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5년 이상 계속되어 오는 이 정례적인 행사에서 어제 발표를 한 분은 고전문학 가운데서도 한문학을 전공하고 계신 박희병 교수였다. 이 선생님이 같은 학과의 교수들, 대학원생들 앞에서 발표한 주제는 「김시습의 `자사진찬(自寫眞贊)`에 나타난 `丘` 一字 검토」였다.
그러니까 김시습이 자신의 자화상에 붙인 것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시에 나오는 `丘`자에 대해서 발표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김시습이 남긴 `자사진찬`이란 시는 다음과 같다.
부시이하(俯視李賀) 우어해동(優於海東)
등명만예(騰名만譽) 어이숙봉(於爾孰逢)
이형지묘(爾形至묘) 이언대동(爾言大동)
의이치지(宜爾置之) 구학지중(丘壑之中)
필자는 이 시를 우리말로 정확하면서도 풍부하게 다 옮기지 못할 것 같다. 그 대강의 뜻을 전해 보면 다음과 같다.
남들은 너의 시를 중국 시인 이하(李賀)에 견주어 우리나라에서 최고라고들 한다. 그러나 찌를 듯한 이름과 부질없는 명예가 어찌 너에게 합당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네 모습은 눈이 찌그러져 있고 너의 말은 너무 커서 어리석기 그지없으니, 마땅히 그것을 골짜기(丘壑) 속에 두어야 할 것이다.
박희병 교수가 문제를 삼은 것은 이 시의 마지막 구에 나오는 언덕 구자(`丘`)자가 다른 판본에는 도랑 구자(`溝`)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무량사에 남아 전해져 내려오는 김시습의 부도에 새겨진 `자사진찬`에도 `丘壑`이 아니라 `溝壑`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렇게 한 자가 달라짐으로써 김시습의 이 시에는 굉장한 의미 차이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었다.
박희병 교수의 뜻을 이 자리에 제대로 옮길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번 발표는 논문을 모두 완성한 상태로 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연구 노트를 바탕으로 주로 말로 김시습의 정신세계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형태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보통 `丘壑`이라고 하면 `언덕 골짜기`라고 해석할 수 있으니, 이에 따라 김시습의 시를 해석하면 현실에서 벗어나 승려로 살아갔던 김시습의 인생관을 피력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溝壑`이란 그렇게 자연스러운 뜻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도랑과 골짜기`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구렁텅이, 즉 땅이 움푹하게 팬 곳을 가리키며, 나아가 `죽어서 자신의 시체가 도랑이나 골짜기에 버려지는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溝壑`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맹자』에 그 선례 그 다고 했다. 이를 溝壑`에찾아보니 다음과 같다.
지사불망재구학(志士不忘在溝壑)
용사불망상기원(勇士不亡喪其元)
그 뜻은 다음과 같다. `뜻이 있는 선비는 구렁텅이에 있음을 잊지 않으며 용기 있는 선비는 머리를 잃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는 선비, 즉 유가에 관한 문장이므로 만약 김시습의 `자사진찬`에 있는 문구를 `溝壑`이라고 보면, 김시습은 승려의 탈속적 경지를 노래한 것이 아니라 비록 승복을 입고 있을지언정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정신을 버리지 않는 자신의 정신세계를 노래한 것이 된다.
박희병 교수의 입론을 경청하면서 필자는 공부하는 것이란 이렇게 한 글자의 차이가 대상 자체의 해석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 줄 수도 있는,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운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丘`냐, `溝`냐? 이 한 자에 김시습의 정신 세계가 다 담겨 있는 것 같은 경지를 구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은 때로 세상을 `잊고`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