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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세월 지나며 신격화… 두려움과 경외심의 존재

등록일 2024-05-15 19:15 게재일 2024-05-16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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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영덕 신안리 천년의 세월을 품은 느티나무 노거수
천년의 세월을 품은 느티나무는 가부좌 틀고 앉은 온화한 부처로 다가왔다.
천년의 세월을 품은 느티나무는 가부좌 틀고 앉은 온화한 부처로 다가왔다.

오월은 신록의 계절이다. 텅 빈 숲의 나무도 푸름으로 풍성해지고, 짝을 찾느라 분주하게 지저귀던 새들도 푸른 숲에 보금자리를 틀고 알을 품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나무를 쫓아다니다 보니 나무의 성장 과정이 우리 인간의 삶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는 살아있을 때는 부드럽고 연약하며, 죽었을 때는 딱딱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부드럽고 연약함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는 생명체가 겪는 변화와 성장의 자연스러움을 상징한다. 비바람에 꽃이 떨어지는 모습은 생명의 연약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여 준다. 꽃이 지고 난 꽃자리에 열매를 맺음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계승한다. 자연의 순환과 강인함을 또한 생명의 연속성을 드러낸다. 나무가 겪는 성장의 과정, 즉 자연의 법칙에서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보편적인 원리에 대한 깊은 성찰로 교훈을 얻는다.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 살아

생명의 신비로움·강인함 뿜어내며

역사의 산증인으로 묵묵하게 자리

 

키 14m·몸 둘레 9m의 느티나무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부처님처럼

온화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다가와

 

장수목·다산목·건강목·재생목

영속목·여성목 등 다양하게 불리며

저마다 간절한 소원 담아 기도해

재생목
재생목

영덕군 지품면 신안리 512-1번지에 천년의 세월을 품고 살아가는 명품 느티나무 노거수 여행을 떠났다. 말이 천년이지 100년을 10번 곱한 숫자다. 조선 500년을 뛰어넘은 고려시대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 역사의 산증인이다. 당산나무로 신격화하여 제사를 지낼 뿐 아니라 금기 사항을 정하고 이를 무시하고 훼손하게 되면 동티가 난다고 하여 모두 두려움과 경외감을 가졌다.

숲에 깃든 정령 중에 나무의 정령이 으뜸이 아닐까 싶다. 키 14m, 몸 둘레는 9m의 천년의 세월을 품은 느티나무는 가부좌 틀고 앉은 온화한 부처님으로 다가왔다. 그를 톺아보니 “나를 자세히 보아주니 고맙구나. 많은 사람이 나에게 공손히 두 손 모아 절을 하면서 소원을 빌기도 한단다”라고 말했다. 나는 물었다. “무엇을 소원하고 빌지요?” 그러자 느티나무 노거수는 말했다.

“나를 장수목(長壽木)이라면서 오래오래 살게 해 달라고 빈단다. 사실 숨 쉬는 생명체로서 마을에서 가장 나이도 많고 오래 살아왔단다. 마을을 개척할 때부터 아니 마을이 들어서기 전부터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단다. 마을을 떠나지 않고 늘 주민과 함께 살고 있으니 마을 역사의 산증인이라 해도 누가 뭐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하니 영생불멸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대리 만족할 수 있는 대상물로 나무랄 데 없지 않니?”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었다.

“나를 다산목(多産木)이라면서 특히 아들을 낳아달라고 빈단다. 수많은 꽃을 피우고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을 보고 하는 모양인 것 같구나. 척박한 땅에도 경사진 계곡에도 그 어느 곳에도 마다하지 않고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린단다.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주변 환경이나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적응하면서 자손을 번식한단다. 오늘날 삼천리 방방곡곡 마을에 나를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그렇지 않니?”라고 했다. 어릴 적 목격한 것이라 또 수긍했다.

“나를 건강목(健康木)이라 하면서 건강을 소원한단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은 계곡에서 쏟아지는 바윗돌에도 견디어 낸 훈장이란다. 꽃과 열매가 작고 볼품이 없는 것은 에너지 분배에서 거대한 몸을 유지하는 데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란다. 사계절을 맞이하면서 변화는 나의 아름다움을 보았지 않았나. 튼튼하고 아름답고 풍성한 몸매는 어느 나무도 나를 따를 수 없지. 아름다움은 건강의 바로미터란다”라고 했다. 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나를 재생목(再生木)이라면서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단다.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가지가 부러지고 절단된 모습이 여기저기 흉터로 남아있는 것이 보이지? 이 또한 스스로 아물어 새로운 가지를 재생되어 푸른 하늘로 꿈을 키운단다. 노령의 상처 난 몸에 돋아난 어린 가지 푸른 잎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지? 늘 면역력을 키우고 항상성으로 다친 몸을 스스로 치료하는 재생능력이 있단다”라고 했다.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라 부럽기까지 했다.

영속목
영속목

“나를 영속목(永續木)이라면서 부러워도 한단다. 계절 변화에 따라 봄이면 연노랑 잎이 여름이 되면서 녹색 잎으로 가을에는 고운 단풍잎으로 변했다가 겨울이 되면 미련 없이 훌훌 벗어버리고 새하얀 눈옷으로 갈아입지. 이렇게 계절 변화에 맞추어 일생을 살아간단다. 외모는 그렇지만, 나에게도 봄에는 희망의 꿈을 꾸고, 여름에는 꿈을 향한 노력을 하고, 가을에는 그 꿈을 이룬단다. 겨울에는 욕심을 내려놓고 봄을 기다린단다. 그러하니 천년의 세월을 품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했다. 인간은 이루지도 못할 욕심에 짓눌러 아우성을 치고 괴로움에 잠 못 이루어 밤을 설친다. 한 번 가지면 놓지 않으려 하고 쌓아두려고만 하는 인간과는 달리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우주의 리듬을 재현하니 참으로 본받을 만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요즘은 여성목(女性木)이라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단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모습이 몸단장하고 아름다움을 꾸미는 여성을 연상하게 한단다. 수형 또한 여자의 오지랖과 많이 닮았다고들 한다. 곤충, 새 등 많은 생명체의 서식처가 되어 주고 휴식처, 피난처를 제공해 주고 있으니 포용과 희생정신이 여성과 많이 닮았다고 한단다”라고 했다. 그렇다. 수렵시대와 농경시대는 힘으로 상징되는 남성의 시대라면 21세기는 부드러움과 감성의 시대로 여성의 시대가 아닐지 싶기도 했다.

느티나무는 우리 삶의 지향점이랄까 다양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 의미인지 2000년을 맞이할 때 무슨 나무로 새 천 년 밀레니엄나무로 할까, 나라에서 논의했다. 많은 산림 전문가와 생태학자들, 그리고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느티나무를 선호하여 산림청은 새천년 밀레니엄나무로 지정했다. 우리 삶에 본받아야 할 상징성을 많이 지닌 것을 알고는 탁월한 선택을 한 산림청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천년의 세월을 품은 느티나무는 말했다. “나를 경외하며 소원을 빌면서도 발등 위에 농기계를 올려놓고 당집을 짓고 시멘트로 나의 목을 조르고 있어 숨쉬기도 힘들다. 신격화는 아니해도 좋으니 제발 목줄을 풀어주고 무거운 시설물을 치워 주면 좋겠다”라고 했다. 그러나 나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고 주민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수 있어 참으로 난감할 따름이었다. 느티나무는 위대한 스승으로서 충분한 자격과 요건을 갖추었다. 나 또한 주민들과 함께 오늘도 소원을 빌며 부족함을 채우고 교훈을 얻고자 노력한다.

한국산림문학헌장비 비문의 지은이 이서연, 산림청 임상섭 차장, 산림문학회 김선길 이사장, 봉성리 김유제 이장.
한국산림문학헌장비 비문의 지은이 이서연, 산림청 임상섭 차장, 산림문학회 김선길 이사장, 봉성리 김유제 이장.

한국산림문학헌장비는…

 

‘한국산림문학헌장’은 이서연 시인이 지어 2021년 11월 18일 충남 보령시 미산면 봉성리에 세웠다. ‘숲을 사랑하여 시문(詩文)으로/ 숲의 정신을 담는 산림문학은/ 나무와 돌과 흙에서/ 삶의 씨앗이 되고 뿌리가 되고 꽃이 되는 문학으로/ 숲의 미래를 여는 산림문화를 이루고 가꾼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미래가 되고 역사가 되도록/ 산림문학이 사람 사는 세상에 나무가 되어/ 숲에서 형성된 맑은 영혼이 삶의 가치를 높여 가리니/ 자연의 섭리가 문학의 향기로 퍼져/ 문학이 숲이 되고 숲이 문학이 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사)한국산림문학회는 2024년 5월 8일 산림문학헌장비공원 내 시비제막식과 정자현판식을 열고 15년생 배롱나무를 기념식수 했다. 산림문학회 이사장 김선길 시인의 ‘나는 한 그루 나무이려니’ 외 4기의 시비가 세워졌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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