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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상은 대한민국에서 답을 찾는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서울, 그것도 강남이 물난리를 겪었다. 하루 반나절 쏟아부은 빗줄기에 모든 게 속절없이 떠내려갔다. 자연의 힘이 센 줄을 모르지 않았지만, 이렇듯 맥없이 당하는 처지는 어처구니가 없다.홍수뿐일까. 수확기의 가뭄, 한겨울의 한파, 때를 가리지 않는 지진. 우뚝 선 빌딩 숲과 온갖 화려한 문명의 산물들을 자랑하지만, 자연이 인간에게 부리는 심술 앞에 언제까지 이렇듯 힘없이 스러지기만 하는지. 대한민국 서울만 그런 것도 아니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도 산불과 지진, 토네이도와 폭염, 한파와 전염병에 도무지 무기력하기는 매한가지다. 전쟁과 폭력 등 인간의 악행이 초래하는 어려움보다 자연이 던지는 위협 앞에 인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빌게이츠(Bill Gates)가 우리 국회에서 연설했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의 습격을 수년전에 예견하였다는 그는, ‘다른 나라들이 미래를 바꾸어가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대한민국에서 아이디어를 찾는다’고 했다.갈등과 다툼으로 뒤범벅이 된 이 나라에 와서 저런 말을 한 사람은 그뿐이 아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는 1929년에 한국을 ‘동방의 등불’이라 부르며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고 했다. 타고르나 게이츠가 생각없이 남의 나라를 치켜세웠을까. 상대를 높이기 위한 예의가 작용했겠지만, 언론에 기고하고 국회연설을 하며 던진 생각에는 진심이 실었을 터이다.오늘 우리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대한민국은 다른나라들의 기다림에 답해야 하고 동방의 등불 역할을 해내야 한다. 해묵은 악다구니 속에서도 젊은 정치인들이 나타나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찾는 몸부림이 있다. 잘못 짚는 국가리더십을 팽팽하게 견제하는 목소리도 있다. 도전과 저항이 느껴지는 논란과 갈등도 엿보인다.국가공동체의 역동성은 한 방향으로만 모이는 일사분란한 움직임이 아니다. 나라와 국민이 가진 수다한 문제들 앞에 생각과 의견을 민주적으로 모으는 겸허함이 있어야 한다. 공동체의 역동성을 적절하고 조화롭게 버무리고 수렴하여 최적의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게 국가의 역할이 아닌가. 국민의 손으로 선출해 맡긴 정부의 역할은 한반도를 너머 세계가 주시한다. 기대에 못 미치는 대통령을 평화적으로 바꾸어 본 국민의 눈길도 날카롭다.새 정부가 잘했으면 좋겠다. 나라와 국민에게 가능성과 역량이 있음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정치가 국민을 이용하려 하지 않고 진정으로 국민과 ‘함께’ 내일을 열어갔으면 한다.지난 수십년간 국민이 더러 이용당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만큼 겪었으면 보수와 진보 따위로 헷갈리지도 않는다. 낡은 진영논리로 국민을 현혹하지 말아야 한다. 보다 분명한 변화와 혁신을 위하여 의미있게 바꾸어가는 대한민국 공동체를 세워가야 한다. 허무맹랑한 말싸움터를 이제는 건강한 토론의 장으로 바꾸어야 한다. 세상은, 변화를 위한 아이디어를 대한민국에서 찾는다.

2022-08-17

지방소멸대응기금, 인구감소 막는 마중물돼야

인구감소로 소멸위기에 처한 지방자치단체를 돕기 위해 정부가 올해 처음 도입한 지방소멸대응기금 배분금액이 결정됐다. 전국적으로 광역자치단체 15곳과 기초자치단체 107곳이 대상지로 선정됐다. 경북지역은 경북도에 848억원(올해 363억, 내년 484억원), 시군은 의성과 군위 등 모두 16곳에 2천268억원이 배정됐다. 경북에서는 의성군이 사업의 우수성과 계획의 연계성, 적절성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아 최대 배분금을 받게 됐다.210억원의 배분금을 받게 된 의성군의 청춘공작소 사업은 메타버스와 로컬푸드를 접목해 젊은 인구의 유입을 노리는 계획이다. 푸드코트와 창업공동체 공간조성 등으로 지역생산 농산물을 활용한 외식창업 활동을 지원하고, 메타버스 플랫폼을 적용한 홍보체험공간 조성으로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 한다는 계획이다.정부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은 향후 10년동안 매년 1조원의 정부기금이 기초단체에 75%, 광역단체에 25%가 지원된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지방소멸을 막으려는 정부의 의지는 읽히나 소멸대응기금이 실제적으로 효과를 낼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많은 지자체가 예산을 따기 위해 경쟁을 벌이다 보니 신청금액이 재원규모를 넘어서고 그러다 보니 소규모 사업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나눠먹기식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김주수 전국농어촌지역 군수협의회장(의성군수)은 이와 관련 “정책이 스며들게 하려면 각 지역 특성을 고려하고 지역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규모 사업으로 흐르다 보면 지역 현실에 맞지않고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뜻이다.이번에도 당초 사업계획보다 기금을 적게 받은 지자체는 사업계획 수정이 불가피해 사업효과가 제대로 나올지 의문이다. 정부나 지자체 모두가 지방소멸대응기금의 취지를 살리는 정책의 효과성에 무게를 두고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지자체는 지역의 특성에 맞는 독창적 사업을 발굴하고 정부는 우수한 발굴사업에 대해서는 전폭적인 지원을 해 효과를 극대화시켜야 한다. 또 발굴된 사업의 효과성 확대를 위해 지자체간 정보교류도 촉진할 필요가 있다. 기금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임새가 더 중요한 정책이다.

2022-08-17

반평생 갚는 주담대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반평생 갚아야 하는 주택담보대출상품이 새로 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카카오뱅크는 17일부터 은행권에서 처음으로 주담대 최장 만기를 45년까지 연장해 시행에 들어갔다. 우리은행 등 다른 시중은행의 주담대 만기는 현재 40년이 최장이다. 대출금리는 오르고 상환 여력은 떨어지고 대출규제가 지속되자 은행권이 45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을 내놓은 것이다.단순 계산으로 30세에 빚을 내서 집을 사면 은퇴하고도 75세까지 상환해야 은행과 맺은 주담대 약정이 끝나 빚에서 해방될 수 있다. 말 그대로 반평생 빚만 갚다가 인생이 끝날 지경이다. 분할 상환 주담대 상품의 만기를 길게 책정하게 되면 상환 기간이 길어져 매달 원리금 부담액이 줄어든다. 따라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비율이 낮아져 대출한도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정부가 대출자의 상환 부담을 낮추기 위해 50년 만기 보금자리론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은퇴후 까지 빚을 계속 갚아야 한다면 곤란할 수 있다. 가령 30세 청년이 시세 6억원 아파트를 사기 위해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담대인 보금자리론을 최대 한도인 3억6천만원까지 받았다고 하자. 50년 만기(금리 연 4.85% 적용)로 원리금을 상환하면 매달 159만6천여원을 부담해야 한다. 대출원금 3억6천만원에 대해 50년 상환 기간 동안 내야하는 총 이자만 해도 5억9천819만여원이다. 원금을 포함하면 총 9억5천819만여원을 75세까지 갚아야 한다.장기 상환 주담대 상품이 나온 것은 가계부채로 주택장만이 어려운 서민을 위해 나온 고육책으로 읽힌다. 주택정책은 어떤 정부라도 뾰족한 해법이 없는 난제란 탄식이 나올만 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8-17

포항·포스코 감정대립, 서둘러 수습하라

포항과 포스코 간 갈등이 올 초에 이어 또다시 첨예하게 재연돼 걱정이다. 갈등의 원인은 지난 2월 25일 포항시와 포스코, 범시민대책위원회(범대위) 대표가 서명한 합의문이 6개월 가까이 구체화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25 합의문’을 둘러싼 포항지역사회와 포스코 간 감정대립이 지속되면 모두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는 측면에서 포항시와 포스코, 범대위 최고책임자들이 직접 나서서 서둘러 사태수습에 나서야 한다.다행히도 포스코는 최근 ‘2·25합의문’에 대해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포스코홀딩스 소재지는 내년 3월까지 포항으로 이전하고, 미래기술연구원도 인재 영입을 위해 수도권과 2원 체제로 운영하되 본원은 금년 내 포항에 설치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합의문 3항에 명시된 ‘지역상생협력 및 투자사업’ 부분이다. 포항시와 포스코, 범대위 대표는 합의문대로 ‘상생협력 TF’를 구성해 그동안 6차례 모임을 가졌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범대위 측은 “포스코 협상태도가 불성실하다”고 언급했고, 포스코 측은 “요구하는 투자규모가 지나치다”는 입장을 밝혔다. 포항시는 TF회의에서 포스코 측에 컨벤션센터와 병원, 오페라극장 건립 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포항시와 포스코가 공회전하는 ‘상생협력 TF’ 가동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만큼, 이제 합의문 이행과 관련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최정우 포스코 회장과 이강덕 포항시장이 직접 만날 필요가 있다. 최 회장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상생·투자 협상은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본지도 최 회장이 빠른 시일 내 포항을 방문, 이 시장과 만나 ‘2·25 합의문’ 이행에 대해 논의를 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기업유치에 올인하고 있다. 인구소멸 위기를 겪는 비수도권 지자체는 기업유치가 생존문제와 직결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포항지역사회와 포스코의 감정대립이 시위, 현수막 등을 통해 외부에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것은 자해(自害) 행위와 다름없다.

2022-08-17

홍수가 남긴 것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난 8일 기록적인 폭우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갑작스럽게 불어난 물에 휩쓸려 실종된 사람, 산사태로 무너져 내린 집에서 사람만 간신히 빠져나와 목숨을 건진 경우 등 안타까운 사례가 보도되고 있다. 특히 신림동 반지하에 살고 있던 가족 3명이 사망한 사건이 주목을 받았다. 그중 한 분이 장애가 있다는 보도에, 장애와 가난, 반지하의 이미지가 겹쳐지며 소비되고 있다.반지하와 가난, 그리고 홍수는 영화 ‘기생충’을 곧바로 떠올리게 한다. 영화에서 비는 부자에게는 낭만의 대상이지만, 기택네에게는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대상이다. 엄청난 폭우에 반쯤 잠긴 집에서 물을 퍼내던 기택 부자의 절박함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영화에서는 사장의 저택에서 문광의 남편이 기택의 아들과 딸을, 기택이 사장을 죽인다. 그리고 영화는 건강을 회복한 기우가 사장 집에 기생하고 있는 기택에게 부자가 되어, 그 집을 사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을 보여주며 끝난다. 그러니까 ‘기생충’은 대한민국의 빈부격차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부자’가 되고 싶다는 공통의 욕망에 초점을 둔 것이다.반지하에 살던 가족 3명이 비극적으로 목숨을 잃은, 바로 그날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레이트 선셋 한강’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아름다운 석양을 활용한 한강의 재발견 사업으로 ‘서울 아이’ 같은 대규모 관람차와 수상 공연장을 짓는 계획도 포함되었다. 싱가포르, 영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프로젝트로 최대 10년의 공사 기간이 필요한 사업이다. 서울에 더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서울시민에게 질 높은 문화콘텐츠를 제공한다는 발표에서, 2009년 용산 참사가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세르주 라투슈는 ‘성장하지 않아도 우리는 행복할까?’에서 성장 위주의 경제 패러다임을 빈부격차와 환경 파괴의 원인으로 제시하며, 탈성장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성장 중심의 사고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다소 황당한 논의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지금의 사태는 그 논의에 귀 기울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현재 강남은 1970년대 강남 개발 당시 늪지대를 아파트로 바꿔서 탄생한 지역으로 홍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성장 중심의 사고는 경제적 이익과 거리가 먼 홍수 예방 사업에 예산 투입을 주저하게 했다. 성장 중심이란 쉽게 말해 돈이 되는 일만 선별해서 자본을 투입하는 효율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긴 이익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한다고 했지만, 이번 비극이 보여주듯 지금껏 거의 지켜진 적이 없다.전례 없는 폭염과 홍수, 산불이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이 초래한 결과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한민국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이제부터라도 자연과 공생하고 다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경제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성장에 대한 우리의 욕망을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지금의 이상징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가까운 미래에 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2022-08-17

물의 순환과 생명 활동에 관하여

오낙률시인·국악인 최근의 일기 상황을 보면 중부지방엔 비가 너무 와서 난리고 남부지방엔 가뭄이 너무 심해서 난리다. 작다면 아주 작은 우리나라 땅덩어리에서 나타나는 실로 양극화된 기상 상황에 국민은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랴 이 모두가 자연에서 오는 현상인 것을.어디 지상에 비를 의지하며 사는 생명이 우리 인간뿐일까, 만약에 하늘에 절대자가 있고 세상이 그분의 농장 혹은 공원이고 지상 모든 생명체가 그분이 가꾸고 키우는 공원에서 그분의 계획하에 개체 수가 조정되면서 살고 있다는 가정하에 최근의 일기 상황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다소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공평하지 못한 하늘을 보며 비가 많이 온다든가 가뭄이 너무 심하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데, 그게 다 그분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만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하는 좀 엉뚱한 생각을 가져 본다.언젠가 바닷물이 짜고 무거운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본 기억이 있다. 그것은 염분의 비중을 이용해서 자꾸만 아래로 침잠하려는 민물을 해수면으로 띄워 올려서 증발 순환케 하려 함이 아닐까 싶다. 지상으로 내린 물은 그곳에서 모두 증발하지 못하고 바다에 흘러들게 되는데 그렇게 바다에 모여든 물은 태양 빛과 낙뢰 등에 의해 일정한 소독과 정화작용을 거쳐서 다시 하늘로 증발하게 된다. 그렇게 순환되어야 할 물이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버린다면 최소한 그 물은 순환 활동을 중단해야 하는 참상을 면키 어려울 것이니 바닷물이 미리 아래쪽에 위치해서 민물이 아래로 가라앉지 못하게 받치고 있는 셈이다.높은 산꼭대기에서 삶의 터를 잡은 한그루 소나무 가지와 이파리에 머물던 물도, 어느 양지바른 산골 비탈에서 일생을 마감한 조그만 동물체의 몸속에서 흐르던 물도, 결국엔 제 살던 곳을 벗어나 계곡을 따라 바다까지 이르게 된다.그렇게 계곡을 따라 흐르던 물이 죽장 계곡에서 아침 안개가 되어 운 좋게 하늘로 오르기도 하고 기북면 손얼벌 들녘에서 논물이 되었다가 하늘로 직행하는 행운의 물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 해당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많은 물은 바다에까지 흘러가서 순환의 대기표를 뽑아 들고 제 순서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내연산 선일대에 오르면/나는 신선이 되고/진경산수 그림 한 폭/계곡에 그대로인데/아득히 먼 옛사람이 되고만 /겸제만 간 곳이 없네./열두 폭포에 흐르는 물소리 /따라오며 지저귀는 산새소리/신선이 불어주는 젓대 소리 같은데/산 능선 넘어오는 솔바람 소리/이곳을 다녀가신 /시인 묵객들의 탄성 같구나.//연산폭포 수행을 막 끝내고/관음 폭포 수행을 앞두셨을까./시리도록 투명한 물줄기 하나 /고요히 소(6F05)에 머무니/아! 그 모습 /입정에 든 수도승 같아라.”-오낙률 시 ‘내연산 12폭포 비경’언제나 인간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물에 관한 문제이다. 물에 관한 문제를 늘 인간 삶의 본질적 문제에서 분리키 어려운 것은 생명 활동의 본질이 물의 순환 활동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2-08-17

여전한 코로나 확산세…경계심 풀려 더 문제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위중증 환자수는 한달 전보다 되레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말아야 할 상황이다. 지난주(8월8∼14일) 코로나 확진자 수는 하루 평균 12만3천856명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지금 추세라면 이번 주에는 하루 평균 15만명을 넘어갈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여름 휴가철과 연휴가 끝남으로써 이번 주가 재유행의 고비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다.위중증 환자수는 유행이 장기화하면서 4월말 이후 가장 높게 나타났다. 15일 현재 위중증 환자수는 521명으로 4월 29일(526명) 이후 108일 사이 가장 많다. 지난달 15일 위중증 환자수 65명과 비교하면 한달 사이 8배가 증가했다.특히 독일, 프랑스 등 주요국에선 코로나 발생이 감소세로 돌아서고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아직 정점기를 지나지 않고 있다. 방역당국이 정점기로 예측한 시기로 접어들었지만 휴가철 등 변수가 많아 정점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국제통계 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의하면 지난주(7∼13일) 한국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100만명 당 1만6천452명으로 나타나 216개국 가운데 가장 많았다. 재유행 확산세가 50일 가까이 꺾이지 않는 나라도 주요국 가운데 우리나라가 유일했다.전문가들은 숨은 감염자가 많아 실제 확진자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지금은 고위험군 집단발생을 경계해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다.이처럼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으나 시민들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경계심은 크게 떨어져 있어 걱정이다. 코로나19 감염을 운 나쁘면 걸리는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난 탓이다. 이는 당국이 일상회복 기조 속에 표적화된 방역을 하겠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국민들의 방역 의식이 많이 뒤떨어진 데 원인이 있다.아직은 코로나19가 안심할 수 없는 위중한 상황임을 인식시키고 마스크 쓰기와 손씻기 등 개인방역을 철저히 할 것을 알려야 한다. 예방접종을 통해 감염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줘 장기 확산에 대비해야 한다.

2022-08-16

‘이준석 후폭풍’ 중심에 선 김정재·김병욱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의 ‘13일 기자 회견’을 계기로 포항시가 지역구인 김정재(북구)·김병욱(남구·울릉군) 의원이 주목 받고 있다. 김정재 의원은 이 전 대표로부터 ‘윤핵관 호소인’ 중 한 명으로 실명이 언급됐고, 김병욱 의원은 회견직후 이 전 대표 지원 사격에 나섰다. 포항지역에서는 2024년 총선 공천을 앞두고 두 의원의 대조적인 행보가 가져올 정치적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김정재 의원은 윤석열 대선 후보를, 김병욱 의원은 유승민 전 예비후보를 지지했다. 지난 지방선거에는 이강덕 포항시장 공천 문제를 놓고 서로 견해차를 드러냈다. 김정재 의원은 ‘이강덕 컷오프’, 김병욱 의원은 ‘이강덕 경선’을 요구한 바 있다.이 전 대표는 지난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친윤그룹을 겨냥해 “수도권 열세 지역 출마를 선언하라”고 요구했다. 김정재 의원은 지난 6월 한 방송에 출연해 국민의힘 혁신위 출범과 관련 “이준석 대표의 혁신위라고 보면 된다“고 언급해, 이준석과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 김병욱 의원은 이 전 대표 회견 직후 페이스북에 “이준석은 권위주의적 권력구조에 기생하는 여의도의 기성 정치권을 정밀 폭격했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배지(국회의원)는 권력을 못 이긴다. 하지만 정작 그 권력은 민심을 못 이긴다. 이준석은 여의도에 ‘먼저 온 미래’다”라며 이 전 대표를 적극 두둔했다. 김병욱 의원 외에 TK정치권에서 이 전 대표 편에 서서 지원발언을 한 의원은 아직까지 없다.두 사람의 대조적인 행보는 자연스럽게 차기 총선 공천문제와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다음 전당대회에서 친윤그룹이 당권을 장악하면 김정재 의원을 비롯한 ‘윤핵관 호소인’들이 유리한 상황에 놓일 개연성이 있다. 반면 친윤그룹이 지도부에서 물러나고,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동력이 회복되지 못한다면 현재 윤핵관 또는 윤핵관 호소인으로 지목된 의원들은 총선 불출마 요구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총선 공천에는 워낙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해 누가 유불리 할지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2022-08-16

해파리떼의 습격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용은 해양생물학 서적인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해파리의 모양을 이렇게 설명했다. “큰 것은 길이가 5∼6자나 되고 너비도 이와 같다. 머리와 꼬리가 없고 얼굴과 눈도 없다. 몸은 연하게 엉키고 모양은 중이 삿갓을 쓴 것과 같다.”한자어로 해타라 부르며 당시 사람들은 삶아서 먹거나 회를 만들어 먹었다고도 전했다.해파리는 투명하며 갓 둘레에 많은 촉수를 가지고 있는 일종의 동물성 플랭크톤이다. 촉수에는 쏘기세포가 있어 동물분류학상 자포동물문에 속한다. 젤리 같은 몸을 가져서 영어로는 젤리피시(jelly fish)라고 부른다. 크기가 1∼2mm 밖에 안되는 것도 있으나 큰 종류는 1m∼2m가 넘는 것도 있다.고깔해파리나 바다 말벌이란 별명을 가진 상자해파리는 맹독을 갖고 있어 쏘임을 당했을 때 자칫 목숨도 잃을 수 있다고 한다.제주, 부산, 경북 포항 등 동해안 해수욕장 일대에 독성 해파리떼가 자주 나타나 극성을 부리고 있다. 해수욕장마다 수십 명의 피서객들이 해파리에 쏘여 치료를 받는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해파리에 쏘이면 통증이 심하고 홍반, 채찍 모양의 상처, 발열, 오한, 근육마비 등의 증세를 나타낸다. 응급처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호흡곤란, 신경마비를 일으키기도 한다.국립수산과학원은 서해, 남해, 동해 등 전국 18곳을 해파리고밀도 출연지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해파리의 잦은 출몰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고수온 현상 때문이다. 최근 바닷물이 수온 28도 이상 이어지는 현상이 이어지면서 아열대종 해파리의 활동 반경이 그만큼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해파리떼의 습격이다. 지구온난화를 자초한 인간에 대한 경고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8-16

윤석열, 외연 넓히려면 주변정리 필요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주(13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친윤그룹 국회의원에 대한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의 인식은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시어진다(구맹주산·狗猛酒酸)’는 고사를 떠오르게 한다. 이 고사는 주로 측근정치의 부정적인 측면을 지적할 때 인용된다. 술 빚는 재주가 좋고 친절한데도 술이 잘 팔리지 않아 주막주인이 동네 어른을 찾아가 그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술집의 개가 너무 사나워 술 심부름 오던 아이들을 모두 쫓아버린다”고 말했다는 내용이다.이 전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 측근 의원들을 윤핵관(권성동·이철규·장제원)과 윤핵관 호소인(정진석·김정재·박수영)으로 나누고, “그들이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일이 호명한 측근들을 ‘술집의 개’에 비유한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윤핵관들은 선거가 임박할수록 본인들이 떠받들었던 사람까지 희생양으로 삼을지 모른다”고 언급했다.‘희생양에 윤 대통령도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머릿속에 삼성가노라는 단어가 떠오르는데 그 이상은 말 안 하겠다“고 했다. ‘삼성가노(三姓家奴)’는 ‘성 셋 가진 종’이란 뜻으로, 삼국지연의에서 여러 명을 아버지로 섬긴 여포를 비판한 말이다. 친윤그룹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이해타산에 따라 윤 대통령과도 등을 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발언이다.감정이 섞인 발언이긴 하지만, 정치세계의 이합집산 원리를 비꼰 듯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이미 2년 후(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공천권 향배를 염두에 둔 줄서기를 시작했다. 이준석 징계는 공천권 헤게모니전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준석은 지난 6월 지방선거 직후 당 혁신위를 가동해 총선공천을 시스템화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 후 혁신위 위원장을 맡은 최재형 의원도 “전략공천을 최소화하고, 공천이 시스템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특정 계파의 공천권 독점을 방지하기 위한 혁신위 차원의 제도개선에 나서겠다는 부연설명도 했다.당시 친윤그룹 의원들은 시스템 공천이 자신들을 겨냥한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공천 개혁은 일반적으로 주류 세력을 겨냥하기 때문이다. 이준석은 지난 대선기간 중에도 ‘윤핵관’을 정면으로 공격하며, 당내 ‘이너서클 타파’를 공론화한 적이 있다.윤석열 대통령은 ‘친윤 그룹’이 당권을 장악해 ‘윤석열 당’이 만들어지면 안정적인 당정운영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지금 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최대원인은 그동안 확장해 놓은 외연을 여권 주류세력이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당시 지지율을 회복하려면 당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이준석은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우리 정치계를 ‘열린 광장’으로 이끌려고 애써온 청년이다. 대표재임 1년여간 그는 당비를 내는 열성당원을 80여만명까지 늘렸고, 당의 외연을 호남까지 확장시키면서 국민의힘 전성시대를 만들어냈다. 윤 대통령은 이준석을 외연확장의 모델로 인식해야지 증오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된다. 이준석의 기자회견을 당정간의 비판 담론 형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2022-08-16

공공기관장의 임기존중이 ‘원칙이고 상식’

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얼마 전 TV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국회의 대정부질문 장면을 잠깐 본 적이 있었다. 어느 여당 국회의원이 국민권익위원장에게 질문하는 순간이었는데, 그 질문 내용들이 가히 가관이었다. 국회 대정부 질문이라면 최소한 질문 대상자의 직무나 업무에 관련된 내용을 질의해야 할 것인데 전혀 엉뚱한 사항을 묻고 있었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아느냐”, “현 대통령을 존경하느냐” 게다가 “이전 대통령과 현 대통령의 차이점을 아느냐”라는 유치한 질문까지는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준답다(?)고 여기며 들을 수 있었다. 더 가관인 질문은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있는 더 훌륭한 분이 대기하고 있는데 왜 사퇴하지 않느냐”는 식의 호통소리(?)가 나왔을 땐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더 훌륭한 분’이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며 그 훌륭함의 기준은 무엇이며, 해당 업무를 실제로 수행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더 훌륭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또한 대통령이 임명할 기관장인데 질문자가 특정인이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정부의 정책을 집행하는 행정부서와는 달리, 대통령 직속기관이라 하더라도, 고유성과 독립성이 있는 공공기관들은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수행업무 사항들이 크게 달라질게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들먹이며 임기가 남은 기관장에게 사퇴를 강요하는 것 자체가 현 대통령의 국정철학인 ‘법과 원칙 그리고 공정과 상식’의 정신을 크게 훼손하는 일이 된다. 여당 의원의 질의는 질의가 아니라 자신과 이해관계가 있는 특정인을 해당 기관장에 임명되게 할 의도를 가지고서 현 기관장에게 사퇴를 강요하는 것 같았다.‘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의 규정에 따르면 기관장의 임기는 정해져있으며, 법령 또는 정관을 위반하는 행위를 했거나 직무수행에서 현저히 게으른 경우가 아니면 해임사유가 되지 않는다. 보도에 의하면, 국민의힘 원내대표실은 각 상임위 간사로 내정된 의원실에 연락하여 상임위 산하공공기관 현황을 종합하여 보내라고 하면서, 한편으론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의 사퇴를 연일 압박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여당 관계자는 방만한 경영과 과다한 부채 등의 문제가 있는 공공기관에 대한 개혁착수를 위한 조사라고 설명한다는데, 대통령의 국정철학 기준에서 명백하게 문제되는 공공기관은 필히 조사·개혁해야하며 기관장에게 중대한 책임이 있는 경우엔 해당 기관장을 문책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전 정부에서 임명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기관장 사퇴를 압박해선 안 된다. 그러한 압박 자체가 현 대통령의 국정철학의 기본정신에 현저히 반하는 것이며, 국민권익위원장에게 사퇴강요의 발언을 한 여당 의원이 오히려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배치되는 행위를 한 것이다.대통령 취임 후 아직까지 국정운영의 큰 틀이나 구체적 비전도 국민들에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나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원하기보다는 자신들 이해관계에 정신이 팔려있는 여당의원들이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2022-08-16

하물며

조현태수필가 어느 농장 마구간에서 소가 크게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주인은 벌써 발정기간인가 하고 수정일정을 살핀다. 수정 기록을 보면 발정이 오기에는 아직 기간이 남아있다. 보통은 소가 저렇게 울면 발정이거나 몹시 아픈 경우가 많은 줄 알기 때문에 걱정이 된다. 혹시 다치기라도 했나 싶어 몸 상태를 살펴봐도 소리를 지를 만한 이상 현상은 발견하지 못한다. 그래서 발정에 약간의 시간차가 있기도 하니까 조금 일찍 발정이 온 걸로 생각한다.주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휴대폰으로 수정사에게 전화한다. 아직 발정기에 들려면 며칠 남았는데 소가 자꾸 소리를 지른다고 전한다. 그러자 수정사가 말하기를, 소의 꽁무니를 잘 살피고 먹이를 어떻게 먹는지 보아서 다시 전화 하라고 한다. 그렇게 하루가 더 지난다. 어찌된 영문인지 소가 애절하게 우짖는 소리는 더욱 잦아진다. 건초와 사료도 넉넉하게 주는데 무슨 불만이냐고 핀잔을 하는 중에 어느덧 삼 일을 넘어가고 있다.행여나 먹이통에 사료가 없나 하고 살피러 가다가 물통이 바싹 말라있는 것을 보았다. 그제야 주인의 머리를 번뜩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그것은 며칠 전에 주인이 우사 자동급수장치를 수리했던 일이다. 전문 수리사가 아니어도 철물점에서 플로팅밸브를 사다가 교체하면 되는 일이었다. 전에도 이런 작업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수리를 했었다. 그때 고장 난 플로팅밸브를 교체한 후 메인밸브 열어주는 과정을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잘 했다고 흐뭇해하다가 가장 중요한 밸브 열기를 놓친 것이다.그러니까 삼 일 동안 물을 먹지 못해 갈증을 호소하는 고함소리였으리라. 깜빡 잊어버린 그것이 소에게는 생명을 다투는 일이다. 아차! 하고는 재빨리 밸브를 열자 물통에 물이 고이기 시작하는데 소가 허겁지겁 물을 마셔댄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목이 말라 그렇게 고함을 질러대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원망했느냐. 하염없이 물을 마셔대는 소를 어루만지며 주인은 연거푸 소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런 기막힌 일이 생긴다. 아니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라 하겠다. ‘목말라 죽겠으니 물을 주세요’라고 말했으면 금방 해결해 주었을 터이다. 한편, 소는 물을 달라고 목이 터지게 외쳐도 발정인가 하는 주인에게 문제가 있다고도 하겠다. 소나 사람이나 서로 깊은 관심과 애착이 있으면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해결이 가능하다. 그것은 느낌이다. 감정이다.필자는 어쩐지 우리 사회에도 이러한 형국이 있어 보인다. 목청을 돋우며 끊임없이 말하는데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고, 왜 그러느냐고 한다. 또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꼭 들어야 할 사람만 귀를 틀어막고 엉뚱한 행동을 한다. ‘너 아침부터 신문 읽는 잘못을 저질렀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면 ‘문구점에 고등어 사러 갔는데 없었으니 수입해야 한다’는 대답을 하고 있다.수리한 물통에 물을 공급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2022-08-16

각자의 삶을 기억하기

책을 덮고 고개를 들면 누군가의 삶이 보인다. /언스플래쉬 어떤 경험을 하면 환기되는 기억이 있다. 음식을 먹는다던가, 냄새를 맡는다던가, 촉감을 느끼는 것으로 마음 한편에 접어두었던 과거의 사건이 소환된다. 그것은 아주 사소하게 추동되는 일이지만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다. 일직선으로 흘러간다고 믿었던 시간이 아무렇게나 뒤엉키는 것을 느끼고 일순간 길을 잃은 것 같은 감각을 체험한다. 까맣게 잊고 싶은 기억이나 영원히 박제하고 싶은 기억은 우리들의 내부에서 각자의 형태로 위치한다.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이런 지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주인공인 마르셀은 홍차에 마들렌을 먹으면서 그 맛과 향기에 과거의 기억으로 넘어가게 된다. 장황하면서도 정교하게 짜여 있는 문장과 종잡을 수 없는 의식의 흐름으로 진행되는 소설은 한 문장으로 축약될 수 없는 세계를 포착해 언어로 표현해내려는 작가의 예술적인 성취에 가깝다. 그것은 시간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위치한 인간의 삶을 적어내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행할 수밖에 없던 작업이었을 것이다.내게도 마르셀의 마들렌과 같은 음식이 있다. 물을 적게 넣고 면을 잘게 부수어서 끓여 먹는 라면이 그것이다. 초등학생 때 친구가 만들어준 요리로 지금 와서 그때의 맛을 재현하려고 해도 늘 실패하기 일쑤다. 어쩌다 비슷한 맛이 감각되는 날이면 그때의 기억이 소환되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친구는 몸이 불편한 아버지와 자기보다 다섯 살 어린 동생과 살았다. 그때 우리는 고작 열한 살이었다. 친구에게서는 늘 물에 젖은 냄새가 났고 이따금 청결하지 못한 부분들이 눈에 보였다. 어느 날엔가 친구는 자기 집에 나를 초대했다. 허름한 빌라의 계단을 한 칸씩 내려갈 때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킬 수밖에 없었다. 거실에서 부스스하게 몸을 일으키던 친구의 아버지와 신발장까지 달려 나오던 친구의 동생, 빛이 들지 않아 어두컴컴했던 내부의 이미지가 여전히 생생하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자 친구는 찬장에서 라면 세 개를 꺼내서 잘게 부수었다. 친구의 아버지와 동생, 나는 모여 앉아서 친구가 만든 라면을 먹었다. 그러다 동생이 실수로 국물을 옷에 흘렸다. 친구는 동생의 옷을 벗기고는 화장실로 가져가서 빨래를 시작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익숙한 모습이었다.그때 나는 어떤 기분이었더라. 분명한 건 친구와 내가 겪고 있는 삶의 무게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나는 모종의 두려움을 느꼈다. 타인의 삶을 인식하면서 경험하는 부조화 같은 것이었다. 동시에 편안하고 익숙한 장면을 목격했다. 우리끼리 공유하던 농담에 와하하 웃는 친구의 씩씩한 얼굴과 가족끼리 도란도란 나누는 일상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사랑의 형태 같은 것.최근 폭우로 도시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날 밤은 유난히 창문이 요란하게 흔들렸고 천둥소리와 번쩍이는 번개 때문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 떠올랐다. 황량한 들판 위의 외딴 저택. 죽은 캐서린의 환영을 바라보며 외치는 히스클리프의 절규가 생각났고 나는 침대 맡에 앉아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몇 문장을 적어 내려갔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다음 날 뉴스를 읽었다. 반지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일가족이 사망하였다는 기사였다. 머리가 새하얗게 질리는 듯했다. ‘반지하를 없앤다’는 대책을 내어놓는 서울시의 입장을 마주하고는 더욱 그랬다. 문제로 보이는 것을 눈앞에서 치워버리는 식의 행정을 우리는 너무나 자주 겪어왔다. 그로 인하여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이들의 외침을 계속해서 들어왔다. 이런 와중에 나는 얼마나 안전한 위치에서 감상에 젖어있었는가.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내가 ‘폭풍의 언덕’을 떠올리고 있을 때, 누군가는 물이 차오르는 집 안에 갇혀 있었다. 이것은 결코 공평한 일이 아니다.책을 덮고 고개를 들면 누군가의 삶이 보인다.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곁에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다. 여전히 나는 무력하며 삶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런 면에서 알지 못하는 타인의 이야기를 쓴다는 건 기만에 가까운 일이다. 내가 얼마나 별로인 인간인지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하다.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그것이 잃어버린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계속해서 발화해야 한다. 끝끝내 실패로 종결될지라도. 각자의 삶을 헤아리려는 노력은 조금이나마 괜찮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자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하다.

2022-08-16

타인의 리듬으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고 있는 우영우가 자동문을 지나가지 못해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그것을 본 우영우의 동료는 이렇게 얘기한다. “왈츠를 춘다고 생각해요. 쿵짝짝, 쿵짝짝.” 둘은 천천히 리듬에 맞춰 발을 굴리고, 그렇게 왈츠의 리듬으로 하나의 문을 함께 통과한다.‘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인물 ‘우영우’의 좌충우돌 사회 적응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이 장애를 가진 인물인 탓에 이 드라마는 보통의 법정 드라마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을 갖는다. 때로는 범죄를, 때로는 일상적인 민사를 다루면서도 사실은 법리가 아닌 인간을 다루는 드라마. 그러나 흔한 법정 드라마와 달리, 이 이야기는 ‘우영우’와 그의 동료들이라는 프리즘을 거치며 여러 갈래의 빛으로 다채롭게 쏟아진다. 때로는 의뢰인에게 너무 몰입한 나머지 감정적으로 변하기도 하며, 자신이 변호해야 하는 변호인의 진실성에 대해 의문을 갖기도 하는 등, 여러 이야기와 감정들이 쏟아진다.그리고 그렇게 쏟아진 감정들은 다시금 우영우라는 인물의 인격과 특성을 거쳐 하나의 이야기로 종합된다. 예컨대 너무나 상식적인, 그러나 상황으로 인해 우리가 차마 발설하지 못했던 사회적 정의에 대한 것들 말이다. 예컨대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장애’라는 특성은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내는 연출적 장치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알고 있음에도 말하기가 허락되지 않던 이야기들을 발설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로서의 역할 또한 겸하고 있다.그러나 이 장치로서의 ‘장애’가 만능키인 것은 아니다. 드라마의 초반부에서 드러나듯 그녀의 장애가 노출되는 방식은 재능과 비사회성이라는 두 가지 특징으로 갈음된다. 세상의 모든 텍스트를 암기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상황과 맥락 속에 녹여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래얘기 금지!”라는 동료 변호사의 대사는 그런 그녀의 특징을 잘 드러내준다. 예컨대 그것이 하나의 재능으로 갈음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드라마는 작은 에피소드들을 계속해서 연출하며 나름의 노력을 다하는 셈이다.때문에 우영우의 주변 인물들은 그가 하는 발언과 행동을 상황과 맥락에 맞추어 재가공하는 절차를 수행한다. 배려라기엔 너무나 충분하고 사회적이라 하기엔 너무나 친절하고 상냥한 동료들의 태도 속에서 ‘우영우’라는 인물은 하나의 재능과 하나의 모자람을 갖춘 독특하면서도 평범한 한 사람의 직장 동료로 자리매김해 나간다.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녀의 상사인 ‘정명석’이다. 인터넷에서는 ‘서브아빠’라는 별명으로도 불릴 만큼, 그는 우영우를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의 멘토와 멘티로서 대하고자 노력한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드라마의 특성과 메시지로 인해 다소 작위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명석의 모습은 ‘나’와 다른 타인을 대하는 하나의 교본적인 모습이라 할 만 하다. 그는 우영우라는 인간을 한 명의 변호사로서 ‘한바다’라는 거대 로펌의 위상에 걸맞는 역량을 보여주길 기대하며 그녀를 대하는 것이지, 그녀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편애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명석의 눈 속에서, 우영우의 ‘장애’는 인격과 철저하게 분리된 하나의 특성일 따름이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우리는 종종 장애를 가진 이를 대할 때, 그 사람이 가진 장애를 그의 인격과 동일시하곤 한다. 과잉된 배려와 친절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태도 속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 대접받는 것이 아닌 시혜의 대상으로 존재할 따름이기에, 이와 같은 시혜적 태도 또한 하나의 차별이자 배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시선과 태도의 이면에 존재하는 것은 ‘나’는 장애를 가진 ‘저 사람’과 다르다는 배타적인 의식이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장애를 가진 사람을 ‘위하는 것’ 같은 모습이 연출되지만, 궁극적으로 그와 같은 태도는 장애를 가진 사람을 자신과 동등한 인격과 인권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의 표출이기도 하다.다시금 1화로 돌아가 보자. 우영우가 회전문을 통과하지 못해 그 앞에서 발을 동동 굴리고 있던 모습 속으로. 우리는 한 번이라도 회전문이라는 것이 그토록 위협적이거나 난해한 장애물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그와 같은 회전문이 누군가에게는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본 적이 있을까? 그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함께 왈츠를 추며, 같은 리듬으로 뛰어들 수 있을까? 우리가 우영우를 바라보면서, 그녀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궤적을 함께 지켜봐야만 하는 이유이다.

2022-08-16

다크패턴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다크패턴은 인터넷 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에서 사람을 속여 물건을 구매하거나 서비스에 가입하게 하도록 디자인된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가리킨다. 모바일시대에 쓰이는 새로운 신종사기 수법인 셈이다.다크패턴은 2011년 영국의 독립 디자이너 해리 브링널이 개념화한 용어로, 인터넷 사이트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서, 사용자들을 은밀히 유도해 물건을 구매하거나 서비스에 가입하게 하는 등 원치 않는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일상에서 경험하는 악성코드나 피싱도 다크 패턴의 일종이다. 다크 패턴은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것을 뜻하는‘넛지’와 비슷하지만, 속임수에 가깝다.2019년 프린스턴대 연구진은 쇼핑 사이트 1만1천개의 제품 페이지를 분석해 이들 사이트의 11.1%가 한 개 이상의 다크 패턴을 이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15개의 다크 패턴을 목록화했다. 이들이 발견한 다크 패턴의 가장 흔한 방식은‘남아 있는 상품이 1개뿐이다’또는 ‘이 상품을 232명이 함께 보고 있다’ 등의‘마감 임박’ 정보를 제공해 잠재적 구매자들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런 마감 임박 숫자는 사실 무작위로 생성되거나 시간 흐름에 따라 줄어들도록 설정돼 있다.또 물건의 가격 비교를 어렵게 만들거나, 결제 과정의 마지막에 배송비와 세금을 부과해 가격을 속이고, 무료 이용 기간이 끝나면 알림 없이 신용카드로 비용을 청구하고, 사용자를 속여 다른 웹사이트로 이동하는 아이콘을 누르게 하는 경우 등이 다크 패턴에 속한다.정보화사회에서 자칫하면 다크패턴의 꼬임에 빠지거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8-15

‘해저드 맵’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30년간 서울의 7월 한 달 강수량 평균값은 414.4㎜, 8월은 348.2㎜였는데, 지난 8일 오전 6시부터 9일 오전 6시까지 기상청이 있는 서울 동작구에 422㎜가 내렸다고 한다. 시간당 최대 강수량도 141.5㎜로 측정돼 80년 전의 종전 최고치(118.6㎜)를 훌쩍 넘기며, 1907년 서울기상 관측 이후 115년 만에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그야말로 물폭탄이 떨어진 것인데, 이로 인해 서울과 경기지역에서만 사망 8명, 실종 6명, 부상 9명 등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사망자 중 절반은 반지하주택 주민이고, 실종자의 대부분은 하수구 인근에서 물길에 휩쓸렸다.이러한 국지성 폭우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온실가스 증가로 인한 기후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 온도가 상승해 대기로 유입되는 수증기가 늘어났고 습한 상태에서 강수 조건이 만들어지면서 이번처럼 국지성 폭우가 쏟아졌다.최근 연구된 미래 장기 기후변화 전망을 보면 우리나라는 현재 추세로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경우 2100년까지 강우량은 지속해서 증가할 것이며, 이번처럼 비가 안 오다 여름철 집중호우가 많아지는 극한 기후 현상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세웠다.물과 하천관리를 일원화해 총괄 수행하게 된 환경부는 지난 7월 18일 새정부 핵심추진과제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보고내용 중 첨단기술로 물 재해 대응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주요 사업으로 제시되었다.구체적 사업내용으로 인공지능(AI) 홍수예보(2025년), 댐-하천 디지털 복제물(트윈) 구현(2026년) 등의 첨단기술을 활용해 홍수 대응체계를 완비하겠다는 계획을 포함했다. 아울러 도시침수 문제에 대해서도 침수위험지도를 구축(~2025년)하고, 노후하수관 개량을 통해 땅 꺼짐(싱크홀)도 함께 예방하는 계획을 포함했다.환경부가 제시한 첨단 물재해 대응시스템이 하루빨리 구축돼야 하겠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점은 물재해 대응시스템의 핵심 기능이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온전히 접목되어 어떠한 극한 재난 상황에서도 본연의 방재 기능이 충분히 발휘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런 우수사례는 대형 지진과 풍수해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일본에서 2020년 8월 27일부로 수해방지법으로 작성을 의무화한 수해 ‘해저드 맵’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일본에서는 집을 거래할 때 구매와 임대를 불문하고 관련 법령에 의한 계약 첨부 서류 중 하나로 위험지역과 대피소 등을 나타낸 ‘해저드 맵’의 첨부가 의무화되어 주민 스스로 방재 능력을 극대화토록 하고 있다.2022년 8월 현재 국민재난안전포털에서 제공하는 재해위험지구는 대구와 경북이 각각 10개소와 166개소가 있으며, 대부분 침수 위험지역이다.그러나 제공되고 있는 위험지역 정보는 매우 단순해 주민 스스로 위험을 극복하게 할 수 있는 ‘해저드 맵’의 수준으로 상향되어 조속히 제공될 필요가 있다.

2022-08-15

안동·임하댐 물 활용, 물 문제 해결 시발점 되길

홍준표 대구시장과 권기창 안동시장이 안동댐과 임하댐 원수(原水)를 대구 수돗물로 공급하는 사업에 원칙적 합의를 했다. 두 사람은 지난 11일 대구 시청사에서 만나 이같이 합의함으로써 대구시 취수원의 낙동강 상류지역 이전을 둘러싼 해묵은 과제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지 관심이다.홍 시장은 이와 관련 “이번 상생 협력이 대구시민의 먹는 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초석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고, 권 시장도 “물은 모두가 공유해야 할 공공재”라며 “두 지역간 발전을 만드는 큰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두 단체장이 공식적으로 합의한 데다 낙동강 상류 댐 물을 원수로 사용하겠다는 의지도 강력해 국무총리실 주재로 6개 기관이 합의했던 구미 해평취수장 이전문제는 사실상 백지화될 공산이 커졌다. 홍 시장도 “더 이상 구미에 사정하고 읍소하는 식으로 물 문제를 해결하지 않겠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그러나 안동댐·임하댐 물을 원수로 사용하려면 두 기관이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안동·임하댐 물을 원수로 사용하려면 영천댐과 운문댐으로 연결되는 도수관로를 깔아야 하는데 여기에는 1조4천억의 막대한 사업비가 든다. 공사비용의 70%를 부담해야 하는 수자원공사와 협의를 벌여야 하고 정부 예산에도 이를 반영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또 안동댐 일대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지역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며 우려하는 안동시민들의 여론도 잘 수렴하고 설득해야 관문을 넘을 수 있다. 안동댐의 중금속 오염을 주장하는 환경단체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명쾌한 해명을 해야 한다.대구시민들의 수도 요금 부담도 가급적 줄여야 한다. 대구시는 현재 1인당 1천원 정도라고 밝히고 있으나 부담을 최소화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대구취수원 이전문제는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이후 30년동안 논란을 벌여 온 지역 숙원이다. 지난 4월 맑은 물 나눔과 상생발전에 관한 협정으로 실마리를 푸는듯 했으나 구미지역의 반대여론에 밀려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이번 두 기관의 합의가 30년 끌어온 지역 숙원을 푸는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

2022-08-15

집권여당의 대혼돈, 리더십 부재가 원인

윤석열 대통령과 친윤계 국회의원을 겨냥해 작심 비판을 쏟아냈던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기자회견을 둘러싸고 후폭풍이 거세다. 여권 내부에서 “레드라인을 넘었다”, “망언”이라는 비난이 쏟아져 나오자 이 대표가 즉각적인 반격에 나서면서 내분이 격화하고 있는 모습이다.이 대표의 지난 13일 기자회견 후 당권 주자인 김기현 의원은 “(나는) 개고기를 판 적이 없다”며 불쾌해했고, 전당대회 출마를 고민 중인 나경원 전 의원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며 이 대표를 비난했다. 초선인 김미애 의원도 “윤석열 대통령이 개고기냐”며 비난전에 가세했다. 이 대표도 가만있지 않았다. 자신의 SNS에 당원 가입 독려 글을 올리며 “기자회견을 봤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데 다들 뭐에 씐 건지 모르겠다”고 맞받았다.이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은 본인은 물론, 당과 국가를 위해서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여당의 대표를 지낸 사람이 대통령을 향해 거친 언어를 쓰며 직격탄을 날린 것은 좀처럼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 대표 입장에서는 당 윤리위의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가 절차의 정당성 측면에서 억울한 부분이 있겠지만, 홍준표 대구시장이 “왜 그런 욕을 먹었는지도 생각해보라”고 언급한 부분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내일(17일) 취임 100일을 맞는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회견내용에 분노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심정으로 소화를 시켜야 한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윤 대통령이나 정무라인이 이 대표를 만나 그동안 쌓인 감정을 풀었다면 이런 험악한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금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내일은 이 대표가 낸 비대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의 첫 심문이 열리는 날이다. 이 대표가 낸 가처분 신청이 만약 법원에서 인용된다면 국민의힘은 당 대표가 2명이 되는 대혼돈의 상황이 온다. 이러한 혼란은 여권이 사전에 수습해야 한다. ‘주호영 비대위’의 역량이 주목된다.

2022-08-15

포항의 걸출한 문인, 한흑구 선생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40여년 전의 일로 기억된다. 당시 고교시절 문예실 주간선생님으로부터 받은 ‘포항문학’ 창간호. 그 책에 실린 ‘한흑구 선생 특집’란의 글을 읽고 흑구(黑鷗) 한세광 선생을 우연찮게 알게 됐다. 그리고 지난 주, 포스코국제관에서 열린 한흑구 문학의 장르별 조명과 한국현대문학사의 의의를 다룬 ‘한흑구 문학연구 학술대회’에서 한흑구 선생의 진면목이 뇌리에 각인됐다. 한참의 세월을 거슬러 책을 통해 본 문인을 학술대회에서 제대로 알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기만 했다.한흑구 선생은 명작 ‘보리’ 수필 외에도 시, 소설, 평론, 번역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문학세계와 명징한 작품을 창작했음에도 문학작품과 공적이 제대로 조명, 평가되거나 예우받지 못한 은둔의 문학인으로 남아있다. 일제 강점기에 평양과 미국을 오가며 선구적 지성과 폭넓은 문학관으로 한국문학을 새롭고 풍요롭게 만들면서도 단 한 토막의 친일 문장을 쓰지 않은, 의지와 불굴의 지사형 문학가였다. 또한 도산 안창호 선생이 주도한 흥사단의 활동가로서 민족독립을 위해 1년여의 옥고를 치르면서도 일제식민지 시대에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꼿꼿하게 길을 걸었던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특히, 한흑구 선생의 수필은 시적 언어를 구사하는 독특함으로 우리나라 수필문학 성립기의 상징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수필은 말 그대로 독백의 문학이기에 자신을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것에 우의(寓意)하여 객관의 세계를 묘사하게 되는데, 선생은 나무를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고 바다를 통해 우주를 설명하며 시적인 비유와 상징, 풍자의 수사법으로 서정성과 간결성을 더해 수필의 완숙도를 높였다. 60, 70년대의 교과서에 2편의 수필이 실린 정도로 선생은 민족혼을 일깨우며 자연애와 시적인 수필세계로 근대 수필론 정립에 크게 기여한 걸출한 문인이요 관조적 사색가였다.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한흑구 선생의 생시나 현재까지 그의 문학적 업적을 제대로 평가, 인정받지 못했고, 그가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거니와 정부에서조차 추서한적이 없으니 아쉽고 안타깝기만 하다. 서울 중심의 중앙문단에서 벗어나 외진 포항에서 주변 장르인 수필을 주로 발표한 변방성으로 인해 대중의 관심과 문단의 비평에서 다소 벗어났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의 탄생 100주년인 지난 2009년, 민충환 문학평론가에 의해 ‘한흑구 문학선집 1·2권’이 출간돼 한흑구 문학의 꽃이 부분 개화되는 계기가 마련됐다.이에 ‘한흑구문학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2022년 3월 출범, 포항시와 함께 선생의 문학세계와 문학사적 의의를 총체적으로 재조명하여 문학정신을 기리는 다양한 기념사업을 본격적으로 기획·추진 중이라 하니,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사상, 철학, 문학에 대한 다층적인 탐색과 깊은 연구를 통해 ‘한흑구문학관 건립’ ‘한흑구 문학 정본전집 발간’ 등 의미있는 사업추진으로 포항의 뿌리깊은 문화자산과 정체성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이정표가 돼야 한다. 한세광 선생은 포항문학과 문화의 대표적인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2022-08-15

일류기업으로 가는 지식경영

정상철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기업 수준은 사람이 결정하며, 직원이 일류 사원이 되면 일류 기업이 된다. 일류 사원은 지혜를 갖춘 것이고 지혜는 지식에서 나오며 지식이 없는 이들이 모인 조직은 집단지성의 지혜가 나올 수 없다. 지혜는 지식을 활용하는 기술인데 기업에서 보면 산적한 문제해결과 미래 성장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지혜로운 경영자는 미래를 예측하고 통찰력을 가지고 전략적 경영을 수행한다. 80년대초 구미에 있는 삼성전자를 간 적이 있다. 전자부품 조립공장 복도의 벽에‘가방에 지갑은 놓고 다녀도 책은 넣고 다녀라’라는 하얀 천에 쓴 붓글씨가 떠 오른다. 복도 가판대에 책이 진열되어 있고 직원이 원하는 책은 다 볼 수 있다. 라디오를 조립하는 일이지만 전직원이 늘 손에 책을 놓지않는 삼성전자는 미래 일류기업이 될 것으로 예측됐다.지식경영(knowledge management)은 사람, 문화, 제도와 조직, 시스템으로 구성되고 그 근간은 지식 프로세스가 있다. 지식 프로세스는 지식의 변환과 활용, 새로운 지식의 창출이 연속적인 순환과정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를 함으로써 고객에게 만족도를 높여주고 기업에게는 이윤을 가져다 주는 구조를 말한다. 미국의 컨설팅업체 델파이그룹이 말하는 지식경영의 요소를 살펴보면, 첫째,지식의 획득으로 기업은 외부에서 지식을 획득하거나 연구나 경험을 통해 내부적으로 지식을 창조한다. 둘째, 지식의 공유로 기업이 언제 어디서든 지식에 접근 가능하도록 만든다. 지식의 공유를 통해 조직의 학습능력을 크게 증진한다. 셋째, 지식의 레버리징(Leveraging)으로 기업의 지력을 이용하여 지식을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넷째로 지식의 공급으로 지식을 제품에 체화시켜 제품의 가치를 증진시킨다.지식이 없는 기업의 특성은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거나 업무가 중복되고 좋은 아이디어를 공유하지 못한다. 또한 소수 인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신제품 출시가 늦어지는 등 기업경영 손실의 큰 요인이 되는 것이다.성공적인 지식경영을 위해선 미래에 대한 개인, 조직에 대한 비전과 동기부여를 강화하고, 창조적 도전으로 인한 실패는 용인될 수 있도록 한다. 지식경영은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으로 결과의 분석보다는 적용하는 행동이 선행해야 한다. 지식경영이 강한 P사를 보면, 학습동아리 기반으로 학습조직이 구성되고 개인 노하우를 등록하고 조직의 지식으로 만드는 암묵지를 형식지화 한다. 가령, 설비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학습하고 등록하면 온라인으로 토론이 벌어져 지식공유가 깊이 있게 되는 것이며, 분야별 전문가를 만드는 기술명장 육성 등 지식근로자를 양성하고 있다. 현장에 강한 지식근로자가 되면 깊이 있는 문제를 발굴하는 능력과 해결 가능한 인재가 육성돼 지식경영의 기반이 되고 조직의 인적수준이 일류기업의 측도가 되는 것이다.일류기업으로 가는 길은 모든 직원이 지식근로자가 되어야 하고, 지식근로자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식공유와 지식창조가 우선시 되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기업이 생산하는 것은 제품보다 새로운 지식이고 기업 경쟁력은 지식의 생산성에 좌우된다.

2022-08-15

그 길밖엔 없어<Ⅵ>

-왜 이러냐? 로봇 관리사가 힘들어? 우리 회사에서 영업이나 뭐 그런 거 할래? 내가 취직시켜줄게. 지금이라도 차 돌려서 올라가자. 너 이렇게 한 번 발들이면 못 돌아온다. 너 지금 네 목소리가 떨리는 것 느끼지? 그거 오랜만에 담배 피워서 그런 것 아니야.우현이 앞좌석으로 고개를 내밀며 녀석에게 말했다. 녀석은 힐끗 우현을 한 번 돌아보았다.-저 인조인간을 차에 태울 때 벌써 발을 들인 거야. 저 인조인간 나 알아. 이미 돌아가긴 글렀어. 아, 몰라. 이미 우리는 직진이야. 직진. 이 길밖엔 없어 그러니 네가 나 좀 도와줘야겠다. 너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고.-거기에 왜 나를 가져다 붙여. 나 물건 네 개 정도 없다고 사는 게 힘들어 지거나 그러지 않아. 이런 경우 말고도 물건은 널렸어. 도대체 내게 왜 이러는 거냐? 어? 이런 게 내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우현이 앞좌석을 잡아당겼다 놓으며 흔들었다.-그게 꼭 인공 장기만의 문제는 아니야. 잘 봐. 누군지 알겠어? 하긴 네가 얼굴을 보고 누군지 알기는 힘들겠지. 기억 나냐? 올더앤베러 최 회장이라고. 안나를 마이걸로 만든 늙은이. 내가 처음 너에게 말했을 때 네가 찾아가 죽여 버릴 거라고 했었잖아. 그 늙은이야. 팔십 일곱 살짜리. 그때 네가 이야기했었지. 니들 둘 사이에 있었던 일들. 안나가 나에게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 내가 물었었잖아? 진짜로 죽일 수 있냐고.안나가 고등학생이었을 무렵 우현은 대학생이었다. 전공 과제를 하느라 노마의 집에 들렀던 우현이 안나를 보았다. 교복을 입은 안나가 아니라 평상복을 입은 안나는 우현에게 학생이 아니라 여자였다. 우현은 안나를 마음에 품었다. 핑계거리만 생기면 노마의 집을 찾아왔다. 과제 때문일 경우도 있었고, 그저 놀기 위해 온 날도 있었다. 저녁밥을 얻어먹고 안나가 귀가하는 늦은 시간까지 기다렸다. 노마와 같이 거실에 앉아 있는 우현이 안나에게는 낯설지 않았다. 가끔은 노마와 우현, 안나가 섞여 같이 주말을 보내기도 했다.곁눈질로 안나를 보기 시작했던 우현이 안나의 얼굴을 마주하는데 익숙해질 즈음, 셋이서 새로 나온 영화를 보러 갔다.-남매가 영화 보러 가는데 내가 왜 끼어?-얘랑 둘이서 가면 무조건 싸워. 다른 사람 한 명 있어야 돼.노마가 한 번 더 권했다.-같이 가요. 오빠.안나까지 나서서 잡아끌자 못 이긴 척 따라나섰다. 안나를 중심으로 노마와 우현이 좌우로 나누어 앉았다. 영화를 보던 중 노마가 화장실에 갔다. 안나가 우현에게 귓속말을 했다.-우현 오빠, 겁쟁이구나.잠시 후 우현은 안나의 손을 잡았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영화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안나의 손이 무척 부드러웠다는 것. 우현이 안나의 손을 움켜쥐자 안나가 우현의 손을 풀고 다시 깍지를 끼었다는 것만 기억했다. 영화가 끝나고 들렀던 카페에서도 안나의 눈은 우현을 향했다.집으로 돌아와 노마와 우현은 맥주를 마셨다.-내가 마실 것은 없잖아.안나가 노마에게 말했다. 노마가 음료수를 사러 간 사이 안나와 우현은 첫 키스를 했다.-처음 보았을 때부터 너를 좋아했어.우현이 안나에게 고백을 했다.-알고 있었어요.안나는 우현의 입술을 손으로 닦아주었다.며칠 후 우현은 차를 빌렸다. 안나의 학교 정문 앞에서 안나를 기다렸다. 지나가는 길에 생각이 났고 마침 하교 시간이라 그저 한 번 기다려보았다는 우현의 변명을 들으며 안나가 웃었다.-오빠, 저 보러 왔다고 말해도 돼요.우현은 안나의 집 근처 골목에 차를 세웠다. 트렁크를 열어 준비했던 꽃다발과 편지를 안나에게 건넸다.-정식으로 고백을 하고 싶었어. 안나. 너를 좋아해. 안나, 네가 대학생이 되면 너의 남자 친구가 되고 싶어.우현이 수줍게 고백을 했다. 안나가 대답했다.-오빤 벌써 내 남자 친구인걸요.안나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우현은 인공 장기 회사에 취직을 했다. 번듯한 직장을 가진 남자 친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았다. 동급생 남자들이 밥과 커피를 사줄 때 우현은 여행을 같이 갈 수 있었고 남자 선배들이 영화를 보여줄 때 우현은 뮤지컬 표를 들고 나타났다. 안나가 졸업을 하면 안나의 부모와 노마에게 정식으로 말할 생각이었다. 안나와 결혼 하겠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우현은 그날을 상상하며 혼자 연습을 하곤 했다.사건이 터졌다. 리베이트 사건이었다. 우현의 회사는 인공 장기를 공급하면서 거래가격의 십오 퍼센트 정도를 담당 의사에게 현금으로 되돌려 주었다. 불법이었지만 익숙한 관행이었다. 의사들은 의례히 받는 것이라 여겼고, 회사는 어차피 들어가는 마케팅 비용이라 여겼다. 주는 쪽, 이를테면 영업사원들이 퇴사하면서 리베이트 장부를 가지고 회사를 협박한다거나, 협박하다 여의치 않으면 경찰에 투서를 한다거나 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출발점이 달랐다. 리베이트를 주는 쪽이 아니라 받는 쪽에서 문제가 생겼다. 한 종합 병원의 이식 외과에 제공한 리베이트를 그 과의 과장이 혼자서 유용을 했다. 과에 속해 있던 의사들이 공정한 분배를 요구했다. 과장은 과 전체의 이름으로 들어온 것이니 과장이 알아서 관리하겠다며 맞섰다. 언쟁과 날카로운 신경전이 반복되던 중 회식 자리에서 서로에게 술잔을 던졌고 주먹다짐을 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고 술이 깨지 않은 한 의사의 입에서 리베이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폭력 사건에서 리베이트 사건으로 바뀌었다. /김강 소설가

2022-08-15

근대의 베스트셀러, 추월색의 시대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라는 자본주의 문화상품으로서 출판된 책을 가리키는 개념들은 꽤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책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서점의 서가에 요즘 많이 읽히는 책들에는 관심을 갖게 마련이지 않는가. 도시 중심의 커다란 서점에서 많이 팔린 순위대로 진열해둔 책들을 보면서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여론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으며,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한 것들로 구성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가늠할 수 있던 지금보다 조금 더 단순한 시대에 베스트셀러의 의미는 좀 더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우리가 읽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를 말해준다, 는 인식이야말로 베스트셀러의 시대를 지탱하던 가장 큰 밑바탕의 사고는 아니었을까. 가끔은 그렇게 조금 더 단순했던 시대가 그리울 때가 있다. 사실 그때보다 지금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훨씬 더 많은 글을 읽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무엇을 읽고 있는가 하는 것은 지금도 활발하게 스마트폰 속 인간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저장하고 있을 구글의 서버밖에 알지 못한다. 포털의 검색어 순위가 제공해주는 요즘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단어들은 너무나 직접적이고 말초적이어서, 베스트셀러들의 순위가 주는 낱말과 낱말의 연결로서의 서사, 그 속에 들어 있는 독자와 독자들 사이의 얽힘과는 전혀 다르다. 이제는 책에 대한 홍보 수단으로서의 의미밖에 찾기 어려운 베스트셀러가 한국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언제였을까. 베스트셀러는 결국 그 책이 얼마나 팔렸는가 하는 기준에 따른 것이니, 그 책이 얼마나 팔렸는가 하는 것을 계산할 수 있는 도구로서 판(edition)이나 쇄(printing) 같은 개념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근대적인 출판 이전에 베스트셀러를 거론하기는 어렵다. 조선시대에도 필사본이나 방각본 등으로 발간된 소설들이 세책가를 통해서 활발하게 읽혔다고는 하지만 이들을 베스트셀러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은 그러한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최초의 근대적인 의미의 베스트셀러라면 결국 한국에서 근대 출판이 시작된 이후인 딱지본으로 출판된 책들을 그 시작으로 거론해야 할 것이다. 딱지본이라고 하면, 1907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해 해방 무렵까지 이어졌던, 손바닥만한 작고 가벼운 페이퍼백 형태의 울긋불긋한 표지를 가진 출판물을 가리킨다. 페이퍼백과 비슷한 형태라고 해도 당시 한국에는 서양식의 코덱스(codex) 제본의 하드커버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드커버에 대비되는 페이퍼백은 아니라 보통 입구화로 사용되는 컬러 그림을 표지로 끌고 나와 간소하지만 화려한 표지로 꾸민 책을 가리킨다.문학사에서 소설의 양식으로 거론하는 새로운 소설이라는 의미의 ‘신소설’이란 사실 문학의 양식을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라 이 딱지본으로 출판되는 과정에서 전래의 ‘구소설’과 대비되는 창작소설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었다. 일제 강점을 전후로 새로운 창작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았는데, 이인직이나 이해조 등이 신문 연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작가였다면, 최찬식이나 김교제 등은 딱지본 출판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작가였다. 이인직이나 이해조의 창작소설들도 신문 연재 이후 딱지본으로 출간되어 큰 인기를 얻었지만, 이해조의 베스트셀러는 다름 아니라 ‘심청전’을 각색한 ‘강상연’이나 ‘춘향전’을 각색한 ‘옥중가인’이었다. ‘강상연’은 12판 정도, 옥중화는 17판 정도를 냈다. 사실 당시에는 판(edition)이라는 개념을 지금의 쇄(printing) 개념으로 썼기 때문에 인쇄 활자에 큰 변화가 없어도 판 교체를 표시하였다. 당시 서점(출판사)으로서는 이 정도 베스트셀러를 갖고 있다는 것이 큰 자부심이었기 때문이다. 신소설, 즉 창작소설로서 최초의 베스트셀러는 바로 최찬식의 ‘추월색’이었다. 22판 정도가 확인된다. 읽으며 마음을 졸이게 만드는 근대적인 대중소설 양식이 탄생했던 것이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2-08-15

지방의원 연수 ‘놀러간다’는 지적 안 나와야

지난 1991년 부활한 지방의회의 국내·외 연수 투명성 문제가 30여년간 논란거리로 대두되고 있다. 대구경실련 의정감시단은 지난 10일 대구지역 지방의회의 국내 교육·연수(의원역량개발비) 편성 내역과 1인당 연수 예산을 공개하면서 “지방의회 관광성 연수가 이번 지방의회에서도 그대로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일부 기초의회의 연수 계획이 ‘단체여행’으로 의심할 만한 내용으로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대구경실련은 “수성구·남구·달서구의회는 각각 연수장소를 여수와 부산, 대구로 정해 연수목적이 명확하지만, 일부 의회는 참가의원 이탈을 방지한다는 이유를 들며 연수장소를 제주도로 선택했는데 목적이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지방의원들의 국내·외 연수가 말썽이 된 것은 공부보다는 관광에 치중하는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지난 6월에는 대구·경북을 포함해 상당수 전국 기초의회 의원들이 임기를 한 달여 남겨놓고 외유성 해외연수를 떠나려다 사회적 파문이 일자 부랴부랴 일정을 취소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지난달 출범한 제9대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이후 처음 개원했다. 법 개정으로 인사권한이 커지면서 의회사무처(국) 직원들에 대한 인사를 의장이 독립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돕는 정책지원관도 의원정수의 절반만큼 신규 채용할 수 있다. 지방의회의 권한이 커진 만큼 고유기능인 집행부 견제와 감시에 대한 책임감도 커졌다. 이번에 당선된 지방의원들은 초선 비중이 높아, 공부하고 연구하는 의회상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지방의회의 행정사무감사 과정과 예·결산 심사 방법 등은 열심히 공부해야 좋은 성적표를 받을 수 있다. 지방의회는 지역민들로부터 ‘의원들에 대한 국내·외 연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도록 연수일정을 자질강화에 초점을 두고 짜야 한다. 특히 내년 1월부터는 그동안 자율에 맡겨졌던 지방의원들의 의정활동이 의무적으로 공개된다. 이제 공부하지 않고 놀 생각만 하는 지방의원들은 다음 선거에서 혹독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022-08-11

대구시 원스톱지원, 국내 성공 모델로 만들자

행정기관이 기업의 투자를 돕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기업이 느낄만큼 속도감 있는 지원체제를 구축하기가 쉽지 않다. 법령에 따라 집행해야 하는 현실적 규제 문제가 너무 많이 존속하기 때문이다.그러나 행정이 능동적으로 움직이면 못할 것도 없다. 대구시가 원스톱 투자지원단 협의체를 구성해 기업투자 지원에 적극 나서기로 해 관심이다. 기업유치를 위한 홍준표 대구시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협의체 결성이란 점에서 유독 관심이 더 간다. 대구시 원스톱 투자지원단 협의체에는 8개 구군청과 한국산업단지공단 등 모두 15개 기관이 참여한다.지금부터 기업이 대구시에 투자를 결정하면 부지 선정에서부터 건축 인허가 등 모든 행정절차를 대구시가 한번만에 신속하게 해결해주게 된다. 대구시 관계자는 최근 대구 투자의사를 밝힌 다국적 기업 이케아와 프랑스의 발레오 등이 원스톱 투자지원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 인허가 과정에 6-10개월 걸리던 것이 2개월 정도로 줄어든다고 한다.홍 시장은 지난달 실국 업무보고에서 “공무원의 갑질시대는 끝났다”면서 “대구에 돈을 가지고 오면 물심양면으로 돕겠다”는 생각으로 행정의 원스톱 시스템 구축을 잘 하라고 했다고 한다. 특히 경북도의 100조원 투자유치 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도록 당부도 했다고 하니 기업유치에 대한 그의 의지가 강함을 짐작케 한다. 기업유치는 도시의 경제발전과 인구증가 등 도시 활력화와 직결되는 문제다. 대구시의 원스톱 지원체제 구축은 과거 여타기관에서 말하던 원스톱 지원체제와는 다르게 실제적으로 기업이 피부로 느낄 수 있게끔 운용돼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대구시가 마음먹고 시작한 원스톱 지원체계가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 모델로 운용되길 바란다.80세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에서 날아와 한국의 삼성전자 평택공장부터 먼저 찾았다. 기업유치에는 지위도 의전도 중요치 않다. 미국은 공장 지을 땅을 거저 줄 정도로 기업유치에 적극적이다. 대구시가 전국에서 기업하기 가장 좋은 도시로 알려진다면 대구의 경제 전망은 밝을 수밖에 없다. 홍 시장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대구시의 원스톱 지원체제가 전국에서 가장 성공한 제도로 이어지길 바란다.

2022-08-11

반지하의 민낯

외신들은 서울의 반지하 주택을 이렇게 표현했다. semi-basement(절반지하층), underground apartment(지하아파트) 또는 우리말로 풀어 banjiha라고도 했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반지하는 낯설고 어설펐다.서울의 물난리가 나면서 반지하층에 살던 일가족 3명이 참변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외신들은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벌어진 참사를 일제히 보도했다, 영화 ‘기생충’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주택 구조에 살던 가족이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며 한국사회의 반지하 주택을 또 한 번 도마 위에 올렸다. 이곳은 빈곤층이 많이 사는 곳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반지하 주택은 옥탑방과 함께 한국의 열악한 주거공간을 대표하는 장소다. 햇볕이 부족해 눅눅하고 곰팡이가 냄새가 나는 주로 저소득층이 기거하는 주거공간이다.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기생충’의 배경이 된 집이다. 한국사회의 빈부격차 문제를 지적한 이 영화로 외국서도 우리의 반지하 주택이 조금은 알려져 있다.우리나라 반지하 주택의 시작은 1970년대다. 전쟁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남북분단의 상황에서 반지하를 대피소로 활용하면서 생겨났다. 이후 서울로 인구가 대거 몰리면서 주택난이 심화되자 지하 1층을 주거공간으로 허용한 것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2020년 현재 32만가구 정도가 아직 반지하층에 살고 있다. 이번처럼 폭우가 쏟아지면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열악한 환경에서 많은 사람이 여전히 살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서울의 민낯이다.정부가 반지하에 대한 주거 대안을 찾겠다고 하나 당장 해결책은 없다. 매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인구의 서울 집중을 막는 것이 근본 해결책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8-11

세상에 공짜는 없다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국민의힘이 비대위 체제 출범과 이준석 대표 측의 반발로 혼란에 빠졌다. 이 대표를 지지하는 책임당원들의 모임‘국민의힘 바로 세우기’(국바세)에서 11일 책임당원 1천558명이 신청인으로 참여한 가처분 신청을, 12일에는 일반시민과 당원 2천500여명이 서명한 탄원서를 연달아 법원에 제출한다니 파급효과가 적지않을 듯 싶다. 국민의힘에서는 이 대표와의 물밑협상으로 극적 타결이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TK출신 5선중진 주호영 의원이 이 대표에게 정치적 해결을 촉구하며 적극설득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주 위원장은 취임 기자회견에서도 “정치적 문제를 사법 절차로 해결하는 것은 하지하의 방법”이라며 물밑협상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친이준석계로 분류됐던 인사들도 당 혼란 조기 수습을 위해 비대위 체제 전환을 수용하면서 이 대표에게 법적 대응 자제를 촉구했다. 이 대표와 별개로 비대위 전환에 대한 법적 대응을 검토했던 김용태 최고위원은 전국위 당일“효력 정지 가처분은 신청하지 않겠다”고 선언, 사실상 비대위 체제를 수용했다. 비윤계 광역단체장인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은 혼란 조기 수습 필요성을 이유로 이 대표에게 법적 대응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3선의 조해진 의원 역시 정치적 해결을 촉구했고, 정미경 최고위원도 이 대표의 법적 대응 자제를 주문했다. 현재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 정치 현안을 법정으로 끌고 갔다는 비난을 감내해야 하고, 당의 혼란을 부추긴 책임을 져야한다. 최악의 경우 정치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가처분신청이 인용된다 해도 현실적으로 이 대표가 당 주류인 친윤석열계의 견제를 뚫고 당 지도부로 복귀해 당의 혼란을 수습할 지도력을 발휘하기는 불가능하다.당내외 인사 모두 한목소리로 ‘법적대응 자제’를 주문하는 데도 이 대표 측이 법적대응을 결행한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 상임고문인 이재오 의원의 말처럼 당이 비대위로 전환된 데는 내 잘못도 있다고 반성하고,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도록 한 발 물러서면 본인이나 당에도 좋을텐데 말이다. 이 대표의 입장은 확고하다. 그는 선출직 당대표를 몇몇 정권 실세들이 윤리위를 통해 흠집을 만든 뒤 비대위 전환이란 편법으로 강제 퇴진시킨 것은 민주주의 정당정치에 있어선 절대 있어선 안될 일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그는 다음주 중 법원이 가처분신청을 기각한다해도 끝까지 정치적으로 싸울 태세다. 사상최초로 30대의 젊은 나이에 보수야당 대표가 됐던 이 대표가 정권탈환에 성공하고도 축출된 점을 국민들에게 읍소하겠다는 것이다. 이러니 물밑협상은 이미 물건너간 듯 보인다. 그에게 남은 것은 정치적 투쟁뿐이다. 이제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상당기간 내홍에 시달릴 수 밖에 없게됐다. 당을 주도하는 실세들이 당 대표를 내쳤으니 후유증도 그들의 몫이 될 수 밖에 없다.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했다.

2022-08-11

교육은 백년지계(百年之計)

윤영대 수필가 지난 8일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전격 사퇴를 했다. 취임 후 35일 만의 일이다. 10일 전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만 5세 입학’이라는 학제개편안을 느닷없이 발표하며, 지역별 집중 조사·연구를 통해 실행 가능한 학제개편안을 연내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교육계뿐만 아니라 학부모 등의 반발이 거세게 일고 공론화 과정도 없는 졸속한 제안이라는 반대 여론에 밀린 탓이다. 교육 정책은 향후 맞딱뜨리게 될 사회적 변화에 민감한 만큼 국민의 정서와도 충분한 논의와 검토가 필요한 것이다. 특히 아이들의 신체적 정신적 발달 정도와 사회와 가정 상황들이 많이 차이가 있는 만큼 신중한 추진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번 학제개편론의 반대 이유는 ‘서열화와 사교육 경쟁’, ‘선행학습 추진 열기 우려’ 등이지만 현재도 조기교육은 가능하다.조기교육 제도는 OECD 38개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영국, 호주 등 4개국은 만 5세 미만 입학이고 한국, 미국, 프랑스 등 26개국에서는 만 6세 입학이다. 만약 5세로 1년 낮출 경우 돌봄 공백 등으로 인한 맞벌이 부부의 고충과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운영에 난맥상이 우려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어린이는 1~6세까지를 유아(幼兒), 7~12세를 아동(兒童)으로 구분하고 있다. 3세부터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고 6세가 되면 젖니(幼齒)가 빠지고 그 이후엔 스스로 행동하게 되는 인격체로 보게 된다고 발달심리학에서 언급하고 있다. 영·유아 단계에서 국가가 책임지는 대상을 확대한다는 방침으로 유보통합 방안도 마련한다고 하지만 반대가 심한 현실이다.학령인구 감소의 심각성은 대학교육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60년 초반 베이붐 세대는 약 100만명이 출생했지만 1980년대 ‘1자녀 갖기’ 캠페인으로 80만명 선이 붕괴하였고 2000년 들어 저출산 기조가 시작되어 50만명 이하로 낮아졌다. 2020년엔 30만명 선도 무너졌다.그런데 대학 정책은 엇길로 갔다. 1990년대 중후반 입시지원자가 줄어들어 지방고교로 입시홍보를 다닐 때, 20년 후에는 사정이 어떨까? 하고 그 당시 출산율을 보았더니 약 60만으로 급격히 감소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육 당국은 대학설립 준칙주의를 실행하며 매년 수십 개씩 신설을 허가해 주었고 2011년까지 63개 대학이 신설되어 현재는 전국 407개 대학(전문대학 포함)이 있다. 입학정원도 2002년 65만6천명으로 정점을 찍고 차츰 감소하여 작년에 약 50만명이 됐다. 앞으로 이런 추세라면 15년 후 입학정원 1천5백 명 정도의 대학 100여 개가 폐쇄되지 않을까 걱정이다.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국가의 교육 소명이다. 교육은 국민의 기본 권리이며 적령기가 있기에 교육기관의 설립과 제도운영에도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 ‘교육은 백년지계(百年之計)’란 말은 긴 세월 심사숙고하라는 말은 아니고 미래를 예측하며 깊은 논의를 통해 계획하라는 것이다.‘만 5세 입학’ 정책 발표는 강력한 추진 의사 없이 너무 서둘렀나 보다.

2022-08-11

대통령 발목잡기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지 석 달이 지났다. 집무실을 용산으로 정하고 청와대를 개방한 것을 시작으로,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정책을 철폐한 것과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고 기울어진 외교·안보·법치를 정상화 하겠다는 의지와 행보를 보여준 것이 그간의 대표적인 업적이었다. 일견 당연한 일을 한 것 같지만 지난 좌파정권의 정책노선에 대한 전면적 개혁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처럼 좌·우 이념대립이 극심한 나라에선 어느 쪽이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걸 지난 정권이 잘 보여주었다. 야권 좌파세력들의 필사적인 윤 대통령 발목잡기는 충분히 예견한 일이었다. 발목을 잡는 정도가 아니라 할 수만 있으면 탄핵을 해서라도 끌어내리고 정권을 되찾고 싶은 것이 저들의 염원일 터이다. 상대를 꺼꾸러뜨리기 위해서는 사사건건 어떤 시비와 훼방과 중상모략도 서슴지 않는 것이 저들의 생리고 전략이라는 건 익히 보아온 바다. 소기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온갖 비리·범죄에 연루된 인물을 당대표로 뽑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걸 보아도 법치나 정치도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집단임을 알 수가 있다.정권이 바뀌었으나 지난 정권의 잔존세력들이 곳곳에 포진하여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히나 좌파노조가 장악한 언론매체의 발목잡기는 여간 심각한 장애가 아니다. 전 정권에서는 어용 편파방송을 일삼던 공영방송까지 현 정권에 대해서는 작은 꼬투리라도 잡으려고 안달이다. 하나의 흠결이 열 가지 장점을 상쇄하는 것이 소문에 대한 민심이다. 매스컴이 기본적으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파급효과는 천양지차로 달라지게 마련이다. 사실만을 보도한다고 할지라도 긍정젹인 사실은 무시하고 부정적인 사실만을 다룬다면 그게 바로 악의적인 편파보도라는 걸 대다수 민심은 눈치를 채지를 못 한다.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여권 내부에서도 온갖 분탕질로 발목잡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여당의 대표가 나서서 이토록 해당행위와 정권의 발목을 잡은 것은 유래가 없는 일이다. 제1야당이나 여당의 대표쯤 되는 인물이라면 마땅히 나라와 국민에 대한 일말의 소명의식이나 책임감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오로지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소인배로는 그 폐해가 막심할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준다. 나라와 정권의 성공을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이 오로지 당권 다툼에만 혈안이 되거나 자신의 정치생명을 위해 어디에 줄을 댈지 눈치 보기에 급급한 여당 국회의원들도 결국 대통령 발목잡기에 한 몫을 하는 것이다.윤 대통령은 아직 정치판이나 언론의 생리에 익숙하지 못하다. 통치자의 일거수일투족은 정치행위고 정치적 파급력을 갖는다는 걸 잘 모르는 것 같다. 대통령의 소신이나 감정은 반드시 정치적 여과를 거쳐서 표출되어야 한다. 올바른 소신과 철학을 갖는 것만으로는 정치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그것을 어떻게 관철하느냐 까지가 정치적 역량이다.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발목에 기름칠이라도 해서 붙잡으려는 손들을 매끄럽게 빠져나갈 줄도 알아야 한다.

2022-08-11

폭염과 해양기후변화

연일 폭염이 기승이다. 뙤약볕에 잠시만 서 있어도 습하고 더운 열기가 아찔하다. 여름은 더워야 한다는 속설을 입 밖으로 꺼내는 이들도 줄었다. 한여름 최고기온 경신 소식이 이젠 낯설지 않다. 2018년 폭염이 대표적이다. 공식적으로 41도(강원도 홍천군)를 기록할 당시, 폭염과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등의 용어들이 어지럽게 통용됐다. 요즘도 푹푹 찌는 열기가 며칠째 이어지면 내일은 또 얼마나 더울지 걱정부터 앞선다.2018년 폭염이 진짜 두려웠던 이유는 매일 쏟아지던 비극적 뉴스 때문이었다. 오늘은 또 몇 명이 열사병과 사투를 벌이며 쓰러질지 가늠하기조차 힘든 시기였다. 밭일을 하다가,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가, 택배 배달을 하다가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생업에 종사하며 열기에 쓰러져갔다. 자연재해는 사회구조상 가장 약한 고리부터 끊어낸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리어카를 끌고 폐지 줍던 노파와 공사장 인부의 사망 소식은 한없는 무기력감을 안겨줬다.요즘도 폭염과 가뭄으로 낙동강 녹조발생이 잦아진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된다. 당장은 낙동강을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이들의 피해로 국한되겠지만, 결국은 낙동강 변에서 농사짓고 낚시하는 이들과 낙동강 주변 생태계 전체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시선을 바다로 돌리면 산적한 문제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고수온으로 인한 양식장의 피해가 대표적이다. 여름바다의 고온현상은 일상이다. 가두리양식 대표 어종인 넙치의 경우, 25도 안팎의 수온에서도 거뜬히 살아있다고 한다. 한때 수온 25도씨는 마(魔)의 경계였지만 환경적응을 통해 생존력을 높인 것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넙치의 생존력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바다수온이 높아지고 있다.집단폐사 소식도 낯설지 않다. 고수온의 변동 폭은 생존과 폐사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인 셈이다. 갯녹음 현상도 눈에 띈다. 드론으로 촬영한 연안해역의 암반지역은 흰색 투성이다. 해조류가 사라지고 석회조류가 붙은, 일종의 바다 사막화 현상이다. 바다 생태계는 석회조류를 통해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어떤 형태로든 기후변화를 막아야 한다는 절실한 움직임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블루카본(blue carbon)이다. 블루카본은 간단하게 말해 해양과 연안 생태계에 의해 포집되는 유기탄소로, 맹그로브와 해초류 등이 여기에 속한다.맹그로브 등은 해양탄소 흡수원으로 육상 식물에 비해 탄소 격리율이 높아 열대 우림의 동일 면적당 2~4배 많은 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 IPCC(유엔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이 같은 블루카본의 온실가스 저감기능을 확인, 2013년부터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공식적인 탄소 감축원으로 인정했다.블루카본 생태계가 탄소저감을 일으키는 효율 역시 엄청난 것으로 알려졌다. 맹그로브 등 블루카본 생태계는 해저면적의 1% 가량이지만 블루카본의 50%이상, 많게는 70%까지 차지한다고 한다. 특히 2050탄소중립을 선언한 우리나라는 해양탄소흡수원인 블루카본 생태계가 절실한 상황이다.다만 한국은 IPCC에서 인정한 맹그로브와 해초류 등의 서식지 분포는 적은 편이다. 대신 해조류와 산호초, 미세조류, 갯벌 등이 많아 이들의 IPCC 국제인증 작업이 필수적이다. 해조류와 산호초 등이 블루카본 흡수원으로 인정받게 되면 우리나라의 탄소배출 감축량을 늘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기후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정현미작가 이에 현재 해양수산부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제1차 갯벌 등의 관리 및 복원에 관한 기본계획’을 통해 갯벌생태계복원에 나서고 있다. 실제 2020년에 진행된 블루카본 평가체계 구축 및 관리기술개발에 따르면, 우리나라 갯벌은 매년 26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있으며 이는 자동차 11만 대가 배출하는 양과 비슷하다고 한다.한편, 동해안에 많이 서식하는 해조류와 산호초 역시 블루카본 흡수원이지만 공식 인정은 받지 못하고 있다.특히 해조류의 탄소흡수원 연구가 미약한 상황이라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얼마 전에는 ‘제주형 블루카본’이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제주연구원은 ‘제주형 블루카본’ 대상으로 해초류와 염습지, 해안사구, 해조류와 패류를 선정하고, 연간 8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앞으로도 블루카본 생태계에 관한 다양한 연구와 활용 방안들이 소개될 것이다. 이로 인해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 자체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 피해를 최소화하고 장기적으로 발생 빈도를 낮출 수는 있을 것이다. 기후변화는 이제 생사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에 대한 장기적인 혜안과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2-08-10

다리, 잇다

양태순수필가 여름을 이고 가는 여행이다. 집을 떠나면서 잡다한 생각을 구겨 넣고 문을 잠갔다. 따라오지 못하게 빗장까지 질렀다. 태양이 조각조각 쏟아져 대지를 굽는 열기에 코끝이 후끈해도 짜증이 나지 않는 것은 기분 탓일 거다. 잠시 일상으로부터 비켜서는 홀가분함에 마음이 부푼다.목적지는 신안 퍼플섬이다. 가고 오는 길이 멀지만 더 늦기 전에 다녀오자는 말에 친구들이 기껍게 찬성했다.차가 출발하자마자 수다가 폭발했다. 학교 때의 친구라 서로의 친구가 겹치기도 해 이야기의 소재는 풍성했다. 때로는 서로의 수다가 허공에서 얽혀 잠시 멈추기도 했지만 샘이 마르지 않는 것처럼 과거에서 현재를 넘나드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흥미진진했다. 간간이 튀어나오는 고향 사투리가 이야기를 더 찰지게 녹여냈다. 이야기의 대상이 들으면 언짢을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사는 것이 이 맛이라는 듯 웃으며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훌쩍 지나 천사대교에 이르렀다.천사대교는 압해도와 암태도를 연결하는 다리로 신안군이 천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특성을 반영한 이름이다.입구에서 본 다리는 장관이었다. 다리의 주탑에 연결된 케이블은 은실로 짠 주렴처럼 아른거리고 바다와 하늘 사이로 천천히 달리는 차가 천사 날개를 지날 때는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듯했다. 파란 물을 잔뜩 머금은 하늘을 콕 찔러보고 싶은 아찔한 설렘이었다.몇 개의 짧은 다리를 더 지나 퍼플섬에 도착했다. 안좌도, 만월도, 박지도로 연결된 다리는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었다. 게다가 보라색 일색인 집과 건물들이 빚어내는 풍경은 신비스러웠다.보이는 곳마다 포토존이어서 그곳에서 만난 여행팀과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추억을 쌓았다. 전동차를 타고 반월도를 둘러보는 내내 길가에는 버들 마편초가 한들거리며 반겨주었다. 원래는 자생하는 도라지꽃이 많아서 퍼플이었지만 지금은 오래 볼 수 있는 버들 마편초로 바꾸었다고 한다.비탈진 밭에는 고구마와 참깨가 많았다. 참깨를 보며 꺼낸 친구 이야기가 대박 사건이었다.들어보니 참깨를 받은 사돈이 전화를 해서 ‘사돈, 방앗간에서 중국산이 섞였다는데 아니지요?’ 했더니 ‘사돈이라서 중국산을 쪼매만 섞었니더’ 했단다. 솔직한 사돈 때문에 우리는 기막혀하면서도 숨이 넘어가도록 웃었다. 퍼플교를 걷는 내내 포즈 잡으며 시시한 이야기로 깔깔거렸다. 그러는 동안 서로를 향한 다리는 더 단단해졌다.다리는 사이를 이어준다. 뭍과 섬, 섬과 섬, 길과 길,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닿을 수 있게 한다. 이미 열린 길을 거리는 더 가깝게 마음은 더 두텁게 해주는 역할이다. 다리가 오래도록 튼튼하려면 오가는 이의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이번 여행은 새 다리를 놓기도 했다. 내 마음에서 신안으로 퍼플섬으로 다리를 놓았다. 많은 다리를 지나며 쌓은 이야기들이 기억 저장고에서 반짝이고 있을 게다. 언제든 꺼내면 2022년 여름과 함께 아련한 시간으로 피어날 것이다. 방송에서 또는 다른 사람의 여행 경험담에서 희미해진 다리가 다시 진해지기도 할 테지만 말이다.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리는 자칫 끊어지기 쉽다. 사소한 실수가 쌓이거나 친하다고 번번이 예의를 무시하면 그 틈으로 의심의 물이 스며든다. 추억으로 이어진 줄에 어느덧 구린내가 날 때면 위험한 순간이다. 재빨리 귀를 세우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 자만에 빠져 눈치코치 모른다면 자기도 모르는 새 다리는 없어지고 만다.아름다운 다리를 건넌 친구들과의 다리는 더욱 견고해졌다.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서로의 마음을 잇는 다리를 덧대고 삐걱대지 않도록 속마음 헤아리기와 배려란 기름칠을 꼼꼼하게 했다. 같이한 세월만큼 우정도 추억도 돈독해지는 너와 나, 우리의 다리가 오래 이어질 것을 믿는다.친구들, 참깨에 중국산 참깨는 섞으면 안 된다. 그것만 명심하자.

2022-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