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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풍경

등록일 2023-06-18 18:28 게재일 2023-06-1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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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아주 오랜만에 결혼식에 참석했다. 나는 장례식에는 자주 가는 편이지만, 결혼식에는 부조(扶助)만 하고 대개는 아니 간다. 쓸쓸하고 슬픈 장소에는 사람이 많이 갈수록 좋지만, 환하고 행복한 자리는 조금 허전해도 견딜 만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내가 결혼식에 간 이유는 나의 둘째 아들이 혼인(婚姻)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혼주(婚主) 자격으로 신랑과 신부를 위한 덕담(德談)을 하기로 했기에, 더욱 결혼식에 가야 했다. 붐비는 토요일 오후 서울 내부순환도로와 강변북로를 거쳐 강동(江東)의 결혼식장에 도달한 시각은 오후 2시 15분 무렵. 예식은 오후 3시 30분부터 시작한다. 여유 있게 도착한 나와 동생 둘, 그리고 조카 둘이 호기롭게 35층 예식장으로 들어선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고소 공포증에 시달렸다. 어디든 높은 곳에 올라가면 간담이 서늘해져서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지만 35층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풍광(風光)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신선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필시 내 아들의 결혼식이 진행될 고층 건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져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부터 무슨 말을 할까, 하고 재삼재사 생각하곤 했는데, 첫머리를 어떻게 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식을 앞두고 수많은 하객(賀客)이 찾아들고,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덕담 걱정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그래, 닥쳐서 생각하면 되겠지, 하고 자신의 내면을 추스른다.

활달한 성격의 신부와 씩씩한 거동의 신랑이 잘 어울린다. 젊음의 약동(躍動)을 눈앞에서 확인하는 일은 언제나 아름답고 유쾌한 노릇이다. 36년 전에 나도 저런 모습이었던가, 잠시 상념에 잠긴다. 그때 내 지도교수께서 주례하셨는데, 머리털 나고 그렇게 넘치는 칭찬을 들었던 기억은 없다. 얼마 전에 세상을 버리신 선생님의 명복을 새삼 빈다.

이윽고 내가 말할 차례가 온다. 높은 단상에 올라가 신랑과 신부의 얼굴을 보면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린 시절 작은아들이 보여준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하고, 내게 경험한 낯설고 아픈 추억을 잠시 더듬는다. 고집스럽고 공부하기 싫어하고, 삶을 향한 애착이 많지 않았던 아들이 어느새 장성하여 일가(一家)를 이룰 태세라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하다.

며느리 되겠다고 자청한 젊은 신부 역시 환한 얼굴로 내 덕담에 귀를 기울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4~5분 정도 말하겠다고 해놓고, 7분 넘게 너스레를 떨었나 보다. 필시 제 이야기에 홀로 도취하여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모양이다. 장남(長男)을 미뤄두고 차남이 먼저 혼인하게 되었기로 적잖은 인사를 받는다. 큰아이 결혼식에서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생각한다.

멀리 울산과 대구, 청주에서 올라온 벗들이 고마웠다. 이렇게 인생의 중요한 장면 하나가 스르륵 지나간다. 언젠가 세월이 흐르고 흘러 작은아들 내외가 오늘을 돌이켜보면서 무엇을 생각할 것인지, 궁금하다. ‘얘들아, 행복하고 멋지게 살아가렴! 뒤돌아보지 말고, 당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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