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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글로 쓰는 일의 어려움

등록일 2023-07-31 18:47 게재일 2023-08-0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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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인 ‘더블린 사람들(Dubliners)’ 1914년 초판본의 표지.

인간이 글쓰기로 무언가를 표현해 온 역사는 꽤 길 것만 같지만, 그것은 그리 길지만도 않다. 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무언가에 대해 느끼고, 배우고, 말로 그것을 표현하고, 또 글로 그것을 표현해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이제 무언가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쯤에는 인간의 감각은 둔해지고, 지력은 쇠퇴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예술 중 문학이라는 것이 늘 기괴한 착상과 화려한 수사로 점철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그렇게 단순하기 그지 없는 세계로 돌아오고 마는 것은 그것이 인간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내뱉는 말과 글은 결국 인간이 하는 일이다.

인간은 글쓰기라는 미디어를 가지고 세상을 그려내기도 하고, 저 멀리 바깥에 있는 누군가의 마음을 그려내기도 한다. 글쓰기를 가지고 재현하는 세계는 결코 구체적이지도, 감각적이지도 않은 세계이기 때문에, 억지로 쥐어짜낸 확신이 아니라면 가지기 어렵다. 특히 어떤 인간의 마음속을 흘러가고 있는 생각이라면 더욱 그렇다. 단지 있었던 일을 글쓰기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진과도 같은 흔들림을 옮기는 일은 그래서 어렵고, 또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소설은 대부분 인간의 마음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물론 흥밋거리로 읽는 소설이라면 또 다르겠지만, 언어예술로 간주되곤 하는 소설이라면 대부분 세상의 일들을 살피거나 인간의 마음속을 흘러가는 생각이나 심리를 그려내는 것을 마치 자기의 사명인 양 간주해왔다. 세상에서 흘러가는 시간의 감각과 마음속을 흘러가는 시간의 감각은 다르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글쓰기는 분명 다른 글쓰기와는 조금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심리가 흘러가는 모습을 그려내는 작가들은 문학 내에서도 예술적인 작가로 분류되는 것이 아닐까.

제임스 조이스(1941년).
제임스 조이스(1941년).

제임스 조이스(1882~1941)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는 20세기 초반 자신이 태어났던 아일랜드 더블린을 배경으로, 그 사회상 위에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심리를 얹어 두어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예술적 아이콘이 되었다. 물론 조이스 이전에도 인간의 심리를 언어로 그렸던 작가들은 많았지만, 우리가 그로부터 심리주의 소설의 기원을 삼는 것은 그가 처참하고도 궁핍한 당시의 현실 위를 흘러가는 인간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얹어두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소설 작가라면 누구나 이런 방법을 쓰고 있지만, 100년 전 조이스가 시도했던 일종의 심리주의, 조금 더 정확히는 심리적인 실재주의의 방법론은 인간의 마음을 글쓰기로 묘사해내는 데 고심했던 다른 작가들이 찬탄할 혁명적인 방법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조이스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여느 소설과 같이 먼저 인물이 들어오고, 그 다음에 아일랜드의 거리들이 들어오고, 그리고 배경음악처럼 세계 위에 보이스 오버되어 인물의 마음이 속삭이기 시작한다. 조이스와 같은 시대의 평론가들이 그의 심리묘사를 음악성에 빗대었던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이다.

사실 제임스 조이스는 1930년대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명이었다. 백석이나 박태원 등이 그를 좋아해 자주 소개하곤 했다. 그가 한국과 똑같이 식민지를 겪고 있는 아일랜드의 작가라는 동질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그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글쓰기라는 도구로 인간의 마음을 그토록 세련되게 그려낸 작가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여전히 타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다. 여전히, 그렇게. /송민호 홍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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