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성주 성밖숲, 생명문화숲으로… ‘왕버들 노거수’
매번 올 때마다 특별한 감흥을 주는 성밖숲은 생명 문화의 산실이라는 느낌을 준다. 우리나라 버드나무 종류는 40여 종에 달한다. 그 가운데서도 왕버들은 가장 큰 교목이면서 장수하는 나무이다. 수관 폭이 어느 나무보다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어 여름에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로는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왕버들 단일 수종의 노거수로 숲을 이룬 곳은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이곳이 유일한 곳일 것이다. 숲은 나무들과 그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많은 동식물이 어우러져 사는 공동체 마을이다. 탄생과 성장 그리고 죽음으로 이어지는 생사의 과정이 계절마다 펼쳐지는 삶의 현장이고 무대이다.
조선시대 성주읍성 서문밖 도성 인공림
전국 유일 왕버들 단일종으로 숲 이뤄
300~500년생 52그루 천연기념물 지정
반 천년 수령 한계 넘지 못한 노거수들
굵은 원줄기 속은 텅텅 비어진 채 지탱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학자들로부터
독창적 문화유산 가치 높이 평가 받아
20년새 태풍·노화로 10여그루 사라져
세종대왕자 태실과 연계 보존책 세워야
황혼이 되니 외로움이 차가운 겨울바람처럼 옆구리를 찌르며 찾아든다. 어딘가에 정을 주고 외로움을 달래려고 애를 쓴다. 하천에 자유롭게 헤엄치면서 사는 예쁜 물고기는 어항이라는 감옥에 넣어두어야 하고 또한 먹이를 주어야만 함께 할 수 있다. 창공을 자유롭게 나는 새들도 새장 우리에 가두고 먹이를 주어야 한다. 우아하게 하늘을 나는 나비와 잠자리는 가까이하기에는 먼 당신이다. 꿀을 주는 꽃을 쫓아다닌다. 그들의 본성을 짓뭉개고 자유를 빼앗아 나의 외로움을 달랠 수는 없다. 아무것도 줄 수 없는 나를 멀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예쁜 꽃도 화무십일홍이라 친해지려고 하면 지고 만다. 이들은 단지 만질 수도 없고 그들이 안전하다고 하는 거리에서 바라만 보아야 한다. 그러나 나무와 숲은 계절 따라 새 옷으로 단장하고 언제나 한 곳에서 묵묵히 살아간다. 그의 모습은 늠름하고 세월이 갈수록 연륜이 더해져 나의 경외심까지 빼앗는다. 외로워 찾아가면 언제나 변함없이 맞이해 주는 나무와 숲은 황혼의 반려목으로 위안은 물론 지혜와 교훈을 준다. 성밖숲을 찾는 이유도 그러하다.
성밖숲의 사계절은 독특한 모습을 띠고 우리를 부른다. 겨울은 곱게 물든 단풍잎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졸가리가 겨울바람 매 맞는지 윙윙거리며 우는 소리 낸다. 옹두리 훈장을 몸에 달고 추운 겨울바람에 맞서고 있는 고령의 왕버들을 보면 역경을 극복하는 힘을 얻게 한다. 봄의 성밖숲은 거칠고 노쇠한 몸에서 고운 연노랑 잎을 틔우는 모습에서 생명력의 끈질김을 배우게 한다. 나뭇가지의 잔설을 녹이고 녹색의 정원으로 물들어 가는 모습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한다. 태고로부터 내려오는 자연이 연주하는 바람과 나뭇잎의 합창하는 노래를 들으며 마음은 즐겁다.
여름은 무성한 녹색 잎에서 맑고 신선한 공기가 뿜어져 나오고 새들이 노래하는 공연장이다. 맥문동 보랏빛 꽃은 왕버들이 앉은 꽃방석인가 아니면 꽃목걸이인가. 푸른 이끼로 몸을 단장하고 노익장을 과시하는 왕버들 노거수를 볼 때면 경외감이 절로 든다. 가을은 그 무성한 녹색의 잎이 노란 단풍으로 물든다. 뜨거운 여름과 태풍에도 끄떡없던 녹색 잎이 만추에는 새들의 작은 날갯짓에도 못 이겨 꽃비처럼 우수수 낙하한다. 이렇게 또 겨울을 맞고 봄을 기다리는 왕버들 숲을 거닐면서 황혼의 나를 돌아보면 왕버들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왕버들과 친근해지면 질수록 묘한 느낌이 나를 붙잡는다. 고령의 왕버들 가지는 일부 고사 되었거나 비바람으로 부러져 나가기도 했다. 굵은 원줄기는 온전하지 못하고 몸통 속은 구멍이 뻥 뚫어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의 몸통 줄기나 피부의 모습은 세월을 맞이하고 보낸 인고의 연륜을 새겨놓은 훈장이 아닐까. 하늘 높이 뻗지 못하고 굽은 모습, 속살을 모두 내어주고 텅 빈 모습, 몸에 이끼 옷을 걸친 것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반 천 년의 역사 기록물이고 아픈 추억의 흔적이 아닐까.
나뭇잎의 크기와 두께는 하늘 쪽 나뭇가지에는 작으며 엷다. 반대로 뿌리 쪽 나뭇가지에는 잎이 넓고 두껍다. 또한 가장자리 잎은 안쪽 잎보다 작고 엷다. 빛에너지를 받은 환경조건에 따라 잎의 모양을 달리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보면 공정과 공평이 똑같이 대하고 균등하게 나누는 것이 아닌 조건에 따라 달리하고 차등을 두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잎도 위치에 따라 모양과 두께가 변하는 것을 보면서 현재 내 위치를 원망하기보다 위치에 맞게 내가 변해야겠다는 교훈을 터득한다.
지난 일제 강점기에 일본 학자들이 성밖숲과 같은 마을 숲을 보고 “인류 문화사적으로 독창적인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토지와 야생에 대한 지속 가능한 이용에 대한 가장 모범적인 사례다”라고 하면서 놀라워했다고 한다.
세계 어느 곳도 마을 숲을 만들고 보호하고 가꾸어 온 나라는 없다. 성밖숲 운동장과 잔디광장도 왕버들 숲으로 돌려주면 어떨까.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60여 그루가 넘던 왕버들 노거수가 지금은 50여 그루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500살이라는 나이의 한계령을 넘은 왕버들이 고령의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태풍이나 노화로 사라져가고 있다. 일찌감치 대비하는 것이 숲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우리는 문명에 이끌려가며 천복으로부터 유리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인간의 본성과 자연의 신비주의 영역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는 현실의 간극을 좁혀보려고 계절 따라 성밖숲을 찾아 생명 문화를 이해코자 한다. 생명 문화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생명체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문화를 의미한다. 인간이 자연을 존중하고 보호하며,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생명과 관련하여 성주에는 세종대왕자 태실이 있다. 가장 많은 왕자의 태를 보관하고 있는 전국에서도 유일무이한 곳이다. 성밖숲을 ‘생명문화숲’으로 개명하면 어떨까? 성 밖이란 어감이 왠지 아웃사이드란 느낌이 든다. ‘생명문화숲’과 ‘태실’을 연계한 생명 문화를 꽃피울 수는 없을까?
성주 경산리 성밖숲은…
천연기념물 403호다,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446-1번지 일원에 조성된 마을숲이다. 나이가 약 300~5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왕버들 52그루가 자라고 있다.
숲은 노거수 왕버들로만 구성된 단순림으로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가슴높이 둘레가 1.84~5.97m(평균 3.11m), 나무 높이는 6.3~16.7m(평균 12.7m)에 달한다. 성밖숲은 조선시대 성주읍성의 서문 밖에 만들어진 인공림으로 풍수지리설에 의한 비보림수(裨補林水)인 동시에 하천 범람에 대비한 수해방비림이기도 하다.
성밖숲에 대한 기록은 성주읍의 옛 문헌인 ‘경산지(京山誌)’, 및 ‘성산지(星山誌)’ 등에 수록되어 있다.
구전에 의하면 조선 중기 성밖 마을에서 아이들이 이유 없이 죽는 일일 빈번하였는데, 한 지관이 말하기를 “마을에는 족두리 바위와 탕건 바위가 서로 마주 보기 때문에 이러한 재앙이 발생하니, 이를 막기 위해 두 바위와 중간 지점 이곳에 밤나무 숲을 조성해야 한다”라고 하여 숲을 조성했더니 우환이 사라졌다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후 마을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밤나무를 베어내고 왕버들로 다시 조성했다고 한다. 성밖숲은 마을의 풍수지리 및 역사·문화·신앙에 따라 조성되어 마을 사람들의 사회적 활동과 토착적인 정신문화의 재현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전통적인 마을 비보림(裨補林·풍수지리설에 따라 마을의 안녕을 위해 조성된 숲)으로 향토성과 문화적 의미를 동시에 가진 곳이다.
/글·사진=장은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