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대처럼 하늘을 향해 솟은 바위들 사이로 넓적한 바위가 아슬하게 걸쳐져 있다. 곧 떨어져 내릴 듯 비스듬히 걸쳐져 있는 이 바위는 가야산에서 꼭 둘러봐야 할 장소로 알려진 ‘상아덤(서장대)’이다. 이곳은 성주 백운동에서 칠불봉으로 향할 때, 끝없는 계단과 사투를 벌이다 잠시 쉴 수 있는 서성재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가면 만나볼 수 있다.
상아덤은 성주 방면의 가야산 전경을 한 폭에 담을 수 있는 장소다. 동북쪽으로는 갖가지 모양의 바위들이 즐비한 만물상이 눈길 아래로 시원하게 펼쳐지고, 북쪽으로는 등산의 목적지인 칠불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남서쪽으로는 출발할 때 확인했던 심원사가 있는 심원골과 길게 이어진 능선이 늘어져 있다. 해인사가 있는 합천 방향의 전경을 눈에 담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상아덤은 가야의 ‘정견모주’의 신화가 깃든 장소이기도 하다. 상아덤의 ‘상아’는 여신을 뜻하는 말이고, ‘덤’은 바위라는 뜻으로, 직역하면 ‘여신 바위’라는 말이 된다. ‘가야산의 산신인 정견모주가 백성을 위해 하늘에 치성을 드렸고, 그에 감복한 천신 이비가지가 오색 꽃구름 가마를 타고 내려와 감응을 맺은 신성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높이 솟은 바위 위로 비스듬히 누운 상아덤은 혼례를 상징하는 가마를 따 ‘가마바위’라고도 부른다.
이후 산신 정견모주는 알을 두 개 낳는다. 하나는 고령 양전동에서 알을 깨고 태어나고, 나머지 하나는 회천을 타고 낙동강으로 흘러 김해에 이르러 깨어난다. 첫째 아들 ‘뇌질주일’은 머리가 해와 같이 빛난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대가야의 이진아시왕이 된다. 그의 이름은 또한 세상을 다스리는 귀한 사람이란 뜻이다. 둘째 아들 ‘뇌질청예’는 어머니를 닮아 얼굴이 하늘색과 같이 푸르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김해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된다. 이러한 정견모주 신화의 내용에 의하면, 대가야와 금관가야는 형제지간이며 대가야가 형의 위치에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지금껏 발굴된 유적이나 유물을 보면, 금관가야가 대가야보다 한 세기 앞선다는 걸 알 수 있다. 4세기 이전에 발굴된 가야 유적은 김해 쪽이 크고 부장품도 화려한 반면에 고령 쪽은 거의 발굴되지 않았다. 5세기 이후의 가야 유적은 고령 쪽이 크고 김해 쪽은 작은 규모만 발굴된다. 금관가야가 4세기 말까지 김해를 중심으로 번성하다가 왜와 손을 잡고 신라를 공격했으며, 고구려가 신라를 도와 금관가야를 토벌하면서 쇠퇴하였다. 그 후 대가야가 5세기 중엽부터 6세기 초까지 고령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다 가야를 통일하지 못하고 562년 신라에 병합된다.
대가야를 형의 위치에 놓았던 정견모주 신화는 적어도 5세기 이후가 되어서야 산신 설화에 불교식 명칭과 개념이 덧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정견은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한 8가지 자세 중 하나인 ‘바로 본다’는 뜻이고, ‘주일’이나 ‘청예’도 중국의 옛 전설에서 윤색된 흔적이기 때문이다. 대가야와 금관가야를 형제로 묶은 내용도 대가야의 세력이 구축되던 5세기 중엽 이후로 추측한다. 이는 대가야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또한 대가야의 마지막 왕자 월광태자가 자신을 ‘정견의 10세손’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산신을 믿던 토착세력의 위상도 높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대가야가 신라에 병합되면서 체계적인 신화의 정립은 요원해진다. 이후 9세기쯤 신라의 중앙 정치에서 가야계 인물들이 몰락하는데, 그들에 의해 신화가 윤색된 것으로 보인다. 해인사를 창건한 승려 석순응과 석이정은 대가야 왕족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치원이 기록한 두 사람의 전기에는 정견모주 신화가 담겨 있다.
가야산에 내려오는 산신 신화는 아마도 청동기시대의 샤머니즘적 성격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대가야가 성장하면서 불교를 받아들여도 가야산은 건국의 성소로서 신성시되었고, 정견모주는 신라에 병합된 이후에도 국가 제의나 기우제의 주체가 되었으며, 불교 성소 안에서도 따로 모셔졌다. 본래 해인사 경내에는 정견모주를 모시던 정견천왕사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국사단(산신각)에 그 흔적이 조금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정견모주에게 평안을 비는 산신제는 제법 현대까지 지냈다고 한다.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뒷산에 잣나무 두 그루와 커다란 바위가 있는 장소가 산신제를 지내던 제단이었다. 지금은 가야산 입구에 마련된 가야산역사신화테마관 안에 소원을 비는 종이를 달 수 있는 장소가 체험 형태로 마련되어 있다.
오랫동안 신성한 산으로 여겨졌던 가야산, 그중에서도 빼어난 상아덤은 가야산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장소다. 또한 대가야의 고분들이 산등성이를 따라 만들어지며 하늘에 닿기를 기원했던 것처럼 하늘에 가깝기도 하다. 촛대처럼 높게 솟은 바위 위로 아슬하게 걸쳐진 상아덤을 보며, 꽃구름 가마를 타고 혼례를 치르던 산신 정견모주를 떠올려본다.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