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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거수의 설화에 담긴 남녀의 사랑과 나무 보호 메시지

등록일 2024-06-19 19:36 게재일 2024-06-2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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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고령 어곡리 사랑목 왕버들 노거수

지역 자치단체가 머지않은 미래에 소멸한다고 그 대책에 골몰하고 있다.

생산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인구 절벽 현상 때문이다. 한국 전쟁이 끝난 후 베이비 붐 세대를 거치면서 인구 증가로 골머리를 앓던 정부는 각종 인센티브제를 도입하여 출산 억제 정책을 널리 홍보하고 강하게 밀어붙인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역으로 출산 장려 정책을 쏟아 내놓고 있지만, 별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왜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혼인 적령기 세대는 주택, 육아, 교육비 등 경제, 사회 문제로 어려움을 호소하며 결혼과 출산을 늦추고 있다.

심지어 솔로 살기를 원하고 자식 낳기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부모 반대에도 사랑 키운 청춘남녀

자신들을 대신할 왕버들 심고 떠나

부모들은 자식 생각에 정성껏 돌봐”

무럭무럭 자란 나무는 마을 전설로

작아진 키·굵은 두 줄기는 절단 상태

공장과 도로로 변한 삶의 터전까지

옛 모습을 잃어가는 고목을 보며

우리들의 인구 절벽 현상 떠올려져

경북 고령 어곡리 마을 앞 들판 한 가운데에 살아가고 있는 왕버들에 대한 전설은 오늘날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당시에는 불효의 심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내용이지만, 세월이 흘러 오늘날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님에 대항하여 가출까지 하여 결혼하였으니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전설은 나무 사랑으로 승화하여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 마을에 마음씨 착한 가난한 농부와 그와는 반대로 많은 재산과 하인을 거느린 마음씨 고약한 부자가 살았다. 가난한 농부 집에는 잘생긴 아들이 있었으며, 고약한 부잣집에는 예쁜 딸이 있었다. 농부는 가난하게 사는 것이 한이 되어 아들을 자기처럼 가난하게 살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자신의 고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사랑하는 아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아들 잘되기만 바라고, 그것을 큰 낙으로 삼고 살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글 읽는 소리가 자랑스러웠다. 논에서 우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혹시 아들의 공부에 방해가 될까 봐 쫓아다니다 밤을 지새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늘도 총각은 글 읽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글 읽는 소리가 멀리 부잣집 귀여운 딸의 귓가에까지 들려왔다. “저렇게 낭랑하게 글을 읽는 도련님은 누구일까?” “글 읽는 소리가 아름다우니 인물 또한 얼마나 잘 생겼을까?” 이렇게 생각하며 방문을 열고 보니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가을 하늘의 둥근 보름달 빛이 훤히 비추었다.

아가씨는 자신도 모르게 글 읽는 소리에 이끌려 가난한 농부의 아들 글방 바로 앞까지 다다랐다. 한편 열심히 글을 읽던 총각은 인기척 소리에 글을 읽다 말고 문을 열었다. 달빛 속에 나타난 선녀와 같은 처녀를 보고 그만 흠모하게 되었다. 처녀 역시 총각의 공부하는 모습에 반하여 서로가 깊은 사랑을 하게 되었다.

이들이 서로 사랑하게 된 것을 알게 된 양가의 부모님들은 결혼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두 청춘남녀는 아무리 해도 부모님을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닫고, 사랑을 이루기 위하여 부모님 곁을 떠나게 되었다.

막상 부모의 뜻을 순종치 않음이 큰 죄인인 줄 알면서도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두 사람은 마지막 부모님 앞에 엎드려 “아버지 어머니 저희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가 떠나면서 부모님이 보시는 마을 앞에 나무를 심어 놓겠습니다.

이 나무가 싱싱하게 잘 자라면 저희도 금실 좋게 잘살고 있는 줄 아시고, 만약에 이 나무가 말라 죽으면 저희도 죽은 줄 아십시오.” 하직 인사를 고한 뒤 먼 곳으로 떠났다. 양가 부모는 자고 나면 나무를 쳐다보고 무럭무럭 자라면 그들이 잘 사는 줄 알고, 시들면 걱정하며 살았다. 왕버들은 무럭무럭 잘 자라 마을의 정자나무가 되었다.

고령 어곡리 왕버들 설화는 나무 사랑과 자연 사랑 헌장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고령 어곡리 왕버들 설화는 나무 사랑과 자연 사랑 헌장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나무가 싱싱하게 잘 자라면 자식이 잘살고, 말라 죽으면 자식도 죽었다니 기가 막히는 고별인사다. 부모 입장에 어찌 나무를 보호하고 잘 가꾸지 아니하겠는가! 이보다 더한 나무 보호 메시지가 어디 있을까? 청춘남녀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왕버들 노거수에 입혀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이들의 순결한 사랑의 징표로 왕버들을 내세워 나무 보호 자연관을 우리 민족의 DNA에 잉태하게 했다. 나무를 함부로 훼손하거나 벌목함으로써 망한 나라나 소멸한 도시를 볼 때 왕버들 설화는 나무 사랑, 자연사랑 헌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왕버들 설화는 청춘남녀의 사랑 이야기에다 나무를 심고 보호하라는 깊은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나무와 숲은 인류의 보금자리이다. 인류의 보금자리가 사라지면 그 결과는 너무나 뻔하다. 오늘날 인구 절벽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전설의 주인공 부름을 받고 새벽 일찍 일어나 만나러 갔다. 나무는 예전과 달리 키와 앉은자리가 턱없이 작아지고 줄어들었다. 왕버들은 굵은 두 줄기가 절단되고 잔가지 끝부분은 고사 되었다. 전설 속의 나무 사랑은 사라지고 알게 모르게 나무가 살아가야 할 터전은 공장과 도로로 변했다. 인간의 편리함과 물건 생산을 위한 일들이 결국 우리 모르게 인구 절벽으로 내몰고 있지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지구 인구부양능력 수치를 넘어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동 수단인 자동차, 기차, 배, 비행기 등 그들이 머물 차고와 다닐 도로, 생산을 위한 단지 확보를 위해 나무와 울창한 산림이 사라져가고 있다. 늘어나는 도로는 생태계를 파편화시키고 생물종의 다양성과 개체수가 줄어 궁극적으로 멸종 위기로 내몰고 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내뿜는 배기가스는 지구를 온난화하고 생산으로 자원은 고갈되어 가고 있다. 이는 인구 증가와 다름이 없다. 지구의 옷을 벗기고 몸에 생채기를 내니 지구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극단의 자구적인 노력을 취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바로 지구 온난화로 이어지는 이상 기후는 가뭄과 홍수, 태풍, 지진, 화산, 산불 등 지구 생태계의 균형과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항상성이 아닐까. 인구 절벽 또한 청춘 남녀의 DNA 유전자 정보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서울과 같은 인구 집중의 수도권은 지구 인구부양능력과 생태발자국 수용 능력 수치를 넘어서지 않았나 싶다. 오늘날의 청춘남녀 결혼, 출산 회피 문제에 대한 결혼과 출산 장려 정책의 밑바탕에는 지구 자원 소비와 생활 방식의 변화가 먼저 시작점이 아닐지 싶다. 사랑목 왕버들 노거수 전설에서 조상의 나무 사랑 자연관을 알고 다시 한 번 나무와 숲의 중요함을 깨단했다.

 

고령 왕버들과 인구부양능력은…

경북 고령군 성산면 어곡리 410번지에 자리한 왕버들은 위도 35.743024 경도 128.362479에 위치했다. 나이는 250살, 2003년 11월 6일 조사 결과 키 14m, 가슴 높이 둘레 3.5m, 앉은 자리 넓이는 17m다.

지구 인구부양능력은 사용 가능한 자원으로 얼마나 많은 인구를 지탱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는 자원의 양과 인구 사이의 균형을 의미하며, 지속 가능한 발전과 직결된다. 인구 증가와 자원 소비의 균형을 맞추는 데 중요한 기준이다.

생태발자국은 우리가 소비하는 자원의 양을 그 자원 생산에 필요한 땅 면적으로 환산한 것이다. 지구의 지속 가능성과 인간의 생활 방식 사이의 균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항상성(Homeostasis)이란 생명체가 외부 환경의 변화에도 내부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능력을 말한다.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며, 생존과 진화에 있어 중요한 특징이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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