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감영과 서남쪽으로 약 600미터 떨어진 약령시장 일대는 대구의 구 중심가이자 근대 종교가 일찍이 자리 잡았던 곳이다. 서상돈 고택·이상화 고택과 같은 근대 건축물이 제법 남아있으며, 지금은 대구 근대골목투어로 더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2개의 종탑이 하늘에 닿을 듯 솟은 아주 오래된 성당-계산성당도 만나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성당이 본격적으로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1886년 한불수호조약이 체결된 다음이다. 주로 천주교는 파리외방전교회에서 파견되었으며,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종교적 활동을 위한 기반과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쉽게 말해 자생이 가능한 성소의 마련, 즉 성당 건축에 힘을 기울였다. 처음에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목재를 이용하여 한옥 양식으로 지었는데, 이는 소자본으로 기존의 건물을 개조하기 좋으며, 좌식 생활에 익숙한 신도들에게 친근함을 줄 수 있는 편리함이 있었다.
지금의 계산성당도 본래는 한국식 십자형 성당(성모성당)이었다. 그러나 1901년 2월 대구에 닥친 강진에 의해 축성 1년 만에 화재로 소실된다. 당시 추위에 얼어버린 성체등(기름등) 대신 촛대를 세워놓았던 것이 화재의 원인이었다. 만약 성모성당이 소실되지 않았다면 국내 유일의 그리스 십자형 평면에 팔작 기와지붕을 올린 45칸짜리(약 100평) 독특한 근대성당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듬해(1902) 르베르 신부는 신축 성당 건축에 돌입한다.
계산성당은 르네상스적 성향이 남아있는 고딕양식의 벽돌조 건물로 불린다. 건축양식을 명확히 구분하지는 못하지만, 대체로 고딕양식은 ‘뾰족하고 수직적인’ 것이 특징이다. 뾰족한 아치창문, 뾰족한 첨탑, 수직적인 지지대가 하늘에 닿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다. 또한 신이 하늘에서 지상을 바라볼 때 성소가 잘 보이기를 열망하기도 했다.
그래서 고딕양식의 교회 평면도는 십자가 모양인 경우가 많다. 여기에 스테인드글라스로 경이로움과 성스러움을 더해 종교적 존엄을 표현하였다. 계산성당도 2개의 높고 뾰족한 첨탑과 라틴십자가 모양의 평면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가 반영되어 있다. 반면에 르네상스 양식은 일명 ‘황금비율(1:1:2)’이 특징이다.
황금비율은 서양에서는 고대 이래로 가장 이상적인 비례로 여겨지며, 절대적인 미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황금비율이 반영된 르네상스 건축물은 좌우가 대칭적이며 조화롭고, 아기자기한 지붕이나 동글동글한 장식이 건물에 붙어 있다. 계산성당은 전면의 종탑과 측면의 출입구가 모두 1:1의 비율로 정사각형의 안정적인 구조로 만들어졌으며, 익랑(십자가 모양에서 짧은 부분) 내부는 황금비율(1:1:2)이다.
계산성당은 동서로 긴 건물로 주 출입구인 종탑은 서쪽의 서성로에 인접해 있다. 2개의 종탑 베이에는 각각 반원형의 아치창이, 그 중앙의 박공에는 화려한 장미창이 설치되어 있다.
그 아래 출입문을 통해 성당에 들어서면 삼랑식 높은 천정을 따라 2열의 기둥들이 줄지어 늘어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열주로 인해 중앙의 신랑 부분과 좌우의 측랑(복도)부분이 뚜렷하게 구분되며, 상부의 아치들이 모여 아케이드를 만든다. 건물의 측면에 돌출된 좌우 익랑에는 성가대석과 연주석이 있으며, 건물의 동쪽 끝에는 제단을 두었다. 기둥이 아치 모양으로 세워져 있어 반원형의 주보랑이 생성되었다.
이러한 건축양식은 주로 프랑스 교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형태로, 당시 르베르 신부와 설계자 프와넬 신부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이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1918년 계산성당은 정삼각뿔에 가까웠던 첨탑의 지붕을 기존보다 더 뾰족하게 높이고, 동쪽 끝 주보랑 뒤로 오각형 모양의 공간을 더 달아내어 건물을 증축한다. 익랑도 설치하여 일자 모양의 건물이 십자가 모양처럼 보이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성당에서 중요한 스테인드글라스는 프랑스에서 제작된 것으로 설치되어 지금까지 현존하고 있다. 프랑스 툴루즈의 앙리 제스타의 서명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상 아래에 남아있으며, 블라디보스톡을 경유하여 1902년 10월에 들어왔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작품이 설치된 2년 뒤, 프랑스로 보낸 로베르 신부의 편지에 ‘남한을 휩쓴 태풍으로 스테인드글라스 하나가 떨어져 나가 산산조각이 났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계산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당시 유럽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계산성당은 대구근대골목으로 유명한 약령시장에서 서성로에 인접해 있는데, 건물의 동쪽으로는 수녀원과 사제관이, 남쪽으로는 계산문화관과 사무동이, 북쪽으로는 매일신문사가 둘러싸고 있다. 옛 사제관의 모형과 미술가 이인성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인성 나무와 성모동산의 사진들과 로베르 신부의 흉상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역사관에서 오래된 성당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김해 볼 수 있다. 근대의 정취가 남아있는 약령시장, 그곳에 한때는 대구의 랜드마크였던 계산성당이 오랜 세월에도 꼿꼿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