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신라의 중심지였던 경주는 수많은 고분이 있고, 불교와 관련된 유적이 있으며, 당시를 짐작하게 하는 유물들이 즐비하다. 신라만의 고유한 유물이 있는가 하면, 로만글라스(지중해)·황금보검(카자흐스탄)·인면 유리구슬(로마)·원성왕릉 무사상(서역인)처럼 동서 교류를 한 흔적도 발견된다. 또한 전통적인 기와집과 초가집이 마을을 형성한 곳도 있고, 한눈에 보아도 현대의 뛰어난 건축가들이 솜씨를 발휘한 독특한 모양의 건축물도 찾아볼 수 있다. 경주는 남겨진 문화재와 오래된 역사가 현재의 삶과 어우러져 독특한 도시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경주의 독특한 아이덴티티(identity)를 잘 담아낸 것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그 중 경주엑스포대공원 안의 건축물도 손에 꼽을만하다. 지역의 이미지와 자연환경, 유구한 역사와 관광 도시로서의 면모가 건축물에 잘 드러나 있다. 경주엑스포대공원 안의 여러 건축물 중에서 이타미 준(유동룡)의 ‘경주타워’, 쿠마 겐코(Kuma Kengo)의 ‘경주세계문화엑스포기념관’, 승효상의 ‘솔거미술관’이 유명한 편이다.
엑스포대공원의 정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특이한 건축물이 있다. 일반 빌딩처럼 생긴 네모난 건축물의 안쪽을 목탑의 실루엣으로 파내었는데, 멀리서 보면 황룡사 9층 석탑을 표현하여 신라의 찬란했던 문화를 상징적으로 담은 것을 알 수 있고, 가까이서 보면 건축물의 아래쪽 골조가 노출되어 있어 해체주의적 스타일이 반영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82미터나 되는 이 ‘경주타워’는 가장 높은 층에서는 미디어 전시를 감상하고, 65미터의 유리 커튼월 공간에서는 보문 일대를 한눈에 전망할 수 있다. ‘경주타워’는 이타미 준이라는 재일교포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작품이다. 그는 한국의 고건축·문화·예술을 사랑하였고, 한국에도 여러 건축 작품을 남겼다. 그는 자연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건축물이 세워질 장소의 고유성과 인간의 삶이 함께 어우러지는 방향으로 건물을 디자인했는데, 특히 땅의 물성으로 자연의 이치를 밝히며, 건축을 통해 드러나는 세계를 표현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 또한 반영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기념관’은 정문에서 왼쪽 끝에 위치하는데, 신라 고분과 경주의 주상절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빛을 가려주거나 비바람을 막아주지는 못하는 노란 철제 구조물이 지붕과 기둥으로 기념관의 영역을 규정하고 회랑을 형성하여 이동 동선과 방향을 알려준다. 철제 구조물이 뒤덮인 지붕 일부는 돔 형태로 봉긋 솟아올라 고분의 모양과 닮아있다. 또한 주건물의 마당 부분에는 독특한 분수대가 있는데, 마치 분수대의 바닥이 서서히 하늘로 치솟듯이 둥글게 말린 형태다. 하늘로 길이 열리는 듯한 이 수공간은 건물 안의 동선을 따라 걷다가 만나는 둥근 유리 커튼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붕의 돔 형태를 따라 전시관의 내부 천정도 돔 형태로 되어 있고, 주상절리를 닮은 방사형 판재들이 전시 공간의 동선을 만들어 조형미를 더한다.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터널, 세계 유산을 미디어로 홍보하는 살롱 헤리티지, 여러 나라의 언어로 문자가 새겨진 스테인리스 미러 기둥, 경주에서 열렸던 역대 엑스포를 문의 형태로 만든 ‘세계의 문’은 전시 자체로도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세계 속의 경주’의 상징도 내포하고 있다. 이 건축물을 디자인한 쿠마 겐코는 건축물이 자연과 융화되고, 지어질 장소와 행복한 관계를 형성하는 건축을 추구한다. 제주도에서 지붕의 재료로 제주도를 대표하는 암석 현무암과 스테인리스 그물망을 접합한 재료를 활용한 바도 있다.
‘솔거미술관’은 진정으로 자연 속의 건축물로 지어진 느낌인데, 언덕 위의 연못가에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으며 땅의 높낮이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지어졌다. 황토로 된 벽은 경사진 언덕에 맞게 뼈대가 세워졌으며, 미술관 내부의 동선도 높고 낮은 본래의 지형에 따라 작은 공간들의 이어짐으로 구성되어 있다. 큰 작품은 평면이 아닌 둥근 곡률로 전시되어 있어 독특하면서도 친근하게 느껴지며, 특히 제 3전시실의 통창은 자연조차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화한 것을 알 수 있다. 2015년 3월에 완공된 후 통일신라의 대표 화가 솔거의 이름을 따 미술관의 이름을 지었으며, 경주 최초의 공립미술관으로 자리잡았다. 이 건물을 설계한 승효상 건축가는 빈자의 미학을 건축에 잘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미술관의 동선을 따라 거닐며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그의 건축 철학이 미술관 곳곳에서 빛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공간과 공간을 이어지는 곳곳에 보이는 자연·공간과 잘 어우러지는 전시물은 물론 자연조차도 하나의 작품으로 삼은 이 미술관은 그 생김새조차도 하나의 자연물처럼 보인다.
신라의 옛 중심지 경주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지역성과 역사성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도시에 속한다. 도시 곳곳에 수많은 볼거리가 있지만 경주엑스포대공원의 미학적인 건축물도 경주를 제대로 담았다고 생각된다. 경주를 담은 건축물을 돌아보며 과거의 경주와 현재의 경주 그리고 세계 안의 경주를 느껴본다.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