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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저녁’, 종언을 고하다!

등록일 2023-08-13 16:17 게재일 2023-08-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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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금요일 점심 먹고 오는 길에 아, 그렇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경북대 교수회에서 퇴임의 변(辯)을 써달라는 시한이 그날이었기 때문이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길을 걷는 일은 그래서 유용하고 의미 있는 모양이다. 방송국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얼핏 두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지나간 세월을 차분하게 반추하여 글로 옮겨야 한다. 원고매수 제한은 없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차분하게 전하면 된다.

수요일에는 젊은 가수 박창근씨를 초대하여 두 시간 특집방송을 진행했고, 목요일에는 학교 선생님 두 분과 함께 교육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짚어봤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음유시인이자 참여 가객(歌客) 정태춘-박은옥 부부를 초대하여 두 시간 특집방송을 하기로 했다. 대구 문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시인의 저녁’이 청취자들과 작별 인사를 하는 중이다. 금요일 저녁 6시 5분부터 8시까지 두 시간 방송을 마치면 ‘시인의 저녁’은 종방이다.

지난 2020년 10월 5일 저녁 6시 15분에 시작하여 2년 10개월 1주일 동안 진행된 ‘시인의 저녁’이 막을 내린다는 소식은 지난 5월 중순에 알려졌다. 처음에는 뭐,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 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방송국의 의사결정과정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고 서운하기까지 했다. 손님인 나야 어쩔 도리가 없지만, 은퇴를 목전에 둔 연출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방송 중단 통보는 찜찜하고 아쉬운 것이었다.

8월 11일 저녁 8시가 되면 2021년 ‘한국 방송 라디오 부문 대상’을 받은 전국 유일의 시사와 인문학 프로그램인 ‘시인의 저녁’이 끝난다. 그런 자명한 사실이 시간과 더불어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필연의 사실로 굳어진 방송 중단! 수요일 박창근 가수는 여러 차례 부당함을 강조한다. 이렇게 좋고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중단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그는 여러 차례 항변조로 말한다. 고마운 마음으로 그의 말을 들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생명이 있든 없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교수질 30년 인생이 끝나가듯 ‘시인의 저녁’도 끝나는 것이다. 마지막 방송을 마치고 나오자 30명 정도의 방송국 관계자들이 잔칫상을 준비한다. 피디와 아나운서, 방송작가들이 십시일반 (十匙一飯) 정성스레 준비한 상이 펼쳐지고, 축하와 감사 인사가 이어진다. 여기저기 사진기가 소리를 내고, 환한 웃음과 예기치 못한 눈물이 터져 나온다.

‘사랑에 관하여’에서 안톤 체호프는 모든 것은 가장 적절한 시간에 끝난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남녀 주인공 알료힌과 안나 알렉세예브나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마침내 종언(終焉)을 고할 때 작가가 남긴 말이다. ‘시인의 저녁’도 그러할지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시(始)는 종(終)이요, 종은 시다’라는 글을 남긴 윤동주 시인의 말에 더 동의하고 싶은 마음이다. 지난 1천일 동안 ‘시인의 저녁’에 관심과 애정을 쏟아준 대구경북 청취자들께 감사드린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그들과 만나고 싶다. 끝은 어차피 새로운 시작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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