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돌리네습지 탐방기
‘문경돌리네습지’는 자연이 빚은 찻사발이다. 산이 움푹 파여 문경 찻사발 같다. 이렇게 산이 찻사발처럼 움푹 파인 것을 ‘돌리네(doline)’라고 한다. 지하의 석회 기반암이 지하수에 의해 용해돼 형성된 지형적 요지(凹地)를 말한다.
이런 돌리네가 문경에는 50여개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대부분 물이 없다. 석회암의 무른 특성으로 구멍이 생겨 물이 빠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경돌리네습지는 물이 빠져나가는 구멍에 점토가 막아 습지를 형성하고 있어 매우 특이하다. 이런 돌리네습지는 세계에서도 6개 밖에 없다.
산북면 굴봉산 자락 15만평 규모
여름엔 물놀이장 겨울엔 썰매터
주민들에겐 ‘서것바다’로 불려
2011년 항공촬영때 돌리네 발견
‘습지’ 지정 때 주민들 전격 동의
‘람사르’ 인정되면서 글로벌 명성
□ ‘노아의 방주’ 같은 전설 전해져
‘문경돌리네습지’는 문경시 산북면 우곡리 읍실마을에 있다. 문경의 오지 중 오지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내려오는 문경산맥 중간 쯤, ‘배너미산’ 앞 ‘굴봉산’ 자락에 있다. 면적이 0.494㎢( 15만여평)에 이른다.
이곳은 읍실마을 사람들이 농사짓던 생활 근거지였다. 논과 밭을 일궈 자식 키우고, 집안을 일구던 터전이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서것바다’라 했다. 마을 뒤로 가파른 사면을 넘어가야 했다. 그 재가 ‘돌재’다. 지금 해설부스가 있는 곳이다.
아이들에게는 여름 물놀이장이었고, 겨울 썰매장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습지’라는 말은 없었다. 그저 돌재 넘어 서것바다에 가서 놀았고, 서것바다에 가서 일했다. 돌재에서 보이는 ‘배너미산’의 신비한 전설에 상상력을 키웠다. 태초에 이곳은 바다였고, ‘배너미산’ 2개의 봉우리 사이로 배가 넘어 다녔다는 전설. 노아의 방주 같은 이야기가 이곳에서 대대로 전해왔다.
서것바다에 나던 버드나무를 꺾어다가 ‘키’, ‘채반’을 만들어 산북장, 산양장으로 팔러 다녔던 그 이전의 생활들이 전설로 박제되기 시작했다. 70호 집들이 20호로 쪼그라들면서 사람들은 늙었고, 마을은 점점 소멸의 길로 가라앉고 있었다.
마을은 1450년대에 영월 엄씨가 약초 캐러 왔다가 정착해 살면서 시작됐고, 임진왜란 때 평해황씨가 자기 조상 위패를 모시고 피난 와 옥련정에 모셔놓고 그 앞을 지나다니면서 읍(揖)을 했다고 읍실이라고 전해온다.
서것바다에는 미나리, 달래, 냉이 등등 철마다 갖은 나물들이 나왔고, 가축들에게도 먹이의 보고였다. 이곳에 소를 갖다 놓으면 도망을 안 가고 이 바닥에서만 놀았다. 그런 서것바다에 비가 오면 물이 차올라 농사에 큰 지장을 주었다. 물 빠지는 구멍은 자꾸 막혀 작아졌다. 그러면 물 빠질 때까지 두 달을 기다려야 했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두 달을 기다릴 수 없었다. 물이 빠지는 구멍을 정으로 뚫어 넓혔다. 그러면 인천 채씨들은 밤에 와서 그 구멍을 막았다. 조상 산소들이 많았는데, 산소 밑에 물이 있으면 명당이라며 그 물이 빠져 나가지 않도록 해야 했다.
서것바다 물은 구멍으로 빠져 어디로 갈까. 6~70년대 사람들도 그것이 궁금했다. 그때 어른들은 왕겨를 물에 부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왕겨가 서것바다 서쪽 넘어 호계면 선암리로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20여 년 전에는 외지 연구자들이 소금하고 색소를 넣었더니 마찬가지였다. 그 거리는 1km정도. 단양 고수동굴이 1.3km니까 서것바다 밑에도 그런 동굴이 있는 것으로 마을사람들은 믿는다.
마을사람들은 거기에 동굴이 2층으로 있다고 믿는다. 위에 있는 동굴은 선암리로 가고, 밑에 동굴은 호계면 부곡리 암굴, 수굴로 이어졌다고. 서것바다 높이가 해발 290m. 부곡리 암굴, 수굴 높이가 해발 145m. 직선거리로 3km 남짓하니, 마을사람들의 믿음이 허황하지는 않다.
□ 천지개벽, 세계적 관광지 부상
그러던 이 마을 생활터전이 2011년 환경부 국립생태원의 항공촬영으로 ‘돌리네’다, ‘습지’다 하면서, 대단히 희귀한 연구가치가 있다고 알려지기 시작했다. 공무원들이 드나들고, 박사들이 왔다 갔다 했다. 마을사람들은 ‘습지’로 지정하는데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주민설명회 2번으로 100% 찬성했다. 우리나라 습지 지정하는데 이런 사례는 흔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라에서 습지지구에 들어가는 토지를 사들이는데도 보상가격에 토를 달지 않고 15만평을 다 내주었다.
그러자 2017년 우리나라에서 스물세 번째 산지형 습지로 지정을 받았고, 돌리네습지로는 유일했다. 마을은 이때부터 천지개벽이 시작됐다. ‘서것바다’라는 이름이 ‘문경돌리네습지’로 개명됐다. 도로가 넓어지고, 상하수도시설이 놓이고, ‘돌재’는 등산하는 사람들의 코스로 변하고, 다른 곳으로 새로운 길이 훤하게 뚫렸다.
자동차가 올라가고, 전동차가 드나들고, 탐방센터가 들어섰다. 탐방객들이 주말이면 2~300명씩 찾아와 마을이 북적거렸다. 집집마다 지붕이 개량되고, 마을 안길도 예쁘게 다듬어졌다. 서것바다에 가면 불통이었던 휴대폰도 돌리네습지에 가면 팡팡 터졌다.
지난해에는 ‘람사르습지’로 인정돼 세계화로 나갔다. 24일에는 문경시가 ‘람사르습지도시’가 됐다. 습지로서 써야할 월계관은 모두 쓰게 됐다.
‘문경돌리네습지’에는 세계 돌리네습지 6개 중에 유일하게 750평의 논농사를 짓고 있다. 전통방식으로 초등학생들이 와서 손으로 모심고, 낫으로 벼 베고, 도리깨로 탈곡한다. 그러면 체험한 학생들에게 나락을 찧어 쌀 2kg씩 보내준다. 가을철에는 학생들이 와서 메뚜기체험도 한다.
처음 조사할 때는 이곳에 생물 다양성이 731종이었었는데, 땅을 사들이고 농약을 안 썼더니, 2020년 조사한 걸로 보면 천연기념물,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 등을 포함해 932종이나 됐다. 논농사를 지으니까 지금 멸종위기종으로 국외반출 승인대상인 물방개도 나온다.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