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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저축, 돈을 위한 행진곡

이대환 `ASIA`발행인·작가문학이 내 인생에 안겨준 최상 인연은 두 스승이다.시인 구상(具常), 소설가 신상웅(辛相雄). 요즘도 대학시절의 두 스승과 늘 정신적으로 교감하면서 `큰 고통이었던 등록금`의 기억에 대한 위안으로 삼는다.구상 시인은 7년 전 이승을 떠났다. 그 뒤로는 `내 기억과 고인의 저술`이 정신적 교감의 길을 열어준다.여전히 소주를 마시는 1938년생 신상웅 작가. 이 스승은 인기작가가 아니다. 문학의 상업주의를 경멸한다. 대중이 왕창 팔아준 소설가들과는 문학세계의 격이 다르다. 옹호할 가치를 옹호하는 진정한 작가다. 한국문학사는 그의 중편소설 `히포크라테스 흉상`과 장편소설 `심야의 정담`을 길이 예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때는 80년대 중반. 대학가에는 최루가스가 터지지 않는 날이 없었던 것처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평생 나아가자던 뜨거운 맹세…”라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지 않는 날이 없었다. 신상웅 교수 강의시간. 광장에 모이겠다던 학생들이 제대로 안 모이자 운동권 학생대표가 강의실 문을 열었다. “교수님은 지금이 어느 땐데 학생들을 보내주지 않는 겁니까?” 젊은 목소리는 `혁명적 도덕주의`로 뭉쳐져 건방지게 훈계하는 것이었다. 신 교수가 그에게 다가갔다. “무례하게 강의시간에, 기본 예의도 모르는 놈이!” 자그만 손바닥이 매섭게 따귀를 갈겼다.혹시나 `어용`으로 몰릴세라 많은 교수들이 운동권 학생들에게 빌빌대던 80년대에 감히 그 지도자를 체벌한 신 교수는 유신체제에 저항한 작가였다. 사형선고를 받은 김지하 시인 구명운동에 적극 나선 적도 있었다. 독재자든 권력자든 상업적 유혹이든 그 앞에서 펜과 양심을 빳빳이 지켜낸 그가 90년 가을의 어느 저녁에 이렇게 토로했다.“80년대 운동권 학생대표들은 교내에 설치된 커피자판기 운영권까지 손아귀에 넣었다. 그게 재단비리의 하나니까 자신들이 직접 맡아서 투명하게 학생회 기금으로 활용하겠다는 거였다. 그러고는 총장실 점거해서 뒤로는 학생회장 선거자금 흥정하는 놈들도 있었고… 그때 커피자판기 운영의 투명성을 외쳤던 그들이 사회에 나가서 그 도덕성의 단 5%만 유지해줘도 앞으로 한국사회에서 부정부패는 거의 사라질 거다. 어디 한번 지켜보겠다. 형편없는 자식들이었는지 아니었는지”부산저축은행 사건이 마치 급성장하는 괴물처럼 한국의 사회구조적 부패사태로 급성장하는 동안, 나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하나는 80년대를 풍미하더니 마침내 절정에 다다른 듯이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 청와대를 쩌렁쩌렁 울린 `임을 위한 행진곡`이고, 또 하나는 이십여 년 전 술자리에서 스승이 탄식한 5%짜리 도덕성이었다.부산저축은행 사태의 핵으로 지목된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59). 광주일고 출신, 전남대 72학번, 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징역 10년 선고받아 10개월 만에 석방. 79년 야학운동을 하던 그의 여동생 박기순씨 연탄가스 중독사. 이렇게 `운동권 명가(名家)`가 탄생한다. 그리고 80년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씨가 계엄군에 맞서다 쓰러졌다. 광주 운동권에서 윤씨와 박씨의 영혼결혼식을 마련했다. 여기에 한 노래가 바쳐졌다.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권의 `정권 삼대`를 즐기며 부패의 괴물로 성장한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운동권`의 구역질나는 한 타락상을 폭로한다. 신상웅 작가의 예언이 슬프게도 적중했다. 그 잘났던 도덕성의 마지막 5%마저 돈과 바꿔먹은 것이다. 그들과 함께 해먹은 `똑똑한 보수적 인재들`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영혼이 텅 비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운동권 출신이나 똑똑한 보수적 인재들은 현재 한국사회의 주요 골격이다. 그들의 상당수가 썩었다.그래서 부패공화국이라는 탄식이 터져 나온다. 물신(돈)이 군림하고 지배하는 한국사회. 썩은 자들은 다시 뭉쳐서 `임`이 아니라 `돈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야 한다.“얼굴도 양심도 이름도 남김없이/돈 위해 나아가자는 뜨거운 맹세…”

2011-06-27

대청봉과 사다리 치우기

이경우대구본부장해발 1천708m. 설악산 대청봉에 오르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해발 2천m가 넘는 세계 고봉을 동네 뒷산처럼 올라본 적도 있고 1천900m대의 지리산 한라산을 올랐던 경험과는 또 다른 장애가 똬리틀고 있는 곳이 대청봉이었다. 내 다리의 보폭은 고작 70cm 남짓이고 인간의 공포와 생명의 한계는 10m 고도에서 판가름 난다는 뻔한 사실 때문일 것이다. 대구에서 접근하기에는 중앙고속도로가 뚫리면서 한결 가까워졌다. 황태덕장으로 소문난 용대리에서 셔틀버스로 내설악 백담사까지는 일방통행식이었다. 길게 늘어서서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 1대가 겨우 지나갈 비좁은 도로 중간 중간에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교행할 수 있도록 터를 닦아 놓았다.거기서 봉정암까지 가는 길은 처음엔 비교적 평탄했다. 녹음 속 산길을 걸으면서 계곡의 비경을 감상하는 여유도 부려본다. 깎아지른 절벽에 매달린 소나무의 용한 끈기에 감동하고,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천 길 벼랑 끝 바위가 위태위태하게 걸려 있는 까마득한 절벽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계곡의 물은 가뭄 속에서 겨우 이곳이 내설악 계곡 폭포였음을 알려줄 뿐 웅장함은 찾을 수 없었다.줄 지어 산을 오르는 사람들. 성별도 연령도 직업도 출신지역도 상관없이 오로지 산만 바라고 앞사람 등산화 발자국을 따라 배낭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다. 자세히 보니 그 많은 사람들이 험한 산을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곳곳에 설치해 놓은 철제 사다리 덕이 컸다. 그것은 산을 내려올 때 분명히 알 수 있었다.대청봉에서 봉정암을 거쳐 백담사로 내려오는 길, 특히 봉정암 초입에서 산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아득했다. 이 길을 내가 올라왔다니, 어떻게 올라왔을까.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발을 어디다 내딛어야 할지, 바위 모서리를 웅켜잡은 두 손은 놓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길을 내려와야 했다. 깔딱고개라고 그랬다.그 깔딱고개를 내려오면서 알았다. 오를 때는 앞만 보고 올랐기에 이 길이 얼마나 험하고 또 가파른지 몰랐다는 것을. 그리고 설악산을 오르는 그 많은 사람들이 (예전보다) 쉽게 설악산을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고맙게도 곳곳에 만들어놓은 사다리 덕분이라고 혼자 결론을 내려 버렸다.지난해 8월 정부가 행정고시 합격자를 줄이고 일정 분야에서 사회적 검정을 거친 인재를 뽑는 특채를 50%까지 늘리겠다고 했을 때 국민적 반대가 나왔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것은 분명 사다리 치우기였다. 열심히 공부해서 상류사회로 진입하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치우다니, 자신들은 그렇게 출세해놓고 지금 와서는 고시를 없애거나 줄이겠다니. 결국 정부는 한 달여 만에 종래 수준을 유지키로 결정했다. 당시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장관의 딸 특채 파문으로 공직 대물림 등 현대판 음서제도가 될 수 있다는 비판 여론이 정부의 특채 확대 계획을 주저앉힌 것이다.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해서 시집가고 장가가려면 어쩔 수 없이 대학을 나와야 하는 현실에서 대학 입학 문이 좁아진다면 이것은 또 하나의 사다리 치우기가 될 것이다. 기성세대들 중에는 어렵지 않게 대학 들어가 졸업장을 움켜쥐고 취직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문제 대학이니 부실 대학이니 하며 대학을 구조조정 하겠다고 설레발치는 정부당국자를 보는 국민의 눈이 곱지만은 않다. 대학은 가장 든든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사다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대청봉에서 바라본 일출은 장관이었다. 멀리 동해의 이글거리는 태양이 불쑥 솟아오르는 순간을 두 눈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은 곳곳에 설치해 둔 수많은 사다리 덕분이었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도록 많은 제도적 장치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잘 난 사람, 똑똑한 사람 많은 우리나라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이 사회의 상층부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곳곳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놓고 대학을 줄일 일이다.

2011-06-27

`길 잃은 황제펭귄` 결국 병원신세

수분보충·체온유지 위해 눈 대신 흙 먹어 자신이 살던 남극 서식지에서 3천200km 이상 떨어진 뉴질랜드 바닷가에 홀로 나타난 황제 펭귄 이야기가 세계인들의 마음을 짠 하게 만들고 있다. 전혀 낯선 곳까지 어쩌다 혼자 오게됐을까 안타까움을 산 것으로부터, 제발로 돌아갈 수 있길 기다리던 사람들의 희망을 저버리고 몸져 눕고 말았다는 소식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가 세계인들로 하여금 애를 태우게 하는 것이다.이 펭귄이 발견된 것은 지난 20일쯤 뉴질랜드 북섬 페카페카 해변에서였다. 나이는 세살쯤으로 보이고 몸무게가 27kg인 세 살쯤 돼 보이는 황제펭귄이었다. 그 지역에서 황제펭귄이 목격된 것은 44년 만이었고, 남극에서 먹이를 찾다 길을 잃고 떠내려 온 것으로 추정됐다.처음에 당국은 펭귄이 건강한 것으로 판단하고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상 1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 지친 펭귄은 열사병과 탈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남극에서는 황제펭귄이 수분 보충과 체온 유지를 위해 눈을 먹지만, 뉴질랜드에서 눈을 찾을 수 없자 모래와 나뭇가지로 배를 채운 것으로 추측됐다.결국 펭귄은 지난 25일 얼음 욕조에 실린 채 동물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는 정맥주사를 맞고 두 차례 수술을 통해 뱃속에서 모래를 빼내는 치료를 받았다. 25일 수술 현장에는 100여명의 시민이 몰려들어 유리막 밖에서 쾌유를 빌었다.수의사들은 펭귄의 뱃속에서 모래가 3kg 정도 나왔으며 아주 위급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웰링턴 동물원의 리사 아길라 박사는 펭귄의 뱃속에 모래와 작은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며 자칫 배가 터질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동물원 관계자들은 27일 다시 펭귄의 뱃속을 세척할 것이라고 전했다.펭귄이 수술을 받고 난 직후 투자회사를 운영하는 뉴질랜드 기업인 개러스 모건 박사는 해피 피트가 살아나면 내년 2월 남극으로 가는 러시아 쇄빙선에 자리를 예약해 남극으로 돌려보낼 것이라며 원한다면 자연보호부 관계자들도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연합뉴스

2011-06-27

네 가지 없음

논어에 오직 인자한 자라야 사람을 좋아할 수 있으며 진실로 어진 것에 뜻을 두면 악함이 없다고 했다. 인생은 늘 만남으로 인간관계가 이루어 진다. 이 만남은 삶을 유지시키는 신경계의 모습이다. 만남에 대한 좋고 싫음이 너무나 분명한 현대인들에게 만남에 대한 경계심도 가지는 편이다. 누군가를 좋고 싫어한다는 것이 내적인 수신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의 감정표현을 여과없이 그대호 쉽게 드러낸다. 공자께서는 네 가지가 없었다고 한다. `사사로운 뜻이 없었고 꼭 하겠다는 욕심이 없었고 또한 고집이 없었고 나라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 언급되는 `4가지 없음`은 바로 사람 간의 만남을 귀하게 만드는 비타민이며 사람을 진실로 좋아할 수 있도록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행동양식이다. 논어는 사서(四書)의 하나로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을 적은 유교의 경전인데 공자의 제자 자공이 스승인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고을의 모든 사람이 좋아하면 그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그것은 - 옳지 않다. 고을 사람들이 모두 미워하면 그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그것은 - 옳지 않다. 고을 사람 중에서 착한 사람이 그를 좋아하고 선하지 못한 자가 그를 미워하는 것만 못하는 것이다. 이의 본뜻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거나 미움을 받는 경우 둘 다 바람직 하지 않다는 것이다. 선한자의 편이든 불선한자의 편이든 자신의 입장을 갖지 못하는 눈치 보기가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는 것이다. 사람을 좋아하기가 더욱 힘든 시대에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논어는 관용과 사랑의 마음을 살려 내어 순수한 인간관계를 회복시키는 인류의 고전(古典)이다. 사람 좋아하기가 어려운 세대에 깊은 감명과 교훈을 주고 있다. 사람은 매일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싫은 지 좋은지도 눈치 볼 것 없이 그냥 만나는 존재다. 내가 좋아해야 상대방도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 조차도 모르면서./손경호(수필가)

2011-06-27

성주 월항석재단지 폐기물 `몸살`

일부 공장주변 폐석재 방치·무단투기 등 환경오염 【성주】 석재가공 공장에서 발생하는 폐석재와 오니 등 폐기물에 대한 불법투기가 성행하며 주변 지역 미관과 환경을 크게 저해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 성주군에 따르면 성주군 월항면에 월항지방산업단지(석재 전문화 단지)에 각종 석재 물을 제작하는 12여곳의 크고 작은 석재공장이 현재 성업 중이다.그러나 일부 석재가공 공장들은 경기악화 등을 이유로 공장에서 발생하는 폐수처리장의 오니를 적법하게 처리하지 않고 공장 주변에 그대로 방치해 인근 지역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으나 단속의 손길은 미치지 못하고 있다.특히 환경사범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석재공장들이 환경보전에 대한 의식마저 상실한 채 공장 주변에 폐석재 등을 흉물스럽게 쌓아놓고 있다.더욱이 산업단지 입구에는 석재공장에서 사용되는 가공 석재가 도로 및 보행자 통행로를 점거한 지 오래고, 석분들과 뒤섞인 채 널려 있다.일부 몰지각한 업주는 석재 폐기물을 야산 주변이나 공장 인근의 후미진 곳에 무단투기 하는 사례마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행정기관의 적극적인 지도·단속이 절실하다.실제로 산업단지내 빈공터에는 석재공장에서 무단투기한 것으로 추정되는 폐석재가 수십만》이 불법 투기되 있어 환경오염을 유발시키고 있다.주민 김모(57·월항면)씨는 “일부 석재공장이 폐기물 불법투기를 일삼고 있어 환경오염을 유발시키고 있다”며 “석재공장에서 사용되는 가공 석재가 도로 및 보행자통행로를 점거해 무법천지가 되어 있어 행정기관이 철저한 단속을 통해 근절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성주군 관계자는 “산업단지 내 협의회와 조율해서 폐석분 등을 폐기물처리업체와 연결해서 처리하도록 독촉하겠다”고 해명했다./손창익기자 sohn6770@kbmaeil.com

2011-06-27

봉화고추 명품화 날개 달았다

최첨단 원적외선 건조시설 갖춘 처리장 준공연간 2천t 가공 `으뜨미아` 브랜드로 출하 【봉화】 봉화군은 지역의 대표적 특산품인 고추의 명품화와 유통활성화를 위해 고추 종합처리장을 준공했다.군은 지난 24일 박노욱 봉화군수를 비롯해 공동사업법인 대표, 각급 기관단체장, 유통업체, 고추 농가 농업인 등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했다. 이번에 준공한 고추 종합처리장은 지난 2008년 농림수산식품부가 주관하는 원예브랜드사업에 안동시와 봉화군이 공동사업으로 제안해 선정된 사업이다.봉화읍 유곡리 359-6 번지에 총사업비 57억원(국비 23억 포함)을 투자해 부지면적 1만254㎡에 2층 건물로 저온창고와 작업장, 건조실 등을 갖췄다.봉화군은 연간 1천600ha에서 4천여t의 고추가 생산되는 전국 3위의 고추 주산지로 `으뜨미아`라는 고추브랜드를 개발하고 고추 세척시설과 고추의 색도와 조직을 변함없이 유지하면서 건조할 수 있는 최첨단 원적외선 고추 건조시설도 갖췄다.봉화지역 6개 농협과 남안동 농협이 공동출자해 설립한 안동봉화조합공동사업법인(대표 류동걸)이 운영한다.올해부터 붉은 고추 생산농가와 계약재배를 통해 연간 2천t의 붉은 고추를 건조해 `으뜨미아` 브랜드로 음식재료 업체 및 대형마트 등에 출하할 계획이다./방유수기자

2011-06-27

6·25 참전용사를 이대로 버려 둘 것인가

6월 호국보훈의 달이 지나가고 있다. 호국은 있었으나 보훈은 없었다. 6·25 참전용사 생과 사의 갈림길을 여러 차례 넘나들며 끝까지 살아남아 조국의 산하를 지켜낸 역전의 참전용사의 위국헌신 희생정신을 받들고 예우해야 할 것이다. 6·25 전쟁에 참전한 군인은 당시 남한 남자의 10분의 1이 넘는 100만~130만명으로 추정한다. 이중 62만1천497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했다. 지난 60년간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눈부신 경제성장과 발전을 이뤄냈다. 세계가 놀라는 현재의 우리의 모습은 전쟁때 이 나라를 지켜낸 참전용사들의 피와 희생이 밑거름이 됐다. 그런데 선진국 문턱에 왔을 만큼 부유해진 지금, 참전용사들에 대한 국가적 배려와 사회적 예우는 너무나 처참한 현실이다.보훈교육원이 최근 6·25 참전용사 중 19만7천56명에 대해 사상 첫 전수조사를 한 결과 이들의 월평균 소득은 37만116원에 불과해 올해 1인 가구 최저생계비 50만4천344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또 절반이 넘는 53.4%는 자신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6·25 참전용사의 경우 상이군경과 무공수훈자는 국가유공자 혜택을 받지만 단순 참전유공자는 참전명예수당으로 월 12만원을 받는다. 무공수훈자의 무공명예수당도 월 18만원에 불과하다. 북파공작원 등 특수임무 수행자의 경우 일시불로 평균 1억5천600만원을 받은 뒤 교육과 취업, 의료 등에서는 국가유공자와 동일한 혜택을 받고 5·18 민주화 유공자도 일시보상금은 물론 국가유공자 혜택을 받는 것과 비교하면 참전유공자들이 받는 혜택은 너무나 비약하고 비참하다고 판단된다.1년전은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천안함 사태로 순직한 장병들에게 관계법에 따른 일시금 수억씩 외에 국민성금 1인당 몇억원씩을 지급한 것에 비하면 참전용사에 대한 혜택은 과히 홀대 수준이다.지난 5월말로 생존해 있는 6·25 참전용사가 세상을 떠난 것으로 조사된다. 얼마가지 않으면 이 땅에 6·25 참전용사는 단 한사람도 살아남지 않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정부는 나라가 어려울 때 목숨을 걸고 사지에 뛰어든 참전용사들에 대해 현실에 맞는 혜택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한많은 인고와 오욕의 삶 50년이 훨씬 지난 세월이 흘렀다. 피난지에서 피난길 거리에서 마구잡이로 잡아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 한 채 성능초자 부실한 M1 소총 또는 일제 38식 소총에 충분하지 못한 실탄을 주고 사지로 몰아낸 채 온 젊음을 조국에 바친 호국노병을 위해 그동안 정부는 무엇을 했나 안중에나 있는 것인가.모래알 씹히는 피붙은 쉰 주먹밥 한 덩이로 몇 끼니를 견디며 피눈물로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나라를 지켜냈다. 혹한의 추위에 얼었고 찌는 듯한 무더위에 탔고 빗발치는 탄우에 쓰러져간 용사들은 그 얼마인가. 내가 죽을 수도 있는 자리에서 나 대신 죽은 전우들을 떠올리며 나 혼자 살아남은 죄의식·죄책감에 평생을 살아왔다. 그런데도 철부지 젊은이들은 “50년전 전쟁에서 피 몇방울 흘려놓고 60년이 가깝도록 울겨 먹는다”·“당신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는 그때 통일이 되었을 것이다”라며 폄훼하는 젊은 세력들도 있다. 가슴을 치며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폭탄이라도 껴안고 뛰어들고 싶다. 국가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자를 위해 살아있을 때 사후까지 영원히 그의 명예를 현양하고 보상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 4·19는 의사요 5·18은 열사고 6·25는 ×사다 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우리는 차라리 제2의 6·25라도 일어나 국민들의 정신개조를 하고 내가 사는 조국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청춘 젊음을 바쳐 지킨 조국이 있었기에 4·19 민주화도 5·18 민주화 운동도 가능한 것 아니었나.

2011-06-24

종교

이원락/포항장성요양병원장종교는 궁극적 문제를 다룬다.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가, 죽어가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등등의 삶과 죽음, 삶의 의미와 가치 등 근본적 문제를 다룬다. 또 우주의 생성, 전개, 소멸 등 첨단과학으로도 다룰 수 없는 것에도 적극적인 해답을 준다. 종교에 대한 사전적 정의에도 `종교란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삶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체계`라고 기술되어 있다.최초의 종교는 삶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과 공포에서 출발했다. 현실을 알 수 있다면 두려움에 떨 필요가 없다. 그 두려움의 정점은 죽음이다. 인간이 완벽하다면 종교가 필요 없다. 또한 무지가 넘쳐나도 믿을 수가 없다. 어쩌면 인간은 종교의 필요성을 간절히 기다리는 정도의 정신 수준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궁극적인 문제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에는 종교학과 철학이 있다. 철학은 궁극적인 문제를 던졌으되, 답은 유보한다. 우주의 시작과 끝은 우리의 인식범주가 아니므로, 답할 필요가 없고, 영혼, 운명, 시간, 공간과 같은 궁극적 문제에 대해서는 답을 유보하라고 한다. 이것들은 처음부터 문제가 아니며, 답이 불가능하다고 한다.철학은 사색을 통한 표출의 세계이며, 이지적 이성적 부분에 의존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죽음과 사후 영혼의 불멸성, 운명과 의지, 제1원인인 신의 존재 등은 과학적 논쟁이 불가능하고, 경험의 대상이 아님으로 해답이 없다고 한다. 어느 철학자는 `말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말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하라`고 했다.기독교나 불교 등 각 종교는 그 발생지역 사회의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그 사회 구성원의 생활양식에 따라, 고유한 신앙형태가 있으므로 종교는 하나의 문화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 기독교는 신의 뜻에 의해 우주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우주는 성립되었다가(成) 머물다가(住) 파괴되었다가(壞) 텅비는(空) 과정을 무한히 되풀이 한다고 한다. 또 죽음에서는 각자의 지은 업(業)에 따라, 윤회한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신을 안 믿으니 종교가 아니라 하지만, 신의 유무는 궁극적인 문제에 대해`신`이라 대답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일 뿐이다.종교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극복하는 법을 가르친다. 고통이라는 것을 고통해 보려고 애를 쓴다. 고통과 하나되는 순간에 종교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궁극적으로 해결 못하는 것이 고통이다. 고통이 찾아 왔을 때, 그것이 온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것이 종교이다. 종교의 목적은 그것을 해결해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일시적이지 않고 영원한 행복, 진정으로 완벽한 행복, 그것은 고통을 해결해야 가능한 것이다.죽음도 고통이고, 태어남도 고통이다. 또 고통은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더욱 고통스럽다. 종교란 이것이 인생임을 똑바로 보고 깨달아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종교의 믿음에는 고상하거나, 또는 천한 수준 등의 차별이 없다. 누구든지 절대의 빛을 찾으려면, 자기 주관이나 감각에 의존하는 수준을 넘어가야 한다. 빛은 프리즘을 통하면 여러 빛으로 나뉘는데, 프리즘 이전의 빛, 즉 근원적인 빛이 종교의 진리이다. 진리는 하나인데, 각 종교에 따라 설명이 다를 뿐이다.샤마니즘도 인간의 궁극적 문제를 다루고, 사후 세계에 대한 해답을 주장한다. 그들에게도 신앙하는 무리가 있고, 굿과 같은 낮은 수준의 종교의례가 있다. 그러나 경전이 없고, 계율같은 도덕적 율법이 없는 것이 종교와의 차이이다.종교에는 신앙하는 무리가 있고, 그들의 정서적 왜곡을 순화시키는 종교의례가 있다. 이로써 신심이 두터워 지며, 감정이 부드러워 지고 고통, 고난,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다.

2011-06-24

몇 살부터 노인인가

우리나라 보건복지부에서 결정한 노인은 만 65세부터이다. 일본의 70세에 비하면 다소 젊은 점이 있지만 노인의 우대가 발전되고 있는 실정이다. 철학자 소포클레스도 “늙어가는 사람만큼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고 노인은 두 번째의 아이라 했다. 극작가 셰익스피어도 `햄릿`에서 노인이란 아이를 둘 합친 것 같은 것이라 말한 것이다. 노인들은 때로는 그들의 젊은시절을 감상적으로 뉘우치고 때로는 재치 있게도 그것을 잊어버린다고 한다. 우리나라 속담에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하면서 젊어서 뼈가 빠지도록 일하고 재산을 늘리면서 자식 뒷바라지에 전생을 보냈다. 별보고 들에 나가 별보고 집에 돌아 올 정도로 온 종일 농사일·장사 하는 일에 노심초사 했다. 이제 남는 것은 온 몸에 탈이 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육신도 정신도 쇠약해 가고 있다. 그래도 자식이 희망이며 늘 그 걱정에 날이 새고 날이 저문다. 요즘은 노인들의 건강지수도 높고 행복지수도 높아 새로운 일자리나 취미생활에 도취돼 오히려 젊은 시절 바빠서 못한 일들을 찾아 나서는 실정이다. 노인합창단이 있고 연주회도 있으며 노인들을 위한 평생교육원에서 새로운 취미생활에 활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80세 전후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어르신들이 늘고 있다. 50대에 직장을 은퇴하고 75~80세까지 제2의 인생을 살다 그때부터 길게는 90세까지 제3의 인생을 보낸다. 성균관대 조준모 교수는 “예전에는 80세 이상을 덤으로 사는 시기라고 생각해 소비나 하거나 돌봄을 받았으나 요즘에는 생산활동을 하는 제3의 수확기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3모작에는 건강유지가 필수. 무릎관절·고관절·임플란트 수술을 받은 80세 이상 노인들이 두 세 배 늘었다고 한다. 의사들도 전에는 80세 노인의 질병은 그냥 넘어갔지만 이제는 적극적으로 치료한다는 것이다. 80세가 되야 경로당에 간다 . /손경호(수필가)

2011-06-24

`丘`냐 `溝`냐?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어제는 필자가 몸담고 있는 곳에서 교수발표회가 있는 날이었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학과의 교수들이 자기가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에 관해 학술적인 발표를 하고 이에 대해 토론을 하는 행사였다.벌써 5년 이상 계속되어 오는 이 정례적인 행사에서 어제 발표를 한 분은 고전문학 가운데서도 한문학을 전공하고 계신 박희병 교수였다. 이 선생님이 같은 학과의 교수들, 대학원생들 앞에서 발표한 주제는 「김시습의 `자사진찬(自寫眞贊)`에 나타난 `丘` 一字 검토」였다.그러니까 김시습이 자신의 자화상에 붙인 것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시에 나오는 `丘`자에 대해서 발표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김시습이 남긴 `자사진찬`이란 시는 다음과 같다.부시이하(俯視李賀) 우어해동(優於海東)등명만예(騰名만譽) 어이숙봉(於爾孰逢)이형지묘(爾形至묘) 이언대동(爾言大동)의이치지(宜爾置之) 구학지중(丘壑之中)필자는 이 시를 우리말로 정확하면서도 풍부하게 다 옮기지 못할 것 같다. 그 대강의 뜻을 전해 보면 다음과 같다.남들은 너의 시를 중국 시인 이하(李賀)에 견주어 우리나라에서 최고라고들 한다. 그러나 찌를 듯한 이름과 부질없는 명예가 어찌 너에게 합당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네 모습은 눈이 찌그러져 있고 너의 말은 너무 커서 어리석기 그지없으니, 마땅히 그것을 골짜기(丘壑) 속에 두어야 할 것이다.박희병 교수가 문제를 삼은 것은 이 시의 마지막 구에 나오는 언덕 구자(`丘`)자가 다른 판본에는 도랑 구자(`溝`)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무량사에 남아 전해져 내려오는 김시습의 부도에 새겨진 `자사진찬`에도 `丘壑`이 아니라 `溝壑`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렇게 한 자가 달라짐으로써 김시습의 이 시에는 굉장한 의미 차이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었다.박희병 교수의 뜻을 이 자리에 제대로 옮길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번 발표는 논문을 모두 완성한 상태로 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연구 노트를 바탕으로 주로 말로 김시습의 정신세계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형태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보통 `丘壑`이라고 하면 `언덕 골짜기`라고 해석할 수 있으니, 이에 따라 김시습의 시를 해석하면 현실에서 벗어나 승려로 살아갔던 김시습의 인생관을 피력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溝壑`이란 그렇게 자연스러운 뜻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도랑과 골짜기`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구렁텅이, 즉 땅이 움푹하게 팬 곳을 가리키며, 나아가 `죽어서 자신의 시체가 도랑이나 골짜기에 버려지는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溝壑`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맹자』에 그 선례 그 다고 했다. 이를 溝壑`에찾아보니 다음과 같다.지사불망재구학(志士不忘在溝壑)용사불망상기원(勇士不亡喪其元)그 뜻은 다음과 같다. `뜻이 있는 선비는 구렁텅이에 있음을 잊지 않으며 용기 있는 선비는 머리를 잃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는 선비, 즉 유가에 관한 문장이므로 만약 김시습의 `자사진찬`에 있는 문구를 `溝壑`이라고 보면, 김시습은 승려의 탈속적 경지를 노래한 것이 아니라 비록 승복을 입고 있을지언정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정신을 버리지 않는 자신의 정신세계를 노래한 것이 된다.박희병 교수의 입론을 경청하면서 필자는 공부하는 것이란 이렇게 한 글자의 차이가 대상 자체의 해석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 줄 수도 있는,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운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지 않을 수 없었다.`丘`냐, `溝`냐? 이 한 자에 김시습의 정신 세계가 다 담겨 있는 것 같은 경지를 구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은 때로 세상을 `잊고`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2011-06-23

서민의 선택

권석창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장가난한 소시민들이 한 푼씩 모아서 아이들 학자금도 마련하고 내 집도 마련하기 위해 저축은행에 예금을 했다. 은행은 폐쇄되고 저축을 한 사람들은 한 푼도 건질 수 없게 되었다. 은행의 높은 사람들과 사회의 권력 있는 사람들은 은행의 돈을 제 돈 쓰듯 쓴 뒤였다. 부산저축은행이란 곳의 이야기이다. 기득권층에 소시민이 희생된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부도덕한 권력이 도덕적인 소시민의 삶을 파괴한 것이다. 이런 일이 우리니라에서 부산저축은행 한 곳만은 아닐 것이다. 저축은행의 설립 취지는 서민을 위해서라고 한다. 일정액 이상 저축을 할 수 없으며 높은 이지가 보장된다고 한다. 그래서 부자들은 저축을 할 필요도 없으며 대출을 받을 수도 없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실상은 고위 공직자를 비롯한 부자들이 높은 이자를 얻기 위해 차명으로 분산하여 저축을 했으며 은행의 고위직은 불법 탈법을 무마하기 위해 금융감독원, 감사원 등에 뇌물을 주어 비리를 덮었다고 한다. 은행이 폐쇄된다는 정보를 미리 안 은행관계자와 권력자들은 몰래 예금을 인출하고 서민들만 저축한 돈을 받지 못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말하고 공정사회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가진 자와 권력자에 의해 서민이 억압받는 사회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저축은행 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곳에 이와 유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인 유성기업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다가 용역에 강제 해산되고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다. TV를 통해서 보도된 내용은 연봉 7천만 원을 받는 노동자들이 불법 파업을 하다가 직장이 폐쇄되고 검찰에 구속된 사건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들 때문에 자동차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부분이 강조되어 보도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주장은 그와 전혀 다르다. 연봉 7천이라는 것도 사실이 아니며 실제로는 월급 150만원에서 200만 원 가량 된다고 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봉급이 아니라 철야 근무하던 것을 주간 2교대로 바꾸어 밤에 잠 좀 자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주간 2교대 안건을 두고 노사가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직장이 폐쇄되고 구속되는 사태가 갑자기 발생한 것이라 했다. 그들은 불법 파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연봉 7천을 받는 중소기업이라면 파업을 할 필요가 없다. 노조가 파업에 대해 찬반 투표를 하여 파업이 결정되면 파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연히 합법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원청업체의 사원 차량에서 발견된 문건에 의하면 이미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지 말 것과 직장 폐쇄에 대한 계획이 원청업체인 대기업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과 용역에 의해 노조원들은 물리적으로 제압되었다. 대기업의 힘에 의해 법과 정의가 무너지고 노동자들이 희생된 것이 유성기업 사태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은 항상 서민과 권력을 가진 자와의 갈등에서 서민이 법이라는 이름 앞에서 당하는 사건들이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는 서민들이 살기 힘든 사회, 힘 있는 자와 권력 있는 자의 사회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민들은 자신도 힘 있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머리를 동여매고 공부를 하든, 권력을 가진 이에게 아첨을 하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을 가지려고 한다. 경쟁에서 이겨서 자기도 힘을 가지기 위해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게 되고, 그리하여 힘을 가지게 되면 다시 스스로 약자를 억압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가진 자들이 서민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가져가는 사회, 합법적인 노동자의 주장이 불법이 되어 억압되는 사회, 힘 있는 자들이 법이라는 이름으로 서민들을 억압하는 사회, 폭력업체가 용역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활동하는 사회를 어찌해야 하는가? 이제 서민들도 현명한 선택을 할 때가 된 것 같다. 억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자기도 힘을 가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높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최소한 부도덕한 사람이나 정당에게 권력을 주는 일만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1-06-23

개성(開城)상인

북녘 땅 개성의 옛 이름은 송도이다. 송도삼절하면 황진이, 서경덕, 박연폭포를 말한다. 개성은 휴전선 방배단에서 자동차길로 1시간도 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이며 북쪽으로 바라보면 송악산이 눈앞에 들어온다. 그 밖에 개성하면 선죽교, 성균관, 만월대, 개성남대문, 범사정 등을 꼽을 수 있다. 필자도 몇 년 전 개성을 다녀와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개성의 경제계를 지배하는 원동력은 말할 나위없이 그 특산물인 인삼이다. 제국의 황혼기에 일본 상인이 한국 상인을 압도했지만 이에 가장 굳건히 대응한 상인은 개성상인, 곧 송상(松商)이었다. 고려·조선시대를 통해 항상 앞선 상술로 하나의 세력권을 이뤘던 우리 나라 대표적인 상인군(群)이다. 고려를 창건한 왕건은 송학지방의 신흥귀족의 후예로서 조상 대대로 당나라와 무역을 해왔다. 일본 상인도 두려워한 개성상인은 이재에 밝고 그 운용에 교묘하며 각종 물화를 일본 또는 서울, 인천 지방에서 구입해 사방에 행상해 이익을 얻었다. 당시 개성에 자산 1만 원 이상의 상인이 50호, 1만 원 이하의 상인이 203호나 있었다고 한다. 인삼업에 투입된 고정자금은 180여 만원에 달했다고 한다. 그 당시 서울시내 고급주택 가격이 1만 원 정도였다. 1900년대 초기에 일본 상인은 한국 상인을 거치지 않은 채 미곡을 매출하고 또 수입품을 판매해 개성상인의 세력권을 침식시키려고 했으나 각지에 고객을 가지고 그 기반이 깊고 단단하기 때문에 일본 상인이 손을 들고 말았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자 관직 진출이 어려운 관리들이 상업에 전업하고 그래서 송상은 상술에 뛰어난 인재들로 기업을 잡고 있었다. 그때 개성에는 상당한 가문의 자제도 유력 상인의 휘하에 사환으로 상술을 배웠던 것이다. 이들의 절약 정신과 검소한 습성이 투철해 “개성 상인이 지나간 자리에는 풀도 자라지 않는다”고 했다. 일본인 보다 더 근면하고 양심적인 마음이 주효한 것이다. /손경호(수필가)

2011-06-23

진실로 사람이 귀한 사회를

홍종흠 시사칼럼니스트저출산 문제가 드디어 국가존망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수백만 명이 희생된 6·25전쟁 중에도 핵심 생산 인구는 늘었는데 평시인 지난해에는 오히려 감소했기 때문이다. 통계청 조사에서 경제활동의 기둥이 되는 25~49세의 핵심 생산가능 인구가 지난해 1천953만 명으로 5년 전에 비해 36만 명이상 감소했고 이는 1949년 인구조사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이같은 생산인구의 감소 추세가 계속되면 8년 후에는 절대인구도 줄어들고 지속적 사회발전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충격적 전망이다. 한 마디로 경제가 주저앉고 나라가 뒷걸음질한다는 것이다.핵심생산 인구의 감소는 물을 것도 없이 바로 우리사회의 고질적 저출산에 원인이 있다. 지난해 여성1인당 평생자녀 출산수가 1.22명으로 부부수보다 적으며 1970년의 4.53명에 비해 약 4분의1 수준으로 급감했다. 정부는 그동안 다자녀가구에 소득세공제, 지자체 차원의 출산지원금 지급 등 출산장려책을 써 왔지만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것이다.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일까. 원인은 여러 가지로 분석되고 있다. 우선 결혼을 늦게 하거나 하지 않는 현상이 일반화됨으로써 가임기간이 단축되고 청년 실업률이 높고 정년 연령은 앞당겨져 결혼과 출산에 장애를 만들었다. 맞벌이로 인해 육아가 어려울 뿐 아니라 보육 및 사교육비가 엄청나 출산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 등이 주된 이유로 분석되고 있다. 정신적으로는 개인주의적 풍조와 지나친 경쟁주의 등이 출산 기피를 초래하는 배경이다. 이는 한마디로 우리사회가 자손번성에 대한 관심보다 개인적 물질적 성공을 우선시하고, 자녀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부모의 경쟁주의를 양육의 우선가치로 삼고 있음을 말해준다.세계 제일이라는 80%의 진학률은 이같은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동안 시행해왔던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정책으로는 망국적 저출산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상 필사적으로 출산장려책을 찾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왔다. 정부는 모든 국력을 쏟아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는 보육과 교육의 무상지원 등으로 저출산의 굴레에서 빠져나왔지만 우리의 경우는 이같은 예산지원만으로는 어려울 것 같다. 왜 어린애를 낳아야 하는지 가치관이 바로 서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에서조차 출산을 기피하는 풍조가 만연해있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과거의 사례로 보면 조선조는 효(孝)를 가치의 근본으로 삼은 나라다. 벼슬살이보다 효자를 더 고귀하게 여겨 국가가 효자 가정에 그 사회의 최고 명예를 부여했다. 효는 가계보존을 최우선 과제로 여겼고 이것이 나라를 지키는 충(忠)으로 승화하면서 가정과 나라를 지탱하는 2대 지주가 된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도 출산장려를 위한 물질적 지원 못잖게 자손을 통해 세대를 이어가는 절대가치를 심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다.지금도 조선조 당시와 방법에선 다를 수 있지만 효가 하나의 주요한 덕목임은 말할 나위없다. 먼저 효와 가족주의를 현대에 맞도록 규범화하고 개인주의가 지나치게 인간간의 고립으로 흐르지 않도록 소통을 중시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 중심에 가족과 인간의 존귀함을 중시하는 인본주의적 가치를 심어야 한다. 사람이 진실로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회라야 경쟁에도 선의의 경쟁을 추구할 수 있고 경쟁으로 인해 낙오한 사람도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돈과 권력보다 사람이 귀하게 대접받고 선의의 경쟁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결혼 적령기에 돈 때문에 혼인을 기피하지 않을 것이고, 양육비와 교육비 걱정 때문에 출산을 꺼리지는 않을 것이다. 귀여운 자녀들과 사랑이 꽃피는 가정을 만드는 것이 개인적인 쾌락보다 더 즐거운 인생임을 깨닫는다면 자녀 출산의 공포가 어찌 사라지지 않겠는가. 우리 사회는 이제 경제발전보다 더 근본문제로 돌아가 답을 구해야 할 시점에 있다.

2011-06-22

농어촌이 웃어야 대한민국이 행복하다

김복규의성군수우리의 농업과 농촌이 기로에 섰다. 그동안 경쟁력 향상을 위해 적지 않는 많은 예산을 투입했지만 여전히 농촌 인구는 감소하고 고령화 및 부녀화 돼 가고 있으며 도시와 소득격차는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경제적 활력이 저하됐고 자생적 발전이 어렵게 됐다. 재촌(在村) 비율이 20%가 무너졌고 의성군의 경우 노인 인구도 5년전의 32.8%보다 5.7%증가한 38.5%로 초고령사회가 됐다. 10년 후면 상당수 마을이 몇 가구만 살고 있는 농촌 공동화(空同化)가 현실로 다가 올 것이다.이제 농촌 문제는 농업으로만 해결할 수 없으며 인식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농촌마을이란 농장이 있고 농업인들이 살고 있다는 기존의 생각에서 정이 흐르고 향토문화가 있으며 자연환경의 지속적보전이 있는 공익적 기능을 보태야 하고, 농민을 농사를 짓는 노동가가 아닌 전문가 또는 생명을 다루는 종합예술가로, 농업도 식량생산이란 기능에서 생명과학을 다루는 산업으로 또한 홍수조절, 산소공급, 수질개선, 공기정화 등 환경공익재로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농촌의 자연은 인간에게 회상, 휴식, 회복을 주는 기초 재산으로 봐야 한다. 우리는 땅의 소유에만 병적으로 집착하면서 땅의 고마움, 그 다원적 기능에 대해 잊어버리고 살지는 않는지 모른다. 그러한 차원에서 농촌은 삶터와 일터, 그리고 쉼터로 바뀌어야하고 농업에서 농촌이란 시각에서 새롭게 접근해야한다.농림수산식품산업부에도 농어업정책에서 농어촌정책으로 일대 전환을 하고 있으며 조직개편도 이뤄지고 있다. 그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스마일 농어촌운동은 농어촌을 지역민과 도시민이 함께하는 활력이 넘치는 미래 공간으로 조성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사업추진의 핵심과제로 ♠색깔있는 마을 조성 ♠핵심 주체 육성 ♠현장 포럼 및 지원센터 운영 ♠재능기부 ♠도·농연대로 크게 나누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업이 색깔이 있는 마을 육성이지만 그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 할 수 있는 핵심주체 육성에 가장 심혈을 기울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아무리 색깔이 있는 마을의 기반 여건이 좋아도 마을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을 설득하고 교육하고 동기유발을 기할 수 있는 역량 있는 마을리더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이미 전국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색깔이 있는 마을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마을에는 공통적으로 선구자적인 리더가 있었다.농업소득으로는 한계가 있다.농촌의 정주여건을 개선하고 자연적 문화적 어메니티를 활용하고 농촌체험과 농촌휴양의 개념을 도입하여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야한다. 일상에 지친 도시민들의 휴식·휴양공간과 건강을 치유하는 장으로 농촌은 변화할 것이다. 700만명이 넘는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은퇴이후에 귀농·귀촌할 수 있는 정책적 모색도 필요하다. 농업인에게 지원하는 보조사업도 보조가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로 인식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도 필요하다.우선 우리 농업인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줘야 한다. 우리는 농촌지역을 고향으로 두고 있으면서도 농업은 우리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항상 경제논리에 밀려 뒷전에 내몰렸다. 우리 농업이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뒷걸음 치고 있는 사이 세계 일부 선진국은 농업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새로운 변화에 대응해나가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위기를 기회로 삼을 것인가?월남전쟁 때 미국의 그 엄청난 화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월남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호치민이란 정치지도자가 정치군사조직을 베트남의 전통적인 마을공동체와 결합시켜서 결국 미국을 이길 수 있었다.규모가 작은 우리농업의 살길은 지역공동체 중심으로 뭉치는 것과, 소농구조에 적합한 친환경농업, 그리고 자본 및 기술집약적인 첨단농업으로 가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농어촌이 웃어야 대한민국이 행복하다” 란 스마일 농어촌운동의 슬로건처럼 도시와 농어촌의 균형발전으로 국민들의 삶의 질이 개선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푸른 풀밭에 여치와 아이들이 함께 뛰어다니고 5도(都)2촌(村) 농부가 어우러져 사는 건강하고 활기찬 농촌의 미래가 그리 멀지 않음을 확신한다.

2011-06-22

남한강 영릉으로

일찍이 인류의 문화는 강 주변에서부터 발달했다. 인도의 갠지스, 중국의 황하, 이집트의 나일강, 그리고 현대도시 영국의 템즈, 미국의 미시시피, 우리나라의 한강, 금강, 신라의 고도 경주의 형산강 등이다. 원래 청산은 발밑에 들판을 키우고 들판은 가슴 속으로 산을 그리워 하며 강의 품안에서 자란다고 한다. 강은 평야의 젖줄이며 요새요 뱃길이 되기도 한다. 신라유적답사단이 유별난 코스를 안내했다. 그 곳은 합장르이었다. 경주를 출발한 답사단이 제일 먼저 간 곳은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에 있는 신라 제42대 흥덕왕릉이다. 전문가의 해설을 들으면서 오늘의 극점은 조선왕조 최초의 합장릉이 있는 경기도 여주였다. 남한강 유역에 위치한 산세 좋은 물좋고 정자좋고 공기 맑은 여주에는 신륵사라는 고찰도 있어 출발부터 답사단의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여주로 가는 버스에서 신라 흥덕왕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벌써 오전에 영릉에 왔다. 경기도 여주군에 있는 영릉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과 정비 소헌왕후 심씨의 능으로 합장릉이다.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세종은 태종의 셋째 아들로 1397년 5월15일 생이다. 만백성의 스승인 세종이 태어난 날을 기려 `스승의 날`이 5월15일이 된 것이다. 22세에 제4대 임금에 등극하여 54세로 승하할 때까지 31년 6개월간 재위하면서 훈민정음 창제, 집현전 설치, 민본정치 실현 등 조선시대 정치, 경제, 사회의 안정과 문화의 융성을 이룩한 역대 군왕 중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소헌왕후 심씨는 영의정 심온의 딸로 8남2녀를 두었다. 첫째 아들이 제5대 문종이고 제6대 단종이 장손이다. 멀리 주산인 북성산이 보인다. 우리 민족역사 뿐만 아니라 세계사에 명성과 업적을 남긴 유적지를 답사하는 일은 정말 뜻깊은 일이다. 5천년 역사의 백의민족의 혼이 세계 선진국 대열에 우뚝서고 있다.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의 기름진 평야, 여주쌀이 풍성하게 들판을 출렁이고 있다. /손경호(수필가)

2011-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