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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봉과 사다리 치우기

이경우 기자
등록일 2011-06-27 23:26 게재일 2011-06-2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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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대구본부장
해발 1천708m. 설악산 대청봉에 오르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해발 2천m가 넘는 세계 고봉을 동네 뒷산처럼 올라본 적도 있고 1천900m대의 지리산 한라산을 올랐던 경험과는 또 다른 장애가 똬리틀고 있는 곳이 대청봉이었다. 내 다리의 보폭은 고작 70cm 남짓이고 인간의 공포와 생명의 한계는 10m 고도에서 판가름 난다는 뻔한 사실 때문일 것이다.

대구에서 접근하기에는 중앙고속도로가 뚫리면서 한결 가까워졌다. 황태덕장으로 소문난 용대리에서 셔틀버스로 내설악 백담사까지는 일방통행식이었다. 길게 늘어서서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 1대가 겨우 지나갈 비좁은 도로 중간 중간에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교행할 수 있도록 터를 닦아 놓았다.

거기서 봉정암까지 가는 길은 처음엔 비교적 평탄했다. 녹음 속 산길을 걸으면서 계곡의 비경을 감상하는 여유도 부려본다. 깎아지른 절벽에 매달린 소나무의 용한 끈기에 감동하고,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천 길 벼랑 끝 바위가 위태위태하게 걸려 있는 까마득한 절벽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계곡의 물은 가뭄 속에서 겨우 이곳이 내설악 계곡 폭포였음을 알려줄 뿐 웅장함은 찾을 수 없었다.

줄 지어 산을 오르는 사람들. 성별도 연령도 직업도 출신지역도 상관없이 오로지 산만 바라고 앞사람 등산화 발자국을 따라 배낭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다. 자세히 보니 그 많은 사람들이 험한 산을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곳곳에 설치해 놓은 철제 사다리 덕이 컸다. 그것은 산을 내려올 때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대청봉에서 봉정암을 거쳐 백담사로 내려오는 길, 특히 봉정암 초입에서 산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아득했다. 이 길을 내가 올라왔다니, 어떻게 올라왔을까.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발을 어디다 내딛어야 할지, 바위 모서리를 웅켜잡은 두 손은 놓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길을 내려와야 했다. 깔딱고개라고 그랬다.

그 깔딱고개를 내려오면서 알았다. 오를 때는 앞만 보고 올랐기에 이 길이 얼마나 험하고 또 가파른지 몰랐다는 것을. 그리고 설악산을 오르는 그 많은 사람들이 (예전보다) 쉽게 설악산을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고맙게도 곳곳에 만들어놓은 사다리 덕분이라고 혼자 결론을 내려 버렸다.

지난해 8월 정부가 행정고시 합격자를 줄이고 일정 분야에서 사회적 검정을 거친 인재를 뽑는 특채를 50%까지 늘리겠다고 했을 때 국민적 반대가 나왔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것은 분명 사다리 치우기였다. 열심히 공부해서 상류사회로 진입하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치우다니, 자신들은 그렇게 출세해놓고 지금 와서는 고시를 없애거나 줄이겠다니. 결국 정부는 한 달여 만에 종래 수준을 유지키로 결정했다. 당시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장관의 딸 특채 파문으로 공직 대물림 등 현대판 음서제도가 될 수 있다는 비판 여론이 정부의 특채 확대 계획을 주저앉힌 것이다.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해서 시집가고 장가가려면 어쩔 수 없이 대학을 나와야 하는 현실에서 대학 입학 문이 좁아진다면 이것은 또 하나의 사다리 치우기가 될 것이다. 기성세대들 중에는 어렵지 않게 대학 들어가 졸업장을 움켜쥐고 취직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문제 대학이니 부실 대학이니 하며 대학을 구조조정 하겠다고 설레발치는 정부당국자를 보는 국민의 눈이 곱지만은 않다. 대학은 가장 든든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사다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대청봉에서 바라본 일출은 장관이었다. 멀리 동해의 이글거리는 태양이 불쑥 솟아오르는 순간을 두 눈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은 곳곳에 설치해 둔 수많은 사다리 덕분이었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도록 많은 제도적 장치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잘 난 사람, 똑똑한 사람 많은 우리나라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이 사회의 상층부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곳곳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놓고 대학을 줄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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