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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흑백요리사 셰프도 줄 섰다⋯1095일 기다려야 맛보는 ‘지독한 장맛’

와인에 프랑스 보르도가 있다면 한국 장(醬)에는 포항 죽장연이 있다. 해발 450m 고지대, 낮과 밤의 기온 차가 15도를 넘나드는 이곳의 서늘한 바람은 잡균의 침입을 막고 발효의 속도를 늦춘다. ‘빨리빨리’가 미덕인 시대에 죽장연이 굳이 1095일이라는 지독한 숙성 시간을 고집할 수 있는 건 오직 이곳의 기후와 환경만이 허락한 ‘느림의 미학’ 때문이다. 국내 미쉐린 스타 셰프들이 영하의 칼바람을 뚫고 이 오지 산골을 직접 찾는 이유도 바로 이 대체 불가능한 ‘죽장 테루아(Terroir·환경적 특성)’에 있다. 19일 오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사리 산자락. 장독대 곳곳에서 항아리 뚜껑 여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지푸라기에 불을 붙여 옹기 속 잡균을 태워내는 매캐한 연기가 걷히자 10여 명의 작업자가 달려들었다. 일 년 농사의 서막 ‘장 담그기’ 현장이다. 항아리에 들어가기 전 메주는 혹독한 목욕을 거친다. 수개월간 볏짚에 매달려 발효되며 묻은 먼지를 솔로 일일이 털어내고 흐르는 물에 씻어낸다. 죽장의 칼바람 아래 다시 몸을 말린 뽀얀 메주 20개가 옹기 바닥에 차곡차곡 박혔다. “물 들어갑니다!” 소리와 함께 투명한 소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죽장의 기후가 허락한 ‘황금 염도’ 18%의 소금물이다. 물이 차오르면 빨간 고추와 검은 숯, 대추가 던져졌다. 마지막은 얇게 깎아낸 대나무살이 장식했다. 탄성 있는 대나무를 격자로 엮어 입구에 고정하자 소금물 위로 뜨려던 메주들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이 옹기 속으로 몸을 던진 메주 7000개에는 ‘이력’이 새겨져 있다. 마을 주민들이 재배한 햇콩을 참나무 장작불 무쇠 가마솥에서 3시간 삶고 7시간 뜸 들여 정성으로 빚어낸 것들이다. 가로 11cm, 세로 17cm 규격에 무게 약 1.5kg으로 성형된 메주들은 지난 70일간 15~26°C(습도 40~60%)를 오가는 발효실에서 노랗고 푸른 곰팡이를 속까지 꽉 채웠다. 항아리에 갇힌 메주는 이제 60일간의 ‘동거’를 통해 제 몸을 녹여낸다. 소금물 안에서 발효가 일어나며 딱딱했던 메주가 흐물흐물해지면 비로소 된장과 간장으로 나뉘는 ‘장 가르기’를 한다. 메주 덩어리는 건져내 치대어 된장으로 만들고 갈색으로 변한 소금물은 맑게 걸러 간장이 된다. 죽장연은 여기서 다시 3년의 숙성을 더해 맛의 밸런스를 완성한다. 작업자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린 죽장연 정연태 대표의 손은 거칠었다. 2500개의 항아리 하나하나를 살피는 그의 눈빛에는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정 대표는 “우리가 만드는 장에는 특별한 기교나 기술이 없다. 상사리 주민들이 키운 콩을 사고 깨끗이 씻어 말린 메주를 죽장의 바람과 햇볕에 맡길 뿐”이라며 “화학 첨가물 한 방울 넣지 않고 정직하게 자연환경을 이용해 기다리는 것 그것이 우리 장맛의 유일한 힘”이라고 말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3-19

포항 영일만 ‘어선 화재’ 가상 훈련⋯민·관·군, 야간 입체 구조 펼쳐

포항해양경찰서는 지난 18일 포항 영일만항 인근 해상에서 해병대, 지자체, 해양재난구조대 등 관계기관과 함께 ‘2026년 제1차 민·관·군 합동 수난대비 기본훈련’을 실시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번 훈련은 일몰 전후 야간 취약 시간대의 사고 대응력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지난 1월 어선 화재 당시 선원 전원이 구명뗏목으로 자력 탈출해 구조된 실제 성공 사례를 모델로 삼아 훈련의 실전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훈련은 조업 중인 어선에서 화재가 발생, 선원들이 한국형 구명뗏목(ISO 9650)을 이용해 탈출한 긴박한 상황을 가정해 진행됐다. 해경 함정의 서치라이트와 해병대 해안경계대대의 열상감시장비(TOD)를 연계해 어둠 속 사고 지점을 신속히 포착하는 입체적 수색 체계를 점검했다. 이어 구조 세력은 실제 사고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구명뗏목의 팽창 상태와 야간 가시성 등 장비 신뢰성을 확인했다. 뗏목 내 고립된 선원들을 안전하게 구조하는 과정을 통해 민·관·군의 긴밀한 공조 체계도 재확인했다. 포항해경 관계자는 “실제 구조 사례를 훈련에 접목해 대원들의 실전 대응 감각을 높였다”며 “앞으로도 취약 시간대 사고에 대비한 합동 훈련을 지속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3-19

대구경찰, 프로야구 개막 앞두고 암표 매매 집중 단속

대구경찰청이 오는 28일 프로야구 개막을 앞두고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암표 매매에 대해 집중 단속에 나선다. 경찰은 이달 3일부터 10월 말까지 전담수사팀을 운영하고, 프로야구 경기와 각종 공연 입장권을 대량으로 확보한 뒤 웃돈을 붙여 되파는 행위를 ‘민생물가 교란 범죄’로 규정해 강력히 수사할 방침이다. 특히 매크로를 활용한 조직적·상습적인 거래에 대해서는 구속 수사도 검토한다. 또 삼성라이온즈 등 구단과 공식 예매처와의 협업을 강화해 부정 유통 모니터링을 확대하고, 의심 거래가 확인될 경우 즉시 수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입장권 1860매를 확보한 뒤 439회에 걸쳐 약 5600만 원 상당을 판매한 30대 등 2명이 검거돼 검찰에 송치됐다. 이 밖에도 홈경기 티켓 133매를 120회에 걸쳐 241만 원에 되판 사례가 적발되는 등 암표 거래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오는 8월 28일부터는 개정된 국민체육진흥법과 공연법이 시행되면서 단속은 더욱 강화된다. 매크로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입장권의 부정 구매 및 재판매가 전면 금지되며, 위반 시 판매금액의 최대 50배에 달하는 과징금과 함께 부당 이익에 대한 몰수·추징이 가능해진다. 대구경찰청 관계자는 “매크로를 이용한 암표 매매는 공정한 티켓 구매 기회를 침해하는 명백한 불법행위”라며 “반드시 공식 예매처를 이용하고, 고가 재판매 거래 시 처벌될 수 있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26-03-19

단종의 비극 뒤에 가려진 이름, 경혜공주

최근 역사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 한 달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화제가 되고 있다. 입소문을 타고 있는 이 영화는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역사 이야기임에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어린 왕의 유배와 죽음, 그리고 그를 지키려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영화는 폐위된 어린 왕의 유배생활과 마지막을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역사적 비극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배우들의 연기는 관객의 긴장과 슬픔을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특히 배우 유해진은 극적인 깊은 감정으로 역사 속 인물을 살아 숨 쉬게 만든다. 극장을 나선 뒤 비극의 중심에 서 있던 어린 왕 단종을 떠올리며 조선의 역사를 다시 들춘다. 그러다 단종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기구한 삶을 살아야 했던 인물들을 만난다. 그 중 한 사람 경혜공주. 그녀는 세종의 손녀이자 문종의 딸이며, 세조의 조카다. 그리고 단종의 하나뿐인 누이이다. 경혜공주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평탄하지 않았다. 어머니 현덕왕후는 동생 이홍위(훗날 단종)를 낳은 뒤 세상을 떠난다. 이어 자신을 아끼던 할아버지 세종이 승하하고, 아버지 문종마저 재위 2년 만에 요절한다. 열두 살의 어린 동생이 왕위에 오르면서 왕실은 이미 권력을 둘러싼 긴장이 시작된다. 결국 숙부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키며 왕위를 찬탈하고,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영월로 유배 보낸다. 왕이었던 동생마저 그렇게 유배지에서 열일곱의 나이에 사사(賜死)를 당한다. 경혜공주는 정종(鄭悰)과 혼인했지만 왕좌를 둘러싼 권력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왕실의 공주로 태어나 평온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경혜공주. 미남으로 알려진 아버지 문종을 닮아 그녀 역시 뛰어난 미모를 지녔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러나 어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동생의 죽음을 차례로 지켜보며, 숙부의 권력 장악 속에서 그녀의 삶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잃은 그녀는 임신한 몸으로 남편의 유배 길을 따라 나선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 남편 역시 단종 복위를 도운 역적으로 몰려 처참한 형벌로 생을 마감한다. 역적의 집안이 된 가족에게 내려진 운명은 가혹했다. 어린 자식들과 함께 그녀 역시 관노비로 전락한다. 왕의 손녀이자 공주였던 삶은 그렇게 무너져 내린다. 왕위에 오른 세조는 시간이 흐른 뒤 이들을 다시 궁궐로 불러들인다. 흔들린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었다. “정종의 아들과 딸은 연좌하지 말라” 세조의 명이 내려졌다. 궁궐로 들어간 그녀는 아들과 딸을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에게 부탁한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궁궐 안의 불교 수행처인 정업원으로 들어간다. 비극이 연속이던 생을 서른아홉의 나이에 조용히 마감한다. 경혜공주는 조선 왕실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운명을 맞은 인물이라 전해진다. 세조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많은 희생을 강요했을까. 우리는 단종의 비극에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주변에 더 많은 눈물과 상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경혜공주의 아픈 삶은 그 가운데 하나다. 권력을 둘러싼 싸움은 왕 한사람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여파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삶까지 처참히 무너뜨린다. 역사는 지나갔지만 권력과 욕망의 그림자는 지금도 여전히 세상에 드리워져 있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6-03-18

사과나무 앞에서 다시 초보가 되다

지난 11일, 청송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열린 ‘친환경 사과반’ 첫 수업에 청강생으로 참여했다. 재작년 응애 피해로 자두 과원을 사과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제대로 된 교육이 절실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덜컥 교육 신청을 했다가 떨어졌다. 실망하던 우리 부부에게 지인은 “청강생으로라도 한번 들어보라”라고 권유했다. 첫날 청강생으로 들어갔지만, 빠듯한 자리 사정에 괜히 눈치가 보여 다음 수업부터는 발길을 접었다. 아쉬움은 오래 남았다. 올해는 달랐다. 농업경영체 종목 추가 등 자격 요건을 꼼꼼히 갖춰 다시 도전해 2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 남편은 교육생으로, 나는 청강생으로 다시 나란히 책상에 앉았다. 작년에는 주눅 들었던 그 자리가, 올해는 왠지 조금 든든하게 느껴졌다. 교육은 3~12월까지 80시간 내외로 진행된다. 시기별 재배 기술부터 전정 원리와 실습, 사과 재배 선진지 및 관련 시설 현장학습까지 일정도 알차다. 작년 막 사과를 시작한 우리 부부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배움의 시간이다. 수업 시작 전에 권영문 부군수가 참석해 교육을 응원하며 올해 군의 중점 사업을 설명했다. 이어 함께할 40명의 교육생이 차례로 자기소개를 했다. 귀농 1년 차 청년부터 은퇴자, 고령의 귀농인까지 면면이 다양했다. 무엇보다 2~30대 젊은이들이 눈에 많이 띄어 반가웠다. 인구 소멸 위기라는 말을 자주 듣는 청송의 미래가 그 순간만큼은 조금 밝아 보였다. 내년에 귀농 예정인 아들의 앞날을 떠올리니 마음도 든든해졌다. 다만 사과 재배 기술이 뛰어난 현동·현서면에 비해 내가 사는 파천면의 인원이 적은 점은 못내 아쉬웠다. 첫 강의는 사과 재배의 기초였다. 핵심은 전정이었다. 햇빛과 통풍을 위해 실시하는 동계전정과 하계전정의 원리를 초보자도 알기 쉽게 풀어주었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꽃눈에 대한 설명이었다. 흔히 관리를 잘못하면 꽃눈이 잎눈으로 바뀐다고들 말하지만, 강사님은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내년에 필 꽃은 이미 올해 6월 20일경에 결정된다는 것이다. 멘토에게서 듣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상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믿었던 말 하나가 무너지는 순간, 비로소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청송군은 지난 5일 ‘2026 청송군 농업인대학 입학식’을 열었다. 지역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전문 농업인을 육성하기 위해 올해도 사과 사관학교, 친환경 사과반, 미래 농업반의 3개 과정이 운영된다. 특히 ‘미래 농업반’에는 올해부터 자두 과정이 신설되었다. 이는 지역 농업인의 수요와 변화하는 농업 환경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지난 1월 ‘자두GAP 사업단 총회’에서 윤경희 군수가 자두를 사과 못지않은 청송의 대표 품목으로 키우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는데, 이번 과정 신설에서 그런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작년 교육 신청에서 떨어졌을 때는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지 않는 행정’이 불합리하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직접 나무를 심고 가꾸며 수업을 들어보니, 현장 경험과 함께하는 공부가 얼마나 실효성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나무를 모르고 듣는 수업과, 나무를 만져본 뒤 듣는 수업은 확실히 달랐다. 배움도 결국 손끝의 감각 위에서 단단해진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강의실 문을 나서는 순간, 방금 배운 내용이 휘발되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난다. 그래도 며칠 전 적어둔 메모를 다시 들춰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귀농 15년 차인 남편도 사과 품목만큼은 막 시작한 초보다. 우리 부부는 아직 서툴고 배울 것도 많다. 하지만 꾸준히 배우고 익히다 보면, 머지않아 고수익을 올리는 어엿한 사과 농장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난해의 낙방이 올해의 배움을 더 단단하게 받쳐주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손정희 시민기자

2026-03-18

경상도 남자를 울린 연극 ‘춘분’

2월의 마지막 날인 2월 28일, 대구 서구문화회관에서 극단 헛짓의 연극 ‘춘분’이 관객들을 만났다. 함께 연극을 보았던 친구 시연이의 말을 빌리자면,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는 서사지만, 막이 내린 뒤 우리의 마음속에 남는 여운은 결코 뻔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재개발 지역의 낡은 집에서 살아가는 노부부 춘분과 소무의 이야기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 그리고 노년의 현실적인 문제를 담담하게 풀어내며 우리 삶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연극은 소무와 동네 사람 정팔의 대화 속에서 시작된다. 평범한 일상처럼 보이는 대화 속에서 곧 등장하는 춘분의 말투와 행동은 관객들에게 그녀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묵묵히 돌보는 딸, 말순과 집을 떠난 아들, 동하가 대비되어 등장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춘분은 자신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말순보다도 집 나간 동하를 기다리며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춘분이 말순에게 “재수 없는 년”이라 소금을 뿌리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이는 과거 춘분이 시어머니로부터 딸을 낳았단 이유로 학대받은 트라우마가 현재 말순에게 투영된 결과였다. 치매로 흐려진 기억 속에서도 과거의 상처를 재현하는 춘분의 모습은 관객에게 깊은 아픔을 전달한다. 말순의 희생적 돌봄에도 오직 집을 떠난 아들 동하만을 기다리는 춘분의 모습은, 가족 관계의 균열과 노년의 고독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극 후반, 춘분은 소무에게 죽음을 암시하는 마지막 소원을 말한다. 두 사람은 눈이 내리는 날 자전거를 타고 ‘소풍’을 떠나며, 이 비극적 결말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역설적으로 묘사된다. 한편 말순은 소무가 남긴 작은 구두를 애써 신어보지만 발에 맞지 않아 포기한다. 눈물 대신 미소를 띤 말순의 모습에서 관객은 체념과 받아들임의 복잡한 감정을 읽는다. 이처럼 인물들의 엇갈린 마음과 남겨진 자의 고통이 함축적으로 표현되며 여운을 남긴다. 관객들은 공연 내내 배우들과 함께 호흡했다. 평소 무뚝뚝하던 경상도 남자였던 시연이도 눈물을 흘렸다. 공연 후 그의 눈물 자국을 보며 놀리자 여운이 더 깊어졌다. 연극 ‘춘분’의 장면들은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의미를 지니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대사 한마디, 작은 몸짓 하나도 그저 흘려보내기 아까울 정도로 소중한 장면이었다. 춘분과 소무의 자연스러운 분장과 연기, 그리고 극의 분위기를 적절히 풀어주는 정팔의 유쾌한 연기는 마치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이야기를 직접 보는 듯한 현실감을 느끼게 해준다. 연극이 끝나고 주인공 ‘춘분’의 이름을 떠올리며 작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춘분은 24절기로 낮과 밤이 같은 날이며, 이후 낮이 길어진다. 춘분이라는 이름의 의미처럼, 두 사람의 마지막 ‘소풍’은 절망의 밤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향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춘분과 소무가 소풍을 떠난 그날, 그들에게 밝은 낮의 기운이 많은 날들이 찾아왔을까? 조금은 무거울 수 있는 주제와 결말이지만, 어둠을 이기는 빛처럼 그들의 이야기가 밝게 빛나는 해피엔딩으로 연극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싶다. /김소라 시민기자

2026-03-18

대구경찰, 선거사범 수사상황실 가동⋯24시간 대응체제 구축

대구경찰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범죄에 대한 본격 대응에 나섰다. 대구경찰청은 오는 6월 3일 실시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대비해 18일부터 ‘선거사범 수사상황실’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부터 오는 6월 10일까지 85일간 대구경찰청과 11개 경찰서에 상황실을 설치하고 24시간 단속 및 즉응 체계를 유지한다. 이를 위해 수사전담팀 59명을 편성해 선거 관련 불법행위에 대한 첩보 수집과 단속을 병행할 계획이다. 특히 금품 살포나 선거폭력 등 중대 사건 발생 시에는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를 즉시 투입해 초기 단계부터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단속 대상은 △금품수수 △허위사실 유포 △공무원 선거 개입 △불법단체 동원 △선거폭력 등 5대 선거범죄다. 경찰은 정당이나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범행 실행자뿐 아니라 기획·지시자, 불법 자금 출처까지 끝까지 추적한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전 과정에서 엄정성과 중립성을 유지하고 적법 절차를 철저히 준수하겠다”며 “선거범죄 근절을 위해 시민들의 적극적인 신고와 제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선거범죄 신고자는 신분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최대 5억 원의 포상금이 지급될 수 있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26-03-18

대구 경찰, 시민 대상 보이스피싱 피해 잇따라 예방

대구 경찰이 최근 시민을 상대로 한 보이스피싱 피해를 잇따라 예방하며 든든한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대구 중부경찰서는 남산지구대와 서문지구대에서 발생한 두 건의 보이스피싱 사건을 각각 30분 이내 설득해 총 1억 2000만 원의 피해를 막았다고 18일 밝혔다. 지난 13일 오전 남산지구대에서는 80대 노인이 경찰관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발생했다. 구혜숙 경위는 노인에게 보이스피싱 가능성을 설명했지만, 노인은 “사기가 아니다”라며 완강하게 맞섰다. 구 경위는 노인이 받은 문자와 범죄 수법을 하나씩 짚어 자세히 설명했다. 해당 수법은 연애를 빙자해 접근한 뒤 금전을 요구하는 이른바 ‘로맨스 스캠’이었다. 실제 발생 사례를 차근차근 보여주자, 완강하던 노인의 표정도 서서히 변했고, 결국 계좌이체를 중단했다. 이 과정에서 약 7천만 원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같은 날 오후 서문지구대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다. 카드 배송 관련 전화를 받았다는 60대 여성이 지구대를 찾아와 원격제어 앱 ‘AnyDesk’를 설치해야 한다며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박덕현 경위는 해당 상황이 전형적인 보이스피싱 수법임을 설명했지만, 여성은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경찰은 경찰청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대응단의 실제 피해 사례 음성과 관련 영상을 여성의 휴대전화로 보여주며 설득을 이어갔다. 두 사건 모두 경찰관의 신속한 대응으로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았다. 하지만 최근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은 범죄 조직의 말을 굳게 믿는 경우가 많아, 경찰의 설명만으로 설득이 어렵다. 이에 경찰관들은 휴대전화에 저장한 실제 피해 사례 음성·영상 자료를 보여주거나, 현장에서 유사 사례를 직접 설명하며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실제 사례 확인 후 피해자들의 위험 인식이 빠르게 높아져 설득과 예방 효과가 커지고 있다. 황정현 대구중부경찰서장은 “장시간 설득에도 꿈쩍하지 않던 노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위험을 막아낸 것은 평소 경찰관들이 보이스피싱에 대한 사례별 조치사항을 숙지하고 다양한 범죄에 대한 적극적 현장대처 능력 때문이다”며 “현장밀착형 치안활동 서비스를 통해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황인무기자 him7942@kbmaeil.com

2026-03-18

항만 보안관의 ‘매의 눈’⋯신항 내 불법 해산물 포획범 잡았다

항만 출입 차량을 검문하던 보안관리관의 세심한 관찰력이 불법 수산물 포획범을 붙잡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포항해양경찰서는 포항신항에서 발생한 불법 수산자원 포획 행위를 신고해 검거에 기여한 포항신항해양사무소 소속 항만보안관리관(청원경찰) 이상윤 씨에게 표창을 수여했다고 18일 밝혔다. 해경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 10일 포항신항 출문에서 차량 검문을 하던 중 차량 내부에 실린 잠수장비와 함께 소라, 멍게, 전복 등 다량의 해산물을 발견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이 씨의 신속한 신고로 출동한 해경은 현장에서 불법 포획 사실을 확인했다. 조사 결과, 이들은 포항신항 내 수중 안전 점검 작업을 하던 잠수부들로 작업 중 몰래 채취한 수산물을 외부로 반출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 수산자원관리법에 따라 비어업인이 잠수장비 등을 이용해 수산동식물을 포획·채취할 경우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근안 포항해경서장은 “항만 보안관의 투철한 신고 정신이 수산자원 보호와 항만 질서 확립에 큰 도움이 됐다”며 “앞으로도 유관기관과 협력해 항만 내 불법 행위를 근절하겠다”고 말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3-18

경북경찰청, 6·3 지방선거 앞두고 선거사범 단속체제 본격 가동

경북경찰청이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정한 선거 환경 조성을 위해 선거사범 단속체제를 본격 가동한다. 경북경찰청은 18일 선거사범 단속 강화를 위해 도경찰청과 도내 23개 전 경찰관서에 ‘선거사범 수사상황실’을 설치하고 24시간 대응체제로 운영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경찰은 도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와 사이버수사대, 각 경찰서 지능팀을 중심으로 모두 133명 규모의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선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불법행위에 엄정 대응할 계획이다. 중점 단속 대상은 금품수수, 허위사실 유포, 공무원 선거 관여, 선거폭력, 불법 단체동원 등 이른바 5대 선거범죄다. 특히 선거 관련 가짜뉴스와 흑색선전이 유권자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신속하고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선거범죄에도 대응 수위를 높인다. 인공지능 기술과 온라인 매체의 확산으로 단기간에 선거 판세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전문 수사역량을 갖춘 도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직접 수사에 나서 최초 제작자와 유포자까지 추적한다.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한 딥페이크 영상은 지난 3월 5일부터 전면 금지됐다. 경찰은 이번 지방선거가 사실상 경찰 중심의 선거사범 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고 보고, 선거관리위원회와 검찰 등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단속 활동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경북경찰청 관계자는 “지방선거는 주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중요한 절차인 만큼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가 치러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도훈기자 ldh@kbmaeil.com

2026-03-18

대구·경북 농협 18곳 ‘벼 육묘·신기술 협의회’ 출범

대구·경북 지역 농협들이 벼 재배 신기술 확산과 농촌 인력난 해소를 위해 손을 맞잡았다. 경북농협은 지난 17일 농협경북본부에서 ‘벼 육묘·신기술 대구경북협의회’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협의회는 벼 공동육묘장 설치·운영 확대와 드문모심기 등 신기술을 활용한 벼 재배 활성화를 목표로 회원 농협 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번 협의회에는 18개 농협이 참여했으며, 초대 회장으로 의성군 다인농협 송강수 조합장이 선출됐다. 부회장은 경주시 외동농협 이채철 조합장, 감사는 상주시 외서농협 김광출 조합장이 맡는다. 이날 총회에서는 임원진 선출과 함께 올해 사업계획 및 예산안도 확정됐다. 송강수 회장은 “공동육묘장 활성화와 드문모심기 등 신기술 보급을 통해 농촌의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적극적인 농정활동으로 관련 제도 개선에도 힘쓰겠다”고 밝혔다. 김주원 경북농협 본부장은 “협의회에 참여한 18개 농협이 같은 마음으로 힘을 합쳐 농업인의 일손 부족 해소와 소득 증대 기반 마련에 앞장서길 기대한다”며 “경북농협도 육묘장 사업 활성화와 드문모심기 기술 보급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협의회 출범으로 대구·경북 지역 벼 재배 현장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기대된다. /피현진기자 phj@kbmaeil.com

2026-03-18

“회사보다 학군”⋯ 대구 수성구로 몰리는 교육 이주, 사교육비 부담은 ‘최고 수준’

대구 수성구가 ‘대구판 강남’으로 불리는 현상이 현실로 굳어지고 있다. 자녀 교육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이른바 ‘교육 이주’가 확산되면서 지역의 인구 흐름과 주거 시장, 사교육 구조까지 빠르게 재편되는 모습이다. 최근 수성구로 이사한 40대 학부모 A씨는 “직장과의 거리가 멀어졌지만 교육 환경을 고려해 이사를 결정했다”며 “아이를 위해서라면 생활 불편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군을 중심으로 거주지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면서 수성구 쏠림 현상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5만 8000원으로 전년보다 감소했다. 그러나 사교육에 실제 참여한 학생 기준으로는 월평균 60만 4000원으로 증가하며 처음으로 60만 원을 넘어섰다. 특히 고등학생의 경우 월 70만 원대 후반 수준까지 올라 입시 시기에 비용 부담이 집중되는 구조가 확인됐다. 전체 평균이 감소한 것은 학생 수 감소와 일부 참여율 하락이 영향을 미친 결과로, 학부모들이 체감하는 부담과는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흐름은 수성구에서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지역 학원가에 따르면 고3 수험생의 경우 주요 과목 수강과 입시 컨설팅을 포함한 사교육비가 월 150만~200만 원 수준까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국어·영어·수학만 해도 기본 100만 원이 넘는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갈 정도다. 일정 수준 이상의 사교육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 지출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수성구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단순한 비용 수준 이상의 구조적 특징이 자리하고 있다. 학원 밀집도, 외부 지역 학생 유입, 입시 중심 교육 시스템, 고액 프로그램 확대 등 교육 환경 전반이 서울 강남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성구 일대 학원 수는 약 3000개에 달해 비수도권 최대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일부 학원은 수도권 유명 강의와 연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사실상 ‘강남식 교육 시스템’을 지역에 이식한 구조를 갖췄다는 평가다. 교육 쏠림 현상은 주거 시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성구는 대구에서 아파트 가격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로, 특정 학교 인근 단지를 중심으로 ‘학군 프리미엄’이 형성돼 있다. 자녀의 학령기에 맞춰 수성구로 이주하는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집값을 지지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인구 흐름에서도 차이가 확인된다. 대구 전체적으로는 인구 감소가 지속되고 있지만 수성구는 상대적으로 유입이 유지되는 지역으로 꼽힌다. 교육을 중심으로 인구가 재편되는 모습은 서울 강남권과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집중 현상이 지역 간 격차를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과 인구, 자본이 특정 지역에 몰리면서 다른 지역과의 교육 여건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교육비 상승이 단순한 가계 부담을 넘어 지역 양극화 심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수성구는 대구에서 가장 높은 교육 경쟁력을 갖춘 지역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학부모에게 가장 큰 경제적 부담을 요구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한 학부모는 “아이를 위해 선택한 곳이지만 사교육비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이 흐름이 계속된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가정도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26-03-17

신한국 인성대학원 2026년 1학기 개강식 열려

신한국운동추진본부 부설 인성교육대학원(원장 심후섭)이 지난 3일 담수회관 3층 대강당에서 제15기 1학기 개강식을 열고 학업을 시작했다. 이날 개강식에는 서정학 이사장과 수강생 등 총 150여 명이 참석했으며, 김도현 학봉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우정’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김 이사장은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의 우정인 ‘애학지교(厓學之交)’를 중심으로 두 사람의 위대한 우정과 두 사람의 교류 속에서 드러난 나라사랑 정신을 오늘날의 교훈으로 삼자고 강조했다. 인성교육대학원은 6월 16일까지 매주 화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총 15회에 걸쳐 강의를 진행한다. 주요 강사와 강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이관형(내일교회 담임목사) ‘갈등 극복을 위한 마음 다스리기’, 송의호(전 중앙일보 기자) ‘천원지폐 그림에 담긴 온고지신’, 김원길(안동대학교 교수 역임) ‘안동의 실화에 담긴 해학’, 최태연(전 계성고 국어 교사) ‘잘못 쓰고 있는 일상어’, 최윤대(미해군대학 및 캐롤라이나 주립대 박사) ‘자연에서 배우는 창의성’, 김구철(KBS 정치부 기자) ‘선비와 과거 제도-한국 근대화의 비밀’ 이재덕(전 연신초 교장) ‘리코더와 건강’, 김도상(행정학 박사) ‘선비 정신과 종류’, 권오춘(해동 경사연구소 이사장) ‘주역의 기초’, 이종원(대구문화지킴이 전 회장) ‘국보중의 국보 24점’, 이구동(전 경구중 교장) 아름다운 한시 여행, 이수만(전 언론인) ‘재미있는 정치 뒷 이야기l’, 박남철(도산선비문화수련원 지도위원) ‘인성교육과 공부 방법’, 김선완(전 경북외국어대 교수) ‘리더와 리더십’-누가 지역의 올바른 정치인인가. /권정태 시민기자

2026-03-17

안동의 전통국수 안동국시를 아세요

안동에는 두 종류의 국수가 있다. 건진국수와 누름국수다. 건진국수는 양반가를 방문하면 귀한 손님에게 내놓는 고급 음식이다. 안동지방에서는 국수를 ‘국시’라고 부른다. 따뜻한 국물로 내놓으면 누름국시고, 차가운 국물로 내놓으면 건진국시다. 안동국수가 타 지역국수와 다른 것은 밀가루에 콩가루를 3대 1의 비율로 섞어서 만든다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일반국수는 밀가루로 만들었고, 안동의 국시는 밀가리로 만들었으며, 밀가루는 봉지에 담겨있고 밀가리는 봉다리에 담겼다”는 말이 있다. 안동국시에는 서글픈 사연이 있다. 맛을 즐기기 위해 먹는 음식이 아니다. 일종의 구휼음식으로 시작한 것이다. 안동은 농사지을 땅이 많지 않아 양식이 넉넉하지 않았다. 특히 논이 적어 쌀은 항상 부족했다. 보리가 다 여물기 전 4월쯤에는 굶는 농가가 많았다. 덜 익은 보리 이삭을 디딜방아로 찧어서 죽을 끓여 먹기도 했다. 한 여름이면 보리쌀도 부족해 때를 늘리기 위해 국수를 많이해 먹었다. 콩가루를 섞는 것은 영양가와 고소한 맛을 내기 위함도 있지만, 국수의 양을 늘리려는 것이다. 국수 반죽을 얇게 밀어 종잇장 같이 만들면 밀가루만으로는 구멍이 난다. 이때 콩가루 반죽을 떼어서 구멍을 메웠다고 한다. 안동국수의 면은 밀가루에 콩가루를 넣어 반죽하여 아주 얇게 밀어서 가늘게 칼로 썬다. 썰어 낸 면을 다시 콩가루를 뿌려서 끓는 물에 삶는다. 삶아 낸 면을 건진 다음 찬물에 행궈 한 사리씩 소쿠리에 담아 놓는다. 이 한번 삶아 건지는 과정 때문에 ‘건진국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콩가루가 더해져서 면이 뚝뚝 잘 끊긴다. 면을 입에 넣고 씹어보면 콩가루 특유의 고소함이 느껴진다. 특히 뜨거운 국물로 먹으면 콩 맛이 강해진다. 안동국수의 국물은 종가마다 차이가 있다. 알려진 방식으로는 은어, 양지머리, 닭, 꿩 등으로 국물을 낸다. 낙동강과 그 지류를 끼고 있는 종가는 대체적으로 은어를 많이 사용하고, 지류에서 멀리 떨어진 종가는 양지머리와 닭, 꿩 등으로 대신한다. 국물에 참깨와 콩 등을 섞어 내는 국물도 있고, 건진국시는 맑은 국물이 대부분이다. 식당에서는 멸치로 육수를 낸다. 안동에서조차 은어 육수를 맛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란다. 안동국수의 고명은 은어로 국물을 냈다면 말린 은어 살을 찢어 올려내고, 양지머리로 국물을 냈다면 양지머리를 찢어 고명으로 올리거나 수육으로 낸다. 닭, 꿩도 마찬가지. 또 달걀을 황, 백으로 나눠서 지단을 만들어 올리고, 애호박을 살짝 볶아서 올린다. 간장은 조선간장으로 간을 한다. 조선간장은 각 종가마다 맛이 미묘하게 차이가 있어 전통 안동국시에 방점을 찍는 역할을 한다. 안동국수와 나오는 음식도 귀한 음식들이다. 문어숙회, 돔배기, 수육, 흰살 생선찌짐, 배추전 등이 있다. 재료와 만드는 방법만 보더라도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그래서 안동지방에서 양반 이외의 일반 평민들이 먹는 국시는 맹물이나 멸치육수를 곁들인 국시가 대부분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즐겨 먹던 국수가 바로 안동식 국수인 안동국시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서울시장 재임 시절 자주 먹었다는 곳도 전형적인 안동국시집이다. 종가 제사나 불천위 제사에 밥 대신 국수가 올라오는 곳이 안동이다. 그러나 그것은 종가의 이야기이고, 실제로 안동에서 안동국시 또는 건진국시를 먹으러 가면 쌈 채소와 밥을 같이 준다. 안동은 국수와 밥을 쌈 싸 먹기도 한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3-17

청도, 오누이 시인의 마을 찾아

최근 근대 문화마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경상북도 땅 끝 청도 유천마을을 찾았다. 화악산의 정기와 청도천을 끌어안은 그림 같은 마을이다. 다리를 건너서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근대로 여행 온 기분이다. 6~70년대나 볼 수 있었던 고풍스러운 모습에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긴다. 마을 안이 괴괴하기 짝이 없다. 이층집 일본식 건물이 먼저 행인을 맞는다. 나무판자로 켜켜이 엮어 올린 벽면이 고색창연하다. 일제의 잔영이 남아있는 듯 나라 잃은 슬픔이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근대 골목을 거닐다 보니 빛바랜 옛날 나무간판이 즐비하다. 구생당 약방, 중앙소리사, 사료상회, 정미소, 극장이 차례로 나타난다. 무엇보다 소리사와 극장이 눈에 띈다. 소리사 안의 널브러진 유성기 속에서 거리를 온통 메웠던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는 것만 같다. 청춘 남녀가 줄지어 매표소에서 극장표를 사는 모습들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고샅길에 들어서니 청동으로 만든 현대식 간판이 나타난다. 담장 너머로 말끔하게 정비된 아담한 집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이호우·영도 오누이 시인의 생가다. 입구에 커다란 감나무가 손님을 맞는다. 고즈넉한 시골집 툇마루에 앉아 시인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본다. 시인은 감꽃을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고 물에 삭힌 감또개를 간식으로 즐겼을 것이다. 강변에 오누이 공원이 있다고 하여 한달음에 달려가 보았다. 은어가 노니는 명경 같은 청도천과 동창천이 만나는 둔치에 두 시인의 시비가 서 있다. 이영도 시인은 1916년 이곳에서 태어나 주로 부산 경남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통영여중 교사로 재직했으며, 폐결핵으로 남편을 잃었다. 당시 청마 유치환 시인이 같은 학교에 근무했다고 한다. 유부남인 그는 이영도의 단아한 여성미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청마는 줄기차게 정운에게 연모의 편지를 보냈다. 청마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장장 20년 동안 5000여 통을 썼다고 한다. 청마의 장례식장에는 하얀 소복을 입은 여성이 있었다. 5000통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었다. 근대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 여기 유천 마을이다. 이영도 시인을 만나고 오누이 공원을 나오니 애틋한 감정을 삭일 수가 없다.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노라.’ 유치환의 고백이 가슴을 후벼 파는 심정을 억누를 수 없다. 백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고 했던가. 오천 번 찍어도 넘어가지 않았던 이영도 시인의 인내는 어디서 나왔을까. 규범과 규범의 이중 굴레 속에서 이영도 시인의 인생 승리가 공원에 잔잔히 메아리친다. 시인의 고향, 근대마을을 돌아보고 나오는 발걸음이 왠지 가볍지만은 않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3-17

(시민기자 단상) 서로를 지켜 주는 새해

달력의 마지막 날을 짚어보며 자연스레 지난 시간을 돌아봅니다. 기쁨과 감사가 있었고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걱정도 많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모든 시간 속에서 누군가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사회를 떠받쳤다는 사실입니다. 이 글은 그분들에게 드리는 작은 감사와 새해를 향한 조용한 다짐입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경쟁의 현장에 익숙해 있습니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크게가 성공의 기준처럼 여겨졌습니다. 우리를 버티게 한 것은 화려한 성과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배려와 책임감이었습니다. 골목 상점을 지켜 낸 상인, 묵묵히 현장을 지킨 노동자, 위험 속에서 안전을 책임진 제복 입은 공무원 그리고 가족과 이웃을 돌본 수많은 시민들. 그분들의 삶 자체가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위기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이 진짜 소중한가.” 성장과 편리함만을 좇다 보면 공동체의 끈이 느슨해지고 서로의 상처를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송년의 덕담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방향을 고쳐 세우는 약속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26년에는 조금 느려지더라도 옆 사람의 걸음을 한 번 더 돌아보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공정함과 신뢰 역시 새해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법과 제도가 아무리 정교해도 서로를 의심하는 마음이 가득하면 사회는 거칠어집니다. 오히려 규칙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함께 지켜야 한다는 공감이 생기면 갈등은 줄어듭니다. 공정은 누군가를 심판하기 위한 칼이 아니라 모두가 안심하고 살아가기 위한 약속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름을 품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세대 간의 생각이 다르고, 지역과 직업이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닙니다. 의견이 충돌할 때 목소리만 높이면 결국 더 멀어질 뿐입니다. 새해에는 “내 말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겸손이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기를 기대합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며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최고의 덕담은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수고 많았다”, “고맙다”, “같이 가자.” 이 짧은 말 속에는 지난 과거를 인정하고, 내일을 함께 열겠다는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이 말을 더 자주 건넬수록 사회는 조금씩 단단해질 것입니다. 새해는 누구에게나 빈 공책처럼 주어집니다. 그 위에 무엇을 적어 넣을지는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시민기자는 작은 소망을 적어 봅니다. 일터에서의 안전이 일상이 되고, 가족의 웃음이 더 오래 머물며, 이웃과의 인사가 자연스러워지는 사회. 갈등보다 신뢰가, 냉소보다 희망이 더 자주 선택되는 사회가 되기를. 한 해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부족했던 시간은 성찰로, 아팠던 기억은 나눔으로, 새해의 첫걸음은 서로에 대한 존중으로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석종출 시민기자

2026-03-17

해상풍력 개발, 국가 주도 ‘계획입지’로 전면 개편···26일 해상풍력법 시행

앞으로 해상풍력 발전사업은 정부가 적합한 입지를 사전에 발굴하는 계획입지 제도가 도입되고, 범정부 차원의 통합 기구를 통해 인허가 절차를 한꺼번에 처리하게 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해상풍력 보급 촉진 및 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해상풍력법)’ 시행령이 17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26일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 이번 시행령은 지난해 제정된 ‘해상풍력법’의 구체적인 실행 지침을 담았다. 해상풍력 발전사업은 개별 민간 사업자가 입지를 발굴하고 인허가를 추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지만, 앞으로는 정부가 주도하는 ‘계획입지’ 체계로 전면 개편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전력계통, 군 작전성, 주민 수용성 및 복잡한 인허가 절차로 인한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질서 있는 해상풍력 개발과 보급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번 시행령은 △해상풍력발전위원회의 구성·운영 △해상풍력발전 예비지구 지정 절차 △민관협의회 구성 및 운영 △해상풍력발전사업자 선정 절차 △환경성 검토 절차 등 해상풍력 계획입지 제도의 구체적인 운영 기준을 규정하고 있다. 해상풍력법의 핵심은 해상풍력 사업 전 과정에 대한 정부의 공적 책임을 강화한 것이다. 먼저 국무총리 소속의 ‘해상풍력발전위원회’를 신설해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고 예비지구·발전지구 지정 등 계획입지 전반의 주요 정책을 심의하고 의결한다. 또, 정부가 선제적으로 해상풍력 적합 입지를 발굴하고 검토한다. 풍황, 어업활동·환경에 미치는 영향, 해상교통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예비지구’를 지정하고, 이후, 경제성, 수용성, 계통 등을 검토해 ‘발전지구’로 확정한다. 이 밖에도 발전지구 내 사업자로 선정되면 관련 법령에 따른 인허가 절차를 일괄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해 사업 추진 절차의 효율성을 높인다. 지방정부는 민관협의회 운영을 통해 주민 수용성 확보 및 이익공유 방안 등을 논의하며, 위원으로 어업인·주민 대표가 전체의 2분의 1 이상 참여하도록 의무화한다. 정부는 법 시행일인 26일부터 제도 운영을 위한 후속 조치에 착수한다. 해상풍력발전위원회와 실무위원회를 조속히 구성해 범정부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관계부처 및 지방정부와 협력해 해상풍력 발전 입지 여건과 지자체의 추진 의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연내에 1차 예비지구 후보지를 발굴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법령에서 위임한 환경성 평가 세부 기준과 기존 사업자 및 집적화단지의 편입 기준 등을 담은 하위 고시를 연내에 단계적으로 마련한다. 한편,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입지를 발굴하고, 지역주민·어업인·지자체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의회를 통해 주민 수용성을 확보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추진하는 구역인 ·재생에너지 해상풍력 집적화단지’ 지정에 실패한 포항시는 해상풍력법 시행에 따른 국가 주도 해상풍력 사업 예비지구 지정에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배준수기자 baepro@kbmaeil.com

2026-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