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다. 어린 시절 사랑이란 빠질 수밖에 없는 감정의 상태이니, 그것이 지금 사라져버렸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각각의 인간의 한계를 넘어 저 바깥에 존재하는 어떤 대상에 대한 마음의 급격한 움직임으로서의 사랑이라는 감정은 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 청년들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다.
누군가는 각자 생존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말한다. 학생들의 삶은 미래의 더 나은 생존을 준비하느라, 지금 여기에 있지 않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 어찌 사랑 같은 가장 현재적인 감정에 빠질 것인가. 경쟁의 시대에, 생존을 고민하는 이들의 고민은 지금 우리 사회가 귀기울여야만 하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우리 모두가 빠져 있던 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한국에서 근대 문학의 시작은 바로 사랑으로부터였다. 1920년대를 연애의 시대로 규정하는 연구자가 여럿 존재할 정도로, 사랑과 연애는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는 것이었다. 유명인들의 연애가 입에 오르내리고, 연애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누구나 연애편지 모음집을 한 권 씩은 서가에 몰래 꽂아두고 보던 시대였다.
19세기 말부터 불어오기 시작한 제국주의의 광풍에 휘말려 제국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에서 어떻게 사랑이 그렇게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었을까. 흥미롭게도 그 시대 역시 경쟁의 시대였다. 진화하지 못하면 도태한다는 진화론적 상상력의 공포가 사회를 덮쳤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다른 국가들에 대한 끔찍한 폭력을 저지른 배경도 바로 밑도 끝도 없는 경쟁과 소멸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겠는가.
하지만, 지금보다 결코 덜하지 않았을 생존과 경쟁의 시대였던 백 년 전 우리가 빠져 있던 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김동인이 ‘약한 자의 슬픔’에서 보여준 것은 삐뚤어진 사랑이었고, 현진건이 ‘희생화’에서 보여준 것은 사랑에 빠진 모습을 바라보는 평범한 우리의 모습이었고, 노자영이 ‘반항’에서 보여준 것은 가정의 핍박을 견디다 못해 정적 혁명을 꾀하며 집 바깥으로 뛰쳐나갔던 여성의 사랑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1920년대는 사랑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김동인이 만든 최초의 근대문학잡지 ‘창조’에 혜성과 같이 등장했던 임노월이라는 작가는, 지금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이 즈음 가장 독특한 시와 소설을 쓰는 작가였다. 극작가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진 윤심덕의 곡 ‘사의 찬미’가 나오기 전에, 같은 이름의 시를 쓴 것도 이 임노월이었다. ‘창조’가 폐간되고 발간된 ‘영대’에 그는 이 사랑의 시대에 강렬한 사랑의 욕망을 표현했던 ‘악마의 사랑’이라는 소설을 썼다.
이 ‘악마의 사랑’은 자신과 어릴 때 혼인한 정순이라는 여성과, 새롭게 알게 된 영희라는 여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나’에 대해 쓴 작품이다. 어쩌면 전형적이다못해 뻔하기까지 한 삼각관계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짧은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자기를 덮쳐와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기록일 것이다. 그것은 숨쉬는 것처럼 당연했던 기존의 관계를 송두리째 뒤흔든다.
지금에 와서 백 년 전 사랑에 목매던 소설을 읽는 것은 조금 미묘하다. ‘악마’의 사랑이란 제목조차 과장처럼 여겨진다. 분명, 우리에게 사랑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 아닌 시대에,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조금은 그 시대가 그리워진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