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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은 ‘공짜 인력’이 아니다

등록일 2023-07-31 18:47 게재일 2023-08-0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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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집중호우가 한반도 거의 전역을 휩쓸고 지나간 직후,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던 해병대원 故 채수근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인간띠’를 만들어 실종자를 찾던 중 갑작스럽게 하천 지반이 내려앉으며 해병대원 세 명이 물에 빠졌고, 두 명은 헤엄쳐서 빠져나왔지만 안타깝게도 채 상병은 그러지 못했다.

당시 현장에 투입된 해병대원들에게는 가장 기본적 안전장구인 구명조끼조차 지급되지 않았다. 폭우로 인해 하천의 수량과 유속이 급격히 증가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해병대원들은 맨몸으로 물속에 들어가야만 했다. 더구나 이들은 수중구조 훈련을 전문적으로 받은 인력도 아니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안전불감증을 다시 한번 상기시킴과 동시에,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청년들을 얼마나 허술하고 박하게 대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은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대부분의 남성이 병역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는 대외적으로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고 선전되지만, 정작 그 의무를 다하는 주체인 청년들에 대한 존중은 찾아보기 어렵다. 군인들이 외출·외박을 나가는 소위 ‘위수지역’의 물가가 유독 높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징병된 청년들을 이윤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만 보는 것이다. 이번 폭우와 같이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지역사회에 큰 피해가 발생하면 신속한 복구를 위해 군이 대민지원에 나선다. 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군 활동의 일환이며 군 이미지 향상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병사들의 희생이 따른다면 어불성설이다. 하천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병대원들에게 상부에서 ‘해병대임을 알리는 빨간색 상의’ 착용을 지시했다는 언론보도는 과연 무엇을 위한 대민지원인지를 되묻게 한다.

故 채수근 상병의 소속 부대인 해병 제1사단은 작년 가을 태풍 힌남노로 인해 경주와 포항 일대에 막대한 호우 피해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 투입되어 활약한 바 있다.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 이러한 활동은 대단히 고맙고 소중한 도움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故 채수근 상병과 같은 불의의 피해자가 발생한다면 그 의미 또한 퇴색될 수밖에 없다.

이제 군인을 ‘공짜 인력’으로 생각하는 일은 그만두자. 그들도 군인이기 이전에 우리 모두와 동등한 사람이자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천연자원이 없어 사람이 최고의 자원’이라는 나라에서 사람의 가치와 목숨을 가장 하찮게 취급하는 아이러니한 일들을 중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 수뇌부의 인명 경시 경향과 안전불감증에 경종을 울림과 동시에, 모병제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국가주의·권위주의적 가치들이 힘을 잃은 현재, 징병제야말로 ‘열정페이’로 유지되는 가장 거대한 시스템이 되었다. 언제까지 애국심을 이유로 청년들의 시간과 생명을 착취할 것인가. 휴전 중인 분단국가의 특수성을 언급하며 모병제 전환에 반대하는 인사들은 분단으로 인한 군사적 긴장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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