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렵지 않은 시대를 찾기가 더 어렵겠지만 요즘 한국 경제는 정말 어려운 것 같다. 경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입장에서도 수입이 줄어든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고 이에 따라 돈이 돌지 않는 악순환이 피부로 체감된다. 상업지구에는 공실이 넘쳐난다. 취업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노동 가치가 하락하다 보니, 성실히 일해서 돈을 벌기보단 부동산 ‘영끌’과 가상화폐 ‘존버’로 인생역전을 노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더 잘 팔리는 상품도 있다. 이른바 ‘가성비’ 상품들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론 사태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던 지난 2010년, 롯데마트가 오천 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출시했던 ‘통큰치킨’이 대표적이다. ‘통큰치킨’은 시중 치킨 프랜차이즈 치킨 대비 절반 이상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지만, 시장 질서를 교란한다는 항의 또한 만만하지 않았고 결국 출시 일 주일 만에 사라지고 만다.
‘통큰치킨’이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한국 경제가 휘청이던 2010년의 풍경을 대표한다면, 2023년의 경제위기를 상징하는 상품은 ‘오천 원 후리스’일 것이다. ‘후리스’란 양털처럼 보송보송하게 처리한 합성섬유와 그것으로 만든 의류를 가리키는 ‘플리스(fleece)’의 일본식 발음이다. 촉감이 부드럽고 보온성이 뛰어나 수 년 전부터 겨울 의류로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오천 원 후리스’는 기성 의류 브랜드가 아닌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제품이다.
필자도 두 벌의 플리스 재킷을 가지고 있는데, 둘 중 최근에 산 것은 한 스파(SPA) 브랜드에서 2만 원에 구입했다. 2만 원짜리라고 해서 결코 품질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보다 네 배 더 저렴한 다이소의 ‘오천 원 후리스’ 또한 원단은 조금 얇을지언정 일상복으로 입기에 충분해 보인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다이소에서 옷을 사 입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오천 원 후리스’를 필두로 ‘가성비’ 의류가 새로운 트렌드가 되어 가는 모양새다.
‘통큰치킨’ 때와는 달리 ‘오천 원 후리스’가 패션산업의 시장 질서를 교란한다는 비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가성비’라는 절대적 가치 앞에서 다른 논리들이 힘을 쓰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람들이 체감하기에 2010년보다도 2023년의 경제 상황이 더더욱 어려운 것일까? 걱정이 크다.
‘오천 원 후리스’의 품질이나 ‘가성비’도 중요하지만, 함께 이야기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너무 짧아진 옷의 수명’이다. 대형 패션 브랜드들이 매년 유행시키는 옷들이 너무 쉽게 버려지고, 이로 인한 환경 파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심지어 스파 브랜드 의류를 대량으로 구입해서 한두 번 입고 더러워지면 세탁하는 대신 버려버리면 된다는 내용의 글이 자랑스럽게 온라인에 게시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저렴한 물건을 상대적으로 더 쉽게 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 구입해서 필요에 맞게 입는다면 세상에 싸서 나쁜 옷은 없다. 저렴한 옷을 쓰레기로 만드는 유행과 소비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