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안동 소산마을 삼구정 느티나무 노거수
나뭇잎이 물드는 가을에 농촌 마을을 찾아들면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바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 머문다는 당우와 곱게 물들어 가는 당산나무가 한 세트가 되어 풍요롭고 평화로운 가을을 맞이하는 풍경이다.
또한 굽이쳐 흐르는 계곡물을 바라볼 수 있는 바위 언덕 언저리나 마을의 동산 숲속의 스토리가 있는 정자와 나무는 부부의 인연처럼 절경의 주인공이 되어 한 폭의 가을 풍경화를 연출한다. 가던 길을 멈추고 가을 풍경화 속으로 빠져들어 그들의 품에 안겨 옛이야기를 들어본다. 끝없는 욕망과 불안에 지친 마음은 안정을 찾고 야생마 같은 거친 나의 삶에도 고운 단풍 물이 스며든다. 농촌 마을의 당우와 당산목, 정자와 노거수는 풍요와 평화를 선물하는 우리 전통 민속 생명 문화의 자연자산이다.
조선 문신 김영수와 그의 형제들이 어머니를 위해 1496년 정자를 짓고
장수의 상징인 거북 모양 바위 세 개가 있는 것을 보고 ‘삼구정’이라 불러
함께 있는 느티나무와 소나무 역시 건강·장수·다산·절개·사랑 등 상징
특히 안동은 노거수의 고장이다. 서울 면적의 2.5배나 클 뿐만 아니라 어느 지역보다 마을에는 노거수가 많이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당우와 정자도 많다. 안동 풍산에서 하회마을로 들어가다 보면 오른쪽에 넓은 들을 바라보고 있는 소산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지방 문화재가 무려 7점이나 있다. 이런 문화재를 품게 된 것도 마을 숲속에 있는 삼구정과 느티나무와 소나무 등 노거수가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공직에 있을 때 안동 출신 국장으로부터 지역 신문 기사를 펼쳐 놓고 열변을 토하면서 소산마을을 자랑하던 것이 아삼아삼하다. 안동김씨 집성촌 마을로 전통과 효심이 살아있는 유서 깊은 마을이라면서 역사적 고증을 들어가면서 설명하는 모습에서 안동인의 자긍심이 짙게 묻어났다. 그리고 한참 뜸을 들이신 후 “이 마을을 좀 더 품위 있는 역사적 마을로 가꾸어 볼 아이디어가 없을까?”라고 물었다.
안동은 우리나라 삼대 문화권 중 유교문화권의 중심지이다. 안동은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표어를 내걸고 물질문명의 이 시대에 행복의 근원은 정신에 있다면서 끈질기게 목소리 높이고 있다. 그 자긍심 또한 대단하다. 이러한 주민의 정신 바탕에는 정자와 마을 숲, 노거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삼구정만 해도 그렇다. 조선 시대 문신 김영수와 그의 형제들이 어머니 예천권씨를 위해 1496년 마을 동산 위에 정자를 짓고 그곳에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 모양의 바위가 세 개 있는 것을 보고 삼구정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정자 이름에서 어머니가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아들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정자와 함께 있는 느티나무와 소나무 역시 우리 삶에 중요한 가치 개념으로 삼고 있는 건강, 장수, 다산, 절개, 사랑 등을 상징하고 있다. 이러하니 마을에 훌륭한 인물들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
궁하면 통한다고 마침 중앙정부에서 ‘2002 월드컵 축구 경기 맞이 공원 조성’ 사업비가 내려왔다. 삼구정 주변의 마을 숲과 문화재 등을 연계하는 역사가 숨 쉬는 인문, 생태 마을을 조성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의 문화재와 함께 삼구정에 담긴 어머니에 대한 효심과 마을을 품은 숲과 숲을 이룬 나무의 중요성을 나타내고 싶었다.
마을 주민과 이장, 안동김씨 종친회장 등 관계 어르신들과 삼구정에 모여 사업 내용을 설명하고 의견을 구했다. 종친회에서도 문중 재산을 희사하겠다면서 흔쾌히 동의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열변을 토하면서 소산마을과 안동을 자랑하던 안동 출신 김휘동 국장이 2002년 7월 1일 자로 민선 3기 안동시장으로 취임했다. 아마 감회가 남다르지 않았나 싶다.
때마침 환경부에서 주관하는 자연보호에 대한 의식 함양과 소재를 제공하여 방송을 포함한 문화·예술 부문과의 자연생태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범국민운동으로 확산하고자 방송작가, 소설가, 시인 등 원로작가 생태기행이 있었다. 2000년 3월 10일부터 1박 2일간 26명으로 구성된 원로작가 자연생태 기행 대표로는 경북 청송 출신 소설가 김주영 작가였다.
자연생태 기행 안내를 맡아 일정 중에 하회마을 대신 소산마을을 방문할 것을 권했다. 김명자 환경부 장관도 일행과 함께 소산마을을 방문했다. 문화재는 물론 삼구정 정자와 마을 숲, 노거수를 둘러보고는 전통과 효심이 살아있는 마을이라면서 모두 감탄했다. 원로작가들에게 마을 숲과 노거수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과 공익적 환경가치를 설명하고 글의 소재로 많이 사용해 달라고 부탁도 했다.
안동 부용대 옥연정사에 갔다. 버스에 내리면서 두 눈을 수건으로 가리고 손을 잡고 오르막 숲속 오솔길을 택해 부용대로 걸어서 올라갔다. 그리고 정상에서 수건을 내렸다. 모두가 놀랐다.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을 끼고 있는 하회마을의 자연경관에 감탄을 자아내었다. 하회마을과 만송정 숲, 굽이 흐르는 푸른 낙동강과 반짝이는 모래사장이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했다. 하회마을에 갔으며 전체의 마을 경관을 조망할 수 없을 것인데 여기로 오기를 잘했다고 모두 이구동성으로 칭찬했다. “사랑하는 이여 언제라도 님이 오시는 날만 기다릴지니 아니 오신 듯 다녀가시옵소서”라는 원로작가들의 표어가 마음에 들었다.
가끔 소산마을을 찾아 삼구정 누대에 올라 주변 숲의 노거수를 바라보기도 하고 숲속을 거닐어 본다. 어머니의 건강을 보살피는 아들의 효심이 얼마나 극진했으면 삼구정이라는 이름을 지었을까, 그리고 어머니는 또 얼마나 자식을 사랑했으면 이러한 자식의 효심을 불렀을까, 오늘날 옛 제도가 맞지 않다고 야단이다. 모두 버리더라도 부모의 사랑과 자식의 효도는 영원했으면 하는 바람을 해 본다. 삼구정 아래 이곳 출신 삼당 김영이 지은 빗돌에 새겨진 “빈 배에 섯는 백로/ 벽파에 씻어 흰가/네 몸이 저리 흰들 마음조차 흴쏘냐/ 만일 마음이 몸과 같으면 너를 좇아 놀리라.”라는 시조 한 수는 소산마을의 순결하고 청렴한 정신을 가장 잘 노래한 시조라고 여겨진다.
소산마을의 삼구정 주변에 자리한 느티나무 노거수는 그중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존재이다. 삼구정을 건립할 때 심었다면 나이가 530살이 된다. 나무는 마치 오랜 세월 동안 침묵하며 우리에게 전해줄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조선 시대의 유교 문화가 아직도 살아 숨 쉬는 마을이었고, 그 중심에는 삼구정과 느티나무 노거수가 있다. 세월의 흐름을 견디며 마을의 역사를 지켜본 생명의 증인이자, 마을 주민들의 삶을 묵묵히 지켜봐 준 친구였다. 노거수를 보호하는 이유는 단지 오랜 세월을 살아남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오랜 시간 동안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서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전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오랫동안 살아있음이 그리고 앞으로 오랫동안 살아갈 생명이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효를 상징하는 삼구정과 함께하는 마을 숲, 노거수는 그저 오래된 자연물이 아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살아남은 역사이자,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교훈이다.
소산마을 지방문화재는 뭐가 있을까
삼구정(三龜亭)은 장수의 상징인 거북처럼 생긴 세 개의 바윗돌이 정자 뜰에 놓여 있어 붙여진 것으로, 노모의 장수를 비는 뜻도 담겨 있다.
청원루(淸遠樓)는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 선생이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풀려난 뒤 이곳에 내려와 머물면서 ‘미운 청나라를 멀리한다’는 뜻으로 청원루라 이름 지었다.
양소당은 안동 김씨 종택(安東金氏 宗宅)이다. 조선 성종(成宗) 때의 명신 김영수(金永銹) 선생이 연산군(燕山君) 7년(1501년)에 지은 집이기도 하다.
동야고택은 공자가어(孔子家語)의 노인(魯人) 동야필사(東埜畢事)를 인용 영조(英祖) 때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한 뒤 면시(面試)에서 답안에 공자가어의 노인 동야필사를 인용한 것에서 유래했다.
묵제고택은 감찰공파(監察公派) 자손이 누대에 걸쳐 세거(世居)해 온 집이다.
비안공 구택은 조선 세종(世宗) 때 비안현감(比安縣監)을 지낸 안동 김씨 김삼근(金三根, 1419-1465) 선생이 살던 집이다.
삼소재는 선안동(先安東) 상락 김씨(上洛金氏) 시조의 18대손인 김용추(金用秋, 1651-1711) 공의 종택이다, 현종(顯宗) 15년(1674년)에 건립됐다.
/글·사진=장은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