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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고인돌 무덤 ‘호위무사’로 지켜온 200여 년 세월

아들이 없는 큰아버지 앞으로 입양이 되었다. 양부가 돌아가시자 졸지에 문중의 종갓집이 되고 아내는 덩달아 종갓집 며느리가 되었다. 일 년에 지내는 제사 만 4대 봉제사와 설 추석 명절 합쳐 매월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조상을 정성껏 모셔야 화를 면하고 복을 받는다고 하는 어릴 적 부모님과 마을 어른들의 말씀을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어왔던 터여서 힘들었지만, 제사를 정성껏 모셨다. 나야 피를 받은 조상님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아내는 그런 힘든 일을 감내해야 할 이유를 찾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조상의 묘소 찾아 벌초하고 묘사를 지냈다.매년 하는 일이지만, 옛날과는 달리 묘소가 있는 산이 수림으로 우거져 묘소로 가는 길이 없어지고 묘에는 잡풀과 어린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벌초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신문 기사를 통하여 벌초하러 나섰다가 벌에 쏘이거나 뱀 등에 물리어 곤욕을 치렀다는 기사를 종종 보았다. 그러다 보니 벌초도 자손이 아니라 대행을 해주는 업자가 생기기까지 했다. 머지않아 산에 매장을 하고 벌초하며 묘사를 지내는 매장 문화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 것이란 생각이 든다.오늘날 장례문화도 많이 변하고 있다. 장례를 집에서 행하던 풍습이 장례예식장으로 장소가 변했다. 매장 문화도 시신을 화장하여 유골을 납골당에 모시거나 수목장 등 다양한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유골함을 묻고 봉분 없이 묘비만 세우기도 한다. 유골을 산천에 뿌려 묘 없이 장례를 치르게도 더러 하는 것 같다.특히 외국의 경우를 보면 상상하기도 어려운 끔찍하게 생각되는 것도 있다. 죽은 사람의 시신에 칼질하여 배를 갈라서 산 위에 갖다 놓으면 독수리가 달려들어 순식간에 살점 하나 없이 다 먹고 뼈만 남는다. 유족들은 기다렸다가 유골을 수습하여 갈아서 주먹밥을 만들어 던져주면 독수리는 그거마저 먹어버린다고 한다.어떤 지역은 사람이 죽으면 사찰 주변에 시신을 던져 놓으면 수십 마리 개들이 달려들어 시체를 먹어 치운다고 한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이렇게 장례문화가 다양한 것은 기후와 죽음에 대한 민속 신앙이 다르기 때문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청동기 시대 성행하여 철기시대까지 존속한 거석문화의 일종인 고인돌 무덤이 포항시 기계면 문성리 151번지에 팽나무 노거수가 묘비석처럼 함께 있다. 문성리 마을은 대한민국 근대화를 이룩한 새마을 운동 발상지이기도 하다.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으로 농촌 근대화를 이룩한 선구적인 마을이다.고인돌은 지역에 따라 한국과 일본은 지석묘(支石墓), 중국에서는 석붕(石棚), 유럽에서는 돌멘(Dolmen)이라 불렀다. 고인돌은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전 세계적인 관심 속에 보존 관리되고 있다. 이곳은 지석이 있는 기반식 고인돌로 인근에서는 보기 드문 거대한 고인돌 규모이다. 지석은 죽은 사람의 이름, 생몰, 연월일, 행적, 무덤의 좌향 등을 적어 무덤 앞에 묻는 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곳 지석의 크기는 가로 185cm, 세로 35cm, 높이 45cm이며 주변에 여러 기의 무덤이 함께하고 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고인돌 무덤도 보기 어렵지만, 팽나무 노거수와 함께 있는 것은 더더구나 보기 어렵다.고인돌 무덤을 팽나무 노거수가 호위무사처럼 지키고 있다. 팽나무는 소금기와 바닷바람에 강한 수종으로 동해안과 남해안 지역에 해송과 함께 자생한다. 동남부 해안지방에는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는 당산나무는 흔히 팽나무인 경우가 많다. 뿌리가 잘 발달 되어 있고 바람과 공해에 강할 뿐만 아니라 느티나무나 은행나무만큼이나 장수목이다.예로부터 방풍림이나 녹음을 위해 마을 주변이나 정자목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자못 고인돌의 중압감 속에서도 팽나무 노거수의 친근감이 느껴져 쉽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팽나무 노거수는 키가 20m 되고 몸 둘레가 3m, 수관 폭은 17m가 넘었다. 1995년 11월 18일에 보호수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었다.푸른 담쟁이덩굴이 크고 묵중한 고인돌을 감싸고 푸른 이끼는 거대한 팽나무 노거수 몸을 감쌌다. 팽나무 노거수 열매는 가을이 되면 검붉게 익는데 까맣게 익은 것으로 보아 검팽나무인 것 같다. 인공인지 자생인지 모르지만, 팽나무 노거수 나이가 200살이 넘었다고 한다. 고인돌과 노거수에 금줄이 쳐져 있고 지석에는 술과 과일이 놓아져 있는 것으로 보아 팽나무 노거수는 마을 주민들로부터 제사를 받는 신목(神木)이었다.포항 노거수회를 창립하여 노거수 보호에 앞장서 오신 이삼우 노거수회 명예회장(현 기청산식물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우리 민족은 노거수에는 신령이 깃들여 있다고 믿어 왔고, 울창한 삼림 속에는 신이 존재한다고 인식해 왔다. 노거수라는 자연물을 통하여 보다 큰 영감과 안녕을 기원했다. 단군신화 속에 나오는 신단수(神檀樹)나 신수(神樹),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박(朴)은 점을 치는 나무의 의미가 담겨있다. 이는 수목에 대한 선조들의 심원적 사고를 이해할 수 있다.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에서 활력을 부활시키고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철학으로 자연과 친밀하여 위대한 감화력을 얻으려는 욕구의 발로이다.”고인돌 무덤만 덩그렇게 있는 것보다 팽나무 노거수와 함께 있는 고인돌 무덤이 더욱 친근감이 들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우리의 장례문화도 산림을 훼손하는 매장 문화에서 산림을 보호하는 납골당, 수목장 문화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해 본다.동해안의 수목장 나무는 여타 나무보다 팽나무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도 모르지만, 이곳에 묻힌 조상님의 명복을 빌고 팽나무 노거수의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고인돌 무덤에 묻힌 조상의 넋이 마을 수호신 팽나무로 화신한 것이 아닐까. 팽나무 노거수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해 본다. 맑고 파란 하늘의 가을 햇살이 푸른 잎을 곱게 물들이고 있다.정겨운 단어 ‘포구나무’팽나무는 흔히 포구나무, 달주나무, 마태나무, 폭나무, 펑나무이라고도 부른다. 콩알만 한 팽나무 열매를 작은 대나무 대롱의 아래위로 한 알씩 밀어 넣고 꼬챙이를 꽂아 탁하고 치면 공기 압축으로 아래쪽의 열매는 팽 소리를 내면서 날아간다. 이것을 팽총이라고 한다. 팽총의 총알인 ‘팽’이 열리는 나무란 뜻으로 팽나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포구나무라고 하는 말이 더 친근하다. 해안가 배가 들락거리는 갯마을의 포구에는 어김없이 포구나무 한두 그루 서 있다. 포구에 그림처럼 서 있는 나무를 연상할 수 있는 포구나무란 말이 더 정겹다.20여 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는 고인돌 주변이 깨끗이 단장되었는데 지금은 잡풀들로 우거져 더 이상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고인돌과 주변 수기의 묘지를 호위무사처럼 지키고 서 있는 팽나무 노거수는 아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문성리 마을은 근면, 자조, 협동 새마을정신으로 대한민국 농촌 근대화를 이룩한 선구적인 마을이다. 역사성과 희귀성, 문화유산을 지키는 보호수인 팽나무를 천연기념물의 반열로 품격을 올려주면 어떨까?/글·사진=장은재 작가

2023-11-15

바른 사회 만드는 효(孝)의 실천, 은행나무에게 배워볼까

어릴 적 초등학교 다닐 때이다. 교실은 부족하고 학생은 넘쳐나서 오전 오후반으로 나뉘어 수업했다. 때로는 야외에서 하나, 둘 구령을 붙이며 선생님 따라다니며 학교 운동장 나무숲 그늘에서 공부했다. 책도 공책도 연필도 필요 없었다.선생님의 몸짓과 말씀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부모님과 어른들에 대한 예절을 하나둘 배웠다. 바람이 불어 운동장 흙먼지를 덮어쓰기도 했지만, 그런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산이나 들로 돌아다니면서 흙과 나무와 노는 것이 일상생활로 자리 잡혔기 때문에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다. 친숙한 자연이 교과서이었다. 자연에 대한 호기심으로 마을 어른들에게 꼬리를 문 질문을 쏟아내면 아예 손을 내저으면서 그만 물어보라고 하시면서 학교 선생님에게 여쭈어보라고 했다. 궁금한 질문은 교실보다 야외에서 더 많았다.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오늘날과 같은 학교는 없었다. 학문과 예절은 지방 서원에서 가르쳤다. 학문뿐만 아니라 덕망 있는 조상을 배향하기도 했다. 오늘 명품 노거수 탐방은 고즈넉한 숲속 운곡서원에 있는 경주시 강동면 왕신리 78번지 은행나무 노거수를 찾았다. 서원과 은행나무는 그 옛날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운동장 나무숲 아래에서 글짓기 공부도 하고 숲과 나무를 대상으로 그림도 그렸다. 달리기할 때 목표물이 되거나 반환점이 되었다. 쉬는 시간에도 나무숲에서 놀았다. 숲과 나무는 교실이고 놀이터이며 교과서이고 친구였다.운곡서원은 조선 정조 1784년 세워져 안동 권씨 시조이자 고려 개국 공신인 권행 선생과 그의 후손 권산해, 권덕린 공을 배향하고 있었다. 오늘날 지방사립학교로 청소년을 교육했다. 서원 동쪽 계곡 용추대 위에 유연정(悠然亭)이 세워져 주위 자연경관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운곡서원과 유연정, 은행나무는 한 세트로 여겨졌다. 나무 아래 펼쳐진 계곡 따라 흐르는 물소리, 숲속 나뭇잎 사이로 흐르는 바람 소리, 파도처럼 물결치는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등 이곳저곳에서 나오는 자연의 소리가 합쳐진 화음은 마음을 평온케 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가을 햇살에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눈을 감고 천지의 소리에 몸을 맡겼다.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370년을 훌쩍 넘긴 은행나무의 장성한 줄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의 원천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경이롭다. 3m나 쭉 뻗어 올린 하나의 힘찬 줄기가 다시 여러 가지로 나누어 하늘로 솟구쳤다. 거침없음과 거대함에 놀랍다. 키가 무려 30m, 몸의 둘레가 6m로 어른 네 사람이 팔을 벌려 안아야 할 정도이다. 앉은 자리의 폭 지름이 26m나 되니 덩치만으로도 주변 모두를 압도하고 있다.노랗게 물든 은행잎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노란 단풍잎은 또 어떠할까, 바닥을 수놓은 노란 융단은 얼마나 부드러울까. 아기 이불 같은 부드러운 융단을 살며시 밟으면서 걷는 느낌은 또 어떨까. 수나무라 노란 은행은 볼 수 없지만, 대신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 않아 좋다. 은행나무의 연륜과 거대함, 그리고 아름다움에 심취하여 진작 중요한 것을 놓칠 뻔했다. 눈의 현혹에서 벗어나 행단에서 제자에게 효도를 가르치는 공자를 상상해 보았다. 공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 문명권에 깊은 영향을 끼친 세계 3대 성인 중 한 사람이다.많은 사람이 운곡서원의 은행나무 노거수를 찾는다. 은행나무의 웅장함과 단풍의 아름다움만 즐길 것이 아니라 공자의 효에 대한 가르침을 자녀들에게 한번 상기시켜 주면 어떨까. 요즘 효를 물질적으로만 하려는 자녀들도 있는 듯하다. 효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효는 진정한 효가 아니다. 실제로 공자는 효가 도덕의 완성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라고 보았고, 최대의 덕목인 인(仁)도 효를 통해서 얻어진다고 보았다.효는 부모의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을 뜻하지 않으며, 부모를 생명의 원천으로 인식하고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효도의 목적은 부모와 자식을 모두 번영하게 하는 것이다. 공자는 가사(家事)를 돌보는 것, 그 자체로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라 말했다. 이것은 가정 윤리가 단지 개인의 일일 뿐만 아니라 가정을 통해, 그리고 가정에 의해 공동의 선이 실현된다는 것을 말한다. 무너져 가는 가정 윤리를 운곡서원 은행나무 노거수를 통해 공자의 효 사상을 본받았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화석식물이라 불리는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불교와 유교가 도입되면서 향교, 서원 등에 심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무는 우리의 스승이라 했거늘 공손수(公孫樹)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은행나무를 보면서 효도와 자애를 가슴에 새겨본다.운곡서원 은행나무 노거수 천연기념물 지정됐으면…은행나무(Ginkgo biloba L.銀杏)는 중국이 원산지이다. 암수딴그루로 움직이는 정자(精子)가 있는 식물로 유명하다. 1문 1강 1목 1과 1속 1종만이 현존하는 식물로 화석식물이라고도 한다. 새, 다람쥐, 청설모 등 동물들은 은행 종자를 먹지 않는다. 운곡서원(雲谷書院)의 은행나무 노거수는 권종락이 단종 때 권산해의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서 서울을 왕래할 때 영주 순흥에 있는 큰 은행나무의 가지를 꺾어다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가까이에 도연명의 자연사상을 본받기 위하여 유연정이 세워져 있다. 운곡서원과 유연정 그리고 은행나무를 한 세트로 그중 은행나무 노거수를 도 기념물이나 천연기념물로 품격을 높여주면 어떨까 싶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3-11-08

늘 한자리서… 위안과 용기 주는 가르침의 산실

요즘 아침 산책하다 보면 심심찮게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시민들을 만난다. 다양한 종류의 강아지에서부터 어미 개까지 촐랑거리며 걷기도 하고 뛰면서 주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지만, 때로는 큰 덩치의 험상궂은 불도그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움찔하면서 주춤거리거나 멀찌감치 떨어져 걷게 된다.반려견 주인은 괜찮다고 하나 그것은 그들의 생각이고 지나는 나는 그렇지 못하다. 더하여 가끔 반려견들이 본 변이 산책길에 그대로 방치되어있는 것을 보면 그리 유쾌하지만 않다. 날이 갈수록 주변을 돌아보아도 그렇고 언론 보도에도 반려동물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반려동물을 키우는데 드는 먹이, 치료 등 그에 따른 경제적 시장도 엄청나게 커져만 간다. 키우다 무슨 사정인지 모르지만, 유기되는 반려동물도 늘어나고 있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 현실이다. 반려(伴侶), 사전에서는 동무, 동반자로 표현한다. 사회가 다원화된 만큼 각자의 반려 또한 기호와 사정에 따라 다원화되는 추세다. 나의 반려는 노거수(老巨樹)다. 오래전부터 반려목 노거수를 키우고 있다. 아니 나의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이 더 맞겠다. 내가 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위안과 용기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경주 토함산 자락 외동읍 괘릉리 328번지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소나무이다. 마을 주민들에게는 경배의 대상인 노거수가 내 마음 안 깊숙이 자리한지도 오래 되었다. 마을 주민들에게도 수호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경외하다. 언제 찾아가도 늘 한자리에 머물면서 곧은 절개와 푸름을 자랑한다. 그를 보면 허물어졌던 내 의지도 되살아나고 흔들리는 정의감도 바로 선다. 무언의 가르침, 스승이나 다름없다.20년 전에 처음 만났다. 지금은 한 개지만 그 당시에는 당집을 2개 가지고 있었다. 뿌리에서 뻗어 나온 힘찬 줄기도 4개나 되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 웅장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푸른 솔가지의 아름다움에 반해 ‘노거수 생태와 문화’ 책 표지 사진으로 사용했다. 그간 이 반려목 소나무 노거수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줄곧 용기를 얻었다.노거수는 몸통의 둘레가 무려 10m이다. 그의 키와 맞먹는다. 나뭇가지는 아래로 늘어 떨어져 땅과 맞닿을 정도이다. 푸른 하늘 공간에 배열한 마디마디 굽은 잔가지의 모습은 예술작품 같고 꽈리를 틀고 있는 뱀처럼 붉은빛을 띠고 푸른 솔잎을 입에 물고 내려다보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그 누구든지 한번 접하면 황홀함에 넋을 잃고 그의 품속으로 빨려들게 된다. 반려목 노거수에 기대어 두 팔로 감싸 안고 얼굴을 갖다 맞댔다. 가을 햇살에 따뜻한 온기가 내 얼굴에 전해 왔다. 숨을 깊게 들어 마시다 뱉곤 했다. 솔향이 혈액을 타고 전신에 퍼졌다. 잡념이 사라지니 마음이 편하다.생명의 역사 속에서 단일 생명체로 가장 몸집이 크고 오래 사는 생명체는 노거수가 아닐까 싶다.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중심 역할을 함은 물론이다. 주민들은 매년 공동 제사를 지낸다. 마을 수호신을 존중하는 예(禮)다. 동제를 통하여 마을 주민들은 화합과 결속의 동기를 다지는 등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곤 한다. 노거수 생태계가 동민들에게 철학적 사고를 담아내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에게 노거수와 당집이 있는 공간은 신성함의 발로다. 출입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연 그 자체를 신격화하고, 간혹 가지가 부러지거나 자연 고사하더라도 가져가 사용하지 않는다. 방치함으로써 생태적으로 분해자, 생산자, 소비자라는 고리로 자연순환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다. 이는 자연보호 최상의 방법이다. 고서를 들춰보면 우리 조상의 나무 사랑은 그 어느 민족도 따라올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반려동물 키우듯이 반려목 노거수를 키워보면 어떨까. 헤르만 헤세는 ‘나무야말로 진리를 말하는 가장 훌륭한 설교자라고 고백하였다.’ 그렇다. 마음이 이끄는 곳, 나만의 노거수를 찾아서 그곳에 머물면서 자연과 동화되어 보자. 자연에 대한 경외감, 평온함, 충만감과 고립감에서 탈출하여 이웃에 대한 유대감, 삶에 대한 애착심 그리고 이 모든 것에 교감하면서 감사의 마음이 몸과 마음속에 스며들고 또 우러나올 것이다. 내 마음속에 안고 있는 고민의 문제도 가을 햇살에 영글어 가는 벼알처럼 알곡으로 변할 터이다.아프로디테 말고는 ‘이 세상에서 꽃만큼 사랑스러운 것도 식물만큼 소중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인류 삶의 진정한 모체는 이 대지를 뒤덮고 있는 녹색식물이다. 녹색식물이 없다면 우리는 숨 쉬지도 먹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는 나무가 존재함으로써 덩달아 존재하는 작은 생명체일 뿐이기에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나무의 존재를 절대시해야 한다’라고 했다. 나는 식물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기분을 느낀다. 그것은 영적인 충만감에 젖어 있는 식물들의 심미적 진동, 에너지 파동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노거수는 이제 나의 반려목이 되었다. 기독교를 창시한 예수의 말씀을 담은 성경에도 에덴동산에서 금단의 열매를 맺는 나무 이야기를 하였고,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 역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공자 역시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우리 주변 명찰이나 서원에 은행나무와 회화나무가 있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에는 고택마다 노거수가 있다. 거기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승이며 가르침의 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요즘도 나홀로 명품 노거수를 탐방하는 길은 행복하다. 많은 가르침을 받고 또 즐기고 있다. 반려동물처럼 경제적으로 부담도 없고, 여행을 간다고 어디다 맡길 필요도 없다. 반려목 노거수는 자연이 연출하는 사계절의 아름다운 작품을 늘 품고 있어 무상으로 감상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쉽고 가치 있는 일은 없을 듯하다. 인간과 나무와 관련된 모든 것을 산림문화라 부른다. 시나 수필, 소설을 가미시켜 삶의 질을 높여 주는 표현 활동에 대해선 산림 문학이라 나름 정의해본다. 오늘도 나홀로 노거수 생태와 문화를 탐방하면서 거대함, 숭고함, 아름다움을 노래한다.나무사랑외동읍 괘릉리 328번지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소나무는 나이가 320살쯤 된다. 마을 주민들의 극진한 보살핌과 정성이 엿보인다. 그러나 고령의 이 노거수는 지금 상처가 덧나 안타까움을 더한다. 아예 한줄기는 태풍에 부러진 채 땅에 누워있다. 다른 한 줄기는 반쯤 부러져 다른 동료 줄기 가지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부러진 한 줄기는 생명이 간당간당하면서도 주민이 쥐어준 지팡이에 의존해 끈질긴 생명줄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세파 속에 다소 힘에 부쳤는지 줄기 모두 서쪽을 향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자라고 있다. 자연에 동화된 그 모습을 보니 경이롭기까지 하지만, 노거수는 부러진 몸 줄기 사이사이로 염증을 앓고 있다. 빗물이 스며든 것이 병을 유발한 원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호수나 천연기념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 얼마나 고통이 심할까하는 생각에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내 눈물샘을 자극한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3-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