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은 춘향전의 배경이 되는 고장이다. 남원에는 춘향의 영정을 모신 춘향사당이 있으며 매년 5월 5일에 이곳에서 춘향제가 열린다. 이당 김은호(1892∼1979)가 그린 기존 영정이 작가의 친일 논란으로 구설수에 오르자 남원시는 새로운 춘향 영정을 제작하여 사당에 봉안하였다. 새 영정을 그린 김현철 작가는 작업 과정에서 남원 소재 여자고등학교에서 추천받은 7명의 여학생 모습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새 영정이 공개된 이후, 영정 속 춘향의 모습이 ‘아름답지 않다’는 비난 여론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형평운동가 강상호가 그렸다고 알려진 최초의 춘향 영정, 그리고 김은호가 그린 기존 영정에 비해 새 영정 속 춘향의 얼굴은 17세라기엔 너무 나이 들어 보이고, ‘미인’도 아니라는 것이 비난의 요지다.
근대문학 연구자로서는 이 논란에 대해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든다. 우선 춘향이 상징하는 가치를 ‘열녀’, 즉 여성의 ‘정조’로 떠받드는 것이 현대사회에 적합한지부터가 의문이다. 두산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남원 춘향사당은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 숲 속”에 위치해 있으며 “열녀춘향사(烈女春香祠)”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고 한다. 춘향사당이 건립된 1931년에도 여성의 정조라는 가치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서양화가이자 문인인 나혜석은 1930년에 발표한 ‘이혼고백서’라는 글에서 여성에게만 정조를 강조하는 조선사회를 이렇게 비판했다. “조선 남성의 심사는 이상합니다.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이제 춘향제는 ‘열녀 춘향’이 아니라,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목숨 걸고 권력에 맞선 ‘멋지고 용감한 여성’ 춘향을 기리는 축제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새 춘향 영정은 여성의 주체성이라는 현대적 가치를 춘향이라는 기호에 잘 녹여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기존의 춘향 이미지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새 영정을 낯설게 느끼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이미지에 대한 기호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며, 특히 ‘춘향전’같이 집단 기억이 관련되어 있는 경우 더욱 그렇다. 1865년, 여성의 나체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가 공개되었을 때 남성 관객들이 분노하여 지팡이와 우산으로 그림을 훼손하려 했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가 ‘전통’, ‘고전’이라고 여기는 것은 선택과 배제의 과정을 거쳐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가치들이다. 새 영정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비교 대상으로 내세우는 기존의 춘향 영정들 또한 각각 1931년, 1939년에 봉안된 것으로, 여성에 대한 당대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물일 뿐이다. 호사가들에게 이번 논란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일 뿐이겠지만, 춘향이라는 대중적 아이콘(icon)의 이미지가 어떻게 표현되느냐의 문제는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낯선 것’과 ‘잘못된 것’을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