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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물길, 포항운하

등록일 2024-05-15 18:51 게재일 2024-05-1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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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운하관.

하늘이 맑고 바람이 잔잔하던 어느 봄날, 작은 유람선이 부두를 출발하여 인공적인 물길에 몸체를 들이밀었다. 물길을 가르며 천천히 나아가는 유람선에서 내다본 양옆의 전경은 마치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깝게만 느껴진다. 운하의 좁은 폭 때문일까, 일상을 영위해가는 송도 사람들의 생생한 표정 때문일까, 오랜만에 타보는 유람선의 흔들림에 마음도 흔들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녹아내릴 듯 쏟아지는 바닷가의 햇살이 따스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녹진하게 풀어져 버린 마음에 포항 송도의 전경은 색다른 생생함으로 다가왔다.

포항 송도는 포스코가 포항에 자리 잡고 융성하기 이전에는 이름 그대로 ‘섬’이었던 곳이었다. 울진에서 발원한 형산강과 동해가 만나는 하구, 지도에서 호랑이 꼬리에 해당되는 곳 안쪽에 형성된 커다란 섬 송도는 소나무가 무성히 자라 방풍림을 이뤄 송도로 불렸다.

또한 송도의 끝자락이자 형산강 하구의 동빈내항은 신라 시대부터 물이 얼지 않아 어선을 정박시키기에 좋은 장소로 활용되던 천혜의 부두였다. 이곳은 1732년 포항창이 개설되면서 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함경도에 발생한 큰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창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항구로 자리를 잡아가던 포항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일본의 발전된 어업 기술을 들여오면서 더욱 성장한다. 많은 일본인이 포항에 자리 잡았고 풍부한 수산물을 수탈했으며, 일본인 거리까지 형성하여 불야성을 이뤘었다. 일본의 패망 이후에도 포항은 중요한 군사 항구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도시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이다. 포항은 포항제철소가 건설되고 도시가 빠르게 확장되면서 근대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끄는 대표 도시로 자리매김하였다. 포항 원도심 일대로 점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도심은 상업 및 주거 용지가 매우 부족해져 갔다. 포항은 형산강의 범람 피해를 방지하고 주택부족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송도와 포항내륙을 가르던 형산강 및 주변의 습지대를 매립하는 하천직선화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후 송도는 섬이 아닌 내륙으로 편입된다.

1970년대 형산강 하구에서 동빈내항으로 이어지는 작은 물길 여럿이 매립으로 인해 막히면서 매립되지 않은 동빈내항의 인근은 점점 오염물이 쌓여갔고 심각한 악취가 나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원도심을 떠나갔고, 원도심 일대는 뒷골목과 같은 슬럼화가 진행되었다.

도시 오염의 심각성과 슬럼화, 철강산업의 쇠퇴로 인한 지역경제의 둔화 등 도시문제를 인지한 포항은 2006년 도심 재생 프로젝트를 하나의 돌파구로 시행한다. 이미 사라진 형산강의 옛 물결을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지만 포항운하를 건설하여 주변의 생태환경을 복원하고, 심각한 도시 오염의 문제를 해결하고, 슬럼화되어가는 원도심을 재정비하고 나아가 관광산업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였다.

스페인 빌바오나 독일의 라인강이 근대 산업도시의 이미지를 벗고 공간을 재구축한 것처럼 포항도 비슷한 도시 공간의 재구성을 시도한 것이다.

2012년부터 시작된 공사는 대략 2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길이 1.3킬로미터, 폭 13~25미터 크기의 운하가 남북으로 연결되면서 송도는 이름에 내포된 ‘섬’이란 의미를 되찾았다. 서울의 청계천이 복원되어 우리 곁에 돌아왔듯이 포항의 사라졌던 형산강 줄기도 그러한 복원과정을 거친 것이다.

또한 포스코 전경이 훤히 보이고, 송도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운하의 끝자락에 포항운하관이 세워졌다. 독특한 모양의 포항운하관에서는 포항운하가 어떻게 복원되었는지 운하전시관에서 확인해 볼 수 있고, 드넓은 바다의 향취를 카페에 앉아 느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꼭대기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전경이 제일이다. 작은 유람선이 운하를 타고 오르는 모습도 볼 수 있고, 날씨가 좋으면 포항 앞바다까지 나가는 유람선도 확인할 수 있다. 멀리 송도의 유명한 소나무숲도 보이고, 16년만에 제 모습을 찾은 새하얀 송도해수욕장도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다.

재생된 포항 형산강 일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포항운하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와 자전거길을 달리고, 온갖 해산물의 풍성한 냄새가 가득한 죽도시장에서 상인들과 흥정하고, 만남과 헤어짐이 공존하는 포항여객선터미널에서 손을 흔들고, 소나무숲으로 이어지는 송도 송림 테마거리에서 휴식을 취하고, 하얀 모래가 매력적인 송도해수욕장을 거닐고, 야경이 멋진 포스코의 전경을 바라본다.

운하를 따라 흘러가는 유람선에서 바라본 포항의 송도는 평화롭고 잔잔한 바닷가의 일상과 활기차고 생동감 있는 도심의 일상이 공존하고 있었다.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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