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시대가 돌이 없어서 끝난 게 아니다. 차원이 다른 청동기라는 신기술이 등장하자 경쟁에 밀려 주류 자리를 내려놓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에너지전환을 서두르고 있는 것은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가 고갈됐기 때문이 아니다. ‘계속 화석연료를 썼다가는 인류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없다’는 인류적인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UN 주도로 1992년에 열린 ‘리우회의’와 1995년 열린 ‘당사국총회’ 이후부터 전 세계는 본격적으로 에너지전환에 돌입했다. 인류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2050년까지 탄소를 매년 510억t씩 줄이고 온도 상승을 1.5도에서 멈추게 해야 한다는 데 합의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소비량은 세계 10위다.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2020년 기준 92.8%로 세계 1위다. 에너지 소비량은 10위인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7위다. 에너지 중에서 화석연료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비중은 8.6%다. 덴마크와 오스트리아는 80%대이고, 미국과 일본은 20% 이상, 중국은 30% 정도다. OECD 국가 평균이 31.3%며, 한국은 OECD 국가 중 꼴찌다. 1995년 1%이던 독일은 50%를 넘본다.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상황이 최악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에너지전환이 어려운 것은 첫째 국토가 좁아서, 둘째 날씨 때문에, 셋째 너무 비싸서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빠른 시간안에 에너지전환에 실패해 RE100을 달성하지 못하면 국내 기업들은 RE100이 가능한 다른 나라로 공장을 옮겨야 하며, 이미 이러한 현상은 진행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한국에 투자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산업생태계는 붕괴되고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 에너지전환을 늦출 경우 제조업 강국 대한민국 신화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불가론은 사실이 아니다. 먼저 한국은 태양광, 풍력 발전을 하기에 국토가 좁지 않다. 우리나라가 2050년 재생에너지 75% 이상으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500GWh 정도의 발전시설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발전에는 국토의 3.5% 즉, 3천500㎢, 서울시 면적의 6배 정도의 토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우리나라 농지가 국토의 15% 정도이니 농지의 24% 미만을 활용한다면 된다.
한국 날씨가 재생에너지 생산과 맞지 않다는 주장도 엉터리다. 재생에너지 천국인 독일과 비교해 보면, 한국은 독일에 비해 훨씬 낮은 위도에 위치해 있다. 한국의 일조량이 1천459 시간으로 1천56 시간인 독일에 비해 38%나 더 많다.
그리고 재생에너지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하는데, 지금은 태양광 설치비용이 원자력발전소 건설비보다 더 싸졌기 때문에 이 말도 맞지 않다. 태양광 기술은 반도체처럼 일정한 기간을 주기로 해서 ‘가격은 반으로, 효율은 배’로 진화한다. 태양광은 한번 설치하면 25~30년간 햇빛과 바람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홍종호 교수는 탈탄소 경쟁력이 곧 기업 경쟁력이고, 기후 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인 시대가 오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2020년 기준 92.8%의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다. 에너지 자립도가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모든 국민이 협력하면 에너지전환시대에 ‘에너지 자립’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산업단지 인근 농지에 ‘신재생에너지 연계 스마트팜 융복합단지’ 조성이 활성화되고 있다. 충남 서산시 고북면에서는 21만여평의 부지에 50MWh 용량의 수소연료전지발전소와 연계해 75MWh급 스마트팜 단지가 한창 조성되고 있다. 수소연료전지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폐열을 스마트팜에서 이산화탄소는 작물 육성용 원료로, 폐열은 팜 냉난방용으로 활용한다. LNG를 연료로 하는 수소연료발전소의 부산물인 탄소를 팜에서 소진시켜 그린수소화 함으로써 막대한 재생에너지 생산(1천500MWh)과 스마트팜에서 첨단 작물 재배를 통해 고소득 창출을 꾀하는 사업이다. 이렇게 생산된 재생에너지는 주변의 홍성일반산업단지 입주 기업에 RE100용으로 공급된다. 스마트팜에서는 첨단 바이오 작물을 재배해 수출함으로써 전통적인 쌀 재배에 비해 800배 이상의 소득을 창출한다. 수소발전소에서 생산하는 그린 수소는 또 다른 수익을 창출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의 스마트팜단지가 현재 전국에서 13군데 진행 중이다. 대도시나 산업단지 주변의 절대농지에 스마트팜 단지를 적극적으로 조성해 나간다면 기업이나 농민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 수소연료전지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자금은 국제자산운용사들이, 스마트팜 건설 자금은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앞다투어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모델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개발도상국들의 에너지전환 지원에도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스마트팜단지가 보편화돼서 우리나라가 그린-디지털 전환기에도 제조업 강국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고, 후진국들의 에너지전환에도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