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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해력과 공감 능력

노승욱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불편 끼쳐 드린 점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립니다.”얼마 전 문해력(文解力)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과문이다. 웹툰 작가 사인회 예약 과정에서 시스템 오류가 발생하자 주최 측이 공식 SNS에 올린 것이다. 그런데 ‘심심(甚深)하다’란 표현이 문제가 됐다. “난 하나도 안 심심해”, “어느 회사가 사과문에 심심한 사과를 줌” 등의 댓글이 달린 것이다. 이 내용은 언론에 보도되면서 MZ세대의 문해력 저하 논란을 촉발시켰다.문해력이 사회적 이슈가 되자 교육부는 2024년부터 초등학교 1·2학년 국어 시간을 34시간 늘리기로 했다. 고등학교 선택과목에도 ‘독서 토론과 글쓰기’같은 과목을 개설한다고 한다. 그런데 ‘한 학기 한 권 읽기’개념이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는 빠져 있다. 국어 교사들은 이를 다시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교육 당국의 정책이 앞뒤가 맞아 보이지 않는다.2018년에 조사된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만 15세 학생의 문해력은 OECD 국가의 평균보다 높았다. (37개국 중 5위) 그런데 한국 학생들의 읽기 능력이 조사 때마다 하락하고 있는 것은 주목을 요한다. 또한 사기성 전자 우편(피싱 메일)을 판별하는 역량이 최하위 수준으로 나타난 것에도 유의해야 한다. 디지털 세대임에도 디지털 문해력이 낮게 평가된 것이다.서영아 국가문해교육센터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문해력은 단어 실력 테스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 센터장은 최근 문해력 논란을 ‘소통력 저하’의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모르는 것을 묻고 서로 협력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문해 교육의 본질이라는 견해를 피력한 것이다.필자는 이에 더해서 ‘공감 능력’을 강조하고 싶다. 하버드의과대학교의 헬렌 리스 교수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으로 공감을 정의한 바 있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태도는 인문학의 중요한 방법론이다.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면서 독서력이나 문해력을 과시하는 것은 모순일 수 있다.서영채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는 ‘왜 읽는가’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이 말은 책을 읽는다는 것이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현재 우리들의 삶, 그리고 그러한 여러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기 자신의 삶을 읽는 것임을 뜻한다. 문학 작품 읽기가 공감 능력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문해력 향상을 위해 읽기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한자어를 중심으로 한 어휘력의 중요성이 강조되기도 한다. 물론 타당한 견해이다. 그렇지만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문해력은 독해 능력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신에 대한 성찰과 타인과의 공감을 통해 진정한 문해력은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2022-09-07

기업 핵심인재 양성의 해법, 일학습병행

김정희한국산업인력공단 경북동부지사장 코로나19와의 힘겨운 사투가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전 세계를 에너지와 식량 대란 속으로 이끌고 있으며,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은 우리나라의 환율과 금리에도 막강한 영향을 미쳐 기업들의 수출 등 생산활동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도 우리 기업들은 생산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필요인력을 구하지 못하여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우리 기업들의 적극적인 구인노력에도 불구하고 채용하지 못한 미충원 인원은 17만4천명으로 1년 전 10만2천명보다 70%나 급증했다. 기업의 인력난은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해결 방안 또한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대기업과 달리 인적, 물적 인프라가 열악한 중소기업은 일시적, 단편적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기업 스스로의 가치와 생존력을 성장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그 해법으로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운영 중인 일학습병행을 소개하고자 한다.지난 2014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일학습병행은 기업이 구직자를 채용한 후 직무능력표준(NCS)에 기반한 현장훈련(OJT)과 사업장 외 훈련(OFF-JT)을 체계적으로 병행하는 일터 기반의 교육훈련 제도다. 일학습병행은 상시근로자 50인 이상(공동훈련센터형 참여시 20인 이상) 기술력을 가지고 CEO의 인력양성 의지가 높은 기업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일학습병행 참여기업은 교육훈련 프로그램 과정 개발과 학습도구 및 컨설팅 지원을 받을 수 있고, 훈련비와 기업현장교사 및 인사교육담당자에 대한 수당, 근로자의 수업 참여에 따른 기업의 생산성 손실 보전과 훈련 독려를 위한 훈련장려금 등 다양한 비용 비원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정부 지원을 통해 일학습병행 참여기업은 신규직원 채용에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채용 후 핵심 인재로 육성시키고 장기근속을 유도하는 등 강점을 가지게 된다. 더욱이 일학습병행에 참여하는 신규 채용 근로자는 업무 현장에서 선배인 기업현장교사로부터 직접 교육을 받기 때문에 실무를 빠르고 쉽게 익힐 수 있으며, 현장 외 훈련을 통한 이론교육도 함께 받아 이론과 현장성을 모두를 익힐 수 있으므로 업무능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이렇듯 일학습병행은 2014년 사업 첫 시행 후 현재까지 포항, 경주 등 경북 동부권 산업의 근간이 될 핵심 인력을 양성해오고 있다. 앞으로도 한국산업인력공단 경북동부지사는 철강산업, 2차 전지 등 지역의 주력 산업 기업의 일학습병행 참여를 확대해 나가고자 한다. 어서 빨리 코로나와 전쟁이 종식되어 경기가 회복되고 고용시장이 활기를 되찾음으로써 보다 많은 기업들이 일학습병행을 통해 핵심인재 육성과 미래 성장의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22-09-06

폭력을 특별하게 하기

군 복무 당시 후임병들을 상대로 가혹행위를 일삼은 20대 해병대 예비역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해병대 제1사단에서 군 복무를 한 그는 후임병 3명을 폭행하고 상해를 가했는데, 횟수만 200여회에 달하고, 성고문도 일삼았다.재판 과정에서 “후임병들을 제대로 교육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랬다며 혐의를 인정했고, 이에 재판부도 “군대를 지옥으로 만들었다”며 꾸짖었다. 하지만 “피고인 본인도 후임병 시절 상급자로부터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 이를 감안하면 이 사건 책임은 피고인에게만 돌리기 어렵고, 상급자들에게 군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도 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드라마 ‘D.P.’는 군대 내 가혹행위와 성폭력, 온갖 부조리함을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남성 시청자들의 트라우마를 건드렸다. 드라마에서 조석봉 일병은 폭력의 피해자다. 입대 전 순박한 미술학원 선생님이었던 그는 선임들의 가혹행위에 시달리면서 점차 폭력을 학습한다. 폭력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폭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부당한 힘에 동조하는 것, 그것이 양심과 정의에 반하는 일이라도 구조에 편입하는 것만이 폭력의 피해자가 스스로를 구원하는 길이다.조석봉은 후임 병사들을 집합시켜 얼차려를 준다. 그러자 이등병 중 고참인 안준호 이병이 만류한다. 폭력의 대물림을 끊자는 안 이병의 말에 조석봉이 답한다.“네가 뭘 얼마나 맞았다고. 디피라서 부대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조석봉의 대사는 군대의 위계질서, 나아가 폭력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구동되는지를 잘 드러내준다. 군대에서 남성들은 함께 구타당하면서 공동체의 유대감을 획득한다.“맞아야 정신차린다”는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으려면, 그 자신이 먼저 충분히 맞아야 한다. 군대 내 구타와 가혹행위는 통과의례 성격을 띤다. ‘마음의 편지’를 쓰거나 탈영을 해서 학대를 회피하는 것은 낙오자가 되는 일이다. 맞아야 때릴 수 있다. 폭력을 유지시키는 메커니즘이란 결국 ‘폭력을 특별하게 하기’다.얼마 전 국방부의 홍보 영상이 논란을 일으켰다. 문제가 된 건 “군대라도 다녀와야 어디 가서 당당하게 남자라고 이야기하지”라는 대사다.군대에 다녀오지 않으면, 혹은 군대를 갔다 하더라도 ‘제대로’ 군 생활을 못하면 남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통념이기도 하다. 한국 남자들은 어릴 적부터 ‘용인된 폭력’을 배운다. 동생이 두드려 맞고 오면 보복해줘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자 친구를 지켜야 한다. 이때 폭력은 정당화된다. 보복하지 못하고, 지키지 못하면 ‘쪼다’가 된다.군대는 ‘보복할 수 있는 남성’, ‘지킬 수 있는 사나이’를 양성하는 곳이다. ‘적’을 응징하는 합법적 폭력을 체화한 ‘전사’를 길러내기 위해 ‘순수한 폭력’이 권장된다. 김현은 ‘르네 지라르 혹은 폭력의 구조’에서 “순수하고 합법적인 폭력의 초월성은 나쁜 폭력의 내재성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어야 한 사회는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군대는 때때로 불순하고 비합법적인 폭력을 순수하고 합법적인 폭력으로 만들면서 초월성을 부여한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초월적 폭력의 피해자로 남지 않으려면 방관자, 가해자, 투사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데, 가장 쉬운 게 가해자 되기다. 조석봉은 가해자가 되는 쪽을 택했으나 가해의 질서에 적응하지 못한 채 투사로 전환한다. 부대를 탈영해 전역한 선임을 찾아가 복수하지만, 투쟁의 결말은 비참한 총기자살로 맺어진다. 폭력의 대물림에서 이탈하고, 폭력의 구조를 깨뜨리기 위해 몸부림치며 저항했지만, 결국 스스로를 가장 끔찍한 폭력의 과녁으로 만들며 죽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속죄양은 공동체를 통합시킨다. “상호적 폭력에서 일인에 대한 만인의 폭력으로의 이행이 바로 모든 문화의 기원”이라는 김현의 말을 상기해본다. 상급자들의 성폭력과 피해 사실을 은폐하는 공군 내부의 거대한 부조리함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예람 중사를 비롯해 군대에서 남성에게 학대당한 여성들의 사례를 추가하자면, 군대라는 집단의 특수성은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남성중심의 젠더 권력으로 확장된다. 이 남성중심의 젠더 권력, 페니스 파시즘이 속죄양을 도륙하는 섬뜩한 제의를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故 변희수 하사에게 쏟아진 댓글의 십자포화, 일인에 대한 그 만인의 폭력은 참으로 잔혹하지 않았나.

2022-09-06

최소한의 일만 하고 살기?

여러 군데 회사 면접을 보러 다니다 보면 공통적으로 받게 되는 질문이 하나 있다. 바로 야근에 관련된 질문이다. 야근이 종종 있을 텐데 해낼 수 있는지, 본인 업무 말고 추가 업무가 주어진다면 잘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사실 나는 이전에 이런 질문에 “저는 퇴근 이후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 일과 쉼이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할 때에 일을 더 열심히 잘 하는 것 같다”라는 답변을 한 이력이 있다. 당연히 면접관의 마음에 들었을 리 없다. 분명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면접관의 인상이 급격히 찌푸려지고 있는 것이 선명히 보였다.최근 미국 청년 세대에선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 신조어로 떠오르고 있다. ‘조용한 사직’은 실제로 직장을 그만 두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직장에서 자신의 업무 범위 외에 희생은 거부하겠다는 뜻으로, 회사에선 나에게 주어진 일만 행하고 퇴근 후엔 회사 바깥에서의 삶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를 뜻한다.‘조용한 사직’의 시작은 미국 20대 엔지니어 자이들플린의 틱톡 계정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17초 분량의 영상에선 ‘주어진 일 이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만두겠다.’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하는 일의 결과물로 정의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자이들플린은 ‘조용한 사직’이란 업무 시간 내 최선을 다해 일을 한 다음, 근무 시간 이외에는 일과 다른 본인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며 강조한다. 위 동영상은 340만회라는 어마어마한 조회수를 기록하였고, 각종 SNS에선 #조용한 사직이 달린 헤시태그 게시글이 놀라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청년 세대 사이에서 ‘조용한 사직’이란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자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 또한 생겨났다. 아리아나 허핑턴 스라이브글로벌 CEO는 자신의 SNS에 “조용한 사직은 단지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삶을 그만두는 것”이라며 일침을 가했고, 캐나다 억만장자라 알려진 케빈 오리어리는 “원하면 더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성공하는 방법”이라며 ‘조용한 사직’을 추구하는 청년 세대를 비판한 바 있다.돌이켜 나는 왜 전 직장을 그만두었는지 떠올려보았다. 사직이유서엔 건강상의 이유라고 모호하게 써내려갔지만, 사실 목적 없이 습관처럼 행해지는 야근 때문이었다. 나는 1년도 안 된 신입이었고 내가 맡은 업무는 강도가 세지 않은 단순 업무에 불과했다. 굳이 야근을 해야만 끝낼 수 있는 업무가 전혀 아니었지만, 그 시간까지 자리에 묵묵히 앉아 있으면 인정받는 분위기가 존재했고 이윽고 야근이 정말 당연시하게 되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상사의 피드백을 기다리기 위해 2시간 내내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았고, 늦은 시간 귀가길 마저 업무 연락에 답하기 위해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휴대폰 진동이 끊이질 않으니 잠은 또 얼마나 설쳤는지. 이 모든 걸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경험이라던가, 일의 노하우를 배운다거나, 성취감이 따랐다면 그리 쉽게 퇴사를 외치진 않았을 것이다.‘조용한 사직’을 두고 세대 간 주장이 엇갈리지만, 사실 조용한 사직을 추구하는 것은 그저 개인의 취향에 가깝다. 세대를 떠나 일과 승진, 급여를 중요시하게 생각한다면 본인의 개인 시간을 줄이면서까지 회사에 희생하며 기꺼이 일을 배울 것이다.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해내며 에너지를 조절하고, 회사 이후의 삶에 힘을 쏟고 취미를 즐기고 자기계발에 몰두할 것이다. 개인의 취향이고 선택의 문제이지 굳이 한 세대를 꼬집어 무날카롭게 비난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사실 야근이 당연시하게 행해지는 한국 사회에서 ‘조용한 사직’을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 개인에게 주어진 업무는 1인분이 아닌 2-3인분의 일이라 내게 주어진 것만 해도 야근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사실 난 야근은 얼마든지 해도 된다. 그저 나의 업무 범위 이상으로 일할 때 승진이나 급여 보상 등의 혜택이 따라왔으면 한다.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과 통제권 그리고 적절한 보상과 체계라는 경험이 따라온다면 그 누구도 발 벗고 나서서 회사에 ‘희생’하지 않을까. ‘조용한 사직’을 생각하다보면 조금 씁쓸해진다.

2022-09-06

남의 기준

조현태수필가 선천성 일안실명이란 의학용어가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한쪽 눈을 실명했다는 말이다. 필자가 그런 예에 속한다. 그러나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처음부터 한쪽 눈은 멀쩡했으므로 무엇이든지 볼 수 있고 크기와 색깔 구분에도 전혀 지장이 없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무슨 까닭인지도 모르면서 완벽하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 글 읽기였다. 동화책을 비롯하여 만화, 소설 등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이 가장 재미있고 편했다.단 한 가지, 어떤 물체와의 거리감을 식별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은 중학교 시절에서야 느꼈다. 친구들과 유료탁구장에 갔는데 탁구 게임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탁구공이 내 쪽으로 얼마만큼 날아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똑바로 보면서 공을 받으려 해도 자꾸 라켓을 허투루 휘둘렀다. 거의 울면서 이를 앙다물고 연습해도 별 진전이 없었다. 축구이든 탁구이든 왜 그토록 공을 맞히지 못하는지는 더 커서야 알았다. 동물의 눈이 둘인 것은 바로 이 거리감 식별 때문이란 것을. 그래서 일안실명인 사람은 군대도 면제요 운전면허도 제한을 받으며 굴삭기 같은 중장비면허도 자격미달이다.성인이 되어서는 애꾸라는 이유로 연애도 취업도 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한쪽 눈이 없다는 사실에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1998년, 어느 대학병원 안과에서 의안 수술을 했다. 그리고는 양쪽 눈이 다 있는 것처럼 이력서를 제출하여 용접공으로 취업했다. 겨우 일 년 남짓 용접공 월급을 받다가 자영업을 택하고 말았다.오늘 필자가 하려는 말은 개인의 일생 소개가 아니다. 피트니스 선수였다는 여인이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겼으나 끝내 왼팔을 절단하고 일 년 넘게 입원치료를 했단다. 여러 차례 수술과 재활치료를 거듭하여 겨우 퇴원하고 수 년 동안 걷기 같은 일상생활 훈련을 거쳐 텔레비전에 강사로 나타나기까지 과정을 들었다. 그 사고로 온 몸이 성한 곳이 없었으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지금 그녀가 전하고 싶은 말은 ‘감사함’이라고 했다. 오른손잡이였는데 왼팔만 없어졌음에 감사하다는 마음가짐. 수없이 많은 감사의 조건들을 여기에 나열하기보다 한 가지 핵심적인 말을 듣고 감동하였기에 이 글을 쓴다.그녀도 없어진 왼팔을 대신하여 의수를 했단다. 그러나 화면에는 없는 팔 그대로 연설했다. 온 국민이 보는 텔레비전에서 의수를 집에다 두고 외팔로 출연한 까닭이 있단다. 모든 것에 감사하다면서도 의수를 주문하게 된 원인은 자기기준을 무시했기 때문이란다. 다시 말하면 남의 기준에 맞추려는 태도란다.필자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렇구나. 나도 마찬가지다’하는 혼잣말이 저절로 나온다. 그녀의 없어진 팔이나 원래 없는 필자의 눈을 있는 것처럼 가짜로 만들어 착용하는 것은 남의 기준에 따르기 위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남이 보기에 진짜처럼 보여도 기실 진짜가 아님은 본인이 가장 확실하게 알지 않는가.자기 기준이 명확하면 불평불만이 사라진다. 온통 아귀다툼으로 뉴스가 종일 시끌벅적한데 남의 기준에 너무 민감하지는 않는지 묻고 싶다.

2022-09-06

인문학의 중요성, 필요성, 교육방법

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인문학은 인간의 삶, 사고 또는 인간다움 등 인간의 근원문제를 탐구하는 공부다.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회과학 자연과학은 인간을 둘러싼 사회와 자연계의 현상에 대해 경험적 접근이나 보편적 원리를 통하여 어떤 법칙을 유도하려 하나, 인문학은 인간 본질에 대해 분석적이고도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대한 종합적 성찰과 이해를 목표로 한다.미국 명문대학인 컬럼비아 대학의 학부과정에서 훌륭한 저서읽기인 ‘인문교육 프로그램’(코어)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한다. 문학과 철학, 윤리학과 정치학, 미술과 음악, 과학을 망라하여 지정된 도서를 읽고 토론하는 필수 공통학습과정이다. 이 과정은 학습량이 엄청날 뿐만 아니라 엄격하기로 소문난 프로그램인데도, 이 과정을 이수한 졸업생들은 이 강좌가 자신의 인생을 바꾼 강좌로 손꼽는다고 한다. 이 강좌는 명 교수의 명 강의가 아니라 다양한 전공과 이력을 가진 교수들이 대화와 토론의 조력자로서 참여할 뿐 수업진행의 주축은 20여 명 정도로 이루어진 학생들 각자의 활발하고도 집중적인 참여이다. 이러한 수업참여로 학생들 각자는 시간적 역사와 공간적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설정하는 방식을 구축해가게 되며, 지식은 주입식 강의나 암기가 아닌 스스로의 탐구와 성찰의 공유과정을 통해 축적된다. 이 프로그램의 책임을 맡았던 몬타스 교수에 의하면, 첨단과학기술이 발달한 새로운 세대의 학생들도 존재론적 불안에 시달리고 무의미함의 위협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고 진단한다. 몬타스 교수는 학생들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성찰하면서 내면의 힘을 함양하는 방법과 지혜를 습득하기를 권하는 동시에, 컴퓨터 과학자, 회계사, 사업가, 법조인, 의사 등 모든 유형의 전문직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교양교육이 특히 필요함을 강조한다.최근 필즈상 수상으로 유명한 허준이 교수는 “수학은 저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이해해가는 과정이고, 일반적으로는 인간이라는 종(種)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또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또한 반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18세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리스트의 피아노곡 ‘단테 소나타’를 좀 더 이해하려고 단테 ‘신곡’의 국내번역판을 모두 찾아 읽었다 한다.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인문학적 감성과 소양을 명 강의를 통해 쌓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체득(體得)하였으며 그것이 그들의 재능의 원천이 된 것이다.첨단과학기술의 고도발달사회에서 전문직이나 지도급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겐 인간의 삶의 현상들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과 종합적 분석력이 더욱 필요하다. 컬럼비아 대학의 인문교육프로그램 같은 과정이 힘들어서 미국의 많은 대학들도 포기한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대학들도 전문가양성 교육과정에서는 밀도 있는 인문교육프로그램을 필수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프로그램 담당교수들은 추상적 용어나 개념을 들먹이며 사변적 얘기로 자기과시나 하려는 전달식 강의보다 조력자 내지는 사회자 역할을 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022-09-06

대구시 두류신청사 새로운 名所되길 기대

대구시가 지난 5일 “시청 신청사 건립을 위해 두류정수장 부지 일부를 민간에 매각해 재원을 충당하겠다”고 밝혔다. 시청 신청사가 들어설 대구시 달서구 두류정수장 부지 15만8천㎡ 중 9만㎡를 매각해 신청사를 건립하고, 남는 돈은 대구시 부채를 갚는 데 쓰겠다는 것이다. 대구시는 이 땅을 일반상업지역으로 변경한 후 필지 분할 없이 매각해 랜드마크성을 갖춘 호텔이나 쇼핑몰 등 상업건축물을 유치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동안 홍준표 대구시장은 중구 동인동 현 청사를 매각해서 신청사 건립비용으로 사용하고, 모자라면 국비 지원을 받겠다는 생각을 밝혀왔었다. 대구시가 신청사부지 일부 매각을 추진하는 것은 적립해 둔 청사건립기금 대부분을 이미 다른 용도(코로나19 예산)로 썼기 때문이다. 그동안 모아둔 청사건립기금 1천765억원 중 남아 있는 돈은 397억원 뿐이다. 신청사 건립에는 4천500억원 정도가 소요되는데, 매년 500억원을 추가 적립해도 재원 마련에 9년 걸리는 실정이다. 대구시는 동인동 현 청사 매각 자금을 활용하는 방안도 사실상 접었다. 동인동 청사 3.3㎡(1평) 당 가격을 3천만원으로 잡아도 1천100억원 정도에 그쳐 건립 비용에 크게 모자라기 때문이다. 대구시 신청사 건립부지는 지난 2019년 12월 후보지 4곳 중 시민참여단의 평가를 거쳐 달서구 옛 두류정수장 터로 결정됐다. 대구시는 올해 전략환경영향평가, 내년 신청사 설계공모에 들어가 2025년에 청사를 착공, 2028년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대구시가 신청사 부지절반 이상(56.9%)을 민간에 매각할 경우, 당초 설계됐던 공원·녹지공간이 축소될 수 있다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두류정수장 부지전체를 공공적 용도로 활용하는 것이 그간의 사회적 합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성적 사무 공간 부족에 시달리는 대구시 입장에선 신청사 건립을 마냥 미뤄둘 수 없다는 것도 이해가 간다. 대구시는 ‘시청 두류 신청사 시대’ 개막과 함께 이 일대가 대구시의 미래를 견인할 수 있는 또 다른 명소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길 바란다.

2022-09-06

추석 앞에 닥친 힌남노 상처, 신속히 수습해야

6일 초강력 태풍인 제11호 힌남노가 한반도를 빠져나갔으나 전국에는 엄청난 양의 비를 쏟아부어 비 피해가 곳곳에서 발생했다. 특히 경북 포항·경주는 태풍의 한 중앙에 들면서 침수, 정전, 산사태 등의 많은 비 피해가 발생했다. 포항에서는 하루 170mm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남구 청림동, 연일읍 우복리, 창포동, 두호종합시장 등 많은 지역이 침수 피해를 입었는가 하면 도심 곳곳이 물에 잠겨 교통이 통제되기도 했다. 또 동해읍 흥환1리와 호미곶면 구만리 일부지역에서는 정전사태가 일어나고, 북구 용흥동 대흥중학교 뒤편 야산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해 주민들이 대피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포항제철에서는 동시다발성 화재가 일어나 제철소가 원인조사를 나서기도 했다.경주에서도 곳곳에서 도로 및 농경지 침수 등의 비 피해가 발생했다. 아직은 정확한 통계가 잡히지 않으나 대구와 경북지역을 포함 전국적으로 많은 지역이 폭우와 강한 바람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번 힌남노는 추석을 불과 나흘 앞두고 닥쳐 서민들의 시름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물가 상승률이 둔화세에 접어들고 있음에도 지난달 먹거리 물가는 13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8.4%가 올랐다.한달 전 내린 기록적인 폭우와 작황 부진이 주요 원인이다. 품목별로는 호박이 83%, 배추가 78%, 오이 69%, 무 56%가 올라 채소류가 먹거리 물가를 끌어 올렸다. 추석 밥상 물가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고물가 속에 추석을 쇠야 하는 서민층의 가계부담이 상당하다. 여기에 힌남노까지 밀어닥쳐 피해를 냈으니 설상가상의 형국이다. 코로나19 이후 거리두기 없이 맞이하는 명절임에도 경제적 부담 때문에 서민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추석 대목을 준비했던 상인들도 걱정이다. 태풍 피해로 농수산물 가격이 오르면 장사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당국이 나서 비 피해 정도를 살펴 취약계층에게는 적절한 지원도 해주고, 농수축산물 등 서민물가의 가격 안정을 위한 수습책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힌남노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데는 당국의 노력이 주효하다.

2022-09-06

가을 태풍

우정구 논설위원 “가을 태풍이 여름 태풍보다 독하다”는 속설이 입증됐다.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후유증으로 전국이 뒤숭숭하다. 과거 역대급 태풍으로 일컬어졌던 사라(1959년)와 루사(2002년), 매미(2003년) 등은 모두 가을 태풍이다.기상청 통계에 의하면 1951년부터 작년까지 발생한 태풍은 모두 1천916개며 그 중 7∼8월 발생한 태풍은 661개, 9∼10월 발생한 태풍은 638개다. 여름철 태풍이 수적으로 조금 많으나 피해는 가을 태풍이 훨씬 컸다.문제는 대형 태풍인 가을철 태풍이 앞으로 더 많아질 거라는 전망이다. 기상학적으로 가을 태풍이 더 강력한 것은 하지와 추분 사이 해수면의 온도가 연중 가장 높은 데 원인이 있다. 태풍은 해수면 온도가 높아질 때 더 강한 바람이 발생하고 세력도 증대한다.2013년 11월 4일 필리핀을 강타한 초강력 태풍 하이옌의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필리핀은 하이옌 태풍으로 430만명의 이재민과 1만2천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재산 피해는 집계가 곤란할 정도였다고 하니 태풍의 위력을 짐작하고도 남는다.당시 하이옌이 발생했던 북위 5도의 해수 온도가 31도를 넘었다고 한다. 엄청난 에너지를 공급받았다. 태풍의 힘을 약화시킬 저기압이나 차가운 공기는 만나지 않았다. 지구 표면의 3분의 2를 이루는 바다의 수온을 측정하여 28도 이상 되는 지역을 웜풀(warm pool)이라 부른다. 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웜풀지역이 확대돼 강력 태풍 발생이 잦아질 거라 한다.인간이 품어내는 각종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로 이어지고 그 반대 급부가 강력한 태풍으로 되돌아온다. 지구 환경에 대한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으면 기후 재앙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9-06

국가균형발전, 대통령생각이 중요

심충택 논설위원 우동기 대구가톨릭대 총장이 지난주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됐다. 지난 1일부터 업무를 시작했으며, 임기는 2024년 7월 14일까지다. 우 위원장은 조만간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자치분권위원회를 합친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된다. 지방시대위원장은 비상근으로 겸직이 가능하지만, 우 총장은 위원장직에 충실하기 위해 조만간 대구가톨릭대 총장직을 사퇴할 예정이다.우 총장의 국가균형발전위원장 취임으로 대구·경북으로선 대통령과 소통할 수 있는 핵심적인 창구를 얻어 경사를 맞게됐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수도권 초집중화’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통령 자문기구로 보면 된다. 이 위원회는 노무현 정부 때 수도권 비대화를 막기 위해 긴급하게 설치됐다. 장관급인 우 위원장의 결재라인은 대통령밖에 없다. 대통령의 지역 공약 실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공공기관 지방이전 추진, 혁신도시 지역인재 의무채용을 관리하는 게 이 위원회다. 앞으로 국가균형발전사업을 평가하고 비수도권 소멸을 막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대통령에게 직접 내놓게 된다.문재인 정부 당시에는 지역균형 뉴딜정책을 ‘대통령 어젠다’로 채택해 다양한 과제를 발굴했지만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직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 역시 이 지역 출신인 김사열 경북대 교수가 맡았지만, 위원회 성격이 자문기구라 실질적인 권한행사와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우동기 위원장은 이와관련 “국가균형발전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한만큼, 대통령이 지방시대를 구현할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을 철저하게 하겠다”고 말했다.지금은 권력과 재화를 비롯한 모든 자원의 수도권 집중이 가속화하면서 온갖 분야에서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수도권 의석수가 국회를 압도하면서 과거에는 그래도 비수도권 눈치를 보면서 시행됐던 수도권 규제완화가 속수무책으로 진행되고 있다. 수도권 여야 의원들의 막강하고 조직적인 파워는 이제 누구도 막아설 수 없는 상황이 된 듯하다. 그들의 의사결정은 블랙홀처럼 모든 자원을 수도권으로 빨아들이고 있다.지방시대를 선언한 윤석열 정부의 국가균형발전에 대한 인식도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지방과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시절 대구·경북을 비롯해 비수도권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지역균형발전은 국가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했었다. 대통령 인수위원회 시절에도 역대정부와는 달리 지역균형발전특위를 별도로 설치해 지방정부의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윤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친기업·친시장’ 정책을 표방하면서 수도권 규제를 거침없이 풀기 시작했다.지역균형발전은 반드시 수도권 정치인들의 반발을 수반하기 때문에 정권 초기 대통령이 직접 밀어붙여야 성과를 낼 수 있다.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이 법률이나 경제성 논리에 막혀 추진할 수 없는 현안은 국가균형발전 논리로만 풀 수 있다. 우 위원장이 꼭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2022-09-06

태풍피해 예방법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역대급 세기로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관통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태풍 피해예방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기상청에 따르면 힌남노는 5일 오전 9시쯤 ‘매우 강’ 상태로 제주서귀포시 남남서쪽 400㎞해상을, 6일 오전 9시에는 ‘강’ 상태로 부산 남서쪽 90㎞해상을 지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태풍은 과거 태풍 가운데 가장 강력했던 사라와 매미보다도 더 강한 상태에서 상륙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피해예방을 위해서는 주의가 필요하다.우선 태풍이 오면 강한 바람으로 유리창이 파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샷시와 창틀을 고정해야 한다. 창틀이 헐겁다면 신문지를 끼워 틈을 최대한 좁히는 것이 좋다. 또한 창과 창틀사이를 테이프로 붙여주는 것도 파손 예방책이 될 수 있다. 유리창 파손이 우려되면 창문에 테이프나 신문지 등을 붙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파손시 유리파편 흩날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화분 등 강풍에 의해 날아갈 수 있는 물건들은 실내로 미리 들여놓고, 침수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배수구 상태도 점검해야 한다. 침수 우려지역에 있는 차량등은 안전한 곳으로 미리 이동시켜놔야 한다.특히 풍속 50m/s 이상의 대형 태풍에는 젖은 신문지나 테이프를 X자 형태로 붙이는 것이 큰 효과가 없는 만큼 비규격·노후 창호를 교체하거나 유리창에 PE(폴리에틸렌) 재질의 안전 필름과 에어캡을 붙여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안전 필름과 에어캡은 외부의 강한 충격으로부터 유리를 안전하게 잡아줌으로써 파손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고, 깨진 유리의 비산을 방지해 2차 사고를 막는다. 천재지변으로부터 인명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는 언제나 최우선적으로 실행돼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9-05

안동, 바이오산업 메카로 우뚝 서길

국산 1호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의 첫 출하식이 지난 2일 안동시 SK바이오사이언스 생산공장에서 열렸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코로나19 백신의 자체 개발이 꿈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감개무량한 일이다. 스카이코비원 첫 출하식에 참석한 한덕수 총리의 말대로 우리나라도 이제 백신 생산국 반열에 들어서게 됐으며 명실상부한 바이오 선도국으로 거듭났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자체 개발한 합성 항원 방식의 스카이코비원에 대해 식품의약품 안전처로부터 품목허가를 받았으며, 초도 물량 약 61만회분의 출하도 모두 마쳤다. 이제 보건소나 위탁의료기관 등에서 18세 이상이면 이 백신의 접종이 가능하다. 안동은 4년여전 SK바이오사이언스가 백신전문 기업으로 공식 출범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해는 SK바이오사이언스가 1천200억원 규모의 안동공장 증설을 밝혔고, 경북도도 이에 부응해 백신 전문인력 양성센터와 국가백신은행 구축 등의 제안을 하면서 안동은 바야흐로 바이오산업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지방의 중소도시가 바이오산업 중심도시로 성장하려면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이는 어렵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SK바이오사이언스와 같은 기업이 지방에 많이 오려면 중앙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현재 안동은 코로나19 백신산업과 함께 전국에서 최초로 대마를 이용한 산업용 헴프생산에도 총력을 쏟고 있다. 그러나 산업용 헴프규제자유특구 지정을 받고도 각종 규제에 묶여 실험만 하고 제품 생산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기업이 지방에서도 마음놓고 연구와 생산을 할 수 있는 인프라 조성과 정부의 과감한 규제 해제가 필요한 것이다.SK바이오사이언스의 국산 1호 백신 개발은 넥스트 팬데믹에 대응할 수 있는 우리의 역량을 키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SK 바이오사이언스 안동공장이 그 중심에 섰다는 것은 매우 뿌듯한 일이다.예향의 도시로 알려진 안동이 바이오산업 도시로 알려지는 또다른 좋은 전기를 맞았다. 정부 지원도 필요하지만 기업과 도시가 힘을 모아 상생의 길을 찾아가는 노력도 병행해야 바이오산업 메카로서 우뚝 설 수 있다.

2022-09-05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보라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국정을 책임진 정부여당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나. ‘권력’인가 ‘국민’인가. 윤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시작도 방향도 목표도 국민”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집권당에서 계속되고 있는 권력싸움은 “시작도 방향도 목표도 권력”때문이 아닌가.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표리부동의 전형이다.‘백언불여일행(百言不如一行)’이라고 했다.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는 대통령의 말은 ‘정치적 수사(修辭)’일 뿐이다. 대통령은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철학자’가 아니라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는 공직자’이다. 대통령의 ‘국민만 보고 가는 정치’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되어야 한다.국민은 정부여당에 묻고 있다. 대통령이 권성동에게 보낸 ‘체리따봉’ 문자가 국민을 위한 것인가? 법원이 지적했듯이 이준석을 쫓아내기 위해서 ‘억지로 비상상황을 만든 것’도 국민을 위한 것인가?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꼼수로 갈등을 심화시킨 것이 국민을 위한 것인가? 당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내분의 빌미를 제공한 대통령은 왜 ‘강 건너 불구경’인가? 이 모든 정치행태에는 ‘국민의 관점’이 아니라 ‘권력의 논리’가 지배되고 있다.윤석열 정부는 지지기반이 약한 연합정권이다. 2030과 6070, 윤석열과 안철수, 그리고 윤석열과 이준석의 연합으로 간신히 0.73% 승리했다. 하지만 권력투쟁으로 연합정권은 붕괴위기다. 정권의 표리부동을 경멸하는 중도는 이미 떠났고 2030은 분열되고 있다. 20년 장기집권을 장담했던 문재인정권이 민심을 잃고 5년 만에 무너진 사실을 벌써 잊은 것 같다.무엇보다 국민을 짜증나게 하는 권력싸움을 멈추라. 정치력이 없어서 ‘정치의 사법화’를 초래한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법원이 가처분 인용의 근거로 지적한 ‘정당민주주의 침해’, ‘가짜 비상상황 조작’ 등은 대통령의 ‘공정과 상식’이 거짓이었음을 반증하고 있다. 권력밖에 모르는 ‘꼰대’와 ‘싸가지’의 전쟁에서 승자는 없다. 국민은 ‘대결이 아니라 대화’의 정치를 바란다. 당내 갈등도 수습하지 못하면서 여야협치와 국민통합을 말하고 있으니 ‘소가 웃을 일’이다.권력의 그 음흉한 속내를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국민은 이미 ‘권력의 잔머리’를 꿰뚫고 있다. 오죽하면 당내에서조차 “새 비대위는 불가능하고 옳지도 않다”(안철수), “억지와 집착에 빠졌다”(홍준표)는 비판이 나오고, 서병수 의원이 당헌·당규개정에 반대하며 전국위원회 의장직을 사퇴했겠는가? 정기국회는 시작되었는데 민생을 책임진 집권당은 권력싸움으로 날을 새고 있다. 윤 대통령의 당선 지지율 48.5%가 9월 2일 현재 27%(한국갤럽)로 추락했다. ‘국민’이 아니라 ‘권력’을 선택한 ‘배신의 정치’ 때문이다.‘문명의 정치는 국민’을 보지만 ‘야만의 정치는 권력’을 본다. 정권은 교체되었지만 ‘정치의 야만성’은 여전하다. 권력남용과 정치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야만의 한국정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2022-09-05

혼돈의 여당… 추석민심 잘 살펴야

총체적 난국에 빠진 국민의힘이 추석연휴를 전후로 비상상황을 돌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민의힘은 어제(5일) 전국위원회를 열어 새 비대위 출범을 위한 당헌·당규 개정작업을 한 후, 곧바로 상임전국위원회를 열고 개정된 당헌을 토대로 현재의 당 상황이 ‘비상 상황’이라는 ‘당헌 유권해석’ 안건까지 의결했다. 법원이 비대위구성에 재차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으려는 조치다. 지난달 법원은 “국민의힘이 실제로는 비상상황이 아닌데도 이준석 대표 권한을 박탈하기 위해 비상상황을 만들었다”며 이 전 대표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었다. 이 전 대표 측은 국민의힘 비대위가 재구성되면 추가로 비대위원장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내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이 전 대표는 지난 4일 대구 김광석거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법원판결도 무시하고 당헌·당규를 졸속으로 개정하는 것은 반 헌법적”이라고 언급했다. 이 전 대표측은 국민의힘이 당헌 일부규정을 바꿔 비대위 구성근거로 삼는 것에 대해 법원에서 ‘인위적인 비상상황 조성’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가처분신청은 추석연휴 직후인 14일로 심문기일이 정해졌는데 인용될 경우 국민의힘은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국민의힘 비상상황은 당 구성원 모두가 자초했다. 당 중앙윤리위가 성 상납의혹을 문제삼아 이 전 대표의 당원권을 6개월 정지하는 결정을 내린 이후 한 달이 넘게 모두가 내분 해결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당권을 잡기위한 진흙탕 싸움에 몰두한 결과다. 정기국회를 맞아 윤석열 정부의 국정동력 회복에 총력을 쏟아도 시원찮을 마당에 오히려 정부에 걸림돌이 되고 있으니 여당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부끄럽게 됐다. 국민의힘 사태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면 상황을 지금처럼 꼬이게 한 책임자들이 하루빨리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이 맞다. 윤핵관과 이 전 대표가 그 중심 인물이다. 특히 이 전 대표의 경우 최근 윤 대통령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는데,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국민의힘 모든 구성원들은 추석연휴를 맞아 자성의 시간을 가지고 민심이 어떤지 잘 살펴보길 바란다.

2022-09-05

기업 경쟁력의 핵심요소, ‘최적공간’

장광일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이번 주는 민족 대명절인 추석(秋夕)이다. 추석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이니 달이 유난히 밝은 좋은 명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추석에는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여서 맛있는 송편도 먹고, 잔치도 벌이고, 웃음 꽃도 피우면서 가족 간의 유대감을 쌓는 날이다.고향이란 기본적으로 태어나고 자란 땅에 대한 경건한 마음이 있어 ‘어머니의 품’ 같은 곳이다. 오랫동안 살던 집은 공간을 넘어 장소가 된다고 한다. 필자는 ‘최적공간’이란 주제로 이야기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공간을 나누어 보면 크게 가족과 함께 보내는 집의 공간,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직장의 공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공간을 최적으로 가꾸어 놓는 것이 마음의 공간을 변화시키고, 창의역량 향상에 도움이 된다.사람과 기업의 미래 경쟁력에 초석이 되는 공간에 있어서 첫째 아늑하고 따뜻한 집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지난주 테니스 동호회(윈윈클럽) 회원들과 함께 울진에 있는 지인집으로 놀러갔다. 그 분은 정년퇴직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고즈넉한 분위기에 고풍스러운 느낌이 풍기는 한옥을 지어 살고 있었다. 백 년의 역사가 흐르는 감나무, 나지막한 황토방, 따스함이 느껴지는 부뚜막, 편백나무로 지은 사랑방, 항아리 속 부레 옥잠, 멋스러운 자태를 뽐내는 백일홍 등 하나하나 정성이 안간 곳이 없고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곳에서 있는 시간 만큼은 마음의 평화가 오고, 마음의 공간이 넓어지는 것 같았다.둘째 창의성이 절로 발산되는 최적의 직장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최근 사무실이 바뀌고 있다. 어떤 카드 회사는 직원들에게 백만원이 넘는 고급의자를 제공하기도 하고, 어떤 IT회사는 회의실 리모델링 비용으로 수십억의 거금을 들여 멋지게 탈바꿈하기도 하였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유한킴벌리는 그리드(Grid)를 파괴한 ‘스마트 워크’ 사무실 도입 및 실내녹지율 2.53%의 ‘그린 오피스’ 도입으로 업무 효율을 15%이상 향상하였다. 또한 포스코는 직원들이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2009년 창의 놀이방인 ‘포레카’를 개관하였다. 일터와 놀이터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자유분방한 공간에서 직원들이 창의성을 발산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집의 공간과 직장의 공간은 곧 사람 마음의 공간에 큰 영향을 미친다.빅터 프랭클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여기에 자신의 성장과 행복이 달려 있다” 라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수없이 자극과 반응 사이를 오가면서 살고, 습관화된 일상적인 패턴의 삶을 반복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 공간이 있음을 모르고 산다. 자신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서는 우선 주변 환경변화를 바꾸어 마음의 공간을 넓혀 나가야 한다고 본다.공간은 삶과 기업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구성원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척도이며, 창의성의 가치가 떠오르는 현 시점에 매우 중요한 핵심요소가 됐다.

2022-09-05

태풍에 대비하여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가을의 길목에 달갑지 않은 태풍이 들이닥쳐 온나라가 바싹 긴장하고 있다. 그것도 한반도에 가장 큰 피해를 준 1959년의 사라호나 2003년의 매미를 능가할 강도의 ‘역대급 초강력 태풍’ 힌남노가 오늘 새벽 남해안에 상륙할 전망이라니, 불안과 걱정이 커지고 있다.늦여름에 돌연한 집중호우의 상흔이 아직 채 가시기도 전에 폭우와 강풍을 동반한 엄청난 위력의 회오리가 한반도를 할퀴면서 또 어떤 피해와 상처를 남길지 착잡하기만 하다. 벼나 과일 등 여러 농작물이 무르익어가고 민족의 명절 추석을 목전에 둔 시기에 이 무슨 자연의 내습이며 변고란 말인가?태풍은 자연현상의 한 부분이지만, 근자에 들어서는 발생빈도와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아마도 지구 온난화에 기인한 부분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실제로 태평양보다 평균적으로 수온이 1~2℃ 높은 대서양에서 발생하는 허리케인은 태평양의 태풍보다 훨씬 집중적인 피해를 입히고 있다. 2013년 이후부터는 기후 변동으로 인해 태풍 시즌이 늦어지면서 여름 태풍이 줄고 가을 태풍은 늘고 있으며, 대체로 가을 태풍이 더 큰 피해를 남기곤 한다. 태풍이 몰고 올라오는 무덥고 습한 북태평양의 열기가 남하하는 시베리아의 냉기와 충돌하면서 거센 바람과 함께 폭우를 뿌릴 가능성이 높고 농작물들의 수확을 앞둔 시기라 도복, 낙곡, 낙과 피해가 크기 때문이다. 또한 음력 7월 15일을 전후한 시기는 해수면이 연중 최고로 높아지는 시기라 해일이 일어날 위험이 어느 때보다 커진다.이러한 불가피한 태풍의 내습 앞에서는 선제적인 대응과 적극적인 준비태세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태풍의 진로와 시기는 얼마든지 예측 가능하고 상황에 따른 조치와 대비는 사전에 충분히 할 수 있다. 저지대 가옥 침수나 하천 범람에 따른 농경지 유실, 강풍으로 인한 시설물 파손과 절개지의 산사태 등의 위험개소에 대한 사전 점검과 배수로 청소, 둑 보강, 방류, 결속, 유도 등의 예방조치가 필요할 것이다.그에 따른 국민행동요령과 사전대응을 정부에서도 강조하며 자연재난에 대비한 태풍상황 점검과 확인을 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준비하면 근심이 없다(有備無患)하지만,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하고 대응해도 돌발적인 상황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도 있으니 간곡하고 적극적인 태세로 풍수해의 대비와 사전조치, 상황에 직면한 적절한 대처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특히 재난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피해와 고통으로 다가올 수도 있으니, 반지하 주택지와 해안가 저지대 등 취약지역에 대한 점검과 조치가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태풍 전야는 고요하기 마련이다. 누구를 탓할 수도 나무랄 수도 없는 자연현상이지만, 그저 태풍 전의 고요함처럼 거센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12시간 동안 국립보호구역이라는 ‘힌남노’처럼 한반도를 보호하며 사뿐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022-09-05

살아 있는 말을 작품으로… 가난한 미술 ‘아르테 포베라’

현대미술에서 1960년대는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전환이 진행되던 시기이다. 이미 20세기 초부터 회화나 조각 같은 전통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미술 형식들이 등장해 미술의 내연과 외연을 넓혀주었다. 어쩌면 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이 보여준 탈경계는 반세기전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현대미술에서 이탈리아는 지금까지도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수천 년의 미술을 이탈리아가 이끌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현대미술에서 이탈리아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1909년 마리네티가 일으킨 ‘미래파(Futurismo)’가 그나마 꿈틀거렸다 평가할 수 있지만, 그마저 세계대전의 발발로 금세 꺼지고 말았다. 1960년대 후반 중북부 이탈리아 주요 도시들에서 포스트모던을 대표할 만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미술사는 이 움직임을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라고 불렀다.아르테 포베라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것은 이탈리아 출신의 미술평론가이자 큐레이터였던 제르마노 첼란트(Germano Celant)이다. 첼란트는 미술가들이 사용한 값싼 재료에서 하나의 미술 운동으로 묶을만한 공통분모를 찾았다. 아르테 포베라를 대표하는 미술가로는 야니스 쿠넬리스,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 주세페 페노네, 마리오 메르츠 조반니 안셀모 등응 꼽을 수 있는데, 이들 모두 전통적으로 사용된 미술 재료 대신 주변에서 발견되는 흔하고 평범한 재료로 작품을 창작했다.아르테 포베라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은 쿠넬리스 1969년작 ‘무제(열두 필의 말)’이다. 쿠넬리스는 로마에 새롭게 문을 연 아티코 갤러리 지하 창고에 살아 있는 열두 마리 말을 전시했다. 쿠넬리스의 작품은 미술계 안팎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어떤 평론가는 쿠넬리스의 작품에 대해 “동물의 물리적 현존은 저속한 냄새와 소리가 갤러리로 침투했음을 의미했다. 미술가의 개입이 없었음이 명백하고 순전히 모방일 뿐인 이 작품은 창조로서의 미술이 사멸했음을 알리는 듯했다.”살아 있는 말을 전시했다는 파격적인 발상이 평론가의 심기를 아주 불편하게 한 모양이다. 하지만 반문한다. 이미 쿠넬리스 보다 반세기 앞서 뒤샹은 남성 소변기를 작품으로 제시한 적 있고, 미국에서는 앤디 워홀이 슈퍼마켓 진열대에 놓인 깡통을 작품으로 선보이지 않았는가. 미술가의 개입 없이도 미술작품이 탄생될 수 있는 시대였고, 엄격하게 보자면 미술가의 개입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쿠넬리스가 전시를 위해 살아 있는 말을 작품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쿠넬리스는 앵무새나 선인장과 같은 살아 있는 생명체를 작품으로 전시했다.쿠넬리스는 근본적으로 스스로의 미학적 정체성을 회화에서 찾았다. 그가 선택한 말들은 일종의 ‘살아 있는 그림(Tableau Vivant)’으로 볼 수 있다. 다른 관점에서 쿠넬리스의 작품은 20세기 미술을 혁신한 뒤샹의 업적을 계승해 살아 있는 말을 새로운 개념에서의 ‘레디-메이드’로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소변기를 그것의 원래적 기능이나 목적에서 떼어내 미술이라는 새로운 문맥에 배치해 작품이 탄생될 수 있었다면 살아 있는 말을 작품으로 전시한다고 해서 전혀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쿠넬리스는 작업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전통 미술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생소한 소재나 재료를 사용한다. 석탄이나 철근처럼 산업화와 공업화를 연상하는 작품이 있는가하면, 양모나 커피가루 등 문화와 현대사회의 경제구조를 암시하는 재료로 작품을 창작했다. 쿠넬리스의 작품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작품이 제작되고 설치되는 지역이나 국가의 문화적 역사적 장소적 맥락이다.특히 쿠넬리스는 작품을 통해 소비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획일화된 가치에서 벗어나 일상의 빈곤한 물건들 사이에 스며들어 있는 삶의 본질을 좇았다./김석모 미술사학자

2022-09-05

그 길밖엔 없어 <Ⅸ>

그날의 술자리를 기억해낸 우현이 노마에게 물었다.-그래서 그날 내가 한 말을 믿고 지금 이런 일을 벌이는 거야? 나한테 미리 말도 없이?-꼭 그런 건 아닌데. 네가 한 말이 생각나기는 했지. 내 주위에 이 방면으로 아는 사람이 너 말고 없잖아. 그리고 그 늙은이한테 너도 악감정이 있지 않냐. 내가 뒷이야기 하나 더 해줄까?우현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노마가 낯설었다. 이 녀석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무슨 이야긴데?-안나 임신했다. 그 늙은이의 아이란다.-임신? 그게 가능해?-임신했다니까. 가능하냐고 물을 문제가 아니지. 이미 현실인데.우현은 늙은이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다. 안나는 왜 피임을 하지 않은 거지? 설마 임신이 되겠어? 그렇게 생각한 건가? 우현은 안나의 생각이 궁금했다. 노마에게 다시 물었다.-그러면 아이 아빠를 죽이는 거잖아. 안나는 어떡하라고? 아이는? 안나도 알아?-당연히 안나는 모르지. 알면 날 가만 두겠냐? 아이는 일단 낳아야지. 그다음 문제는 다음에 생각하고. 늙은이의 자식인데 뭐가 걱정이야. 친자 확인하면 다 나올 건데. 걱정 안 해도 돼. 늙은이 재산이 좀 되니까 물려받는 것도 제법 될 거야.우현은 노마의 대답을 들은 뒤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창밖을 보기도 했고, 자고 있는 늙은이를 쳐다보기도 했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쉰 뒤 노마에게 물었다.-내가 얻는 건 뭔데? 복수?-넌 얻는 게 많지. 인공 장기, 복수, 그리고 운 좋으면 안나. 장례 치르고 나면 안나에게 연락해 봐, 예전하고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겠어? 아이는 안나와 네가 같이 키워도 되고 아니면 그 집안에 맡겨버려도 되고. 물론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야. 안나 하고 상의해 봐야지. 작업을 할 차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빨리 가야 해. 좀 밟는다.노마가 속도를 높이자 우현의 몸이 뒤로 쏠렸다.-이거 너 혼자 계획한 것 아니지?우현이 다시 물었다.-너, 그리고 내가 하는 거지.노마가 대답했다.-그런 대답 말고.우현이 노마를 다그쳤다.-더 이상 묻지 마라. 넌 나까지만 알고 있는 게 좋은 거지.직원이 다시 돌아왔다.-특별한 일은 없었고?우현이 물었다.-네. 특별한 말 없었습니다. 지난번 물건들도 모두 시술했는데 작동이 잘 되고 있답니다. 참. 그것도 이식했답니다, 폐. 이제 사무실로 출발하면 되는 거지요. 사장님.신경 써 주어서 고맙긴 해. 그래도 어쩌겠나. 내 직업이 형사인 것을. 우현 씨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없도록 할 게. 얼굴 한 번 봤으면 하는데. 가능할 것 같으면 연락 줘.허 형사에게서 문자가 왔다. 우현이 허 형사에게 문자를 보낸 지 일주일 만이었다. 나는 물건을 회수하고 넘긴 것뿐이야. 이 업계에서 일을 하려면 지켜야할 비밀이기도 하지. 나는 아는 게 없는 거지. 실제로도 그렇고. 그러니 해줄 말도 없는 것이고. 그런데 왜 이리 불편하지? 목구멍에 뭔가 걸린 것 같단 말이야. 기분이 더러워. 우현은 몇 차례 헛기침을 했고 손으로 가슴팍을 두드렸다. 문득 궁금해졌다. 허 형사는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우현이 허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저 우현입니다.-고마워. 그래. 만나주기로 한 거야?-네엡. 이렇게 간곡히 청하시는데 제가 어찌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대신 저를 만났다는 사실만 비밀로 해 주시면. 불법적인 일을 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형사 만나고 다닌다는 소문나면 이 업계에서 끝입니다.-알았어. 걱정 마.우현과 허 형사가 마주 앉았다. 반 팔 면티와 청바지를 입은 허 형사가 갈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하아. 천하의 허 형사님 패션이. 쥑입니다요. 사모님 코디입니까?우현이 웃으며 말했다.-우리 마누라, 죽었어. 이 년 전에.허 형사가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아니 어쩌다가. 가만 있자. 그러면 이식받은 지 삼 년 만에 돌아가신 거네요. 아이고. 이를 어째. 죄송합니다. 제가 그것도 모르고 실수를 했습니다. 아이고. 미인이셨는데. 아직 젊으신데. 아이고.허 형사의 눈치를 보며 우현이 호들갑을 떨었다.-괜찮아. 내가 말을 안 해 준 거니까. 좀 조용히 말해.우현의 호들갑이 신경에 쓰이는 듯 허 형사가 주위를 둘러보았다.-이식받은 콩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하긴 그랬으면 제게 먼저 연락을 주셨겠지만.-다른 문제로. 알겠지만 당뇨가 어디 한두 군데 이상이 생기는 게 아니잖아.허 형사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아 당겼다가 내쉬었다. 회색 연기가 테이블을 벗어나 옆 테이블로 넘어갔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커플이 인상을 썼다. 우현이 허 형사 대신 고개를 숙였다.-그렇기는 하지요. 그런데 저는 왜 몰랐을까요? 인공 장기 이식받으신 분이 사망하면 저 같은 업자에게 연락이 오는데. 아마 다른 업자에게 연락이 먼저 갔나 봅니다. 이 상황에서 드릴 말씀이 아니기는 하지만, 장기 값은 받으셨지요?-장기 값. 받기는 받았지. 받은 날 저녁에 다 써버려서 그렇지. 룸에서 술 먹고 이차 가고. 그렇게 다 써버렸어. /김강 소설가

2022-09-05

어른들 이기심에 상처받는 동심 없어야

인구 50만 규모의 포항이 때아닌 ‘학군 이슈’로 연일 시끄럽다. 최근 수년간 제철중학교와 효자초등학교 내에서 발생하고 있던 위장전입과 과대학급을 두고 갈등이 불거졌기 때문이다.곪고 곪아 언젠가 터져버릴 것으로 예상됐던 문제가 이번 효자초 예비 졸업생들의 제철중 배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되면서 지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누구보다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할 지역 국회의원은 그 와중에도 자신의 표심을 겨냥해 특정 지역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교육환경의 변화로 학생들이 피해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특정 지역의 편에 서버렸다. 양측을 중재하기는커녕 갈등에 기름을 들이붓는 꼴이었다.해당 발언은 효자와 지곡 분열의 커다란 기폭제가 되었고, 양측은 연일 ‘맞불 집회’를 강행하고 있다. 지속되는 비난과 비방에 양측 모두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만 가는 상황이다.이같은 과열 양상에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포항교육지원청과 포항시는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결국, 모든 책임은 학생 수요 예측 실패로 이같은 혼란을 일으킨 교육 당국의 무능력함과 무관심, 행정력 부재로 돌아가고 있다.대한민국의 학부모라면 누구나 자신의 자녀가 명문대에 입학하기를 소망한다. 다만, 학창시설에 어느 학교에 가던 공부를 잘하는 아이와 소위 ‘일진’으로 불리는 아이, 예체능을 잘하는 아이 등 여러 아이가 존재한다. 여기서 살펴볼 점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는 어딜 가든 열심히 하고, 놀 아이는 어디서든 논다는 것이다.‘학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아이의 마음가짐이다. 또한 아이가 아무리 공부를 잘한다 한들 인성이 바르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이미 제철중은 일개 중학교 학군의 의미를 넘어서 지역사회의 공간적·구조적 위계질서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하지만 위장전입과 학구위반 등 불법을 저질러서 해당 학교에 진학한다고 한들 과연 그 아이는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무사히 졸업할 수 있을까.이미 제철중 내에서도 재학생들 사이에서 출신지를 나누고 그에 따라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또 지곡단지 내에는 ‘효자초 OUT’이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게재됐고, 이를 본 학생들은 가슴에 큰 상처를 입었다.어른들의 싸움에 애꿎은 아이들만 피해를 입게 됐다.부모가 무엇이든 앞장서서 다해 주는 아이는 무조건 부모에게 의지하려고 하고, 세상을 쉽게 보는 경향이 있다.어려서부터 꼼수나 편법을 배운 아이는 커서도 남을 배려하려는 마음보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자신의 이기심을 충족시키려 한다.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무한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일그러진 자식 사랑이 부모와 자식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 오히려 고운 자식일수록 매 한대를 더 때린다는 각오로 대해야 한다. 부모들의 이기적인 욕심에 동심을 멍들게 하는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희망한다./이시라기자 sira115@kbmaeil.com

2022-09-04

이재명, 떳떳하면 검찰에 가라

김진국 고문 “전쟁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보좌관이 보낸 문자를 노출했다. 민주당은 ‘정치 보복’, ‘야당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죄 없는 김대중(DJ)을 잡아갔던 전두환이나 죄 없는 이재명을 잡아가겠다는 윤석열이나 뭐가 다른가”라고 말했다.‘이재명의 민주당’이 되었으니 충성 경쟁을 하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DJ에 비유하는 건 DJ를 욕보이는 일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80년 서울의 봄 이후 정치권의 유력인사를 모두 묶었다. 군사재판에서, 없는 죄도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인용해 집권당을 쑥대밭으로 만든 법원이다. 이재명 대표의 혐의는 일반 국민이 보기에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은데다 제대로 해명을 안 하고 있다.이재명 대표는 “국민이 맡긴 권력은 민생을 챙기고 위기를 극복하는 데 써야 한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수사하지 말라는 말이라면 지나치다. 민생을 챙긴다고 수사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나. 이 대표에 대해서는 이미 큰 의혹이 드러나 있다. 이 대표를 위해서도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정치로 풀어야 할 건 사법부에 미루고, 법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정치 쟁점화하는 정치권의 행태가 정치를 더 위기로 몰아넣는다.민주당은 ‘왜 6일이냐’라고 항의한다. 추석 밥상 이야깃거리로 만든다는 것이다. 선거법 위반 사건 공소시효가 9일이라 더 미룰 수 없다는 검찰의 해명이 일리가 있다. 대통령 선거 때는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뒤에는 지방선거가 있었던 데다 이 대표도 보궐선거 후보로 나섰다. 바로 이어 민주당 대표 경선이 있었다. 그러니 검찰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보인다. 제1야당 대표이니 서면 조사를 해도 되지 않느냐는 불만도 있다. 검찰은 서면 조사를 위해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접촉할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이재명 대표는 “먼지털이 하듯이 털다가 안 되니까 엉뚱한 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았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소환한 건 선거법 위반 혐의 세 가지다. 수사 중인 다른 혐의들은 아직 꺼내지 않았다. 그러니 ‘꼬투리’로 끝난 것 같지는 않다. 또 말꼬투리라기엔 범죄를 전면 부인하는 중요한 말이다. 정직은 정치인을 판단하는 중요한 덕목이다. 거짓말로 위기를 넘기고,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하는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하나는 백현동 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를 자연녹지에서 준주거지역으로 4단계 상향해준 특혜 의혹과 관련이 있다. 이 대표는 “국토부가 (용도 변경을 안 해주면) 직무 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남시 주거환경과는 2014년 12월 국토부 질의를 거쳐 ‘단순 협조 요청’이라고 당시 이재명 성남 시장에게 보고했다. 용도 변경 신청을 계속 반려하다, 이 대표의 측근이 개발사에 참여한 뒤 이듬해 5월 요청보다 2단계 더 높여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했다.두 번째는 이 대표가 대장동 개발 사업 관련자인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하위 직원이라 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9박 11일 해외 출장 때 수행한 사진이 나왔다. 세 번째는 대장동 초과이익 환수 조항 삭제와 관련한 이 대표의 지난해 국정감사 발언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직원의 환수 조항 추가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가 이틀 뒤 국토교통위원회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전혀 들은 바 없다”고 뒤집었다.정치 보복을 위해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면 안 된다. 하지만 그게 무서워 정치인의 범죄를 무조건 덮을 수는 없다. 가뜩이나 불신받는 정치권을 비리 덩어리로 방치하자는 말이나 다름없다. 특히 선거법은 엄격하다. 사소한 거짓말로 당선 무효가 된 판례가 있다.이게 끝이 아니다. 대장동·백현동 본안과 변호사비 대납, 법인카드 불법 사용 의혹 등이 기다리고 있다. “내복은 쌍방울을 잘 입고 있다”라는 말장난으로는 국민의 의혹이 풀리지 않는다. 당당하게 진실을 소명해야 국민도 안심한다. 무리한 정치 탄압이라면 그때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9-04

세상을 바꾸는 ‘긍정의 힘’

신현국 문경시장 문경시는 민선8기 슬로건을 ‘긍정의 힘! yes 문경’으로 확정했다.‘긍정의 힘! yes 문경’ 슬로건에는 1%의 가능성에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희망의 마인드와 시 발전을 향한 강한 의지, 완성될 문경 건설의 자신감을 함축해 담았다.‘Yes!’, ‘긍정의 힘!’은 공직 사회와 우리 시 전체를 역동적인 분위기로 변화시키고 있으며, 그 힘은 얼마나 큰지, 취임 1달 만에 체감할 수 있었다.지난 한 달간 우리 시는 4건의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1천억 원이라는 큰 금액이 투입되고, 39만평(129만㎡) 규모의 골프장을 조성하는 버드힐 문경CC 조성사업, 항공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경비행장 훈련장 유치를 위한 항공테마파크 조성사업에 지난 7월 8일과 12일에 각각 업무협약을 맺었다.또한, 7월 25일에는 영화종합촬영소 설치와 영상산업 기반 구축을 위해 경상북도와 함께 우리나라 대표 영화촬영업체인 봄내영화촬영소와 업무협약을 맺었다.3일 뒤인 28일에는 패러글라이딩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식을 연이어 맺었다. 문경 단산활공장은 한때 국내외 패러글라이딩 선수와 관계자들이 1번지로 손꼽을 만큼 풍광과 활공조건이 우수했고 관련 대회도 자주 열렸던 곳이다. 활공 1번지의 옛 명성을 되찾고, 각종 대회를 유치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힘을 쏟고자 한다.각종 체육대회에서도 문경의 ‘긍정의 힘’은 어김없이 발휘됐다. 역대 경북도민체육대회에서 우리 시는 인구, 선수단 구성 등이 모두 열악하여 만년 꼴찌를 면치 못했었다. 하지만 지난 제60회 경북도민체육대회에서는 꼴찌를 탈피해 9등을 했고, 8등과는 1점차, 7등과도 3점차에 불과한 성적을 거뒀다. 게다가 1천500m 달리기가 주 종목인 한 육상 선수는 남자 단축마라톤에 출전해 국내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대표 선수를 꺾고 1위를 달성하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제59회 대통령기 전국 장사씨름대회에서도 우리 문경팀은 창단 3년 만에 첫 단체전 우승을 기록했고, 개인전 또한, 3명의 선수가 1위를 기록하는 큰 성과를 이뤘다. 놀라운 결과였다.행동은 우리의 생각 속에서 시작된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어렵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정말 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부정적인 생각에 나 자신이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다.문경을 살릴 길은 개발과 유치에 있다.소극적인 행정, 부정적인 행정으로는 민간의 대규모 투자 사업을 유치하기 어렵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행정만이 대규모 투자로 연결되고, 지역 발전을 이끌 수 있다.인간의 역사 역시 1%의 가능성에 확신을 가지고 도전했던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 왔다.천재 과학자라 불리는 에디슨은 백열전등을 만드는 데 무려 1천200번이나 실패하였고, 친구가 포기하라고 했을 때에도 절망하지 않고 다시 실험해 1천201번째에 성공했다. 아인슈타인 다음의 천재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21살 때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고, 2년 밖에 못 산다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는 병과 싸워 이겨 냈고, 읽고, 말하고, 쓰는 것이 다 어려운 상태에서도 이론 물리학의 중요한 업적들을 출판했다.행정에서도 모든 일에 긍정의 마인드를 갖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 업무에 정성을 다하고, 현장을 찾아 답이 나올 때 까지 고민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작은 것 하나, 민원인 한 명, 한 명을 소홀히 대하지 말아야 한다.‘문경 발전’이라는 의지를 시민들에게 인정받아 11년 만에 다시 문경시를 이끌게 됐다. 그동안 문경 곳곳을 누비며 시민과 소통하고 문경 발전과 화합에 대해 고민한 그 노력에 시민들이 지지를 보내주신 것이다. 이젠 그 지지에 응답할 차례이다.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고 문경에 도움이 되는 일은 무조건 도전해 문경에 긍정의 새 바람, 새로운 도약을 일으킬 것이다.

2022-09-04

금붕어는 살아있을까

진한 커피로 식곤증을 몰아낸다. “쾅” 대포 소리같이 우렁차지만 짧은, 몇백 년 된 나무가 한순간에 쓰러질 때나 나는 소리였다. 덜덜덜 책상이 마구 흔들렸다.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순간, 지진인가, “움직이지 마” 아이들에게 소리 질렀다.나는 있는 힘을 다해 책상을 붙들었다. 꽉 잡은 손에도 아랑곳없이 책상은 책을 흩뜨리고 연필을 굴렸다. 두려움에 확장된 아이들의 눈동자가 나에게 쏠렸다. 눈빛으로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런데도 한 아이의 눈동자가 파르르 요동치자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울음을 터트리려 한다. 어디선가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어항 유리에 금이 가고 있었다. 그 순간, 금붕어 한 마리가 어항 밖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러고는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물살에 휩쓸린 다른 금붕어는 바닥으로 쏟아졌다. 바닥에는 금붕어들이 파닥거리며 뛰어올랐다. 흔들림이 진정되었다.휴대전화, 지갑, 자동차 열쇠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겁에 질린 아이들을 다독이며 계단을 내려가는 길은 한층 한 층이 십층을 오르내리는 만큼이나 힘이 들었다. 휴대전화가 요란스럽게 들썩거렸다. 놀란 학부모들이다. 아이의 안위를 묻고는 당장 데리러 오겠단다. 내 전화기에도 불이 났다. 아들과 딸이 엄마의 안부를 챙기느라 전화기가 뜨겁다.나는 자동차를 공터에 주차하고 이곳저곳을 서성거렸다. 문득, 파닥거리며 물을 찾고 있을 금붕어가 생각났다. 하루에도 수십 번 어항 속을 들여다보았다. 먹이를 줄 때나 둥둥 떠다니는 부유물을 걷어 낼 때도 살폈다. 커피잔을 들고서도 어항 앞을 서성거렸고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어항을 보았다. 금붕어가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다가가 어항을 건드려 보기도 했다. 그러면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모습에 안도의 숨을 쉬었다. 수시로 안부를 물으며 눈길을 보낸 금붕어였다.몇 시간이 지나고 집에 들어가 먼저 금붕어를 살폈다. 바닥에 널브러진 금붕어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다가가서 보니 길쭉한 타원형의 물방울 안에 쓰러져 있다. 다행히도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이 바닥에 있었다. 어항이 깨지면서 쏟아진 물이었다. 한 마리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에 기운을 차렸는지 꼬리를 들었다가 다시 떨어뜨렸다. 급한 대로 투명한 볼에 수돗물을 받았다. 축 늘어진 금붕어를 그릇에 담고 물을 넣었다. 그런데 꼼짝하지 않는다. 급하게 하느라 물의 온도에 신경 쓰지 못했다. 낯선 물의 온도에 놀라고 몇 시간째 방치된 몸이 회복하기에는 힘이 드는가 보다. 그런데도 한 가닥 희망을 품고 금붕어가 살기 바랐다. 투명한 볼에 두었던 금붕어가 꼬물꼬물 헤엄을 치고 있었다. 위독하던 자식이 살아난 양 기뻤다.수족관으로 전화했다. 좀 더 넓은, 환경이 좋은 새집을 구해주고 싶었다. 모래, 자갈, 수초 등 새 친구를 들인 수족관은 반들거리며 빛이 났다. 이렇게 살아난 금붕어가 새로 마련한 수족관에서 여유롭게 헤엄친다. 금붕어도 살아났고 일상도 제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후유증은 남았다.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도 안절부절못한 일이 자주 생겼다. 윗집에서 청소기 돌리는 소리에도 깜짝 놀라 몸이 경직되고, 윗집 아이들이 거실을 뛰어다녀도 집이 무너질 것 같아 불안했다. 휴대전화의 진동 소리에도 지진이 일어난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아이들이 잊지 않고 물었다. 물에서 벗어난 금붕어는 어떻게 숨을 쉬었는지, 금붕어가 놀랄 때는 어떤 반응을 하는지, 금붕어도 우리처럼 소리에 놀랐는지, 아파하는지. 아이들도 금붕어가 살아남았다는 소식에 환호를 질렀다. 생명은 무엇보다 귀하다. 나, 아이들, 금붕어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만약 금붕어가 죽었다면 또 다른 후유증이 되어 한참 나를 괴롭힐 것이다. ‘금붕어야. 살아주어서 고맙다’

2022-09-04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

김규종 경북대 교수 교과서에 실린 안톤 쉬나크(A. Schnack·1892∼1961)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학창 시절에 여러 번 읽었다.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가을날 비는 처량히 내리고, 그리운 이의 인적은 끊어져 거의 일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이렇게 시작하는 미문(美文)의 결정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깊이 물든 선홍색 단풍잎처럼 마음이 내려앉아 있을 때, 나는 쉬나크의 글을 읽었다. 더러는 깊은 한숨을 동반하고, 더러는 이국적인 풍광과 습속으로 인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랬던 박박머리 소년은 청년을 지나 중년의 기나긴 터널을 거쳐 초로의 입구에 있다. 쉬나크가 절절하게 써 내려간 아련한 슬픔 같은 것이 내겐 없다.장 자크 루소는 ‘에밀’(1762)에서, 레프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1869)에서 인간을 괴롭히는 두 가지를 지적한 바 있다. 그 하나는 양심의 가책이고, 그 둘은 육체적 고통 혹은 질병이다. 톨스토이가 프랑스어 원문으로 ‘에밀’을 읽고 난 기억을 더듬어 소설에서 루소와 같은 생각을 피력했다고 나는 짐작한다. 육체적 고통과 질병은 표현만 다를 뿐 같은 성질의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둘을 제외한 모든 고통은 상상의 결과라고 말한다.우리가 깊은 괴로움에 시달리는 이유를 돌이켜보면 그들의 사유가 타당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로이트 이후 정형화된 이른바 ‘트라우마 이론’은 고통의 원인을 모두 과거에서 유추하는 원인론 혹은 인과론이다. 과거에 깊은 슬픔이나 마음의 상처 또는 육체적 고통을 겪은 사람은 예외 없이 지금도 괴롭고 죽기 전까지도 괴로울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이런 생각을 하면서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에서 쉬나크의 글을 떠올린다. 그러다 홀연히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에 생각이 미치는 것이다. 나이 먹은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젊은 날의 치기 어린 광기나 어리석음일까, 비난의 칼날로 상대를 괴롭힌 일이었을까, 아니면 명절에도 부모님을 찾아뵙지 않은 불효였을까?! 아니면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해놓고 없던 일처럼 치부해버린 후안무치였을까?!영원히 사라져버린,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나락으로 떠나간 시간과 관계와 사건을 돌이킴은 어리석은 노릇이다. 하지만 그런 반추와 성찰에 담긴 어둑한 자신과 나누는 대화에는 분명 치유 이상의 힘이 있다. 오래전부터 나를 아프게 했던, 하여 기억의 씨줄과 날줄에 깊이 새겨진 고통의 현장을 눈앞에 끄집어내서 용감하게 대면하는 일이야말로 다가올 날들을 예비하는 현명한 자세 아닐까, 한다. 나를 아프게 하는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것은 아마도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진실하지 못했던 자세 아니었을까. 지금이라도 그들과 대면한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차분한 9월 초순의 아침나절이 고요히 지나간다.

2022-09-04

초강력 태풍 힌남노, 빈틈없는 대비를

추석 연휴를 앞두고 역대급 태풍이 한반도쪽으로 북상하면서 전국이 비상이다. 역대급으로 불리는 제11호 태풍 힌남노는 최악의 태풍으로 꼽히던 2003년 매미와 1959년 사라호 태풍을 능가하는 위력이라 한다. 철저한 대비가 없으면 큰 피해가 우려된다.기상청은 “태풍 힌남노가 세력을 키워 현재 한반도쪽으로 접근 중에 있다”고 밝히고 “내일 새벽 2시쯤 서귀포 동쪽 해상을 지나 이날 아침 9시쯤 부산경남 해안에 상륙해 오후 동해안을 거쳐 빠져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최고 600mm의 호우와 초속 60m에 달하는 폭풍이 동반된다고 했다. 태풍은 중심기압이 낮을수록 위력이 강한데 힌남노의 중심기압은 950ha로 사라와 매미보다 낮다. 기상청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피해가 날 수 있다”며 철저한 대비를 당부했다. 2003년 9월의 태풍 매미는 비바람을 몰고 한반도에 상륙해 영남지역을 초토화한 바 있다. 119명이 사망하고 12명이 실종됐으며, 4조2천억원의 재산 피해를 냈다. 이재민 수가 6만명을 넘었다.태풍의 진로를 바꾸는 것은 사람이 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람의 노력으로 피해는 줄일 수 있다. 역대급 태풍이라지만 당국과 주민의 철저한 사전 대비와 노력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다.이번 초강력 태풍 영향권에 가장 근접한 남부지역과 동해안지역은 대체로 취약지가 많은 곳이라 큰 피해가 우려된다. 특히 경북 울진, 영덕 등 동해안지역은 매번 태풍 피해를 경험한 지역이어서 침수와 범람 등에 대비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다시 없도록 하여야 한다.침수가 예상되는 곳에 양수기 등을 미리 배치하고 사전 점검을 통해 농작물과 과수 및 농업시설물에 대한 안전조치도 서둘러야 한다. 많은 비가 예상되면서 하천 범람, 산사태 등으로 인한 피해도 예상된다. 특히 인명피해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배수로 정비나 간판과 지붕이 날아가지 않도록 고정하는 작업도 필수다. 재난 대비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준비하는 것이 좋다. 당국과 주민의 철저한 대비가 피해를 줄이는 최선책이다.

2022-09-04

팬덤소비

우정구 논설위원 팬덤(fandom)은 특정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영어의 광신자를 뜻하는 퍼내틱(fanatic)과 영지(領地)를 뜻하는 덤(dom)의 합성어다.팬덤문화는 TV가 널리 보급되면서 연예계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와 경제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연예인에 대한 열렬팬 경지를 넘어 극성 지지층 형태로 바뀌어 논란도 잦다.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형적인 팬덤 정치인이다. 그의 팬덤 추종자가 벌인 의회 난입사건은 팬덤정치의 진면목이다. 국내서도 노사모에 이어 개딸(개혁의 딸) 등으로 불리는 팬덤정치가 유행하고 있다. 지난 20대 대선 이후 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극성 지지층이 대표적인 팬덤이다.팬덤 정치는 대다수 국민의 생각이 반영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민심보다는 극성 지지자의 입장과 이득만 반영하는 정치란 점에서 비판도 거세다.BTS의 세계적 인기도 팬덤현상의 하나다. 오프라인 활동 하나없이 유튜브에 뮤직 비디오만 올렸을 뿐인데 메이저 차트를 모두 점령해 버린 것은 팬덤소비의 위력 덕분이다.명품 매장에서나 볼 수 있던 줄서기를 최근에는 동네 편의점서도 구경할 수 있었다. 포켓몬빵을 구입하려는 소비자의 극성 구매행위를 두고 소비에서도 팬덤이 등장했다는 평가다. 소비자의 선호가 가격이나 효용성보다는 즐거움이나 재미를 추구하는 쪽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이다. 물건 자체의 가치보다 재미가 가미돼야 소비자가 지갑을 연다는 분석이다.개성이 존중되는 MZ세대 중심으로 소비시장의 흐름이 급변하고 있다고 한다. 세대 격차를 실감할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9-04

경북도 ‘시스템 반도체’ 핵심기지 꿈꾼다

한국 근대화의 산실인 경북도가 ‘시스템 반도체’ 산업 육성으로 우리 경제의 미래동력을 만들어 내겠다고 선언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 1일 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 반도체 산업 전략에 발맞춘 경북 반도체 산업 발전 방안을 발표했다. 2031년까지 10년간 반도체 산업의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장 편중에서 벗어나 전문가 2만명을 양성해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분야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내용이다.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경우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14%로 세계 2위이지만,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3.0%에 불과하다. 출판업을 예로 들면 책을 기획하거나 집필하지는 못하고 인쇄만 대신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주도하는 파운드리 시장도 1위 TSMC와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고, 후발주자인 인텔의 도전도 받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시스템 반도체 기술이 선진국의 서열을 가리는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경북도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시스템 반도체 인력을 대거 양성해 미래시장을 개척해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우선 지난달 4일 시행된 국가첨단전략산업법에 따라 정부로부터 구미반도체 특화단지 지정을 받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해당 법은 정부가 전략산업 특화단지를 지정하면 그에 대한 인·허가 및 기반시설을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반도체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나노 반도체 융합연구원’을 설립해 차세대 모빌리티 반도체 소자, 설계 등의 기술을 개발할 방침이다. 시스템 반도체 전문가 2만명 양성을 위해서는 특성화고, 대학, 대학원 등에 산업 현장 인력 수요에 대응한 재직자 맞춤교육과 계약학과 개설 등을 준비하기로 했다.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SK 최태원 회장을 만나 경북도반도체클러스터 조성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으며, 상당부분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도지사의 ‘경북 반도체산업 초격차전략’ 구상이 현실화돼 경북도가 시스템 반도체 생산의 국제적 허브가 되길 기대한다.

2022-09-04

누이이며 어머니인 지구

강길수 수필가 8월 마지막 주일. 주보(週報)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가 요약, 게재되어 있다.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재개된 주일미사 때부터 미사 전 주보를 읽는 버릇이 생겼다. 빨리 와야 성당 내에 앉을 수 있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유행 전에는, 주보를 공지 사항 위주로 대강 보고 넘어갔다. 신문도 관심 가는 기사 이외에는 제목으로 대충 흐름만 파악하곤 했다.담화를 읽는다. 둘째 단락 첫 문장이 가슴에 와 박힌다. “우리의 ‘누이’이며 ‘어머니’인 지구가 울부짖습니다.”라는 구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찬미 받으소서’를 발표했다는 사실은 가톨릭신문을 통해 전에 본 적이 있으나, 그 내용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다. 환경 분야에서 일해 왔고, 자칭 생태론자로 믿기에 내용은 비슷하리라 여겼었다.한데, 주보의 담화문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자신의 안일과 타성을 질책하고, 깨부수는 마음이 뒤따른다. 지구가 바로 우리의 ‘누이’라는 말 때문이다. 전에 ‘가이아 이론’이나 ‘아메리카 인디언 추장의 편지’ 등을 읽으면서, 대지와 지구가 ‘우리들의 어머니’란 비유는 보았으나 ‘누이’란 은유는 오늘 처음 만난 것이다.웹사이트를 검색해보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7년 전 발표한 회칙 이름 ‘찬미 받으소서’는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에서 따온 것이었다. 자연과 소통하며 동물들과 대화했다는 성 프란치스코는, 9세기나 앞선 생태주의 선각자였으리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할 인간의 삶을 몸소 실천하여, 본으로 살아낸 성자 프란치스코…. 그가 새 떼들과 말하며 함께 사는 옛 영화의 한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누이’와 ‘어머니’란 두 말에서 어떤 어감의 차이를 느끼는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차이는 ‘누이’가 ‘어머니’보다 더 곱고, 아련하며, 가련하다. 어머니는 약하지만, 누구보다 강한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이는 어머니가 되기 위해, 커가는 여린 나무이지 않은가. 지금 우리 지구는, ‘가련한 누이의 처지’일 것이다. 때문에 ‘누이’란 말이 가슴을 파고든다.기후변화로, 북극의 빙하와 영구동토가 녹는 현장을 답사한 방송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영구동토 해동은, 지구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이라 했다. 해동에 따라 동토층에 묻힌 메탄 등 가스가 분출되고, 모르는 미생물들이 유출된다. 이런 현상들이 기후와 생태계에 미칠 영향은, 미증유의 재난이 될 것이란 결론이었다.슬프게도 우리의 누이 지구는, 중병이 들었다. 제 몸에서 난 게 아니라, 인간에 의해 큰 병에 걸렸다. 개발을 앞세워 무분별한 환경훼손을 일삼고, 온실가스 과량 배출 등으로, 인간은 지구 누이에게 코로나19보다 더한 악성 바이러스가 되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교황이 말씀하는 ‘지구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이면서’ ‘생태적 회개’를 하고, 그 개선 내용을 실천해야 한다.‘우리 누이 지구’가, 하루빨리 중병에서 일어나 해맑게 웃을 수 있도록….

2022-09-04

이해하기를 멈추지 마

유영희 작가 올해 들어 건강관리를 잘 해오고 있는데 며칠 전 대수롭지 않은 운동 한 가지를 하다가 허리 근육에 이상이 와서 3일 동안 허리를 펼 수 없었다. 한의원에 가서 사연을 말하니 원장이 침을 놓아주며 이런 말을 한다. 원장의 친척 중에 무용하다가 운동 치료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령을 하나 들어도 근육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다 느낀다고 하더라. 이렇게 느끼다 보면 어떤 동작이 내 근육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게 되고 무리하지 않게 된다. 아무리 좋은 운동이라도 내 몸에 안 맞으면 독이 된다면서 남이 좋다는 운동 따라하지 말고 자기에게 맞는 운동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또, 운동량은 많은데 근육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반동을 이용해서 하거나 동작 하나하나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그 말을 듣다가 소설의 한 장면이 단박에 떠올랐다. 테드 창의 ‘이해’라는 단편인데, 주인공 리언이 호르몬 K 요법을 받은 후 지능이 너무 높아져서 기억력도 좋아지고 어떤 것을 보아도 ‘패턴’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다. 소설에서는 패턴을 보는 능력 때문에 리언이 파국을 맞기는 하지만, 작가가 패턴을 보는 힘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 내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주인공이 자기 몸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지면서 근육의 전기장으로 근육 내부의 긴장까지 감지하기에 이르고 자기 몸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되는 대목이다. 이런 소설의 가정이 아주 허무맹랑해 보이지는 않더라는 이야기를 원장에게 하면서, 운동 중 허리에 통증이 왔는데도 멈추지 않은 나의 무지에 실소가 나왔다. 더불어 이런 무지는 관찰력 부족에서 온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관찰 대상 중에서도 특히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관찰은 성공한 삶, 행복한 삶을 위한 나침반이다. ‘그냥 하지 말라’의 저자, 기업인 송길영의 강연 영상을 보니, 자신을 잘 팔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유니크함, 오리지널리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그냥 하지 말고 숙고하면서 하라고 강조한다. 서두르지 말고 단계별 퀄리티를 충분히 수행하면 내 몸에 근육이 쌓이고, 이렇게 숙고를 통해 구축된 유니크함에는 반드시 공명하는 사람들이 다가온다고 청중을 설득한다.이제 거의 국민가수로 등극한 임영웅의 노래는 감성 장인으로 불릴 만큼 부드러우면서도 울림이 있다. 어느 블로그를 보니, 임영웅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수만 개의 조합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소리를 찾은 후에 그것이 몸에 익을 때까지 수없이 연습한다고 한다. 임영웅의 독창성 역시 자신에 대한 충분한 관찰과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니, 그냥 목소리와 창법을 따라한다고 해서 비슷한 울림을 줄 수는 없다.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는 대단한 성취를 위해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일상의 모든 순간에 우리가 이해하기를 멈출 때 몸도 다치고 일도 망치고 마음도 불행해진다. 충분한 관찰을 통해 나에게 맞는 동작을 알고, 나의 유니크함을 발견하며, 나의 목소리를 찾는 것은 건강과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2022-09-04

내부 총질과 수박 논쟁도 필요하다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국민의힘 당 내부 총질문제가 당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윤 대통령의 격려 메시지와 체리 따봉이 당의 내홍으로 번지고 있다.윤리 심판원의 6개월 징계로 정치 생명이 끝날 것 같았던 이준석 당 대표의 정치적 생명은 일단 연장되고 있다. 사법부의 가처분 인용 이후 의원 총회는 5시간이나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 당규를 개정하여 새 비대위를 구성한다는 방침으로 당 내분은 일단 봉합되었다. 안철수, 조경태, 하태경, 윤상현 등 당내 중진들은 새로운 비대위 구성에 반대하고, 권성동 원내대표의 우선 사퇴를 주장하고 있어 당내 반발은 심상치 않다. 긴급 의원 총회의 무기명 비밀 투표 없이 거수로 통과시킨 결정을 절차상의 문제라는 비판도 따랐다.당 대표의 징계가 형식은 성상납 무마의혹이지만 대선시의 내부 총질에 대한 응징임은 분명해지고 있다. 새 비대위 구성과 이준석 대표의 또 다른 가처분 신청이 여당의 내홍으로 이어질 전망이 높다.민주당도 지난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수박 논쟁’으로 내부 갈등은 심각하였다. 이재명 후보의 승리로 내홍은 표면적으로 진정되었으나 앞으로 재연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후보 경선 과정에서 친명 강성 지지층은 상대 후보측을 ‘수박’에 비유하여 힐난하였다. 겉이 푸른 수박을 깨보니 속은 붉어 표리부동(表裏不同)의 상대를 빗댄 용어로 사용한 것이다. 상대 후보인 친낙 측의 정체성을 비난하고, 이를 친명 측의 팬덤 정치 강화에 활용한 것이다. 이러한 상대의 선명성을 비난하는 전술은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과거 사꾸라 논쟁과 같이 야당사에 종종 등장했던 정치 술책이다. 과거 군부 권위주의 정권시절 민주당내에서는 상대측을 ‘낮엔 야당, 밤엔 여당’하는 사꾸라로 비난하였다. 또한 정치적 라이벌을 2중대라고 비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 정체성 논쟁에서 비롯된 것이다.여야의 내부 총질과 수박논쟁을 보는 시각에 따라 평가는 다를 수 있다. 내부 총질을 당하는 측에서는 그것은 당의 분란이며 선거의 패배 등 해당행위라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당 지도부를 겨누어 총질하는 입장에서는 그러한 행위를 당 개혁을 위한 불가피한 애당행위로 강변한다. 수박 론 역시 당 구성원들의 상대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지만 정당내 공개적 토론을 통해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 해당행위로만 볼 수 없다. 그러므로 내부 총질이나 수박 논쟁 등도 당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문제제기로 수용해야 할 사안이다.민주적 정당이라면 당내의 다양 다기한 주장과 문제제기는 폭넓게 포용하고 수용해야 한다. 현대의 정당은 대체로 당권파와 비당권파, 정책면에서는 강경파와 온건파, 매파와 비둘기파로 나뉘어 대립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 내부의 총질도 수박 논쟁도 그것 자체를 죄악시하거나 단죄할 것이 아니다. 당의 민주적 용광로에서 제련되어 합리적 정책으로 승화되어야 할 문제이다.우리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정당간의 정권 교체를 두 번이나 성공한 민주화의 상징 국가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당정치는 아직도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의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내부 총질에 따른 젊은 당대표에 대한 가혹한 징계도 한국 정당 정치의 후진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우리정치가 그간 제도적 민주화에는 성공했으나 정당정치의 민주적 질서는 수립하지 못한 결과이다.과거 3김 시대의 보스 정치, 줄서기 정치, 카리스마 정치 시대도 종식된 지 오래지만 우리 정치인들은 아직도 상부의 눈치를 보는 줄서기 정치에 익숙해 있다. 우리의 비민주적 정당 정치는 당 발전을 위한 용기 있는 제안마저 ‘내부 총질’로 오해받고, 상대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수박 논쟁으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정당의 활동까지 정치적으로 해결치 못하고 사법부의 심판 대상이 되는 현실이다. 이 모두 우리의 수직적인 경직된 권위주의적 정당 구조의 산물이며 우리 정치문화의 한계 때문이다.여야는 이번 사태를 당내 민주주의 발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집권 초반의 지지율 하락이나 집권 여당의 대혼란도 대통령에 기댄 당권 파, 윤핵관이 자초한 비극이다. 30대 당 대표에 대한 대통령과 당 관료의 누적된 냉소적 태도가 사태를 더욱 키웠다. 시대정신과 여론은 저만치 앞서가는데 우리의 정당정치는 아직도 과거의 보스 정당시대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는 당료의 오만과 국회의원들의 침묵의 카르텔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공천을 의식하여 당 지도부나 상부의 눈치만 보면서 복지부동하는 의원들의 태도는 결코 당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내분의 수습을 위한 의원 총회에서부터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는 허심탄회한 토론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정당은 결코 위로부터 정해진 방침이 관철되는 관료기구가 아니다. 늦었지만 당의 논의 구조부터 민주화시켜야 바람직한 당의 진로가 결정될 것이다.

2022-09-04

흔들리는 철강도시 포항, 시민 응원 절실

이금옥 PHP(포스코 우수공급사) 협의회 대표 포항시는 명실상부한 철강도시이다. 1968년 포항제철 설립 이후, 많은 철강업체들이 포항제철을 따라 포항에 모여들었고, 그 결과 포항은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굴지의 철강기업들을 보유하게 되었다.현재 포항의 철강 관련 기업은 350여 개에 달하며, 철강업 종사자는 약 3만 명에 육박한다. 철강산업이 포항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그러나 반세기 포항 경제의 주축 역할을 해왔던 철강 산업이 최근 흔들리고 있다.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철강 제품 수요가 줄고,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다 고물가·고유가·고금리의 ‘3고(高)’ 현상까지 겹치면서 전 세계 경기가 둔화되자 철강산업도 타격을 피해 가지 못하는 상황이다.철강 시황이 좋지 않은 만큼 포항철강 공단에도 불황의 먹구름이 감돌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초반 경기 악화 여파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다른 고비가 온 것이다. 포스코를 비롯해 철강공단에 설비·자재를 납품하는 공급사들의 사정도 심각하다. 실제로 포항지역 내 철강 관련 기자재 공급사들은 매출 감소와 이로 인한 고용 불안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6월 기준 포항철강공단 내 업체들의 가동률은 87% 수준이었다.수주가 줄어들자 휴업, 폐업한 공장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철강공단의 상시 고용인원도 전년 6월 대비 200여명 감소했다. 철강업체들에 납품하며 수익을 얻는 공급사들은 덩달아 허리띠를 졸라매며 불황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민과 포스코가 한마음이었던 과거에 대한 향수가 그리워진다. 2006년 포스코가 해외로부터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될 위기에 처했을 때 포항 시민들은 몸소 주식갖기운동을 펼치는 등 ‘지역기업 지키기’에 매진했다. 당시 포항시민들의 마음에 포스코 직원들만 눈시울을 붉힌 것은 아니었다.포스코에 납품하는 공급사도 지역사회의 간절한 움직임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포스코가 지역 경제, 나아가 한국의 소·부·장(소재, 부품, 장치) 산업 발전과 얼마나 깊이 연관되어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그런데 최근 포항 지역사회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지역 곳곳은 붉은 현수막으로 물들어 있는 모습이다.번화가, 교차로 등 통행이 많은 곳은 어느 읍면동 할 것 없이 볼 수 있는데 현수막 색상만큼이나 내용도 원색적이고 자극적이다.급기야 포스코 직원들은 최근 회사에 대한 과도한 비방을 중단해달라며 결의대회와 인간띠 잇기에 나섰다고 한다. 회사를 지켜달라고 피켓을 든 직원들의 모습을 보며 한 회사를 이끄는 경영자로서 그 심정이 이해가 가고, 한편으로 처절하게까지 느껴졌다.포항상공회의소의 발표에 따르면 지역 기업 77개사 중 33.8%가 상반기보다 자금 상황이 어렵다고 답했다고 한다. 포스코 또한 일부 공장에서 감산에 돌입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으니 철강공단의 하루하루는 불안하고 어둡기만하다. 여기에 포스코 비방 현수막까지 줄을 잇는 모습은 실로 안타깝다.기업들이 불경기에 신음할 때마다 함께 위기를 극복했던 시민들의 응원과 격려는 사라지고, 특정 기업에 대한 불만만 가득한 공단 풍경을 볼 때면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지난 5월 美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 시 첫 일정과 마지막 일정으로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과 현대차 정의선 회장을 면담하는 등 최근 전세계 정치지도자나 지자체장들은 어려운 고용 및 경제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기업유치에 사활을 걸고 기업하기 좋은 국가, 지자체로 만들기 위해 직접 발로 뛰고 있다.우리 지역도 하루 빨리 대립을 멈추고 포항시는 기업하기 좋은 도시, 투자하기 좋은 도시로 탈바꿈해야 한다.또한 이에 호응하여 포스코를 비롯한 기업들은 포항시에 투자를 확대해서 고용과 경제 활성화를 일으켜야 한다.탄소중립 시대에 철강산업은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외부적으로는 저탄소 제품에 대한 고객의 요구가 매년 높아지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제철공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이기 위한 새로운 기술개발과 대규모 설비투자가 요구되고 있다. 이는 포스코만의 숙제는 아니다. 포항의 철강기업들은 긴밀하게 협력하여 친환경 철강기술과 대응전략을 수립해야 하고, 정부기관과 지자체는 낡은 규제를 타파해야 하며, 지역사회는 든든한 동반자로서 응원과 격려를 보내야할 것이다.포항이 대한민국 철강 산업을 대표하는 도시로 성장하기까지 드러나지 않은 지원군들이 많았다.포항의 근간인 철강 산업을 지키고, 포항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철강 기업들이 본업에 집중해 경제 불황이라는 파고를 넘을 수 있도록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주식 갖기 운동을 펼치며 지역 기업을 사수하던 시민들의 사랑이 부쩍 그리워진다.

2022-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