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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크리스마스

등록일 2023-12-25 18:07 게재일 2023-12-2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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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탄생일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역사적, 종교학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 크리스마스를 매우 중요한 축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나라들도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단지 ‘빨간 날’ 중 하나로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날이다. 사랑하는 가족, 연인, 친구와 즐겁게 보내는 것은 물론이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인 만큼 평소 바쁘게 지내느라 잊고 살았던 소외된 이웃들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 크리스마스의 또 다른 의미일 것이다.

‘크리스마스 정신’이라는 표현이 있다.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세상에 내려온 아기 예수의 뜻을 기려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을 환대하는 인류애를 되새기자는 것이다. 종교와 신앙의 차원을 넘어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가까운 사람들과 선물을 교환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그럴 때일수록 우리 주위에 소외된 이웃은 없는지 살피는 마음이 필요하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누군가가 취약계층을 위해 적지 않은 돈이나 물품을 기부했다는 훈훈한 소식을 접하곤 한다. 이들이야말로 크리스마스 정신을 실천하는 이름 없는 천사들이다.

그런데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도 크리스마스 정신을 논하기 어려운 듯하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에서 멀지 않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굶주림과 질병과 죽음의 공포로 신음하고 있다. 이 전쟁을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를 묻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전쟁을 멈추고 삶을 이야기하는 일이다. 이 잔혹한 현실 앞에서 크리스마스 정신은 무력하기만 하다.

한국 사회의 상황도 그리 만만치는 않다. 장기화된 경제불황과 산업구조의 변화, 소비심리의 위축으로 인해 대다수 국민의 삶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내 삶이 팍팍하니 이웃을 향하는 마음도 인색해지기 쉽다. 보도에 따르면 올해 연탄 기부량이 목표치인 삼백만 장에 백만 장 가까이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더구나 기상이변으로 인한 한파의 습격까지 더해진 상황이다. 취약계층의 열악한 주거 형태와 난방비 부담을 생각하면, 이들에게 올겨울이 얼마나 힘겨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화의 결실은 소수가 누리고,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이라는 피해는 특정 계층에게 더 가혹하게 돌아온다. 슬픈 겨울이고 슬픈 크리스마스다.

이 칼럼이 나갈 시점이면 크리스마스는 이미 지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웃을 돌보는 마음이 크리스마스에만 발휘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겨울은 길고 봄이 찾아오려면 아직 멀었다. 경제를 살리는 일은 책임 있는 분들의 몫이겠지만, 경제가 살아날 때까지 버티게 하는 힘은 서로에 대한 환대와 호혜의 정신에서 나온다. '라면의 상식화'가 아닌, 크리스마스 정신이 상식화된 새해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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