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순흥은 예부터 소백산을 넘기 위한 주요 거점으로서 고구려와 신라가 패권을 다투던 지역이었다. 한때는 고구려의 영토였다가 신라의 세력이 확장하고 고구려의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힘을 쏟을 때 신라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고구려와 신라의 영향을 모두 받았던 만큼 이 지역의 고분은 수용과 융합적인 고분과 벽화가 발견된다. 무덤의 고분벽화는 당시의 생활 풍속·신앙·종교·사상 등을 짐작하게 하며, 회화 기술과 재료·표현 기법 등에 대해 알 수 있게 한다. 신라는 무덤 양식으로 인해 공예품 위주로 발굴이 되어 회화는 매우 희귀한 편에 속하는데, 특이하게도 영주에서 신라의 고분벽화가 발견되었다. 이후 현재까지 신라의 고분벽화는 순흥 벽화고분과 순흥 어숙묘 딱 두 곳만이 있다.
봉황이 알을 품는다는 비봉산 서남쪽 구릉에 순흥 벽화고분을 중심으로 고분군이 형성되어 있다. 이 고분은 한반도 중부의 고구려계 벽화고분으로 법흥왕 26년(539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약 4m, 지름은 약 14m이며, 널길과 널방으로 나눠지는 굴식돌방무덤으로 신라의 주류를 이루는 중대형 돌무지덧널무덤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내부에는 석회를 덧바른 벽 위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주로 먹선으로 윤곽을 잡은 후 채색한 것으로 보인다. 순흥 지역에 전파된 불교와 불교문화에 융화된 타신앙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신라에 불교가 전해진 시기는 실성마립간(402~417)이나 눌지마립간(417~458) 시기이며, 공인은 한참 후인 법흥왕 528년에 이르러서야 이뤄진다. 한 지역의 내세관이 변화하여 다른 종교의 내세관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림에도 순흥 벽화고분은 신라의 불교가 공인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성되었다. 이는 이미 오랜 시기 동안 순흥에 불교 신앙이 확산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로국(신라)은 국경의 소국에게 기존의 지배 구조를 인정해주면서 변경 방어를 맡긴 것으로 보이는데, 아마도 순흥은 국경이므로 거의 자치 행정이 이뤄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도시의 유연한 분위기 속에서 순흥은 불교 수용과 융합의 통로로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유사’의 불교 전파 흔적-고구려에서 온 승려 묵호자와 아도의 노력-을 살펴보아도 경주의 영향력이 다소 적었던 순흥과 그 인근이 선진문물 수용에 용이했음을 알 수 있다.
순흥 벽화 고분의 널길 벽에는 널방을 지키는 천왕형 역사(力士)가 그려져 있다. 역사는 근육질 몸과 부리부리한 눈, 붉은색 상체가 거의 드러나는 인도식 승려복을 걸치고 있으며, 입은 크게 벌리고 소리를 지르는 듯하다.
전체적으로 이국적인 생김새를 지녔다. 널방의 동벽은 훼손이 심한 편으로 상서로운 새를 그린 서조도(瑞鳥圖)와 원근감 없이 둥글고 원만한 산악도(山岳圖)만이 일부 남아 있다. 서조도의 새는 ‘해 안의 새’에서 고구려의 ‘삼족오’를, 세련된 선에서 백제의 ‘봉황’과 유사한 면을 연상하게 한다. 북벽에는 산·구름·새·연꽃·연못 등의 그림을 통해 불교적 이상향을 내세의 공간으로 표현하였다.
이를 지키는 이는 서벽의 뱀을 쥔 역사와 버드나무이다. 뱀과 함께 그려진 역사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흔하지만 귀가 달린 뱀은 신라만의 변형으로 보인다. 재생과 순환을 상징하는 신수로서의 뱀에 대한 신앙이 일부 불교에 수용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버드나무는 벽사와 재생을 뜻하는 신목으로 동북아시아에서는 신성시했으며, ‘귀신 쫓는 나무’로도 유명하다. 버드나무에 대한 관념도 타신앙의 불교 수용으로 볼 수 있다.
남벽에서는 무덤의 축조 시기를 예측할 수 있는 묵서 명문과 삼지창에 고리를 걸어 어형기를 달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는 5세기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유사한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순흥 벽화고분에서 300m 떨어진 어숙묘는 자연적 습기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고분벽화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파손되었다. 다만 널길의 돌문 안쪽에 있는 명문을 통해 진평왕 17년(595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널길 천장에는 활짝 핀 7엽3중판 형식의 연꽃이 남겨져 있다. 3~4중판 연꽃은 5세기 평양과 가야 고분에서도 볼 수 있으나 잎맥을 그린 것은 어숙묘가 유일하다.
새로운 삶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고분의 통로에 연꽃을 그려 내세의 이상향으로 향하는 불교적 의미를 더했다. 돌문 바깥면의 두 여인은 긴저고리와 치마·허리띠를 하고 있어 삼국시대의 회화 양식을 확인할 수 있다.
순흥의 두 고분은 신라의 고분 중 특이한 경우로,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과 6세기 삼국의 회화 양식을 알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발굴 전 이미 도굴되어 대부분의 부장품이 사라진 점이 아쉽기만 하다.
현재 벽화고분의 가치를 보존하고 관광자원으로서 정비하기 위한 계획이 수립되었다고 하니 신라의 독특한 고분과 벽화가 어떻게 거듭날지 기대된다.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