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초등학교의 담임교사가 교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벌어졌다. 참담한 일이다. 그녀는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새내기 교사였다. 학부모의 전화를 수십 통 받았으며 환청이 들릴 정도로 힘겨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교사들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비통함을 표하고 있다. 나 역시도 얼마 전까지 교원으로 근무했었다. 교무실과 학부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모습과 어떻게든 잘해보겠다고 애썼으나 상실로만 남은 일련의 사건이 떠올랐다. 지금도 비슷한 고통에서 허우적대는 이들이 있음을 알기에 마음이 더욱 어렵다.
학교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공간이다. 인간은 자라면서 필연적으로 이곳을 거치게 된다. 집과 부모라는 안온한 세계를 떠나 낯선 세계로 들어와 타인을 만나고 관계 맺는 방식을 배운다. 세상은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내키지 않더라도 규율과 법칙에 따를 필요도 있다. 학교에 간다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의 문을 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다시 단단해지면서 한 생명은 자란다. 그렇기에 학교는 마냥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없다.
나의 학창 시절도 그랬다. 학교가 흡사 감옥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다. 교내에서의 차별과 냉대, 강압과 폭력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선생은 손목에 찬 시계를 벗으면서 학생을 향해 무차별적인 구타를 한다. 소설이나 드라마에도 학생을 향해 거리낌 없이 상처 주는 말을 내뱉는 선생이 자주 등장한다. 서사적 비약이 아니다. 그런 야만적인 시대가 우리에게 분명히 있었다. 교사로 일하게 되면서 아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눈이 바로 서 있지 못하고 위험한 미끼를 덥석 물어버리기도 했다. 폭력에 노출되어도 그것이 폭력인 줄 모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무조건 보호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미진함과 어리숙함으로 종종 실패로 끝나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잠이 오지 않고 괴로움에 몸서리쳤다. 출근 시간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나는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선생의 자리에 앉았다. 어떤 부분이 무뎌지는 기분이 들었고 진정성이라는 피상적인 단어가 무력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감사한 점은 내게 사랑과 응원을 주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폭언에 가까운 전화나 문자를 받은 적도 있었는데, 그러면 마음이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행간에서 나를 상처 주고 싶다는 명백한 의지가 읽혔다. “당신은 선생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간신히 붙잡고 있던 실 하나가 툭 끊어져 버리는 것 같았다.
세상을 떠난 그녀 역시 그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자격이 없다’는 말은 상대를 모멸감에 빠지게 만들기에 아주 쉬운 문장이다. 악의적인 인간에게 내뱉기도 하지만 예기치 못한 실수나 부딪침에 있는 사람에게도 자각 없이 쓰인다. 누군가의 자격을 결정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없다. 원인이 어떠하든 그것은 분명히 상대의 마음을 훼손시키는 언어다.
타인을 향한 적의는 어디서부터 오는가. 한 사람을 절대적 악인으로 상정하고 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교사가, 관리자가, 학부모가, 어떤 사람들은 학생이 나쁘다고 말한다. 태어난 것 자체가 죄라고 한다. 개인에 고통이나 슬픔에 집중하기보단 누군가에게 책임을 덮어씌운 뒤에 무자비하게 돌을 던진다. 세상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뿌리 깊은 냉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런 식의 책임 전가는 더 이상 해선 안 된다.
육체만큼 다치기 쉬운 것이 영혼이다. 종이에 손이 베이는 것도 쓰라린데 보이지 않는 화살이 가슴에 박히면 회복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일하면서 매일 같이 느꼈다. 구시대적인 통제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사회에서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살펴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존재가 한 교실에 모였다.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덧씌워선 안 된다. 모두에게 책임이 있고 모두가 그만큼 노력해야 한다.
비와 무더위가 반복되는 한여름의 가운데 서서 다짐한다. 단 한 사람의 마음을 다른 무엇보다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마음처럼 상하기 쉬운 것은 없으니까. 마음 다해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학교 구성원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는 물론이고 교육 현장에서의 지속적 성찰과 개선을 통해 이와 같은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