 입향조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이 나무는 잉태의 소원을 비는 곳으로 유명한데, 연리지를 관찰할 수 있다. 삼신당은 별신굿을 시작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안동 하회마을에서 12세기 중엽부터 상민(常民)들에 의해서 연희(演戱)가 되어온 탈놀이이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5년 또는 10년에 한 번 정월 보름날 또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해 왔다. 탈놀이는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하여 마을굿의 일환으로 연희가 되었다. 탈을 쓴 광대가 양반을 해학적으로 풍자하여 온갖 쓴소리를 내뱉는다. 이는 서민의 유일한 언로였으며 흥겨움까지 주었다. 놀이마당, 무동마당 등 여덟 마당으로 구성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마을 수호신에게 매년 올리는 동신제나 별신굿을 한 때 미신으로 폄하여 금지하기도 했다. 종교적 측면으로 그리 볼 수 있으나 고유 전통 민속신앙은 우리의 삶에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부계 중심의 남아선호사상의 사회 환경에서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는 보고도 못 본채, 듣고도 못 들은 채, 하고 싶은 말도 못 한 채 참고 9년의 시집살이를 했다는 말이 있다. 이렇게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은 억압된 사회에서 소원을 빌고 하소연할 탈출구로 삼신당 느티나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삼신당 느티나무는 이를 들어주고 해결해 주는 친구이며 스승이요 신적 존재였을 것이다. 그때 사회 환경이 옳다면 민속신앙 역시 옳은 것일 것이고, 그때 사회 환경이 바르지 않다면, 민속신앙을 미신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오늘날 자유로운 시대는 농촌과 도시, 산중 마을에도 절이 있고 예배당이 있어 신앙심을 키울 수 있고 스님, 목사, 신부 등 성직자가 있어 고해하고 마음을 추스르며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그러하므로 오늘날 동신제는 점점 그 기능이 빛이 바래고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마을의 결속과 단합의 동기를 부여하는 것으로 동신제와 별신굿탈놀이 만한 것이 또 있을까. 제사를 올리는 시기는 대부분 정월 대보름날이다. 이는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정월은 가장 신성하며 이날 뜨는 달이 가장 깨끗하고 신비스러워 소망한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로 시작하는 명분으로 이것보다 더 좋은 날은 없을 것 같다. 물질적인 외형의 그 무엇보다 정신적인 마음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합심하여 기원한 내용을 이루기 위하여 단합하고 실천하는 동기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믿음은 우리가 경험한 일이기도 하다.

멀리서 바라본 안동 하회마을.
멀리서 바라본 안동 하회마을.

하회마을이 평화롭고 풍요로운 마을로 발전하고 임진왜란 때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유성룡과 같은 걸출한 인재가 많이 배출된 것도 유형의 자연환경보다 무형의 정신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지 싶다. 하회마을의 고택도 지형도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특별한 무엇을 찾아보지는 못했다. 오히려 낙동강변 모래벌판 위에 세워진 것은 자연조건으로 따져보면 불리한 조건이지, 유리한 조건은 아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주민들이 행복하게 살아온 것은 삼신당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뭉치고 단합한 결과가 아닐지 싶다. 삼신당 느티나무에 소원을 빌고 인내하면서 살아온 우리 할머니 어머니의 위대함은 민속신앙으로부터 인내심과 응집력을 키운 덕분이 아닐는지 모르겠다.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물과 영양소를 빨아들이고 하늘에서 빛에너지와 탄소를 받아들여 누구의 도움 없이 자연의 무한한 에너지로 스스로 독립적으로 살아간다. 뭍 생명체를 품고 그들의 먹이를 제공하고 삶을 이어가도록 기꺼이 희생을 감내한다. 나무야말로 남의 생명체를 먹고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유일한 생명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보면 나무를 신의 반열에 올려놓아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늘 우리 가까이에서 도움을 주는 나무야말로 신령이 깃들여 있다고 한들 누가 무어라 할까.

 

안동 하회탈 별신굿놀이는…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 709-3번지 삼신당은 별신굿판의 시작이고 동신제의 마지막 장소다. 그곳에 640살 느티나무 노거수가 살아가고 있다. 키 17m, 몸의 둘레 15m, 앉은 자리는 22m다. 마을굿을 통해 별신굿이 추구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주술적인 행위로써 탈을 만들고 탈춤을 추게 된 것이다. 서낭당에서 신내림을 받는 강신(降神)이나 신을 마을로 맞이하는 무동(舞童), 상상의 동물인 주지 한 쌍을 등장시킨 탈춤판은 마을을 정화하는 것이다. 암수의 싸움에서 암컷이 이기고 성행위를 하는 것은 생산을 북돋워 풍농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행위다. 강신(降神), 오신(娛神), 송신(送神) 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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