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민어의 노래

“고사리 장마가 지나고 난 바닷길/ 깊게 패인 여울물 소리에 새우떼의 선잠을 깨우는/ 밴댕이와 알 품은 병어들의 놀이터가 돼버린 전장포 앞바다에서는/ 서남쪽 흑산해에서 진달래꽃 피기를 기다렸다가/ 뻘물 드리우는 사리물 때를 기다려/ 뿌우욱 뿌우욱 부레로 내는 속울음으로/ 내 고달픈,/ 고향에 다다른 칠월의 갯내음을 아가미로 훑는다”김옥종 시인의 ‘민어의 노래’ 1연이다. 목포 출신인 시인은 한때 조폭에 몸담았으나 격투기로 진로를 바꿔 세계적인 격투 대회 ‘K-1’에 진출했다. 데뷔전서 패한 후 은퇴, 주방장으로 변신해 민어 횟집을 운영하다 전남 광주에 ‘지도로’라는 식당을 새로 열었다. 학창 시절부터 주먹 세계에 있을 때도 시를 써온 그는 2015년 문학지 ‘시와 경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후 5년 만에 첫 시집 ‘민어의 노래’(휴먼앤북스)를 출간했다.“뿌우욱 뿌우욱 부레로 내는 속울음으로 내 고달픈, 고향에 다다른 칠월의 갯내음을 아가미로 훑는다”는 문장을 읽으면 당장이라도 장비를 챙겨 민어낚시에 나서고 싶다. 민어배 선장들은 민어가 부레로 뿌우욱 뿌우욱 내는 소리를 추적해 배를 댄다. 여름철 최고의 보양식으로 각광 받으며 값이 치솟기에, 큰놈 한 마리만 잡아도 뱃삯 본전 뽑고도 남는 게 민어 낚시다.그런데 이 민어 낚시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우선 멀다. 제철 민어를 낚으려면 고흥이나 해남, 신안으로 가야 하는데 민어 찾아 이천 리 대장정이다. 둘째, 힘들다. 그늘도 없는 바다 위, 뙤약볕을 맞으며 낚시하기란 정말 고역이다. 장거리 운전과 쪽잠으로 지친 몸은 새벽 출항에 이미 파김치가 돼 해가 뜰 무렵이면 푹푹 삭는다. 셋째, 안 잡힌다. 초릿대가 훅 꺾여 챔질해 보면 얄궂게도 장대, 백조기, 메퉁이가 올라온다. 민어는 경계심이 높아 입질이 굉장히 약다.왕복 유류비에 선비, 기타 부대비용까지 감안하면 민어는 잡아서 먹는 게 아니라 사 먹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서너 사람이서 인당 6~7만원씩 걷어 사 먹는 게 훨씬 편하다. 그걸 알면서도 낚시꾼 마음이 또 그렇지 못하다. 낚시꾼만큼 유혹에 약한 사람들도 없다. 물고기를 유혹하기 위해 스스로 유혹당하는 족속들이 아닌가. 마침 고흥 나로도와 거금도에서 민어가 제대로 터졌다는 소식에 귀가 팔랑였다. 한 사람이 열댓 마리 우습게 잡는다고 하니 안 가고 배길쏘냐.나로도 가는 길, 민어에 얽힌 웃기는 추억 하나 떠올랐다. 임자도 출신 김두안 시인 초청으로 시인들이 놀러 갔다. 널찍한 한옥집에 도착하니 8킬로그램짜리 민어가 기다리고 있었다. 민어회에 소주 마시는 동안 김두안 시인이 썰을 풀기 시작했다. 신안 앞바다는 고려시대 보물선들이 많이 침몰했는데, 자기는 어릴 적에 상평통보로 짤짤이를 했다는 것이다. 한술 더 떠서 바닷가에 굴러다니는 술잔 하나를 주워 왔는데, 거기 술을 따르니까 술잔 속에서 웬 소복 입은 여자가 장구를 치더란다. 김두안 시인의 ‘혼이 담긴 구라’가 민어회 맛을 돋웠다. 그 술잔은 결국 못 봤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다음날 새벽 일찍 배에 올라 열심히 낚시했다. 조과는 거의 꽝에 다름없는 몰황이었다. 퉁치라 불리는 민어 새끼 두 마리, 퉁치만 한 백조기 한 마리가 조과의 전부였다. 그나마 일행 중에서 내가 나은 편이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잘 나온다더니, 역시 소식 듣고 가면 지각이다. 결국 민어 유혹에 실패해서는 어시장에 가 갯장어나 좀 샀다. 올라오는 길에는 보성에 들러 짱뚱어탕을 먹었다. 어시장 좌판과 미식의 유혹에 넘어간 어리석은 낚시꾼이 바로 나다.“ 세월은 소리 내어 울지 않는 것/ 민어 몇 마리 돌아왔다고 기다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새우 놀던 모래밭을 파헤쳐/ 집 지을 때부터 플랑크톤이 없던 모래밭에/ 새끼를 품어내지 못한 오젓, 육젓이 밴댕이를 울리고/ 깡다리를 울리고/ 병어를 울리고/ 내 입맛 다실 갯지렁이도 없는 바다에 올라 칼끝에 노래하던/ 민어의 복숭아 빛 속살은 다시 볼 수 없으리라”(김옥종, ‘민어의 노래’ 3연)아아, 낚시꾼은 소리 내어 울지 않는 것이다. 민어 몇 마리 못 잡았다고 기다림이 끝난 것은 아니다. 내년 여름, 바다에 올라 초릿대 끝에 노래하는 민어의 복숭아 빛 속살을 반드시 다시 보고 말리라!

2022-08-23

경북도내 원산지 표시 위반, 강력히 대응해야

경북지방에서 지난 1년동안 원산지를 속이거나 표시하지 않아 적발된 업소가 100군데가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배추김치와 돼지고기, 닭고기, 두부, 꿀 등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식재료 상당수가 원산지를 허위로 표시해 소비자의 먹거리 불신을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산물 원산지표시 및 축산물 이력위반 정보 공표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올 8월까지 경북도내 23개 시군에서 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적발된 업소는 모두 136곳이다. 위반 내용을 보면 저렴한 미국산, 칠레산, 네덜란드산 등 수입산 돼지고기를 국내산으로 둔갑해 판매한 행위가 29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헐값의 브라질산 닭고기를 국내산 닭고기와 섞어서 판매한 행위도 적발됐다. 또 외국산 콩을 국내산으로 표기하거나 중국산 고춧가루를 국내산으로 속여 판매한 행위도 적발됐다. 문경에서 자란 송이를 봉화송이로, 안동농협공판장에서 구입한 사과를 ‘청송사과’로 둔갑해 되판 사례도 적발됐다. 농수산물 원산지 표시제는 농산물이나 수산물 등 그 가공품에 대해 적정하고 합리적인 원산지를 표시토록 하여 공정한 거래를 유도하고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93년 수입농산물을 시작으로 모든 농수산물과 가공품에 대해 원산지 표시의무제가 시행된 지 벌써 30년 가까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전국적으로 매년 4천건의 위빈행위가 적발되고 있어 원산지 표시의무제 시행의 취지가 무색할 지경이다. 국민의힘 이만희 국회의원이 농림부로 제출받은 자료(2019년)에 의하면 경북은 경기, 서울에 이어 가장 많은 위반행위가 적발됐다. 원잔지 표시제는 소비자의 알 권리뿐 아니라 생산자의 권익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알몸 중국산 김치로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이 많이 커져 있는 상태다. 값싼 수입산으로 이익을 내겠다는 얄팍한 인식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원산지 표시제에 대한 홍보와 단속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경북도 등 당국은 엄격한 시장 관리로 소비자가 안심하고 먹거리를 구매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2022-08-22

한국의 슈퍼컴퓨터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슈퍼 컴퓨터는 현존하는 컴퓨터 중에서 가장 크고 빠른 컴퓨터로, 특별히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데이터 처리가 요구되는 제약, 기상 예측, 신소재 연구, 인공지능(AI) 개발 등 분야에 활용된다. 세계 최고성능의 슈퍼컴퓨터는 지난 5월 말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2022 국제슈퍼컴퓨팅 콘퍼런스’에서 공개된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의 슈퍼컴 프런티어로, 실측 성능 기준 초당 연산 횟수가 1.102엑사플롭스(1엑사=100경)에 이른다. ‘엑사’는 100경(京)을 나타내는 단위로, 1EF는 1초에 100경 번의 연산을 처리한다는 의미다.한국에서도 세계 톱10 안에 들 슈퍼컴퓨터가 구축된다. 정부는 최근 2천93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600페타플롭스(PF)급 이상의 이론성능을 갖춘 슈퍼컴 6호기 구축 작업을 오는 2024년까지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페타플롭스는 1초당 1천조번의 연산이 가능하다. 따라서 슈퍼컴 6호기는 1초당 60경번의 연산 처리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는 현재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이 운영하고 있는 슈퍼컴 5호기 누리온의 이론성능 25.7페타플롭보다 약 23배 빠른 속도다. 또 세계 슈퍼컴 성능 2위인 일본 이화학연구소의 후가쿠(이론성능 537페타플롭스)보다도 빠르다. 현재 세계 톱500 슈퍼컴 순위에 든 한국 슈퍼컴은 모두 6대다. 2021년 삼성전자가 반도체, 인공지능 연구 등을 위해 삼성종합기술원에 설치한 SSC-21가 15위로 가장 높은 순위다. 기상청의 구루와 마루가 31~32위, 키스티의 누리온이 42위, 올해 에스케이텔레콤이 대화형 인공지능 개발을 위해 설치한 타이탄이 85위, 삼성전자의 SSC-21 스캘러블 모듈이 315위였다.과학기술의 발달이 나라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8-22

검사 윤석열 vs 대통령 윤석열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검사와 대통령은 그 역할과 책임이 다르다. 검사에게는 법적 시비(是非)가 중요하지만, 대통령의 관심사는 국익과 민생이다. 검사는 법치를, 대통령은 정치를 해야 하는 사람이다. 검사가 범인을 수사하듯 대통령이 이분법적 흑백론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윤 대통령의 검사경력은 27년이지만 정치경력은 9개월에 불과한 ‘초보’다. 여권 주변에서는 “대통령이 여전히 검찰총장 스타일에서 못 벗어난 것 같다”고 한다. 지지율 급락을 묻는 기자에게 “그 원인을 알면 어느 정부나 잘 해결했겠죠”라고 했다. 아무리 정치초보라도 이렇게 민심에 둔감할 수 있는가. 게다가 초보가 겁도 없이 과속까지 하니 국민이 지지를 철회하는 것이다.대통령이 원인을 모른다고 하니 분명히 알려드린다. 국민이 화난 가장 큰 이유는 독선적이고 오만한 인사다. 대통령이 “전 정권에서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느냐?”고 옹호했던 교육부장관은 여론의 뭇매로 취임 35일 만에 물러났다. 이미 장관 및 장관(급)후보 6명이 낙마했고, ‘윤핵관’과 김건희 여사가 관여했다는 인사 잡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통합의 상징인 대통령이 갈등의 중심에 있으니 문제가 심각하다. 선거 3연승을 이끈 당대표를 토사구팽(兎死狗烹)한 것은 ‘뒤끝 작렬’이었다. 대통령이 당대표를 “이×× 저××”, “내부 총질하던 대표”라고 했으니 당의 화합이 되겠는가? 또한 당대표가 대통령을 향해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고 직격하는 모습은 막장드라마였다. 이들의 권력싸움은 국정을 맡긴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최근 여론조사(KBS/한국리서치, 8월 15일)는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책임이 대통령(46.2%)에게 있으며, 윤핵관(19.7%), 야당(10.2%), 참모진(9.1%), 이준석(7.9%)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했고, 국민이 듣고 싶은 인사쇄신, 당의 내분에 대한 답변은 모두 회피했다. 이것이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고 한 대통령의 태도인가. 공감능력이 없는 대통령의 말은 공허할 뿐이다. 국민은 벌써 대통령이 말한 ‘공정과 상식’의 자기모순을 지적하고 있다.따라서 대통령부터 바뀌어야 한다. 오랫동안 습관화된 검찰문화에서 벗어나야 소통할 수 있다. 강골검사의 ‘외골수 기질’은 대화와 타협의 민주정치에 장애요인이다. 정치초보의 독선과 오만을 버리고 겸손해야 하며, 언론과 야당의 고언(苦言)을 경청해야 한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윤핵관을 멀리하고, 정무감각 없는 참모들의 전면개편도 시급하다.정치지도자의 미덕은 ‘배제’가 아니라 ‘포용’이다. ‘권력을 등에 업은 검사’라는 세평은 ‘정치를 모르는 대통령’이라는 말과 같다. 대통령은 비판을 포용할 수 있는 도량이 있어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는 독재다. ‘다름’을 ‘조정’이 아니라 ‘제거’의 대상으로 인식하면 민주정치를 할 수 없다. 대통령 윤석열은 검사가 아니라 대통령다워야 한다.

2022-08-22

“재선충 못막으면 소나무 멸종될 수 있다”

요즘 우리나라 산 어디를 가봐도 누렇게 말라가는 소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들이다. 특히 경북 동해안 지역에서는 요즘 소나무 재선충이 급속도로 확산돼 피해가 크다. 올해 경북도 내 재선충 감염 소나무류는 11만3천여 본으로 집계됐으며, 이를 면적으로 환산하면 1천136ha에 달한다. 피해가 특히 심한 곳은 포항, 경주, 영덕 등 주로 동해안 지역이다. 포항은 한때 적극적인 방제로 재선충 박멸에 성공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올들어 일출관광지인 호미곶과 송이 생산지인 기계면 일대를 중심으로 다시 빠른 속도로 감염이 진행되고 있다. 경주는 감포를 시작으로 불국사와 보문단지까지 재선충이 번지고 있다. 산주(山主)들은 “현재 감염속도로 보면 조금만 더 지나면 소나무 피해가 상상을 초월할지도 모른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소나무재선충은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최초로 발견된 이래 현재는 전국적으로 번지는 상태다. 감염이 되면 잎이 갈색으로 변색돼 그해 80%, 이듬해 3월까지 100% 고사하는 무서운 병이다. 현재로선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아 소나무 에이즈라고도 불린다.소나무는 우리민족을 상징하는 나무다. 앞으로 지구온난화로 인해 한반도에 소나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이미 나오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소나무재선충을 막지 못하면 어느날 갑자기 우리나라 전역에서 소나무가 멸종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정부가 매년 예산을 투입해 방제작업을 하고 있지만, 이런 식의 대응체계로는 소나무들이 견뎌내질 못한다. 경북도내 일선 시·군의 경우 방제 예산이 줄어들어 소나무재선충이 발생하더라도 손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소나무재선충을 잡으려면, 우선 일선 시·군에 방제예산을 충분히 배분해야 한다. 그래야 드론이나 항공촬영 등을 통해 재선충 피해지역을 진단한 후 체계적 방제를 진행할 수 있다. 중국은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가 발견되면 그 주변 지역 100m 범위의 나무를 모두 베어버린다는 소리가 들리는데, 우리나라도 늦기전에 이런 특단의 조치를 벤치마킹하길 바란다.

2022-08-22

기계의 발전과 휴먼에러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인류는 산업혁명을 통해 육체노동을 돕는 기계를 생산활동에 투입해 산업혁명을 고도화해 왔다. 증기기관 발명은 가축과 노예라는 에너지원이 기계의 동력으로 대체되어 사람에서 기계가 중심이 되었고, 2차 산업혁명은 그 기계에 전기라는 새로운 에너지원을 공급해 ‘생산효율’ 이 획기적으로 향상되면서 대량생산과 규모의 경제를 가능케 하였다.1, 2차 산업혁명이 인간의 육체적 노동을 기계가 대신해 왔다면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3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계가 고도화하는 동시에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에 기계가 결합되는 변화를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두뇌와 육체노동을 동시에 도와주는 새로운 기계의 시대에 대비하는 혁신을 준비해야 한다. 기계가 자동화되고 고도화된 시대에는 기계가 에러를 범하지 않도록 관리하여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며, 에러가 발생했다면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여 동일한 현상이 재발되지 않도록 근본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차선이 된다. 에러가 발생하는 순간 고도화·지능화된 최첨단 기계는 오히려 문제의 해결을 지연시키고 사람의 실수를 유발해 그동안 누려왔던 기계가 주는 혜택이 사라지는 순간을 맞는다. 산업현장에서 발생되는 불량이나 기계의 에러들을 분석해 보면 전혀 새로운 문제가 아니라 몇 개의 유형들이 번갈아 나타나면서 동일한 현상이 재현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근본원인을 명확하게 파악해야 하는 이유이다. 에러 발생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근절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인간은 실수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교육이나 훈련만으론 단기적인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그 효과의 지속성은 담보할 수 없어 문제의 근본원인을 끝까지 추적하여 없애 나가야 한다.기계와 사람의 접점에서 일어나는 에러의 근본원인 파악을 위해서는 ‘휴먼에러’ 발생의 원리에 대한 지식과 사고를 필요로 하며 이에 ‘휴먼에러’를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인지 실패형’으로 모니터링 수단이 없어서 일어나는 유형이다. 자동주행하는 대차 행동반경에 근접 센서를 설치하여 장애물을 인지하고 스스로 멈출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이 대표적이다. 둘째, ‘인지 모호형’으로 인지 상태가 모호하여 경고를 무시하거나 조치를 하지 않아 일어나는 유형이다. 기계의 컨디션을 모니터링하여 알람이나 경고음 등의 형태로 제공되는 정보의 신뢰성을 갖추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 셋째, ‘조치 생략형’으로 충분히 인지하였으나 깜빡하여 조치를 하지 않아 일어나는 유형이다. 넷째, ‘착각착오형’으로 충분히 인지하였으나 착각·착오에 의한 오조작으로 일어나는 유형이다. 스위치를 좌측으로 조작했는데 기계가 우측으로 움직인다든지 위치 또는 배열이 인간의 기대와 모순되는 것을 제거해야 된다. 다섯째, ‘의식 과잉형’으로 순간포착된 이상 현상을 요구 시간 내 조치가 불가하여 일어나는 유형이다. 인간은 너무 빠르거나 아주 작은 것은 볼 수 없으므로 초고속 카메라 운용 등의 대책이 필요한 경우이다. 인간의 주의력이나 상사의 지시, 숙련도에 의지하는 작업이 있다면 머지않아 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022-08-22

無信不立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언제나 그렇듯이 자전거를 타고 탁 트인 강변을 달리는 기분은 가뿐하기만 하다. 간간이 불어오는 강바람 결에 철마다 피고지는 꽃들이 특유의 웃음으로 반기고, 강물을 활주로 삼아 날아오르는 오리들의 날갯짓은 라이딩 마냥 가볍고 활기차 보인다. 그렇게 자전거에 몸을 맡기고 강둑에 줄지어 선 백일홍과 무궁화꽃의 환호(?)를 받으며 자출을 하거나 한가로이 주말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여유롭고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주위를 완상하는 자전거 타는 풍경은, 어쩌면 낭만적이다 못해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해보고 싶은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할 것이다.모처럼만의 여유로운 휴일을 맞아 나홀로 라이딩을 나선 것은 그냥 바람이나 쐬기 위함이었다. 거의 매일같이 두 바퀴를 굴리며 오가는 강둑길이지만, 무엇인가에 쫓기거나 서둘지 않고 느긋하게 페달을 밟으며 두리번거리다 보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은 것들이 이색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길섶에서 간간이 자전거 바퀴에 채일 듯 튀어오르는 방아깨비나, 멈춘 듯 흐르는 수면 위를 뛰어오르는 물고기의 비약을 달리는 중에도 얼마든지 눈으로 스캔할 수가 있는 것이다.자세히 보거나 오래 보지 않아도 익숙한 길에서는 이처럼 다채롭게 보이거나 들리는 것들이 많아서 한편으론 따스한 시선이 오래 머무는지도 모른다.그러나 핸들을 틀어 형산대교를 건너고 구룡포 방면의 대로변으로 지나가다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P사나 H사의 부지경계 측면의 가로수나 가로등 등의 기둥에는 요즘 때아닌 대자보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초긴장의 형국이다. 입추가 지났어도 초록에 지쳐 단풍 들기는 아직 한참 이른데, 이곳뿐만이 아니라 포항시내 전역에는 붉고 누런 현수막의 물결이 마치 단풍처럼 울긋불긋 외치듯이 펄럭이고 있으니 이 무슨 기현상일까? 더욱이 핫플레이스 명소 등으로 외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여름 관광철에 난데없이 엇비슷한 색깔과 다소 자극적인 문구의 현수막이 길거리를 온통 도배한 듯하니, 사뭇 의문과 역정을 떨쳐버릴 수 없다. 지난 2월의 요원의 불길 같은 현수막의 난립과 악몽이 재연되는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하다.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無信不立)는 말은, 개인의 관계나 직장, 사회생활은 물론 정치에서조차 믿음과 의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서로 굳게 믿고 의지하는 신뢰(信賴)가 아닐까 싶다. 지난 2월에 공식적인 약조가 있었고 또 과거 수십년간 지역상생과 동반성장의 기치로 사회적인 역할과 책임을 다해 왔음에도, 이런 식의 일방적·배타적 논리와 주장은 결코 시민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 것이다.여름의 문서를 벽장 속에 넣어 마감한다는 처서인 오늘, 칡과 등나무 줄기를 잘 추스르고 악담대신 악수로 마무리하여 자전거 두 바퀴처럼 잘 굴러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2-08-22

자기를 그리는, 미술가들의 자화상

자기가 자기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자화상’이라고 한다. 자화상은 회화의 여러 장르들 중 초상화에 속한다. 초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려진 인물의 ‘재확인 가능성’으로 화가는 모델의 모습을 상상해서 그리지 않는다. 초상화는 주로 의뢰를 받아 그려졌기 때문에 주문자의 바람이 강하게 투영되어 이상화나 미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 통치자들의 모습을 그린 흉상이나 기마상을 감안한다면 서양미술사에서 자화상의 기원은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미술가가 자신의 얼굴을 독립된 주제로 그린 것은 빨라야 중세 후기이고 본격적으로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였다.미술가가 자신의 모습을 작품에 묘사한 것으로 서양미술사가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된 작품은 프라하의 성 비투스 대성당에 설치되어 있다. 보헤미안 지역에서 건축과 조각으로 큰 명성을 날렸던 파를러(Parler) 가문 출신의 페터 파를러는 1380년쯤 자신의 모습을 조각에 담았다. 왕족이나 귀족, 고위 성직자들의 흉상들과 나란히 미술가의 자소상이 교회 벽면에 설치된 것으로 보아 그의 영향력이 대단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파를러 집안에 속한 미술가들은 자신들이 제작한 조각 작품에 가문의 문장을 새겨 넣음으로써 미술품 브랜딩에서도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독일 뉘른베르크의 성 로렌츠 교회에는 또 다른 조각가의 오래된 자소상이 하나 있다. 파를러의 작품처럼 독립된 자소상은 아니지만 아담 크라프트(Adam Kraft)라는 이름의 조각가가 성함 타버나클(tabernakel)을 제작하면서 자기의 모습을 집어넣었다. 1493년과 1496년 사이 화려한 장식의 고딕양식으로 만들어진 성함의 높이는 무려 20m에 달한다. 가장 아래에는 성함을 지탱하는 다리들이 있고 그 사이 사이 작은 크기의 인물상들이 몸을 숙여 등으로 무게를 견디고 있다. 조각가는 이 인물들 중 하나에 자기 모습을 새겨 넣었다. 이 조각은 미술사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가의 모습을 담은 전신조각상으로 여겨진다.미술가의 자화상은 미술가의 사회적 지위와 깊은 관계를 가진다. 르네상스에 앞선 중세시대 동안 미술가들은 수공업자에 불과했다. 육체노동으로 여겨졌던 미술가들의 창작활동이 르네상스에 이르러서야 고도의 지적 정신적 능력을 요구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이탈리아 출신의 거장들이 르네상스의 문을 열었지만 정작 이들은 자신들의 얼굴을 그림의 주제로 담지 못했다. 베노초 고촐리나 마사초, 라파엘로와 같은 화가들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거대한 그림에 등장하는 다수의 인물들 속에 자신의 얼굴을 숨기듯 슬쩍 집어넣기도 했다.서양미술사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얼굴을 기념비적으로 그린 화가는 독일의 르네상스 거장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이다.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뒤러의 자화상은 여러 측면에서 중요한 미술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무엇보다 화가의 자화상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면 빠질 수 없이 언급될 수밖에 없는 걸작이다. 금빛 곱슬머리가 길게 흘러내린다. 영민하고 날카로운 눈빛은 세계를 꿰뚫고 유난히 밝게 빛나는 손은 무엇이든 창작해 낼 수 있는 최고의 도구처럼 보인다. 뒤러의 자화상은 화가의 모습 너머에 있는 존귀함과 고귀함까지 뿜어내고 있다.뒤러보다 한 세기 뒤에 활동한 화가로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렘브란트(1606∼1669) 또한 자화상 계보의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렘브란트는 서양미술사 전체를 통틀어 자화상을 가장 많이 남긴 화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유화, 드로잉, 판화를 포함해 80여점 가까이나 된다. 빈센트 반 고흐가 남긴 자화상이 36점 정도로 알려져 있으니 수적으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제작연도에 따라 나열하면 화가가 살아온 생의 여정을 읽을 수 있다. 비단 렘브란트만이 아니라 모든 미술가의 자화상에는 미술가 개인의 삶과 고뇌 등 그의 인간적 면모가 투영되어 있음으로 감동의 깊이가 다르게 다가온다. /김석모 미술사학자

2022-08-22

그 길밖엔 없어<Ⅶ>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회사는 우현에게 책임을 져 달라 부탁했다. 우현 개인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한 일로 진술해주기를 바랐다. 우현과 회사는 협상을 했고 결국 우현은 자신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실행했노라 진술했다. 실형을 선고받았다. 우현은 안나가 기다려 줄 것이라 믿었다. 이 년이면 돼. 이 년이면 금방이야. 안나가 품에 안겨 울기라도 하면 이렇게 말해 줄 생각이었다. 안나는 울지 않았다.-이 년 동안 내가 어떻게 바뀔지 나도 몰라. 오빠를 사랑하지만, 사랑이 곧 결혼은 아니지. 인생에 사랑이 한 번만 있는 것도 아니고. 잘 다녀와. 뒷일은 그때 가서 보자고. 지금 이렇다 저렇다 헛된 약속을 하지는 않을게.우현과 안나의 첫 번째 이별이었다.형기를 마치고 감옥에서 나온 우현이 다시 안나를 찾았을 때 안나는 여전히 혼자였다. 이 년 동안 몇몇 남자들과 교제를 하기는 했었지만 동거나 결혼에 이를 정도의 관계는 아니었다. 다시 만난 첫날 안나가 말했다.-오빠를 기다리겠다 말한 적 없어. 하지만 오빠만큼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은 사실이야.우현이 안나에게 가졌던 섭섭함은 그렇게 사라졌다. 다시 만난 기념으로 간 여행에서 둘은 꼬박 이틀을 숙소에서 나오지 않았다. 엉겨 붙은 채 서로를 탐했다. 힘이 떨어지면 잠을 잤고, 눈을 뜨면 다시 엉겨 붙었다.-새로 사업을 시작했어.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 너를 데리러 갈게. 이제는 이야기해야지. 노마에게도, 너의 부모님께도.우현이 말했을 때, 안나가 대답했다.-나는 아직 아무것도 결정한 것 없어. 내가 말했지. 사랑이 곧 결혼은 아니라고. 오빠. 너무 서두르지 마. 너무 밀어붙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 아직 어려.이제는 안나를 알 것 같았다. 이미 한 번 헤어져 본 적 있는 터라 안나가 동기 남자와 밥을 먹거나 선배 오빠라며 술을 같이 마셔도 우현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현이 신경을 쓰는 것은 딱 한 가지였다. 안나의 직업.안나의 전공은 사학과였다. 우현은 안나가 전공을 살려 취직하기를 원했다. 대학원에서 공부를 더 하는 것도 괜찮은 길이라 여겼다. 보습학원 선생님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상상이었고, 지방자치단체들의 역사관 큐레이터가 되는 것도 멋진 일이라 생각했다. 엄마와 아내의 직업으로 적당했다.안나의 생각은 달랐다. 안나는 자신의 전공에 흥미가 없었다. 다들 가는 대학이라서 간 것이고, 성적에 맞추어 들어간 전공일 뿐이었다. 안나는 몸에 더 자신이 있었다. 아비와 어미가 물려준 우월한 몸을 활용하고 싶었다. 피트니스모델이 되거나 헬스트레이너가 되려했다.-나는 헬스트레이너, 피트니스 모델 둘 다 싫어. 나는 네가 네 전공을 살려서 직업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우현이 말했다.-나는 내 전공이 싫은걸. 좋아하지도 않는 것으로 평생 직업으로 삼으란 말이야? 안나가 되물었다.-그래도 피트니스 모델이 뭐고, 헬스트레이너가 뭐냐?우현이 인상을 썼다.-왜? 그게 어때서? 요즘 사람들이 자기 건강을 얼마나 살피는데. 사람들 건강에 도움도 되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도대체 반대하는 이유가 정확히 뭐야?안나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난 다른 사람들이 네 엉덩이, 네 가슴, 네 허벅지를 힐끔거리는 게 싫어. 그게 어쩌다 있는 일이 아니고 매일매일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게 더 싫은 거야. 큐레이터나 선생님. 얼마나 좋아. 엄마나 아내의 직업으로는 딱 이지. 내 마음, 내 기분을 모르겠어?우현이 대답했다.-오빠. 웃긴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아. 우현 오빠가 날 정말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구나.’ 할 줄 알았어? 나. 그런 생각 안 들어. 오히려 ‘이 사람도 어쩔 수 없는 한국 남자구나.’ 하는 생각만 들어. 내 몸이야.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오빠도 내 몸 때문에 날 좋아하기 시작한 거잖아. 안 그래? 남들이 내 몸을 힐끔거리든 정면으로 쳐다보든 나를 보고 있으면 나는 오히려 자신감이 생기고 기분이 좋아져. 내가 자신감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라서 좋아. 그러니 더 잘할 수 있는 거고. 그리고 내가 왜 벌써부터 엄마나 아내로서의 역할,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직업을 골라야 하는데? 듣고 보니 순전히 오빠 중심인 거잖아.두 번째 이별이었다.둘은 또 다시 만났다. 다시 만난 안나는 인정받는 헬스트레이너가 되어 있었다. 이번에도 우현이 먼저 연락했다. 안나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감당해야지, 감당할 수 있어. 궤도에 오른 사업이 자신감을 주었다.-오빠가 걱정했던 대로 힐끔거리며 곁눈질하는 남자들, 많아.안나가 웃었다.-그 사내들 덕분에 내가 월급을 조금 더 받고 있지. 뭐 나쁘지 않아. 지들이 내 몸을 상상하며 어디서 무슨 짓을 하건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 그래도 내 몸에 터치하는 것은 칼같이 자르고 있어.이번에는 우현도 같이 웃었다.-어, 웃네. 오빠도 이제 조금 바뀌었나 보네.웃고 있는 우현을 보며 안나가 말했다.-바뀌어야지. 그래야 모시고 살지. 우현이 대답했다.-그래, 그럼 내가 다시 만나주지. 오빠 집 어디야.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는 것 아니지? 오늘 오빠 집에 가자. /김강 소설가

2022-08-22

속고 피해 본 국민은 왜 외면하나

김진국 고문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말이다. 그는 또 “집을 분양했으면 모델하우스와 얼마나 닮았는지가 중요한데, (윤석열 정부의) 모델하우스엔 금 수도꼭지가 (달렸고), 납품된 것을 보니 녹슨 수도꼭지가 (달렸다)”라고 말했다.국민이 속았다면 나도 속았다. 부질없다고 생각되지만, 차근차근 따져보자. “속았다”라는 건 속아서 잘못 투표했다는 말이다. 윤석열 후보를 찍은 사람은 속아서 찍었다는 뜻이다. 지난 선거는 비호감 경쟁이었다. 후보들의 비호감도가 호감도보다 훨씬 높았다. 그러니 ‘속지 않고’ 투표했어야 한다면 이재명 후보를 찍었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이 전 대표의 뜻이 그런 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나친 표현이다.이 전 대표는 또 ‘양두구육’(羊頭狗肉·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이란 말도 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양의 머리를 흔들며 개고기를 가장 열심히 팔았고, 가장 잘 팔았던 사람은 바로 저였다”라고 말했다. “선거 과정에서 그 자괴감에 몇 번이나 뿌리치고 연을 끊고 싶었던 적이 있다”라는 말도 했다.선거 과정에도 윤 후보가 대통령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양고기’가 아니라 ‘개고기’인 줄 진즉에 알았다는 말이다.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 전 대표가 ‘개고기’인 줄 알면서 ‘양고기’라고 국민을 속였다.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가 아니라 ‘내가 국민을 속였다’라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개고기’인 줄 알면서도 이재명 후보를 돕지 않고, 다시 ‘개고기’를 판 이유는 뭔가. 장사가 끝난 뒤 큰 이문을 남길 거라고 기대한 건가.집권당 내부 갈등을 지켜보면서 어느 쪽도 편들고 싶은 마음이 없다. 도긴개긴, 제대로 움직이는 쪽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본질은 ‘국민’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강조한 ‘국민’을 반복하자는 게 아니다. 집권당 내부 갈등은 이준석 전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 이 전 대표와 ‘윤핵관’의 공방이다. 여기에서 국민은 빠져 있다. 이 전 대표의 말에 따르면 속은 것은 국민이고, 대통령을 잘못 뽑고, 국정이 표류하면서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인데, 논쟁은 정치집단 간에 피해자 코스프레 경쟁만 하고 있다.그래서 도대체 어쩌자는 건가. 이 전 대표 말대로 ‘개고기’라면 그것을 판 양측에 다 책임이 있다. 불량식품을 만든 사람뿐 아니라 그것을 알면서도 판 사람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개고기’가 아니라면 정쟁으로 국정을 표류시켜 국민을 혼란스럽게 한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 어느 쪽이건 ‘남 탓’이 아니라 집권 세력이 국민에게 사죄해야 할 문제다.‘금 수도꼭지’가 아니라 ‘녹슨 수도꼭지’라면 어떻게 하려고 하나. 아파트를 다시 지을 건가, 수도꼭지를 바꿔줄 건가. 피해를 본 국민에게 어떻게 사죄하고, 보상할 건가. 새로 산 자동차에 문제가 있다고 자동차 제작자와 판매자끼리 비난만 하고 시간을 끌면 그 차를 산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하나. 국민은 안중에 없고, 서로 정치집단끼리 권력투쟁만 하고 있다. 건설회사 내 사장과 전무가 싸워 누가 실권을 쥐느냐에 입주민은 관심이 없다. 빨리 물 새는 곳을 수리해주는 일이 급하다.결국 해결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현장소장이 잘못해도 사장이 나서서 입주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빨리 보상하고, 수리를 서둘러야 한다. 입주민 앞에서 누구 잘못이냐를 따지고 있으면 분통이 터질 일이다. 당선됐다고 끝난 게 아니다. 갓끈을 푸는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 선거 이후 지적하기도 힘들게 많은 실책이 있었다.일은 잘했는데 홍보를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까운 사람부터 근신해야 한다. 그것이 첫 단추다. 대통령직의 엄중함을 놓친 느낌이다. 정치인에 대한 수사는 시간을 끌지 않아야 한다. 범죄에 눈을 감을 수는 없지만, 가부간 빨리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 전 대표는 사생결단이고, 이재명 전 경기지사는 제1야당을 진지로 구축했다.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것이 국정에 오히려 짐이 되고 있다./김진국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8-21

“대구와 구미, 물 문제로 더 이상 분열돼서는 안돼”

윤재호 구미상공회의소 회장 사람과 문화, 우리나라 3대 도시까지 반열에 올랐던 인구 250만의 대구. 그리고 산업과 일자리, 우리나라 기초지자체 중 수출 1위까지 차지했던 경북의 중심도시 구미.이 두 지역은 명칭만 다를 뿐 하나의 생활권이고 구미는 대구의 위성도시이며, 구미 유동인구 60만의 상당수는 거의 대구에서 출·퇴근하고 있다.필자가 운영하는 회사 직원 30%가 대구에 주소지를 두고 있고, 구미 대부분의 회사와 기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내후년 대구권광역철도가 개통되면 대구 안에서의 이동보다 오히려 더 가까워질 수도 있어 끈끈한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를 더욱 두텁게 할 것이다.그러나 언제부턴가 먹는 물 문제를 두고 대구 취수원을 낙동강 상류로 이전하자는 움직임이 시작됐고, 해평취수장에서 일평균 30만t을 추가 취수하는 것과 관련해 양 지역 정치권과 이해당사자들 간의 이견이 쉽사리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는 정치적인 분열에서 기인된 결과도 상당히 있다고 보여진다.분명한 점은 대구와 구미는 분리할래야 분리할 수 없는 한몸이라는 것이다.이런 가운데 특히 안타까운 점은 최근 물문제를 두고 일부에서는 구미산단이 낙동강 오염의 주범이라는 식의 근거 없는 오보를 쏟아내고 있고, 과거 구미 불산 누출사고까지 운운하며 수질오염과 결부시키려 하고 있어 구미 기업인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그러나 구미의 많은 기업에서는 현재도 폐수처리시설 등 친환경 설비투자를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있으며, 구미시에서도 공공폐수처리시설 신증설과 완충저류시설 완비, 중수도 활용 등 낙동강 수질 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지난 17일 대구시에서는 협정서 공식파기를 선언하며, 오폐수 무방류 시스템 도입, 입주 업종 확대 금지, 구미상품 불매운동 등 시대를 역행하는 규제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 이는 제 발등을 찍고, 구미와 대구가 경제 공동체라는 가장 큰 공통분모를 훼손하려는 것으로 피해는 고스란히 구미를 포함한 경북과 대구의 기업, 시민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대구에 물이 부족하면 대구시민들을 도와줘야 하고, 구미에 일할 사람이 부족하면 대구의 우수한 인재를 끌어와야 하며, KTX가 없어 기업 활동이 어려운 구미에 ‘KTX 구미역을 신설’할 수 있도록 대구시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어야 한다. 결국 서로서로 도와주어야 하며, 그렇게 해야만 수도권 공화국 속에서 실질적인 지방경제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이번에 불거진 물문제가 더 이상 확대되지 말고 슬기롭게 극복되어 각자 도생이 아닌 하나의 물줄기로 수도권에 버금가는 막강한 대구경북으로 힘차게 도약하길 대구경북인의 한사람으로서 간절히 빌고 강력히 호소한다.

2022-08-21

영주의 화려한 청년기를 되찾을 것

박남서 영주시장 영주시는 인구감소와 고령화, 경기침체 등 타 중소도시와 다를 바 없이 해결해야 할 사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코로나19는 이렇게 산재한 문제에 더욱 무거운 압박감을 주고 있다.이러한 힘들고 어려운 문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해결 분야는 단연 ‘경제’다.영주 경제의 대변혁을 통해 미래 산업이 꽃피는 영주, 청년을 지키고 키우는 영주, 문화가 힘이 되는 영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경제 회복이 우선이다.시정은 지역 경기침체 및 지속적인 인구감소 문제 등의 시대적 숙제를 해결하는데 역점을 두고 관련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특히 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지원으로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의 우수한 청년 육성,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지역에 청년들이 북적이고 생기 넘치는 영주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지속 가능한 도시 영주시의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이를 뒷받침 할 기업지원 전담부서 신설과 국·도비 예산 확보를 위한 특별팀을 구성해 예산 1조원 시대를 열어야 한다.지역 기업이 살아야 영주가 도약한다.기업인들과 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현장 기업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더 역동적인 경제도시, 더 강한 경제도시 영주를 만들겠다.영주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의 조성원가 재점검을 통해 시의 재정 부담을 줄이고, 경량소재산업 육성 기반 구축과 기업유치에 힘써 청년이 일할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 확대와 세수를 올리는데 집중해 나갈 것이다.문화가 곧 지역경제의 힘이 되는 선비 관광산업 특화도 지역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축이다.영주는 선비정신으로 대표되는 문화도시로, 교육, 관광, 문화·예술, 시민의식 등 사회 전 분야에 올바른 선비정신을 담아내는 것은 물론 정도전, 안향, 금성대군 등 영주의 역사 인물을 활용한 선비콘텐츠를 개발해 선비정신을 잇고, 관련 문화콘텐츠를 확대해 영주만의 특성화된 관광산업을 키워나가야 한다.오는 10월 여는 제4회 영주세계인성포럼은 ‘앎을 삶으로, 실천하는 인성’을 주제로 인공지능시대 인간소외와 불평등 등 위기 속에 실천하는 집단인성으로 미래의 기회를 만들어 가자는 메시지를 담아 열린다. 현대사회에서 인성의 가치라는 묵직한 물음을 되짚고 인성의 힘으로 미래를 여는 다양한 논의의 장이 될 것이다.이와 함께 소백산 케이블카, 익스트림 어드벤처파크 등 소백산 일대를 관광지화 하는 계획을 적극 검토하고 영주 지역의 자긍심이라 할 수 있는 소백산과 영주댐 일원을 관광경제의 랜드마크로 만드는 등 관광 산업에서도 지역 발전을 위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농산물 종합유통센터 건립 등 안정적인 유통망 구축과 6차 산업 추세에 발맞추는 정책으로 지역농업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나갈 것이다.재배와 생산에 중점을 둔 농업정책에서 이제는 유통과 마케팅 분야의 중요성을 인식, 새로운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미래 농업의 주역인 청년농부 육성도 핵심 정책 중 하나다.청년농부 육성과 소득향상을 위해 청년 농업경제 플랫폼을 추진해 청년들에게 정보교류와 교육, 창업 등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청년 억대농부와 청년기업 육성에 힘쓸 방침이다.이밖에도 교육재정 확대, 유소년 체육단 창립, 예·체능 특성화고 지원 등 교육정책 강화와 젊은 영주를 위해 구도심 경제활성화, 신도심 문화예술 및 힐링공간 확보 등 동반성장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민생과 미래에 집중하며 시민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줄 수 있는 도시로 나아갈 수 있도록 영주의 꿈을 시민과 함께 이루어 나가겠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리더의 본보기다.합리적 사고와 일하는 문화개선, 관행타파, 부정부패 차단 등 투명하고 올바른 행정문화를 만들겠다.시민 모두가 행복하고 살기 좋은 영주를 만들기 위해 시민들의 소중한 의견, 작은 목소리 하나도 흘려듣지 않고 시정에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

2022-08-21

채독

자금산 기슭에 내려앉은 덕동마을은 어머니의 품같이 편안하다. 고택 사이를 거닐다 덕연관 앞에 섰다. 이곳은 대대로 내려온 고문서, 생활 용구, 농기구 등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곳이다. 그중에서도 전시관 입구에 부끄러운 듯 돌아앉은 채독이 눈길을 끈다. 채독은 나무 항아리다. 싸리나무의 낭창한 성질을 이용하여 큰 장독처럼 모양을 빚어 안쪽과 바깥쪽에 창호지를 바른다. 채독은 통풍이 잘되어 주로 마른 곡식을 갈무리하거나 옷을 보관하는 데 사용한다.내 기억에도 우리 집 마루 가장자리에 늘 채독이 놓여 있었다. 그 채독에는 아버지의 옷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일 년에 서너 번 집에 들어오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하루가 멀다고 옷을 내어놓고 바람을 쐬게 했다.어머니께서 채독에 정성을 쏟았지만, 아버지는 집에 오래 머물지 않고 바람처럼 드나들었다. 아버지가 없는 집에는 소문만이 앞마당과 뒤란을 서성거리며 제집처럼 들락거렸다. 시장 모퉁이 신식 집에서 살림을 차렸다는 둥 사방공사 감독으로 그곳의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는 둥 가는 곳마다 소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문들을 다 가릴 모양으로 어머니는 창호지로 채독을 덧바르고 덧발랐다.소문은 현실이 되어 대문에 들어섰다. 문을 밀치고 아버지와 낮도깨비 같은 여자가 들이닥쳤다. 볼에는 하얀 분을 덕지덕지 발라 분가루가 날렸고, 입술이 튀어나와 붉은 루즈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비로드 치마를 받치고 있는 굽 높은 구두는 도회의 냄새를 풍겼다. 꼿꼿이 턱을 세운 여자 뒤에는 낯선 듯 두리번거리는 사내아이가 멀뚱히 서 있었다. 아버지는 마루에 걸터앉아 물 한 사발 떠오라고 우물가를 향해 소리쳤다.어머니의 손놀림이 거칠어졌다. 빨래를 빡빡 치대고, 거품을 내어 헹구기를 반복했다. 많은 소문을 하얗게 삭이던 어머니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평생 눈 감고 귀 막고 어린 자식 건사하고 살면서 덤덤히 견디었던 목울대가 출렁거렸다. 그러면서도 부엌으로 들어가 그을음이 가득한 아궁이에 솔가지를 쑤셔 넣으며 따슨밥을 지었다.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부엌문을 넘어와도 어머니는 솥뚜껑에 흐르는 눈물로 뜸을 들였다. 부뚜막에 쪼그리고 앉아 차린 밥상을 아버지는 어제도 먹은 것처럼 편안히 받았다. 이순혜 수필가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던 어느 여름이었다. 아래채에 머물던 도시 여자가 삶은 감자로 늦은 아침을 먹을 때였다. 떠들썩한 소리가 들리고 동네 사람들이 몰려왔다. 아이가 죽었단다. 강에서 멱을 감다 장마로 불어난 물살을 헤쳐 나오지 못해 주검으로 돌아왔다. 엄마를 형님이라고 부르던 여자는 땅을 치며 울었다. 몇 날을 넋을 잃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아이 이름만 불렀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지친 어느 날, 인연의 줄을 놓아버리듯 집을 나갔고, 우리 집안은 오랫동안 정적에 갇혔다.시간은 제 낯을 내지 않고 그저 묵묵히 돌아간다. 선선한 바람이 불 때쯤 어머니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 어머니의 배는 채독의 볼록한 허리를 닮아 날마다 불어난 배를 만지며 환하게 웃었다. 달이 차고 우리 집 대문에 금줄이 쳐지고 숯덩이와 드문드문 빨간 고추가 걸렸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유난히 크고 어깨가 넓어 모두가 장군감이라 좋아했다. 사람들은 어머니의 마음이 하늘에 닿아 아들을 우리 집에 보내줬다고 입을 모았다.밖으로만 나돌던 아버지가 남동생을 자주 무릎에 앉혔다. 채독의 효험이었던 것일까. 아버지의 옷을 켜켜이 쟁여 놓으며 정성을 쏟은 어머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바람이 잠잠해졌다.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좋아서인지, 마루에 터줏대감으로 놓인 채독을 어루만지며 정성을 다한 어머니의 소망 때문이었는지 아버지는 더는 대문을 열고 떠나지 않았다.어머니의 간절함은 애초부터 그곳에 가득 차 있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을 뿐이다. 덕연관을 나오니 나지막이 앉은 산자락에 싸리꽃 향이 가득하다.

2022-08-21

거울과 저울 사이

김규종 경북대 교수 기역과 지읒의 차이 하나로 아주 다른 뜻을 가지는 두 단어, 거울과 저울. 이런 어휘가 우리말에는 차고 넘친다. 겨울과 여울, 장마와 악마, 선발과 후발, 밥상과 책상. 이런 본보기는 거의 무한대다. 하지만 나는 거울과 저울의 상관성에 관해 생각하고 싶어진다. 왜냐면 거울과 저울 양자가 우리 시대의 단면 가운데 하나를 적실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익숙한 질문이다. 백설공주(白雪公主) 의붓어미가 마법의 거울에 던지는 질문이다. 그녀가 물어볼 때마다 거울은 백설공주라고 답한다. 여기서 중요한 수식어는 ‘예쁘다’가 아니라, ‘제일’이다. 새 왕비를 괴롭히는 것은 예쁘지 않다가 아니라, 제일 예쁜 여성은 그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거울이 어떤 기준으로 백설공주를 최고의 미녀로 지적하는지 우리는 모른다.문제는 왕비에게 있다. 왜 그녀는 자신과 자신의 아름다움을 믿지 아니하고, 사물에 불과한 거울의 판정에 괴로워해야 하는가. 나는 그것이 늘 궁금했다. 그녀가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법도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폭력적이다. “너 죽고 나 살자”라는 막가파 혹은 일방주의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죽여서라도 ‘제일’ 예쁜 여자가 되려는 욕망에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다.저울은 무게를 재는 데 유용한 도구다. 수량을 판단하는 기준 가운데 길이를 재는 것이 자요, 무게를 재는 것이 저울이다. 길이와 무게는 눈금으로 표시되는 까닭에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할 가능성이 아주 작다. 눈금을 속이는 고수(高手)들도 있지만, 요즘 같은 대명천지에 저울눈을 속이는 담대한 자는 찾기 어렵다.저울 가운데 상징적으로 쓰임새를 과시하는 형상은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이 들고 있는 저울일 것이다. 여신은 왼손에는 법전을, 오른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법에 따라 재판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게 법전이다. 판검사나 변호사의 욕망과 의지가 아니라, 법전에 나와 있는 그대로 재판에 임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에 저울은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의미를 표현한다.문제는 저울의 그와 같은 의미가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는지 하는 것이다. 우리는 1988년에 지강헌이 남긴 기막힌 명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마법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다. 한 세대 넘도록 금전과 금권의 위력이 한국 사회를 휘어잡고 있다. 법과 정의는 여전히 가진 자들 편에 있으며, 사회적 약자와 빈자들의 고통은 무시당하고 있다.거울은 주관적이며 자의적이고 편향적인 성격을 가진다. 오목거울과 볼록거울에 비친 상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비뚤어진 거울은 대상의 온전한 모습이 아니라, 왜곡된 형상을 구현한다. 그런데 객관적이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저울도 그것을 사용하는 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변질(變質)될 수 있다는 점에 우리의 곤혹이 있다. 이질적인 양자를 사유하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내로남불’을 새삼 돌이켜본다. 밤벌레 울음소리 깊어간다.

2022-08-21

신공항 청사진 공개…지역 염원 담는 일만 남아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 사업의 청사진이 발표됐다. 대구시와 국방부 등이 지난 2020년 11월 기본계획 수립에 착수한 지 1년 10개월만이다. 대구시가 발표한 신공항 이전 기본계획에는 활주로 위치와 방향, 주요 군부대시설 규모 및 배치 등이 담겨있다. 개항 시기는 당초보다 2년 늦은 2030년으로 계획돼 있다.사업비는 군 공항이 11조4천억원, 민간공항이 1조4천억원 소요될 것으로 추산됐으며 면적은 기존 K-2 군공항보다 2.3배 커졌다. 2천744m 길이 군공항 활주로 2본을 설치하되 그중 1본을 3.8km로 연장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대구경북의 최대 숙원사업인 신공항의 밑그림이 공식적으로 발표됨으로써 향후 공항건설에 따른 후속 조치들이 얼마나 잘 뒷받침되느냐가 관건이다. 그 중 통합신공항 특별법의 국회 통과는 매우 중요하다. 주호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특별법이 통과되면 후적지 개발과 공항과의 교통 연계망 구축 등에 따른 예비 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아 신공항 건설에 속도를 낼 수 있다. 특히 군공항 이전시 모자라는 사업비를 국비로 충당할 수 있어 특별법의 국회 통과는 사업의 안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밖에 기획재정부의 기부 대 양여 심의 등 산적한 문제들을 잘 풀어갈 후속 준비들이 제대로 추진돼야 한다. 잘 알다시피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은 대구경북의 장래를 걸머진 백년대계 투자사업이다. 처음부터 항공물류와 여객수요를 충분히 담당할 관문공항으로 만들어야 한다.그러기 위해선 규모가 장래 항공수요에 걸맞아야 하며 미주·유럽 등 중장거리 노선 운항을 위한 활주로 확보가 필수다. 또 연간 1천만명 이상 여객수용이 가능한 민항터미널과 연간 26만t의 화물처리가 가능한 화물터미널도 갖춰야 한다.공항신도시를 건설하고 항공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등 지역경제가 환골탈태하는 역사를 일궈가야 한다. 신공항 청사진 발표를 시작으로 통합신공항 추진에 이제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지역 정치권은 특별법의 국회 통과에 주력하고 대구시와 경북도는 지역민의 염원을 담는 데 한 몸으로 뛰어야 할 것이다.

2022-08-21

트윈데믹

우정구 논설위원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코로나와 관련한 신조어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에 던진 충격이 그만큼 컸다는 의미다. 코로나 팬데믹 2년동안 전세계적으로 수백만명의 안타까운 목숨들을 잃었다는 사실만으로 코로나19의 충격파는 매우 심각했다. 지금도 여젼히 진행 중이지만 그동안 등장했던 코로나19와 관련 신조어들을 살펴보면 우리사회의 단면들을 대략이나 짐작할 수 있다.△코로나블루(코로나 확산으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 △코로나케이션(코로나와 방학(vacation)의 합성어로 학교수업이 온라인으로 대체되면서 그 기간을 방학에 빗댄 말) △코로나디비드(코로나 사태로 심해진 사회양극화 현상) △코로노미쇼크(코로나로 발생한 경제적 충격) △금스크(코로나 확산으로 수요가 폭주하면서 마스크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생긴 말) △언택트(비대면, 비접촉 방식) △확찐자(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갑자기 살이 찐 사람). 그 외도 많은 신조어들이 만들어졌다.원래 팬데믹(pandemic)은 전염병이 전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하는 현상을 뜻하는 것으로 세계보건기구가 선포한 감염병 최고 등급을 일컫는 말이다.거리두기 해제 후 처음 맞는 가을·겨울철을 앞두고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독감)가 동시에 유행하는 트윈데믹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두 질병은 호흡기 감염질환이면서 열, 기침, 인후통 등의 증상까지 비슷해 증상만으로 환자의 구별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자칫하면 방역체계 혼란이나 심지어 의료체계가 감당할 수 없는 사태까지 올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코로나19의 파장이 언제까지 뻗쳐나갈지 난감한 상황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8-21

포항·포스코 갈등, 누구에게도 도움안된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직원들이 지난주 포항지역 일부 시민단체의 집회로 인해 직원들의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고 있다고 호소하며 상생을 촉구하는 결의대회와 함께 인간 띠잇기 행사를 가졌다. 결의대회에는 지난 16일부터 포항제철소 설비기술부를 시작으로 18일까지 6개 부서 800여 명이 참가했고, 앞으로도 부서별 릴레이 방식으로 집회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직원들은 “일부 단체의 악의적인 비방에 현장에서 구슬땀 흘리는 직원들과 가족들의 명예, 자존심이 실추되고 있다. 포스코 흔들기와 과도한 비방을 자제해달라”고 호소했다.‘포스코 지주사·미래기술연구원 포항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범대위)’는 지난 10일부터 1인 릴레이 시위를 계속하고 있고, 지난 8일에는 서울 대통령집무실 앞과 포스코 서울센터 앞에서 최정우 포스코홀딩스 회장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포항지역 읍·면·동별 청소년지도위원회, 체육회, 개발자문위원회 등 여러 단체도 최근 포항 전역에 포스코를 비판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포항과 포스코의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져 안타깝다. 포항과 포스코는 한가족이나 마찬가지다. 포항시는 포스코가 당면한 문제가 있다면 적극 지원해야 하고, 포스코는 포항을 위한 투자에 인색해선 안된다. 현재 포스코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철강산업 부진을 메울 신성장 사업 육성이다. 포스코가 지주사를 설립한 것도 사업다각화와 신산업투자, 인수합병으로 회사의 미래동력을 준비하겠다는 취지다. 포스코는 지난 10여년간 2차 전지에 사용되는 양극재 핵심 소재인 리튬 사업을 위해 총력을 쏟았고 연구개발비와 생산 공장 준공, 광산 확보 등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었다. 포항시는 이처럼 신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는 포스코와 긴밀히 협의해 기업을 유치하고 투자를 늘리는데 시정을 집중시켜야 한다. 비수도권 모든 지자체들도 현재 인구소멸을 막기 위해 기업유치에 올인하고 있지 않는가. 포항의 인구 50만 붕괴위험은 예삿일이 아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포항지역사회와 포스코의 감정대립이 집회로 이어져 외부에 표출되는 것은 양측 모두에게 득이 될 게 없다.

2022-08-21

Empty Heart, Empty Hands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얼마 전의 일이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일찌감치 그만두고 귀농을 한 대학 동창 P가 있었는데, 이전 직장 동료 R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었단다. P가 회사에 다닐 때는, 시골에서 가져온 농산물들을 R에게 주면, R도 매우 감사해하며 소소한 것들을 주곤 했었다나. 서로 주고받는 가운데 오가는 정, 참 이것이 사람살이 맛이구나 하는 그런 게 있었는데, 직장을 그만두고 완전 귀농을 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턴가, R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는 것이다.하루는 대형마트 앞에서, 직접 재배한 싱싱한 유기농 야채를 주고자 R을 불렀더니, 그냥 받기만 하고 휙 가버렸다는 것이다. 마트 앞이었던 만큼, 빵 하나 그냥 사서 줄 법도 했는데, 본인 볼일만 보고선 휙 가던 모습이란. 그땐 바빠 그런가 했는데, 얼마 후 다시 나눔할 게 생겨 R을 불렀더니, R은 잽싸게 달려와서는, 또 받아 갈 것만 딱 받아가고 감사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훌쩍 가버리더란다. 직장 다닐 땐 그렇게 살갑더니, 나오니 별 볼일 없다 싶었는지 태도가 돌변한 것을 보고, 마음이 비면, 손도 비워지나 보다 싶어 씁쓸했다고.이 얘기를 들으면서, 송대의 주자가 ‘사서장구집주(四書章句集注)’에서 ‘盡己之謂忠, 以實之謂信’이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여기서 ‘충(忠)’은 자기에게 최선을 다하는 마음을, ‘신(信)’은 그 충을 타인에게 실현함을 의미한다. 충(忠)은 가운데 중(中) 자에 마음 심(心) 자가 합쳐진 글로, 충(忠)이 가득한 사람은 곧 마음의 중심, 심지가 굳어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며 타인에겐 신뢰를 주는 한결같은 사람을 의미한다.한편, 필요할 땐 간, 쓸개라도 줄 듯하다 더이상 별 볼 일 없거나 관계가 소원하다 싶음 언제든 손해 보지 않고 빈손으로 받아 가기만 하려는 이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심지가 굳지 못한 이들이다. 충(忠)이 없기에 얍삽하고 충(忠)을 바탕으로 한 신뢰 또한 없다. 이들은 스스로에게도 솔직하지 못하며, 시류에 따라 흔들리는 갈대같은 인생들이자 또 어떤 면에서는 ‘개만도 못한 사람들’이기도 하다.‘개’는 ‘충(忠)’의 상징적 동물이다. 우리 옛 문헌에는, 개가 글이나 옷자락을 물고 와 주인의 죽음을 알리거나 주인의 시체를 지키거나 몸에 물을 묻혀 불을 끄고 주인을 살린 이야기 등 다양한 의구담(義狗談)이 전한다. 모두 비천하게 인식되었던 개가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한 모습을 형상화한 것들로, 이를 통해 우리 조상들은 각박해져 가는 세태 속, 인간으로서 인간답지 못한 행동을 하는 이들을 경계하는 자료로 삼곤 하였다.이제 벌써 8월도 중순을 지나고 있다. 새롭게 정권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여기저기서 잡음이 많이 들린다. 한 자리 잡기 전에는 간이라도 빼줄 듯 세상 다정하다가 다들 권좌에 오르고 나서는 권리만 생각하고 의무를 저버리는 것은 아닌지. 다들 초심의 마음으로 충(忠)과 신(信)을 가슴에 새기면서, ‘개보다 못한 사람’이 아닌 적어도 ‘개(義狗) 같은 사람’이 되어 국정 운영을 해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2022-08-21

사랑할까 이해할까

유영희 작가 무생물이라도 오랫동안 같이 지내다 보면 정이 든다. 특히 자동차는 내 몸과 함께 움직여서 그런지 더 애정을 느끼기 쉽다. 8월 9일 서울에 내린 폭우로 사망자와 실종자가 십수 명에 이르렀던 날, 지인은 차로 외출했다가 귀가 길에 비가 터널에 가득 차서 바퀴가 둥둥 떠 있었다고 한다. 그 순간 본인도 두려웠지만, 무엇보다 차를 너무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 너무 미안했다면서 차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한다. 이렇게 인간과 전혀 닮지 않은 자동차도 오랜 시간 같이 보내면 생물처럼 느껴지고 아끼게 된다.그런데 만약 그 존재가 사람과 똑같이 생기고 말도 한다면 어떨까? 지난 6월, ‘파친코’의 감독 코고나다가 만든 영화 ‘애프터 양’은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주지만, 특히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 안드로이드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룬다. 시대 배경은, 사람과 똑같이 생겨서 테크노 사피엔스라고 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상용화된 미래 사회이다.제이크와 키라 부부는 중국인 딸을 입양하고 중국 문화를 교육해 줄 테크노 사피엔스인 양을 구매한다. 제이크는 찻집을 운영하고 부인은 직장에 다니느라 바쁘기도 하고 무엇보다 중국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양과 함께 4인 가족 댄스경연대회에도 출전하며 양을 가족처럼 사랑하는 듯이 보인다. 이렇게 보면 제이크 가족이 양을 대하는 태도는 바람직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양이 고장 난 후 양의 기억을 재생해보니 양은 제이크의 가족이 될 생각이 없었다. 양은 제이크 부부가 딸 미카와 가족사진을 찍을 때 오라고 하자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응한다.더군다나 양은 제이크가 혐오하는 복제 인간 여자를 몰래 만나고 있었다. 양이 인간이 되고 싶어 했느냐는 제이크의 질문에 복제인간 에이다는 너무 인간중심적이라고 비웃는다. 그동안 우리가 보아온 영화나 소설에서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로봇을 당연하게 생각했기에 양과 에이다의 이런 태도는 당황스럽다. 양의 기억에 에이다가 나올 때마다 ‘나는 그냥 멜로디가 되고 싶어, 그냥 하늘이 되고 싶어, 그냥 바람이 되고 싶어, 그냥 바다가 되고 싶어.’라는 노래가 흐르는 것은 의미가 깊다.우리는 사랑한다면서 사실은 그 대상이 나의 필요와 이익에 충실해주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양이 고장 난 것도 4인 가족 댄스대회 때이다. 제이크 부부는 양을 가족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양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양의 마음도 그들과 같으려니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들이 양을 가족이라 생각하는 것은 인간중심적인 착각이었을 뿐이다.스트어트 러셀의 책, ‘어떻게 인간과 공존하는 인공지능을 만들 것인가’에는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지배당할 가능성을 염려하면서 인간에게 이롭기만 한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자고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앞설 가능성을 염려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게다가 인간이 기계를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으로서는 안드로이드를 인간중심적으로 대하지 않고 세계의 일부로 인식하는 것이 더 필요한 때인지도 모른다.

2022-08-21

전기차 배터리 구독 서비스 시대가 열린다

정봉영 (주)피엠그로우 전무 존 민슈(John Minsheu)의 대표작은 1617년 출간된 다국어사전 ‘언어에 대한 안내’이다 . 11개 나라말로 된 이 사전의 인쇄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고민하던 존 민슈는 출판 예정인 사전의 내용을 설명한 인쇄물을 만들어 구독자를 미리 모집했다. 그 결과 국왕, 왕비, 귀족과 상인 등 다양한 계층의 417명이 구독자로 참여했고, 그는 ‘구독의 발명자’ 또는 구독 출판의 ‘원조’ 가 되었다.17세기 당시의 구독은 저자가 도움을 요청하면 후원자나 일반 시민들이 돈을 대는 방식이라 지금의 크라우드 펀딩과 비슷했다고 한다. 이때 돈을 지불하겠다고 문서 아래 이름을 쓰는 것을 구독이라고 불렀다.우리나라에서 일정 금액을 내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정기적으로 이용하는 이른바 ‘구독경제’ 또는 ‘구독형 서비스’가 2010년대를 전후에 도입되기 시작해 최근 급속히 늘고 있다.‘전기차 배터리 구독서비스’도 그런 경우이다. 전기차 가격의 40%를 차지하는 배터리와 자동차의 소유주를 분리 등록해 차량 구매 부담을 대폭 줄이는 한편, 배터리를 빌려 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인데 이를 ‘배터리 구독’ 이라고 한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규제개혁위원회를 개최하여 배터리 소유권을 자동차와 분리해 등록할 수 있게 하면서 전기차 배터리 구독서비스 시대가 열렸다.포항시의 경우 5천500만원 짜리 아이오닉6 EV 신차는 보조금 1천300 만원에 배터리 구독 서비스 2천200 만원을 빼면 자부담 2천만원에 구매가 가능해 진다.전기차는 1일 100Km 운행시 월 연료비가 4만원인데 비해 내연기관차는 50만원 전후가 된다. 3.3 년 정도 운행하면 배터리 구독료가 빠지는 것이다. 훨씬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이다.전기차 배터리 구독 서비스가 정착되려면 첫째 사용한 배터리 잔존 가치 등 진단 기술이 선행되어야 한다. 배터리 잔존 가치를 진단하는 통일된 기술과 기준, 데이터 공유를 통한 기술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국내 배터리 3사의 주력 제품을 보면 각형, 파우치형, 원통형 등 회사마다 성능과 기능이 각각 다르다. 일률적이고 공식적인 기준으로 잔존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두 번째는 ‘구독 배터리 재활용 생태계 조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규제 개선은 자동차 등록원부에서 자동차와 배터리 소유권을 나눠 등록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소유권 분리를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는 신산업 생태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사용이 끝난 배터리를 회수해서 다시 사용하거나 또 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 등이 구독료를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세번째는 에너지 신사업 가운데 하나가 서비스형 배터리 사업이다. 이는 전기차의 배터리는 제품이 아니라 서비스로 간주해서 이용료를 내고 빌려 쓰는 개념이다. 전기차와 배터리는 별도의 수명 및 특성을 지닌 자산이란 것이다. 제조 위주의 초기 단계에서 전기차의 안전성을 염려하면서도 배터리가 바뀌면 자동차 전체를 다시 인증해서 안정성을 확보하자는 의도는 이해한다. 그러나 이제 배터리를 건전지와 같은 소모품으로 인정하고 그에 맞는 전기차 정의를 다시 해야 할 것이다.네번째는 데이터 개방도 필요하다. 전기차를 운행하는 동안의 운행 기록, 특히 배터리 사용 기록은 서비스 시장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정비를 하는데도 배터리 사용의 누적 기록은 효과적 정비에 필수이고, 보험료 산정 때도 배터리 잔존 가치를 계산하는데 도움이 된다. 나중에 중고차로 매각할 때도 역시 배터리 사용정보를 통한 잔존 가치는 적정 가격 산정 때 결정적이다. 그동안 전기차 운행 데이터는 자동차 제조사의 전유물처럼 여겨서 개방되지 않았다. 최근 환경부 등에서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데이터 개방을 요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폐배터리를 그대로 폐기하면 환경오염을 유발하게 된다. 하지만, 이를 재활용하면 제품 단가를 낮추고 부가 수익도 창출할 수 있다. 또 환경오염을 줄여 기업의 ESG 경영에도 기여할 수 있다. 폐배터리는 전기차 보급 확대로 배출량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전기차배터리 보증 기간이 5~10년임을 고려해 보면 2020년대 후반기부터 폐배터리 물량이 쏟아질 수 있다. 환경부는 2026년 국내 폐배터리 배출량 예상치가 10만여개에 달한다고 밝혔다.전기차 폐배터리는 환경오염과 화재를 유발하는 중금속 소재가 포함돼 매립과 소각이 어렵다. 폐배터리를 다시 활용하거나 친환경적으로 재사용하는 방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ESS는 폐배터리를 재사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방안이다. ESS는 재생에너지 등으로 생산한 전력을 저장하는 장치다.이차전지 제조기업 (주)피엠그로우는 재사용 ESS를 수요처에 구축하는 서비스형 배터리 사업 사업(BaaS)을 신사업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재사용 ESS 사업 영역을 더욱 확대할 방침이다. 앞으로 전기차 보급 확대가 가속화됨에 따라 배터리 소재부터 재사용에 이르는 배터리 전체 사용주기에 걸친 밸류체인 사업이 녹색융합의 새로운 시장을 선도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2022-08-21

가정에서 체험하는 전기절감의 기적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지난 7월 한 언론에 서울 동대문구 아파트 옥상에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한 심재철씨의 전기절약 실천 사례가 소개돼 독자들의 눈길을 끌었다.심씨가 전기요금 절약을 위해 입주민들을 설득해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옥상에 태양광 122kWh를 설치하고 지하주차장 조명을 LED로 교체하는 한편, 승강기에 회생제동장치(승강기가 내려갈 때 모터에서 발생하는 운동에너지를 사용 가능한 전기에너지로 변환해 주는 장치)를 설치했다는 내용이다. 이로 인해 심씨가 거주하는 아파트는 전기 절감과 효율 증대로 공동전기료를 대폭 줄였다. 지난 2018년 12월 공동전기요금이 가구당 1만160원이었는데 2021년 12월엔 1천350원을 냈다고 한다.필자는 20여 년 동안 살고 있는 대구시 동구 A 아파트의 관리소장과 동 대표 등을 설득시켜, 2013년부터 전기절약 사업을 해서 ‘전기세 대폭 인하’ 혜택을 누리고 있다.아파트 전기요금 구성비율은 공동전기요금 비중이 전체 요금의 25%~35% 정도를 차지한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600여 세대인데, 600여 세대 전기를 일괄적으로 절감하기 힘들어서 비중이 25% 정도인 공동전기 절감에 집중했다.첫 번째 공용 조명등 교체 작업부터 했다.지하주차장 형광등, 관리사무실, 아파트 출입구 조명, 비상등, 단지 내 가로등 등의 조명등을 모두 LED 조명등으로 교체했다. 이 작업만으로 조명등에 소요되는 전기를 50% 이상 절감했다.두 번째는 불요불급한 전기 낭비를 없앴다.현재 모든 아파트의 가정당 평균 사용전력은 0.3kWh에 불과하지만, 필자의 아파트는 그 10배에 달하는 1천850kWh가 설비되어 있었다. 그래서 600kWh 변압기 한 대만 가동하고 나머지 1천250kWh 변압기는 가동을 중단시켜 변압기 공회전에 따른 손실을 제거했다. 그리고 주택용 전기와 용도가 다른 급수전기, 통신전기, 상가전기 등도 모자 분리를 통해 주택용 전기만으로 슬림화 했다.세 번째는 센서 부착으로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 했다.아파트 지하주차장 조명에 센서를 설치해서 차량 이동이 없을 때 20%까지 디밍을 했다. 엘리베이터에도 센서를 설치해서 엘리베이터가 가동하지 않을 때는 전원을 꺼서 70% 이상의 전기사용을 절감했으며, 다른 모든 조명에도 센서를 설치해서 사용하지 않을 때는 자동으로 꺼지거나 디밍이 되도록 해서 낭비를 줄였다.이렇게 공동전기 절감조치를 한 후, 필자 가정의 모든 전등을 LED로 바꾸었더니 평소 10만 원 가까이 나오던 전기요금이 2만~2만5천원으로 80% 이상 절감되었다. 가정 전기 사용량을 40% 정도 줄였는데 공동 전기요금이 대폭 줄어 가정에 부과되는 전기요금은 80% 정도 절감된 것이다.지난 6월분 필자 아파트의 공동 전기료는 3천110원, 승강기 전기료는 1천190원이었는데, 비슷한 평수의 주상복합APT에 살고 있는 친구 집은 공동 전기료 1만7천880원, 승강기 전기료가 7천720원 나왔다. 비슷한 평형대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 전기요금을 비교해 보면, 공동전기의 경우 주상복합 아파트는 5배 이상, 일반 고층 아파트는 4배 이상의 요금 차이가 난다.우리 아파트에는 도입을 하지 않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서울의 심재철씨 경우처럼 승강기에 회생제동장치를 설치하고, 아파트 옥상에 태양광발전소까지 설치하면 공동 전기요금을 거의 제로(0) 상태까지 만들 수 있다.아파트 공동전기 말고도 각 가정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전기세를 줄일 수 있다.구체적인 방법을 예로 들면 △LED 전등 교체 △컴퓨터, 각종 전자제품에 자동센서 부착을 해서 전기의 낭비를 없앨 수 있다. 이처럼 전기 효율을 높이는 시설과 설비를 추가하면 공동 전기요금은 제로(0)로, 개별 아파트 전기요금도 80% 이상 줄일 수 있다.주택용 전기는 전등을 LED로 바꾸는 등 전기 사용량을 3분의 1 정도만 줄이면 주택용 전력의 요금 누진제로 인해 전기요금은 3분의 2가 줄어든다. 어떻게 보면 소소한 일이지만 매달 관리비가 나올 때면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하고 신기하다.필자는 아파트 관리비가 나올 때마다 에너지 절감의 필요성을 매달 한 번씩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상생활에서 에너지 절감을 실천하게 된다. 전 국민이 모두 필자처럼 주택 전기절감과 에너지효율 증대를 실천해서 ‘탄소배출 제로(탄소중립)’시대를 앞당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나 혼자만의 전기절약으로 탄소중립 시대가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국가적인 과제인 ‘탄소중립 시대’가 오려면 전 국민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아파트나 주택용 전기절약으로 한 가정에서는 연간 적게는 40~50만원, 많아야 100~150만원 정도의 전기요금을 줄일 수 있지만, 이를 2천만 가구로 환산하면 그 결과는 엄청난 금액이다. 개인의 작은 전기절약 실천만으로도 온 산의 산림을 파괴하는 태양광 설치를 대거 줄일 수 있는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2022-08-21

윤석열 정부 백일잔치에 지방은 뒷전인가

지난 17일 열린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 대한 소감은, 한마디로 ‘지방은 없다’고 정리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모두발언에도, 100일 성과 책자에도, 질의응답 때도 지방과 지역균형발전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비수도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달라졌다’는 소리가 나온다.윤 대통령은 대선후보시절 대구·경북을 비롯해 비수도권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지역균형발전은 국가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했었다. 대통령 인수위원회 시절에도 역대정부와는 달리 지역균형발전특위를 별도로 설치해 지방정부의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윤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친기업·친시장’ 정책을 표방하면서 수도권 규제를 거침없이 풀기 시작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열린 ‘산업입지 규제개선을 위한 기업간담회’에서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해 수도권 내 공장 신·증설과 관련한 규제를 풀겠다고 언급했다. 비수도권 지자체로서는 충격적인 발표였다. 해외에서 국내로 다시 기업을 이전하는 ‘유(U)턴 기업’은 그동안 수도권내 공장 신·증설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수도권 지자체들이 온갖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유치전을 펴온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정부 발표 이후 비수도권 지자체들은 “비수도권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조치”라며 맹비난했다.윤석열 정부는 다음달 중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총괄하는 기구인 ‘지방시대위원회’를 출범시킨다고 한다. 이 위원회가 지역 공약 실천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고는 하지만, 기대를 거는 지자체가 별로 없다. 이 기구 역시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 자문역할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문위원회 차원의 조직으로는 역대 정부에서 검증됐듯, 실질적인 균형발전의 실현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역균형발전은 반드시 수도권 정치인들의 반발을 수반하기 때문에 정권 초기 대통령이 직접 밀어붙여야 성과를 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시절 “국민이 어디에 살든 기회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면밀히 살피겠다”고 언급한 말을 잊지 않길 바란다.

2022-08-18

대구 취수원 갈등, 정부 차원의 해법 제시 필요

대구 취수원 이전을 둘러싸고 대구시와 구미시 간의 갈등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안보인다.대구시가 17일 구미 해평취수장 공동 이용을 골자로 한 맑은물 나눔과 상생발전 협정의 해지를 협정 체결기관에 통보함으로써 대구시와 구미시 간의 대구시 취수원 이전논의가 사실상 무산됐다. 대구시는 해지통보에서 “구미시장의 상생협정 반대 등 몇 가지 사유를 들어 협정 이행이 더 이상 어렵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대구시가 맑은물 나눔과 상생발전 협정서에서 밝힌 “구미 5산단 유치업종의 변경 및 확대에 따른 동의 여부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필요한 경우 후속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구미 5산단 기업유치에 공들여왔던 구미시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 생긴 꼴이다. 또 기업유치 100조원 시대를 열겠다는 경북도의 투자유치 노력에도 부담이다.이철우 경북지사는 17일 입장문을 내고 “대구와 구미 간 취수원 다변화 갈등 해소방안을 찾겠다는 것과 함께 정부에 모두가 만족할만한 구체적 로드맵 제시”를 촉구했다. 특히 낙동강 하류지역에 맑은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상류지역은 발전 혜택을 누리도록 정부가 확실히 보증하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요구했다.맑은 물 나눔과 상생발전 협정서는 정부와 환경부, 대구시, 구미시, 경북도, 수자원공사 등 6개 기관이 지난 4월 합의한 국책사업이다. 그러나 양지역 간의 갈등으로 지금은 협약 자체가 백지화된 것이나 같아 정부가 나서 중재를 하거나 명료한 입장을 밝혀야 할 때가 됐다. 그래야만 지자체 간 갈등도 풀 수 있다.대구시가 안동·임하댐 물을 상수원으로 하겠다고 하더라도 이 역시 정부의 도움이 없으면 추진이 어렵다. 경북도와 구미시는 이 문제와 관련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토론과 시민동의 등의 과정을 밟는 것이 옳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가 서둘러 나서 지자체 간 갈등 국면의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대구와 경북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따로일 수 없다. 상생의 관계다. 더 이상 물 문제 갈등이 확산되는 일이 없도록 정부와 지자체 모두가 상생정신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2022-08-18

민심의 바다

논어 위정(爲政)편에서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은 스승에게 정치에 관해 물었다.공자가 말하길 “정치란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군사를 잘 갖추고, 백성이 신뢰하게 하는 것이다.” 자공이 재차 물었다. 부득이하게 이중 하나를 버린다면? 공자는 “군사”라고 말한다.자공이 다시 그중 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공자는 “식량을 포기한다”고 했다. 사람은 모두 죽기 마련인데 만일 백성에게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나라는 유지될 수 없다고 설명을 했다. 정치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내용으로 자주 인용되는 대목이다.민심(民心)이란 통치권자 입장에서 보면 대중의 마음을 뜻한다. 그래서 옛날부터 민심은 천심과 통한다고 했다.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나라를 얻고 백성의 마음을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는 뜻이다.순자 왕제편에 나오는 군주민수(君舟民水)는 백성과 군주의 관계를 매우 극적으로 표현한 내용이다.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엎기도 한다”는 뜻이다. 지도자는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일에 항상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라는 경고다.대한민국 헌법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국민의 마음을 떠난 정치는 존립 자체를 생각할 수 없다.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시작도 국민, 방향도 국민, 목표도 국민”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고 국민 뜻을 받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이제 국가가 도약하고 국민의 마음을 안심시킬 대통령의 비장한 각오가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지가 관건이다. 대통령의 분골쇄신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8-18

손자병법이 말하는 정쟁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요즘 뉴스가 온통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 그리고 국민의힘이 한편이 돼 이준석 전 대표와 벌이는 드잡이질로 도배가 되고 있다.여당인 국민의힘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이 전 대표를 비대위체제 출범으로 선출직 당 대표에서 내쫓았고, 이에 맞서 이 전 대표가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하는 등 법적 판단을 신청하면서 벌어지는 공방이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30% 이하로 떨어져 국정운영동력이 위태로울 지경이다.지난 18일 취임 100일을 맞은 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국면전환을 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국민의 말씀을 세밀하게 챙기고 받들겠다는 다짐 이외에는 별다른 알맹이가 없었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새 정부가 출범한 지 겨우 100일이 지났을 뿐인 데, 여당은 30대 젊은 당 대표와 싸우느라 국정운영에 힘을 보태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고, 정부는 야당의 공세에 시달리면서 물가상승과 고금리로 인한 경기침체에 대한 갖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민심과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정치권의 정쟁에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려면 치밀한 전략이 필요한 법인데, 정부여당에 병법에 밝은 전략가가 없는 건 아닌가 의심스럽다.최고의 병법서로 꼽히는 손자병법에서 손자가 생각하는 최상의 승리는 의외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즉, 미리 전략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서 승리가 확정된 상황을 만들고 싸우는 것을 선호한다.전쟁 이전에 전쟁을 일으킬 상황을 만들지 않아야 하고, 전쟁을 결심했다면 전쟁의 명확한 목표와 그로 인한 이득이 있어야 하며, 상대방의 전력과 나의 전력을 파악해 승기가 있는지를 먼저 보고, 직접 군사력을 전개하기 전에 계략을 동원해 내분에 빠뜨리는 등 상대방을 무력화시켜야 하며,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된다면 최대한 빠르고 피해 없는 승리를 거둬야 한다는 게 손자병법의 핵심내용이다. 정치판에서의 정쟁에도 이같은 병법은 충분히 유용하다.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킨 국민의힘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고 있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18일 KBS라디오에 출연해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다른 정치인들이 어떠한 정치적 발언을 했는지 제대로 챙길 기회가 없었다”고 발언한 데 대해 “대통령이 (그런 걸) 파악할 의중이 없다는 것은 정치 포기”라고 윤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비판했다.이 전 대표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윤 대통령과의 갈등을 언급하면서는 “인용하자면 국민도 속은 것 같고 저도 속은 것 같다”고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친박근혜’인사들이 공천에서 대거 탈락했을 때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윤핵관만을 거론하며 공격하던 이 전 대표가 윤 대통령을 직접 공격한 이상 더 이상 싸우지않고 이기는 방안은 사라진 셈이다. 전쟁이 벌어진 이상 이제는 최대한 빠르고 피해없는 승리가 최선이다. 그게 윤석열 정부가 바닥까지 떨어진 국정지지율을 회복하는 첫 단추가 될 것이다.

2022-08-18

이재명과 이준석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지금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가장 많이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두 사람이 이준석과 이재명이다. 이준석은 여당의 대표로 있다가 징계를 받아 당원권이 정지된 상태이고, 이재명은 제1야당의 대표 경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중이다. 여당과 제1야당의 대표라는 직책은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전체 민의를 대표하는 자리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을 둘러싼 온갖 논란들이 바로 대한민국의 정치와 민심의 현주소가 되는 것이다.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거쳐 현재 민주당 국회의원인 이재명에게는 전과4범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다. 무고 및 공무원자격사칭,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 공용건물손상 및 특수공무집행방해, 공직선거법위반 중 어느 하나도 대의명분이 있는 죄목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혐의나 의혹을 받고 수사 중인 비리들은 결코 사소한 것들이 아니다. 대장동과 백현동의 개발특혜 의혹, 성남FC후원금 뇌물 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 경기도청법인카드 유용 의혹, 경기주택도시공사 합숙소 비선캠프 전용 의혹 등은 막대한 돈이 오가거나 심각한 공권력남용의 소지가 있는 것들이다.여당 대표인 이준석이 당윤리위원회에서 6개월 당원권정지의 징계를 받은 것은 성상납사건 무마를 위한 증거인멸교사를 했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보통의 상식으로는 공소시효나 법적 책임 여부를 떠나서 그 정도의 물의를 일으킨 것만으로도 당대표직을 내려놓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이준석은 반성이나 사과의 말은 일언반구도 없이 자신을 당권투쟁의 희생양인 양 호도하고 당과 대통령까지 싸잡아 온갖 악담을 퍼붓는 등 반발을 계속하고 있다.이재명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정규 교육과정을 거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을 나오고 사법시험에 합격하고부터는 양양한 출세가도를 달려왔다. 누구 못지않게 많은 것을 누린 그가 가난한 소년공이니 천박한 가계니 약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은 가당치가 않다. 이준석의 경우 대학까지는 최샹급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러나 보통의 청년들이 고시원에서 머릴 싸매고 공무원시험 공부를 할 나이에 정당의 최고위원이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당 대표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은 상식을 너무 벗어난 무리수였다. 순전히 요행으로 벼락출세를 한 것이 정치지도자로서의 자질까지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정치가 컴퓨터게임과 다른 것은 올바른 인성에다 국민과 국가에 봉사한다는 소명의식까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두 사람의 성장과정은 많이 다르지만 철저히 이기적이라는 그 인성에는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매스컴이나 인터넷에 나와 있는 그들의 행적 중에 나라와 국민을 위한 소명의식이나 헌신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현란한 말재간이든 과감한 표퓰리즘이든 오로지 자신의 영달에만 목적이 있다는 걸 모르는 국민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지금 이 나라의 정치판은 모리배들의 난장판이고 그로 인해 민심은 부박하고 지리멸렬해졌다. 이재명과 이준석 두 사람에 대한 사법적 판결이 조만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정계퇴출로 새로운 계기가 열리길 바란다.

2022-08-18

폐기물도 쓸모가 있다

윤영대 수필가 이번 폭우로 인한 수해재난 실태를 영상으로 보면서 그 폐기물도 엄청나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재사용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겠지만 잘 활용하면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할 수도 있다.아파트에 이사가 있고 난 후 폐기물 처리장에는 멀쩡한 가구나 가전제품이 많이 버려져 있다. 큰 가구들은 꽤 비싼 제품이고 작은 선반이나 책장도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것들이라 아까운 생각이 든다. 폐가전제품은 ‘무상방문 수거 서비스’를 이용하여 처리할 수 있고 소형인 경우는 5개 이상 묶어서 배출해야 하며 지자체에 따라 높이 1m 미만인 소형 가전제품들은 처리비용이 면제된다. 그 이외의 경우는 폐기물 스티커를 붙여야 한다. 생활이 윤택하여 그런지 예전 같으면 애지중지하던 생활용품들을 아낌없이 버리고 있어 환경 문제도 일으키고 있다. 2019년 기준 폐가전제품은 세계적으로 약 5천400만 톤이며 1인당 7.3kg이라는 통계도 있고, 우리나라는 약 40만 톤을 재사용하고 있다고 한다.요즘 못 쓰고 버려질 물품에 새로운 디자인으로 다시 가공해 가치를 부여하는 업사이클링(upcycling) 활동이 인기를 얻고 있다. 재활용보다는 한 단계 위다. 의류 리폼(reform)을 주로 하고 있는데 청바지 등으로 쇼핑백이나 손가방 등을 만들고 자투리 가죽으로 작은 지갑과 파우치 등을 만들어 다시 파는 사회적 기업도 있고 포항여성문화회관에는 이러한 교육과정도 있다.지난번 옷장을 정리하며 멀쩡한 옷들을 버리려고 하니 그냥 옷 수거함에 넣기는 아깝고 바자회를 통해 팔 수도 있지만 ‘아름다운 가게’가 자원 재순환을 통해 우리 사회의 친환경적 활동과 소외 계층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5박스를 보냈더니 기부금 영수증이 왔었다. 그 수익금은 소외 이웃을 돕는 데 쓰이고 바자회를 통해 안 팔린 것들은 후진국으로 수출하기도 한다.폐기물을 소재로 한 예술 활동도 있다. 정크아트(junk art) 분야다. 폐품, 쓰레기, 잡동사니를 재료로 작품을 만드는 일은 1950년대 이후 공업제품 등의 산업폐기물을 이용하여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시작되었다. 경주 엑스포공원 내에도 ‘또봇 정크아트 뮤지엄’이 있어 어린이들을 위한 정크아트와 아트트릭 미술을 경험할 수 있다.공사현장에서 많이 버려지고 있는 팔레트(pallet)는 벽돌과 유리 등을 옮기는 목재 받침판인데 쓸모가 많다. 나는 현장을 지나다가 쌓여있는 팔레트가 보이면 책임자에게 허락을 받아 몇 개를 차에 싣고 온다. 시골집 황토방에 불을 때기 위해서다. 해체하고 잘라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하룻밤은 거뜬히 뜨거운 방에서 잘 수 있다. 나의 이러한 사정을 아는 지인들도 가끔 가져다주어 고맙다. 또 팔레트 중에서 재질이 단단하고 반듯한 것은 잘 가공하여 화단 울타리나 간단한 가구와 휴게시설을 만들어도 된다.일상생활에서 버려지는 폐비닐 페트병 캔 등도 분리수거를 잘하면 자원 재생과 함께 환경개선에 도움이 되며, 가정의 작은 노력이 환경을 살린다.

2022-08-18

예천곤충축제가 계속 성공하려면

정안진 경북부·예천 지역축제는 지방자치제 출범과 더불어 지역 관광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예천군의 SEMI 곤충엑스포 2022 예천곤충축제는 지난 3일부터 15일까지 10일간 열렸다. 곤충축제는 지역 관광과 경제 활성화와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왔다. 축제는 적은 예산 투입으로 경제적·비경제적 파급효과를 극대화 해야 한다. 이제 지역축제는 자립과 운영의 성숙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의 축을 만들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SEMI 곤충엑스포 2022 예천곤충축제는 당초 2020년 개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나 연기를 거듭하다가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면서 6년 만에 재개됐다. 축제는 침체된 지역 경기에 활기를 불어넣고 예천의 다양한 문화를 알릴 수 있는 계기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예천읍 시가지 및 한천체육공원, 곤충생태원에서 성황리에 진행됐다.개막식때 국내 최정상급 가수인 홍진영, 김다현 등의 축하공연 및 화려한 불꽃쇼로 축제의 열기를 고조시켰다.또 지난 10일 낙동 7경 한마당 잔치에 양동근, 산이, 강혜연, 류원정, 김민교, 이병철, 최상, 강민주, 이종학 등 유명가수가 대거 출연해 한여름 밤 뜨거운 열정으로 무대를 장식해 무더위에 지친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흥겨움을 안겼다. 이어 11일에는 예천청년회의소에서 주관한 치맥 페스티벌은 치킨 1마리, 맥주 2잔 1세트에 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500마리 한정 판매하고 한천 분수를 보며 공연과 이벤트 등이 함께 어우러져 무더위에 지친 피로를 풀 수 있게했다.지역축제는 이제 발상의 전환으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되어야 한다.예천군은 예천곤충축제가 지속 가능한 성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전략적인 정책적 대응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 나가야 할 때다.요컨대 지금까지 축제를 이끌어 온 패러다임을 전환해 창조력과 상상력으로 발현되는 축제가 되게 지역 관광에서 문화까지 시야를 확대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오로지 ‘사람’과 ‘지역사회’다. 또 단계적 성장을 유도할 수 있는 예천군 차원의 지표 발굴과 함께 현장 중심형 평가, 전문가 컨설팅도 강화해 내실을 다져야 한다.또한 별도의 축제전담조직 운영체계를 구축해 인력과 조직의 전문성을 갖춤으로써 지역이 주도하는 축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기반을 강화하는 등 새로운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그래야 다시 한번 축제를 통한 예천군 관광의 도약 기회를 찾을 수 있다./ajjung@kbmaeil.com

2022-08-17

무인(戊寅)

육십갑자 중 열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무인(戊寅)이다. 천간(天干)은 무토(戊土)요, 지지(地支)는 인목(寅木)이다.‘잔설(殘雪)이 남아있는 봄 산’의 물상이다. 무(戊)는 만물을 무성하게 성장시키는 위엄을 상징한다. 호랑이 인(寅)은 봄의 양기가 막 터져 나와서 생명을 키우는 의욕이 대단하며, 진리를 펼치려는 형상이자 포악성의 의미도 내재되어 있다.호랑이는 야행성이다. 보통 인시(寅時), 새벽 3시부터 5시 사이에 먹이 사냥을 위해 움직인다. 동트기 전에 움직이는 동물이기에 그렇다. 호랑이는 움직이는 반경이 200km 이상이므로 야생의 왕 중의 왕이며, 역마의 기운이 있다.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사람에게 ‘역마살’이 끼었다고 하고, 이동수가 있다고 한다. 농경사회에서는 고향을 떠나는 것을 부정적으로 인식했다.‘유목민’(노마드)같은 삶을 야만적이고 열등하다고 규정하였다.시대가 변하면 생활방식과 사고도 변하여 ‘역마살’에 대한 해석도 달리한다. 오늘날에는 살 곳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민처럼 역마의 기운을 살려야 한다. 삼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은 바다로 진출하는 것이 살 길이다.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1925∼1995)가 저서‘차이와 반복’에서 ‘노마드’를 처음 언급했다. 땅에 뿌리 내리고 토박이로 살며 정체성과 배타성을 지닌 민족을 이루기보다는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바꾸어 나가며 창조적으로 사는 인간형을 말한다. 또는 여러 학문과 지식의 분야를 넘나들며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인간형을 말하기도 한다.우리 역사에서 노마드적 삶을 산 신라시대 혜초(慧超·704~780년) 스님이 있었다. 1908년 9월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1878∼1945)는 중국 돈황 막고굴 제17굴(장경동)에서 그동안 이름만 알려져 있었을 뿐 실체를 확인할 수 없었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찾아냈다. 책명도 저자명도 떨어져 나간 채 발견된 이 여행기가 8세기에 활동한 혜초 스님이 저술한 ‘왕오천축국전’의 잔간(殘簡) 사본이라는 것이 발견자에 의해 밝혀졌다. 펠리오는 종이의 질이나 필치로 보아 9세기에 필사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혜초 스님은 스승의 권유로 불법을 구하기 위해 인도로 떠났다. 약 4년 동안 인도와 멀리 중동지역까지 죽음을 무릅쓰고 육로여행을 하면서 각 지역에서 불교를 어떻게 믿고 있는지와 함께 옷·음식 ·풍속·기후 등 그 당시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모아서 기록했다. 그 당시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미지에 대한 동경과 새로운 지식을 찾고자 하는 갈망 즉, 노마드 기질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혜초 스님은 그 시대의 진정한 세계인이었다.우리는 이것을 통해 1찬300여 년 전의 불교역사와 그곳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8세기의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대한 기행문은 세계에서 이 책밖에 없어 더욱 그 가치가 높다. 또한 세계 4대 여행기로 손꼽히며 그중에서도 가장 일찍 쓰여진 것이다. 현재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무인일주(戊寅日柱)는 일지(日支·배우자궁)에 편관칠살을 두고 있다. 어의(語義)가 좋지 않아 나쁘다고 보는 인식이 있으며, 안락하고 편안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통변을 달리 해석하고 있다. 독선적이지만 관운이 좋다. 자신을 낮출 줄 알고, 지인 또는 배우자의 조언을 귀담아 들으면 명예와 존경이 뒤따를 수가 있다. 조직생활이나 직장생활과는 잘 어울리나, 사업과는 거리가 멀다.‘안자춘추’ ‘내편’ 잡상 편에 나오는 글이다. 안자가 제(齊)나라의 재상으로 있던 어느 날, 수레를 타고 문을 나섰다. 어느 날 수레를 모는 사람의 아내는 남편이 수레를 모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수레 위에 세워 놓은 큰 양산 아래에 앉아서 채찍을 휘둘러 네 마리의 커다란 말을 몰아치는 자기 남편의 모습은 아주 우쭐거리고 거칠 것 없어 보였다.수레를 모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자, 그의 아내가 다짜고짜로 헤어지자고 하였다. 날벼락 같은 소리에 수레를 모는 사람은 어이 없이 아내를 멍청히 보다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아내는 “안자께서는 키가 여섯 자도 안 되시지만, 제나라의 재상으로 모든 나라에서 많은 존경을 받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분의 태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얼마나 겸손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분이 외출하시는 모습에서도 그분의 생각이 아주 깊이가 있다는 것이 바로 눈에 보입니다. 당신은 키가 여덟 자가 넘으면서도 겨우 남의 수레나 모는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거들먹거리는 모습은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그런 당신 같은 사람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당신과 헤어지자고 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류대창명리연구자 이때부터 수레를 모는 사람은 아주 겸손해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안자가 수레를 모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처럼 변하게 되었느냐고 묻자 그는 아내의 이야기를 안자에게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안자는 그를 벼슬자리에 추천했다.인간은 어떤 선택과 결단을 요구하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주변에 떠도는 말보다는 통찰력이 있는 사람을 통해 참된 말에 관심을 기울여야 실수가 적다. 무관심은 자칫 타인과의 단절로 이뤄져 자신의 삶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선택과 소망은 아주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속성을 지닌다. 불가능한 일을 선택했을 때는 바보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소망은 불가능한 일에도 성립할 수가 있다. 사람들은 영화배우의 인기나 운동선수의 승리처럼 자신의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소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선택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만 합리적으로 선택해야 한다.양치기 소년처럼 허황되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똑똑한 지도자보다는 진실 되고 실현 가능한 것을 말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2022-08-17

조계사의 연꽃 향기

전재영 동국대 출강 최근 장맛비가 세차게 쏟아붓던 시간대에 불교의 총본산인 조계사를 몇 번 찾았다. 빗줄기가 더위를 식혀주듯 내 마음속 번뇌를 조금이나마 씻기 위해서였다.자비로운 표정으로 온 세상을 끌어안은 부처님 앞에서 들려오는 고매한 스님의 청아한 목탁 소리, 겸허히 빗물을 받아내는 사리탑의 경건함을 기대하며 조계사 앞에 다다랐다.그러나 사찰 일주문 앞에 펼쳐진 색다른 풍경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곳에는 고성을 지르며 종교단체를 비방하는 시위꾼들로 북적였다. 신성한 기도 시간, 지나가는 행인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의 여유로움을 방해하는 모습으로 보여서인지 영 민망했다. 당연, 그 시위가 비록 합법적이라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보일 리 없었다.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비판과 반대 의견은 늘 있어 왔다. 또 다양하고 균형 잡힌 시각은 사회 발전을 견인한다. 그러나 도처의 시위현장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물리력을 동원한 무질서한 시위나 인격살인에 가까운 비방 및 모욕행위, 고성방가 수준의 배려 없는 행위는 반드시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목이 터져라 남을 물러가라며 누군가를 비난하고 비방하는 그들을 보면 팍팍한 삶의 애수와 고초가 느껴져 간혹 애처로운 마음이 든 적도 있다. 하지만 모든 문제나 갈등은 단지 목소리만으로 해결되기란 어렵다. 문제의 원인과 현재의 상황을 면밀하게 바라보고 건설적인 견해를 합리적이고 성숙한 방법으로 표현할 때 다른 이들의 공감을 더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번뇌를 잊고자 사찰을 찾은 중생의 번뇌와 시름이 쉽사리 사그라지지는 않지만, 세찬 빗줄기를 말없이 받아내는 연꽃잎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비를 베풀어 타인을 포용하라는 듯 작은 깨달음을 준다.불교는 연(蓮)꽃과 깊은 연(緣)을 가졌다. 연꽃은 더러운 진흙 속에 피어나는 꽃이면서도 그에 물들지 않기 때문에 청정과 깨달음, 성스러운 진리를 상징한다.연뿌리에는 질펀한 늪 바닥에 처해 있어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본성을 간직하여 세상을 정화한다. 중생들의 몸은 비록 어지러운 사바에 있지만 정(淨)하게 지녀 세상을 구제해야 한다는 불교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연꽃잎은 잎사귀에 흙탕물 한 점이 없다.쟁반 같은 뽀송한 연잎은 물방울을 동그랗게 말아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한 점도 취함이 없이 그대로 떨어뜨린다.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변을 신성하게 하며 불교의 가르침을 전한다.또한, 연꽃은 꽃을 피우면서 동시에 씨를 품는다고 하여 꽃과 씨가 동시에 탄생하는데, 불교에서는 이를 모든 결과는 이미 원인을 품고 있음에 비유하며, 태어남과 동시에 불성을 지니게 됨을 상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연꽃은 성스럽고 아름답지만 아무리 만개해도 결코 요염하지 않으며 향도 자극이 없어 있는 듯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 향기는 멀어질수록 그윽하기만 하다.퇴계 이황 선생은 만년에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짓고, 서당 동쪽에 네모진 조그만 못을 만들어 연꽃을 심고 ‘정우당(淨友塘)’이라 이름했다.‘정우’란 ‘깨끗한 벗’이란 뜻으로 곧 연을 가리킨 말이다. 이러하니 연(蓮)은 화중군자(花中君子·꽃의 군자)로 불린다. 송 주돈이(周敦履)는 그의‘애련설’(愛蓮設)에서 연을 “꽃 가운데의 군자로다”라고 칭송하기도 하였고, 초나라의 굴원(屈原)은 연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기도 했었다.해가 중천을 지나면 하루의 노고를 연지(蓮池)에 부리고 정하게 꽃잎을 오므리면 연대 밑으로는 개구리밥과 생이가 방석처럼 깔고 앉아있으니 연지불국(蓮池佛國)이 아닐 수 없다.개구리들이 개굴개굴 아무리 시끄럽게 울어도 연꽃이 피는 사찰경내의 염불 소리는 극락음이다. 물론 조계사 앞 일주문을 지나면서 본 집회 시위 현장 또한 그 나름의 이유는 있을 터다. 다만, 그곳이 한국 불교의 중심이니 연꽃이 주는 깊은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길 권한다.

2022-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