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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공항, 시·도가 유연한 입장으로 대응하길

경북도가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과 관련해 기존의 기부 대 양여 방식을 고수하되 홍준표 대구시장이 추진하는 새 특별법의 추이를 지켜보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키로 했다.경북도의 투트랙 전략은 홍 시장이 추진하는 새 특별법과 이철우 지사가 주장하는 기부 대 양여 방식의 충돌로 신공항 추진이 차질을 빚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말하자면 경북도는 대구·경북을 위한 대역사의 성공을 위해 더 나은 추진방식이 있다면 그쪽으로 따라갈 수도 있다는 유연한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경북도의 이같은 대응은 시·도민의 우려를 불식시킨다는 점에서 잘한 일이다. 홍 시장은 신공항 건설과 관련해 기존에 취해 왔던 대구시와 경북도의 기부 대 양여 방식과는 다른 특별법 제정을 주장했다. 특별법을 통해 국비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며, 지역 정치권과 함께 특별법 발의에 나서고 있다. 가덕도공항이 전액 국비로 건설되는데 대구·경북신공항을 국비로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홍 시장의 소신이다.이에 반해 이 지사는 새 특별법으로 추진하면 정부와 야당 등을 설득해야 하니 착공이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구·경북신공항은 가덕도보다 먼저 완공해야 물류와 여객을 선점할 수 있고, 공항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두 의견 모두 합당하고 타당해 보이는 판단이다. 현재로선 어느 쪽이 공항건설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힘들다. 대구·경북의 미래를 위해서 신공항이 조속하고 성공적으로 개항돼야 한다는 점에서 두 기관의 생각은 다르지 않다. 다만 추진방식에 대한 의견이 약간 차이 날 뿐이다.이 문제는 두기관이 머리를 맞대면 언제든 풀 수 있는 일이다. 신공항 건설을 두고 두 기관의 미묘한 입장 차를 두고 우려의 시각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잘 알다시피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통합신공항은 대구·경북의 먹거리를 만드는 대규모 투자사업이자 시·도민의 희망이다. 성공적 마무리는 시대적 과제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신공항 추진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듣고 유연한 자세로 대응한다면 분명 좋은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22-07-11

옛 자취를 돌보는 아름다운 손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모처럼만에 내연산 계곡을 찾았다. 녹음이 깃들고 흐르는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리는 골짜기가 싱그럽기만 하다. 이른 아침부터 보경사를 찾거나 계곡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많은 걸 보니 확연히 일상의 리듬이 되살아난 듯하다. 코로나19에 억눌린 답답함을 바람 결에 날려 보내고 얼룩진 마음을 청아한 계류(溪流)에 씻어내려는 듯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사뭇 밝게만 보인다.경북 3경의 하나로 꼽히는 내연산에는 약 14km에 이르는 기암절벽의 골짜기를 따라 다양한 형태의 12개 폭포가 줄지어 있는 아름다운 갑천계곡이 있다. 연산폭포나 상생폭포 등은 협곡 사이로 물줄기가 나는 듯 떨어지는 비경으로 겸재 정선이 그린 ‘내연삼용추도’의 배경이 되기도 했었고, 천년 고찰인 보경사에는 원진국사비 등의 보물이 있는 등 자연경관과 역사, 문화재의 보고이기도 하다. 또한 계곡 곳곳에는 사연이 깃든 옛 자취들이 또 다른 보물처럼 남아있어서 흥미로움을 더해준다. 보경사 앞을 지나 상가 쪽으로 흐르는 중산보(中山洑)가 400여년 전에 설치되고 보수한 공덕을 기린 송덕비가 길섶에서 반기고, 내연산을 지키는 남녀 산신을 모신 ‘내연산 산왕대신지위’ ‘고모당신지위’ 비석이 제단과 함께 조성돼 있는가 하면, 깎아지른 바위굴의 협암수로(挾巖修路) 유공비 등이 한적한 옛길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있다.관심을 갖고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거나 모르고 지낼 수밖에 없는 옛 자취에 유독 사랑과 정성으로 돌보고 가꿔 나가는 손길들이 아름답기만 하다. 사라져가고 잊혀져가는 문화재나 유적, 유산을 소중하게 보호하고 돌보는 것은 제대로 된 역사인식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애써 시간과 노력을 들여 선조들의 얼과 삶을 반추하고 역사와 문화재에 대한 지식과 사유의 폭을 넓히며 답사와 학습, 돌봄과 보전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문화재를 사랑하는 ‘포스코 문화재돌봄봉사단(약칭 포문돌)’이 그들이다.포문돌은 포항시 지정 및 비지정 문화재 등의 문화재를 보존하여 포항시의 역사와 전통문화유산을 보호하고 계승하기 위해 2020년 5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비지정 문화재에 대한 주기적인 모니터링과 문화재 가치, 문화의식 함양 교육, 주변 환경정화 활동 등으로 소중한 문화유산이 방치, 열화, 훼손되지 않도록 유지, 보존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만해도 장기면 마현리 장사랑훈도이눌공 사적비의 이정표와 안내해설판 설치, 석곡선생 묘소 이정표 보수, 칠포리 암각화군 주변 수목정리와 해설판 설치 등의 두드러진 활동을 전개했었다.옛것을 소중히 여겨 성의껏 돌보는 것은 단순히 문화재라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옛 자취를 보듬는 손길에는 옛것을 본받고 배워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근본을 잃지 않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마음이 배여 있을 것이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제대로 알고 알리며 보존의 가치를 높여 나가는 의미 있는 행보에 박수를 보내며,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하기를 짐짓 기대해본다.

2022-07-11

기업과 삶의 절대 악(惡), 낭비(Waste)

장광일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명은 최초의 심장박동으로 시작되며 마지막 박동으로 끝난다”라고 하였다. 사람의 심장은 태어나자마자 쉼없이 뛰고, 심장이 멈추면 죽게 되는 현상을 말한 것이다.필자는 20여 년 전 심장의 소중함을 알았고, 인생의 소중함을 배웠다.그리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낭비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답은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부족한 자원은 시간이다 시간을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라고 말하였다.시간 관리가 답이라고 본다. “세상에서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나이밖에 없다”는 말이 있듯이 성공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나에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여 낭비되는 시간이 없어야 하겠다.어떤 회사 화장실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휴지 한 장이면 충분, 두 장이면 많다. 세 장이면 낭비다. 네 장이면 범죄(犯罪)다.’ 즉 낭비와 반대가 되는 단어인 절약을 강조하였는데 낭비 = 범죄라는 수식어로 조물주가 선물해 준 모든 것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라는 멋진 말이다.인생살이에는 많은 낭비 요소가 있다. 어떻게 낭비 요소를 파악하고, 제거할 수 있는지가 성공한 삶, 행복한 삶을 가져다 주리라 믿는다.많은 기업에서 낭비제거를 통해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TPS 창시자 오노 다이이치는 “낭비는 비즈니스적인 손실 그 이상으로 사회에 대한 범죄이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기업에서는 낭비를 절대 악(惡)이라고 인식하고 그 낭비를 찾아 없애야 한다. 낭비를 없애면 부가가치 있는 일이 늘어나 일등 기업을 만들 수 있다.기업에 있어서 낭비는 고객의 입장에서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모든 활동이다. 즉, 낭비란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할 때 이에 대해 가치를 더하지 않는 추가로 소비되는 시간, 노동, 자재 등을 의미하며, 원가 상승의 주요 원인이 된다.수십 년간 ‘낭비 없는 포항제철소’라는 슬로건으로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이끌어 온 포스코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조직별 업무의 특성과 필요에 따라 포스코의 8대 낭비유형을 정의하고 선택 사용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철강업의 8대 낭비는 대기, 설비, 자원, 에너지, 공정, 품질, 재고, 운반에서 발생되는 낭비이다. 이런 낭비제거 활동을 통해 제조원가는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영업 이익은 증가되어 성과를 이루었다.낭비를 뿌리채 없애려면 직원들이 개선 혼(魂)으로 무장해야 하는데 개선 혼이란, 알려면 철저히 알아야 하고 알았으면 즉시 실행하고 한번 개선된 것은 절대 원위치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낭비를 보는 눈을 키우고 내 일 속에서 낭비를 찾아 없앰으로써 가치 있는 일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꼭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함으로써 일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 인간존중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2022-07-11

서사시의 운율을 가진 매혹적인 영화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그린 나이트’는 질문이 많다. 하나의 질문이 풀리기도 전에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진다. 어떤 질문은 반복되기도 한다. 이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이다. 주인공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모든 상황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하나의 선택이 낳은 결과로 인해 다음의 원인이 되고 또 다른 선택이 주어진다. 선택의 과정, 죽음에 이르는 여정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선택의 과정이기도 하다.크리스마스 이브,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앞에 나무 형상을 한 녹색 기사가 연회장에 나타나 자신의 목을 치는 가장 용맹한 자에게 명예와 재물을 주고 1년 후 똑같이 자신의 도끼날을 받을 것을 제안한다. 원탁의 기사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아서왕의 조카인 가웨인이 도전에 응하고, 1년 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녹색 기사를 찾아 나선다. 숱한 무용담을 가진 원탁의 기사들과 달리 젊은 가웨인은 방탕한 생활 속에서 기사로서의 품위나 명예, 무용담 하나 없는 풋내기일 뿐이다.죽음을 건 게임에 응하게 되면서 가웨인은 기사들의 중심, 무용담의 주인공이 되지만 1년 후 명예를 지키기 위한 죽음의 여정에 나선다. 녹색 기사를 만나기 위한 여정은 순조롭지 못하다. 유혹과 금기, 고난과 역경의 과정, 수수께끼같은 사건에 휩쓸리면서 성장해가는 한 청년의 성장기처럼 보인다.1년이라는 한시적인 기간 동안 명예와 재물이 주어졌지만 그것을 온전히 완성하는 것은 게임의 규칙인 나의 목을 내놔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있다. 이 조건에 충실히 임했을 때 기사도의 중요한 덕목인 명예와 무용담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거래’의 균형이다. 주고 받는 거래의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였을 때, 그것이 기사의 명예와 도덕, 충성심으로 치환된다.가웨인이 녹색 예배당으로 녹색 기사를 만나러 가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모든 것들은 ‘거래’를 기반으로 하고 있 다. 내가 받은 호의, 잠자리와 음식, 사냥감과 안식처 등이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지 못함으로해서 고난을 겪고, 곤경에 처하며 여정을 이탈해 다른 길로 빠져든다. 적절한 대가는 등가의 법칙에 따른다. 그것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이다. 나의 만족이 아니라 상대의 만족이 동반될 때 거래는 성립되고, 다음 단계로 원만하게 나아갈 수 있다.영화는 이것의 어긋남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반복한다. 누적된 불공정(?) 거래와 지켜지지 않은 약속들이 중첩될 때, 요행으로 비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준다. 아서왕의 여동생이며 가웨인의 어머니인 마법사 모건은 아들의 여정에 앞서 녹색 허리띠를 건넨다. 이 녹색 허리띠를 착용하면 어떠한 칼날과 도끼도 막아낼 수 있는 것으로 가웨인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소품이기도 하지만 약탈과 거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우여곡절 끝에 녹색 예배당에 도착한 가웨인은 녹색 허리띠를 착용하고 녹색 기사와 마주한다. 순순히 그의 목을 내어줄 것인가, 뒤돌아 나가 달아날 것인가. 아니면 녹색 허리띠를 풀고 순순히 도끼날을 받을 것인가.영화는 14세기 영국의 작자 미상의 서사시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를 원작으로 한다. 서사시가 그러하듯 풍성한 은유와 상징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분위기로 가득하다. 거기에 주고 받는 거래와 비겁함과 용맹함, 자연과 문명, 종교와 이교, 삶과 죽음의 이항대립들이 촘촘히 놓여 있다.극적인 플롯보다는 상징과 은유, 모호함이 가득한 영화다. 질문을 던지고 답하지 않는다. 한 예로 녹색 기사를 소환한 것은 가웨인의 어머니 모건이었다. 어머니가 왜 아들의 목숨을 걸고 게임을 시작했는가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서사시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시적인 흐름을 갖는다. 질문이 주어지지만 그 해답은 행간의 의미에서 찾아야하는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영화의 전개는 촘촘히 배치된 상징과 은유는 운율을 갖는다. 영화를 보고나면 가득했던 녹색의 이미지 사이에 펼쳐졌던 환상적이며 아름다운 장면들이 남는다. /(주)Engine42 대표 김규형

2022-07-11

그 길밖엔 없어 <Ⅰ>

-결국 인공 콩팥 시장의 최대 소비자는 노인들이니까요. 생체 시험이라는 것이 결국은 소비자와 비슷한 조건에서의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거든요. 젊은 사람한테 인공 신장을 달았더니 부작용 없이 오래 살더라. 이런 결론은 당장은 의미가 없는 거지요. 그런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길고. 지금 인공 장기회사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육십오 세 이상 혹은 칠십 세 이상 환자들에게 시술했더니 부작용도 없고, 효과도 좋고, 오래 살더라.’ 같은 결론이지요. 또 있습니다. 인공 콩팥 이식 수술을 받고 나서 치명적인 결과, 예를 들면 수술 받은 사람이 죽는다든지 하는 일이 생겨도 노인이면 다른 이유를 가져다 붙이기 편하잖아요. 나중에, 아주 나중에 시장이 포화되면 그때는 고개를 돌려 젊은 환자들도 쳐다보겠지만. 뭐, 세상이 그렇습니다.의사를 만나고 돌아온 허 형사는 컴퓨터에서 우현에 관한 자료를 찾아냈다. 우현은 허 형사가 조사했던 사건의 주범이었다. 인공 장기 회사에서 자사의 인공 장기를 사용해 달라 부탁하며 인공 장기 금액의 십오 퍼센트를 현금으로 의사에게 제공했던 사건이었다. 그 돈의 배분을 두고 의사들 사이에서 벌어진 폭행 사건을 조사하다 드러났다. 우현은 그 회사의 영업사원이었다. 우현의 단독 범행으로 사건은 종결되었다. 우현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전체 금액이 컸었다.허 형사가 우현에게 다시 전화를 했을 때는 우현이 실형을 살고 나온 뒤였다. 경찰에서 조사받는 동안 내가 제법 잘 대해 줬었지. 녀석이 혼자 뒤집어쓰려는 게 눈에 보였지. 우현이라면 아내의 인공 장기 이식에 대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허 형사의 전화를 받은 우현이 다음 날 허 형사를 만나러 왔다.-그렇지 않아도 언제 한 번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려 했었는데, 먼저 전화를 주시다니. 감사합니다.-좋은 일로 만났던 것도 아닌데. 내가 잘못한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마워요.허 형사가 우현을 보며 말했다.-아닙니다, 아닙니다. 좋은 일, 나쁜 일이 어디 있습니까? 허 형사님과 저와의 인연이 있을 뿐이지요. 그것보다 사모님 몸이 좋지 않다 하셨지요.우현이 서둘러 말을 꺼냈다.-사모님이라 할 것까지는 없고. 집사람이 1형 당뇨 환자야. 그런데 콩팥 기능이 한계에 다다랐다 하더라고. 의사가.허 형사가 그동안의 일을 우현에게 이야기했다. 아내의 증상, 의사가 했던 말들, 선택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허 형사가 이야기하면 우현은 그렇지요, 아, 맞는 말씀입니다, 하고 맞장구를 치며 들었다. 허 형사가 하는 이야기를 끊지 않고 모두 들은 우현이 말했다.-전화 정말 잘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인공 장기 이식입니다.감옥에서 나온 뒤 우현은 인공 장기 거래 업체를 세웠다.-허 형사님도 짐작하고 있으시겠지만, 어디 그 일이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참, 허 형사님을 믿으니까 드리는 말씀인데 지금 이거 사건 조사하시는 것 아니지요? 저를 다시 잡아가려는 건 아니겠지요?-오늘은 형사가 아니라 환자의 보호자로 상담하는 거야.허 형사가 답을 했다. 우현이 말을 이었다. 당시 회사에서 우현에게 내건 조건에 관한 이야기였다.-회사에서는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저 혼자 뒤집어쓰는 것으로 사건이 종결되기를 원했습니다.우현은 그 대가로 무엇을 줄 수 있는지 회사에 물었다고 했다.-그랬더니 겨우 오 년 치 월급을 퇴직금 조로 주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는 못 한다고 했지요.우현이 요구한 것은 회사로 들어오는 중고 인공 장기의 거래를 독점할 수 있는 권리였다. 회사에서 수거한 중고 인공 장기를 아주 저렴한 가격에 인수해서 외국에 다시 되팔거나 국내에 공급할 수 있는 독점권을 달라는 것이었다. 회사와 우현은 십 년간의 독점권과 삼 년 치의 월급, 정상적인 퇴직금 지급으로 합의를 했고, 우현은 감옥으로 들어갔다. 감옥에서 나온 우현은 인공 장기 거래 업체를 세웠다.-중고?허 형사가 고개를 갸웃했다.-네. 누군가가 한 번 쓴 것이니까 중고지요. 하지만 기능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안전도 그렇고.우현은 입술을 삐쭉거리고 양쪽 어깻죽지를 들어보였다.-그래도 누가 한 번 쓴 건데. 다른 것도 아니고 몸에 들어갔다 나온 건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허 형사가 우현에게 다시 물었다.-네. 그렇다니까요. 세척을 하거든요. 세척을 하고 나면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세포 하나, 단백질 한 조각 남겨놓지 않거든요. 제가 이거 한 지가 올해로 만 오 년이 다 되어 갑니다. 문제가 있었으면 벌써 난리가 났겠지요. 저는 벌써 이 사업을 접었을 거고. 주로 중국 쪽으로 많이 넘어가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제품의 질이나 부작용 관련해서 컴플레인을 받아 본 적 없다니까요.우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허 형사는 중국이니 그런 것 아니냐, 노인들한테 쓴 것이니 부작용이 생겨도 알지 못했던 것 아니냐며 물었다./김강 소설가

2022-07-11

선거는 쇼지만 국정은 현실이다

김진국 고문 우리 정치가 많이 바뀌고 있다. 옛날 문법으로는 해석하기 힘든 일들이 많이 등장한다. 세대와 젠더 갈등이 이렇게 심각해질 줄은 예상치 못했다. ‘59초 쇼츠’나 ‘도어스테핑’도 전혀 짐작 못한 새 흐름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에 기자들과 즉석 문답하는 ‘도어스테핑’을 보면 ‘59초 쇼츠’가 떠오른다. 대선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원희룡 정책본부장(현 건설교통부장관)이 불편을 이야기하다 정책 대안을 제시하면 윤 후보가 “좋아. 빠르게 가!”라며 신나게 밀어붙이는 영상이다. 도어스테핑에서도 윤 대통령은 흥분된 목소리와 제스처로 자신 있게 단정적인 답을 한다.도어스테핑은 대환영이다. 전임 대통령들은 5년 임기 동안 신년 기자회견, 취임 기념 회견을 다 합쳐봐야 8번 남짓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매일 아침 대통령과 기자가 각본 없이 문답을 주고받는 모습은 신선하다. 그 질문은 기자가 국민을 대신해 던지는 것이고, 대통령은 국민과 대화하는 것이다.그런데 지난주 잇달아 출근길 문답이 중단됐다. 지난 5일 인사 실패와 부실 검증을 묻자, 윤 대통령은 “전(前)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 다른 정권 때하고 한번 비교해 보라”고 버럭 말한 뒤 들어가 버렸다.그전에도 윤 대통령의 출근길 발언이 여러 번 입길에 올랐다. ‘검찰 편중 인사’에 대해 그는 “과거에 민변 출신들이 아주 뭐 도배하지 않았습니까?”라고 했다. 미국에서 검사들이 정·관계에 많이 진출하는 게 ‘법치국가’라고도 말했다. “지지율에 신경 안 쓴다”, “대통령 처음 해봐서…”라는 말도 뒷말이 무성했다.도어스테핑은 사전 각본 없는 게 매력이다. 그렇지만 너무 거칠다. 생각을 감추라는 게 아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엄중하다. 적어도 그 문제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고, 참모들과 먼저 정리해놓아야 한다. 들리는 말로는 참모들이 예상 문답을 준비해줘도 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듣는 시간보다 말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고도 한다. 입을 열 때마다 참모들이 해명하러 다니는 일이 반복되면 국민이 불안하다.말을 잘한다고 평가받는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연설하기 전에 지하 서재에서 수십 번씩 원고를 다듬고, 연습했다. 1987년 양김이 갈라져 평민당을 만들기 전에도 수개월째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전개하는 걸 들었다. 그 논리를 주변 의원들에게 세뇌하듯 퍼뜨렸고, 결국 분당했다.평생을 방송인으로 산 봉두완 씨가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한미클럽 송년회에서 할 사소한 말까지 두툼하게 시나리오를 써서 들고 진행하는 걸 봤다. 말이라면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지만 준비는 그렇게 철저했다.윤 대통령은 소탈하다. 사적인 자리라면 나무랄 게 없다. 감정을 드러내는 게 더 인간적이다. 그렇지만 기자에게 하는 말은 기자가 아니라 국민에게 하는 말이다. 국민은 TV를 통해 윤 대통령이 자신에게 말한다고 느낀다. 국민은 자신에게 역정을 내는 걸로 받아들인다.취임하는 순간 국정의 모든 책임은 윤 대통령에게 있다. 지난 정권이 어떤 일을 했건, 우리 역사가 어떠했건, 모든 과거가 집적된 국정을 끌고 가겠다고 맡은 자리다. 과거 정권의 잘못은 국민이 이미 선거에서 심판했다. 또 국정은 상대 평가가 아니다. 비판받을 때마다 과거 정권을 들먹이면 무책임해 보인다.윤 대통령 말은 자신감이 넘친다. 답변이 시원시원하다. 그는 오만해 보이는 서울법대 출신의 대선 징크스도 깼다. 정치 경험도 없이 짧은 시간에 바로 대통령이 됐다. 모든 게 쉬워 보일 수 있다. 이 길을 조언한 사람만 믿고 싶을 수 있다. 그러면 다른 쪽에는 귀를 닫게 된다. 이런 모습이 자칫 국정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네가 뭘 알아’ 하는 식의 안하무인으로 비칠 수 있다.선거는 끝났다. 선거는 흥분 속에 치른다. 그러나 잔치 뒤의 경제와 안보는 현실이다. 좀 더 진지한 고민과 중장기 구상도 함께 보여줘야 한다. 선거는 비호감의 경쟁이었지만 이제 우리 가족의 미래를 맡길만하다는 믿음을 줄 시간이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고문

2022-07-10

자영업자·직장인 모두가 환하게 웃는 경주 만들 터

주낙영 경주시장 존경하는 경주시민 여러분! 민선 8기 경주시장 주낙영입니다. 지난 4년에 이어 앞으로 4년도 저를 믿고 맡겨주신 경주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23개 경주시 행정읍·면·동에서 모두 승리한 6·1지방선거 결과는 경주시민 여러분과 약속한 모든 공약을 지키라는 준엄한 명령입니다.또한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는 시민과 소통하며 ‘위대했던 경주’, ‘찬란했던 경주’를 바라는 경주시민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경주시민 꿈꾸는 경주의 미래는 너무나 자명합니다.직업별, 성별, 연령에 상관없이 모두가 행복한 도시, 젊은이가 돌아오는 부자 농어촌, 첨단 신성장산업 육성으로 좋은 일자리가 넘치는 경주가 바로 그것입니다.경주시민 여러분이 보내주신 한 표 한 표에 담긴 염원과 명령을 가슴 깊이 새기고, 시의회와 함께, 경북도와 함께, 윤석열 정부와 함께 오직 시민만 바라보며, 경주의 미래를 위해 약속드린 경주발전 공약을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가장 먼저 관광산업 혁신을 통해 관광객 2000만 시대를 열겠습니다.민선 7기 때부터 일관되게 말씀드렸던 관광객 2000만 시대는 정치적 구호가 아닌 역사문화도시 경주시장의 존재 이유이자, 제가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업입니다.특별법 제정을 통한 ‘역사 문화 관광 특례시’ 지정 추진과 2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2025 APEC 정상회의 도시 유치를 통해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 위대한 경주의 르네상스를 꼭 이루겠습니다.둘째, 첨단 신성장산업 육성과 부자농어촌 만들기, 희망무지개 7대 청년정책 추진으로 좋은 일자리 늘어나는 도시, 젊은이가 돌아오는 도시를 만들겠습니다.이미 지난해 착공한 문무대왕과학연구소와 함께 차세대 과학혁신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고, 미래 자동차 산업 육성, 외동산업단지 대개조 등을 통해 지역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겠습니다.지역 청년들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겠습니다.청년희망 경제 프로그램, 청년 복지 행복하우스, 청년화랑고도 커뮤니티 활성화 사업 등으로 청년들이 양질의 행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또 농업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신농업혁신타운 조기 완공과 ICT기반 스마트팜 확대보급, 동해안 어촌·어항 명품화 사업으로 부자 농어촌 만들기에도 행정력을 집중하겠습니다.셋째,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지정과 여성가족부 ‘여성친화도시’ 실질 구현을 통해 ‘온 가족 행복누리 도시’를 만들겠습니다. 그동안 빠른 속도로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빈부격차는 심화되고 누군가는 소외받는 그늘이 생겼습니다.지역사회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이 곧 경주의 도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필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민선 8기 모든 정책은 공정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어렵고 소외된 분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존경하는 경주시민 여러분! 25만 시민께 약속드린 ‘더 큰 경주, 더 나은 미래’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앞으로 4년, 중단없는 경주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사명감에 어깨가 무겁습니다.비록 ‘코로나19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박 등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지만, ‘소통’과 ‘공감’ 그리고 ‘화합’을 나침판 삼아 ‘사람이 몰려오고 일자리 늘어나는 경주’라는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겠습니다.

2022-07-10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

영양군 반딧불이천문대. /사진제공 = 정종훈 사진작가 하늘에 수많은 별이 알알이 박혀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심에서는 오염된 대기와 주위의 밝은 불빛으로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먼 옛날에는 지금보다 더욱 많은 별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별은 아주 긴 시간 동안 우리 인류와 함께해왔다.인간의 상상력은 별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별자리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22년, 국제천문연합학회에서 정식으로 인정한 별자리는 88개였다. 물론 이는 서양의 기준이다. 최초의 별자리는 대략 기원전 3천 년, 메소포타미아 지방 사람들이 만들어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여러 이야기가 덧붙여지면서 바빌로니아, 이집트, 그리스 등 다른 지방으로 옮겨가기 시작했고, 기원전 7세기에 이르러 처녀자리, 사자자리 등 모두 36개의 별자리가 완성되었다. 이후 서기 2세기 중엽이 되면서 알렉산드리아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큰곰, 작은곰,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 안드로메다 등을 추가하여 48개로 확정 지었다. 이후 별자리는 항해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과 더욱더 밀접한 관계를 이루게 된다. 천문학 발달에 힘입어 항로를 개척하고 신대륙을 발견하는 등 인간들이 지구 반대편까지 오가면서 새로운 별자리들을 만들어낸 것이다.우리나라에도 견우직녀 같은 이야기가 있듯 이집트, 남아메리카, 인도 등지에서도 별자리에 이야기가 입혀졌다. 전설이나 신화에 바탕을 둔 서양과 달리 동양의 별자리에는 생활과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인간 세상을 하늘에 올려다 놓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 것이다. 예를 들어 북극성을 하늘나라 왕이라 여기면서 그를 중심으로 하늘나라 궁전 ‘자미원’, 나랏일을 돌보는 ‘태미원’, 백성이 모여 살아가는 시장 ‘천시원’, 제사를 지내는 ‘하늘사당’ 등이 그것이다. 당연히 장군과 신하별도 있다.먼 옛날,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태양이 하늘의 별자리 사이를 지나는 길을 일러 황도(黃道·ecliptic)라고 했다. 태양이 지나는 길에 물고기자리, 양자리, 황소자리, 쌍둥이자리, 게자리, 사자자리, 처녀자리, 천칭자리, 전갈자리, 궁수자리, 염소자리, 물병자리 등 12개가 있다. 이를 ‘황도12궁’이라 한다. 이 길을 따라 태양이 일 년에 한 바퀴를 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지구에서 보면 태양이 황도를 따라 동쪽으로 옮겨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태양 빛이 밝은 낮에 별자리가 보일 리 없다. 그런 까닭에 태양이 움직이고 있는 뒤편의 별자리들이 차례로 바뀌는 것이다. 태양이 조금씩 기울어져 해가 지기 전에야 반대편에 별자리가 나타나기 때문에 밤하늘에는 태양의 반대편에 놓여 있는 별들만 보게 된다. 그렇게 사계절을 거치는 동안 초저녁에 나타나는 별자리들이 달라진다.하늘 전체를 사계절로 구분하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사람들의 편리함을 위해 하늘을 360도로 사등분 하여 계절로 나누었을 뿐이다. 그리고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간 뒤 초저녁 밤하늘에 나타나는 별자리를 그 계절의 자리로 정해놓았다. 따라서 밤이 새도록 밤하늘을 바라본다면 최소한 세 계절의 별자리는 확인할 수 있다.별에도 이름이 있다.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별의 이름은 대부분 별자리를 사용하며, 더욱 밝은 별일수록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렀다. 시리우스, 안타레스, 베가, 알타이르 등 그리스·로마 시대, 그리고 이슬람 문화가 번성하던 때에 붙여진 이름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별의 밝기에 따라 그리스 알파벳 순서로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입실론, 제타, 에타, 시타, 이오타 등의 순으로 부른다. 여기에 북극성과 직녀성도 속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별은 여전히 이름이 없다. 그러니 자신의 별을 정해 이름을 붙여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와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박필우(스토리텔러)

2022-07-10

유일한 구원을 찾아서!

김규종 경북대 교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황금 세기라 부른다. 다른 유럽 국가들의 문학과 비교할 때 상당히 늦게 출발했지만, 러시아 문학이 세계문학을 선도하는 위치에 올라섰기 때문이다.푸쉬킨에서 시작하여 레르몬토프, 고골을 거쳐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지나 체호프에 이르는 19세기 러시아 문학 거장들의 운항은 경이롭다.그중에서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 ‘죄와 벌’(1866)은 한국 독자에게도 퍽 친숙하다.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노파를 죽이고, 그녀의 돈을 사회의 유용한 곳에 쓰겠다는 생각을 구체화한다. 자신의 거처에서 전당포에 이르는 거리는 물론 살해수법과 소요 시간까지 주도면밀하게 계산한 그는 완전범죄를 실행한다. 바로 그때 노파의 누이동생 리자베타가 살인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예정에 없던 살인을 해야 하는 라스콜리니코프. 하지만 그가 들고나온 돈은 그야말로 푼돈이었다.그가 왜 노파를 살해하려 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뒤에 밝혀진다. 그는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눈다. 번식만을 위해 살아가는 벌레만도 못한 인간들과 나폴레옹처럼 진정한 인간, 비범한 인간 혹은 강자(强者)의 이분법으로 인간을 나눈다. 그가 보기에 전당포 노파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이(蝨)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런 인간을 죽이고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면 자신도 강자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자신의 강고한 내면세계를 확신했던 그가 마주하게 된 현실은 정반대였다. 그의 깊은 잠재의식 안에 자리하던 죄의식이 ‘섬망(8B6B妄)’의 형식으로 그를 찾아온 것이다. 그러다가 그는 가족의 생계를 매춘으로 짊어진 여인 소냐를 만나게 된다. 의식적-정신적 세계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살인한 라스콜리니코프는 존재론적이고 사회적인 의미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소냐에 강력하게 이끌린다.왜 사람을 죽였느냐는 그녀의 물음에 라스콜리니코프는 “나는 그저 시험해보고 싶었어. 그게 다야.”하고 대답한다. 수많은 사람처럼 자신이 이가 아니라, 진정한 강자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살인했다는 것이다. 자수하라는 소냐의 충고를 따르는 라스콜리니코프. 시베리아 유배지까지 그를 따라와 뒷바라지하는 여인 소냐. 자신의 온몸을 던져 가족을 먹여살리면서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던 소냐.소냐를 보면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조금씩 깨달아간다. 그 자신도 전당포 노파도 세상 누구도 이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런 자명한 사실을 수긍하도록 인도한 것은 소냐의 지고지순한 사랑이었다.세상은 증오나 살인, 폭력으로 나아지거나 개선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강자의 철학과 실천으로 세상은 단 한 치도 바뀌지 않는다. 세상에 필요한 유일한 덕목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연대하면서 인간적인 유대를 확장하는 일이다.날이면 날마다 언론을 도배하는 숱한 물리적 폭력과 가공할 폭언과 폭력의 결과를 보노라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유일한 구원의 길, 사랑으로 걸음을 떼어야 한다.

2022-07-10

설곳 잃은 지방대학

국가균형발전을 외치는 정부가 속 시원하게 균형정책을 펼친 적이 있는지 기억이 없다. 맨날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모든 일이 수도권 안에서만 이뤄졌다.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방 시대를 열겠다”는 큰 소리는 말뿐이다. 지방은 결정적 순간에는 없다.수도권 과밀화를 막는다는 목적으로 수도권 공장총량제를 정해 놓고도 정부는 대기업이 공장을 짓겠다면 허가를 내준다. SK 반도체 하이닉스 공장이 좋은 사례다. 수도권공장 총량규제는 있으나마나다. 필요하면 예외규정을 만들면 되니까. 이건희 미술관 건립 장소 선정도 마찬가지다. 전국의 40여개 지자체가 저마다 지역의 생존 차원에서 유치전을 벌였지만 결과는 서울로 끝났다. 이를 주관한 문체부는 공론화 내지 공모 절차를 검토 한번 없이 일방적으로 서울로 결정해 버렸다. 지방은 애초부터 대상이 아니었다. 이런걸 보면 지방 균형발전은 기대 난망이라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래도 지자체들은 중앙정부가 균형발전을 위해서 뭔가 특단의 조치를 해줄 것이란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윤석열 대통령의 반도체 인력 양성과 관련, 교육부가 수도권 대학 반도체학과의 정원을 늘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지방대학총장협의회가 강력히 반대하고 있지만 교육부는 무반응이다. 지방대학이 반대하더라도 수도권대학 증원을 강행할 눈치다.지금 지방대학은 학령인구 감소로 학생 미달과 대학재정의 부실이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개선될 여지가 별로 없다. 수도권에 인기학과를 늘리면 지방대학은 바로 고사하고 만다는 게 지방대학의 생각이다.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학과 증원만이라도 지방대학의 입장에서 결정하는 것이 지방시대를 열겠다는 중앙정부의 올바른 태도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7-10

여당의 권력싸움, ‘黨·政공멸’로 가는 길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8일 당 윤리위의 ‘당원권 6개월 정지’ 중징계 결정에도 “당 대표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집권여당이 심각한 내분상태에 들어갔다. 국민의힘이 윤리위 결정 후 바로 최고위원회 간담회를 열어 권성동 원내대표의 직무대행 체제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했지만, 이 대표는 징계 의결에 따른 처분 권한이 당 대표에게 있다는 점을 들면서 “징계 의결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재심청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 당 대표 직무가 정지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반면 권 원내대표는 징계 즉시 대표 권한이 정지되고 당헌 29조에 의거해 원내대표가 당대표 직무를 대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오늘(11일) 의원총회를 열어 혼란수습에 나설 계획이지만, 이 대표의 공개투쟁이 계속될 경우 집권여당의 국정운영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 그간 이 대표와 마찰을 빚어온 ‘친윤(윤석열 대통령)’그룹의 행태로 비추어볼 때 양측이 ‘갈 데까지 가보자’는 사생결단식 충돌을 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지금 집권 2개월만에 총체적 위기에 빠져있다. 민심도 돌아서 대통령 지지율이 30%대까지 급락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여당이 집안싸움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2년후 총선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양측 모두 자제심을 발휘해야 한다. 최근 선거에서 완승하는데 공로가 큰 이 대표로서는 정치적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처분을 받았다는 점에서 충격이 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즉생(死卽生)의 결단이 필요하다. 이 대표를 축출하고 당권이나 총선 공천권을 노리는 중진 정치인들도 자성해야 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제라도 중진들이 나서서 수습하라”고 촉구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중산층들도 기름값이 무서워 외출을 꺼리는 등 민생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마당에 집권여당이 권력다툼이나 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지금이라고 당 중진들이 중심이 돼 혼란을 수습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당은 공멸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2022-07-10

코로나 재유행 적신호, 경각심 높일 때다

코로나19 확진자수가 다시 늘면서 재유행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앙재난대책안전본부는 지난 8일 회의를 열고 “코로나19가 다시 확산국면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밝히며 이에 따른 대책을 오는 13일 발표할 예정이라 했다.지난달 27일 3천423명으로 저점을 찍었던 일일 신규 확진자는 이후 증가하기 시작해 지난 5∼8일 나흘간 1만명 후반을 넘기고 9일에는 45일만에 2만명을 넘어섰다. 10일에도 2만410명의 확진자가 새로 발생해 이틀 연속 2만명을 넘겼다.보건당국은 코로나 신규 확진자 수가 증가하는 이유로 BA.5변이 바이러스 확산, 여름철 이동량 증가, 면역효과 감소 등을 지목하고 있다. 이번 재유행은 정부가 당초 예상했던 가을보다 앞당겨진 것으로 전문가에 따라서는 8월 중순에 가서는 하루 20만명의 확진자 발생도 점치고 있다.BA5.변이 바이러스는 오미크론 변이보다 30% 이상 감염력이 강하고 면역회피 특성이 있다고 한다. 백신접종이나 감염으로 면역력이 형성된 사람도 쉽게 재감염될 수 있다는 것이다.우리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2년 이상 사회적 거리두기가 유지되는 등 정상적 생활을 못하며 지내왔다. 자영업자 등은 장사가 되지 않아 일부는 아예 문을 닫는 등 극심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일반시민들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지금 우리사회는 코로나에 대한 경계심이 크게 떨어져 있는 분위기다. 특히 각종 축제가 다시 시작되고 스포츠 경기도 수많은 관중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이달부터 해수욕장이 개장되는 등 여름 휴가철 이동도 본격화될 전망이다.코로나 재유행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할 때다. 외출 후 손씻기나 마스크 쓰기 등 국민 각자가 지켜야 할 보건수칙을 잘 실천해야 한다. 정부도 확진자 관리를 위한 각종 시스템 점검에 나서야 한다. 중환자 병실 확보 등 보건당국이 살펴야 할 문제도 많다. 한달 이상 공석 중인 보건복지부 장관의 임명도 서둘러야 한다.거리두기가 다시 시작되는 일은 없도록 정부도 국민도 경각심을 높여 6차 대유행의 고비를 넘겨야 한다.

2022-07-10

초록 풀머리

강길수 수필가 졸지에 유명을 달리한 지체(肢體)들의 한이 원혼으로 변해 빙의라도 한 것일까. 짧게 남은 팔뚝들에 숨 막힐 듯 많이 솟아난 잔가지들이, 명부에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혼령들의 초록 풀머리로 보이니 말이다.하늘로 굵은 팔들을 벌려 연록 생명을 뽐내던 곳이, 인간의 기계톱으로 갑자기 죽음의 아수라장으로 변하던 봄날의 일이 되살아난다. 석 달이 지났다. 팔뚝들이 댕강 잘려 나갔던 언저리에 초록 풀머리들이 빼곡하다. 죽지 않고 살아내기 위해 나무가 얼마나 처절하게 몸부림쳤으면, 전설의 고향 프로에 나오던 귀신보다 더 빽빽한 풀머리를 달아냈을까.웬일인지 눈길이 자꾸 초록 풀머리에 머문다. 가지치기 전문가들은 나무의 디엔에이가 작용해 그러니, 괜한 데 마음 쓰지 말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과 더불어 살다가, 마침내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운명의 존재다. 이를 자각한다면 온갖 생명체는 물론, 무생물 하나까지도 자연공동체의 일원이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 않은가.어릴 적 산골에서 자라나며 나무와 친하게 지냈다. 나뭇가지를 자치기 막대, 낚싯대, 팽이 등 놀이도구로 쓰고, 피리로 만들어 불기도 했다. 어른들은 의식주를 위해 서까래같이 나무 밑동을 톱으로 자른다든가, 뽕나무처럼 일부 가지를 치곤 했다. 그러나 도시의 가로수나 조경수처럼, 몸체에 붙은 가지를 한두 뼘 정도만 남기고 몽땅 잘라버리는 광경은 보지 못했다.내 눈엔 나무 가지치기도 인간의 욕구 충족행위로 보인다. 사람이 심은 나무도 생장과 소멸의 아름다움을 자연에 맡겨 두면 안 될까. 살아있는 식물로 인위적인 미를 추구하는 일은 결국 인간의 자연 지배욕에 닿을 것이다. 대기와 수질오염, 기후변화, 해수면 상승, 자원고갈, 쓰레기 난제 같은 참담한 환경파괴로 나타난 인간의 자연 지배욕은, 이제 지구촌의 생존 여부와 직결되고 있다.석 달 전 출근길에 만난 무자비한 가지치기는, 또 다른 인간의 전쟁터였다.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만 살육일까. 인간이 무분별하게 자연을 죽이는 것도 바로 살육이다. 이제부터라도 모든 사람이 이를 깨달았으면 좋겠다. 인간도 살아있는 것을 먹어야 할 숙명의 존재인 이상,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먹을거리만 자연에서 구하거나 가꾸어 먹어야 할 것이 아닌가.무럭무럭 자라는 두 손주가 자연 품에서 웃으며 뛰노는 모습에서 두 아들 어릴 때보다 더한 행복을 맛본다. 하지만 어떤 불안과 걱정, 야릇한 슬픔과 죄책감이 가슴속을 헤집는다. 나도 생명이 살 수 없는 자연을 손주들에게 물려줄 것만 같은 기성세대이기 때문이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2018년 ‘지구온난화 1.5도 보고서’나 관련 전문가들이 지구 기후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곧, 회복 불능 상태 진입을 경고하며 온실가스 억제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어찌할 바 모르는 할아비는, 손주들에게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먼저 간 동기들의 빙의로 태어났을 초록 풀머리들이, 세상에 울부짖고 있다.

2022-07-10

추앙한다고요?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술 말고 할 일 줘요?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 없어. 겨울이 되면 살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공장에 일도 없고. 낮부터 마시면서 쓰레기 같은 기분 견디는 거, 지옥 같을 거예요. 당신은 어떤 일이든 해야 해요. 나는 한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나를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지난 5월 말에 종영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2화에서 염미정이 구씨에게 한 말이다. 염미정은 대출까지해서 전 남친한테 돈을 빌려줬다가 떼인 후 대출금 상환 독촉을 받고 있고, 어느 날 마을에 나타나 염미정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낯선 남자 구씨는,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술만 마신다. 이어서 염미정은 구씨가 겨우내 자신을 추앙하면 봄에는 자신도 그도 달라져 있을 거라고 한다.이 방송이 끝난 후 SNS에는 ‘추앙하라’가 흘러넘쳤다. 한편으로는 구씨의 상태 때문에 염미정이 그런 말을 더 쉽게 한 것 아닌가 하는 삐딱한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염미정은 추앙 말고는 다른 말을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예전의 남자친구들에게 심하게 이용만 당했기 때문이다. ‘추앙하라’가 인기 있었던 이유는, 일상에서는 잘 안 쓰는 단어라서 신선한 느낌도 들었을 테고, 그만큼 사랑에 지친 사람도 많았기 때문이리라.그러나 염미정을 향한 구씨의 추앙이 아무리 멋지게 표현되어도, 채워지고 싶다는 염미정의 갈망이 아무리 간절해도, 추앙이라는 말은 위험해 보인다. ‘높이 받들어 우러러보다’라는 ‘추앙하다’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추앙하는 쪽과 추앙받는 쪽의 균형이 심하게 기울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노파심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들의 추앙이 본의와는 다르게 오용되거나 남용될까봐 걱정이 앞선다. 사실 염미정이 말하는 추앙이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겠다. 추앙이라고 하면 나는 팬클럽 문화가 떠오른다. 어느 가수의 팬클럽에 가입했다가 추앙하지 못해서 팬클럽 회장에게 권고 탈퇴를 당했던 경험이 있어서 더 그럴 것이다.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는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된 미래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은 ‘늘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이 ‘늘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데는 언어생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느 날 주인공 조너스가 지각한 이유를 말하면서, ‘연어 구경에 정신이 돌아버린 것 같습니다’라고 하자, 선생님은 연어 구경에 ‘정신이 돌았다’는 단어는 너무 강하다면서 ‘정신이 팔린’으로 교정해준다. 이 마을이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논란거리이기는 하나, 조너스 어머니의 이런 입장은, 이 책을 처음 읽었던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필요해 보인다.어느날 조너스가 부모에게 ‘절 사랑하세요?’ 묻자, 부모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너무 일반화된 단어라 무의미하다면서 ‘어머니 아버지는 저와 즐거우세요?’, ‘어머니 아버지는 제 성과에 자부심을 느끼세요?’와 같이 정확한 표현을 써야 마을이 원활하게 돌아간다고 알려준다. 염미정의 소망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2022-07-10

이준석과 박지현의 정치적 좌절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여야의 청년 정치인 두 명이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다. 1985년 생 이준석은 서울 과학고를 거쳐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정치 엘리트이다. 2012년 박근혜 키즈로 영입되고 2021년 한국 최초로 보수 정당의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는 당대표 선거에서 나경원 등 내노라는 다선의원을 물리치는 이변을 보였다.민주당의 청년 정치신인 박지현 역시 N번방 추적단 불꽃에서 활동하다 이재명 대선캠프에 발탁되고 20대에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공통적으로 정치적 좌절과 위기에 처해 있다. 이준석은 성상납 의혹사건으로 당 윤리 위원회의 6개월 당원 권 정지 처분을 받았다. 박지현 역시 6개월 당 경력 부족으로 당 대표 출마 자격을 얻지 못했다. 사건의 경중으로 봐선 이준석 대표의 자격 박탈이 훨씬 심각하지만 이들이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그 귀추가 매우 주목된다.이준석 대표는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와 두 번이나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선거 전이라 두 분이 형식적으로 화해했지만 진정한 화해인지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의 미봉책인지 알 수 없다. 당시 이준석 대표의 빈번한 튀는 행동은 불안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다행히 이준석 대표는 보결선거, 대선,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보수 정당에서 매우 취약한 ‘이대남’ 득표로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따랐다.민주당 박지현 역시 당 여성 부원장으로 발탁되어 이재명 캠프를 거쳐 민주당 비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이대녀’라는 여성 표 확장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다. 두 사람에 대한 부정적 비판적 평가도 상당했지만 그들의 역할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모두 서열화되고 경직화된 당 구조에서도 청년 세대의 목소리를 확실히 전달하였다.이준석은 지선 승리 직후 당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고, 박지현 역시 당 공동 비대원장으로 활동했지만 정치적 좌절을 경험하고 있다.물론 이들의 역할을 부정적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의 역할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들의 활동은 관료화되고 폐쇄적인 우리 정당 정치의 개혁의 계기를 마련한 점은 높이 평가 받아야 마땅하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정치에서 소외되어 무관심한 20∼30 청년 세대를 정치적 관심층으로 돌려놓았다. 특히 보수 정당의 이준석 대표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통해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유도했을 뿐 아니라 당 개혁에도 박차를 가했다. 지방선거 출마자의 최초의 자격시험, 배틀 토론을 통한 대변인의 선출, AI 윤석열 등 종전의 보수 정당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정책 어젠다를 관철시켰다. 그의 30대 당 대표 당선만으로도 보수 야당의 이미지를 탈색하는데 상당히 기여하였다.박지현 역시 기득권 정당으로 전락한 진보 민주당의 개혁에 상당한 자극제가 되었다. 그들의 돌출적인 언행이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여야 모두 정당개혁이나 정치 개혁의 촉진제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그러나 이 청년 정치인들은 정치적 위기 앞에 흔들리고 있다. 특히 이준석 대표의 당원 권 정지 6개월이라는 중징계는 당 대표직 사퇴를 압박받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이준석의 기존의 정치 행태로 볼 때 그가 조용히 대표직을 사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는 벌써 당 윤리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재심 청구, 법원의 가처분 신청 등 자구책을 강구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윤리위원회 징계에 앞서 오래전부터 ‘윤핵관’의 압력을 비판해왔다. 대선과 지선의 승리 후에도 그는 축하 한 번 받지 못했다고 불편한 심기를 노출하였다.우리 정치사의 사상 초유의 당대표 중징계 결정을 그가 수용하지 않을 경우 당 내분은 명약관화하지 않을 수 없다. 이준석의 징계파문은 임기 초반의 윤석열 정부의 지지도 추락과 맞물려 당을 위기로 몰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그에 비해 박지현 전 공동위원장의 민주당 대표 출마 좌절은 민주당의 내홍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적지만 그 파동은 상당할 것이다.이준석 성상납 의혹은 결국 경찰의 조사 등 법에 의해 흑백이 드러날 사안이다. 여야 모두 청년 정치인의 정치적 좌절과 정치적 위기는 이 나라 정당 정치의 발전의 한계를 노출한 셈이다.청년 정치인들의 개혁 요구는 폐쇄적이고 경직화된 우리 정치 문화를 바꾸는 계기로 삼을 수 없을까. 우리의 정치는 아직도 계파 정치, 팬덤 정치, 패거리 정치의 굴레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경제 수준도 문화도 저만큼 앞서 가는데 우리 정치만은 아직도 후진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대선에서는 지역갈등, 계층 갈등, 젠더 갈등에 이념 갈등까지 더하여 아직도 갈라치기 정치로 치닺고 있다. 두 청년 정치인의 정치적 좌절을 바라보면서 이 나라 청년들의 좌절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제2의 이준석과 박지현이 등장하여 한국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동력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2022-07-10

정신의학 즉문즉답-공황, 공황발작, 공황장애

사공정규 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2012년 이후 유명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공황장애에 대해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최근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한 박항서 베트남 감독이 공항장애 진단 사실을 공개했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수석코치로 대한민국 4강 신화를 이끌었던 박 감독은 이후 부산아시안 게임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승승장구할 줄 알았지만 당시 3위라는 성적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경질됐다. 이후 포항스틸러스와 상무 감독을 맡으며 감독직을 이어갔지만, 이 과정에서 성적 압박에 따른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박 감독은 “상주 상무 감독을 하면서 쇼크가 두 번 와 응급실에 실려간 적 있다. 정밀검사를 받으니 공황장애라고 하더라. 오래전부터 온 건데 인지를 못한 거였다. 숨이 쉬어지지 않고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약은 지금도 복용 중이다”라고 털어놨다.이처럼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인, 직장인들 사이에 공황장애 사실이 공공연히 알려지면서 이제는 ‘공황장애’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게 됐지만 공황, 공황발작, 공황장애에 대한 일반인들의 오해와 편견이 많다.심지어 과거에는 ‘공황장애’를 ‘공항장애’로 잘못 알아들어 공항 가는 것을 무서워하는 병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공황장애’를 ‘공항장애’로 알던 시절, 공황장애 환자는 4번 놀란다.마치 심장마비로 또는 뇌졸중이 발생한 것처럼 죽을 것 같은 공황발작 증상에 놀라고, 신체적 질병인 줄 알았던 공황장애가 정신건강의학과 질병임에 놀라고, ‘공황발작’이라는 ‘발작’이라는 단어에 놀라고 ‘공황장애’의 ‘장애’라는 단어에 놀란다.공황은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의 상황에서 누구에게서나 나타날 수 있는 갑작스러운 급성 공포 불안으로 정상적인 정신·신체 반응이다.예를 들면, 밤에 혼자 외진 길을 가다가 호랑이가 바로 앞에 나타났다고 상상해 보자.누구나 심장이 급격하게 두근거리고, 숨이 턱턱 막히며, 진땀이 나고, 손발이나 온몸이 떨리는 등의 반응을 보이면서 ‘내가 죽을 수 있겠구나’하는 엄청난 공포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실제 위험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불안은 위협적인 환경에 적응하고자 하는 가장 기본적인 반응이며 우리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게 도와주는 중요한 기능이 있다.위험한 상황에서 아무런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면 오히려 우리는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거나 위험할 것이다.공황과 공황발작은 어떻게 다른가?공황은 정상적인 반응이지만, 공황발작은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의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갑작스러운 급성 공포 불안으로 비정상적인 정신·신체 반응이다.예를 들면, 호랑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호랑이가 있는 것과 같은 공황을 느끼는 비정상적 반응이다.그러나 공황발작이 한 번 일어났다고 해서 모두 공황장애로 진단되는 것은 아니다.공황발작이라는 단어에서 ‘발작’이라는 단어 느낌은 어떤가? ‘발작’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느낌을 갖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그러나 ‘발작’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병증세가 갑자기 나타났다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사라진다”는 의미이다.공황장애는 예상치 못하는 공황발작이 반복적으로 있어야 한다.또한 추후의 공황발작에 대한 예기 불안이나, 공황발작의 파국적 해석 오류나, 공황 발작과 관련된 회피 행동 중 하나 이상을 보이며 부적응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일생을 살면서 한차례 이상 공황발작을 경험할 확률은 약 30% 가까이 된다.공황장애는 공황발작 경험자들의 약 10%, 전체 인구의 약 3%가 공황장애로 진단된다. 다시 말해 공황발작이 곧 공황장애는 아니다.덧붙여 공황장애라는 용어에서 ‘장애’라는 표현에 대해 알아보자. 일반인들은 공황장애에서의 장애(disorder)를 장애(disability)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장애(disability)도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 번째는 태어날 때부터 신체나 정신 능력에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도 있고 두 번째는 치료를 하더라도 정상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의미도 있다.공황장애에서의 장애(disorder)는 장애(disability)의 의미가 아닌 병이라는 의미이다.병은 원래는 정상적이었으나 어떤 이유로 몸이나 마음에 문제가 생겼고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말한다. 감기도 병이다.오늘 필자가 드리고 싶은 말은 공황장애를 편견(偏見)으로 보지 말고 정견(正見)으로 보자는 것이다.공황은 정상적 반응이며, 공황발작은 비정상적인 반응이나, 모두 공황장애는 아니며, 공황장애는 장애(disability)가 아닌 병으로 전문적인 정신의학적 치료를 받으면 당연히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2022-07-10

허니문 없는 새 정부의 과제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집권 2개월째가 맞나?” 윤석열 대통령을 뜨겁게 지지했던 인사들을 만나면 쉽게 들을 수 있는 푸념이다. “벌써 1년은 지난 것 같다”는 총평에는 불안감이 어른거린다.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새로운 정치로 국민들의 마음에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기를 기대했던 게 엊그제같다. 벌써 지지층의 마음이 실망감으로 돌아서고 있나. 2개월이면 허니문의 달콤함에 빠져있을 시점이다.그런데 긍정보다 부정여론이 높은 데드크로스라니….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 사이에서도 그 원인을 두고 말들이 많다. 종합해보면 서민물가 상승과 주식시장 침체 등 경제문제, 내각 인사실패, 그리고 이준석 대표를 둘러싼 당 내홍 등의 문제가 주 요인이다.경제문제는 심각하다 못해 위기상황이다. 코로나 팬데믹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전세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있고, 미국발 금리인상에 이어 경기가 침체되면서 서민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부동산 가격은 다행히 오르지 않고 있지만 대출규제속 전·월세 아파트 구하기가 어려워진 것도 서민들에게는 괴롭다.새 정부의 장관인사 검증실패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도 적지않다. 야당이 새 정부의 부실인사 논란을 제기하자 윤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의 장관 인사는 어땠나”며 역공하는 모양새도 나빴다. 새 정부가 전 정부탓을 하는 것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셈이다.민생과 경제를 챙겨야할 여당 지도부는 이준석 대표의 성상납 증거인멸 교사의혹을 둘러싸고 윤리위에서 징계를 내리느니 마느니 실랑이가 한창이다.대통령실은 나토정상회의 직후 야당으로부터 인사비서관 배우자 동행이 이해충돌에 해당된다느니 윤 대통령 친인척 최모씨가 부속실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하며, 제2부속실 역할을 하고 있다느니 하는 의혹 보도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여당 전체가 분주함과 혼돈에 빠져있다.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낮은 지지율이나 국민적 관심을 일거에 돌려놓을 만한‘한 방’이 없다는 데 있다.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이른바 ‘윤석열표’정책의 부재다.그렇다고 글로벌 경제 침체와 미일·중러 신냉전 시대 속에 나라경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경제정책을 콕 집어 약속하라는 주문이 아니다. 국민에게 더 나은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어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하는 액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당장 해답을 찾지못해도 좋다. 위기가 해소될 때까지 집무실에 야전침대라도 갖다놓고 전심전력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선언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서민경제가 무너지는 판에 경제부총리에게만 경제를 맡겨놓은 것도 한가해 보인다.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관하겠다고 나서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서민 살림살이 형편을 살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국가지도자라면 국가 위기극복을 위해 국가적 자산과 능력을 총동원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게 허니문 없는 새 정부, 새 대통령이 시급히 해야 할 과제다.

2022-07-07

인사가 만사

윤석열 정부는 아직도 1기 내각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국정 차질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내각 구성이 완성되지 못한 이유를 야당의 비협조 탓이라 생각한다.야당이 비협조적인 것은 맞지만 꼭 그것 때문이라 말하기 어려워 보인다. 우선 윤 대통령의 인사가 적절했는지 여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윤 정부에 대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질렀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상당 부분이 인사문제에 기인한다. 언론도 그렇게 평한다.윤 대통령은 취임 초 능력위주 인사를 강조했다. 그러나 검찰출신 인사로 편중되면서 능력위주의 본래 취지가 많이 퇴색됐다. 장관임명 과정에서 부적절했던 부분이 걸러지지 않은 것도 지지율 하락으로 반영됐다.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인사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전 정부의 불통인사가 그랬다.공자는 천재불용(天才不用)이라 말했다. 즉 “덕이 없이 머리만 좋은 사람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인품이냐 재능이냐는 인사권자가 선택할 권리이지만 이 문제를 두고 늘 딜레마다. 인품이 좋으면 재능이 부족하고 재능이 뛰어나면 인품이 모자란다. 둘 다 좋기는 어렵다. 윤 대통령의 능력주의가 잘 먹히지 않는 이유다.삼국지에 등장하는 마속은 제갈량이 후계자로 삼았으면 하는 재능가다. 그러나 그가 자기 재능을 믿고 제갈량의 명령을 듣지 않다가 전투에서 크게 패해 목숨까지 잃게 된다. 읍참마속의 유래다.윤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국정수행을 무난히 잘하려면 대통령 인사에 대한 비판여론도 잘 새겨들어야 한다. 인사가 만사기 때문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7-07

대구시 직원 10시 출근… 육아부담 줄인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다음주 월요일부터 오전 10시 출근해서 오후 7시에 퇴근한다. 공직사회의 유연근무제를 앞장서서 독려하기 위해서다. 홍 시장은 당선인 시절 “맞벌이 공무원 증가와 공동육아부담을 감안해 유연근무제를 전 직원 20%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었다.유연근무제는 ‘주5일 근무, 하루 8시간 근로시간’을 준수하는 범위 안에서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제도다. 이전에는 대구시 직원(사업소 제외) 1천900여명 중 약 200여명이 시차 출퇴근을 해 왔었다. 대구시는 직원들이 상사 눈치를 보지 않고 유연근무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유 등을 작성하지 않고도, 시스템에 신청을 하면 부서장이 사전 결재하는 방식으로 이 제도를 운영하기로 했다. 대구시는 유연근무제 확대에 따라 오전 8시30분부터 9시 사이에 주로 열리던 각종 회의는 일괄적으로 오전 10시30분 이후로 미룬다. 다만 공동 근무 시간대(오전 10시∼정오, 오후 1시∼4시)를 권고해 업무 효율성을 유지하기로 했다.대구시의원 연구모임인 자치정책연구회가 지난해 대구시 공무원들을 대상(458명)으로 유연근무제가 필요한 이유를 조사했더니 ‘가족 돌봄’이 52.0%로 가장 높았다. 고정된 출퇴근 시간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데 어려움을 겪는 공무원들이 많다는 것이다. 육아부담으로 인한 저출생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가임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의 숫자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이 우리나라는 지난해 0.81명으로 집계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9년 평균 합계출산율(1.61명)의 절반에 불과하다.2006년 이후 정부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80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효과를 못 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아이를 낳으면 월 몇 십만원씩 현금 지원하는 방식으로는 저출생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근본적인 사회적 육아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아이 키우는 것을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 대구시가 이번에 파격적으로 실시하는 유연근무제가 사회적 육아시스템의 좋은 사례다.

2022-07-07

구미산단, 글로벌 반도체기지로 변신하길

구미 국가산업단지에 SK, LG 등 대기업의 대형투자가 잇따라 이뤄지고 있다. 그저께는 카메라 모듈과 반도체기판을 생산하는 글로벌 기업인 LG이노텍이 경북도, 구미시와 투자양해각서를 맺고 향후 2년간 1조4천억원을 투자키로 했다.지난 3월 반도체웨이퍼를 생산하는 SK실트론이 구미에 1조495억원을 투자키로 한데 이은 또 하나의 쾌거다. 구미는 올들어 두 번째 1조원대 투자를 유치해 구미국가산단의 경제 활성화에 청신호를 주고 있다.구미는 우리나라 대표 산업도시였다. 1970년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이후 첨단전자 산업도시로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1999년 전국 단일공단 최초로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했고, 2005년에는 수출 305억달러로 전국 수출의 11%를 점유했다. 한 때 공단근로자가 8만명을 넘어서는 등 국내 굴지의 공단으로 위세를 떨쳤던 지역이다. 그러나 삼성과 LG, 한화 등 대기업 전자사업부가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사업장의 잇단 폐쇄로 구미국가산단은 지금도 쇠퇴일로의 길목에 있다.1천여명의 고용창출이 기대되는 LG이노텍의 구미투자는 이런 면에서 고무적이다. 특히 반도체 분야의 세계적 글로벌 기업의 구미산단 진출은 국내 반도체산업의 영역이 넓어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상당하다. 수도권 중심으로 육성되는 반도체산업이 구미지역까지 그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면 국가균형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LG이노텍의 구미투자와 관련 “지역의 반도체 관련업계의 투자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구미까지 K-반도체 벨트를 연장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구미시 단독의 의지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김 시장은 “중앙정부의 절대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반도체 산업은 국가의 명운을 걸고 세계시장에서 경쟁을 벌이는 유망산업이다. 구미는 K-반도체 벨트에 포함돼야 할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국가에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산업단지로 구미산단을 배척할 이유도 없다. 지방화 시대라는 대의에도 맞다. 지역정치권은 구미산단을 글로벌반도체 생산기지로 키우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2022-07-07

아, 대한민국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대한민국이 장차 세계의 중심국가가 될 것’이라는 예언가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 예언들 대부분은 대한민국이 오늘과 같은 성장과 번영이 있기 전에 있었다. 당시에는 황당하게만 들리던 것이 나라의 위상이 현격히 높아진 지금에 와서는 상당한 기대감을 갖게 된다. 뿐만 아니라‘제3의 물결’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앨빈 토플러 같은 세계적인 미래학자도 일찍이 한국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내다보고, 20여 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김대중 대통령에게 ‘21세기 한국사회의 비전 보고서’라는 장문의 보고서를 전달하기도 했다.우리나라에 오늘과 같은 날이 올 거라곤 우리도 예측을 하지 못했다. 일제 가전제품들이 부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시절에는 우리의 전자제품이 일본을 추월한다는 건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더구나 삼성전자 하나의 매출이 일본 10대 전자산업의 총매출을 훨씬 웃돈다고 하니 실로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IT산업 외에도 조선, 자동차, 원전기술, 의료, 건설업 등 세계 일류의 기술을 가진 업종이 많고 문화·예술과 스포츠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가 속출하고 있다.그러나 무엇보다 뿌듯하고 자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우리의 공공시설이나 국민들의 높은 시민의식을 부러워하고 선진국의 한 모델로 평가를 한다는 사실이다. 버스나 지하철 같은 교통수단의 편리함과 특히 화장실문화가 세계 최고라는 칭찬에는 절로 어깨가 으슥해진다. 시위가 끊이지 않은 나라이면서도 약탈이나 방화 같은 범죄를 동반하지는 않는, 치안의 모범국이라는 사실도 그만큼 시민의식이 높고 국민성이 선량하기 때문일 터이다.예언가들과 미래학자들의 전망처럼 과연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 국가가 될 수 있을까? 그들은 그 가능성으로 한국인들의 지적능력과 근면성, 그리고 높은 영성(靈性)을 꼽는다. 무엇보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을 건국이념으로 가진 나라야 말로 전 인류를 이끌어갈 자질을 갖춘 것이 아니겠냐는 평가다. 하지만 나라의 운명이란 결국 국민 스스로 결정짓는 것이다. 우리에겐 남다른 자질과 능력이 있다는 건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지만, 그것을 최대한 발휘했을 때 밝은 미래가 열리는 것이다. 그릇된 선택과 자중지란에 휩쓸릴 때는 그 반대의 결과도 올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지금 우리나라는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가중되는 북핵 위협과 혼란한 국제정세, 골이 깊은 남남갈등, 심각한 경제위기 등이 산적한 위험요소로 상존한다. 이쯤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자기성찰이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상황에 대한 냉철하고 정확한 분석과 판단이 우선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정치인들이 갈라놓은 좌우 양편의 대립과 갈등의 골이 너무 깊다는 것이다. 특히 진영논리에 함몰돼 상대편을 무조건 악마화하고 내로남불, 적반하장, 후안무치가 판을 치는 것은 조선말의 당파싸움을 방불케 하는 망국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건 분명 정상이 아니다. 우선 법치를 바로 세우고, 양식을 갖춘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조악하고 비뚤어진 민심을 바로잡는 일에 힘을 모아야 나라의 미래가 있다.

2022-07-07

젊은 영재들이 이룬 영광

윤영대 수필가 무더워지는 여름날, 마음 시원한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계 수학자인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허준이 석학교수가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서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Fields)상 수상의 영예를 안으며 한국인의 천재성을 세계에 알린 것이다. 이 필즈상은 1936년 제정되어 4년마다 수학계에 뛰어난 업적을 이룬 40세 미만의 젊은 학자에게 수여해 왔으며 이번 수상은 한국인 최초의 일이고 한국수학계의 쾌거이다. 허 교수는 50여 년간 난제로 알려진 ‘리드 추측’ 등 10여 개 문제를 대수기하학과 조합론을 이용하여 해결하였고, 국제수학연맹(IMU)이 한국의 수학 국가등급을 최고등급인 그룹5로 격상시킨 것도 우리의 자랑이다.허 교수는 어릴 때, 구구단을 외우는 것을 힘들어해서 대학교수였던 부모님이 많이 좌절했고 청소년기에는 시인과 기자를 꿈꾸었다고 하지만, 대학 때 자신을 만족시키며 살 수 있는 길을 찾아 수학자의 길을 택하고 꾸준히 스승과 친구들과 공동의 관계를 유지하며 수학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기쁜 소식은 또 있었다. 지난달 18일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인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지휘자가 눈물을 훔칠 정도의 뛰어난 연주로 대회 역사상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는 놀라운 소식이었다. 이 콩쿠르는 1962년 시작되어 4년 주기로 개최되고 있으며 2017년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우승한 후 2연속 우승이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임윤찬은 해외 유학 경험이 없는 18세 학생으로 이 대회에서 청중상, 신작 최고연주상 등 2개 부문 특별상도 받았다. 7세 때 태권도 대신 어머니의 권유로 피아노 연주를 시작하여 신동, 천재로 불렸으며 15세 때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해당 음악에 관한 책들을 탐독하고 좋은 스승을 만나 훌륭한 가르침을 받은 결과라고 한다.체육계의 기다렸던 경기장면도 있었다. 우리나라 축구계의 왕자 손흥민 선수가 아시아인 최초로 유럽 프리미엄 리그(EPL)에서 시즌 최다 23골을 넣어 득점왕의 골든 부츠 트로피를 들어 올린 모습은 경기장에 모여 함성을 보낼 수 없었던 우리에게 시원한 낭보였다. 2010년 독일 함부르크SV 팀에 입단 후 꾸준한 활약으로 경기장을 누비며 골을 넣을 때마다 그의 특유한 찰칵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환호하는 모습은 그가 축구를 시작했을 때 아버지 손웅정 감독의 혹독한 기본훈련을 잘 이겨내었던 덕분이지 않을까.‘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에디슨의 말처럼 세계 1인 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꿈을 위한 강한 의지로 끊임없는 연습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 밑바닥엔 부모님의 소망과 믿음이 담긴 격려와 자상한 사랑의 교육이 깔려있는 것은 물론이다. 젊은 영재들의 생각과 창의성을 존중하고 고양시켜 이 나라를 ‘동방의 등불’이 되게 하자.

2022-07-07

구두

정미영 수필가 수술 받았던 친정어머니의 무릎이 시큰거린다고 하셨다. 병원에 함께 다녀올 요량으로 신발장에서 어머니의 빛바랜 운동화를 꺼냈다. 몇 년째 편하다는 이유 때문에 한 켤레의 신발로 생활하다 보니 군데군데 실밥이 터지고 뒤축이 닳아 테석테석했다. 어머니의 고단한 삶이 신발에 스며든 것 같아 마음이 먹먹했다.수술 전, 어머니의 무릎 통증은 오래 지속되었다. 약을 먹어도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길을 가다보면 몇 발자국을 못가 절뚝일 때도 있었고, 겨우 발걸음을 옮기는가 싶으면 이내 주저앉았다. 가까운 곳에 볼일을 보러 가는데도 남들보다 시간이 두 배로 걸렸다. 앉을 데가 있으면 무조건 쉬어야 했고, 마땅한 데가 없으면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쉬어야만 걸을 수 있었다.늘 푸른 물이 돌 것 같던 어머니의 육신이 쇠약해져 갔다. 내 어머니만큼은 세월이 비켜가기를 빌었는데, 자연의 섭리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음이 눈물겨웠다. 보다 못해 수술을 권했지만 한사코 망설였다. 나는 자식의 입장을 먼저 걱정하는 어머니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더는 수술을 늦추기가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기에 어머니에게 퇴행성관절염 말기라는 설명을 하며 날짜를 잡았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었다.어머니가 병실에 있는 동안, 나는 구두를 사러 갔다. 전부터 어머니에게 구두를 사드리려고 했는데, 내 살아가는 형편을 핑계로 계속 미루었다. 구두를 고르는데, 어머니에게 묵혔던 구두에 대한 빚이 한 순간 빗장뼈를 세워 고개를 내밀었다.초등학교 때, 우리 집 앞에 개울이 있었다. 나는 동네 친구들과 자주 빨래놀이를 했다. 그 날도 세수 대야에 비누와 신발 몇 개를 챙겨나갔다. 신발로 물을 퍼내어 대야를 가득 채우고 나서 개울에 떠내려 보냈다. 그러고는 잽싸게 뛰어가 건져내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한참을 뛰어다니면 지쳤다. 헐떡이는 숨을 고를 겸 물가에 자리를 잡고앉아서 신발에 비누칠을 했다. 이왕 빨 것을 찌든 때가 있는 빨랫감이나 걸레를 들고 갔더라면 칭찬 꽤나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발에 어머니의 구두가 섞여 있었다. 가난했던 아버지가 내 입학식 때 신고 가라고 큰맘 먹고 어머니께 사다준 신발이었다. 그 뒤로 어머니가 구색을 맞춰야 하는 자리에만 신고 나갔던 하나뿐인 구두였다.나는 잠시 뒤에 알았다. 구두는 물에 빨면 안 되고, 불 옆에 두면 안 된다는 것을. 말린다고 연탄보일러 주위에 젖은 운동화와 함께 구두를 세워 두었더니 일그러지고 눌어붙어 영영 신지 못하게 되었다.정작 어머니는 야단치지 않았다. 어머니는 항상 자식 걱정이 먼저인 분이었다. 구두를 태웠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혼날까 봐 불안해 한다는 사실에 더 신경을 쓰셨다. 나는 오히려 그게 더 미안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어머니에게 구두를 사드려야지, 스스로에게 다짐했다.구두를 장만해 병실에서 꺼내 들고, 얼른 회복해 꽃구경 가자고 말씀드렸다. 자식이 마련한 선물을 귀하게 여겨 어머니는 구두를 들여다보며 흐뭇해 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나는 새삼 코끝이 찡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새 구두를 신지 못했다. 무릎이 성하지 않으니 아무래도 새 것보다는 예전 것이 좋다며, 운동화를 신었다. 어머니가 건강하실 때 진작 구두를 사다드렸다면 좋았을 것을, 후회가 밀려들었다.“엄마, 미안해.” 내 후회의 탄식이 길게 여음을 남겼다.나는 예전에 어머니의 구두를 연탄불 옆에 두었다가 눌어붙게 했던 날의 용서를 다시금 구했다. 어머니는 이제껏 마음에 두고 있었느냐며 본인은 벌써 잊었다고 말씀하셨다.오늘도 늙으신 어머니는 자식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셨다. 세월이 흘러도 덜어지지 않는 자식에 대한 사랑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결이 소실점으로 향한다고 해도 끝없는 그리움으로 내 가슴 속에 은은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노모의 사랑이 짙어지는 오후였다.

2022-07-06

을해(乙亥)

육십갑자 중 열두 번째에 해당하는 을해(乙亥)이다. 천간(天干)은 을목(乙木), 지지(地支)는 해수(亥水)다.을해(乙亥) 일주는 일명 부평초, 즉 물 위를 떠다니는 풀잎의 모양이다. 온화하고 인내심은 강하나, 의지력은 약한 편이다. 의타심이 강한 편이고, 생존력이 뛰어나 성취를 위해서 노력하는 형이다. 강한 자존심에 비해 줏대가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따라서 자존심을 줄여야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을목(乙木)을 등라계갑(藤蘿繫甲)이라 한다. 천간(天干) 중 을(乙)과 갑(甲)이 같이 있는 사주를 말한다. 을목(乙木)인 등라(藤蘿), 담쟁이덩굴이 갑목(甲木)인 소나무를 휘감아 의지한다는 뜻이다. 소나무와 같이 곧게 자라는 나무는 홀로 성장할 수 있지만, 넝굴식물은 소나무와 같은 기댈 곳이 있어야 타고 오른다. 이와 같은 이치로 명리학에서는 등라계갑(藤蘿繫甲)이라 말한다.등라계갑이 사주에 있으면, 혼자의 힘으로 어려운 출세를 하거나 재물을 모으는데 형제나 친구 등의 힘을 빌려서 취할 수가 있다. 타인을 의지한다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타고난 재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부족한 면을 타인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중국 ‘경자(景子)’편에 나오는 글이다. ‘복자천’이 중국 노나라 단부지방을 다스릴 때, 날마다 거문고를 타면서 느긋하고 한가롭게 지내고 집무실에는 별로 나가 앉은 적이 없었는데도 단부를 훌륭하게 다스렸다.한편 ‘무마기’라는 사람이 단부를 다스릴 때는 날마다 하늘의 별들이 스러지기도 전에 집무실에 나가고,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하게 빛날 때가 되어야 잠자러 돌아오곤 하였다. 그는 낮이나 밤이나 편히 쉬는 날이 없이 무슨 일이든지 스스로 직접 처리해야만 했다.어느 날 ‘무마기’가 ‘복자천’에게 단부를 훌륭하게 다스릴 수 있었던 방법을 물었다. 그러자 ‘복자천’이 “내가 다스린 방법은 다른 여러 사람들의 지혜와 능력을 빌리는 것이었다네. 자네는 오로지 자기 스스로의 능력에 의지하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의 능력에만 의지하는 사람은 당연히 많은 일을 혼자 힘들게 처리해야 하고, 다른 여러 사람의 지혜와 능력에 의지하는 사람은 당연히 편하고 한가롭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자기의 어깨 위에 놓인 짐을 옆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옮기는 것이다. 남에게 일을 맡길 때는 의심이 생기면 맡기지 말아야 하며, 일단 일을 맡기면 믿고 성패에 관계없이 기다려 주는 인내가 필요하다.지지(地支) 해(亥)는 11월 초겨울에 해당하며, 색깔로는 검은색이다. 동물로는 돼지다. 일명 흑돼지라 할 수 있다. 초겨울이라 을목(乙木)은 성장을 멈춘 시기라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기에 돼지에게는 배고픈 시간이기도 하다.흑돼지라면 제주도 흑돼지가 떠오른다. 2015년 3월 17일에 천연기념물 제550호로 지정되었고. 우리나라 토종 돼지 종자 중의 하나인 제주 흑돼지는 내륙과 떨어진 독립된 환경에서 다른 품종의 돼지와 계통(系統)이 섞이지 않았고 오랫동안 생존한 제주 고유의 재래가축이다.사주일주에 해(亥)가 있으면, 인복이 많고, 선천적으로 낙천적이며, 평소엔 온순하며 다정다감하나, 한 번 뒤틀려 고집을 피우면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돼지띠는 억압하며 앞으로 강제로 끌면, 감당하기 어려운 사고를 칠 수도 있으니 살살 달래며 이끌어주는 것이 이롭다.돼지모양새가 온순하며 특이하게 생겨, 잡식성이라 먹성도 좋고 순해 보이기도 한다. 돼지는 뚱뚱한 동물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뚱뚱한 사람을 놀리는 단어로 돼지가 사용되지만, 돼지와 관련된 인물이나 대상을 묘사할 때 탐욕스럽지만 머리가 좋은 개념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다.영국작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1945년 8월 17일 출간된 소설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조선이 해방된 해이다. ‘동물농장’을 살펴보면, ‘동물농장’에서 돼지를 농장 동물들 가운데 제일가는 지성을 갖춘 동물로 묘사했다. 농장의 모든 동물에게 존경을 받고, 가장 나이가 많고 연로한 수퇘지 ‘메이저’는 ‘두 다리로 걷는 놈은 전부 적이며, 네다리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동물은 모두 우리의 친구이다.’라며 동물을 제외한 모든 이는 적이라 이야기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돼지 외에는 글자를 몰랐던 다수의 동물들은 이러한 ‘메이저’의 주장에 동조하고, ‘인간이 없는 지상낙원’이라는 말을 동물들에게 전달하며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하며 죽는다. 마침내 농장에서 농장주 인간 존스를 쫓아내기 위해 수퇘지 스노블과 나폴레옹이 혁명을 일으킨다. 혁명에 성공한 초기 스노블이 있던 시기의 동물농장은 인간이 운영할 때보다 훨씬 살기 좋았던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스노블이 나폴레옹과의 권력다툼에서 쫓겨난 후에는 동물농장의 상황이 급격히 나빠진다.돼지 나폴레옹은 인간의 모습을 흉내 내며 동물을 통제하기 시작하였으니 어느 쪽이 인간이고, 어느 쪽이 돼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한다. 정의를 실현하겠다며 하위계층을 끌어들여 혁명을 일으킨 중간계층이 결국은 자신들의 신분상승 도구로만 이용한 뒤 다시 피지배계층 위에 군림하는 지배계층이 된 것이다. 동물주의 실현을 외치면서 구성원 다수의 지지를 받아 동물농장에서 인간을 축출하고 동물만의 세상을 이뤄냄으로써 완벽하게 실현한다. 나폴레옹은 결국에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로 마지막 남은 계명까지 바꾸어 버린다.동물들의 무지와 무기력함이 권력의 타락을 방조한 결과다.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생활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 와중에도 돈을 번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면서 이 고비를 슬기롭게 넘겨야겠다. 옛 말을 소개하면 득지본유(得之本有). 얻었다고 하나, 원래 있었던 것이고. 실지본무(失之本無). 잃었다고 하나, 본래부터 없었던 것이다.

2022-07-06

투자 권하는 사회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전남 완도에서 실종된 유나 양 가족이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지난 5월 유나 양 부모는 제주도 한 달 체험학습을 신청한 뒤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 학교는 체험학습 기간이 끝나도 유나 양이 등교하지 않고 부모와도 연락이 닿지 않자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경찰 조사를 통해 유나 양 아버지가 광주의 전자상가에서 조립 컴퓨터 판매를 했으나 작년 7월 폐업했으며, 이후 가상화폐 투자에 실패하고 큰 빚을 진 사실이 알려졌다. 가상 화폐 ‘루나’ 상장폐지 사태와 맞물려 유나 양 아버지가 루나를 검색한 사실이 집중 보도되었다.많은 사람들이 유나 양의 죽음에 안타까운 마음을 표시했다. 유나 양은 부모의 자살 결정에 그 어떤 의사도 표시하지 못하고 함께 죽었다. 이것을 동반 자살이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지만, 명백히 유나 양을 죽인 범인은 부모이다. 자식을 죽일 만큼 고통스러웠을 부모의 마음은 감히 짐작하기 어렵지만, 살인은 살인이다.그렇다면 부모의 죄는 어떻게 물어야 할까? 법적으론 가해자가 죽었으니 죄를 묻지 못하는 상황이다. 유나 양 가족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의 정비도 더욱 꼼꼼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2020년까지 2017년을 제외하고 OECD 국가 자살률 1위를 유지하고 있다.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자살률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던 것이 아닌데, 왜 조금도 좋아지지 못한 것일까?이번 사건을 보도한 기사의 댓글 중 ‘일확천금을 바라는 마음이 결국 죽음을 불러온다.’에 눈길에 꽂혔다. 아마 성실하게 일하지 않고 가상자산으로 가정을 지키고자 한 사람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이런 비판은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 우리의 금융 시스템을 생각한다면 적절하지 못한 것이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는 불과 2년 만에 실거래 가격이 정확히 두 배가 상승했다. 2년 만에 월급이 몇 억씩 상승하는 사람은 드물다. 눈치 빠른 사람들이 레버리지를 이용해서 자산을 몇 배씩 불리는 사회에서, 성실하게 일하라는 조언은 ‘벼락거지’가 되라는 말로 들릴 뿐이다.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는 문화는 2000년에 생겼다. 이것은 곧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경제 시스템이 길어야 20년 정도 되었다는 의미다. 금융 자본주의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산업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출발한 것이다. 부채, 신용 등의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2000년 전후다.문제는 바로 이런 경제 시스템이 개인의 몸과 마음에 미친 영향이다. 벼락거지가 유행처럼 떠도는 시대에 노동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 모순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심리·육체적 질병과 높은 자살률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런 물음에 아무런 고민을 하지 않고, 오로지 경제 성장을 위한 법 제도 정비의 결과를 지금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최근 법원은 주식, 가상화폐 투자 빚을 없는 걸로 쳐주겠다는 결정을 했다. 투자자 사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유나 양 부모의 죄는 누구에게 물어야할까?

2022-07-06

잃어버린 국민

오낙률시조시인·국악인 시골길을 가다 보면 야생화 군락을 만날 때가 있다. 그중 가장 흔히 만날 수 있는 야생화 군락이 코스모스 군락이거나 유채꽃 군락이다. 이 꽃들은 본디 야생화의 범주에 들지 않는 꽃임에도 불구하고 하천 변이나 인간의 관리 손길이 닿지 않는 길가 잡초밭에서 뿌리를 내리고 예쁜 야생화 군락을 이룬다.필자는 가끔 이러한 야생화의 군락을 보며 야생과 야생이 아닌 것의 경계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꽃의 세계에서도 인간 신분의 그것처럼 그 종류에 따라 야생화와 야생화가 아닌 것의 경계가 분명히 구분 지어져 있으니 하천가에서 군락을 이루며 피어있는, 과거에는 야생화로 불리지 않던 그 꽃들이 이제 인간의 보호 손길을 받지 못하고 야생으로 피었다고 필자의 입으로 그들을 야생화라 부르기가 좀 그렇다.인간 사회에도 야생화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군락이 있다. 그들은,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야생화로 전락해가는 코스모스나 유채꽃처럼, 자기 점포 하나 가지지 못하고 오 일 장터를 전전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재래시장 노점상 상인들이다. 그 살벌했던 코로나 위기에서도 국민 누구 하나 그들에게 마스크 한 장 지원해 주자는 사람이 없었고 정부의 수차례에 걸친 소상공인 지원 대상에서 단 한 번도 거론조차 되지 못한 사람들이다.그들은 상행위를 정식으로 허가받지 못한 ‘노점상’이라는 이름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그나마 노점상조차 못 하게 될까 봐서 눈치만 살필 뿐, 불만을 입 밖으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그들은 지역화폐 발행에서도 깡그리 무시를 당했다. 지역사랑상품권이 대량으로 발행되어 사용되는 과정에서 가맹점 허가를 가지지 못하는 탓에, 시장에서 돈 대신 받은 상품권을 은행에 직접 입금할 수 없었고 고객에게서 받은 상품권을 모아 두었다가 웃돈을 주고 현금으로 교환하여 사용하는 등의 불편을 겪었다. 그들에겐, 어쩌면 지역화폐가 노점상을 퇴출하려는 의도로 발행하는 화폐처럼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선거철만 되면 각계의 정치인들은 재래시장으로 몰려가서 장사를 못할 정도의 유세 방송을 그들의 귓가에 칠갑하듯 퍼붓곤 하는데 필자는 그런 그들의 행위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씁쓸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야생화로 전락해가는 코스모스나 유채꽃의 화려했던 과거처럼, 그들도 한때는 우리나라 국가 경제의 한 축을 받치며 살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어쩌다 그 삶이 곤두박질치면서 노점상 상인으로 내몰렸을 뿐인데 국가나 자치 행정에서는 어찌하여 철저히 저들의 존재를 잊어버렸을까 싶다. 잃어버린 국민의 무리가 전국 곳곳의 재래시장에서 엄청난 규모로 야생화 군락처럼 살아가고 있는데, 국가행정은 도무지 그들의 존재조차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들은 누구처럼 서울역사의 노숙자가 아니었고 나라에서 일일이 그 삶을 보살피느라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사람들의 무리도 아니다. 누구의 부축도 받지 아니하고 자력으로 삶을 회복하려는 의지의 재래시장 상인들이야말로 세상의 주목과 응원을 받아 마땅한 그런 인간의 꽃 무리가 아닌가 싶다.

2022-07-06

시장·도지사 원팀돼야 TK현안 풀 수 있다

경북도가 향후 4년간 중점적으로 추진할 주요과제(7개 분야 14대 대표 정책)들이 지난 5일 발표됐다.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위원장인 ‘지방시대 주도 경북도 준비위원회’가 마련한 과제들이다. 경북도는 지난달 15일부터 민선 8기 정책과제 발굴과 도지사 공약이행을 위해 준비위를 가동해왔다. 발표내용 중 주목되는 부분은 ‘전기요금 차등제 도입’이다. 원전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받아쓰는 서울시민이나 원전이 몰려 있는 울진군민이 같은 전기요금을 내선 안 된다는 논리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전기요금차등제는 원전지역에 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평소 “지역이 발전하려면 전국 시·도가 특화돼야 한다”는 지론을 펴왔다. 이날 발표된 과제 중에는 대구경북통합신공항 인근 지역 중심으로 미래차, 반도체, 로봇, 메타버스, 스마트공항과 같은 미래산업 특구를 조성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에너지 분야는 차세대 원자력 기술개발과 기업 유치, 수소경제 확산 등이 주요정책으로 선정됐다.우려되는 부분은 이 도지사와 홍준표 대구시장이 통합신공항 건설방식을 두고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도지사는 “가덕도 등 다른 새로운 공항보다 통합신공항이 먼저 개항해야 물류거점 등 경쟁에서 앞설 수 있다. 특별법을 만들어 국비로 추진하기에는 법통과가 쉽지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만큼 기존 방식(기부 대 양여)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홍 시장은 “새로운 특별법 제정을 통해 군 시설은 기부 대 양여방식으로 이전하되 민간공항은 국비로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덕도 신공항은 국비로 건설하는데 대구는 왜 안되느냐는 논리다. 대구시는 현재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통합신공항 건설에 대해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의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비판받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중앙정부를 상대로 예산을 받아써야 하는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두 사람이 격의 없는 소통을 통해 현안해결의 해법을 찾아 나가기를 바란다.

2022-07-06

문화로 도시를 살린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지역의 인구문제가 심각하다. 저출산고령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면서 수도권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동네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학령인구가 격감하면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들이 늘어난다. 지역에서 젊은이들의 모습을 찾기가 어렵기만 하다. 대학들이 있어 청년들이 지역에 있기는 해도, 거의 모두 졸업과 함께 떠날 채비를 한다. 사회진출을 앞둔 대학생들에게 지역을 떠나는 까닭을 물으면, ‘지역에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거나 ‘지역에 문화기반이 부실하여 지역에 머물 재미가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들이 장래를 걸만한 비전을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일상을 이어갈 정주여건이 부실한 터이다. 인구문제는 사람 머릿수의 문제가 아니다. 젊은이들의 마음을 묶어낼 매력을 만들어야 한다.문화가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여러 생각이 가능하겠지만, 문화는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어야 한다. 전통문화를 찾아내어 아름답게 보전하는 일이 중요한 만큼, 우리가 발딛고 사는 곳에 어떤 문화적 매력을 심을 것인지 생각을 모아야 한다. 문화는 독특하고 흥미로우며 이곳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지역의 정체성’이어야 한다. 한국문화는 한국에만 있듯이, 포항문화는 포항의 정체성이어야 한다. 지역의 정체성인 문화가 외지로부터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찾아와 살고싶게 만들어야 한다. 정주여건과 연계한 문화인식이 필요한 까닭이다. 다른 지역을 흉내내어서도 안 되고 다른 지역이 따라할 수도 없어야 한다. 독특한 정체성을 확보한 지역문화는 도시브랜딩의 기초가 된다.차별적이며 흥미진진한 지역문화를 일으키면, 우리만의 지역문화를 홍보와 마케팅에 활용하는 도시브랜딩에 적용하게 되고 사람을 당기고 청년을 머물게 하는 인구정책에 기여할 수 있다. 늘어나는 지역의 인구는 다시 다양한 문화적 저변을 발굴하고 창출하게 하고 지역의 문화적 지평을 넓히게 하여, 선순환적 문화정책과 도시정책이 가능해질 터이다. 청년들에게 지역을 왜 떠나느냐고 따져 물을 게 아니라, 지역이 먼저 전향적으로 풍요하고 재미있는 문화적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외치지 않아도 찾아오는 도시를 만들어야 하고 붙들지 않아도 떠나지 않는 지역이 되어야 한다. 문화가 ‘정주여건’의 필수요소임을 명심해야 하며, 행복과 기쁨은 일상에서 만나는 문화의 풍성함과 흥미로움에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산업화의 결실이 사람을 당기는 외형적 유인이었다면, 문화적 풍요는 사람을 머물게 하는 매력의 열쇠인 셈이다. 문화도시로 선정되었음에 만족할 일이 아니며, 문화가 구체적으로 지역의 지속적인 발전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고심해야 한다.오래된 고전이 물론 훌륭한 문화자산이지만, 오늘 일상에서 만들고 경험하는 재미와 향기는 우리 도시만의 문화적 매력과 긍지가 된다. 산업화로 여기까지 왔다면, 문화로 새 날개를 달아야 한다. 나라와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브랜딩을 문화를 테마로 시도해야 한다. 글로벌시티로 다시 태어나는 포항이 되어야 한다. 문화를 살리면 도시가 깨어난다.

2022-07-06

한국 최초의 달궤도선 ‘다누리’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지구궤도에 완벽하게 올려진 이후 한국형 달 탐사선 계획의 1단계 사업으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개발해 오는 8월 3일에 발사되는 대한민국 최초의 달 궤도선 다누리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다누리는 달 궤도를 돌며 달을 탐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한국형 달 궤도선’이다. 미국 스페이스 X의 로켓에 실려 발사될 다누리는 달 궤도까지 사흘이 걸리는 지름길 대신, 150만 km를 돌아가는 최대 135일의 기나긴 여정을 선택했다.태양 쪽에 있는 무중력 지점까지 갔다가 지구와 태양의 중력에 이끌려 달에 도착하는 방식으로, 다른 궤적에 비해 이동 거리가 길지만, 지구와 태양의 중력을 활용해 이동하므로 연료를 상당량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달에 도착하는 시점은 오는 12월이다. 그 때까지 다누리와 교신하며 길잡이 역할을 해줄 초대형 안테나는 직경 35m, 무게 700t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심우주 지상 안테나다.고해상도 카메라를 비롯해 6개의 탑재체가 실린 다누리는 1년 동안 달 상공 100km를 하루 12바퀴씩 돌며 자원을 조사하거나 착륙 후보지를 찾고, 자기장·감마선 측정 등 달 과학연구와 함께 우주 인터넷 기술도 검증한다.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과 협력해 다누리에 미 항공우주국(NASA)의 탑재체인 극지방 촬영 기기를 싣고, NASA는 다누리의 심우주 통신과 항행을 지원한다.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30년 초반 우리 발사체로 달 착륙선을 보낼 계획이다. 한국형 발사체에 이어 달 탐사선 발사가 꼭 성공해 우주항공시대가 열리길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7-06

24년만의 6% 물가…서민들 벼랑끝 섰다

통계청이 6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전년동월 대비 6%가 올랐다고 발표했다. 이는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1월(6.8%) 이후 23년 7개월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지난 2월 3%대이던 물가상승률이 3월에 4%대로 오르는 등 매달 1% 포인트씩 상승하더니 급기야 6%대까지 올랐다. 정부도 이 상태면 7∼8%대 상승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서민경제가 받을 충격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6월 중 물가상승은 국제유가 폭등으로 석유류 가격이 여전히 상승세를 주도한 가운데 농축산물, 개인서비스요금 등 오르지 않은 물가가 없었다. 외식물가는 1년 전보다 8.0%가 올라 30년만에 최고다. 이달부터 전기와 가스 등 공공요금까지 오르면 서민가계는 더 물러설 곳도 없을 것 같아 걱정이다.지금 우리경제는 물가가 급등하고 경기는 하강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한다. 정부가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나 그럴경우 경기는 더 나빠질 우려가 있다. 국내 가계대출 규모가 1천800조원에 달한다. 금리를 인상하면 빚을 내 돈을 쓰는 서민층만 죽어나갈 가능성이 높다. 물가 급등은 우리나라 문제만은 아니다. 미국도 40년만에 가장 높은 물가고에 시달린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글로벌 공급망 붕괴로 전 세계는 지금 물가와의 전쟁에 허덕인다.문제는 지금의 물가상승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데다 외적 요인이 많아 정부 대응책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물가와 관련 “매주 비상경제 민생회의를 주재하겠다”고 밝혔다. 공공부문이 민생의 어려움을 더는 데 앞장서겠다는 뜻이다.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서민층이 받을 경제적 충격과 고통을 선제적으로 막아주는 것이 중요하다.물가는 심리적 요인에 의해 자극을 받는다. 정부의 기민한 대응은 인플레 심리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6월 대구(6.1%)와 경북(7.2%)의 물가상승률은 전국 평균보다 높았다. 지방자치단체도 물가 오름세를 막는데 행정력을 총동원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 경제주체 등 모두의 비상한 각오가 필요한 때다.

2022-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