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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총선승패 가를 여당대표, ‘TK黨心’이 결정

국민의힘 3·8 전당대회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당권레이스가 보수의 상징이자 최대 텃밭인 대구경북(TK)에 집중되고 있다. 당 대표를 100%로 당원투표로 뽑기 때문에 책임당원 비중이 높은 TK당심에 당권주자들 모두 올인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국민의힘 당권주자인 조경태 의원과 윤상현 의원은 지난 4일과 5일 각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아 당대표 출마를 공식화했다. 김기현 의원도 오는 14일 박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할 예정이다. TK당심을 잡기 위해서는 ‘보수적통’이라는 이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2일에는 당권주자인 윤상현·안철수 의원과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부위원장이 이 지역 신년교례회에 참석해 하나같이 TK와의 인연을 내세우며 자신들이 차기 총선을 이끌 적임자라고 강조했다.차기 여당대표는 대구경북 당원들이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내 경선에서 늘 그래왔기 때문이다. 이준석 전 대표의 경우도 2년 전 6·11 전당대회에서 TK지역 1위를 차지한 후 지지세를 확산시켜 결국 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번 전당대회 투표권이 있는 책임당원 32만9천여 명 중 3분의 1에 육박하는 10만여 명이 이 지역민이다. 특히 TK당원들은 당에 대한 충성도가 강해 투표율도 타 지역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편이다.국민의힘 차기 당대표의 권한은 총선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진다. 그러나 TK지역이 여당의 최대주주이면서도 당권 도전자가 한 명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당권주자가 없다는 사실은 내년 총선 공천과정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변방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3·8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국민의힘 대표는 사실상 내년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하며 선거 전반을 진두지휘한다. 당 대표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내년 총선의 승패가 좌우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만약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에 패배할 경우, 그날부터 식물정부로 전락한다. TK지역 당원들은 내년 총선의 중요성을 의식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당 대표를 선택해야 한다.

2023-01-05

경북 농식품 수출 1조… 지속가능 기반 확충을

지난해 경북지역 농식품 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다. 경북도에 따르면 지난해 경북지역 농식품 수출액은 8억2천472억달러(약 1조656억원)로 전년 동기보다 29.3%가 증가했다. 수출국별로는 태국이 전년보다 107%, 베트남은 50.7%가 각각 증가했고, 대만과 홍콩, 일본 등지 수출도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경북도가 해외수출시장 다변화를 꾀하면서 동남아지역 수출액은 2012년 2천900만달러이던 것이 지난해는 1억2천900달러로 약 4배가 증가했다. 품목별로는 신선식품인 복숭아, 사과, 딸기, 팽이버섯 등이 증가했고 가공식품들도 약간씩 증가했다. 코로나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경제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도 경북의 농식품 수출이 증가한 것은 수출지역 다변화 등 경북도의 수출 전략이 잘 적중했고, 농민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우리나라 무역수지가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가운데 경북 농식품 수출이 약진을 한 것은 나름의 의미있는 결과로 보아야 한다.경북은 전국 지자체 가운데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지고 농산물 생산을 주도하고 있다. 포도의 경우 전국 재배면적의 54%, 생산량의 86%를 점유하고 있다. 이번 농식품 수출 1조원 달성은 경북의 농산물 수출기반이 비교적 탄탄하다는 것을 입증한 좋은 예시라 할 수 있다.문제는 지금과 같은 수출이 지속가능하느냐는 것이다. 동남아 국가들이 경제성장에 힘입어 우리 농산물의 경우 수입 수요가 늘고는 있지만 지속가능 여부는 우리의 준비에 달렸다.더 많은 농가의 수출 참여가 필요하고 수출생산 기반강화와 행정당국의 수출지원책 확충에도 더 많은 투자가 있어야 한다. 농식품 수출은 까다로운 검역기준과 장거리 수송에 따른 생산비 부담 등 늘 걱정거리가 따르기 마련이다.농산물의 안정적 수출은 국내 농산물 수급의 안정화와 농가소득 증대에도 많은 기여를 한다. 1조 돌파를 계기로 당국은 산학관연의 유기적 협력체를 잘 활용해 경북의 농식품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데 더한층 분발해 주기를 바란다.

2023-01-05

이젠 병폐 청산이다

홍석봉 대구지사장 새해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유에스뉴스앤월드리포트(USNWR)가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순위 6위에 올려놓았다. 한국 앞에 선 나라는 미국, 중국, 러시아, 독일, 영국뿐이다. 프랑스와 일본이 우리나라 뒤에 자리했다. 한국이 세계 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일본을 뛰어넘었다. 반도체와 조선, 배터리 등 분야는 세계 최고다. BTS와 영화 등 K컬처는 세계를 호령한다. 체육 부문에서도 손흥민 등 세계적인 선수들을 배출했다. 우리만 몰랐지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강대국으로 우뚝 섰다.이처럼 대단한 나라지만 내부적으로는 4류 정치에 발목을 잡혀 허우적댄다. 김정은은 사흘이 멀다하고 미사일을 쏘아대며 국가안보를 위협한다. 사회 곳곳이 종북 좌파세력에 좀 먹고 있다. 정치에서 파생된 증오와 분노를 자양분 삼아 몸체를 불린 이념과 지역, 세대 갈등의 고질병이 우리를 옥죈다.지난 연말 우리는 막장 정치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도했다. 무리의 이익을 위해서는 정의와 원칙도 내팽개쳤다.여도 야도 모두 한통속이었다. 여당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경선룰까지 바꿔버리는 횡포를 자행했다. 국민과 당을 위한 여론 반영 규정을 변경했다. 169석 머릿수를 앞세운 야당은 전횡을 일삼았다. 주요 입법을 미루는 직무유기도 마다않았다. 죄를 범한 동료 국회의원의 체포를 막았다. 당 대표가 개발비리의 몸통으로 드러나 수사망이 좁혀들자 이를 방해했다. 여야가 서로 이해만 앞세우고 상대방을 공격한다. 서로 헐뜯다가 공멸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정치판의 대결은 곧바로 진보와 보수의 이념 대결로 이어졌다. 광화문 광장은 주말마다 좌우로 나눠 총칼없는 전쟁터가 됐다. 진영 대결로 날을 새운다. “정치성향이 다르면 밥도 같이 먹기 싫다”고 할 정도다. 정치 양극화가 국민을 반으로 갈라놓았다.정치권에서 선거제도 개혁이 이슈다. 이념과 지역 갈등의 뿌리가 된 소선거구제를 폐기하고 중대선거구제로 가자는 것이다. 중대선거구제는 총선때마다 이슈였지만 ‘구호’에 그쳤다. 반대가 만만찮지만 바꿔야 한다. 망국병의 원인이 된 선거구제 개편을 외면한다면 국회는 아예 문 닫아야 한다.일부 노동 및 시민단체들의 불법행위와 일탈은 국민 눈 밖에 났다. 약자를 위한 권리 주장과 행동이 코스프레가 되고 사회의 암덩어리가 됐다.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했다. 민주노총과 화물노조가 뭇매를 맞았다. 장애인연대의 지하철 시위에도 가차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 첫 국무회의에서 우리 사회의 각종 병폐를 바로잡겠다고 선언했다.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각분야의 곪은 곳을 도려내야 한다. 정부가 강제할 수는 없는 부문이 많다. 각각의 영역에서 서로의 잘못을 바뤄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계묘년 토끼해다. 한국의 빛나는 성취를 갉아먹는 사회 병폐를 하나씩 없애 나가야 한다. 유지경성(有志竟成)이라고 했다. 이루고자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말이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2023-01-05

교육과 사회의 불일치 해법 제시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졸업까지 12년 동안 학교에서 나를 알아가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지식을 쌓아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학교교육은 우리 아이들에게 미래사회를 살아갈 힘을 제대로 길러주고 있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교육전문가들은 교육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을 끊임없이 제안하고 있다.그러나 대부분 철학적으로 거대한 담론 수준의 주장이거나 문제 제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라는 알맹이가 빠져 있다.그래서일까 이혜정 소장의 ‘대한민국의 교육을 바꾸려면 시험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선명하고 명확하게 다가온다.이혜정 소장은 우리나라는 압축 성장기를 거치면서 학생 각자의 비판적·창의적 사고를 기르기보다 선진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흡수하는 공부에 길들여졌다고 현재의 교육을 평가했다.이러한 교육으로는 자동화와 인공지능(AI) 시대를 대비한 생존 역량을 기르기엔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또한, 우리 교육은 아직 학생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주로 평가하고 있는데 반해 사회는 ‘알고 있는 지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중시한다.학생 각자의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정답 맞히기와 반복적인 문제 풀이 속도전이 펼쳐지고 있다고 진단하며 이로 인해‘교육과 사회의 심각한 불일치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이혜정 소장은 교육을 바꾸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평가의 변화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롤모델로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를 소개한다. IB는 국제 인증 학교 교육 프로그램으로, 150여개국 5천500여개 이상의 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다. 역량 중심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개념 이해 및 탐구학습 활동을 통한 학습자의 자기주도적 성장을 추구하는 학교 교육 체제이다. 우리나라도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 역량 중심의 교육을 도입했다.이는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세계 각국의 교육 방향과 일치하며 IB가 추구하는 교육 비전과도 일치한다. 그런데 교육과정이 실제로 구현되는 학교 교육현장에서는 역량 중심 교육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가장 큰 이유는 수업과 평가의 불일치 때문이다. 즉, 수업은 개념 중심, 이해 중심으로 바뀌었는데 평가는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평가 변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 때문일 것이다. 그 해답은 IB에서 찾을 수 있다. IB가 50여년간 수많은 국가에서 도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이다.수업과 평가가 일치하고 피드백이 일상이 되고 수업에서 학생들의 성장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강력한 힘이다. 수많은 국가에서 다양한 언어로 운영되는 IB가 유수 대학의 입학자료로 공신력있게 활용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대구교육청은 공교육 혁신의 모델로 2019년부터 IB프로그램을 도입하여 IB 월드스쿨 14교, 후보학교 13교, 기초학교 61교로 해를 거듭할수록 IB 교육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결과’보다는 ‘과정’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집어넣는’교육이 아니라 ‘꺼내는’교육으로, 그리하여 ‘지식 소비자’가 아닌 ‘지식 생산자’를 기르는 교육으로 대구교육은 미래로 한 발 더 다가가고 있다.

2023-01-05

첫 1박 가족 나들이

강길수 수필가 첫 1박 가족 나들이를 하였다. 우리 포항 식구의 1박 2일 모임이다. 당일 모임은 많이 했지만, 바닷가 펜션에서 하룻밤 자면서 가진 나들이는 처음이다.두 아들이 비교적 늦은 입지(立志)의 중, 후반기에 결혼했었다. 이에, 손주 둘도 늦게 보게 되었다. 올해 큰손주가 다섯 살, 작은 손주가 세 살이다. 재작년 초부터 불어닥친 코로나19 사태는, 가족 전체가 한자리에 못 모이게 했다. 명절도 각 집으로 나누어 보냈고, 각종 모임도 중단되어 현재까지 지속되는 것도 있다.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가까운 해외라도 온 가족여행을 다녀오게 했을 터다. 저 지난주 내 생일 축하 식사 모임에서, 가까운 야외에 펜션을 빌려 우리 가족 1박 2일 나들이를 하자고 갑자기 의견을 모았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지난 주말 온 가족이 바닷가 펜션에 모이게 되었다.우선, 아내와 두 며느리가 모임을 더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식사 일체는 펜션에 맡기고, 약간의 간식과 큰아들 생일 축하 케이크 정도만 큰 며느리가 준비했다. 비록 짧은 이틀일망정 ‘무얼 장만해 먹어야 하나’하는 고민에서 해방되어 행복해 보였다. ‘어머님은 준비에 전혀 신경 쓰지 마시라’는 며느리들의 주문도 있었다. 그래도 아내는, 나름 윷 등 이것저것 준비하는 눈치였다.이 기회에, 우리 신앙의 4대 교리를 가족이 되짚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참조하여 A4 한 장짜리 교재를 만들었다. 저녁 식사 후 손주 둘은 저들끼리 신나게 노는 시간에, 대화식 4대 교리를 주고받았다. 또, 인생관과 사람 사는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가정과 친족 이야기, 부모님 유산 이야기 등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가족 담소를 나누었다.명절 때 고향에서 아들, 며느리, 손주들과 한집에서 하루 묵은 적은 있다. 그러나, 놀고 쉬기 위해 숙소를 빌려 1박을 한 것은 처음이다. 조상께 제사를 올리기 위한 모임과 쉬고 놀기 위한 모임의 차이가 엿보였다. 며느리들과 아내의 표정과 언행에서 어떤 해방감(解放感)도 느껴졌다. 하긴, 지나면 바로 돌아오는 끼니 고민에서 두 끼만이라도 해방되었으니 홀가분할 거다.잠시, 우리 가정 식구의 구성을 따져 본다. 우리 부부, 두 아들 부부와 손자 둘이다. 합하면 어른 6명, 아이 2명이다. 우리 집 출산율은 1.0이다. 하지만 두 아들 부부 네 명이 아이 둘을 두었으니, 식구는 반이 줄었다. 아내가 두 며느리에게, 둘째를 가지는 게 어떠냐고 권한 적이 몇 번 있다. 며느리들은 경제사회환경이 하나 키우기도 벅차단다. 나라의 현실과 우리 집도 같다. 나는 앞날을 볼 때, 4 촌간인 두 손주가 친형제처럼 살도록 키워야 한다고 아들 며느리들에게 가끔 말한다.기후변화에다 해수면상승, 국제적 정치, 경제 사정 악화, 자국 우선주의 등 산적한 지구촌 난제들이 떠오른다. 난제들이 우리 미래 특히, 손주들의 앞날을 불안케 한다는 상념을 떨칠 수 없다.첫 1박 가족 나들이는, 우리의 현주소를 또 바라보게 하였다.

2023-01-05

토끼의 지혜로움으로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癸卯年)이 밝았다. ‘토끼’하면 보름달 속 계수나무 그늘에서 두 마리가 정답게 마주 보며 절굿공이로 무병장수의 선약(仙藥)을 빻고 있는 설화가 떠오른다. 집토끼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며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이고, 산토끼는 총명하고 재빠른 몸놀림으로 천적들이 우글대는 숲속에서도 잘 살아왔으니 올해는 토끼에게 배워보자.토끼는 또 ‘꾀보’라는 애칭이 있고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귀염둥이다. 그 순박한 모습에서 평화로운 세상을 그리며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유난히 심했던 재난과 재해의 기억들이 많다. 영덕과 울진 지역의 20년 만의 대형 산불을 비롯하여 수도권에 퍼부은 80년 만의 폭우, 또 가을에 불어닥친 태풍 힌남노로 인한 포항지역의 홍수와 인명피해 등 자연재해가 컸고, 코로나19는 3년째 여러 변이를 만들며 757일간의 거리 두기 해제를 비웃듯 감염자 1천만 명을 돌파했다. 10월 말 핼로윈 축제에 밀려든 인파가 골목에 넘쳐 158명의 사망자를 낸 이태원 참사는 국민의 마음을 울렸고, 3월 대선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그 여파로 여의도 들판에는 혼탁한 바람이 불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이 한바탕 휩쓸고 가는 어려움 속에서 자랑스러운 소식도 들려왔다. 뜨거운 나라 카타르의 월드컵에서 국민들의 응원으로 16강 대열에 섰으며, 누리호의 2차 발사 성공으로 우주 강국 7위에 올랐고, 이어 연말에는 다누리 우주선이 달 궤도에 안착하여 달나라 토끼가 보고 있을 지구의 모습을 보내왔다.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호랑이해였다.이강덕 포항시장은 신년 시정 방향을 ‘창의·융합·혁신’으로 표방하며 ‘안전도시 포항, 흔들림 없는 경쟁력, 사람 중심의 친환경 도시’ 등을 실현하기 위해 힘차게 달려가겠다고 밝혔다.우리는 흔히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라는 말을 한다. 따로 뛰어다니는 두 마리를 한꺼번에 잡는 일이 어렵기도 하지만 잘하면 두 마리를 동시에 잡는 일거양득의 결과를 얻기도 하며, 또 계획 없이 함부로 잡으려다가 한 마리도 못 잡는다는 의미도 있으려니 올해는 국가는 견제와 타협, 사회는 성장과 복지, 국민은 일과 생활 등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별주부전’을 보면 토끼의 총명한 꾀가 대단하다. 병든 용왕이 토끼의 간을 먹어야 낫는다고 해서 자라가 육지로 올라가 토끼를 꼬셔 데려왔는데, 간을 내놓으라고 하니 ‘청산유수 맑은 물에 씻어 감추어 두었다’고 하여 다시 뭍으로 돌아와서는 ‘간 빼놓고 다니는 놈이 어디 있냐’고 하며 숲속으로 달아났다는 판소리 ‘수궁가’를 듣노라면 부귀영화를 탐낸 것에 후회하며 현명하게 빠져나온 토끼가 기특하다.올해는 국내외 정세를 보아 어느 때보다 위기를 헤쳐나가야 할 지혜로움이 필요한 것 같다. 큰 귀로 잘 듣고 퉁방울눈으로 사방을 살피며 뒷발로 힘차게 언덕을 뛰어오르는 토끼의 영특함을 배우자. 국내외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지혜를 발휘하여 풍요로운 한 해가 되길 바란다.

2023-01-05

범죄자 사진 공개

홍석봉 정치에디터 앞으로 강력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들의 운전면허증 등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는 모습은 없어질 전망이다.강력범죄자들의 신상 공개 때마다 심하게 보정됐거나 옛날 사진이 공개돼 실효성 논란이 일었다. 얼마 전 ‘택시기사·동거녀 살해범’의 신상을 공개하면서 실물과 다른 모습이 문제가 됐다. 이에 신상 공개 시 30일 이내의 사진을 공개토록 하는 법안이 나왔다.송언석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3일 특정강력범죄 혹은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할 경우 30일 이내의 최근 모습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의 관련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개정안이 통과되면 범죄 피의자 얼굴을 대중들이 식별하기 쉬워지고 제도의 실효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궁극적으로는 범죄로부터 국민의 안전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현행법에는 특정강력범죄나 성폭력 범죄 피의자는 얼굴·성명·나이 등 신상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공개되는 피의자 모습은 과거 사진이 많았다. 현재 모습과 달라 잘 알아볼 수 없다는 비판이 일었다. 피의자가 최근 사진 공개를 원치 않으면 방법이 없었다. 신상정보 공개의 원 취지인 국민의 알권리와 피의자의 재범 방지 등 효과를 달성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이제 관련법 개정으로 범죄자의 증명사진을 볼 일은 없어졌다.신상 및 사진 공개는 법 제정 당시 논란이 있었지만 잠재적 범죄예방 효과가 컸다. 국민의 알 권리와 공익적 가치를 위해 필요성이 높아졌다. 범죄 피의자에게 전자발찌를 채우고 화학적 거세까지 이뤄지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피의자의 신상 공개와 사진 공개라는 인격 모멸까지 더해졌다. 흉악 범죄는 우리 사회에서 이제 더이상 발붙이지 못하게 됐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1-04

부동산규제 대폭 해제… 대구 분양시장 풀릴까

정부가 서울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모두 부동산 규제지역에서 해제하기로 했다. 지난해 세 차례 부동산 규제 완화책을 내놓은 정부가 이번에 서울까지 확대한 것은 부동산 거래절벽이 그만큼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부동산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까지 나쁜 영향을 미치는 사태를 막고자 하는 정책 의도로 풀이된다. 규제지역에서 해제되면 세금, 대출, 청약, 전매제한 등 각종 규제가 완화돼 주택을 사고팔기가 수월해진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수도권 중심으로 짜이면서 꽁꽁 얼어붙은 지역의 부동산시장에 얼마나 영향을 줄 지는 미지수다.대구와 경북 등은 정부의 이번 조치와 상관없이 각종 부동산 규제가 이미 많이 풀려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대구경북 부동산시장은 빙하기에 비견될 정도로 꽁꽁 얼어붙어 있다. 1만가구 이상의 미분양이 발생했으며, 이런 가운데 3만호 가량이 새로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 집값 폭락을 예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다만 정부의 이번 조치가 침체된 지방의 부동산시장에 심리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줄 수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중 광역시에 대한 분양권 전매를 3년에서 6개월로 완화한 것은 그나마 신규 분양시장의 숨통을 틔워 준 조치로 풀이된다.어쨌거나 정부의 이번 조치로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위한 기반은 어느 정도는 마련됐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부동산시장은 문재인 정부의 규제 일변 정책에 고금리 부담이 겹쳐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문 정부 이전 수준으로 규제를 풀었지만 높은 금리 부담이 부동산 거래를 막고 있는 것이다.전문가들은 부동산 거래를 막는 고금리 부분에 대한 해소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집을 새로 사는 사람 대부분이 대출을 받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서민층일수록 더 그렇다.고금리 문제는 미국의 금리 정책과 맞물려 쉽지가 않다. 하지만 부동산 활로를 틔는 중요한 요소임을 감안해 묘안을 찾아야 한다. 이번 조치를 효과적으로 관리해 집값 폭락이 빚는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2023-01-04

지역은 대학부터 살려야 한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대학들이 새해 벽두부터 긴장을 탄다. 신입생 모집이 예전 같지 않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이미 예고되었지만 누구에게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 벚꽃 피는 순서로 문을 닫을 것이라는 경고등도 들어와 있었다. 대학들은 사실상 대안을 준비하지 않은채 바라만 보고 있다. 교과 과정뿐 아니라 행정 시스템에서도 교육부의 지휘 감독을 받는 입장에서 특별히 손을 쓸 겨를도 없다. 수년째 동결된 등록금으로는 학교 운영도 버거워 정부 지원에 목을 매는 형편이다. 학령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신입생 정원도 채우기 힘들게 되었다. 경북은 어떤가. 이를 어찌해야 하나. 대학의 위기지만, 대학만의 책임일까.지역에 대학들이 있으면 지역에는 무엇이 좋을까. 대학생들이 넘실대는 지역에는 우선 젊음이 넘친다. 청년문화가 지역의 역동성을 이끌어 싱싱한 분위기가 생긴다. 인구 고령화로 지역 소멸의 위기가 다가온다면, 지역은 대학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대학생들에게 지역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며 일하고 누릴만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졸업과 동시에 지역을 떠난다는 대학생들에게 물어보자. 4년 이상 머물렀던 곳을 왜 떠나려 하는지. 일자리가 없고 재미가 없으니 떠나지 않을까. 기회가 충분하지 않고 미래를 담보할 비전을 발견할 수 없다. 지역에 독특하고 분명한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데, 청년들이 머물러 기다릴 까닭이 없다. 정주여건으로 보아도 문화가 척박하여 재미가 없다. 재학 중에도 주말이면 지역에서 즐기기보다 서울로 달린다. 지역은 젊은이들이 머무르며 누릴만한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대학도 문제다. 지역을 소재지로 삼은 것 외에 대학이 지역과 학생들을 함께 생각하며 제공한 협력수단은 무엇인가. 학생들이 지역에서 공부하는 동안 지역과 함께 호흡하면서 배우고 익히는 기회가 드물다. 대학에서 갈고 닦는 전문역량은 재학 중에도 얼마든지 지역에서 발휘하고 기여할 가치가 있다. 지역의 기업들과 단체들이 지역 대학생을 인턴으로 기용하여 경영일선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대학생들은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여 열심히 일할 터이고 기업에는 청년들이 불러올 젊은 기운으로 활기가 돌지 않을까. 더이상 강의실에서만 배우지 않는다. 현장에서 배우고 일하며 익히는 기회를 지역의 대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지역과 대학이 함께 호흡하며 상생과 협력의 기운을 만들어야 한다.교육부도 문제다. 지역 대학들이 지역과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지역에 필요한 교과과정과 협력체계를 대학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정부는 대학들이 지역사정에 맞는 발전대안을 마련해 가도록 지원해야 한다. 대학은 자율과 책임을 확보하여 스스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해 일어나야 한다.필요한 재정은 일부 정부가 지원하되 대학이 자구책을 도모할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나라의 고등교육은 그야말로 높은 수준에서 돌파구가 모색돼야 한다. 상상과 창의로 빛나는 열매를 일구어내는 지역대학 문화가 꽃피어야 한다. 교육부의 방침과 지도에 자율성이 꺾이는 대학은 부끄럽지 않은가. 대학이 살아야 지역이 살고, 대학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3-01-04

대구·포항 CES 참관하며 세계시장 노린다

대구시와 포항시, 포스텍(포항공대)이 대규모 참관단을 꾸려 오늘(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하는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 박람회인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 2023’에 참가한다. 세계 각국의 가전과 정보통신기술(ICT) 동향을 점검하고 시너지를 내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오는 8일까지 열리는 CES는 미국가전제품제조업자협회(미국 600여 소비재 전자산업 종사업체들의 모임)가 주최하는 세계 3대 ICT박람회 중의 하나다.대구시는 박람회장에 대구공동관을 개설, 그동안 대구테크노파크와 로봇기업진흥협회가 미래산업 육성 지원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성과를 세계 시장에 선보인다. 대구공동관에는 ICT, 소프트웨어, 로봇산업 관련 기업 20개사가 입주해 다양한 혁신제품을 전시한다. 대구시 참관단에는 대구4차산업청년체험단 30명도 포함됐으며, 이들은 홍준표 대구시장 일행과 같이 실리콘밸리를 방문하는 기회를 가진다. 포항시는 올해 처음으로 경북관·포스텍관과 함께 포항관 부스를 차렸다. 포항관에는 30여 개의 기업이 참가해 신제품과 기술을 선보이며, 해외시장 판로 개척에 나선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CES 참관후 실리콘밸리에 있는 애플 본사도 방문, 애플 혁신센터 포항유치 등을 협의할 예정이어서 성과가 기대된다. 포스텍과 포스코도 이번 CES에 공동부스를 마련했다. 포스텍은 코로나19 기간 온라인 수업만 한 2020학번 학부생 181명 전원에게 항공편과 숙소, 체류비 전액을 지원해 CES를 참관시킨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신기술을 경험시켜 전공 공부에 활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다.CES 행사는 매년 연초에 열리기 때문에 ICT 분야 경영인들에게는 최신 제품 트렌드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원희룡 국토부장관을 비롯해 재계 총수들이 대거 참가한다. 박람회장에는 국제적인 기술력과 공신력을 인증받은 수많은 ‘CES 혁신상’ 수상 제품과 기술이 전시되는 만큼 대구시와 포항시, 그리고 참가기업, 학생들이 가전·IT 분야에 대한 시야를 한껏 넓히는 기회를 갖길 바란다.

2023-01-04

추워지는 날씨, 내 몸 같지 않은 손과 발

김영준 포항 약전부부한의원장 지난 몇 년간 코로나로 인해 함부로 집 안에만 있어서 잊고 있었을까. 올해는 유독 겨울이 추운 느낌이다. 이렇게 찬 바람이 쌩쌩 불기 시작하고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워질 때가 되면 환자들이 이야기하는 단골 증상이 있다. ‘손과 발이 시리고 저리다’라는 것이다. 환자들은 손과 발의 감각 이상을 여러 가지 표현으로 호소하게 된다. ‘저리다’ ‘시리다’ 또는 ‘발에 고춧가루를 뿌린 것 같다’ ‘아프다’ ‘내 발 같지 않다’등으로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증상을 ‘수족냉증’ ‘수족비증’이라고 한다.‘불통즉통(不通則痛·흐름이 통하지 않으면 아프게 된다)’이라고 하였다. 날이 추워지니 몸이 움츠러들게 되고 이로 인해 혈관 또는 신경이 눌리면서 증상이 심해진다. 이런 손발의 감각 이상의 주된 원인이 혈액 순환의 문제로 발생하는 것인지 신경이 눌리면서 발생하는 것인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먼저 증상이 발생할 때 실제 손과 발이 차가워 지면서 시린 증상이 나타나고, 또한 손과 발 양쪽으로 사지 모두에서 나타난다면 혈액 순환의 문제로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평소 추위를 많이 타며 시린 근육통을 많이 느끼고 마른 편에 속한다면 체질적으로 수족 냉증이 생기기 쉽다. 여성의 경우는 이런 경우가 더 많은데 위 증상과 더불어 생리통, 아랫배가 항상 찬 경우, 어지럼증 등이 있는 경우는 단순히 손발의 증상에만 집중하는 것보다는 몸 전체의 혈액 순환이 고려되어야 한다.몸 전체의 혈액 순환이 저하되는 경우 반신욕, 족욕 등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것이 도움이 되며 외출 시에 외투, 장갑, 목도리 등을 챙겨 방한에 더 유의하는 것이 좋다. 요즘처럼 날씨가 추울 때에는 찬 음식이나 찬물을 많이 마시는 것도 체온을 유지하는데 방해가 되므로 되도록 따뜻한 물이나 차를 마시는 것이 도움이 된다.한쪽 손 또는 발에만 증상이 나타나는 때에는 주위의 구조적 질환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협착증’, ‘추간판탈출증’, ‘손목터널증후군’, ‘흉곽터널증후군’ 등 손, 발로 주행하는 신경이 목, 허리, 골반, 어깨, 손목 등에서 압박되어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질환들은 평소 직업적으로 많이 하는 동작이나 자세, 습관에 의해 생기는 경우가 많으므로 악화 요인이 어디에 있는지 고려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좋지 않은 자세와 습관이 유지될 경우 치료가 잘 되었다고 하더라도 증상이 재발하기 쉽기 때문이다.한의학적 치료에는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치료가 많다. 한의학에서는 몸이 차고 추위를 느끼는 것이 중요한 진단 요소가 되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순환시켜주는 한약재를 처방하는 것이 중요한 처방 포인트가 된다. 또한 근골격계의 치료에도 경피경근온열요법, 경피적외선조사법, 뜸치료 등 온열요법을 많이 사용한다. 날씨가 추워져서 더 심해지는 수족냉증, 수족비증에 이러한 한열 개념을 고려한 한의학 치료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023-01-04

새해에 다시 읽는 ‘난쏘공’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거리두기 없는 3년 만의 연말로 들떠있는 작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 선생이 세상을 떠나셨다. ‘난쏘공’은 교과서에 수록될 만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지만, 1970년대 산업화 시대 노동자 계급의 소외를 다룬 작품으로 잘못 알려진 감이 있다. 백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지만, ‘난쏘공’에 깃든 작가의 시각은 아직 제대로 공유되지 못했다.‘난쏘공’은 대기업과 법이 지배하는 현실에 노동이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소설의 후반부에 노동자가 칼로 대기업 회장을 찌르고 재판을 받는 장면은 법이 지배하는 현실에 대한 격렬한 저항의 메시지다. 전직 대통령의 사면과 수십억의 벌금 면제 과정을 보고 있으니, 1980년대 후반 탈옥수에 의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극단적 선택밖에는 답이 없는 것일까?새해에는 ‘난쏘공’의 주인공이 아닌 ‘신애’에게 주목하고 싶다. 신애는 ‘난쏘공’에서 난장이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나이에게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인물이지만, 속편 ‘시간여행’에서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쉰두 평짜리 아파트로 이사했으며, 냉방기를 사다 놓을 정도로 경제적 풍요를 이루었다. 작가 조세희는 신애라는 인물을 통해 ‘나이-듦’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더 많은 자본을 획득하는 것이 ‘나이-듦’의 전부가 되는 것과 국가가 공정 혹은 합법이란 이름으로 합리화하려는 것의 정체를 인식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겠다.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처럼 긴밀하게 연결된다. 작가는 ‘행복은 마음의 상태이기 때문에 달수도 없는 것이다. 어른들은 그것을 달아 나타내기 위해 지수화의 기술 개발을 꾀했고 결국은 마음의 상태를 몸무게처럼 달아 킬로그램으로 적고 있다. 그래서 난장이의 이야기를 썼다.’고 말한 바 있다.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비교하는 우리의 마음을 새해에는 조금 더 들여다보고 개선할 방법을 찾아야겠다. 거창한 이념이나 목표가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과 더 많이 만나고 이야기하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정신 건강이 안 좋고 무엇인가에 쫓기듯 생활하는 대학생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조세희 작가가 ‘난쏘공’에서 읽어 낸 대한민국의 현실이 시간이 지나며 극단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 같다.이런 의미에서 올해에는 자본을 얻는데 별 도움이 안 되더라도, 조세희 선생의 ‘난쏘공’과 같은 고전을 좀 더 읽고, 세상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길 기원한다. 이것이 조세희 선생이 ‘난쏘공’ 이후 소설 창작을 중단하고 서북 탄광에서 광부들의 사진을 찍어 기록해둔 이유일 것이다. 세상의 변화는 눈부시지만, 거기에는 언제나 그늘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그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넓고 깊어지고 있다. 빛 속으로 들어가려 아등바등하기보다 그늘진 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쉬며 다른 내일을 기약하는 2023년이 되길 희망한다.

2023-01-04

조청과 꿀단지

양태순 수필가 이십 년 전의 일이다. 시장 모퉁이에 있는 가판대에서 조청을 보았다. 가판대를 채우고 있는 잡다한 물건들 중에서 수숫빛 유리병에 먼저 눈길이 갔다. 조청! 참말 그 조청이란 말인가? 왠지 가슴이 콩닥거렸다. 나는 반가운 이를 대하듯 유리병을 어루만졌다. 딱히 쓸 곳은 없지만 사고 싶었다.어린 시절에 집에서 조청을 고는 날이면 어쩐지 설렜다. 그날은 어머니가 제일 바빴다. 수시로 솥뚜껑을 열고 손가락을 넣어 따끈한 정도를 확인했다. 온도가 적당치 않다 싶으면 불을 조금 때서 온도를 맞추었다. 해 질 무렵이면 베자루에 담아 건더기를 걸러내고 뭉근한 장작불로 엿물을 고기 시작했다. 동네 개 짖는 소리가 잦아들고 기다리던 아이들도 앉은 채 꾸벅거릴 때, 그제야 엿물은 눅진한 조청이 되었다. 어머니는 그걸 대접에 조금씩 담아 식구들에게 맛을 보였다. 그 맛은 내가 생각하는 쫀득하고 달큼한 맛이 아니었다. 조청은 뜨거울 때 먹으면 제맛을 모르고 오히려 속만 아리다는 걸 알았다.조청은 귀한 것이었다. 그 시절 시골 형편이 다 어려웠기에 명절에나 겨우 맛볼 수 있었다. 대개는 설을 앞두고 조청을 고아 강정도 만들고 엿도 만들었다. 식구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손님 접대용이었다. 할아버지가 계셨기에 명절이면 손님이 많이 왔다. 고모부가 오시기라도 하면 꽁꽁 숨겨 두었던 맛난 것들이 상 위에 올랐다. 나는 그중 조청 종지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친구 숙이가 선생님께 꿀을 가져다드린다고 들고 왔다. 조청과 꿀이 같은 줄 알았던 나는 친구가 엄청 부러웠다. 그 귀한 꿀을 갖다주면 숙이는 틀림없이 선생님의 귀여움을 독차지할 것 같았다. 나는 샘이 나서 소문을 내기로 했다. 몇몇 친구에게 그 얘기를 했다. 삽시간에 반 전체에 말이 퍼지고 아이들이 수군거렸다.쉬는 시간이었다. 숙이가 없을 때 친구들이 꿀단지를 구경하려고 모여들었다. 꿀단지는 보자기에 싸인 채 책상 서랍에 들어 있었다. 겁도 없이 누군가 그걸 덥석 꺼내 들었다. 뚜껑을 열어보다가 그만 단지를 떨어뜨렸다. ‘우짜노 우짜노’ 하는데 수업 종이 울렸다. 친구들과 나는 깨진 조각을 허둥지둥 보자기에 쌌다. 꿀범벅이 된 바닥을 걸레로 닦고 창문도 열었다. 교실로 돌아온 숙이는 너무 놀랐는지 아무 말도 못 했다.그날은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학교가 파했다. 다른 날과 달리 돌아오는 길은 조용했다. 숙이도 나도 발끝만 보고 걸었다. 길가 묘지 옆 빈터에 꿀단지 조각들을 묻었다. 서로 말은 없었지만 비밀이란 걸 눈빛으로 알았다. 꿀단지가 깨어진 게 순전히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숙이가 선생님께 꿀을 드린다고 소문낸 것도 나고, 그러면 선생님은 숙이만 예뻐할 거라고 흉을 본 것도 나였다.나는 겁이 났다. 친구들 앞에서는 태연한 척했지만 내 심장은 시시각각 쪼그라들고 있었다. 친구 엄마한테 야단맞을까 두려움에 떨었고 식구들이 알까 봐 조마조마했다. 누가 내 이름만 불러도 깜짝깜짝 놀랐고 숙이 얼굴 보기가 멋쩍어 피해 다녔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 친구가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던가 보다.숙이가 선생님께 드리려던 것이 꿀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토록 샘내지 않았을 것이다. 참기름이나 계란, 그보다 더 귀한 것이었다 해도 심통을 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꿀이 정말 조청과 같은 줄 알았었다. 꿀은 먼 나라 것처럼 익숙하지 않았고 꿀이 더 비싸다는 것도 몰랐다. 어머니는 먹고 싶은 조청 대신 엿밥을 주었다. 엿밥이 달콤하긴 했지만 조청에 대한 허기를 채워주진 못했다. 어머니 몰래 먹었던 조청의 맛은 오래 잊히지 않았다.이십 년 전에 간혹 보였던 조청이 요즘은 수시로 구할 수 있다. 지금도 조청만 보면 와락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막상 집에 있어도 쉽게 먹을 수가 없다. 꺼내서 병만 만지작거리다 도로 넣어 놓기 일쑤다. 가난하던 시절에 조청을 귀히 간수하던 어머니의 마음이 겹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조청 앞에서 흔들리는 걸음이 먹먹히 멈출 것이다, 나는.

2023-01-04

수산업의 힘, 불황을 이겨내다

2023년 계묘년(癸卯年)이 밝았다. 일반적으로 계묘년은 지혜와 생존력의 표상이다. 음의 기운을 가진 계수는 어디든 흘러드는 작은 물로 약한 힘이자 동시에 지혜로 해석된다. 지지의 묘는 목의 기운으로 봄의 생동감, 동력 등을 뜻한다. 비록 약하지만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하는 토끼의 모습이 계묘년의 의미로 풀이되는 이유이다.2023년은 계묘년의 표상답게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해라는 게 집단지성의 결론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으로 경기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코로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펼쳤던 재정, 금융 정책들이 부메랑이 되어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진단이다. 높은 물가와 금리가 일상을 옥죈다. 동시에 지난해 있었던 많은 사건들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코로나 3년이 만들어낸 뉴노멀의 새로운 기준도 여전히 2023년과 함께다. 지혜의 힘으로 넘고 극복하며 이겨내야 할 파고가 겹겹이다.지난해 임인년(壬寅年)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대양(大洋)의 기운과 호랑이의 양기가 만난 해였던 임인년은 코로나의 엔데믹과 대통령 선거, 이태원 압사 사고 등을 거치며 우리 현대사에 굵직한 이력을 남겼다. 특히 이태원 압사 사고는 세월호 사고 이후 가장 큰 시대적 아픔이 됐다. 10대, 20대의 젊은이들이 축제를 즐기다 무질서 속에 압사를 당하는, 그야말로 21세기에는 상상하기 힘든 사건이 벌어졌다. 코로나 때문에 막혀 있던 ‘함께 즐기는 문화’에 대한 갈증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버렸다.이태원 사건의 슬픔은 현재진행형이다.관련자들이 줄줄이 소환됐고, 곧 사건 발생에 관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또 다짐할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말자고 말이다.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전문가들은 한 사회의 다양한 변수들을 상정하며 사건발생 원인과 변동성 등을 예측한다. 지난 해 발생한 많은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선거로 정권이 교체되고, 코로나로 달라진 뉴노멀에 관한 단상들이 만들어낸 여파를 예측했다. 안타깝게도 많은 분야에서 예측이 빗나갔다. 카오스에 가까웠던 팬데믹은 그 이후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바다의 변화무쌍함만큼이나 사회문화적 환경도 급변했다.코로나가 엔데믹으로 바뀌었지만 우리의 일상은 과거와는 확연히 다르다. 뉴노멀이 사회적 인식과 다양한 제도로 자리 잡았고 많은 이들이 이를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다만, 그렇게 힘들게 변화를 받아들이고 버텼는데, 다시 경제불황이라는 새로운 변동성이 나타나 두렵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전 세계적으로 경기불황을 예견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경제적인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과거의 패턴과 주기 등을 들어 변화를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만든 뉴노멀과 전쟁, 국가 간 무역마찰 등 변수가 얽히고 설켜 다양한 지점의 위기를 가리킨다. 결국 우리는 다시 물의 기운으로, 유연하게 흐르는 ‘지혜’라는 표상으로 돌아간다. 다행히 지난해 수산업 분야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나타내며 글로벌 위기극복 가능성을 보여줬다.해양수산부는 지난해 12월, 사상 최초로 수산물 해외 수출 30억 달러(2022년 기준, 대략 4조원)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애초 2025년 수산물 수출액 4조원 달성을 목표로 다양한 정책을 발굴했던 해수부 입장에서는 무려 3년을 앞당긴 성과였다.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킨 K-POP, K-MOVIE 등의 영향과 건강식품을 찾는 식문화 트렌드가 결합해 이뤄낸 결실이었다. 정현미 작가 특히 한국의 김은 미국 등에서 스낵으로 각광받으며 김 업계 최초로 1억 달러 수출을 달성한 기업이 등장했다. 고등어의 가시를 발라낸, 순살 고등어를 진공 포장해 수출한 업체 역시 급성장했다. 아이디어에 기반한 수산물의 변신이 수출 증대에 큰 몫을 한 셈이다.바다는 수산업과 여행·관광업, 항만물류 등 다양한 산업경제와 연계되어 있다. 그래서 바다를 둘러싼 다양한 경제 주체들이 경제 불황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주축으로 대접받는다. 올해도 이 분야 경제 주축들이 제 역할을 해내며 건실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코로나 엔데믹 이후 수산업 뿐만 아니라 해운업도 뉴노멀을 적응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지혜는 위기에서 더욱 힘을 발휘한다. 토끼는 다가올 위기에 대비해 3곳에 도망갈 굴을 파놓는다고 한다. ‘교토삼굴(狡兎三窟)’의 어원이다. 올해는 우리에게도 이 같은 토끼의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우리 모두 지혜에서 오는 여유로움과 웃음을 즐기는, 그런 한 해가 되길 희망해본다.

2023-01-04

여당의 총선 D데이 벌써 시작됐다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 2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열린 ‘2023 대구·경북 신년교례회’에는 권성동·안철수·윤상현 의원과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등 유력 당권주자들이 대부분 참석했다. 다음 달 초 당 대표 후보자 등록을 앞두고 국민의힘 책임당원 40%가 밀집한 대구·경북의 ‘당심(黨心) 잡기’에 나선 것이다.새해에는 큰 선거가 없지만, 여당은 3·8 전당대회를 계기로 내년 총선공천이 연초부터 민감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집권여당으로선 총선승리가 무엇보다 절박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만약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에 패배할 경우, 그날부터 식물정부로 전락한다. 그런만큼 3월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당 지도부의 리더십과 역할이 그 어느때 보다 중요하다.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는 사실상 내년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하며 선거전반을 진두지휘한다.국민의힘 당권레이스는 현재까진 친윤(윤석열)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지난달 장제원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공감’이 출범하면서 국민의힘은 친윤계가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공감에는 여당의원 115명 가운데 7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전당대회 룰 개정에 따라 당 대표는 100% 당원투표로 결정되기 때문에, 돌발변수가 나타나지 않는 한 국민공감이 미는 당권주자 중 한 명이 대표가 될 공산이 크다.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현재 거론되는 당권주자 중에서 민심을 광범위하게 얻는 인물이 없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당 대표 출마선언을 했거나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권성동·김기현·안철수·윤상현·조경태 의원과 나경원·유승민 전 의원 정도다.유일하게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는 유승민 전 의원의 경우 최근 방송에 출연해 “당 대표에 도전하는 게 정말 의미가 있느냐를 고민하고 있다”고 언급해, 당권레이스가 친윤계만의 리그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여당의 전당대회가 특정 계파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은 총선과 결부시켜보면 부정적이다. 당권레이스가 현 판세대로 지속돼 친윤계가 당권을 잡는다면,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강성지지층에 의존하는 폐쇄적인 정당이 될 수 있다.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과반을 획득하려면 2년 전 치러진 6·11 전당대회 당시와 같은 역동적인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이런 측면에서 최근 윤상현 의원(인천 동-미추홀을)이 ‘당 대표 후보 수도권 출마 공동선언’을 제안하고, 안철수 의원(경기 성남 분당갑)이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 70석 이상, 총 170석 이상 하려면 수도권 지도부로 정면 승부해야 한다”며 공감을 표명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국민의힘은 지난 2020년 총선에서 수도권 121석 중 16석(13.2%)을 얻는 데 그쳐 수도권 의석 탈환이 최대숙제다.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 연말 언급한 차기 당대표 3가지 조건론(수도권 민심을 장악할 수 있는 인물, 청년층 지지를 얻는 인물, 안정적인 공천을 할 수 있는 인물)을 항상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아야 한다.

2023-01-03

선거법 개정 화두… 성급하게 처리해선 안돼

정치권이 새해 벽두부터 2024년 총선에 적용될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 주목된다. 중대선거구제 제안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이 나란히 했다. 정치 양극화문제 해법 차원에서다. 윤 대통령은 조선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를 통해서 대표성이 좀 더 강화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행 소선구제가 전부 아니면 전무로 가다 보니 선거가 너무 치열해지고 진영간 갈등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김 의장도 지난 2일 윤 대통령 주재로 열린 신년 인사회에서 “국회 정개특위에 2월 초까지 복수의 선거법 개정안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고 언급했다. 국회 정개특위는 3월까지 선거법 개정안을 마무리 짓는 것을 목표로 활동에 들어간다. 현행 국회의원 선거는 지역구 1곳에서 1명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다. 중대선거구제는 1개 선거구 안에서 2~3명의 대표를 뽑는 제도다. 다양한 민의를 대변할 수 있고 지역주의를 완화하는 장점이 있다. 반면 경북도 같은 경우에는 이미 3~4개 군이 한 지역구로 획정되는데 이를 더 늘리면 지역 대표성이 문제가 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겉으로는 선거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대구·경북을 비롯한 영남지역 여당 의원들은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될 경우 영남 의석만 야당에 대거 뺏길 우려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6·1 지방선거 때 전국 기초의원 30개 선거구에서 3~5인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시범 실시했는데, 영남에서는 민주당이 일부 당선됐지만 호남에서는 국민의힘 당선자가 전무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이재명 대표의 경우 “중대선거구제가 중진들의 자리 나눠 먹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반대하는 반면, 비이재명 쪽에서는 찬성하는 의견이 많다. 선거구제 개편은 정당뿐 아니라 현역 국회의원들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히 선거법 개정 법정시한이 4월 10일인 점을 감안하면 당장 내년 총선에서 중대선거구제를 전면 도입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2023-01-03

기적의 글꼴

우정구 논설위원 경북 칠곡군 할머니들의 글씨체가 이처럼 유명해질 지는 과연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지난 2020년 칠곡군이 동네 어르신을 상대로 문을 연 성인문해교실에서 생애 처음으로 한글을 깨친 400여 할머니 글씨 중 개성이 강한 글씨체를 선정해 글꼴을 제작한 것이 지금은 전국 곳곳에서 많은 이가 즐겨 애용되고 있다.신년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이 각계에 보낸 연하장에도 칠곡 할매 글씨체가 사용돼 또 한번 화제를 일으켰다. 연하장에는 “위 서체는 76세 늦은 나이에 경북 칠곡군 한글교실에서 글씨를 배운 권안자 어르신의 서체로 제작되었다”고 적고 있다.칠곡군 할매 글씨체는 담당 공무원들의 정성어린 노력으로 2020년 글꼴로 제작됐다. 이후 한컴오피스와 MS오피스 프로그램에 연이어 탑재되는 영광을 안았다. 또 국립한글박물관에 칠곡 할매글꼴로 제작한 표구가 상설 전시되면서 관광객의 볼거리를 제공했고, 전국적 유명세도 타기 시작했다. 박물관측은 “한글 교육을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가 남긴 문화유산으로 한글이 걸어온 역사의 한 발자취”라고 높이 평가했다.할머니들의 글씨가 글꼴로 제작되면서 당시 칠곡군수는 할매글꼴로 명함을 새겨 돌리고 식당에서는 안내문의 글씨체로 이를 활용했다. 포항 해병대는 “신병환영”이란 현수막을 내걸며 칠곡 할매글꼴을 사용하기도 했다.칠순이 넘어 팔순에 이른 어르신들이 생애 처음 배워 쓴 삐뚤삐뚤한 한글 글씨체가 이처럼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일찍 한글 교육을 받지 못한 할머니들의 한과 삶의 무게가 글씨 속에 고스란히 스며져 있은 탓은 아닌지 모른다. 질곡의 삶을 산 우리시대 할머니의 애환이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1-03

“신공항특별법 2월 중 통과” 더 미룰 수 없다

지난해 말 국회 통과를 기대했던 지역 최대 현안인 대구경북 신공항특별법이 기어코 해를 넘기고 말았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와 신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간 대립으로 대구경북 신공항특별법은 국회 국토교통위 법안소위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임시국회 회기가 7일로 끝나 이달 중 특별법 처리는 현재로선 장담할 수 없다. 통상 임시국회가 끝나면 1월 중 회기는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새해 들어서도 여야간 극한대립의 상황이 풀리지 않아 대구경북 신공항특별법이 자칫 장기 표류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이와 관련,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시 신년인사회에서 “대구경북 신공항특별법은 2월 국회통과를 목표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와 국방부 등과 특별법 쟁점 사안에 대한 정리가 거의 다 이뤄져 야당의 광주군공항 이전법과 연계해 2월 중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겠다는 뜻이다. 군위군의 대구시 편입으로 신공항 건설의 걸림돌이 사라진 만큼 마지막 관문인 신공항특별법의 국회 통과는 2월 중에 반드시 성사돼야 한다. 특히 신공항의 민간공항 부분에 대한 국토교통부 사전타당성 조사결과가 3월로 예정돼 있어 그 이전에 법안이 통과돼야 제대로 된 로드맵을 만들 수 있다. 민간공항에 대한 전액 국비지원이나 기부대 양여방식의 군공항에 대한 국비 지원, 유사시 인천공항을 대체할 중추공항 역할 등이 반드시 명시돼야 한다는 것이다.주 원내대표가 말한 2월 중 국회 통과는 신공항 특별법 완성의 골든타임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대구경북 신공항사업의 추진 동력이 떨어져 사업 일정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2030년 개항 일정은 물론이요, 신공항과 연계된 첨단신도시 건설 등 각종 사업들이 줄줄이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대구시와 경북도, 지역정치권은 법안 통과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신공항 특별법 통과는 대구경북의 미래를 결정하는 대역사라는 인식으로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군공항 이전을 희망하는 광주정치권의 협조와 더불어 특별법 통과에 절대적 힘을 가진 야당 설득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2023-01-03

다시 또, 새로운 시작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어김없이 또 한 해가 밝았다. 매일같이 뜨는 해지만, 연도가 바뀌는 새해의 첫날에 뜨는 해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에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새로움과 처음에는 신선함과 설레임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을 새로움으로 처음처럼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이 아침 뜨는 해는 어제와 다르고 어제 본 강물은 오늘과 다르듯이, 날마다 새롭고(日日又日新) 처음과 같은 마음과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다. 단조롭고 낡은 일상의 반복 같은 지루한 나날같아도, 기실은 매순간 무엇인가가 변화하고 나타나거나 소멸하면서 시간의 바퀴가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첫 시작을 잘해야 어떤 사물이나 경기, 시스템 등이 순조롭고 원활하게 작동될 것이다. 예컨대 옷의 첫 단추를 잘 끼워야 옷이 제대로 입혀지듯이, 길을 걷거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처음의 방향이나 시도가 분명하게 잡히고 길목에 제대로 들어야 목적을 향해 순탄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처럼 그만큼 첫출발이 중요함을 시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새롭게 바뀐 새해 첫날에 붉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소원을 빌거나 새로운 다짐을 하면서 힘찬 새출발을 기약하는 걸까? 시작이 좋아야 끝도 좋다는 말처럼, 일단 첫 마음으로 확고하게 다짐하고 쌈박하게 첫발을 내디뎌야 의지를 줄기차게 펼쳐나갈 수 있다고 믿으며 안도하는 모양새다.새해 첫날의 이른 아침, 꼭 1년만에 형산갓바위를 다시 찾으니 과연 예년 못지않게 해맞이객들로 붐볐다. 운무가 끼어선지 여명은 밋밋했고 형산강 하류의 물길과 주변의 시가지는 베일에 싸인 듯 흐릿하기만 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솟아오른 계묘년 태양은 가뜩이나 상기된 듯 발그스름했지만, 사람들은 나뭇가지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향해 기도를 하거나 연신 사진으로 담기에 바쁜 모습들이었다. 그러한 틈바구니에서 필자 역시 준비해간 연하장을 펼치며 촬영하는 나름의 ‘해맞이 퍼포먼스(?)’를 벌이다가 우연찮게 지인을 만나 반가움을 나누기도 했었다. 서로 몇 마디 새해인사와 덕담을 건네면서 ‘밝고 희망찬 새날’ ‘좋은 일로 껑충껑충 뛰는 힘찬 2023년’‘遠禍召福(원화소복)’ 등의 붓글씨로 적힌 연하장을 건네주며 신년의 다복과 평안을 기원했다.“첫눈, 첫사랑, 첫걸음/첫 약속, 첫 여행, 첫 무대/처음의 것은/늘 신선하고 아름답습니다/순결한 설레임의 기쁨이/숨어 있습니다//게으름과 타성의 늪에 빠질 때마다/한없이 뜨겁고 순수했던/우리의 첫 열정을 새롭히며/다시 시작하는 기쁨으로/다시 살게 하십시오//새해 첫날/첫 기도가 아름답듯이/우리의 모든 아침은/초인종을 누르며/새로이 찾아오는 고운 첫 손님” -이해인 시 ‘다시 시작하는 기쁨으로’중1년이라는 기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 시간의 선물을 본인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궤적이 달라지게 된다. 순간은 영속의 실재이듯이, 하루하루 저마다 새롭게 내딛는 발걸음이 일년 내내 옹골차고 야무지길 기대해본다.

2023-01-03

2023년, 대한민국의 첫 과제

이상산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장 새해를 맞은 대한민국,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자. 얼마 전 포항시에서 인구가 50만명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거주자의 주민등록을 포항시로 옮기는 사업을 추진했었다. 반짝 증가하던 인구는 계속 감소하여 결국 지난해 6월에 50만 명 선이 무너졌다. 지역소멸의 문제가 심각하다.최근 통계청의 데이터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2012년 1.30에서 시작해 1.19, 1.20, 1.24, 1.17, 1.05, 0.98, 0.92, 0.84, 그리고 작년 0.81. 지난 10년간의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다. 합계출산율이란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의 수를 나타낸다. 합계출산율이 1인 사회는 남녀가 결혼해 한 아이를 출산하는 사회이다. 또 그 아이는 자라서 다른 부모가 출산한 한 아이를 만나 결혼해 또 한 아이를 출산한다. 이 사회에서는 양육의 부담을 축소한 대가로, 윗 세대를 부양하는 부담은 세대를 거듭하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기존의 생활방식, 도덕과 가치로는 이 사회를 유지할 수 없다. 위기의 사회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미 이 단계를 넘어섰다. 그래서 소득수준이 높아졌지만, 구성원들의 행복 지수가 떨어지고 정신건강은 악화되고 있다. OECD 국가 중 최고라는 우리나라 자살율이 그 대표적인 지표이다. 이런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이 문제의 원인을 여성에게서 청년 세대에게서 찾으려는 노력이 많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문제를 그들에게서뿐만 아니라 그들이 처한 환경에서도 찾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볼 두 번째 통계청 데이터는 2021년 광역지자체별 합계출산율이다. 최저는 서울시 0.63, 이어서 부산시 0.73, 대구시 0.79. 반면에 최고는 세종시 1.28, 이어서 전남 1.02, 강원 0.98. 인구가 밀집되고 소득수준이 높은 대도시에서는 출산율이 낮다. 출산과 양육에 대한 지원이 안정적인 세종시에서는 예외적으로 높다. 오늘도 경쟁적이고 개인화된 사회에서 고소득과 편의를 향해 청년들이 몰려가고 있다. 그런 청년들을 지금까지는 대도시에서 수용해왔으나, 이제 그 수용력이 포화에 이르고 있다. 건강하지 않은 사회는 지속가능성이 낮다. 청년들이 돌아와 경제생활을 하며 머물 매력적인 공동체가 전국 곳곳에 일어나도록 국가와 지방정부가 창의적인 제도와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2023년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첫 과제는, 지금의 청년들과 앞으로 태어날 세대들이 청년이 됐을 때 대한민국이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을 방안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첫 주춧돌을 놓는 것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존재해야 경제성장도 사회정의도 자유민주도 민족통일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시작을 한 해 더 늦추면, 회복과정에서는 두 해 이상의 고통을 다음 세대에 남기게 된다.청년들이 다시 꿈꾸고 활짝 웃는 사회, 그런 2023년 새해가 됐으면 좋겠다.

2023-01-03

노력하지 않을 겁니다만?

또 한 살 먹었다. 아….연말 내내 독감을 앓느라 새해가 된 줄도 몰랐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약 먹고 빨래 돌리고 방 정리도 하고, 아파서 하지 못했던 설거지며 온갖 잡무를 한바탕 해치우고 잠깐 숨 돌릴 겸 TV를 켰다가 오늘이 1월 1일인 걸 알았다. 앓아눕는 동안 시간 감각이 마비된 건지, 여전히 12월의 어디쯤인 것 같다. 왠지 나 혼자 외딴 시간 속을 헤매는 기분. 어쨌든 새해구나. 한 살 더 먹었네.별다른 감흥이 없다. 이십 대 때에는 새해 인사와 덕담에 핸드폰이 터질 것 같았는데 올 해엔 그런 연락도 뜸하다. 왠지 2022년의 인간관계 성적표를 받는 기분이다. 새해 인사도 별로 못 받을 만큼 인간관계를 소홀히 했구나! 평생 새해 인사나 덕담 같은 걸 성실히 하지 않은 업보(?)를 이제 돌려받는 것 같다. 홀가분하다.사실 난 연말 연초의 분위기가 좀 그렇다. 좋다 싫다 라기보다는 그냥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어야 하나, 그런 기분이 든다. 어딜 나가도 사람으로 넘치고, 다들 억지로라도 신나야 할 것 같은 분위기라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호들갑. 그 단어가 딱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한 해를 끝낸다는 건 분명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상징적인 의미라는 게 모든 사람에게 같은 의미는 아닐 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하는 일을 신나는 축제처럼 보내야 한다고 강박을 느끼는 것 같다. 마치, 억지로 슬프고 괴로운 일들을 잊으려고 술을 퍼붓는 사람들로 세상이 가득 찬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 기분에 동참하고 싶지 않아 연말 모임에 최대한 불참을 했더니, 몸과 마음은 편하다. 독감이 좋은 핑계가 되었던 것 같다.작년 한 해는 참 정신없었다. 졸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첫 해. 그 전에도 돈을 벌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적은 돈이나마 월급을 받는다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물론 월급은 들어오자마자 대출금이며 할부금이며 공금이며 순식간에 사라지기 일쑤였지만, 다음 달에도 비슷한 돈을 번다는 건 생각보다 꽤 큰 안정감을 줬다.미뤄둔 일들을 하나씩 처리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기분. 이제, 원하는 걸 하나씩 마련하고 좋은 걸 하나씩 가져도 된다는 사회의 허락을 받은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전셋집으로 이사를 왔고, 이제는 운전면허 학원을 다니며 차를 살 준비를 하고 있다. 여전히 통장 잔고는 항상 아슬아슬하지만 그래도 전처럼 불안하지는 않은 것 같다.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안정감에 기분이 제법 묘하다.안정감. 경제적으로는 조금 나은 삶을 살게 되었지만(사실 그마저도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형편없을지 모르지만), 대신 건강이 심히 안 좋아졌다. 학기 내내 수업과 원고 마감에 치여 살면서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했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잠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 수준이 되어 이상한 불면에 시달릴 즈음부터는 자기 전마다 술을 마셨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덕분에 영상 실조라는 어이없는 진단도 받아봤고, 골다공증 초기라는 황당한 진단도 받았다. 그런데도 마음은 전보다 편하다니. 정말 묘한 기분이다.사실 병원에서 좋지 않은 진단 결과를 받았을 땐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뭐랄까, 열심히 몸을 돌보지 않고 살고 있다는 공증을 받은 기분이랄까. 그게 이상하게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줬다.지금까지의 내 삶의 모든 불행과 사건사고가 내가 열심히 살아오지 않은 탓인 것만 같은 이상한 불안감에 시달렸었는데, 몸이 심히 안 좋아지고 나니 그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삶에 불행이 찾아든다면, 그건 내 탓은 아니겠네. 내가 어쩔 수가 없는 일이겠네 하는 기묘한 안심. 이걸 안심이라고 불러도 되나 싶긴 하지만.그래서 올 한 해에는 그다지 열심히 살지 않아볼 계획이다. 돈도 열심히 안 모을 거다. 자동차나 사고, 할부금만 갚을 정도로 살 거다. 진심이다. 열심히 사는 거 별로 좋은 거 아닌 것 같다. 아프기나 하고, 괜히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나 시달리고, 몸도 망치고 기분도 망치고 주변 사람들에게 예민하게 행동하기나 하고. 행복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거고, 뭔가를 사려고 노력하지도 않아볼 계획이다. 작으나마 전셋집에 차까지 구했으면 됐지 뭘. 그런 기분으로 책방에 갔고, 시집을 두 권 샀다. 아. 만화책이나 살 걸. 왜 난 또 시집을 샀지? 직업병인 것 같다. 올 해엔 진짜 공부도 열심히 안 할 거고, 일도 열심히 안 할 거다. 그런 기분으로 또 마감을 하나 끝냈다. 서른여섯 살이 되었다.

2023-01-03

세차를 잘하는 어른

올겨울은 정말이지 겨울 같다. 이게 무슨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소리인가 싶지만, 세포 하나하나가 열렬히 소리치는 중이다. 세상에! 진짜 겨울이야! 쏟아지는 함박눈을 보면서 양손을 모았다. 크리스마스카드처럼 반짝반짝한 겨울. 춥고 차갑고 꽁꽁 얼어붙은 그야말로 겨울다운 겨울. 첫눈 오던 날엔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과 전망 좋은 카페에 있었다.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우리가 스노우볼 안에 있는 장난감처럼 느껴진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친애하는 이들의 와하하 웃는 얼굴과 모락모락 피어나는 찻잔 속의 김. 비딱한 모양의 눈사람 오너먼트와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길. 추운 날씨가 무엇보다 싫은 나조차도 설레게 만드는 그런 겨울.이토록 낭만적인 풍경 뒤에 남은 건 지극히 지난한 현실이다. 미끄러운 도로와 질퍽질퍽해진 거리, 더러워진 자동차다. 어찌나 지저분하던지 차 문에 손을 대기가 두려울 정도다. 이젠 진짜 세차해야지, 생각하면 눈 소식이 있고 기온은 영하를 웃돈다.그렇다고 그냥 두기엔 사회적 체면이 서지 않을 정도로 더럽다. 미루고 미루다가 안 되겠다 싶어 손 세차장을 찾았다. 신년이니까. 새로운 해에는 몸도 마음도 깨끗해야 하니까. 울며 겨자 먹기라는 말이 이렇게 딱 들어맞는 순간이 오면 이상하게 현실감각이 축소된다. 세차장 입구에 들어서면서도 머뭇거렸다.이렇게 추운 날 세차하는 게 과연 제대로 된 판단일까, 반신반의하면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나에게 세차란, 특히 내 손으로 하는 세차란, 너무도 어른의 영역이었다.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나보다 삶을 더 제대로 살아내는 사람들이 하는 일들. 비단 세차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했던 어른의 영역이란 각종 세금을 미납하지 않고 꼬박꼬박 제때 내는 것. 출퇴근을 성실히 이행하며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 낯선 사람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는 것. 복잡하게만 느껴지는 제도적 시스템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뭐 그런 것들이었다.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익숙하게 종합소득세를 신고하고 자동차세를 내며 이런저런 계약서를 검토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금 이렇게 손 세차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어렸을 때 세차장에서 훔쳐봤던 어른들의 우아한 손놀림이 이젠 무엇보다 슬픈 몸짓으로 느껴진다. 지금처럼 입김이 솔솔 나는 한겨울엔 더욱 그렇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자기 차를 쓸고 닦았던가. 아마 나와 같은 상태였겠지. 더러운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이 나의 게으름을 증명하는 일인 것 같아 부끄럽고 동시에 나 자신과 주변을 정돈하는 일을 관성처럼 해내는 인간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기합을 넣어본다. 물을 뿌리는 동시에 얼어버리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물줄기를 타고 구정물이 죽죽 흐른다. 세제를 풀어 커다란 차의 구석구석을 닦다 보면 땀이 나고 팔다리가 저려온다. 얼마나 비싼 차라고 이런 수고로움을 감당하나 싶다가도 다시 열심히 손을 움직인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일찍 일어나서 억지로 머리를 감고 비척비척 출근길에 올라 잦은 분노와 스트레스를 참아가면서 번 돈으로 산 물건이다. 이제 나는 노동하는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게 되었고 사회적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도 느꼈다. 그렇지만 고작 그 정도를 경험했다고 해서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그런 의문이 찾아오면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작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무엇을 배웠던가. 매 순간 온몸으로 부딪혀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넘쳐난다. 결승선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되고 싶던 적도 있었다. 이젠 그런 것이 의미가 없다는 걸, 결승선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내겐 지금까지의 삶보다 앞으로 더 긴 시간이 남아 있을 것이고 그건 그만큼의 모자람과 부족함을 쥐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차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닦았다고 생각했는데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얼룩을 발견했다. 미처 시선이 닿지 않은 곳이었다.나는 어쩜 이런 작은 일도 촘촘하게 완수하지 못할까. 스스로를 채찍질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신년 목표는 그런 어른이 되는 것으로 정했다. 세차를 잘하는 어른. 아니,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지저분한 차를 보면서 한숨을 쉴지언정 결국에는 세차장으로 터벅터벅 향하는 어른. 그 정도면 충분하다. 까치발 든 아이처럼, 한 뼘이 채 안 되는 높이를 얻었다는 것에 으쓱할 수 있는. 그 정도의 성장에도 크게 기뻐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2023-01-03

교육개혁으로 균형발전, 여태껏 말 뿐이었나

윤석열 대통령이 새해에 발표한 신년사에서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 추진을 강조하면서 지방대학의 균형발전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교육개혁 없이는 지역 균형발전을 이뤄내기 어렵고, 지역 균형발전은 저출산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집권 2년차를 맞아 지역균형발전의 핵심이 교육개혁이라고 진단한 것에 대해서는 백번 공감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역대 정부도 마찬가지지만 현 정부의 교육개혁 의지에 대해서는 별로 신뢰감이 가지 않는다. 윤 대통령의 말과는 달리 그동안 현 교육부의 정책이 대부분 수도권 대학 위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지난 연말 2023학년도 첨단·신기술 분야 석·박사 정원을 1천303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증원 인원을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 대학이 1천37명을 차지해 비수도권 대학은 첨단·신기술 분야 인재를 양성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 교육부 정책이 지역 균형 발전을 오히려 저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이러니 올해 대입 수시모집 전형에서 지방대에 합격하고도 등록하지 않은 수험생 수가 3만3천명(지방대 수시 모집 정원의 20%)이나 되는 것이다. 서울 종로학원 분석에 의하면, 서울에서 먼 지역일수록 수시 미등록 비율이 높다고 한다. ‘지방대가 벚꽃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말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신년사를 보면, 지방대 위기가 비수도권 인구소멸을 의미한다는 점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그렇지만 교육부 관료가 미래산업을 견인할 주요 인재를 수도권 대학에서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지방대 위기는 해소될 수 없다. 대입 수험생들이 수도권 대학에 목을 매는 것은 취업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보장되는 인재를 길러내는 곳이 수도권인데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가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대기업도 마찬가지 논리로 수도권을 고집할 수밖에 없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지방대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말로만 교육개혁을 외쳐서는 안 된다.

2023-01-02

‘래빗점프’

남광현 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癸卯年) 2023년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지속되고, 중국-미국 갈등도 더욱 고조됨에 따라 세계 경제는 장기간의 침체에 빠져들었고,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경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암울한 환경들로 인해 2023년은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할 것인가 무척 궁금하다.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발간한 ‘트렌드 코리아 2023’의 부제는 ‘더 높은 도약을 준비하는 검은 토끼의 해’이다. 부제에 걸맞게 2023년 예측된 10가지 소비트렌드 키워드들을 하나로 묶어 ‘래빗점프: RABBIT JUMP’로 명명하였다.‘RABBIT JUMP’를 구성하는 10가지 소비트렌드 키워드는 경제, 사람, 기술의 3가지 측면에서 그룹화되어 있다. 우선 경제 측면 트렌드 키워드들은 ‘평균 실종’, ‘체리슈머’, ‘뉴디멘드 전략’ 등 3가지이다.‘평균 실종’은 집단을 대표하는 평균값은 더 이상 무의미해지고 있는 트렌드로 평균이라는 안전지대에서 벗어나야 함을 시사한다. ‘체리슈머’는 소비심리 악화로 비용 대비 효용을 극도로 추구하는 트렌드로 최소한 매너소비자의 덕목을 갖추어야 함을 시사한다. ‘뉴디멘드 전략’은 불황기에도 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트렌드를 표현했다.사람 측면 트렌드 키워드들은 ‘오피스 빅뱅’, ‘인덱스 관계’, ‘디깅모멘텀’, ‘알파세대가 온다’, ‘네버랜드 신드롬’ 등 5가지로 가장 많다.‘오피스 빅뱅’은 재택근무와 자율출퇴근제 확산, 보수보다 업무환경을 선호하는 트렌드, ‘인덱스 관계’는 타인과의 관계에 색인을 붙여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현대인의 관계 맺기 방식의 트렌드를 표현한다. ‘디깅모멘텀’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한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트렌드, ‘알파세대가 온다’는 2010년 이후 출생으로, 태어나면서 디지털기기와 함께 생활하는 진정한 ‘디지털원주민’이 주류가 되는 트렌드, ‘네버랜드 신드롬’은 나이보다 어리게 사는 것이 하나의 미덕인 사회 트렌드이다.기술 측면 트렌드 키워드들은 ‘선제적 대응기술’과 ‘공간력’ 2가지이다. ‘선제적 대응기술’은 기술이 이용자에게 필요한 기능을 스스로 파악해 미리 제공하는 단계에 진입하게 된 트렌드, ‘공간력’은 가상공간보다 실제공간의 힘이 강력함을 보이는 트렌드이다. 10가지 트렌드는 2023년 대한민국의 역동적 변화의 단면을 잘 표현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트렌드 변화는 국내·외의 여러 가지 환경조건에 지배되어 나타나는 피동적 현상이다.지난 연말 정부가 내어놓은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서 ‘민간중심 활용 제고’ 사업 등이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트렌드는 또 달라질 것이다.또한, 정부가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제시한 3대(노동, 교육, 연금) 구조개혁, 3대 경영혁신(금융, 서비스, 공공), 인구·기후위기대응, 경제안보강화, 상생·지역 균형 발전 등 미래 대비 체질 개선 사업을 착실히 수행한다면 언어적 수사에 불과했던 ‘래빗점프’가 제대로 실행될 것으로 보인다.

2023-01-02

공짜 버스와 천원 택시

홍석봉 대구지사장 경북 청송군이 1일부터 지역에서 모든 버스를 무료로 운행하고 있다. 승객의 연령과 주소지 등도 상관없이 공짜다. 외지인에게도 무료다. 전국에서 처음 시작했다. 교통 오지 주민들을 위해서다. 가뜩이나 오지 운행 버스회사에는 지자체가 손실금을 전액 보전하는 판이었다.경북 농어촌 지역에 등장한 공짜버스와 천원 택시가 주민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대중교통 소외지역 주민들의 이동 편익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교통 오지 주민들의 손발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청송군은 앞서 2015년부터 경북에서 처음으로 천원 택시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은 한 차례 1천원의 요금만 내면 읍면 버스터미널까지 갈 수 있다. 요금 차액은 지자체에서 지원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던 오지 주민들의 불편이 크게 줄었다. 노약자들에게 응급상황 발생 시 빨리 대비할 수 있었다. 청송의 천원 택시는 2017년 국민이 뽑은 행정서비스 정부 3.0 대표 브랜드 3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경북도내에서 행복 택시, 천원 택시, 희망 택시, 별고을 택시 등 다양한 이름이 붙은 택시가 등장했다. 전남 등 지역에서는 100원 택시도 등장했다.행복택시는 운행 횟수와 범위가 대폭 확대됐다. 주민들의 이동 편의성이 크게 높아졌다. 특히 오지마을이 많은 군 단위에서 행복택시는 효과가 기대 이상이었다. 시골 노인들의 의료시설 이용과 복지·문화서비스에도 접근성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천원 택시와 공짜 버스를 포퓰리즘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은 것 같다. 교통복지로 포장한 표 확보 수단 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참담한 농촌 실정을 생각하면 이런 포퓰리즘은 언제든 환영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1-02

고향사랑기부금제, 성공적 안착을 기대한다

1일부터 고향사랑기부금제가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이 제도는 기부를 통해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을 확충하고, 지역 경제활성화로 균형발전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일본의 고향납세제를 참조 도입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은 대단하다. 특히 올 초부터 시행에 들어가면서 전국 지자체마다 고향사랑기부금제 활성화를 위한 방안 마련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대구 8개 구군청과 경북 23개 시군들은 저마다 지역의 특색있는 답례품을 선정하고 출향인사 등에 고향사랑기부금제 취지를 알리는 등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경북에서는 탤런트 이정길씨가 고향사랑 기부금 500만원을 전달하면서 경북도 1호 기부자가 됐다. 2021년 고향사랑기부금에 관한 법률제정으로 시작된 고향사랑기부금은 해당 지방자치단체 주민이 아닌 사람으로부터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제공받는 제도다. 1인당 기부상한액은 연간 500만원이다. 지자체는 기부금의 30%이내서 답례품을 제공할 수 있다. 기부금 10만원 이하는 전액, 10만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16.5%의 세액을 공제한다. 일본서는 2008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해 자리를 잡는 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첫해 81억엔(820억원) 수준이던 기부금이 2021년에는 8천320억엔(약 8조원) 규모로 대폭 늘었다. 인구 5천명의 홋가이도 카미시호로정의 경우 기부 건수(2020년)가 인구수의 20배가 넘는 10만여 건을 기록하기도 했다.지방소멸의 문제가 심각한 우리 농촌도시도 고향사랑기부금제의 출발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출향인사가 고향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멀리는 지방소멸에 대응하는 좋은 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의 절반 이상은 지방세 수입으로 자체 공무원의 인건비도 충당하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에 있다. 이번 고향사랑기부금제가 기울어가는 지방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나아가 지방소멸에 대응하는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더 한층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023-01-02

과메기와 기후위기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포항에 와서 과메기 맛을 재발견했다. 저장과 유통기술의 발달로 타지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게 되었지만, 찬바람이 불면 찾아오는 햇과메기의 맛은 포항에서만 느낄 수 있는 별미다. 김이나 돌미역, 곰피 쌈으로 먹는 것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방식은 썰지 않은 ‘짜배기’(배를 갈라 말린 것)를 한 손에 들고 베어먹으며 맥주를 마시는 것이다. 과메기 하면 막걸리와의 궁합을 떠올리기 쉽지만, 꾸덕하게 기름기 오른 제철 과메기는 참치 뱃살에도 밀리지 않는 진한 맛 덕분에 맥주와도 잘 어울린다.과메기는 주로 예전에는 청어, 최근에는 꽁치로 만든다. 그 시대에 가장 많이 잡혀서 저렴한 생선을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은 내륙지방에서도 신선한 활어회를 얼마든지 맛볼 수 있지만, 불과 백여 년 전만 하더라도 신선한 생선은 바닷가 사람들이나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새우젓이나 북어 정도가 내륙지방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해산물의 전부였던 시대가 고작 백여 년 전이다. 서민들도 육고기 맛보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요즘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상허 이태준의 소설 ‘사상의 월야’(1941)에는 배고픈 아이들이 북어를 널어 말리는 덕장에서 꼬챙이로 북어 눈깔을 빼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만큼 육고기나 생선 같은 단백질 식품을 접하기 어려운 시대였음을 잘 보여준다.‘탄소 발자국’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의 원료 채취, 생산, 수송 및 유통, 사용, 폐기 등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발생량을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산해 파악하는 것이다. EPA(미국 환경보호청) 보고서에 따르면 양고기 1kg를 소비하는 것은 39.2kg의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며, 이것은 약 145km를 운전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같다고 한다. 양을 기르고 도축하고 운송하는 전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과메기의 탄소 발자국은 어떨까? 물론 원재료가 되는 생선을 잡는 과정과 유통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겠지만, 이후부터는 태양과 바람, 그리고 영상과 영하를 오르내리는 기온의 힘으로 만들어진다. 특히 햇과메기를 산지 인근에서 소비한다면 온실가스 발생은 최소화될 것이다. 내륙에서는 소금에 절이거나 바짝 말린 해산물을 먹고, 해안가에서는 활어와 선어를 먹는 것이 자연스럽다. 과메기는 교통과 냉장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 귀한 해산물을 내륙지방까지 전하기 위해 고안된 ‘적정 기술’(해당 공동체의 상황에 맞춰 고안된 기술)이었다. 따라서 미식과 괴식 사이에 놓인 지역 특산물이 아니라, 생산, 유통, 소비의 전 과정에 걸쳐 적정 기술의 차원에서 과메기를 재평가해야 한다. 과메기 자체를 신화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지혜와 절제의 미덕을 배우자는 것이다.계절과 지리에 상관없이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신선한 해산물과 과일, 채소, 푸짐한 육고기를 먹고 싶다는 소비자본주의적 욕망이 탄소 발자국을 늘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메기를 먹으며 기후위기를 생각해 본다.

2023-01-02

묘(卯) 이야기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2023년 계묘년(癸卯年)이 밝았다. 여기서 ‘계’는 10개의 천간 중 마지막으로 검은색에 해당하며, ‘묘’는 12개의 지지 중 네 번째 ‘토끼’를 뜻하기에 이 둘을 합쳐 올해를 검은 토끼해라고 한다.토끼는 작고 귀여운 생김새에 놀란 듯한 표정 때문에 약하고 선한 동물로 종종 묘사되곤 한다.하지만 동시에 밤하늘 달 속에서 방아 찧는 신비스러운 존재, 새끼를 여럿 낳는 다산과 풍요, 자라의 꾐에서 빠져나오는 지혜의 상징 등 다양한 함의를 지녀왔다.이 중 지혜의 상징으로서의 토끼는 문헌 상 삼국유사 열전 ‘김유신’조에, 고구려에 청병하러 간 김춘수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보장왕의 총신 선문해에게 청포 300포(布)를 뇌물로 바치자 선도해가 취중에 들려주었다는 ‘귀토지설(龜兎之說)’ 이야기가 꽤 유명하다.이 외에도 사기 ‘맹상군열전’에 나오는 교토삼굴(狡FA32三窟) 고사도 빼놓을 수 없다. 영리한 토끼는 앞일을 대비해 미리 세 개의 굴을 판다는 뜻으로, 이는 맹상군의 식객, 풍환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우선 맹상군을 위해 그의 돈을 빌린 설 땅 사람들에게 선의를 베풀어 맹상군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그들을 곁에 두게 했고, 둘째로 이웃 나라에 맹상군을 적극 추천한 뒤 다시 본국 제왕에게도 이를 알려 경쟁심을 부추겨 이전보다 더 후하게 맹상군을 기용토록 했으며 마지막으로 설 땅에 맹상군 선대의 종묘를 세워 민왕도 함부로 못 대하게 함으로써 맹상군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이처럼 영리한 토끼는 난세에 현명한 지략을 펼치는 법이다.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토끼가 이러한 지혜로움 때문만으로 숭앙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혜는 급변하는 사회 속 혼자 살겠다고 교묘한 계책을 쓰며 요리조리 잔머리를 굴리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이들을 두고 우린 지능적이라고 할지는 몰라도 ‘지혜롭다’고 하진 않는다. 지혜로운 현자(賢者)는, 바로 앞을 보는 혜안과 더불어 때에 따라선 자기 한 몸 희생할 줄 아는 그런 정신이 배어 있는 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정도(正道)를 걸어가면서 자기희생적 모습도 보여주기에, 뭇사람들의 존경과 숭앙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토끼는 그런 점에서 희생정신의 대명사이기도 하다.‘금석물어집’에는 노인으로 변한 제석천이 원숭이, 여우, 토끼에게 먹을 것을 청했는데, 토끼만 아무것도 못 구해 오자 스스로 불 속에 몸을 던져 ‘나를 잡수시오’했고 이를 가상히 여긴 제석천이 토끼를 어여삐 여겨 달 속에 소생케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토끼의 희생정신이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바야흐로 새해 벽두다. 이때쯤이면,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뒤로 하고, 누구랄 것 없이 다들 새해 소망 빌기로 한창이다.올 한해는, 허울뿐인 계획들, 소망들이 아닌, 계묘년 토끼의 지혜와 희생정신을 새긴 알찬 한 해 계획을 한번 세워보면 어떨까 싶다.

2023-01-02

해마다 돌아오는 연말연초, 같은 사람 다른 느낌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책임연구위원 어김없이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 같은 날의 연속이지만 한 해의 마감 그리고 한 해의 시작이라는 느낌 때문에 누구에게나 특별하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매일 뜨는 해이지만, 새해 첫날 뜨는 해를 보기 위해 일출 명소를 찾는 것이 그런 느낌이지 않을까.경상북도 상주의 근암리(현재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 출신의 선비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1679~1759)은 24세이던 1703년(숙종 29) 12월 29일에 한 해를 돌아보며 아래와 같이 기록했다. 그는 이 시절 한창 과거시험 공부 중이었다. 때마침 권상일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대승사(大乘寺)에 모여서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과거시험을 위해 집중 대비하고 있었다. 권상일은 1707년(숙종 33) 28세에 창녕에서 치른 초시에 합격했고, 1710년(숙종 36) 31세에 증광문과에 급제해 승문원부정자로 관직생활을 시작했다.“오늘이 입춘이다. 올해도 다 지나갔으니 지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느낌이 특별하다. 밤에 눈이 조금 내렸다. 이달 22일과 23일에 천재(天災)와 시변(時變)이 아울러 일어났다고 하니 변고가 없는 해가 없다. 앞날이 걱정이다. 적과(賊科) 무리가 군정(軍丁)에 편입되고 제주도로 귀양 갔다고 한다. 이 무리의 죄는 만 번 죽어야 마땅한데도 지금 이와같이 죽이지 않고 감형해 주니 통탄할 일이다.”- 권상일의 ‘청대일기’1703년(숙종 29) 12월 29일 일기 중에서1703년, 이 해에 권상일은 대승사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새해도 맞이했다. 당시는 음력이 기준이었으니 입춘을 전후한 즈음이 연말연초에 해당했다. 그가 남긴 일기에 의거하면, 권상일은 1710년 문과에 급제할 때까지 총 8번의 시험을 치렀다.(‘청대일기’는 1702년부터 1759년까지 일부 누락된 해를 제외하고 43년간의 일기가 전해진다) 20대 시절 권상일은 수험생으로서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공부하고 또 공부했으며, 백일장과 거접(그룹스터디)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실력을 검증했다. 그리고 시험이 있을 때마다 도전했다. 실패를 거듭했지만, 결국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과거시험 합격을 성취했다.절에서 연말을 보내던 수험생 권상일은 다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며 잠시 특별한 감상에 젖었다가 며칠 전에 일어난 천재와 시변을 되새기며 앞날을 걱정하기도 했다.마지막에 강한 어조로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것은 적과(賊科) 죄인들에게 내린 벌이 가볍다고 생각해서였다. 적과란 과거 시험장에서 남의 답안을 훔쳐 자기의 이름을 써내던 부정행위를 가리킨다. 1699년(숙종 25) 가을에 시행된 식년시(式年試) 복시(覆試)에서 감시관(監試官)과 봉미관(封彌官) 등의 방조 아래 답안지가 뒤바뀌어 응시생 송성(宋晟)·박필위(朴弼渭)·이성휘(李聖輝)·이수철(李秀哲) 등이 부정으로 합격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그해 11월에 발각되어 한참 동안 시간을 끌다가 1703년(숙종 29) 10월 12일에 이르러서야 부정 합격자들을 멀리 유배 보내고 관노로 삼도록 결정이 났다. 당시 부정행위를 도모했던 인물들이 유력 가문의 자제들이었기에 이해관계가 얽힌 정치계에서 그 논란이 한참 지속되었던 것이다. 권상일의‘청대일기’12책 중 1책(1702~1704). 사진출처 : 한국국학진흥원 ‘선인의 일상생활, 일기’ 과거시험 공부에 온갖 노력을 쏟아붓던 20대 시절 어느 해 연말, 권상일은 시험부정 행위자들의 처벌이 가볍다고 분통을 터뜨리며 ‘만 번 죽어야 마땅할 죄’라는 기록으로 이 해 마지막 일기를 마무리했다.그의 시선이 그의 마음이 그 소식에 머물고 그 소식에 분노한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연말이라는 특별한 시간을 시험 공부 때문에 집이 아닌 절에서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감정이 좀 더 격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해마다 돌아오는 연말연초, 언제 어디에서 어떤 상황으로 맞이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권상일도 그랬다. 이후의 일기에서 그는 어떤 연말은 평온한 마음으로 어떤 연말은 그래도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어떤 연말은 피곤한 마음으로 어떤 연말은 걱정스런 마음으로 그렇게 다르게 보냈다. 지난 해 어떤 일이 어떻게 있었는가. 내 삶은 한 해 동안 축적된 경험의 시간과 어떻게 연결되어 지속되고 있는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어떤 마음인가.최은주 경북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으로 국학기반본부 국학자료팀장을 맡고 있다.

2023-01-02

건축의 인용과 정치적 정당성

독일의 아헨 대성당. 독일의 고도 아헨(Aachen)은 프랑크 왕국의 위대한 왕 샤를마뉴(747∼814)가 통치의 중심지로 삼았던 곳이다. 도시의 중심에는 왕의 거처와 통치를 위한 부속 건물들이 지어졌지만 지금까지 옛 궁터에 남아 있는 것은 왕실교회 밖에 없다. 아헨 대성당이라고 불리는 이 교회는 796년 경 지어지기 시작해 798년 무렵 완성되었고 805년 교황 레오 3세에 의해 축성되었다.아헨 대성당은 중세 교회건축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직육면체의 바실리카가 아닌 비잔틴의 중앙집중식 구조로 지어졌다. 건축물의 중심에는 8각형 돔이 올라가 있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외벽은 16각형이다. 내부 역시 비잔틴 교회건축에서 관찰되는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아헨 대성당은 건축 구조나 장식 등에서 비잔틴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더욱이 이 교회와 거의 똑같이 생긴 교회가 이탈리아 북동부 라벤나에서 발견된다.아헨 대성당과 닮아 있는 라벤나의 교회는 산 비탈레(San Vitale)로 547년 완공되었다. 250년 이상의 시차가 있는 두 교회의 유사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역사는 395년 로마제국이 동서로 나누어지는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제국의 기운이 쇠하던 394년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는 제국을 동서로 나누어 두 아들에게 상속했다. 이듬해 황제가 세상을 떠나면서 제국은 분열하게 된다. 로마가 동서로 나누어진 후 채 100년을 견디지 못하고 서로마제국은 476년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이 때 서로마제국의 수도가 라벤나였다. 493년 라벤나는 다시금 동고트의 왕 테오도리쿠스에게 넘어 갔지만, 540년 비잔틴 제국의 명장 벨리사리우스가 서로마제국의 옛 수도를 탈환했다. 산 비탈레 교회는 이때 지어졌다.중심에 돔이 올라가 있고 팔각형의 외벽으로 둘러싸인 형태를 지닌 산 비탈레 교회의 내부는 비잔틴 특유의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제단이 위치한 후진의 상단 좌우 벽면에는 비잔틴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와 황녀 테오도라의 모습이 모자이크로 표현되어 있다. 교회건축에서 종교적으로 가장 성스러운 공간에 세속 군주가 그림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라벤나의 역사성과 비잔틴 황제의 권위가 성스러운 공간과 연결되면서 상징적 의미가 피어난다.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가 라벤나의 산 비탈레 교회를 모방해 아헨에 교회를 세운 것은 비잔틴 황제가 지니고 있는 정통성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건축적 인용이다.키가 190cm에 가까운 건장한 체구의 샤를마뉴는 덥수룩하게 수염을 길렀고 항상 날카로운 보검을 지니고 다녔다. 47년의 통치기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전쟁터에서 보냈다. 랑고바르드를 굴복시켜 북부 이탈리아를 통치했고, 대군을 이끌고 떠난 원정에서 작센을 정복했다. 서쪽으로 진격해 스페인까지 영토를 넓혔으며 동쪽으로는 도나우 강 중부 아바르 족을 무찔렀다. 샤를마뉴의 프랑크 왕국은 옛 서로마제국의 땅을 거의 회복했을 정도로 서유럽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성장했다.샤를마뉴의 권력이 절정에 올랐을 때 795년 로마에서는 레오 3세가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혈통적 콤플렉스가 있었던 샤를마뉴는 교황과의 돈독한 친분을 쌓기 위해 막대한 축하 선물과 함께 ‘교회와 교황을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내용을 담은 서한을 보내며 교황에 대한 충성을 드러냈다. 교황 역시 강력한 세속군주의 지원이 절실하던 차였다. 로마 귀족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교황의 자리에 오른 레오 3세는 늘 위협에 불안한 처지였다. 799년 4월 25일 교황은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을 뻔 했고 마침 샤를마뉴의 사절단 호위 군인들이 그를 발견하고 구출해 준다. 교황은 이에 대한 답례로 800년 성탄절 날 샤를마뉴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불렀고 그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준다. 샤를마뉴의 정치적 정당성을 교황이 인정한 것이다. /김석모 미술사학자

2023-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