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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국악의 매력은 흥과 신명 나무와 꽃도 춤추게 한다”

한국은 문화·예술의 중심축이 서울로 설계된 국가라는 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현실이 이러하니 지방 도시의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건 힘겨울 게 불을 보듯 뻔하다.여기에 지난해 초부터 예기치 못한 복병처럼 문화예술계를 궁지로 몰아넣은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쳤으니, 포항 예술가들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할까?한국국악협회 포항지부장 이원만(58)씨는 20대 때부터 문화운동을 시작해 30년 넘는 세월 동안 의연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보기 드문 예술가다. 국악으로 시작했지만, 최근엔 대본 작가와 제작감독 등으로 활동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2021년 봄. 포항의 예술가들이 겪고 있는 실질적 어려움은 무엇인지, 힘겨운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이른바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어떻게 준비하는 것인지 여러 가지가 궁금했다.1980년대 후반부터 오늘까지 포항의 문화예술계를 바로 곁에서 지켜보며,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이원만 지부장이라면 기자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화를 걸어 만남을 청했다.아래는 샛노란 개나리가 수줍게 꽃을 피우기 시작한 지난주 포항시 남구 중앙로 ‘놀이마당 한터울’에서 이원만 지부장과 나눈 대화를 요약한 것이다.-경주 출신으로 알고 있다. 포항에는 언제 왔는지.△1963년 경주 건천에서 태어났다. 중·고교를 거기서 나왔다. 고등학생 때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았기에 대학에선 국문학을 전공했다. 국악은 1988년 포항에 오면서 늦게 시작했다.-국악을 접하게 된 계기는.△문화운동을 하고 싶어 포항에 왔다. 대학 졸업 즈음에 ‘앞으로 내가 사회에 기여할 방법이 뭘까’를 고민했다. 그러다가 찾게 된 곳이 포항의 한터울이란 풍물단체다. 와서 보니 풍물도 하고, 노래도 하고, 탈춤도 하는 곳이었다. 당시엔 오가는 이들 대부분이 노동자였다.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선 국악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북채는 그렇게 잡게 됐다.-국악 외에도 연극 대본 작업, 문화행사 기획 등도 한다고 들었다.△현재 포항 예술가들의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오디션이 없어서 오디션에 떨어질 기회조차 없다’고 자조적으로 말할 정도다. 국악협회 일과 창작 활동을 병행하고 문화행사도 기획하는 건 포항이 가진 ‘이야기’를 보편적 메시지로 만들어 전국에 알리고 싶어서다. 그 과정에서의 성공 사례가 포항문화재단과 함께 작업한 ‘국악 가족뮤지컬 강치전(傳)’이다. 내가 제작감독을 맡았고, 가사와 대본도 썼다. 이 작품은 지역 예술가들이 오디션을 통해 참여한 작품이다. 또한, 경기도 오산과 강원도 원주 등에 초청돼 돈을 받고 무대에 올린 공연이기도 하다. 그런 과정이 내겐 상징적으로 다가왔다.-포항 예술가들이 처한 어려움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이 지역에서 33년째 활동하고 있다. 근데 대부분의 시간을 국악 가르치는 학원 교사처럼 살았다. 대다수 포항의 예술가들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교육하는 게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예술가에겐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열망이 있지 않은가? 내 경우엔 아름다움의 다양한 형식을 공연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 그런 작품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반쪽 예술가의 삶이 아닌가. ‘강치전’ 작업을 시작한 것도 그런 열망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였다.-‘강치전’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다.△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건 새로운 인식을 생산하는 것이다. ‘강치전’의 경우도 그렇다. 단순히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하면 너무 평범한 서사다. 독도에서 해양생물이 사라지는 건 일본 탓만이 아니고, 보편적 인간의 문제라는 걸 말하고자 했다. 작품을 쓸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건 새로운 인식의 생산과 그걸 표현할 정확한 방식을 찾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 작품을 매개체로 포항의 예술가들이 즐겁게 협업하는 풍토를 만들고 싶었다.-‘코로나19 사태’가 포항 공연예술계에 미친 영향은.△공연이나 행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대가 없으면 예술가가 설 자리도 없다. 예년에 비해 공연이 90% 이상 줄어든 상황이니 그 어려움이 어떻겠나.-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고민과 노력을 하고 있는지.△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 중이다. 프랑스의 경우 작년엔 ‘내 곁에 베토벤’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어, 연주자들이 음악애호가의 집을 직접 찾아 유료로 연주회를 열었다고 한다. 포항의 예술가들 역시 이 국면에서 활동할 방법을 찾고 있다. 지난해 장기읍성에서 열린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인원을 대상으로 하는 콘서트’ 등이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예술가들은 대중과 소통할 방법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지금까지 활동하며 잊을 수 없는 기억은.△포항에 온 초기에 경주의 한 골프장 건설 반대시위 현장에 갔다. 트럭에 타고 온 풍물패들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딱 한 가락을 연주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300여 명의 사람들이 단숨에 하나가 돼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19세기 말 동학농민전쟁 당시 풍물이 군대의 사기를 올리는 음악이었다는 걸 몸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사실 징 소리는 사람의 뼈까지 흔들리게 하는 힘이 있다.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경주의 조그만 마을로 공연을 하러 갔는데, 주름살 가득한 어떤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던지고 북을 빼앗아 신명나게 춤을 추는 것이었다. 나중에 그분이 ‘자네들이 내 생애 마지막 춤을 반주해주러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데…. 마음이 찡했다.-국악 활성화를 위한 방안은.△포항이 문화의 불모지는 아니다. 내게 풍물을 배운 사람만 지금까지 3천 명이 넘는다. 지역의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해서는 북유럽처럼 일상생활 속에 축제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곳에선 전통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아이돌 수준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취미나 기술 교육 차원이 아닌 생활 속으로 국악을 이끌어내는 방식이 필요하다.-지방자치단체의 예술 지원은 어떤 방식이 돼야한다고 생각하나.△포항문화재단이 생긴 후 긍정적 변화가 느껴진다. 적지 않은 문화예술 기획자들이 거기서 활동하고 있다. 포항은 법정 문화도시이고, 경북의 문화거점도시이기도 하다. 여기에 걸맞게 다양한 문화정책 논의의 장이 펼쳐져야 한다. 포항시민과 지역 예술가들이 어떤 문화적 요구를 하는지도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국악이 가진 매력은 뭔가.△‘흥(興·즐거움을 일으키는 감정)’이다. 사람만이 아닌 다른 동물, 나무와 꽃까지 함께 어울리게 하는 힘을 국악이 가졌다고 믿는다. 공동체가 더불어 즐기는 신명이 곧 국악이 아닐까? 지금은 빠른 것이 세상을 지배한 속도의 시대다. 이런 때일수록 국악이 가진 길고 느린 호흡이 절실하다.-당신에게 국악과 공연예술이란.△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도구가 아닐까.-향후 계획은.△‘코로나19 사태’가 좀 누그러지면 국악과 서양 음악이 각각의 매력을 선보이는 작품을 만들어보려 준비 중이다. 포항의 토속민요를 수집하는 작업도 해보려 한다. 콘서트 대본과 판소리 대본 공부도 하고 있다. 대본 작가로서 전문성을 가지기 위해서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동네에 조그만 책방을 하나 마련해 청년들, 아이들과 함께 책 읽으며 늙어가고 싶은 게 꿈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3-24

희망찬 청송으로… 코로나 극복 민생경제 활성화 전력

청정한 자연환경과 넉넉한 인심을 가진 청송군은 작지만 살기 좋은 지역이다. 여기에 ‘청송 사과’라는 전국적 인지도를 가진 특산물을 가진 곳이기도 하다.지난해 초부터 한국을 휩쓴 ‘코로나 19 사태’라는 달갑지 않은 광풍이 청송에도 예외 없이 불어 닥쳤다.전국 모든 지방자치단체와 마찬가지로 청송군도 코로나19의 차가운 바람을 극복할 민생경제 부활 대책을 머리 맞대고 고심하고 있다.윤경희 군수는 얼마 전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지 1년이 지났다. 올해 1월 말까지 집계된 전 세계 코로나 사망자 수가 200만 명을 넘어섰다”는 말로 사태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도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고, 희망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마지막인 것 같은 순간에도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로 청송군민을 위로했다.그렇다면 청송군은 어떤 구체적 방법으로 극악한 바이러스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을까?아래 위축된 소비 심리와 심화되고 있는 지역경기 침체를 효율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애쓴 청송군의 다양한 정책을 요약해 정리한다.◆침체된 지역경기에 힘을 불어넣은 ‘청송사랑화폐’‘청송사랑화폐’는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청송군의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주요한 방편으로 인정받고 있다.현재 시중에 유통·판매되고 있는 청송사랑화폐는 어려움에 빠진 지역경기에 활력을 불어넣고, 소비 촉진을 통한 경기부양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올해 청송사랑화폐의 발행 규모는 모두 250억 원 정도.“특히 농민수당과 농산물 택배비 지원사업 등 각종 정책수당을 청송사랑화폐로 지급하고, 10% 특별 할인판매로도 180억을 유통할 예정”이라는 게 청송군청 관계자의 설명이다.청송군에 의하면 청송사랑화폐를 구매한 주민들에게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전폭적인 할인 혜택(평상시 5%·할인판매 10%)을 준다. 이 때문에 지속적으로 좋은 호응을 얻을 것이 예상된다.이와 더불어 전문가들은 청송사랑화폐가 코로나19 사태로 난관에 처한 소상공인들의 경제활동을 고무하고, 침체된 지역경기에도 활력을 불어 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청송군은 이와 관련해 2021년도 청송사랑화폐 제작비용 중 12억 원을 국비로 지원받았다. “이는 타 지자체보다 훨씬 큰 규모의 지원으로 중앙 정부에서도 가치와 효용성을 인정한 결과”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윤 군수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어려운 시기임에도 군민들이 청송사랑화폐 구매·사용에 적극 동참해줌으로써 내수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됐다”며 “지역의 위축된 경제활동을 돕고, 불안정한 소비 심리가 안정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많이 이용해 달라”고 부탁했다.여기에 덧붙여 청송군은 ‘지역사랑 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상품권 부정거래, 불법 환전 등 위반행위를 하면 과태료가 최대 2천만 원까지 부과될 수 있으므로, 청송사랑화폐를 합법적으로 사용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소상공인들에게 힘이 된 청송군의 맞춤형 재난지원금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한 청송군의 발 빠른 정책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지역 소상공인들에게 때 맞춰 지급된 재난지원금이다.“재난지원금은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시간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과 아픔을 함께하기 위해 마련됐다”는 것이 청송군의 설명. 이는 윤 군수의 적극적인 의지와 군 의회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신속하게 결정됐고, 바로 추진될 수 있었다.지난 1월 22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소상공인 간담회를 통해 지역 소상공인 단체와 관련 내용을 논의한 청송군은 1월 25일엔 긴급 의원간담회를 열어 예비비 사용 승인을 받았다.청송군 소상공인 재난지원금 지급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된 배경엔 지역의 소상공인을 신속하게 도와야겠다는 청송군청과 청송군의회의 의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청송의 소상공인들은 올 설 연휴 전에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이번 재난지원금 지급은 2021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청송군에 주소와 영업장을 두고 있는 개인사업자(법인사업자 중 식당 및 관광버스 운영자는 가능)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신청을 위해 신분증과 사업자등록증을 지참하고 읍·면사무소를 찾은 청송의 소상공인들은 “청송사랑화폐로 지급된 재난지원금이 어려운 시절을 헤쳐 나가는데 작지 않은 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이와 관련 청송군청은 “맞춤형 재난지원금이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의 자금난 해소와 경영 안정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했다.◆어려운 시간 보내고 있는 농민들에겐 농민수당 지급청송군은 ‘코로나19 사태’ 초기 때부터 바이러스와의 싸움에 힘을 쏟았다. 꼼꼼한 방역대책 수립과 방역수칙의 적극적인 홍보, 여기에 N차 감염 차단 특별교부세 확보와 전 군민에게 마스크를 나눠준 것 등이 그 실질적인 사례다.여기에 지역 현실을 감안해 더해진 것이 농민수당 지급이었다. 청송군은 1월부터 ‘2021년도 농민수당’을 지역 농협과 축협을 통해 농민들에게 지급하고 있다.농촌과 농업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유지·증진하기 위해 도입한 청송군 농민수당은 지난해 첫 지급을 시작으로 올해가 2회째다. 지급액은 지난해와 같이 경영체당 50만원이고, 이 역시 지역 화폐인 청송사랑화폐로 지급하게 된다.청송군은 지급을 앞둔 시점에 농민수당 심의위원회를 개최해 지급 대상자를 최종 확정했고, 읍·면사무소를 통해 대상이 되는 농가에 이를 통보했다. 올해 농민수당 지급 대상 농가는 6천228호다. 사업비는 작년에 비해 1억4천만 원이 증가했다.지급 기간은 1월 4일부터 3월 31일까지. 대상 농가는 이 기간 내에 주소지 지역 농협이나 축협을 방문해 수령하면 된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직접 수령이 어려운 농가는 위임을 통해 대리인 수령이 가능하다”는 게 청송군청 관계자는 전언.“코로나19 사태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농민들에게 이 수당이 힘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한 윤 군수는 “앞으로도 농민들이 농업에 대한 자부심을 품고 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이와 함께 농산물 택배비 지원도 농민들에게 힘이 돼주고 있다. 청송군은 사과를 비롯한 지역 농산물의 소비 촉진과 유통 활성화를 위해 이미 지난 2019년 4월부터 ‘농산물 택배비 지원사업’을 시작했다.지원 대상은 청송군에서 생산된 모든 농산물. 그렇기에 청송군민이면 누구나 사업 참여가 가능하다. “농가 스스로 직거래를 활성화하고, 군민들이 소비 촉진 활동을 펼치는 것에 도움을 주고자 진행하는 사업”이라는 게 청송군의 부연이다.수입 농산물이 증가하고, 경기 침체로 인한 농산물 소비 부진이 장기화 되고 있는 시점에서의 이러한 지원은 청송군 농가 소득 안정화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 지역 전문가들의 평가다.◆이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한 준비를…최근 윤경희 군수는 각종 기고와 인터뷰 등을 통해 ‘코로나19 시대 민생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해 말한 바 있다.“극심한 위기 상황 속에서도 민생을 보듬어야 하는 행정기관이라면, 실질적으로 주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을 펼쳐 나가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 윤 군수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앞서 언급된 각종 지역경제 부활 정책들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영원히 계속되는 위기는 없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불러온 위기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할 시점이다.청송군을 비롯한 경북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위기 후 지역 안정 정책과 민생경제 지원 정책을 어떻게 펼쳐 나갈지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김종철·홍성식기자

2021-03-23

왜 문화예술인가?

계명대 특임교수 이상길 전 대구행정부시장을 만났다. 대구의 정치행정을 오래 맡았던 사람을 만났으니 도시행정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다. 그가 진심으로 대구를 걱정하는 사람인지, 다만 표가 필요한 기러기 정치인인지. 대구 토박이로서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대구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본 사람이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지금 대구는 진정으로 지역을 걱정하고 대구의 역사와 시대정신에 밝은 안목을 가진 정치인을 필요로 하고 있다. 생전 대구에 얼씬도 않다가 투표할 때가 되면 나타나서 ‘보수’를 들먹이는 기러기 정치인이 아니라 텃새처럼 제 텃밭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정치인을 말하는 것이다.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정치인들이 아닌가. 선거 때마다 대구공항을 공약으로 걸었던 사람들이 몇 명인데 그 공약이 아직도 미정이고, 향후 십 년은 더 우려먹을 태세다.“행정부시장으로 계시기 전에 어떤 일을 하셨어요?”“대구시에서 22년 근무하고 중앙행정부에서 8년 근무했습니다.”정치를 하려 했는데 공천도 못 받았다고 웃는다. 이 교수 역시 당선이 필요한 수많은 보수꼴통 중의 한 명이 아닐까 살짝 의심이 들며, 대화가 끝나기 전에 내 시니컬한 선입견을 걷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수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진보를 지향하는 진정한 보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보수가 대구의 정치일선에 서 주기를 바랄 뿐이다. 기업이 들어오고 일자리를 창출할 방안이 거론되어야 할 즈음에, 흉물 같은 아파트만 끝없이 늘어나고 있으니 이제는 도시를 살릴 인재가 나타나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도시가 온통 주거전용화 되고 사방 콘크리트 절벽으로 둘러싸이게 된 걸 어떻게 생각하세요?”“도시를 살게 하는 것은 문화예술이지 아파트가 아닙니다. 대구의 도심은 창조적 에너지의 발원지로 24시간 살아 움직여야 하는 대구의 심장입니다. 지식 노동자와 예술가, 청년들이 활기찬 문화적 창조활동으로 열린 공간을 만들어 가야 하는 곳입니다.”국민을 하나로 묶는 프레임과 시대정신이 절박하다며 시카고가 건축으로 미국의 역사를 이끌어가고 파리의 패션이 프랑스를 대변하듯이 대구를 이끌어갈 강한 자부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교수는 문예부흥만이 청년들을 붙잡을 수 있다며, 시민들이 문화예술이라는 하나의 패러다임을 갖고 도시이미지를 바꾸어 나감으로서 청년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온통 주거지로 고착된 도시는 청년들에게 일자리도 문화도 줄 수 없다. 휴대폰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눈에 들어오는 디자인이 아름답지 않으면 손이 가지 않는다며, 이 교수는 그 디테일한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문화예술이라고 한다. 도시의 이미지 변신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문화를 소비하게 만드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시민들이 자부심을 갖지 못하면 그 도시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날카로운 지적을 한다.“교수님이 행정부시장으로 계실 때 도시 전체를 아파트화 시킬 프레임이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것 아닙니까?”“파리 시민들이 불편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기에 파리가 유지될 수 있듯이, 저는 시민들이 불편을 즐겨야 도심이 살고 대구가 산다고 생각합니다. 도심에서 발생하는 불편에 대한 비용을 재정이 부담해야 합니다.”도시 건설에도 미적 규범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영국에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지은 세인트 판크라스역이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이 교수는 도시 중심이 활성화되어야 에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데, 온통 주거지가 되어 조용하고 움직이지 않는 곳으로 가라앉아서는 도시 발전은커녕 인적자원조차 키워낼 수 없다고 걱정한다. 이 도시에 르네상스의 문화가 부흥하길 바란다면 이렇게 주거를 위한 고층건물이 밀집되면 안된다고 성토를 한다. 도심은 일상의 위로와 안정을 위한 기능보다, 에너지 넘치는 열정과 사회적 진정성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활기차게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곳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이 교수는 도시를 관통하는 고속도로와 철로를 지하로 넣어야 토지 이용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고, 합리적이고 사회통합적인 도시발전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대구는 일제식민지를 거친 근대기의 어려운 시국에도 찬란하게 문화의 불씨를 일구었던 도시다. 그 문화의 중심에 화가 이중섭과 이인성, 이쾌대를 비롯한 화가들이 있었고 시인 이상화와 이장희, 소설가 현진건 외에도 이상정 장군과 서병오, 이일후 등, 대구 근대기에 예술의 꽃을 피웠던 분들이 대한민국의 문화와 정신이 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대구의 도시행정은 근대기에 그들 문인들의 사랑방이 되어주었던 도심 중앙의 의미 있는 공간까지 높디높은 아파트에 묻어버렸다. 누구를 위한 행정인지 모르겠다.“이 도시의 정신이 뭘까요?”“학문을 숭상하고 사물의 본질과 명분, 의리를 중시하는 선비정신입니다.”이 교수는 임진왜란 때 항일 의병 43%가 경상도 의병들이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정신의 대표적인 예로 국채보상운동을 언급하며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2천만 민중이 담배를 끊어 나라의 빚을 갚았고,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동력이 된 새마을운동과 한국정신문화의 초석이 된 2.28 민주화운동의 바탕이 바로 대구·경북의 선비들이 계승한 성리학이었다고 정의를 내린다. 성리학을 바탕으로 의를 실천하며 어려운 시대를 이겨낸 학문의 중심에 퇴계 이황(李滉)이 있었다고. 매암 이숙량과 계동 전경창이 퇴계의 학문과 덕행을 이어 건립한 연경서원이 대구 북구에 있었다. 명종 때에 생사당(生祠堂)을 창건하고, 후에 연경서원(硏經書院)으로 개편되었지만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사라졌다. ’고을 사람들이 능히 스스로 분발하여 강학하는 장소로 삼기 위해서 세운 것이고, 또 도의를 강마하고 풍속을 격려하기 위해서 둔 것이기도 하니 어찌 조금의 도움이 된다고 하겠는가?‘ 매암 이숙량 선생의 ’연경서원기‘의 한 부분이다.“정치일선에 계셨던 분으로서 청년들이 졸업과 동시에 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총체적 난국을 어떻게 보세요?”“저는 아직 정치를 제대로 시작도 못했지만, 도시는 인재를 끌어들이고 사람과 일자리를 연결하며, 혁신과 경제성장을 위한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개방성, 포용성, 다양성을 존중하는 도시문화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4차 산업혁명시대에 문화적 창조력이 풍부한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대구가 근대의 문화유산을 창출한 도시임을 증명하듯이 이 교수는 책을 한 권 내놓았다. ‘선비, 그 위대한 뿌리’라는 책이었다. 퇴계 이황의 얼이 서린 연경서원과 도산서원을 비롯해서 도동서원, 옥산서원 등,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한 근교의 모든 서원과 문화 고적을 한자리에 모은 여행답사의 기록물이었다. 대구시와 중앙정부에서 공무원 생활 틈틈이 대구정신을 되찾자는 대의명분과 실천정신으로 서원을 찾아다니고, 인사동을 비롯한 역사적 유적지를 많이 찾아다녔다고 한다.“행정부시장을 지낸 분으로서 대구의 두드러진 문제점을 꼬집는다면?”“대구가 부정적인 의미의 보수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게 안타깝습니다. 대구는 김굉필선생의 도학, 퇴계 이황 선생의 경(敬)사상, 남명 조식 선생의 의(義)사상을 통합한 경의협지(敬義夾持)가 면면히 이어진 학문화 사상의 용광로였습니다.”이 교수는 대구를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끌고 가면 미래를 보장하기 어렵다고 한다. 자칫 정치에 매몰될 위험이 있다며, 대구를 중심으로 부흥한 근대문학과 근대음악, 근대미술을 했던 인물들이 대한민국 문화의 정신으로 자리 잡은 것을 기억해야 한다며, 학문을 바탕으로 문화가 형성되어야 손에 잡히는 문화에서 손에 잡히지 않는 문화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존 마이어 말대로 문화가 살아야 도시도 살아난다고.“첨단의료산업 육성은 어떻게 되어 있나요?”“첨단의료복합단지 조성 계획은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되었고, 출범 당시엔 세계적인 의료연구개발의 중심지로 육성하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였어요.”국내용 신약·의료기기 개발과 세계적인 신약 및 의료기기 개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특별법까지 제정하며 야심차게 출범했지만 지금 첨단복지는 정체되어 있다. 로봇산업도 마찬가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알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시대, 창의·창조사회에서의 경쟁력은 문화예술의 토양이 얼마나 풍부한가에 달려 있다.대구의 근대문화예술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근대역사가 공백기로 남았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대구는 근대예술의 요람이었고 전국문화예술인들의 창작활동 본거지이자 토양이었다. 문화예술만이 대구를 살릴 수 있고, 창조계급인 예술인과 더불어 대구가 대한민국의 중심에 서는 날을 기대하며, 이 교수와의 대화로 모처럼 속이 확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글 장정옥 소설가(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

2021-03-23

“평소 좋은 마음으로 선량하게 살다보면 1등 당첨의 행운이 찾아오지 않을까요”

8145060분의 1.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될 확률이다. 사람이 하루에 벼락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맞을 확률과 비슷하단다. 가능성이 제로(0)에 가깝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매주 적지 않은 이들이 로또복권을 구입한다.복권 구매자들은 말한다. “5천 원짜리 한 장 혹은, 1만 원짜리 한 장으로 사서 지갑에 넣어둔 로또로 인해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잊고 한 주를 웃으며 견딜 수 있다”고.서울의 아파트 한 채 가격이 20~30억 원을 가볍게 뛰어넘는 한국. 부자들에겐 10~20억 원을 오가는 로또복권 당첨금이 크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민들에게 이 돈은 ‘상상 바깥에 존재하는 거금’이다.2021년 한국의 최저임금은 182만원. 로또당첨금은 최저임금을 받은 이들의 50~100년치 연봉에 해당되는 금액. ‘삶의 조건’을 바꿀 수 있는 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포항 육거리엔 ‘로또 명당’으로 불리는 복권 판매점이 있다. 여기서 로또 1등 당첨의 행운을 선물 받은 사람은 7명. 2등은 무려 35명이다. ‘1등 당첨 7명·2등 당첨 33명’이란 현수막을 만들어 건 이후에도 2등 당첨자가 2명 더 나왔다고 한다.이 로또 판매점을 운영하는 사람은 이두성(68)씨. 조부 때부터 3대째 같은 장소에서 장사를 해왔다. 그는 로또 1등 당첨자의 기쁨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다. 게다가 1등 당첨자가 선물한 소고기와 대게를 맛보기도 했다.로또복권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대체 어떤 사람들이 1등에 당첨되는 걸까?’ ‘로또 1등 당첨자들은 어떤 꿈을 꾸었을까?’라는 궁금증을 가졌을 터. 기자 역시 그걸 알고 싶었다.궁금증을 풀기 위해 지난 11일 육거리 로또 판매점에서 이두성 씨를 만났다. 그는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1등 당첨자들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자신이 가진 ‘복권 철학’까지 숨김없이 들려줬다.-육거리에서 가게를 한 건 언제부터인가.△고향이 포항이다. 내가 1953년생이다. 이 위치에서 할아버지 때부터 가게를 운영했다. 내가 이어받아서 한 것도 40년에 가깝다.-로또 판매점을 시작한 시기는.△로또복권 판매가 시작된 게 2002년 12월이다. 기획재정부 산하 복권위원회가 로또복권 사업을 시작한지 20년에 가깝다. 1회가 시작될 즈음 판매점 모집을 대행하던 회사가 찾아와 판매점을 해보라고 권했다. 우리 가게 위치가 좋아서였을 것이다. 이전에 스포츠토토복권 판매점 제의가 있었을 때는 구매자들이 어렵게 생각할 듯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로또는 게임 방법이 간단하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제의에 응했다. 로또복권이 처음 시작됐을 때 포항엔 판매점이 대략 50개쯤이었다.-같은 자리에서 오래 가게를 운영했는데.△조부에 이어 아버지가 담배와 잡화 등을 판매하는 육거리상회를 운영했다. 내가 포항제철에 근무하다가 30대에 가게를 이어받았으니 3대째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로또 판매점을 하기 전에는 앞서 말했듯 식료품, 과자, 술, 담배 등을 판매하는 슈퍼마켓이었다. 예전엔 근처에 큰 극장이 있었고, 거기서 예비군·민방위 교육, 공무원 관련 강연 등이 열려 오가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지금처럼 24시간 편의점이 많이 생기기 전엔 장사가 꽤 잘됐다.-첫 번째 로또복권 1등 당첨자가 나온 날은 어떤 기분이었나.△119회 때다. 그때 나는 산악회 사람들과 등산 중이라 우리 가게에서 1등이 나왔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다만, 아내가 ‘어젯밤에 금반지가 내 눈앞에서 반짝이는 꿈을 꾸었어요’라고 하는 이야길 들었다. 복권 판매점을 시작한지 대략 2년쯤 지나서 첫 번째 로또 1등 당첨자가 나온 것이다.-로또복권 추첨 초기에는 판매점에도 장려금을 줬다던데.△초창기 때는 그랬다. 내가 기억하기로 1등 당첨자가 나온 판매점에 장려금 5천만 원을 줬다. 그러다가 2천만 원으로 내려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려금 제도는 사라졌다. 나는 장려금은 받은 적이 없다.-이 가게에서 로또 당첨자가 많이 나왔다. 주위에선 어떤 반응인가.△1·2등 당첨자가 포항에서는 가장 많이 나온 것으로 안다. 대구·경북 전체로 봐도 15번 정도 1등이 나온 대구의 한 판매점과 10여 차례 가까이 1등 당첨자를 낸 경주의 한 판매점 등과 더불어 우리 가게가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든다.몇 해 전 역학(易學)을 공부하는 분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포항 육거리가 동빈대교와 서산터널의 가운데 위치해 좋은 기운이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지역이라고 했다. 거기에 바로 건너편에 오래전부터 금융기관이 자리해 있다. 그게 로또 1등 당첨자가 나온 비결이라면 비결 아닐까싶다.(웃음) 선대(先代)로부터 좋은 땅의 가게를 물려받았으니 앞으로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장사를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이다.-가장 기억에 남는 1등 당첨자는 누구인지.△428회 추첨 때 나온 우리 가게 4번째 1등 당첨자다. 자동 선택으로 1등이 됐는데, 인터넷으로 당첨 결과를 확인해 본 후 한 번 더 재차 확인하기 위해 가게를 찾아왔다. 그때 ‘이 가게에서 큰 행운을 얻었으니 선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분이 당첨되고 1주일 후쯤 큼직한 택배 상자가 하나 도착했다. 거기엔 죽도시장에서 구입한 한우와 대게가 160만원어치나 들어있었다. 반갑고 고마웠다.나와 아내만 먹기가 그래서 동네 주민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 그 당첨자는 현재 60대인데 지금도 인연이 이어져 우리 가게에서 가끔 로또복권을 구입하곤 한다. 최근 939회 추첨의 1등 당첨자는 포항의 한 회사 직원인데, 찾아와서 인사를 전했다. 이게 쉽지 않은 일인데,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에 고마움을 전하는 그들의 마음 씀씀이에 나 역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로또 1등 당첨자들은 좋은 꿈을 꾼다고 들었다.△428회 1등 당첨자에게 아내가 ‘꿈이 좋았나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어두운 바다에 빠졌는데 거북이가 나타나 등에 태우고 물속에서 빠져나오는 꿈을 꾸었다’는 대답을 들려줬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꿈보다는 평소 좋은 마음을 가지고 선량하게 살아왔으니 행운이 찾아온 게 아닐까?(웃음)-주로 어떤 사람들이 로또복권을 구입하는지.△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세상살이가 힘들어지고, 경제 상황이 좋지 않으면 복권 판매량이 늘어난다. 우울한 상황이 지속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복권에 희망을 거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하지만 복권 구입에 모든 걸 걸면 곤란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1~2만원어치 구입하고, 지갑에 들어있는 복권 한 장으로 일주일을 웃으며 사는 게 좋을 듯하다. 결국 복권당첨금이란 불로소득 아닌가.-‘포항의 로또 명당’으로 소문이 나면서 판매량도 많을 것 같다.△다른 가게에 비해선 잘 팔린다. 웬만한 월급쟁이 수입보다는 우리 가게 복권 판매수익이 많을 듯하다.(웃음)-만약 당신이 로또 1등에 당첨된다면.△재밌는 질문이다. 지금도 몇 가지 사회활동을 하며 적게나마 기부를 하고 있다. 복권에 당첨된다면 기부도 좀 많이 하고, 지역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해보고 싶다. 우리 가게에서 행운을 선물 받아 로또 1등에 당첨되는 분들을 보면 질투가 난다거나, 부럽다는 생각보단 ‘참으로 잘됐다’는 마음이 먼저 생긴다. 앞으로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생각이다.-복권 구매자들에게 한마디.△복권 판매금으로 진행되는 각종 복지사업은 유익하고 좋은 것이지만, 지나치게 복권에만 몰두하면 사행심을 부추기는 역효과가 생긴다. 자신의 형편에 맞게끔 적당한 금액의 복권을 사고, 편안한 마음으로 행운을 기다려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3-17

따뜻한 봄바람 불어오면… 성주 대자연 속으로 떠나볼까

자연, 생태, 힐링 여행지인 성주군이 코로나19로 지친 마음을 따뜻한 봄바람과 함께 호젓하고 안전하게 자연이 주는 풍경에 위로받을 수 있는 언택트 관광지 ‘성주 안심여행 12선’을 선보인다.‘성주 안심여행 12선’은 타인과 접촉이 최소화되는 비(非)밀집 장소, 거리두기와 자체 방역이 우수한 장소, 숨겨진 안심여행지로 매력이 있는 곳이다.안심여행 12선은 △성밖숲 △가야산 만물상 △가야산 정견모주길 △가야산야생화식물 △성주호둘레길과 무흘구곡 △세종대왕자태실 △한개마을 △회연서원 △포천계곡과 만귀정 △독용산성 △성주역사테마공원 △성산동고분군 등이다.천혜의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가야산을 병풍으로 둘러 싼 12선은 신이 내려준 자연의 선물이 넘쳐나는 관광지로 불린다.이병환 성주군수는 희망찬 봄이 오는 일상에서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비대면으로 힐링할 수 있는 안심여행 12선이 있는 성주의 대자연속으로 떠나보기를 추천하고 있다.‘성주 안심여행 12선’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성주군 홈페이지와 SNS에서 확인할 수 있다.△ 500년 왕버들이 속삭이는 성주 성밖숲2017년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 4년간(2018~2021) 대한민국 생태테마관광지로 선정된 성밖숲(천연기념물 제403호)은 세계 유명공원 부럽지 않다.500년 긴 인고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신비롭고 기이한 형상의 52그루의 왕버들이 모여 산다.성밖숲은 매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위용을 뽐내지만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여름이다.매년 7, 8월이면 성밖숲을 시원한 보랏빛으로 물들이는 맥문동은 짙푸른 왕버들과 보색(補色)의 이미지를 연출해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찾아온 사진작가들과 관광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천혜의 힐링쉼터 가야산 만물상조선8경이자 한국12대 명산인 국립공원 가야산은 변화무쌍한 산세에 검붉은 기암절벽이 하늘을 찌르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한다.가야산 만물상은 가야산 여신 정견모주의 전설과 바위들이 만가지 형상을 이뤄 만물상이라 불리는 곳으로 2010년까지 약 40년간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돼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원시 그대로의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어 금강산의 만물상에 견줘도 뒤처지지 않는 아름다운 가야산의 천혜 자원이다.최근 코로나19로 가야산을 찾는 관광객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전체 면적의 약 60%가 성주군에 속해 있고 가야산 최고봉인 칠불봉(1천433m)은 성주군에 위치에 있다.△ 생명이 넘치는 가야산 정견모주길국립공원 가야산속에 숨어있는 진주, 가야산역사신화공원의 정견모주길을 찾아보자.봄에는 연분홍빛 진달래가 흐드러지고 그늘이 계속되는 숲길과 시원한 계곡물소리, 그곳에 가면 생명의 기운이 넘실댄다. 숲속 곳곳에 위치한 정자와 포토존에서 인생사진을 남기며 야생화식물원을 향하면 짚라인 등 아이들 숲속 놀이터가 발목을 잡는다.△ 야생화 천국 가야산야생화식물원아름다운 성주 가야산에서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볼거리가 있다.해발 550m에 위치한 가야산야생활식물원은 실내 전시관, 야외전시관, 온실, 전시 및 판매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다양한 볼거리가 마련돼 있다.난대성 기후에서 자생하는 문주란, 생달나무, 새우난초는 물론 사계절 향기를 뿜어내는 별별 야생화들을 보고 즐길 수 있다.작년에 조성된 ‘장애가 없는 길’을 뜻하는 무장애나눔길은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등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완만한 경사(8%), 계단과 턱을 제거해 휠체어와 유모차도 쉽게 이용가능하다.△ 성주호 둘레길과 무흘구곡성주의 명소 무흘구곡과 성주호 둘레길의 드라이브코스는 하나의 길 안에 있다.이곳의 여정은 영모재 근처에 있는 수상레저테마파크인 아라월드와 금수문화공원야영장에서 시작하고 있다.아라월드 입구에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성주호 둘레길은 호반을 끼고 이어지는 숲길이다.길은 숲으로 호수로 꾸불꾸불 이어져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걷는 게 힘들다면 승용차를 이용할 수도 있다. 59번 국도를 따라 북진하다가 30번 국도와 만나는 교차점에서 서남쪽으로 우회전을 하면 성주호를 끼고 돌게 되는데 이 길은 매년 봄 벚꽃 터널로 덮여 하늘이 보이지 않는 길로 드라이브스루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성주댐을 지나 김천시 증산면 청암사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의 입구를 지나면 한강(寒岡) 정구 선생이 남송시대 주자가 지은 무이구곡을 차용해 이름 붙인 무흘구곡을 만날 수 있다.그중 드라이브 코스에 있는 3곡 배바위와 4곡 선바위는 찻길에서 볼 수도 있고 차에서 내려 살펴볼 수도 있다.정자가 그림처럼 올라 있는 배바위는 선비들이 시도 짓고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기암괴석에 계류가 어우러져 여름에는 야영객과 피서객들로 붐빈다.△ 태교 필수여행지 세종대왕자태실생명문화공원 주차장에서 태실문화관으로 들어가면 중요하지만 잊혀졌던 역사이야기가 실감나게 펼쳐지며 배아 모양으로 조성된 조선왕조의 태실 모형도 구경할 수 있다.태실 수호사찰인 선석사에 올라 태봉을 바라본 후에 태실로 향하면 생명과 ‘나’의 소중함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태실에는 세종대왕의 18왕자와 원손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왕자태실이 온전하게 군집을 이룬 형태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옛이야기가 흐르는 성주 한개민속마을국가민속문화재 제255호로 600여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성산이씨 집성촌으로 하회마을, 양동마을과 더불어 우리나라 7대 민속마을중 하나다.도 지정문화재 9채와 6채의 재실을 포함한 총 75채의 초가집, 기와집 등이 돌담길 등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응와종택, 한주종택 등 다양한 스토리가 있는 고택들과 한개마을 둘레길인 비채길은 비움과 채움이라는 테마로 영취산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아래 총 6.3㎞로 기쁨채우길, 과거길 등이 조성돼 개방을 앞두고 있다.또 민속마을만의 옛스러움과 고즈넉함을 체험하기 위해 한옥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상설체험장으로 짚공예, 한복체험, 약과만들기 등이 있으며 전통반상, 전통주 재현, 두부 만들기 등 전통체험이 운영되고 있다.△ 회연서원, 봉비암 그리고 한강대회연서원은 조선 선조 때 유학자인 한강 정구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유학 교육을 위해 제자들이 세운 서원이다.이른 봄이면 회연서원은 새하얀 눈꽃으로 가득하다. 서원 뒤쪽 산책로를 올라가면 대가천의 맑은 물과 기암괴석과 수목이 절경을 이루는 무흘구곡 제1곡인 봉비암이 자리 잡고 있다. 봉비암에 오르면 대가천의 물소리와 숲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가만히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며 옛 선현들의 풍류를 느낄 수 있다.△ 근심 씻어내는 포천계곡과 만귀정포천계곡은 가야산국립공원을 타고 내려오는 줄기로 전장은 약 7㎞에 달한다.포천계곡은 바위에 청색 무늬가 있어 마치 베(布)를 널어놓은 것 같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조선 후기의 문신 이원조(1792~1871)가 만년을 보낸 만귀정(晩歸亭)이 숨은 관광지로 많은 이들을 사랑을 받고 있으며 만귀정 옆에는 만귀폭포의 세찬 기운의 폭포수가 여행객들에게 근심을 씻어내 주고 있다.△ 영남에서 가장 큰 산성 ‘독용산성’독용산은 소백산맥의 주봉인 수도산의 줄기로 해발 955m의 정상부에 독용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가야시대 토성으로 둘레가 7.7㎞로 영남지방 산성 중 가장 크다.독용산은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는 곳으로 산세가 아름답고 완만하며 자동차나 자전거로 산 중턱까지 임도로 이동할 수 있어 개인부터 가족단위까지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산행장소다.새벽녘 독용산성자연휴양림에서 산책하듯 걸어 오르면 웅장하게 복원된 아치형 동문에서 일출을 바라보며 낭만적인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성주역사테마공원·도심 공원형 복합문화공간지난해 10월 말 준공한 성주역사테마공원은 조선시대 영남의 큰 고을로 위상을 떨쳤던 성주목의 옛 모습인 성주읍성 북문과 성곽, 조선전기 4대사고 중 하나인 성주사고와 조선시대 전통연못인 쌍도정이 자리잡고 있다.밤이면 은은한 조명이 성곽과 문루를 비춰 고즈넉한 야간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성주 성산동 고분군(전시관)성주군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사람의 일생인 태어남-삶-죽음의 상징성을 지닌 생·활·사(生活死) 문화유적을 가지고 있다.생명 탄생의 세종대왕자태실, 수많은 인재를 길러내고 조선시대 반촌의 원형을 간직해 온 삶의 공간인 한개마을, 그리고 가야의 혼을 간직하고 있는 성산동고분군은 죽음의 영역으로 생명의 존귀함을 널리 알리고 있다.임시 개관한 성산동 고분군 전시관은 성주지역 고대생활사와 고분, 출토유물전시, 다양한 역사체험놀이 등 성주의 고대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전병휴기자 kr5853@kbmaeil.com

2021-03-16

그 시절의 노래와 그 시절의 추억… 그곳에 그가 살아 있었다

그가 세상에 머문 시간은 겨우 32년. 안타까운 죽음으로부터도 이미 2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아파서 더 아름다웠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뜨거운 눈물처럼 선명하다. 몹시 드문 사례다.한국엔 통기타 연주와 서정적인 노랫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 이들에게 대구광역시는 가수 김광석(1964~1996)의 고향으로 기억된다.또한, 대구시 중구 방천시장에 조성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어디서도 받을 수 없는 선물 같은 공간으로 그들에게 다가온다. 지금 40~60대인 생활인들이라면 누구랄 것 없이 청춘의 어느 한때 귓가를 맴돌던 김광석의 노래 한 소절쯤은 기억할 터.지난해부터 지루하게 이어지는 ‘코로나19 사태’가 준 기억이 잊을 수 없는 환멸이라면, 김광석의 속삭임 같은 호소는 다른 형태의 잊을 수 없는 애틋한 기억이다.겨울이 지루했던 막을 내리고, 2021년 봄이 분홍빛 무대를 준비하는 3월. 많은 여행자들이 대구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찾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2주 연속 그곳에서 주말을 보낸 기자 역시 그랬다. 거긴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는 안 될 ‘청춘의 추억’을 반추하기 위해 찾는 공간이다. ‘김광석 길’의 한복판. 대구의 독특한 먹을거리인 납작만두를 안주로 소주 한 잔 마시기 위해 들른 노천식당. 30년 전 듣던 김광석의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머리가 아닌 가슴을 울리며 들려왔다. ‘기다려줘’였다.난 아직 그대를 이해하지 못 하기에그대 마음에 이르는 그 길을 찾고 있어그대의 슬픈 마음을 환히 비춰줄 수 있는변하지 않을 사랑이 되는 길을 찾고 있어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대 마음에 다다르는 길찾을 수 있을까 언제나 멀리 있는 그대….◆ 2014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 추서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수 김광석에 관해선 많게 혹은, 적게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하지만, 특정 공간을 여행하기 위해선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그게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동시에 일정 짜기에도 도움을 주니까. 세상 모든 건 ‘아는 만큼 보이는 법’. 김광석은 어떤 사람일까?‘위키백과’는 짧고 뜨거웠던 이 사내의 삶과 죽음을 아래와 같이 요약하고 있다.“한국의 싱어송라이터. ‘가객’ 또는, ‘노래하는 철학자’로도 불린다.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로 상경해 1982년에 명지대에 입학했고,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가요 공연을 시작했다. 1984년 김민기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데뷔했다. 이후 밴드 ‘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알렸다.1996년 1월 6일 죽었으나, 사망 원인과 관련된 논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2007년 그의 노래 ‘서른 즈음에’가 음악 평론가들이 선정한 ‘최고의 노랫말’이 됐다. 2008년 1월 12주기 추모 콘서트와 함께 대학로 학전 블루소극장에서 노래비 제막식이 열렸다. 2014년엔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이 추서됐다.”일반적으로 시집엔 50편 이상의 시가, 소설집엔 10편 안팎의 소설이 실린다. 그럼에도 거기서 독자들의 기억 속에 잊히지 않고 오랫동안 남는 건 1~2편 혹은, 3~4편에 불과하다.그런데, 김광석의 노래는 어떤가? 그의 팬들은 “모든 곡이 사람들 감수성의 창고에서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는 빛나는 보석”이라고 말한다. 이런 견해가 몇몇 사람들만의 터무니없는 과장일까? 그렇지 않은 듯하다. 다음에 언급되는 김광석의 노래를 보자.‘서른 즈음에’ ‘거리에서’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사랑이라는 이유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이등병의 편지’ ‘기다려 줘’ ‘사랑했지만’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나의 노래’ ‘먼지가 되어’ ‘그날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김광석 길’에서 더 뛰어난 예술가가 만들어지길...적지 않은 것들을 나열했음에도 대부분이 ‘현대의 고전’으로 불러도 좋을 통기타 명곡이 아닌가. 김광석은 164cm의 작은 키에 조그만 손, 해사한 10대 소년의 얼굴로 세상과 인간을 끌어안으려다가 일찍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은유로 이야기하자면 앙투안 생텍쥐페리(Antoine Marie Roger De Saint Exupery)가 쓴 ‘어린 왕자 같은 삶’이었다.대구시가 그가 가진 가치와 의미를 일찌감치 발견해 사람들과 더불어 요절한 가인(歌人)을 추모하고, 함께 기억할 수 있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조성한 건 탁월한 판단이었다고 생각된다.그렇다면 바로 이 ‘김광석 길’은 어떤 과정을 통해 조성된 것일까? 대구광역시 중구 홈페이지가 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방천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대구시 중구 달구벌대로 450길은 거리 조성 이전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어둡고 슬럼화 된 공간이었다. 이 길은 김광석이 대봉동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에 기초해 조성됐다. 명칭은 김광석이 1993년과 1995년에 각각 발표한 음반 ‘다시 부르기’에서 착안했다.‘그리기’는 김광석을 그리워하면서(Miss), 그린다(Draw)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았다. 2010년 11월 90m 구간이 처음 오픈됐고, 이후 계속해서 영역을 늘려갔다. 2014년 가을엔 전면적으로 재단장을 했다. 대중음악인의 이름을 딴 거리는 전국에서 최초다. 대구시는 이 길이 창작을 통해 태어난 거리인 만큼 여기서 김광석보다 더 뛰어난 예술가가 만들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다양한 먹을거리와 함께 이색적인 카페도 적지 않아‘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슬픈 목소리를 가졌던 맑은 얼굴의 가객(歌客)을 기억하는 중년만이 아니라, 청년들도 즐겨 찾는 공간으로 이미 자리를 잡았다. 거기엔 먹을거리와 즐길거리가 적지 않다는 것이 한몫했다.김광석의 이름이 붙은 거리 골목마다엔 대구를 대표하는 음식인 곱창전골과 막창구이, 납작만두와 매운 갈비찜을 만들어내는 식당이 줄을 지어 서있다. 각자의 취향과 입맛에 따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곳이 ‘김광석 길’이다.어묵과 부침개를 파는 분식집에서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온다는 것도 팬들에겐 빼놓을 수없는 매력.최근엔 어떤 카페가 방문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는지 묻기 위해 20대 커플 두 쌍을 만났다.‘코로나19 시대’임을 잘 알고 있기에 화사한 색깔의 마스크로 코와 입을 꼼꼼하게 가린 그들이 지목한 곳은 수제 맥주와 화덕 피자가 맛있다는 ‘대도양조장’.확인을 위해 그곳에 들러 맥주와 피자를 주문했다. 적절한 가격에 다양한 향을 지닌 맥주를 맛볼 수 있었고, 치즈와 베이컨, 채소 등으로 깔끔하게 토핑 된 피자도 나쁘지 않았다. 역시 젊은이들의 감각은 어디서건 쿨하고 정확했다.돌아올 무렵. ‘김광석 길’ 카페 차양막으로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덤덤한 사람들의 가슴도 흔들리게 만드는 고운 봄비였다. 그 낭만적인 거리를 배경으로 김광석의 노래가 다시 흘러나왔다. ‘그날들’이었다.그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그대를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그대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그날들그대는 기억조차 못하겠지만이렇듯 소식조차 알 수 없지만그대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눈물이 흐르곤 했었던 그날들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부질없는 아픔과 이별할 수 있도록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대를….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기어코 봄이 왔다. 독자들 모두의 뜨거운 심장에 ‘영원히 잊히지 않을’ 이름 하나씩이 새겨지기를 기대한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3-16

초자아를 만나는 시간

빛명상의 ‘그림찻방’에서 정광호 회장을 만났다. 정 회장은 명상을 말하기 전에 그림을 한 장 펼쳐놓았다. 눈 내리는 겨울밤에 아이들이 사랑채에 모여앉아 할머니의 얘기를 듣는 그림이었다. 쌀가루 같은 눈이 푸짐하게 쌓인 길목에 찹쌀떡 장수가 어깨에 목도를 메고 간다. 춥고 배고프던 시절, 기나긴 겨울밤에 ‘찹싸알~ 떠억~’ 하는 외침이 골목에 울려 퍼진다. 정 회장은 소싯적의 추억으로 아름다운 나눔을 떠올린다. 감나무집 광호가 찹쌀떡 장수를 부른다. 그 소리에 동네 아이들이 잠옷 바람으로 뛰어와 찹쌀떡으로 반짝 잔치를 벌인다. 나눔은 가진 게 많은 이가 베푸는 선의라기보다 봄날의 따사로운 햇살처럼 마음이 넉넉하고 풍요로운 사람이 풀어놓을 수 있는 정성어린 소박함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 만물의 모든 물질이 흙, 공기, 불,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인간의 몸을 이루는 70%의 원소가 물이고, 숨결마다 들이마시는 것이 공기이고,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두 발로 딛고 서 있는 것이 흙이니 사람을 이루는 4대 원소가 곧 우주 만물을 이루는 물질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면 불은? 불은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정 회장이 풀어주신다.“빛명상이라고 하셨는데, 그 빛의 근원이 무엇입니까?”“초월적인 우주의 힘이죠. 일반적인 태양의 빛이나 초능력과는 다른 우주의 힘이라고 해야 할 초광력(超光力) 에너지입니다.”정 회장은 어릴 때부터 20년 동안 복사생활을 한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그런 그가 빛의 능력으로, 죽어가던 성소국장 신부님과 위암말기로 위독한 상태에 있던 수녀님을 일으켰다. 그것도 범인(凡人)은 눈으로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초광력 에너지의 힘으로. 믿기 어려운 얘기지만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신 일이라는 사실에 귀가 솔깃했다.“그 얘기 좀 해주세요.”“추기경님이 비행기를 예약해두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무슨 일인가 하고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갔어요.”빛으로 기적을 행한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김수환 추기경님이 정 회장을 부른 이유를 말했다. 의학적으로 한계가 온 사람이 있다며 추기경님 앞에서 직접 기적을 행해보라고 하셨다. 방으로 들어가니 시체에 가까운 사람이 누워 있었다. 안되면 그냥 가도 괜찮다고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기도를 한다거나 이상한 의식을 행하는 일련의 과정도 없이 정 회장은 환자에게 다가가서 ‘일어나라!’ 하고 어깨를 탁 쳤다. 그리곤 다 끝났다며 일어서서 집으로 왔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김수환 추기경님의 전화를 받았다. 부랴부랴 올라갔더니 죽었던 사람이 깨어나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서 어둠의 터널을 걷던 중에 누군가 어깨를 탁 치며 일어나라는 말이 들려서 깨어났다고. 그러자 눈앞이 환해지며 깨어나게 되더라고. 정 회장은 그 기적을 책에 올려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그런 기적이 실제로 가능한가요?”“사람은 누구나 빛을 타고 납니다. 빛의 마음으로 세상에 오는 가장 순수한 상태, 그게 바로 빛마음입니다.”정 회장은 다만 인간의 심부에 깃들어 있는 빛마음을 빛의 도움으로 일깨워주는 거라고 했다. 빛마음과 빛의 길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삶을 살아가는 동안 세속적인 욕심과 탐욕에 가려진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의 빛을 찾아내고, 거기에 또 다른 빛을 더함으로서 인간 본연의 순수함을 찾아가게 도와주는 것이 명상이라고 했다. 정 회장이 행한 기적은 ‘빛’의 힘이고 우주의 신비인 초광력의 힘이라고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빛은 공기처럼 세상 곳곳에 스며들어 만물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성소국장 신부님을 일으킨 기적을 ‘그분으로부터 오는 특별한 성총’이라고 하셨다. 고통 받는 사람들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위해 아낌없이 쓰고 오라는 그분의 당부라고 확신하시며. 김수환 추기경님이 정 회장에게 오래 간직하고 계시던 로사리오(묵주)를 주신 건 그런 의미이리라. 그 묵주에 추기경님의 문장이 새겨져 있고, 마더테레사 수녀님에게 받은 타원형의 푸른 성모패가 달려 있었다. 추기경님이 정 회장에게 그 소중한 성물을 주신 건 좋은 일을 더 많이 하며 나눔을 실천하라는 부탁일 것이다. 신이 어떤 이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신 건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두루 도우라는 진언이다. 재물 역시 마찬가지다. 하느님이 세상 곳곳을 일일이 살필 수 없어서 당신을 닮은 사람에게 능력을 주어서 세상을 도우라 하신 거라 여겨진다.“빛을 언제 어떻게 만나셨어요?”“1986년도에 호텔 지배인으로 승진하고 직원들과 화왕산에 갔어요.”등산을 하려던 중에 정 회장은 활활 타오르는 산불을 보았다. 분명히 산불이 났는데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 불이 보이지 않았다. 긴가민가하며 산을 오르던 중에 다시 불이 보였다. 생각다 못해서 정 회장은 일행과 헤어져 다른 방향으로 산을 오르다 마침내 빛을 만났다. 그것은 일반적인 불이 아니라 태양이 바위 위에서 빙글빙글 돌며 끓는 것 같은 커다란 빛의 덩어리였다. 온 산에 향기가 감돌며 빛이 반짝거렸다. 그는 바위 위의 빛 속에 올라앉았다. 한 시간쯤 앉아 있었던 것 같았는데 불과 오 분도 걸리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빛을 만나고 난 후, 신기하게도 과거와 현재, 미래가 슬라이드처럼 한순간에 스쳐 지나가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게 시작이었다. 정 회장이 빛을 행하기 시작한 것이.“빛만남이 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까요?”“빛명상은 종교나 과학과 별 연관성이 없고 교리도 없습니다. 내게 있어서 빛은 생명의 근원이고 창조의 원천일 뿐입니다.”실은 자신도 그 빛이 초월적인 우주의 힘을 뜻하는 ‘초광력’이라는 것밖에 더 아는 것이 없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 초광력은 인간의 유한한 인식 밖에 존재하는 무한의 힘이고, 자신은 그저 빛의 힘을 전달하는 안테나에 불과하다고. 그러면서 정 회장은 도로의 신호등을 예로 든다. 신호등이 기존의 질서에서 이탈하면 도로가 엉켜서 혼돈이 일어난다며 빛의 섭리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우주의 순환에는 그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다. 선과 악, 사랑과 자비를 넘어선 순수 그 자체의 무한한 힘이 생명 근원의 빛이라 했다. 우주의 무한함이 바로 창조의 힘이고, 인간의 내면에 내재된 그 힘을 끌어내는 빛이자 초광력이라고.“선생님은 빛명상의 궁극적인 목적을 어디에 두십니까?”“인간의 본질 속에 내재된 순수함을 회복하고,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는데 목적을 둡니다.”땅 속에 묻혀 있는 다이아몬드를 캐듯이 영혼과 육체의 불순함을 걷어내고 태초의 순수함을 회복하며 초자아적인 우주의 섭리를 찾아가는 행위라고 할까. 빛명상으로 건강을 잃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도와주며, 우연히 받게 된 빛의 은혜를 통해 나눔을 실행한다는 그 겸허한 실천이 아름답다.정 회장은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이 제안한 부귀영화의 유혹을 거절했다. 그저 사람들이 자신을 통해서 빛이라는 초자연적인 우주의 섭리를 만나고 심신의 건강을 되찾는 것이 기쁘다고 한다. 살아가며 욕심과 탐욕, 이기심의 때가 낀 내면을 빛명상으로 갈고 닦아서 마음의 원형을 되찾게 하는 것이 바로 빛명상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한다. 초자아적인 우주의 섭리를 깨달아가는 명상의 과정은 부모에 대한 감사를 시작으로 자연을 비롯한 모든 것에 대한 감사함을 찾아가는 길이며, 인간이 뿌리를 찾는 일이라고 했다. 참새도 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하늘을 올려보며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명상으로 불안의 뿌리를 완전히 걷어낼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지 못했다. 일이 술술 풀릴 때도 인간은 알게 모르게 불안의 추격을 받지 않는가. 그것은 어둠처럼 음의 기운으로 인간 속에 스며들어 자신감을 잃게 하고 곧잘 후들거리게 만든다. 명상으로 초자아를 만나서 자신을 돌아본다면 불안의 원인을 알 수 있고, 잃었던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 출간한 명상 에세이 ‘빛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책에 씌어 있는 대로 인터넷 빛명상을 열어놓고 빛명상의 자세를 갖추고 나도 모르는 초자아를 찾아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자기 속의 또 다른 자기를 찾아서 대화를 나눈다면? 하늘을 향하도록 손바닥을 펼치고 양쪽 무릎 위로 손을 살짝 들어 올린다. 코끝을 바라보듯 두 눈을 천천히 감는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명상을 시작한다.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와 자신을 세상에 있게 해주신 부모님과 선조들에 대한 감사를 시작으로 숨을 깊숙이 들이마시면 ‘경천애인(敬天愛人)’의 길이 보인다. /글 장정옥 소설가(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

2021-03-16

“가슴 설레는 인생 꿈꾸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 있나요”

삶의 무대를 옮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편안한 공간, 익숙한 사람들에게 끌리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하지만 모든 인간이 똑같을 수는 없는 법. 어떤 사람은 정주(定住)가 아닌 떠돎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기도 한다.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모범적인 영어강사로 살아온 이미하(57)씨는 늘상 보는 풍경과 매일 만나는 사람들 곁을 떠나 캄보디아라는 낯선 나라에서 새롭고 설레는 삶을 살아가는 꿈을 꾸고 있다.대부분의 동년배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안주하려는 나이에 20대 청춘처럼 불확실한 미래로 겁 없이 뛰어들고자 하는 이미하 씨에게 그간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해 출간된 이미하의 책 ‘오십, 질문을 시작하다’엔 이런 문장이 담겼다.“누군가 내게 캄보디아에서 답을 찾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을지 모른다. 내 삶은 캄보디아로 떠나기 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주어진 여러 역할을 감당하며 바쁘게 살아간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으로 뛰어들며 오히려 더 질문이 많아졌다. 하지만 나이 오십 언저리에서 불안하게 두리번거리던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여유 있는 마음으로 변했다. 캄보디아에서 보낸 시간이 내 속에 영원히 시들지 않는 ‘시간의 꽃’을 남겨주었다.”이 고백만으로는 앞서 언급한 궁금증 모두가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만남을 청했다. 봄이 성큼 다가온 3월 초순 어느 날 이미하 씨를 만났다.캄보디아와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매료된 이유, 향후 캄보디아 이주 계획까지를 세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아래는 “죽는 날까지 가슴 설레는 삶을 살고 싶다”는 그녀의 이야기다.-포항이 고향인가.△그렇다. 1965년 포항에서 태어났고 쭉 자랐다. 대학(경북대 영문과) 다닐 때만 대구로 잠시 떠나 있었다. 현재는 동생과 함께 영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를 마친 후 25년 이상 영어강사로 일했다. 회사도 다녀보고, 사회단체에서도 잠시 일했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적성에 가장 잘 맞았다.-어린 시절엔 어떤 아이였는지 궁금하다.△약간 조숙하고 우울한 학생이었다. 어릴 때 집안 형편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초등학교를 네 군데나 옮겨 다녔다. 친구를 사귀기 힘들었다. 책이 유일한 친구가 돼줬다. 초등학교 땐 안데르센 동화와 만났고, 중·고교생 때는 전혜린의 수필도 읽고, 루이제 린저(Luise Rinser)의 소설도 읽었다.-영문학을 전공으로 택한 이유가 있는지.△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을 좋아했다. 우리 학교 여학생들의 우상이던 총각 선생님이었다. 그분 덕택에 누구보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웃음) 그때 예습을 하는 습관이 생겼는데, 이후 영어 실력을 탄탄하게 쌓을 수 있는 바탕이 됐다. 영어와 문학을 좋아했으니 영문학과 진학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대학 때는 동아리 활동도, 학생운동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친구 한두 명과 조용히 다니며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었다.-책읽기와 글쓰기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젊은 시절엔 지식을 얻거나, 호기심을 충족시키거나, 삶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책을 읽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이제 책이 친구처럼 느껴진다.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친구 말이다. 그래서 독서를 통해 위로를 얻는다. 책과 마음 속 깊이 숨겨둔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감정이 든다.글쓰기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괴발개발 쓴 글을 신문사에 보내기도 했고, 결혼한 후에도 한겨레신문 등에 독자 투고를 했다. 최근에 낸 ‘오십, 질문을 시작하다’는 나의 첫 책이다.-이제 캄보디아 이야기를 해보자. 2009년 처음으로 방문한 것인지.△휴가로 떠난 다른 해외여행과는 출발부터가 달랐다. 첫아이를 낳은 이후 내게는 세 가지 목표가 생겼다. 신(神)을 떠나지 않겠다, 내 재능인 영어 교육을 통해 세상에 도움을 주고 싶다, 나와 가족만을 위하는 것이 아닌 타인과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게 그것이었다. 그걸 실천하려고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화 통역봉사도 했다.2009년 교회 청년부 교사로 활동했는데, 캄보디아로 떠난 선교여행에서 가슴 뜨거운 경험을 했다. 동남아시아 현대사가 강제한 고통과 빈곤함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야생의 생명력을 거기서 봤다. 그들의 가난이 마냥 불행한 것만은 아니란 걸 느꼈고, 순박한 눈망울을 가진 캄보디아 아이들에게 영어 공부와 독서를 통해 삶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졌다.-가장 기억에 남는 캄보디아의 도시는 어딘가.△첫 방문 이후 열 번 이상 찾아갔다. 지인들과 함께도 가고 혼자서도 갔다. 한 해에 두 번 간 적도 있다. 마지막으로 찾아갔던 게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지난해 2월이다. 캄보디아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책도 찾아서 읽었다. 2016년엔 5주를 머물며 영어를 가르쳤다. 캄보디아 수도인 프놈펜(Phnom Penh)의 골목길을 걸으며 현지인들과 미소 가득한 인사를 하던 게 기억에 선명하다. 그때 생각했다. ‘이 사람들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살고 싶다’고.-캄보디아와 캄보디아 사람들의 매력은.△20대 때 장 자크 아노(Jean Jacques Annaud)가 연출한 영화 ‘연인’을 봤다. 마지막 장면의 누런 강물이 인상적이었는데, 바로 그 메콩강을 캄보디아 낡은 목선 위에서 다시 만났다. 원시적 풍광이 너무나 매력적인 나라다. 하늘로 뻗은 열대의 나무들과 그 아래 조그만 집들,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 이 모든 게 낯설지 않고 정겨웠다. 음식도 입에 맞았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같은 동양인으로서 유대감이 있다. 게다가 친절하고 순정하다. 낯을 가리는 내가 먼저 손을 내밀 용기가 생겼다.-캄보디아에서의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는.△‘영어 교육’을 봉사활동의 무기로 캄보디아에 간 게 쉰한 살 때다. 고등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처음엔 세 명의 개구쟁이들이 날 힘들게 했다. 수업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화를 내거나 혼내지 않고 조용히 불러 야자나무 아래서 ‘외국에서 온 선생님은 아직 캄보디아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잘 모른단다. 너희들이 도와줄 수 없겠니?’라고 물었다. 내 말에 담긴 진실이 통했는지 그 아이들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 그곳 아이들에겐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앞으로 캄보디아와의 인연을 어떻게 이어갈 생각인가.△예순이 되는 3년 후엔 캄보디아로 이주해 살고 싶다. 그러려면 경제적 기반이 마련돼야 하기에 현지의 지인과 닭 농장 만드는 걸 진지하게 논의 중이다. 그때쯤이면 두 아들은 내 도움이 필요 없을 나이가 될 테고,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엄마의 꿈을 꺾지 않으리라 믿는다.(웃음) 남편에게도 함께 가자는 이야기를 이미 했다. 경제적 문제는 닭 농장 운영을 통해 해결하고, 내가 가진 영어 교육과 독서 교육이란 재능을 아낌없이 나눔으로써 캄보디아 아이들에게 작은 희망을 선물하고 싶다.-당신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삶은.△잘 살고 싶다. 이건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죽는 날까지 가슴이 뛰는, 아침에 일어나면 무덤덤하지 않고 새로운 일에 가슴 설레는 인생을 살고 싶다. 캄보디아로 가고 싶은 이유도 가슴 뛰고 설레는 삶을 위해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보단 나쁜 일이라도 일어나는 게 신나는 것 아닐까? 모험심은 청년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믿는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3-10

찬란한 대가야 역사 속에서… 夜한밤 힐링

‘관광과 여행의 계절’로 불리는 봄이 눈앞에서 손짓하는 3월도 어느덧 중순으로 접어들었다. 경북의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코로나19 시대의 대세로 자리 잡은 비대면·비접촉 여행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대가야의 찬란한 역사를 간직한 고령군도 이런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지산동 고분군, 대가야수목원을 포함한 여러 가지 역사·문화유산을 간직한 고령은 “청정 자연이 숨 쉬는 다양한 비대면 관광지를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어 간다”는 큰 그림을 그려놓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코로나19 걱정 없는 쾌적한 언택트 관광’을 지향하는 고령군의 올해 관광 정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확 바뀐 여행 트렌드에 발맞추는 고령군지난해에 이어 올 2021년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협’이라는 예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재난으로 관광과 여행 산업 전반에 대단히 큰 변화가 생겨났다.한국의 전 지역이 이런 상황을 감안해 봄 관광 코스를 설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고령군도 다르지 않다.대폭 변화된 환경과 방향이 바뀐 관광시장에 맞춘 체계적이고 신뢰성 높은 관광 트렌드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토대로 고령 지역 관광을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를 맞은 것이다.‘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될 때까지는 관광의 주요 트렌드가 언택트 방식으로 지속될 전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인구밀도가 낮고 안전이 확보된 청정한 비대면 관광지로 여행자들이 향할 것이란 분석. 또한 단체여행이 흔했던 이전과는 달리 가족 단위 또는, 소규모 개별 관광객이 대세를 이룰 것으로 예측된다.고령군을 포함한 한국의 지방도시는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유료관광지의 입장객 수는 다소 줄었으나 캠핑·차박·비대면 관광지·MTB 도로를 찾는 여행객들은 예상과 달리 오히려 증가했다.고령군 관계자는 “대구시에 인접한 고령군은 청정한 자연과 비대면으로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역사·문화 관광 명소들이 즐비하다”고 말한다.유네스코 세계유산 최종 등재 대상이며 ‘경북 겨울 비대면 관광지 23선’에 선정된 지산동 고분군을 필두로, 고령은행나무숲(2020년 가을 비대면 관광지 100선 선정), 대가야수목원, 어북실, 부례관광지, 개경포공원, 미숭산 자연휴양림 등은 ‘코로나19 시대’의 빼놓을 수 없는 힐링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온·오프라인에서 동시 진행될 ‘고령 대가야문화재 야행’올해 고령군의 관광 슬로건은 “코로나19로 인한 관광산업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위드(with) 코로나 시대 뉴 노멀(New Normal)’ 준비”로 요약될 수 있다.이를 위해 고령은 먼저 안전이 확보된 관광지의 수용 태세 개선을 기본으로 온라인·비대면 관광콘텐츠 개발과 야간 관광, 체류형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그 실례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 대상에 선정된 대가야의 대표 유산 지산동 고분군을 기반으로 ‘지역 특화 콘텐츠 개발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우수한 역사·문화 자원을 활용한 관광콘텐츠를 개발 중이다.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각광받을 것으로 전망되는 ‘고령 대가야문화재 야행’은 2020년 10월 처음 개최돼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이는 고령의 야간관광과 온라인을 통한 랜선여행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올해 고령 대가야문화재 야행은 ‘고분에 걸린 달빛소리 Ⅱ’라는 부제로 진행될 예정이다.이 행사는 문화재가 집적·밀집된 지역을 거점으로 해서 특색 있는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문화재 관람, 체험, 공연, 전시 등으로 꾸며져 관광객들을 매혹하게 된다. 또 여기에 더해 ‘야간 문화 실감 콘텐츠형 프로그램(8夜)’도 기획·운영할 계획이다.오프라인에서 진행되는 야간 여행을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라이브 생중계로 즐길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현장 참여를 하지 못하는 관광객들에게 대리체험의 즐거움을 선사한다.“고령 대가야문화재 야행을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진행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넘어 우리 지역을 야간관광 명소로 자리매김 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게 이와 관련한 고령군의 설명.◆ 5가지가 변화하는 고령 ‘대가야 체험축제’고령군이 지역의 대표 축제로 내세우는 ‘대가야 체험축제’는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는 올해 일회성 축제가 아닌 ‘일상의 축제’로 전환된다.이에 대해 고령군청은 “대가야 문화와 생태를 접목한 융복합 콘텐츠 구현으로 스토리 강화, 생산력 강화, 지역문화 재구성에 궁극적인 가치를 부여하겠다”는 약속을 내놓았다.2021년 대가야 체험축제는 크게 5가지가 달라진다. 이를 요약하면 △개최 시기는 봄에서 가을로 변경 △장소는 테마관광지 일원에서 생활촌·안림천 일대로 확장 △역사와 체험 중심에서 문화와 경관 중심으로 변화 △대규모·일회성 행사에서 분산화·일상화된 축제로 재편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축제로 추진이라 할 수 있다.특히 축제 개최 예정인 9월 말에서 10월 중순까지는 ‘고령 문화관광 주간’으로 운영될 예정이라는 게 관계자의 부연이다. “이를 통해 관광객을 유치해 지역경제 활성화도 함께 도모하겠다”는 것이 고령군의 복안.고령군청과 군민들은 축제, 야행 등의 대표 행사 외에도 비대면 여행지의 수용 태세 개선과 홍보 역시 더욱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이를 위해 사계절 청정 자연을 품은 고령군의 대표적 비대면 관광지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안전한 여행이 가능하도록 관광 공간을 깔끔하게 방역·정비하고 있다.실질적인 군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사계절 산책과 트레킹이 가능한 지산동 고분군을 거점으로 ‘대가야박물관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비대면 관람을 정착시키는 것도 그중 하나.여기에 대가야 역사테마관광지와 대가야 생활촌 투어, 안림천에서의 피크닉과 산책로 개선을 통해 ‘대가야 역사테마 비대면 코스’ 보완도 진행 중이다.“성큼 다가선 봄과 다가올 가을은 대가야 수목원과 회천변의 어북실을 연계한 벚꽃투어 코스를 만들고, 핑크뮬리와 코스모스 단지를 비대면 드라이브 투어 형식의 개별관광 코스로 운영할 예정”이라는 것도 고령군의 올해 세부 관광정책 중 하나다.◆ ‘밀레니얼 세대’와 ‘MZ 세대’ 위한 마케팅에도 주력더불어 고령군은 그간 주류를 이루던 단체여행과 단체관람을 지양하고, 개별 관광객 맞춤의 가족 단위 소규모 시설과 프로그램 활용에도 힘을 쏟고 있다.사실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여행은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무너지고, 관광객들의 안전이 확보된 소규모 개별여행이 주를 이루고 있다.그렇기에 주요 관광 전략의 우선순위 또한 ‘안전’과 ‘비대면·비접촉’을 기본으로 설계될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를 중심에 둔 관광 인프라 개선과 프로그램 개발이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언택트 여행지 홍보 방안은 ‘고령 힐링 여행’을 콘셉트로 지역의 안심관광지 홍보 이벤트를 적극적으로 펼쳐나가고, 크리에이터가 제작한 영상을 고령군 SNS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알리는 것.또한 생활관광으로 즐기는 신개념 ‘트렌디 북’을 제작해 드라이브 스루 여행지, 사회적 거리두기가 용이한 야외 활동, 가족 단위의 소규모 여행, 트레킹, 캠핑 등에서의 유용한 방법을 알리게 된다.이는 자신의 생활권역 내에서 일상과 연계된 관광을 즐기는 생활관광의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관광 전문가들의 전망이다.또한 고령군은 지역 고유의 역사자원인 지산동 44호 고분을 이용한 애니메이션·캐릭터 개발과 관광기념품 생산에도 매진하고 있다.“지역 대표 캐릭터의 문화·관광 상품화로 산업과의 연계, 경제 활성화와 지속가능한 가치를 창출해 나갈 예정”이라는 게 고령군의 향후 계획이다.이에 더해 고령군은 자유롭고 개성이 강한 밀레니얼 세대와 디지털에 능숙해 SNS를 생활의 중심으로 옮겨온 MZ세대를 위한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 온라인 마케팅’에도 주력하게 된다./전병휴 기자 kr5853@kbmaeil.com

2021-03-09

천년을 사는 사람

나무는 살아서 천 년을 살고 죽어서 또 천년을 산다. 살아서 그 푸르름으로 사람들에게 맑은 공기와 그늘을 주고 죽어서는 주택의 기둥과 마루, 장롱 혹은 반닫이가 되어 또 그렇게 도움을 준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 선한 숨결을 아낌없이 나누어주며 나무는 수호신처럼 인류와 생을 함께 한다.흔히 나무를 다루는 장인을 목수(木手)라고 한다. 14살부터 곤궁한 살림을 도우려 목수 일을 배운 사람이 소목장 중요무형문화재가 되어 60여 년을 나무와 함께 살았다. 엄태조 명인을 팔공산 자락에서 만났다. 당초문 통영반, 오동 의걸이장, 먹감약장, 반닫이, 권수정업왕생첩경, 대명다라니경 등, 이름도 생소한 전통목공예를 만들며 한 생애를 보낸 분을 만나면 가장 먼저 손을 보겠다고 생각했는데 얘기를 듣느라 잊었다. 명인은 나무를 만지고 사는 목수도 대목장(大木匠)과 소목장(小木匠)으로 구분된다며 말문을 열었다.“대목장과 소목장의 차이가 뭐예요?”“건물의 전체를 짓는 장인을 대목장이라 하고, 건축물의 치장이나 실내 디자인, 창호나 장롱, 궤함 등의 세간들과 가마, 수레처럼 생활도구를 만드는 장인을 소목장이라고 합니다.”요즈음에는 모든 기능이 기계화 되고 분업화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소목장이 잔일까지 다 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전통가구가 장인들에 의해 여전히 수작업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통이 요구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우리의 나무로, 온전히 우리나라 전통의 공법으로 수작업을 해야 것이기 때문이다. 무형문화재전수관 없는 곳이 전국에 세 곳인데 그 속에 대구가 포함되어 있다고 명인이 한탄을 하신다. 무형문화재 전수관을 만들어달라고 청와대에 청원서까지 넣었는데, 정부에서는 지원을 해주겠다고 응답했건만 정작 시에서는 예산이 없어서 못한다고 잡아떼더란다. 전국에 세 명뿐인 소목장 인간문화재가 대구에 있는데도 사정이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다.“언제 어떻게 이 일을 시작했는지 살아온 얘기 좀 해주세요.”“아버지가 맞춰준 지게를 지고 천수답을 오르내리며 농사를 짓다 집안사람을 따라 가서 목공소에 취직했어요.”일을 가르치던 목수가 그에게 빗자루를 주며 마당을 쓸라고 했다. 흙의 이음새가 없도록 반듯하게 쓸어야 한다는 말에 몇 달 동안 마당만 쓸었다. 왜 마당만 쓸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목수는 대패질을 비롯한 모든 일이 반듯해야 한다며 빗자루 자국을 지우고 마당을 한 폭의 천인 듯 쓸어보라고 했다. 그 목수는 어린 제자를 자식처럼 먹여주고 재워주며 목수의 마음가짐을 먼저 가르친 것 같다. 소년은 만 3년을 거기 머물다 다른 가구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돈을 조금 벌어서 귀향한 후, 대구의 골동품 가게로 옮겨 일을 배웠다. 골동품을 수리해서 수출하는 건 한계가 있을 것 같아서 같은 방식으로 새 물건을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국전 급에 해당하는 ‘전수공예’라는 대회에 작품을 출품하는 길이 있다는 걸 알고 다시 서울로 갔다. 전통기법을 제대로 익히면 인간문화재도 되고 무형문화재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큰 꿈과 희망을 주었다.소목장 인간문화재 55호 강대규 명인을 만난 것이 그 즈음이었다. 강대규 명인 밑에서 소목장의 전통기법을 전승 받으며 차근차근 일을 배웠다. 전수공예전에 작품을 출품하려니 디자인을 그려 오라고 했다. 디자인을 어떻게 그려야 할까 고민하며 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데, 나무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림자가 꼭 가구디자인 같다고 느낀 순간 ‘아! 바로 저거다.’ 하는 혜안이 열렸다. 눈 감고 소나무를 생각하며 그리니까 죄다 그려졌다. 그때부터 명인은 사진을 보며 디자인 그리는 연습을 했다.전수공예전 작품 출품을 앞두고 날마다 갓바위를 오르내렸다.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에 전념한 정성이 통했는지 마침내 ‘전수공예전’에서 입선했다. 대구의 첫 번째 소목장 전수 입상자가 되었다. 인간문화재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소목장 인간문화재가 되는 과정이 궁금해요.”“대구, 전주, 서울에 소목장 인간문화재가 한 명씩 있습니다. 세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죽어야 다시 인간문화재를 뽑는데, 3년 동안 피 마르는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어째서 인간문화재가 3명뿐이냐고 물으니, 예산이 없어서 인간문화재 관리가 어렵다며 겨우 전통의 맥만 잇는 정도로 유지한다고 한다. 말이 좋아서 전통이고 인간문화재이지 경제적으로 곤궁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한탄을 했다.“전통공예에 필요한 나무가 따로 있어요?”“소나무, 오동나무, 느릅나무, 느티나무, 괴목 등을 주로 많이 쓰는데, 원목이 지닌 나뭇결의 자연미를 살리는 게 특징입니다.”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서 나무의 문양이 아름답고, 특히 소나무는 기름성분이 많아서 따로 칠을 하지 않아도 자주 만지면 반들반들해진다고 한다. 예전 고가구를 보면 특히 소나무 오동나무가 많다. 소나무도 무늬결이 있고 곧은결이 있는데, 예전 선비들이 화려한 것보다 주로 곧은결을 선호했더란다. 소나무는 향기만 좋은 게 아니라 무늬가 비할 데 없이 아름답다. 느티나무도 무늬결이 아름답다. 명인은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나무로 우리나라의 소나무를 손꼽는다. 그러면서 나무가 저렇게 좋으니 흙은 또 얼마나 좋겠느냐며,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산 도처에 보약이 깔려 있다고 허허허 웃으신다.“나무는 오래 마르면 틀어지는데 고가구는 어떤가요?”“전통가구는 원목으로 못 하나 없이 짜 맞추기 때문에 대를 이어 쓸 수 있어요. 백 년이 지나도 풀어서 다듬으면 새것처럼 쓸 수 있어요.”외국 사람들은 우리의 전통가구를 예술품으로 본다며, 그것은 우리 가구가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같은 물건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무는 아무리 건조해도 계절 따라 늘어나고 줄어들기 마련인데 못 없이 짜 맞춘 전통가구는 스스로 늘어나고 줄어드는 속도에 몸을 맞추기 때문에 백 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고 한다.“전통목공예 외에 어떤 일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국보이자 세계문화유산인 문화재 보수를 많이 하고 있어요.”엄태조 명인은 해인사 팔만대장경 보수를 13년째 계속하고 있으며, 용문사 대장전 윤장대를 해체 보수하고, 은혜사 백흥암 극란전 수미단 보수, 장춘사 대웅전 수미단 제작, 북지상사 비로전 수미단 제작 등, 국가지정 보물의 보수공사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그 외에 종갓집 보수공사를 맡기도 한다. 이름만으로도 위엄이 주어지는 일을, 대구경북이 낳은 인간문화재 엄태조 명인이 만지고 다듬는다고 생각하니 무한정 믿음이 간다.“팔만대장경 판각보수의 경험을 좀 들려주세요.”“목판 선반을 판각이라고 하는데 요즘 말로 하면 책꽂이 같은 것입니다.”판전 안에는 벌레도 없고 습기도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지렁이나 벌레가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정밀한 공법을 거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판각 아래를 1미터 깊이로 파고 맨 아래 숯을 깔고 그 위에 소금을 뿌려서 강회를 하는데, 그 과정을 세 번 거듭한다고 했다. 맨 위에 마사토를 섞어서 강회를 해두는데, 다음날 보면 표면에 하얗게 분이 덮여 있다며 스님들이 아침마다 그 분을 쓸어낸다고 했다.강회에는 벌레를 방지하는 성분이 있어서 수백 년이 지나도 깨끗하다고. 흙도 먹고 싶은 영양분이 있는데 800년이 지났으니 흙이 허벅허벅 할 거 아니냐며, 파내고 새 흙을 넣어서 똑같은 방법으로 복원한다고 했다. 판각 역시 못 하나 없이 짜 맞추었는데도 팔만대장경의 육중한 무게를 이고도 끄떡없다는 명인의 설명에 자랑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나무와 나무를 잇는 방법은 어느 나라도 따라할 수 없는 우리 전통의 방식이라고 기꺼워했다. 판각의 부서진 부분은 보수를 하고, 휘어진 부분은 똑바로 만들고, 없는 것은 채워 넣으며 원형대로 복원을 한다고. 흙을 다지는 방식도 기계로 하면 층이 생겨 매끈하지 않기 때문에 방망이로 일일이 두들긴다고 한다. 방망이로 두들겨야 매끈하고 단단해진다는 보수 공법까지 그야말로 수작업이었다.60여 년간 목공예의 전통을 지켜온 엄태조 명인은 800평이나 되는 영천목공예사업협동조합에서 제자들을 키우고 있다. 기능인들이 제대로 일할 여건을 만들고 싶다며, 장인들과 후학들이 한자리에 모여 작업하고 기술을 전수하는 발판이 중요하다고 했다. 전통문화를 살리는 길은 전통의 맥을 잇고 기능인을 발굴 양성할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이 주어져야 하고, 전승자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야 전통의 가치를 지킬 수 있다고, 명인이 따끔하게 한마디 한다./글 장정옥 소설가(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

2021-03-09

“체계적 커리큘럼·치밀한 계획… 모든 운동은 100% 과학입니다”

지난 시대 운동선수들에겐 “죽도록 열심히, 무조건 지도자가 시키는 방식대로”가 금과옥조(金科玉條)의 지침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그게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됐다.최근엔 체육계 전반에 걸쳐 고질적 문제로 제기돼 온 지도자와 학생간, 선배와 후배간 ‘학교 폭력’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10대 때부터 체육계에 몸 담아온 트레이닝과학연구소 박성률(57) 대표는 이를 안타까워했다.“지도자의 역량이 모자랄 때 생기는 폐해다. 제대로 된 시스템과 프로그램으로 교육시킬 능력이 없으면 코치나 감독, 선배가 폭력이란 방식에 빠지기 쉽다.”포항 대동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조정 선수로 활동했고, 만 19세였던 1982년엔 조정을 시작한지 2년 만에 국가대표가 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다.20대 땐 6년 동안 독일 체육대학(쾰른 체육대학·Sporthochschule K00F6ln)에서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운동 방법을 공부해 ‘트레이닝 방법론’ 학·석사 학위를 받았다.한국의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더 큰 배움에 목말랐기에, 2009년엔 만학도로 다시 독일을 찾아 콘스탄츠 대학(Universitat Konstanz)에서 사회과학 박사 학위도 얻어냈다.‘이성과 합리성의 나라’로 불리는 독일에서 스포츠과학을 공부한 박 대표는 딱 잘라 말한다.“운동은 백 퍼센트 과학이다. 무조건 열심히만 한다고, 많은 시간을 쏟아 붓는다고 그것에 비례하는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 체계적인 커리큘럼과 치밀한 계획 속에서 진행돼야 투자한 노력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오는 게 바로 운동이다.”박성률 대표가 공부한 독일 체육대학은 스포츠 지도자 양성을 위해 1947년 세워진 학교다. 현직 체육교사의 재교육도 담당하며, 다수의 스포츠 관련 의사, 스포츠 단체 지도자를 배출한 곳으로 철저한 입학·학사 관리로 독일만이 아닌 유럽에서도 이름이 높다.비단 운동뿐 아니라 생리학과 역사학, 심리학과 사회학까지 다양한 학문을 접할 수 있는 학구적 분위기 속에서 청년 시절을 보낸 박 대표는 ‘시스템의 힘’과 ‘합리의 힘’을 믿는 사람이 됐다.이 두 가지 힘을 바탕으로 대학 강단에 섰고, 스포츠 관련 정책을 제안했으며, 크고 작은 부상의 고통을 겪는 운동선수들의 재활을 적극적으로 도왔다.그런 그가 고향인 포항으로 돌아와 2017년 트레이닝과학연구소를 설립했다.국가대표 선수, 체육 지도자, 스포츠과학 관련 단체 연구원 등으로 30년 이상 활동하며 쌓아온 전문 지식과 다양한 현장 경험을 활용해 포항 시민들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봄비가 곱게 내리던 지난 주말. 본사 편집국을 찾은 박성률 대표와 자리를 옮겨가며 3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눴다. 그 결과물이 아래 요약된 박 대표의 지난 삶과 앞으로의 꿈이다.◇소년 국가대표에서 청년 독일 유학생으로‘소년 박성률’은 신체 조건이 좋았다. 게다가 성격도 적극적이었다. 가난과는 거리가 먼 윤택한 가정환경은 그를 성격 좋고, 활발한 아이로 자라게 해줬다.체육대회가 열리면 육상, 배구, 축구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선수로 뛰었다. 그걸 지켜본 고등학교 은사가 조정 선수가 될 것을 권했다.조정에 입문한 초기엔 어려움도 겪었다. 보통 아이들 사이에선 ‘힘 좋은 친구’였지만,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는 조정 선수로는 아직 힘이 부족했다. 게다가 일찍 시작한 동료들에 비해 기술도 뒤떨어졌다. 그걸 이겨낸 방법이 새벽 운동과 야간 운동이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조정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다.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선 4위라는 기대하지 않았던 좋은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곧이어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 대학 조정선수권대회’에선 유럽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거기에 부상이라는 악재까지 겹쳤다. 올림픽에 나가겠다는 목표가 허무하게 무너졌다.하지만 ‘청년 박성률’은 좌절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있는 운동이란 것의 본질이 대체 무엇이고, 어떤 방식을 통해 기대한 성과에 이를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은 오래전부터 가져온 것이었다.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독일에서 찾기로 한 것이다.“조정 선수 생활을 그만둘 무렵 반복적이고 과도한 훈련을 장기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운동선수는 부상의 예방과 회복을 위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선수로서 못다 이룬 꿈을 지도자가 돼 실현하고 싶었다. 독일로의 유학을 결심한 건 이론과 실기를 동시에 중요시하는 교육 과정을 통해 지도자를 양성하는 나라가 독일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운동선수도 자기 분야 공부해야 ‘능동의 삶’ 살 수 있어생소한 나라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강의를 들으려면 독일어 습득이 필수였다. 생소한 독일 말과 글을 공부하기 위해 눈썹을 밀고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고행(?)까지 자처했다. 그 정도 악바리였기에 빠른 시간 안에 독일어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6년의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게 학업에 열중했다. 스포츠 지도법과 트레이닝 방법론을 이론 전공으로 택했고, 독일체육회와 경기연맹 등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체육 지도자 양성과정이 실기 전공이었다.학위와 함께 조정·육상 전문체육지도자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 덕분에 석사장교로 군에서 복무할 수 있었다.제대 후에는 서울의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모든 걸 뒤로 미루고 운동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선생이 아니었다. 박성률은 달랐다. 이런 말로 학생들을 격려하고 고무했다.“자기 분야에 관한 지식이 없으면 좋은 운동선수는 물론 완성된 인간도 될 수 없다. 책을 읽고 공부해라. 그래야 너희 모두가 수동적 삶이 아닌 능동의 인생을 살 수 있다.”◇포항시민과 운동을 통해 얻은 행복한 삶 만들어 갈 터박 대표는 포항시청 직장 운동경기부 총감독으로 일하던 시절을 행복하게 기억한다.독일에서 배운 선진적 훈련 프로그램과 선수관리 시스템을 현실에 적용해 눈에 띄는 성과도 올렸다. 포항시청 소속 선수들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기에 성취감 또한 컸다.그간 운동 지도자들에게 ‘코치 전문능력 개발’ ‘스포츠 코칭 철학’ 등을 강의하고, 한국체육대학교 강단에선 ‘코치 역량개발과 멘토링’ ‘엘리트선수를 위한 운동 프로그램’을 가르쳤던 그는 이제 트레이닝과학연구소와 함께 보다 더 가까이 포항시민들에게 다가가고자 한다.트레이닝과학연구소는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건강·체력 증진 방법을 찾아내고, 경기력 향상을 위한 스포츠 의학, 스포츠 교수법, 스포츠 사회학을 연구·지원·교육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다.앞으로 나아갈 길 10년을 이야기하는 박성률 대표의 다짐이 믿음직해 보인다.“많은 사람들이 운동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운동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운동의 종류와 방식에 대해선 아직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스포츠과학에 기반한 조언을 들려줄 계획이다. 합리적 운동 시스템으로 건강한 포항시민을 만들어내는 일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는 게 고향에서 가지게 된 새로운 꿈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3-03

산줄기 따라 1천26m 고갯길자연과 하나되는 나를 찾다

드물게 ‘빼어난 경관’이 그 지역의 명칭보다 유명한 경우가 있다. 문경시의 ‘새재’(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 사이에 있는 높이 1천26m의 고개)가 그렇다. 아찔한 바위산과 울울창창한 숲이 어우러진 새재의 풍경은 ‘문경’이란 도시의 명칭을 보다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4년 전 한 번, 지지난해 또 한 번 문경새재를 찾았다. 여름엔 시원스런 그늘을 만들어 선물하는 것으로 관광객과 문경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오만가지 꽃이 피는 봄이면 그 향기가 깊은 골짜기까지 진동하는 곳.여행하는 이들이 드물어 조용한 겨울에도 더없이 낭만적이고, 단풍놀이 즐기는 중년남녀들에겐 가을의 문경새재가 사랑받아 왔다. 사계절 가리지 않는 매력 가득한 여행지.‘한국 지명 유래집’은 문경새재의 다른 이름인 조령(鳥嶺)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조선시대 영남 지방에서 서울에 이르는 영남대로에 위치한 마지막 고개다. 일제강점기에 이화령에서 충주 수안보로 통하는 3번 국도가 뚫린 후 새재 길은 옛길로 남게 되었다. 1981년 이 지역을 도립공원으로 지정했다. ‘고려사 지리지’에선 조령을 초점(草岾)이라 불렀다.임진왜란 후 경상도에서 서울로 통하는 요충지인 조령에 1관문인 주흘관, 2관문인 조곡관, 3관문인 조령관이 설치됐다. 국방의 요충지이기도 했던 것이다. 조령은 우리말로 새재다. 지명의 유래는 여러 가지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에서 왔다는 설이 있고, 억새가 우거진 고개라는 뜻에서 연유했다는 의견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새로 생긴 고개’이기에 새재라고도 한다.”‘문경새재 도립공원’은 문경시가 가장 앞서 내세우는 지역 최고의 관광지다. 실제로 찾아오는 이들도 많다. 문경을 여행하면서 새재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팥소가 빠진 찐빵을 먹는 것처럼 싱겁다.기자 역시 문경시를 찾을 때마다 문경새재 도립공원에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았다. 초여름엔 입구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올라가며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는 호사를 누렸고, 가을엔 형형색색 단풍에 마음을 뺏겼다.하지만, 여름과 가을의 문경새재는 봄날의 문경새재가 지닌 위상을 따르지 못한다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조선시대엔 한양으로 가는 큰 길… 지금은 관광 명소가까이에서 만나는 진달래는 그 진분홍 색채를 관능적으로 뽐내고, 불어온 따스한 바람에 놀라 저 먼 산에 화들짝 핀 봄꽃들은 이름을 다 알지 못해도 존재 자체만으로 보석처럼 빛난다.풍치가 이러하니, 문경이 어찌 ‘새재’를 엄지손가락 치켜세우며 자랑하지 않겠는가? 문경시 문화관광 홈페이지엔 보다 상세한 문경새재 도립공원에 관한 정보가 소개돼 있다. 아래 인용한다.“한국의 큰 산줄기인 백두대간(白頭大幹)은 태백산, 소백산을 거쳐 경상도와 충청도에서 경계를 이룬다. 죽령을 지나 대미산, 포암산, 주흘산, 조령산, 희양산, 대야산, 청화산, 속리산으로 이어지니 이게 바로 소백산맥이다. 삼국시대와 고려 때엔 문경 관음리에서 충북 중원군 수안보로 통하는 큰길인 계립령이 있었고, 문경 각서리에서 괴산군 연풍으로 통하는 작은 길 이화령은 1925년 개척돼 지금의 국도3호선이 됐다. 옛날엔 이화령과 충북 괴산으로 연결된 불한령, 문경군 농암에서 충북 삼송으로 다니던 고모령 등이 있어 신라와 고구려, 신라와 백제의 경계를 이루었다. 이곳이 영남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조선시대의 가장 큰 길이었고, 지금도 원터, 교귀정, 봉수터 등이 남아 있다. 조령 길의 번성을 말해주듯 주변엔 관찰사와 현감의 공적을 새긴 불망비와 송덕비 여러 개가 존재한다. 지금은 자연 환경이 잘 보존된 관광 명소다.”◆ 봄날 언택트 여행지에서 떠올린 ‘사라지지 않는 것들’드넓은 공간에서 즐기는 새재에서의 산책은 코로나19 시대가 요구하는 ‘언택트 관광’에도 잘 어울린다.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줄이고, 가족, 연인, 친구가 함께 하는 봄날의 소박한 피크닉이 가능한 곳이 바로 문경새재 도립공원. 볼거리도 적지 않아 공원 내에 자리한 옛길박물관, 자연생태박물관, 힐링 휴양촌, 오픈세트장, 도자기박물관을 돌아보는 즐거움도 크다. 그 가운데 추천하고 싶은 건 ‘문경 생태미로 공원’이다.문경시 관계자는 이 공원을 “자생식물원 형태로 유지돼 오던 것을 도자기, 연인, 돌, 생태를 주제로 한 4개의 미로와 전망대, 산책로, 연못 등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것”이라고 알려줬다.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간의 생존을 위협했던 긴 겨울이 가고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온 봄이 푸른 희망의 노래를 속삭이는 생태미로 공원.여기서 기자는 ‘사라지는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을 빼어난 문장으로 독자들에게 설파한 이영진(65) 시인의 시 ‘풀들은 늙지 않는다’를 조용히 읊조렸다.집들은 스스로 허물어져 빈자리를 만들었어무너지는 것들은 제 속을 비우고대지를 향해 몸을 맡겼지기울어진 토방마루를 지나뒷산 이름 없는 묏등으로 가는 길구절초며 흰 찔레꽃꽃 피는 모든 것들의 의지가 눈부셨어그대가 길 떠나간 뒤사람의 온기가 바람에 닳아 식어가는 동안등 뒤에 남은 것들의 쓸쓸함은 깊어만 가고무너진 빈자리마다 풀이 자랐지바람이 불 때마다 들렸어지친 발걸음을 인도하던 그대 거역할 수 없는 목소리우리는 세계를 떠돌며끝내 자라지 않는 뿌리의 통증을 견뎌야 했어땀과 눈물의 자리에 함께 서 빛나던 소금 같은 사내들더불어 공유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그대 떠도는 생애보다 짧은 저녁노을이여노을은 떠온 산이 붉어 와도아무도 서로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다가오는 어둠 앞에서도끝내 늙지 않는 풀들만 푸르를 뿐그대 썩지 않는 예언이여오늘 누군가는 또 집을 떠나야 하리라.◆ 문경 돌리네 습지,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못지않은 풍경3월 봄바람에 들뜬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는 좋은 시 한 편을 떠올린 후엔 문경의 또 다른 ‘비대면·비접촉 관광지’ 돌리네 습지로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돌리네(Doline)’란 석회암지대에 생성된 접시 모양의 움푹 파인 땅을 지칭하는 것이다. 습지 형성이 어려운 지형적 특성상 국내에선 문경이 유일한 돌리네 지형이다.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건 돈 주고도 하기 힘든 호사.혼자서 고독을 곱씹으며 걷는 것도 좋지만, 아이들과 함께라면 웃음까지 선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속을 재빠르게 헤엄치는 수달과 담비를 보며 깔깔거리지 않을 애들은 없을 테니까.돌리네 지형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지는 동유럽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Plitbice National Park)일 것이다. 기자는 10년 전 그곳을 다녀왔다. 어땠냐고? 물론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문경의 돌리네 습지는 플리트비체와는 다른 매력으로 관광객을 반길 것이다. 기자의 견해를 뒷받침하듯 문경시 관계자가 말한다.“좁은 면적임에도 731종의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곳이 돌리네 습지다. 초원 생태계와 육상 생태계가 공존하는 이곳에선 꼬리진달래, 낙지다리, 들통발, 쥐방울덩굴 등의 희귀식물과 만날 수 있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3-02

느낌대로 그린 은유의 세계

작품을 구상할 때 작가는 간혹 심상에 떠오른 이미지를 따라가기도 한다. 그럴 때 작가는 눈으로 확인되는 실체보다 심상에 떠오른 이미지를 더 믿게 된다. 그것은 이미지가 품고 있는 여백이, 실체가 갖지 못한 환상으로 상상의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본을 따라 그리듯 모든 물상을 꼭 사실적으로 그려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너무 단조롭다. 밤에 쓴 문장을 다음날 아침에 지우는 일이 있더라도 작가는 환상을 따라가는 모험을 망설이지 않는다. 물상이 재창조 되는 은유의 과정은 창작에 종사하는 모든 예술가들이 아프게 겪어야 하는 일이다. 문상직 화백의 양 그림이 그런 변이의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는 것은 기억해둘만한 일이다.화백의 양 그림을 보며 문득 시대정신을 떠올렸다. 위로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에 마치 부름을 받고 온 듯 구름을 닮은 양 무리가 풍요롭고 온유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코로나 19가 시작된 것이 일 년 전 이맘때쯤이었다. 그날 이후로 세상의 모든 가치관과 문화가 바뀌고, 사람들은 격리에 익숙해져야 했다. 갑작스러운 홀로서기에 혼돈이 일었다. 밖에서 안으로, 물상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다수에서 개인으로 분화를 거듭하며, 시대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정체성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인간을 고독한 지경으로 몰아넣는 범상치 않은 시대에, 양 그림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면 감정과잉이라고 해야 할까? 화백이 어떤 마음으로 그렸건, 양 그림은 그 특유의 치유와 위로의 능력으로 그림을 보는 사람의 감정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아름다운 감화를 준다.“양을 그리게 된 계기가 뭐예요?”화백이 비 오는 날의 안개를 말했다. 해평 도리사에 갔다가 비를 만났다고 한다. 우산을 갖고 가지 않아서 비를 조금 맞았고, 나무 밑에서 비를 피했다. 역사의 더께가 덮인 부도(浮屠)를 보고 능선을 걷는데, 멀리 낙동강 줄기와 능선으로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바람 따라 흐르는 안개의 무리가 양떼의 모습으로 보였어요. 그날 집에 와서 세 살배기 딸을 위해서 50호짜리 양 그림을 그렸어요.”그게 시작이었다. 화백은 세 살 된 딸을 위해서 첫 번째 양 그림을 그렸고, 그 작업이 매우 재미있었다. 그 의미 있는 그림을 아무에게도 주지 않고 딸이 사십 살이 된 지금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다. 마음에 품은 어떤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은 참 고귀한 일이다.양 그림을 그리기 전에 화백은 꽃과 해바라기, 수녀, 소녀와 같은 맑은 소재의 그림을 그렸다. 전시회 팸플릿을 보고 있으려니 그림이 곧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물은 보는 사람의 마음만큼 보이는 것인데, 그 맑음이 부럽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하다. 화백은 대구여고 근무할 때 소녀시리즈를 많이 그렸다고 한다. 너무도 맑아 보이는 아이들의 영혼을 그대로 그림에 담았다. 소녀시리즈가 ‘야망의 세월’ 외의 드라마 세 편에 세팅되기도 했다. 문제는 소재의 한계였다. 소녀시리즈와 수녀시리즈로 전시회 초대를 받으면 소재의 한계 때문에 공포가 찾아오더라고 했다. 소녀를 그만 그리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만난 것이 도리사의 안개였고, 양떼의 모습이었다. 신의 한수였다. 꽃과 수녀, 소녀의 소재가 양으로 변화를 거듭하며 소재에 대한 공포가 없어졌다. 화백의 인생에 굵은 획을 긋게 해준 양 그림이 그렇게 탄생했다.“그림에 모가 없네요. 그림이 구름처럼 부드럽고 몽상적이기까지 한 이유가 뭘까요?”“작업하며 느낀 건데 그림에 선이 있으면 너무 강해서 부드러움이 없어집니다. 선은 서로 끌어당기려는 힘을 갖고 있거든요. 선을 빼버리니까 소재가 부드러워졌어요. 우리 얼굴이 그런 것처럼.”선과 각을 없애고 구성과 색채까지 단순화하며 양 그림은 보는 이를 고요하고 평화로운 정적 세계로 이끈다. 저녁 해를 받으며 무리 지어 노니는 양떼의 평화로움을 보며 위로를 받는 건 고요함으로 인한 치유의 느낌 때문이다.“소재를 단순화된 구성에서 세상의 모든 위악적인 요소가 제거되어 있는데 위안을 의도하신 건가요?”“그림은 보고 느끼는 사람의 마음에 따르는 것입니다.”신부님도, 스님도, 산부인과 의사도 양 그림을 보고 편안함을 느꼈다 하더란다. 그림만 보고 감상하는 것과 작가를 알고 감상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화백은 작가를 알고 그림을 보면 왠지 한 꺼풀이 덮이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양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양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에서 인간의 삶을 보고, 가족의 개념을 보는 것은 그림을 보는 이의 마음이다. 자기 느낌에 충실한 것이 곧 그림을 보는 궁극적인 목적이고 순수함이고 자연스러움이다.“전체적인 구성과 색채를 최소의 단위로 단순화 시킨 이유가 있으신지.”“나는 양을 본 적이 없어요. 실제의 양은 환상처럼 아름답지 않아요.”실체를 보고 그렸으면 뿔도 그리고 암수 구별도 했을 텐데, 보지 않고 심상을 따라가다 보니 선이 없어지고 소재에 맞게 색채가 단순화되더라고 한다. 색채가 많으면 혼란하다. 그림도 버릴 수 있고, 눈에 보이는 것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를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 남기느냐 하는 것은 작업할 때 느끼는 감정대로 결정한다.“자연친화적인 소재를 위해 여행을 많이 다니시는지.”“아침저녁으로 드라이브를 잘 나가요. 해가 뜨고 질 때 느끼는 기분과 보이는 풍경에서 내 나름대로 양을 그려요.”아침 해와 저녁 해가 다르다. 황혼이 쏟아질 때면 색채의 단순화가 이루어지고 색깔이 확연히 정리된다. 색채가 많으면 그림이 혼란하다. 전체적인 기분을 느끼고 오면 그대로 그린다.“양을 통해 말씀하시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그림에 사인이 들어가면 그 그림은 작가와 멀어져요.”그림은 보는 사람이 느끼는 것인데 사인이 들어가면 어쩔 수 없이 작가는 그림을 벗어나지 못하고 거기 머물게 된다며, 화백은 자기인식에서 머물지 않기 위해 그림을 완성하면 모두 포장을 해둔다고 한다. 그림을 작업실에 펼쳐두면 자신도 모르게 끌려가게 된다고. 자기 복제와 스스로 만든 사인에 갇히는 것을 경계하는 것 같다. 화백은 언제부턴가 그림을 두껍게 그리더라고 했다. 소녀시리즈 수녀시리즈가 두껍게 그린 그림이라고. 양 그림을 그리며 그 두꺼움에서 벗어났다고 한다.“비슷한 풍광을 보고도 심상을 흔드는 어떤 영감을 받으시나요?”“산과 들이 모두 비슷하지만 늘 같은 것을 보면서도 달리 느껴지고 뭉클하게 감화를 받을 때가 있어요. 해질녘에 특히 그런 감화를 많이 받아요.”한낮에는 못 느끼지만 해가 뜰 때와 해가 질 때의 감정이 다르다고 한다. 황혼 같은 커다란 분위기에 젖어 있으면 그 색채 속에 모든 것이 묻혀간다고 한다.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황혼이 쏟아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그때그때 심상에 와닿는 느낌을 화폭에 담는다고.“색채를 서너 가지 색상으로 단순화 하신 배경을 들려주세요.”“거제 해금강에서 갈매기 섬으로 알려진 홍도에 갔던 적이 있어요.”그날 화백은 무인도로 가는 배를 탔는데, 뱃전에 수녀 두 분이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정겨워 보인다고 느낀 순간 검은 수녀복과 두건의 흰 띠, 바다의 푸르름이 너무도 깨끗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왔고, 그 단순한 색채를 의식한 순간 ‘바로 저거다!’ 하는 생각이 들더란다. 그리 많은 색이 없어도 되겠다는 느낌으로 색채가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거기서 화백은 색깔을 없애는 것으로 욕심을 버렸다.“그림을 시작하는 이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요?”“그림쟁이는 영혼이 맑아야 해요.”그림은 창조 작업이다. 사실대로 그리는 것은 연습 과정에 거쳐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베끼는 것도 따라 그리는 것도 하나의 과정일 뿐 거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작가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확보하려면 먼저 자연주의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일러주신다. 양 그림을 통해서 화백은 단순화된 인간의 삶을 보여준다. 무리 지은 양떼 속에 가족이 있고 이웃들의 군상이 있다. 양의 숫자는 구도에 따라 많아지기도 하고 적어지기도 한다. 양의 본질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다. 거기에는 어떤 대결도 반목도 없다. 꽃과 소녀, 수녀를 거쳐 양 그림에 이른 변화를 통해 화백은 자기만의 독창적인 세계에 이르렀다. 화백이 말씀하신다. 중요한 것은 느낌대로 그리는 것이라고. /글 장정옥 소설가(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

2021-03-02

벽화 그리고, 쓰레기 치우고, 거리 청소하고…사랑하게 되면 봉사는 자연스런 실천이 됩니다

누가 아름다운 사람인가? 이런 질문이 던져진다면 답변은 너무나도 다양할 터. 하지만 가장 간명한 대답은 “자신의 자리에서 아이덴티티(Identity)를 지키며 사는 사람”이 아닐까?영화 ‘어 퓨 굿맨(A Few Good Men)’에서 미국 미사일 기지를 지키는 해병 대령 제셉(잭 니콜슨 분)은 자신이 감옥에 갈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말한다.“위국과 위민, 명예를 너희들은 농담할 때나 사용하지? 그러나 우린 달라. 그 단어를 위해 목숨을 걸고 살아왔지.”다소 파시스트적인 성향을 보이는 군인 제셉 대령의 위 대사에 관한 사람들의 평가는 호오(好惡)가 갈리지만 그가 ‘자신의 자리에서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초등학교 교사로 27년, 이후엔 봉사활동을 전개하며 문화예술인과 주민들을 연결시키는데 힘쓰며 살아온 트리플A 송영화 회장 역시 ‘자신의 자리를 책임감 있게 지켜온 사람’ 중 한 명이다.나이보다 젊게 보이는 맑은 피부와 소녀 같은 미소는 송 회장을 마냥 ‘좋은 사람’으로만 보이게 하지만, 천만에다. 그녀는 자신의 원칙을 지키는 것에 있어서는 타협을 불허한다.교사 명예퇴직 후 짧지 않은 고민의 시간을 거쳐 결정한 꿈틀로 상가번영회장 자리와 봉사단체 트리플A 회장으로서의 송영화는 누구보다 추진력 빼어나고 매사에 철두철미한 ‘단단한 사람’이다.‘트리플A’는 Anthro(인간의 따스한 이야기가 숨쉬는), Angel(사회적 가치의 귀함을 아는), And(문화예술의 꿈이 살아 있는) 꿈틀로를 지향하며 만들어졌다. 3개의 A 속에는 이런 의미가 함축돼 담겼다.나눔과 봉사, 문화와 예술이라는 키워드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트리플A 송영화 회장을 성큼 다가온 봄이 따스한 햇살을 세상에 선물하던 지난주 수요일 만났다.그리고 그날. 아래와 같은 가슴 훈훈한 이야기를 들었다.-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1963년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났다. 이모가 계시던 포항에 온 건 스물세 살 때 교사로 발령 받고나서다. 20대 초반에 와서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살았으니 이젠 여기가 고향 같다. 27년을 교직에 있었고 만 오십 살에 명예퇴직 했다. 이후엔 뭘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남편은 약사다. 현재 꿈틀로 인근 두꺼비약국에서 일한다.-트리플A 결성 시기와 결성 계기는.△2019년 꿈틀로 상가번영회 회원들이 내게 회장을 맡아달라고 청했다. 내가 거리를 오가는 모습을 본 모양이었다. 남편 또한 여기서 생활하고 있으니까. 사실 그때까진 상가번영회 일에 관해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포항에 처음 왔을 때 사람들로 활기찼던 꿈틀로 일대를 기억하고 있고, 지금도 그 시절처럼 이 공간을 에너지 넘치게 바꾸고 싶다는 꿈은 있었다. 꿈틀로 주민들과 입주 예술가들, 상인들을 하나로 묶어내자는 희망으로 번영회장을 맡았다. 그 꿈과 희망의 연장선에서 만들어진 것이 트리플A다.-트리플A는 어떤 활동을 하는 단체인가.△지난해 여름 결성됐다. 활동한지 8개월쯤이다. 처음엔 봉사활동으로 시작했다. 일단 주민들에게 우리 단체가 가진 마음가짐을 알리고 싶었다. ‘서로 존중하고 평등을 지향하며, 그 속에서 행복을 찾자’는 트리플A의 정신을 보여주고자 했다. 동네 벽에 예쁜 벽화를 그리고, 쓰레기를 치우고, 거리를 청소했다. 트리플A 유니폼을 입고.봉사는 어려운 게 아니란 걸 실천을 통해 드러냈다. 포항문화재단과 함께 작은 공간을 만들어 주민들이 차 마시며 이야기 나눌 수 있게 했다. 포스코와 포항시청, 우리가 힘을 합쳐 꿈틀로 정비도 이어갔다. 노출된 전선을 지하로 옮기고, 버려진 간판 등을 정비했다. 그러자 우리의 진심을 알아준 건물주들도 적극 협조하기 시작했다. 동네에 위치한 조그만 공간에서 소규모 노래 공연도 펼쳤다.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이 자세하게 보인다. 이처럼 꿈틀로를 향한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단체가 트리플A다.-트리플A 구성원은 얼마나 되며,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회원 대부분이 다른 일을 가지고 있다. 꿈틀로 주민, 화가·공예가 등 꿈틀로 입주 작가, 교사 등 직업의 프리즘은 다양하다. 전업주부도 있다. 현재 회원은 32명이다. 우리 지역만이 아닌 트리플A의 정신과 지향에 동의하는 타 지역 사람들에게도 가입의 기회를 열어놓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다.-봉사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나 계기가 있나.△초등학교 교사로 일할 때부터 아이들에게 배려, 평등, 존중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말해왔다. 모든 것을 역지사지(易地思之)하라고도 가르쳤다. 그렇게 말했던 사람이 그걸 실천하지 않으면 되겠는가?(웃음) 앞으로의 내 삶도 앞서 말한 세 가지 원칙을 지키며 지속될 것이다.-지금까지 트리플A의 활동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발대식 직후 ‘참참참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서로에게 반가움과 고마움을 표현하고 살자는 의미에서 시작한 캠페인이었다. 주민들의 반응이 좋았다. 동네 장터를 열어 사람들에게 교류의 기회를 제공한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무성영화 상영회를 통해서는 포항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공유할 수 있었다. 혹시 아는가? 포항엔 반갑게 맞아야 할 이웃이 적지 않다. 바로 새터민(북한 이탈 주민)들이다. 그들도 트리플A의 뜻에 공감해 기꺼이 도움을 줬다. 무대에 선 새터민 가수의 노래는 많은 주민들의 박수를 받았다.-그간 활동하며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는.△포항 토박이라면 누구나 아는 아카데미극장이 있다. 예전엔 유명한 극장이었다. 거기서 오랫동안 간판 그림을 그려온 분이 우리가 활동하는 걸 보고는 자기도 적극 나서 주민들 초상화를 그려 선물했다. 화판 앞에서 행복해하던 그분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리어카에 낡은 음반과 인문학 관련 책을 싣고 와 판매하던 분도 “이런 동네 장터가 생겨 너무 기쁘다”는 뜻을 전해왔다. 포항엔 숨어있는 문화예술인이 적지 않다. 트리플A는 봉사활동만이 아니라, 문화예술인과 주민들을 이어주는 역할까지 하고자 한다.꿈틀로를 ‘문화의 거리’로 만드는 건 많은 주민들의 소망이다. 이를 위해 트리플A 회원들은 지금도 포항시, 포항문화재단과 진지한 회의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이런 소통을 가짐으로써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이 문화예술의 향기로 가득해지지 않겠는가.-교직생활을 오래 했다.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해 말한 것은.△“너와 나는 다르지 않다. 우리 모두는 평등하다. 그러니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라”고 말해왔다.-자녀들에겐 어떤 삶을 살라고 조언하는지.△“네 주변 사람들을 존중해라. 그렇게 함으로써 너도 존중 받아라”고 늘 강조한다.-트리플A의 향후 계획과 비전은.△시작할 때의 초심을 잃지 않겠다. 문화예술인들과 효율적으로 연계해 꿈틀로를 문화예술의 거리로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이곳이 ‘누구나 오고 싶은 거리’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깨끗한 환경 만들기에도 더욱 힘쓰겠다. 21세기 포항은 문화와 예술, 관광을 중심으로 재설계돼야 한다. 꿈틀로에서 동빈로까지 이어지는 ‘포항 문화예술의 거리’ 조성이 트리플A의 장기적 목표다.-‘인간 송영화’는 어떤 사람을 지향하는가.△70~80대가 됐을 때 받는 것보다는 주는 걸 더 좋아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나눔의 가치를 아는 사람 말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2-24

문경시, 다양한 지원 정책 수립 “청년들이여 문경으로 오라”

“문경시는 청년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해 청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도시청년 시골파견제, 상권 활성화 청년 특공대, 청년자립마을 활성화, 청년마을 일자리 뉴딜사업 등 청년 일자리 발굴과 지원에 14억 원을 지원하겠습니다. 사회적 기업, 마을 기업, 협동조합을 비롯한 공동체 일자리를 확대하고, 청년과 지역 중소기업을 직접 연결해 창업과 취업을 동시에 지원하겠습니다.”고윤환 문경시장의 올해 신년사다. 문경시는 ‘청년이 몰려와야 문경이 산다’는 인식하에 청년들이 몰려오는 고장, 청년들이 살맛나는 고장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청년정책을 펼친다.◇ 청년이 모여야 문경이 살아난다!문경시는 청년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해 나간다.시는 지난해 10월 문경시 청년 기본 조례를 제정했다.올해는 그 동안의 청년정책을 뒷받침하고 청년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실효성 있는 청년 정책을 펼치고자 청년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청년정책참여단을 구성해 운영할 계획이다.청년정책참여단은 문경 거주하는 19세 이상 45세 이하의 청년 20명 내외로 구성되며 청년정책 의제 발굴, 대내외네트워크 활동을 위한 청년협의체 역할을 담당한다.◇ 학비·취업·주거문제를 한 번에문경시는 학비, 취업, 주거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청년정책도 마련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정책은 문경시가 지원하고 문경대학교가 운영하는 전국 최초의 지역특화 맞춤형 학과로 미래산업융합과를 신설해 문경의 청년들이 지역에서 무상으로 대학교육을 받고 공공기관이나 지역 내 기업에 취업연계를 통해 일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며 대학생, 신혼부부, 사회초년생 등 젊은 층의 주거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총 200세대의 흥덕행복주택을 2021년 준공할 예정이다.신혼부부의 주거비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신혼부부 주택자금 대출이자 지원 사업도 실시하고 있다. 문경시에 1년 이상 거주 중인 혼인신고 2년 이내의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한 이 사업은 주택구입 또는 전세자금 대출금 잔액의 2% 이자를 최고 100만원까지 3년간 지원하며 2년 이내 출산 시 2년 추가 지원해 최장 5년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그 외에도 청년자립마을활성화사업, 청년지역정착지원 플러스 사업,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사업 등 청년 일자리 발굴과 지원에 14억 원을 지원한다.◇ 청년자립마을 활성화지원사업시는 청년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정착 할 수 있도록 청년자립마을 활성화지원사업을 실시한다.사업 대상은 지역 체험 및 정착을 희망하는 청년을 대상으로 청년문화 구축과 창업실험을 위한 팀별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된다. 프로젝트 추진에 대한 운영비가 지원되고 업무공간(공유오피스), 지역살이 숙소 및 커뮤니티 시설 등을 제공한다.지역의 일자리와 연계하고 청년 공동체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할 기회도 제공한다.◇ 청년예비창업지원 사업청년예비창업지원사업은 지역 내에 주소를 두고 있는 만19세 이상 39세 이하의 청년을 대상으로 창업 구상단계부터 사업화 성공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창업기반을 지원해 주는 사업으로 창업활동비(1인 1천200만원) 지원과 더불어 창업교육, 전문가 컨설팅 및 멘토링, 창업 공간 등이 지원된다.2010년부터 시행해 현재까지 43개 팀의 성공적인 창업을 지원해 왔고, 지난해부터는 지원금과 지원규모를 확대해 추진함으로서 지역 내 청년창업자의 창업 등용문으로 각광받고 있다.올해도 문경시는 기술·지식·6차 산업·일반창업 분야에 지역 특성에 살린 참신한 아이템을 가진 청년예비창업자의 신청을 받아 계획의 창의성, 실현가능성, 파급효과성 등을 기준으로 6명(팀)을 선정, 지원할 계획이다◇ 청년근로자 사랑채움사업청년근로자 사랑채움사업은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미혼 청년근로자의 조기 이직 방지와 목돈 마련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중소기업에 근무 중인 39세 이하 미혼 청년이 대상이다. 청년이 2년간 매달 15만원을 납입 하면 시에서 1년간 분기별 175만원을 납입해 2년 만기 후 총 1천60만원과 이자를 수령하는 사업이다.◇ 기능인력 청년인턴 장려금 지원 제도청년 미취업자의 고용 촉진과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소를 위한 기능인력 청년인턴 장려금 지원 제도도 운영한다.지원대상은 시에 주소를 두고 고등학교 및 대학(전문대학 포함)을 졸업하거나 졸업예정인 34세 이하의 청년으로 중소기업에서 3개월 이상 생산직으로 재직 중인 청년이 대상이며 월 30만원씩 6개월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지역살이에 나선 달빛탐사대행정안전부 청년 지역정착 지원사업 ‘달빛탐사대’가 지난해 11월 청년 커뮤니티공간 달맞이스페이스에서 수료식을 개최했다.‘달빛탐사대’는 행정안전부의 ‘2020 청년 지역정착 신규 발굴 용역사업’에 선정돼 2020년 8월부터 11월까지 4개월간 추진된 사업이다.문경읍 일원을 거점으로 문경 청년협의체 ‘가치살자’의 총괄로 운영, 청년들의 문화 실험 및 지역 정착을 위해 청년 주도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창업 및 문화 프로젝트로 구성했다.‘달빛탐사대’에는 문경을 포함해 전국에서 온 총 70여명의 청년들이 참여했으며 지역의 자원과 자신의 능력 및 아이디어를 결합해 버스킹, 책방 운영, 문화공연 등 19개의 다채로운 팀별 프로젝트를 수행했다.또 외지 청년 40명 중 12명의 청년이 문경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지역에서의 삶을 시작하고 있다.청년들은 다양한 지역 자원을 활용하고 문화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창출하며 마을의 유휴공간들을 활용해 공간 D.I.Y.를 통한 공유오피스, 커뮤니티공간, 책방·갤러리 등 청년 활동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했다.지역 사업체에서 일하거나 축제에도 참여하고 지역 내 청소년들과 기획공연 및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문화행사를 개최하며 주민들과 함께하는 진정한 의미의 지역 살이를 실현했다.‘달빛탐사대’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면서 전국 청년들에게 문경은 즐겁고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지고 청년 네트워크의 중심지가 될 씨앗이 뿌려졌다고 할 수 있다.고윤환 문경시장은 “청년이 모여야 문경이 살아난다”며 “다양한 형태의 지역 일자리를 발굴하고, 참신한 아이디어와 열정을 가진 청년사업가들이 문경으로 많이 모일 수 있도록 적극적인 청년 정책을 펼치겠다”고 말했다./강남진기자 75kangnj@kbmaeil.com

2021-02-24

그래도, 봄은 오고… 가는 겨울 새 옷 입고 날 반기네

기어코 왔다. 봄이다. 그러나, 이 봄이 마냥 반겨 맞을 귀한 손님 같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에선가?이미 수천 년 전 이런 노래가 세상을 떠돌았다.“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이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몹쓸 오랑캐들이 사는 땅에는 향기로운 풀도 아름다운 꽃도 피지 않으니, 봄이 왔지만 진정한 봄처럼 느껴지지 않는구나’라는 뜻.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호지(胡地)’는 오랑캐(야만적인 이민족)의 땅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이라면 호지가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명사가 될 수 있었겠으나, 이젠 창졸간에 출현한 바이러스가 수억 명 인간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지구 전체가 호지로 불릴 위기다.가볍게 봐 넘길 수 없는 상황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봄이 왔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봄은 아주 오래전부터 ‘희망’과 ‘다시 시작함’의 은유였다.발 빠른 위기대처 능력을 가진 국가들은 이미 많은 수의 국민들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주사했다. 부작용 등의 흉흉한 소문이 없지 않지만, 현재로선 백신에 거는 기대가 어느 나라건 클 수밖에 없다. 다른 뾰족한 해결책이 부재한 까닭이다. 한국도 곧 순차적으로 백신 접종이 이어질 것이다.지난 2020년 한 해 내내 ‘코로나19 사태’의 춥고 어두운 그늘 속을 걸어온 우리들에게 성큼 다가온 2021년 봄은 특별하고도 특별하다. 앞서 말한 ‘다시 시작돼야 할 희망’을 거듭 강조하는 이유다.희망을 엔진 삼아 ‘새롭게 시작할 삶’이라는 항해에 힘이 더해지려면 재정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재정비에 봄나들이 만한 게 있을까?봄을 더욱 의미 있게 맞으려 준비하는 이들이 잠시잠깐 마음의 짐과 바이러스가 주는 스트레스를 내려놓을 특별한 비접촉·비대면 여행지 한 곳을 소개하려 한다. 바로 서정과 인심이 여전히 살아있는 청도군이다.◆ 시골 넉넉한 인심을 맛보며 아름다운 사찰 ‘운문사’로몇 해 전 청도를 찾았을 땐 밭은 물론 거리에도 발갛게 잘 익은 감이 지천이었다. 젊은이들이 줄어들면서 감을 제대로 수확하지 못한 탓일까? 아까운 감이 땅에 떨어져 굴러다니는 게 안타까웠다.동행한 선배와 함께 비구니 사찰 운문사를 찾아가던 길. 딱히 빼어난 화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붓을 잡으면 색깔 고운 수채화 한 점쯤은 그려낼 듯한 풍경에 빠져 잠시 차를 세우고 감나무 아래를 서성였다.그때다. 저만치서 나타난 나이 지긋한 어르신 한 분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그 감나무 우리끼요. 따 잡사도 돼. 마이 따서 먹어봐요. 청도 감이 맛있다니까.”각박한 도시에서만 살아온 기자에게 그런 시골 인심은 초등학교 다니던 40년 전 외가에서나 본 것이라 어색했지만, 동시에 더없이 반갑고 훈훈했다.인사를 하고 감 하나를 맛봤다. 달콤한 맛도 맛이지만, 밀려오는 어린 시절 추억에 가슴이 더워졌다. ‘인심’과 ‘서정’이란 두 단어로 청도를 기억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내처 길을 달려 운문사 입구에 닿았다. 절까지 올라가는 길이 절경이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실려 오는 꽃향기. 막 연애를 시작한 젊은 연인들이라면 없던 정도 생길 법한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운문사 초입.◆ 운문사를 산책하며 읊조린 백석의 절창 ‘여승(女僧)’운문사가 어떤 내력을 가졌는지 궁금하신가? 그렇다면 청도군 문화관광 홈페이지를 클릭하면 된다. 이런 설명이 이어진다.“운문면 호거산에 있는 사찰이다. 557년(신라 진흥왕 18년) 한 승려가 작은 암자를 짓고 3년 동안 수도해 도를 깨닫고 이후 동쪽에 가슬갑사, 서쪽에 대비갑사, 남쪽에 천문갑사, 북쪽에 소보갑사, 중앙에 대작갑사를 창건했다. 현재 남아 있는 곳은 운문사와 대비사. 600년(신라 진평왕 22년)엔 원광국사가 중창했다. 신라가 낙동강 서남부로 국력을 키워가던 때 운문사 주위는 병참기지로 역할했다.‘삼국유사’에 따르면 왕건이 후삼국의 혼란을 수습한 후 대작갑사에 ‘운문선사’라는 사액을 내렸다. 이때부터 대작갑사는 운문사로 불렸다. 지금은 260여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경학을 배우는 터전이다. 운문승가대학은 국내 승가대학 중 최대 규모. 천연기념물 제180호 ‘처진 소나무’ 등 보물 일곱 점을 간직했고, 고승대덕(高僧大德)의 영정과 문화재 등도 절 안에 다수 산재돼 있다.”터가 널찍한 운문사는 ‘언택트(Untact)’하게 산책하기 그저 그만인 사찰이다. 걸음을 빨리 할 필요 없이 느긋한 마음으로 경내를 어슬렁거리다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봄꽃들의 속삭임도 들을 수 있고,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오가는 비구니들의 맑은 눈빛도 만나게 된다.여승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여자로 살아본 바 없고, 승려가 되겠다는 마음 역시 가진 적 없으니 기자는 평생 알 수 없는 일. 그러나, 추측이 불가능하진 않다. 이미 한 세기 전 한반도 남북을 통틀어 가장 명민했던 시인으로 불린 백석(1912~1996)의 절창 ‘여승’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다.여승은 합장을 하고 절을 했다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여인은 나이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섶벌 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산 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마음만 같지 않은 봄을 위로하는 ‘공암풍벽’의 목소리모두가 같은 삶의 풍파를 겪고 동일한 아픔 속에서 여승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리라.하지만 다종다양한 인간의 삶 중에서 유독 성직자를 택한 이들이라면 분명 어떤 내밀한 사연 하나쯤은 다들 간직하고 있을 터. 운문사는 그러한 ‘생의 비밀’을 곰곰 생각하게 해준다.이런 상념에 잠긴 여행자라면 운문사를 나와 발길을 옮길 곳이 빤하다. 그는 분명 공암풍벽(孔巖楓壁)으로 향할 터. 운문사보다 더 조용하고, 더 적요한 공간.외로운 인간의 본질을 보다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은 공암풍벽을 아래와 같이 묘사하고 있다.“청도8경 중 하나다. 사계절에 따라 운문천의 맑은 물과 조화를 이루는 절벽. 1985년에 운문댐이 조성돼 지금은 ‘바라보는 절경’이지만 과거엔 경주로 가는 도로 옆에 위치했다. 높이 30m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 공암풍벽이라 불린다.아래로는 동창천이 절벽을 휘감아 돌고, 울창한 수림 사이엔 용혈(龍穴), 학소대(鶴巢臺), 석문(石門)이 자리 잡고 있다. 봄에는 꽃향기에 취하고, 여름엔 녹음 우거진 맑은 물이 더위를 잊게 하며, 가을에는 만산홍엽 단풍이 불타고, 겨울엔 눈 쌓인 절벽에 매달린 고드름이 햇살에 반짝이는 기기묘묘한 경치다. 이에 관광객들은 넋을 잃는다. 수몰된 대천리와 공암리 주민들에겐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기도 하다.”공암풍벽을 찾았던 날. 기자 또한 세상의 모든 소음을 삼킨 듯 괴괴한 침묵 속에서 조용한 수면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이미 떠나간 계절과 다시 돌아올 계절을 예감하며. 올 봄 청도 공암풍벽을 찾는 여행자들도 아마 그러할 것이다.운문사와 공암풍벽에서의 봄맞이로도 만족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차를 돌려 화양읍에 자리한 ‘청도 와인터널’을 찾아가보길 권한다. 만약 당신이 모주가라면 만족감이 배가 될 것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2-23

북소리와 ‘뫼아리’ 파장이 주는 에너지

일중 황보영 회장으로 하여금 전통생활민속예술에 관심을 갖게 한 것은 상여소리였다. 시골 장례식에서 상갓집 일을 돕다 구성지게 울려 퍼지는 상여소리에 감화를 받아서 황보 회장은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별의 슬픔과 영원한 삶에 대한 소망을 담아 부르던 상여소리는 우리네 농경사회의 장례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의식이었지만, 이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친구들이나 가족모임, 교수들 퇴임식장 같은 소단위의 행사를 다니며 놀이 삼아서 소리를 했다. 자신이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신명에 겨워 소리를 하고 다니다 민요병창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황보 회장은 거기서 진짜 소리꾼들의 노래를 듣고 비로소 자신의 우매함을 깨달았다.이후에도 전통생활민속예술에 대한 애착은 여전해서 기악, 타악 같은 악기를 배웠지만 어느 것도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김수배 선생님에게 날뫼북 장단을 배웠다. ‘날뫼’는 날아온 산이라는 대구 비산동만의 ‘비산농악, 날뫼북춤’을 이르는 말이고, 정월 보름날마다 행해오던 ‘천왕메기굿’에서 파생된 관행이었다. 비산농악에 있던 북춤을 따로 분리해서 날뫼라는 이름을 붙이며 오늘에 이르렀다고 황보 회장이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런 유서 깊은 날뫼북춤에 대한 흥미도 그의 마음을 오래 붙잡지 못했다.그의 인생이 바뀐 것은 밀양백중놀이 보유자이고 중요무형문화재 68호인 하보경 선생님의 북춤을 보던 날부터였다. 그의 북춤을 보고 난 후, 오래 더듬어오던 모든 취미 편력을 멈추었다. 무거운 북을 메고도 가벼운 몸짓으로 춤의 삼매경에 빠진 하보경 선생님의 모습은 학이 춤을 추는 듯했다. 황보 회장은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가는 농부의 욕심 없는 순박함과 풍요로움이 배어 있는 북춤에 매료되었다. 사람이 한 가지 이상을 품기까지 얼마나 많은 길을 둘러가야 하는지, 황보 회장은 그 이상이란 것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북춤을 만나고 온전히 깨달았다. 소리와 기악, 춤까지 모두 해봤지만 그 중 북춤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날부터 그는 북춤에만 매달렸다. 새천년에 처음으로 입춤과 할량무를 추며 본격적으로 춤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북은 우리 민족에게 어떤 의미일까요?”“북은 사람이 만든 최초의 악기라고 볼 수 있어요. 신을 부르는 소리라고 할까요? 원시시대에부터 제천의식에서 쓰던 악기였어요.”신을 부르는 영매. 북은 텅 비어 있음으로써 제 속을 길어 올려 소리를 만들고, 그 소리를 크고 넓게, 멀리 보내어 신을 부른다. 하늘과 땅 사이가 비어 있는 것처럼 북이 가진 공간도 하나의 커다란 우주를 뜻한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보는 것처럼 정말 텅 비어 있기만 할까? 늘 비어 있는 것 같지만 하늘이라는 변화무쌍하고 광활한 세계는 또 얼마나 많은 것을 품고 있는가. 그 허공에 바람이 있고 비가 있고, 별이 있고, 끝을 모르는 우주가 있다. 하늘이 그렇듯이 북도 제 속에 우리가 짐작 못할 세계를 품고, 때로는 크게 때로는 부드럽게 가없는 울림을 보내지 않는가.그 동안 갈고 닦은 실력도 점검할 겸해서 대회에 나가보라는 주위의 요청을 받아들여 대회에 나갔다. 오래도록 북춤에 매료되어 살다보니 2007년도 첫 대회에서 문화체육부장관상 받은 것을 시작으로 전국 국악 경연대회 국무총리상, 2008년에는 ‘달구벌북춤’으로 대통령상을 받는 행운까지 누렸다.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대통령상을 받고 나니 밥을 사라는 사람이 있고, 밥을 사주는 사람도 있더라며 웃었다.“왜 그렇게 전통생활민속예술에 매달렸어요?”“사람은 죽을 때까지 무슨 일이든 끊임없이 일을 하고 살죠.”그 많은 일 중에는 ‘해야 할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한다. 해야 할 일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입원이고 하고 싶은 일은 북춤처럼 영혼을 매료시키는 행위예술이다. 살아가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꼭 일만 하고 살 수 없어서 취미생활을 필요로 한다.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기 위해 배우기 시작한 전통생활민속놀이가 북춤에 이르고서야 그게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었던 걸 깨달았다.황보 회장의 본업은 인쇄업이다. 1976년도에 책 만드는 후가공으로 시작한 인쇄업을 45년째 이끌어오고 있다. 참고서와 문제집을 비롯해서 학원에 들어가는 책을 많이 만들었다. 평생 해오던 일이어서 인쇄업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있다. 한문을 한글처럼 쓸 수 있게 획과 변으로 된 자판을 만들려고 7년째 연구 중이다. 일중(一中)자판으로 2018년 9 월에 3일간 열린 국제대만특허박람회 출품하여 은상과 금상 ‘스페셜 어워드’를 받았으며 동년 12월 서울국제박람회에서도 금상을 받았고, 2019년 1월 대구시장상과 5월 벤처기업부장관상까지 받았다. 인쇄, 출판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제는 후대의 사람들이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반드시 그 작업을 성공시켜야겠다는 욕심이 생긴다.50살을 넘기며 삶의 기대가 자꾸 커졌다. 나이가 들어서 돌아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이 가 있는 걸 알겠더라고 한다. 꿈을 갖고 살지는 않았는데 살다 보니 이상이 높아지며 꿈이 생기더라고. 각 지역마다 전통문화가 있다. 전라도는 판소리, 경기도는 경기민요, 북한은 서도소리, 경상도는 기악과 춤이 있지만 특히 북 놀음과 북춤이 뛰어나며 북 장단도 다양하다. 달구벌북춤으로 대통령상을 받았다고 자기소개를 하고 다니다 보니 북춤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할 기회가 자주 생겼다. 더 깊고 구체적인 지식이 필요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북춤에 관련된 책이 거의 없었다. 어쩌다 눈에 띄는 책도 개괄적인 부분만 언급해둔 터라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북은 장단에 맞춰 박자를 두드리는 것만도 한 장단에 열여덟 박자가 나온다며, 황보 회장은 전문적인 북춤에 관한 책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북의 장단에 대한 세세한 정보는 고사하고 북춤이 백중놀이의 한 장르로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결심했다. 대구무형문화재인 ‘날뫼북춤’과 밀양백중놀이북춤 중 밀양북춤, 진도북춤, 장고춤, 소고춤 등, 민속놀이마당에서 신명을 돋우는데 빠지지 않는 북소리와 달구벌북춤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예술의 힘, 북춤에 빠지다’를 출간했다. 황보 회장의 도전은 멈출 줄 모른다. 지금은 농경사회에서 경험한 일을 중심으로 월간지에 칼럼을 쓴다. 5년이나 해온 일이었다. 매사에 열정을 갖고 일을 하다 보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개인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며, 힘닿는 데까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할 거라고 한다.“전통예술을 하던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만 들려주세요.”“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관계자를 찾아갔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식전행사에 대구광역시 시도무형문화재 제2호인 날뫼북을 넣어서 세계 각국에서 온 귀빈을 비롯한 많은 관객들에게 우리의 전통을 알려주면 좋지 않겠느냐고, 서면을 만들어서 건의했는데 이렇다 저렇다 하는 대답이 없었다. 일부러 돈 들여서 만든 서면이었다. 황보 회장은 서면을 들고 행사 담당자를 찾아갔다. 대구문화제가 국제행사에 밑질 이유가 없다며 대구만의 브랜드를 만들면 좋지 않겠느냐고 건의했지만, 국제적인 행사에 걸맞은 공연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묵살되었다.이제는 전국심사위원으로 초빙되고, 예술을 하며 만나는 사람이 많아서 어딜 가든지 당당하게 국악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한다. 전국국악경연대회 심사위원들이 숙소에서 일박을 할 때면, 중요무형문화재와 전공교수, 명인 등 전국에서 40여 명의 심사위원을 비롯한 대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그런 자리에서는 곧잘 공연 아닌 공연이 벌어지고, 달구벌북춤을 보여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그럴 때 황보 회장은 달구벌북춤에 이른 피나는 노력의 과정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고, 달구벌북춤에 대한 명분과 의미를 다듬어갈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인쇄업과 달구벌북춤 외에 황보 회장이 한 일이 또 있다. 그것은 개인의 사비를 들여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에 맞추어 발간한 서각집이다. 군위 삼국유사면의 도곡 장상태, 소남 신태옥 부부가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 기증하려고 사비를 들여서 휘호 150점을 서각으로 만들었는데, 황보 회장이 개인 사비를 들여서 그것을 책에 담았다.“적은 연세도 아닌데, 여러 가지 일이 힘겹지 않으세요?”“아직 반밖에 살지 않은 걸요.”일사천리로 147살까지 산다고 생각하면 아직도 많은 세월이 남아 있고, 자신이 그만큼 젊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 말은 곧 사는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남은 시간 역시 용기 있게 열정적으로 살겠다는 말일 터이다. /글 장정옥 소설가(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

2021-02-23

“의료봉사와 노래로 행복 나누는 삶 이어가고 싶어요”

기자의 개인적 경험에 한정시켜 말하자면 유능한 의사보다 더 만나기 힘든 게 ‘따스한 의사’다. 환자의 아픈 육체만이 아닌 두려운 마음까지 다독여 위로를 통한 치유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의사 말이다.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포항 고창대유외과의원 고창대(52) 원장은 따스한 의사임이 분명해 보인다.2000년대 초반. 막 개원한 젊은 외과의였던 고창대는 유방암 진단을 받은 환자를 만난다. 서울의 큰 병원에서 수술하자는 가족들의 권유에도 그녀는 고 원장에게 수술 받기를 원했다. 이유는 하나.이전에 앓았던 병을 말한 후 “얼마나 힘드셨어요?”라는 위로의 말을 고 원장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이었다. 의사에게는 때로 의술보다 심성이 더 중요한 순간이 있다. 고 원장은 그때 이 사실을 깨달았다.젊은 시절엔 군 복무를 대신해 의료 환경이 열악한 방글라데시에서 30개월 동안 의료봉사 활동을 펼쳤고, 첫아들도 그 나라에서 낳았다. 그때의 보람과 뿌듯함을 잊지 못해 이후에도 여름휴가를 포기하고 베트남, 캄보디아, 몽골, 멀리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까지 의료봉사 활동을 다녔다.그는 말한다. “관광객으로 갔다면 결코 보지 못했을 그 나라의 속살을 살필 수 있었고, 고통에 처한 현지인들을 진료하면서 외과의사로서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걸 이해해준 아내와 자식들에게 고맙다”고.몇 년 전부턴 또 하나 ‘나눔의 방식’도 찾아냈다. 바로 노래다. 고 원장은 아마추어 성악가이기도 하다. 의료봉사가 자신이 가진 재능을 세상과 나누는 첫 번째 수단이었다면, 노래는 누군가에게 감정적 행복감을 선물하는 그의 또 다른 재능기부 방식이다.이처럼 선량한 마음으로 나눔을 실천하며 살고 있는 고창대 원장과의 만남은 시종 즐겁고 유쾌했다. 아래는 바람 차갑던 지난 수요일 오후, 그가 일하는 병원에서 만나 나눈 이야기의 핵심을 정리한 것이다.-포항에서의 개원은 언제였나.△2002년이다. 유방, 갑상선 관련 암과 질병에 대한 수술과 진료를 주로 한다. 개원 당시엔 유방전문의원이 전국에 열 군데 정도였고 경북에선 내가 최초다. 생소한 과목이고 병원 운영의 미래도 불투명했다. 그러나 외과의사를 선택한 내 결정을 후회한 적은 없다. 개원 초기엔 ‘개방형병원’이란 제도를 이용해 환자를 종합병원에 입원시킨 후 직접 가서 유방암 수술을 집도했다. 전국에서 개원한 외과의가 이렇게 한 건 처음이었고, 이 사례를 유방암학회에서 발표도 했다.-의사의 꿈은 언제부터 가진 것인지.△초등학생 시절부터 장래희망이 의사였다. 다행히 성적이 나쁘지 않았기에 다른 생각 하지 않고 의대를 지원했다. 운 좋게 합격할 수 있었다. 포항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사소한 일탈도 했다.(웃음) 당시엔 상위권 학생 중 신청자들이 학교에서 함께 자며 공부했다. 정식 기숙사가 아닌 임시 숙소였는데 거기서 3학년 학생들이 당직 교사의 눈을 피해 화투를 치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의대 재학 시절 에피소드는.△공부와 시험에 파묻혀 살았다. 시체 해부 실습도 여러 친구들이 함께 해주었기에 큰 두려움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에델바이스’란 이름의 중창단에서 활동한 건 즐거운 추억이다. 의대엔 클래식 악기를 연주하는 동아리는 있었는데, 노래 동아리가 없어 우리 동기들이 처음으로 만들었다. 첫 연주회 지휘를 내가 맡았던 것도 잊을 수 없는 학창시절의 기억이다. 현재 ‘에델바이스’는 의대 내에서 최고의 인기 동아리가 됐고, 해마다 발표회도 연다. 수련의 시절엔 너무나 엄했지만, 전문의가 된 이후엔 누구보다 우리들에게 자상했던 소아외과 교수님도 잊을 수 없다.-방글라데시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한 것으로 안다.△학생 때부터 인생의 일부분은 봉사활동에 투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OECD국가에서 의무적으로 후진국에 ‘국제 협력 의사’를 파견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지원했다. 매년 파견되는 나라와 전문 과목이 다른데 당시 방글라데시에서 외과의를 필요로 해 거기로 가게 됐다. ‘국제 협력 의사 4기’다. 꼭 가고 싶어 미리 방글라데시에 있는 선배들에게 연락도 하고, 영어 면접 준비도 열심히 했다. 당시 연애 중이던 지금의 아내도 내 뜻에 동의했고 신혼을 방글라데시에서 보냈다. 첫아들도 거기서 낳았다.-방글라데시에서 당신이 본 것과 느낀 것은.△방글라데시는 가난한 나라다. 하지만, 국민들은 궁핍함을 비관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들 대부분이 무슬림인데 시간에 맞춰 기도를 빼놓지 않으면 다음 생에는 보다 나은 환경에서 태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힘들 때도 있었다. 임신한 아내가 입덧으로 너무 고통스러워하기에 홀로 한국으로 보낸 적도 있고, 두 살배기 아들이 풍토병에 걸려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봐야했던 게 마음 아팠다. 한국이라면 걸리지 않았을 병 아닌가.하지만 보람이 더 컸다. 타인을 도와줄 수 있는 내 환경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고,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현지인들과의 만남은 내게 많은 걸 가르쳤다. 한국에서라면 보지 못했을 넓은 세계의 변화를 감지하는 안목도 키울 수 있었다. 더불어 외과의사로서의 자부심을 새삼 다진 시간이었다. 의료봉사 현장에서 가장 적합한 과목이 외과임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방글라데시 외에도 다양한 지역으로 의료봉사를 다닌 것으로 들었다.△귀국 후 처음엔 서울에 살았는데 외국인노동자 진료에 참여했다. 한국에 온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자기 나라 말을 쓰는 한국인 의사를 신기하게 보며 반갑게 다가오기도 했다. 방학 기간엔 팀을 만들어 몽골, 캄보디아, 베트남 등을 다녀왔고 몇 년 전엔 포항시장 등과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를 다녀왔다. 의료서비스를 받아 보기 힘든 현지인들을 진료하면서 의사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을 맛보았으니, 의료봉사 활동을 통해 내가 그들에게 더 큰 선물을 받은 셈이다.-의사로 살아오며 잊을 수 없는 환자는.△개원 초기다. 그때는 포항에서 유방암은 완전절제수술만 했는데, 지역 최초로 유방보존수술을 시작했다. 40대 여성 암환자가 있었다.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수술받자는 친지들의 권유에도 내게 수술을 신청했다. 이유를 물었다. 자신이 과거에 앓았던 자궁암에 관해 누구도 “힘들었지요?”라고 묻지 않았는데, 내가 그 이야기를 해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의사에겐 실력만이 아닌 환자의 마음을 알아주고 다독여주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게 됐다.-‘의사 고창대’로서의 보람과 고민은.△외과의사가 된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유방 질환 전문가로서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생활 방식과 사회 구조의 변화로 유방암 환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부분을 살펴줄 전문가가 필요하다. 다행히 다녀간 환자들이 인정해 주고 알려준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싶어 한다. 예약 대기 시간을 줄이면서도 환자 한 분, 한 분에게 충분한 설명을 드리려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아마추어 성악가로도 활동하고 있는데.△2018년 의대 졸업 25주년 행사에서 중창단으로 무대에 섰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교회 성가대 활동을 하고 있다. 2018년 이후엔 레슨도 받기 시작했다. 이후 포항에서 작은 연주회도 열고, 2019년엔 아마추어 성악 콩쿠르에서 입상도 했다. 또, 포은도서관이 주관한 재능기부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아름다운 노래로 환자들과 더욱 친근하게 소통하고 싶다.-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지난해엔 코로나19로 봉사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상황이 좋아지면 의료봉사는 물론, 노래를 통한 재능기부도 다시 시작하고 싶다. 바쁘게 살다 보니 벌써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흔히들 ‘100세 시대’라고 말한다. ‘내가 이 나이에 뭘 할 수 있을까’라고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삶을 계속 추구하고자 한다. 내 도전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 역시 행복하지 않겠는가./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2-17

옛이야기 품은 우리의 강과 산으로 봄마중

경상북도 북부를 여행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유사한 말을 듣게 된다. 상주시, 안동시, 예천군 주민들은 “우리 고장이야말로 조선 유학(儒學)의 본산(本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터무니없는 과대 포장도 아니다. 이 지역이 배출한 유학자의 숫자와 학문적 성취로 일가를 이룬 선조의 숫자, 곳곳에 산재한 서원(書院)을 볼 때 지역민들이 가지는 긍지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상주시를 여행했던 몇 해 전. 경천대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거기서도 산책 나온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몇 분에게서 앞서 언급한 이야기를 들었다.“조선 문반 오분의 일은 우리 동네에서 나온 기라. 거짓말이 아이데이.”실제로 그랬다. 낙동강이 한눈에 조망되는 무우정(舞雩亭)에 올라 내려다보니 그 풍광이 중국 고전소설을 읽으며 만나던 선경(仙境)이었다. 뿐인가. 빽빽하게 들어선 소나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절로 곧은 절개의 선비를 떠올리게 했다.적지 않은 시인묵객이 경천대를 지칭해 “길고 긴 낙동강에서 만나는 최고의 풍경”이라고 상찬했다. 그래서다. 경천대는 부정할 수 없는 ‘낙동 제1경’으로 자리 잡았다.◆ 인간이 아닌 하늘이 만들었다는 의미의 ‘자천대(自天臺)’로도 불려이런 산세와 풍치를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으니 시서화(詩書畵)에 능한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을 듯했다.독일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Karl Marx·1818년~1883)를 인용해 조금 유식하게 이야기하자면 “모든 인간의 의식은 존재에 규정당하는 것” 아닌가.문장 뛰어나고, 글씨 좋고, 그림에도 빼어난 이들이 부지기수로 살았던 상주시. 그 상주시 관광의 최정점에 서있는 경천대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권장되고 있는 비접촉·비대면 여행에도 썩 잘 어울리는 곳이다.상주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는 바로 이곳 경천대를 아래와 같이 간략하게 안내하고 있다. 읽어보자.“낙동강변에 위치한 경천대는 태백산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 1천300여 리 물길 중 경관이 가장 아름답다는 ‘낙동강 제1경’의 칭송을 받아온 곳으로 하늘이 만들었다 해서 자천대로도 불린다. 낙동강 물을 마시고 하늘로 솟는 학을 떠올리게 하는 천주봉, 기암절벽과 굽이쳐 흐르는 강을 감상하며 쉴 수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과 전망대, 조선 인조 때 대학자 우담 채득기가 은거하며 학문을 닦던 무우정, 임진왜란 때의 명장 정기룡의 전설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전망대, 야영장, 출렁다리, 드라마 ‘상도’ 세트장 등이 갖춰져 있고, 정감 있는 돌담길과 108기의 돌탑이 어우러진 산책로도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척엔 도남서원도 자리하고 있다.”이른바 언택트 관광이 가능하려면 ‘다수의 대중이 밀집된 공간에서 동시에 즐기는 행위’를 경계해야 한다. 경천대는 그게 가능한 여행지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경천섬도 빠뜨릴 수 없는 최상의 언택트 관광지. 상주시청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경천섬을 이렇게 이야기했다.“낙동강 상주보 상류에 위치한 20만㎡의 하중도(河中島)다. 섬을 둘러싸고 흐르는 잔잔한 강물과 비봉산 절벽이 하모니를 이뤄 절경을 만들어내는 생태공원이다.”곧 다가올 봄이면 여기에 피는 유채꽃이 젊은 연인은 물론, 중년 부부까지도 매혹한다. 나이를 불문하고 꽃을 본다는 건 청춘으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 상주시민들의 이런 설명이 덧붙여진다.“봄만이 아니다. 가을엔 코스모스와 메밀꽃이 그저 그만이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학 전망대’에 올라 경천섬 주위 풍경을 만끽하는 건 상주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석양 무렵을 기다려보라. 도시에선 결코 맛볼 수 없는 매력적인 해넘이에 기가 질릴 것이다.”◆ 호남의 시인을 매료시킨 영남의 절경 경천대주민들이 이야기가 마냥 과장된 것이 아님을 문병란(1935~2015)의 시가 증명하고 있다.문병란은 김지하, 조태일, 이성부 등과 함께 호남의 대표하는 시인.민족적 서정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절창으로 20세기 한국 문단에서 이름이 높았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경천대를 돌아보고는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낙동강에 보내는 무등산 노래’다.낙동강은 거기 있고무등산은 여기 있다거기 있는 마음 여기 오고여기 있는 마음 거기 간다오가는 마음 서로 만나고만나는 마음 서로 사랑이 꽃핀다.어기어차 노를 저어라낙동강 칠 백리 두둥실 달이 밝으면율려 개천 송 큰 할아버지 말씀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동방고문화국 지혜의 하늘 넓게 열리고눈빛 고운 사람들 모여 태양을 모시었다.흥부는 맑은 마음 나누어 놀부 가슴 다스리고놀부는 참회한 마음 나누어 흥부의 가슴 채워주고햇빛 달빛 별빛 놀빛 모두 불러 모아흥부 놀부 다시 만나 형제 사랑 노래한다.하나이면서 둘둘이면서 하나시작은 끝도 없이 영원무궁무등산에 올라 부르는 백두산 노래여낙동강 들과 꽃에 보내는 그리움이여.무등산을 짊어지랴 낙동강을 들이키랴산노래 들노래 서로 만나 어우러져니캉 내캉 나누는 마음 합치는 마음무문대도 남북통일 태극세상 밝혀내자.다 드러내고도 부끄러움 없는 밝음꽃은 꽃끼리 사람은 사람끼리닫힌 것 열고 막힌 것 뚫고한글 세상 삼천리 사랑시를 읊으리라두둥실 두리둥실 우리 모두 하나 되자.영남의 낙동강과 호남의 무등산을 소재로 동서화합을 넘어 남북의 통일까지를 문장 안에 숨긴 문병란의 이 작품은 ‘아름다운 풍경은 성정이 다른 인간들을 서로 포옹하게 만드는 힘까지 지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남북과 동서의 갈등이 없는 하늘로 떠난 시인을 추모한다는 뜻에서 경천대와 경천섬을 돌아보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읊조려 보면 좋을 시다.◆ 임금이 편액 내린 도남서원에도 곧 봄이 올 터굳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끝이 난다. 고통 또한 그렇다”는 루이제 린저(1911~2002)의 진술을 인용할 것까지도 없다.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어떤 강력한 힘을 가졌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인간에 의해 그 기세가 꺾일 것임을 우리는 안다. 최근에는 각국에서 백신 접종도 시작됐다.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이것은 누구도 막지 못할 자연의 흐름. 한국 역시 2021년의 봄이 분명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상주를 찾아 경천대와 경천섬을 유유자적 산책하고 멀리 보이는 도남서원까지 가보자.그곳은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 노수신, 류성룡, 정경세, 이준의 위패를 모신 사액서원(賜額書院)이다. 사액서원이 뭔가? 왕이 이름을 지어 편액(扁額·이름을 쓰거나 새긴 액자)을 내림으로써 그 권위를 인정한 서원이다.도남서원은 조선 숙종 때 사액서원이 됐다. 1871년엔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안타깝게 허물어졌으나, 지난 1992년 뜻을 모은 상주 유림들의 힘으로 복원된 공간.거기서 도도하게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21세기 우리가 잊고 살았던 인간답게 사는 길과 윤리와 도덕의 본질을 한 번쯤 생각해보는 시간은 누가 뭐래도 분명 가치 있는 일이 아닐지./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2-16

빛으로 담아낸 영감의 세계

기도로 시작하는 삶!인간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은 기도뿐이다. 사방이 고요히 어둠에 가라앉은 새벽의 어둠 속에서 그는 기도를 한다. 지금은 곁에 없지만 큰 스님의 가르침으로 기도하는 법을 배웠다. 생전에 큰 스님은 자신이 죽고 나면 금강경에 의존하라고 했다. 기도와 촬영삼매경을 통하여 지혜를 터득하였다. 그 지혜는 앞날을 미리 내다볼 수 있게 하고, 한 번밖에 볼 수 없는 결정적 순간을 예측하여 사진에 담아내게 했다. 설악산으로 갔다. 소나무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잡으려고 밤 2시에 산을 올라가고 하루 한 끼만 먹으며 두 달을 보내고 돌아와 사흘을 앓았다. 팔공산을 종주하다 영양실조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파티마병원에서 여영환 신부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았다. 그날부터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겼다.사진작가 장국현은 기도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그에게 기도는 하느님과 교유하는 시간이고, 신의 계시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불현듯 영감이 다가오면 그는 시간에 아랑곳하지 않고 카메라를 들고 나간다. 한밤중에 산을 올라가면서도 큰 벗을 함께 하는 듯 두려움을 모른다. 오로지 혼자가 되어야 하는 그 순간의 외로움은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다. 찰나의 신비를 포착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 작가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나’를 잊어야 만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위해서 작가는 길을 떠나기 전에 자신을 내려놓는다. 아침마다 신에게로 다가가는 그 기도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기도는 영혼의 일이고, 사람은 누구나 간절히 원하면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따를 뿐이다.방송국에서 설중 대왕송을 찍자고 할 때도 그가 날을 잡았다. 산속에 텐트를 치고 사흘 동안 야영을 했다. 산을 오를 때는 눈이 오지 않았다. 대왕송 가까운 곳에서 텐트를 쳤는데, 밤 세시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타이밍이 절묘했다. 사람들이 그를 ‘영적인 작가, 신들린 작가’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타이밍을 잘 잡아내기 때문이다. 텐트생활 사흘 내내 눈이 내려 60cm나 쌓였다. 사진을 찍는 동안 나무에 덮여 있던 눈이 얼고 상고대가 맺혔다. 소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상고대가 잘 맺히지 않는다. 높은 산의 강추위만이 거목의 소나무에 서리꽃을 만들 수 있다. 눈 속에서 사진을 찍는 그를 방송국 사람들이 또 카메라에 담았다. 추위에 눈물이 나고, 콧물이 흘러 고드름이 맺혔다. 그런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신들린 듯 사진을 찍어대는 그의 옆에서 방송국 사람들이 추위에 벌벌 떨었지만 촬영삼매경에 들어간 그는 아무런 고통도 추위도 느끼지 못했다.그런 신목을 찾아 산을 오른 게 몇 년인가. 신목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쉽게 보여주지 않고 ‘바로 이거다!’ 하는 찰나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나무의 진짜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하느님과 사진을 찍는 사람과 나무가 삼위일체를 이루는 계시의 순간이 주어져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는 철저히 믿고 있다. ‘사진은 티이밍의 예술이다.’ 작가는 단 한 장의 사진을 위해 그 절대 절명의 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사진이 되려면 구름도 적당히 있어야 하고, 각도까지 맞아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다.생애 단 한 장의 사진을 건지기 위해 백두산 정상에서 두 달간 머물렀다. 자연이 보여주는 극적인 찰나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동안 몸무게가 12kg이나 빠졌다. 그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아서 마침내 장백폭포에서 구름이 밀려왔다. 맑은 하늘을 바탕으로 구름이 바람을 따라 흐르다 천지를 감싸듯이 가득 덮었고 산은 티 없이 맑았다.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그 순간을 위해 17년 동안 백두산을 오르내렸지만 그런 만남은 처음이었다. 그는 신들린 듯 셔터를 누르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오랜 기다림과 기도가 없었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었다. 바람과 구름은 움직이는 것이고, 자연은 쉬지 않고 변화를 보여준다. 작가는 그것을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여겼다. 신이 천지를 중심으로 천당과 극락을 재현해서 보여주었다고.“어째서 전체가 아니고 나무의 부분을 찍는지 설명해주세요.”“나무의 아름다움을 실감나게 보여주려면 실물크기와 같이 보여줘야 해요. 나무 전체를 보여줄 수 없으니 부분의 디테일함을 살려서 그 생생함을 그대로 전달하는 거죠.”실물이 주는 감동을 완벽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가장 단순하고 함축되고 디테일한 부분으로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나무를 작가의 주관이 아니라 사진을 보는 사람의 주관으로 찍어야 한다고 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실물을 보고 있기 때문에 자칫 사람들이 알고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만, 사진은 작가만 좋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며 자기도취에 빠지면 실물이 주는 감동을 전하기 어렵다고 한다. 작가가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백두산 천지의 아름다움과 거목의 신비로운 모습을 담은 영상이 차례로 펼쳐졌다. 동영상에 흐르는 바탕음악이 대한민국 남성 재즈 보컬 1세대인 김준 씨가 장국현 선생님에게 헌정한 노래 ‘고송의 길’인데, 국악인 김용우 씨가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대관령 제왕산에 산다는 신목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그 나무 한 본을 두고 8년이나 좇아다녔어요.”수령 900년이나 되는 소나무인데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높이가 10m 넘고 밑둥치에 지름 1m의 큰 혹이 달려 있으며 나무둘레가 3m 넘는다는, 그 신목을 찍으려고 작가는 동상에 걸릴 각오를 하고 산에 올라갔다. 영화 30도의 칼바람이 뺨에 면도날을 긋는 것 같은 아픔을 남기는 데도 얼어 죽지 않고, 동상에 걸리지도 않은 것은 완벽하게 촬영삼매경에 들어갔기 때문이라며, 스스로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영적인 상태여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했다. 좋은 나무와 좋은 사진을 찾아서 산을 헤매고 다닌 지 벌써 52년째라고 한다.“소나무를 보면 바로 저거다 하는 영감이 오는지요?”“가까이 가면 벌써 서늘한 기운이 뻗칩니다.”그는 나무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낀다고 한다. 오래 나무와 교류하며 살아온 결과일 것이다. 강원도 높은 산의 고사목은 죽고도 썩지 않고 산 나무와 생을 함께 한다며, 그렇게 영령한 기운을 뿜는 나무는 보통 산에서는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깊은 산을 찾아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작가는 사진작가가 알아두어야 할 여러 가지 덕목을 언급했다. 안개가 끼어 있을 때 상고대를 가장 아름답게 담을 수 있다거나, 별도 색깔이 있다거나, 안개로 농담이 투명해지면 실체가 분명해지는 반면에 뒤에 있는 부분은 희미해진다는 얘기 역시 오랜 경험이 일러준 가르침이었다. 눈이 올 때는 사진을 멀리서 찍어야 한다며 가까이 가면 그 아름다움이 줄어든다고도 했다. 밑둥치가 새카맣도록 큰 번개를 맞은 거목이 끄떡없이 살아서 잎을 피운다는 말에 소름이 돋았다. 높은 산에서는 산 아래서 상상할 수 없는 온갖 조화로움이 실현된다는 말이 여운을 준다. 그간의 작업 결과를 담은 동영상에서 나는 잠깐 거대한 자연의 신비를 엿보았다. 그를 보고 있으면 작가는 하늘의 보호를 받는 존재라는 확신이 명확해진다. 촬영삼매경에 들어가서 자신을 잊은 그 순간, 작가는 죽음이 코앞에 다가와도 위기를 못 느끼니 보다 못한 신이 그를 보호해줄 수밖에.“사진의 의미가 무엇일까요?”“사진은 기록성을 가진 예술입니다.”작가의 영상에 담긴 수만 점의 거목들도 한 세대만 넘어가면 다 죽고 말 거라며, 작가가 죽음의 위기를 넘겨가며 작업에 매달리는 것도 사라지는 아름다움을 기록해두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 붉은 주목 같은 아름다운 나무들이 가장 먼저 죽고 다음이 소나무라고 한다. 동영상에 담아둔 작품 중에 이미 죽은 나무가 많다며, 사진의 의미는 사라지는 것의 오묘한 아름다움을 영원히 보존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주 만물 중에 죽지 않는 것이 없고, 나무 역시 때가 되면 그렇게 사라진다고.자연은 인간들에게 많은 이익을 주지만 무서운 피해를 주기도 한다. 암벽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를 찍기 위해 바위에 매달려 죽을지 살지 모르고 셔터를 누를 때마다 그는 하늘에 자신을 맡긴다. 깊고 깊은 산을 헤치고 다니며 찍은 사진들이 모두 그 결과물이다. 그 동안 찍은 사진이 수십만 장이고, 필름도 큰 것으로만 찍는다.학은 지혜의 상징이고 원앙새는 사랑의 상징이다. 사랑이 완성되면 지혜가 되고, 지혜는 가슴에서 나온다. 그것을 단적으로 표현하신 분이 바로 김수환 추기경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지혜가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기까지 70년이 걸렸다고 하셨다. 산과 소나무가 주는 에너지가 그에게는 모두 빛이고 성령이며,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지혜로 인한 깨달음이라고 믿고 있다. 참 예수님은 자신의 가슴에 있고, 소나무와 자연이 그에게는 신의 기운이라며 사진을 찍는 순간 그는 자신의 몸속에서 움직이는 생명의 기운을 느낀다고 한다. 자신이 죽지 않는 존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동안은 죽음이 두렵지 않고 내일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글 장정옥 소설가(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

2021-02-16

겨울엔 산타, 봄엔 백두산호랑이… 상상 그 이상의 짜릿함

‘경북의 오지(奧地) 중 오지’로 불리는 봉화군.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에도 봉화는 한적한 여유로움을 추구하는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북적거리는 인파와 현란한 네온사인을 피해 유년의 기억 속에 아름답게 남아 있는 ‘시골 마을에서의 며칠’을 꿈꾸던 관광객들은 봉화군의 피할 수 없는 매력에 빠졌다. 기자도 마찬가지였다.부산과 서울, 대구와 광주 등 인구가 최대 1천 만 명에서 최소 100만 명이 넘는 대도시에서만 살아본 이들에게 겨우 몇 만의 주민들이 1970~80년대의 따스한 공동체적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봉화군은 그 자체로 신비한 공간이다. 접촉과 대면을 가능하면 줄이자는 게 여행의 대세로 자리 잡은 지난해와 올해.봉화군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언택트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그 중심에 ‘국립 백두대간수목원’과 ‘분천역 산타 마을’이 자리한다.코로나19로 인해 전국을 거미줄처럼 잇던 여행 경로가 끊기기 이전인 2019년 봉화군을 찾아 이틀을 머물렀다. 그때의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먼저 국립 백두대간수목원 이야기다.◆ 백두대간수목원에서 선물 받는 즐거움과 치유의 시간사람들 상상의 영역을 훌쩍 비껴난 5천179ha의 광대한 땅에 2천200억 원이 넘는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고, 7년의 시간을 들여 조성한 백두대간수목원은 누가 뭐래도 봉화군을 대표하는 관광지.도시에선 쉽게 보기 힘든 동물과 식물을 보며 느끼는 즐거움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교육적 효과, 여기에 탁 트인 숲에서 느끼는 ‘힐링의 시간’까지 함께 하는 공간. 봉화군청 홈페이지는 이곳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2008년 9월 대통령 주재 국토균형발전위원회의 결정으로 백두대간을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산림·생물자원의 보전과 관리를 위해 백두대간수목원 조성의 역사가 시작됐다. 기후대별·권역별 국립수목원 확충 계획의 일환으로 기후 변화에 취약한 산림생물 자원의 안정적 확보와 보전,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된 게 바로 백두대간수목원. 이는 국가 광역 경제권 30대 선도 프로젝트 중 문화·생태·관광기반 조성의 핵심 사업이기도 하다. 다가올 2030년엔 아시아 최고의 수목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금도 여러 가지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식상한 표현이지만 ‘광활한 땅’에 세련되게 조성된 각종 숲과 정원, 거기에 식물원과 휴게 공간까지 들어선 백두대간수목원은 편안하게 트램에 올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관광객들에게 작지 않은 만족감을 선물한다.◆ 백두산 호랑이, 기다림을 주는 존재가 있다는 행복감여기에 더해지는 즐거움이 ‘호랑이 숲’이다. 쇠창살이 시야를 가리는 좁은 우리에 갇힌 호랑이가 아닌 드넓은 초지 안에서 어슬렁거리는 호랑이를 볼 수 있는 곳이 한국에 몇 곳이나 있을까?게다가 백두대간수목원에서 만나는 호랑이는 몸집이 작고 볼품없는 인도나 방글라데시 호랑이가 아닌 ‘백두산 호랑이’다. 백두산 호랑이는 여타 호랑이와 어떻게 다르냐고? ‘시사상식사전’을 펼쳐보자. 이런 설명이 나온다.“한국 호랑이를 가리키는 말로, 조선범·시베리아 호랑이·아무르 호랑이·동북호라고도 불린다. 백두산 호랑이는 육중한 체구, 둥근 머리, 작고 동그란 귀가 특징. 앞발과 어깨의 근육이 매우 발달했으며 힘이 세다. 19세기 중엽 동북아시아 일대의 사냥꾼들은 백두산 호랑이를 가장 용맹하다고 증언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총기를 이용한 사냥이 보편화되었고, 다른 야생동물처럼 감소세를 보였다. 현재 백두산 지역·자강도 와갈봉·강원도 고산군 일대 호랑이 서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기자는 소규모 동물원 창살 안에 고양이처럼 웅크린 호랑이가 아닌 널찍한 평지에서 사방 백 리를 장악하며 포효하는 호랑이를 본 적이 없다.그래서였다. 지난번 봉화 여행에선 1시간 넘게 백두대간수목원의 호랑이를 지켜봤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간이 아깝지 않다.그리고, 그 와중에 40년 전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호랑이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런 것이다.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사투리를 그대로 옮긴다.“이거는 내가 동네 아지매한테 들은 이야긴데... 일제시대 때 왜놈들이 조선 사람들을 사가꼬(고용해서), 오만 좋은 물건들을 가지고 부산으로 갔다카대. 그란데 해가 뉘엿뉘엿 할 때 산을 넘어가는데 호래이(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난기라. 스무 명도 넘는 장골(성인 남성)이 모조리 바지에 오줌을 지맀다카더만. 그날 딱 여섯 명이 죽었는데, 모조리 왜놈들인기라. 조선 사람들은 하나도 안 죽있다카데. 그 호래이가... 조선 호래이는 다 아는 기라. 냄새만 맡아도 안다. 왜놈인지 조선 사람인지.”조모는 1915년에 태어났다. ‘매일신보’ 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호랑이가 마지막으로 포획된 게 1924년 강원도에서라고 하니, 이 땅에서 호랑이와 함께 살아본 경험이 있는 할머니 말에는 신뢰성이 담긴 게 아닐까? 어쨌건.한 가지 매우 아쉬운 점이 있다. “호랑이가 살고 있는 공간의 이동로 확장과 보수를 위해 공사가 진행 중이니, 호랑이와의 재회는 4월 1일이 될 듯하다”는 게 백두대간수목원측의 설명.여기에 웃으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이번 설 연휴엔 수목원에서 식물들과 만나고, 봄이 오면 한 번 더 봉화를 찾아 백두산 호랑이와 인사 나눠주면 좋겠다. 기다림은 만남의 기쁨을 더 크게 해주는 것 아닌가?” 맞다. 틀린 말이 아니다.◆ 즐거움 넘치는 공간으로 진화하는 분천역 산타마을백두대간수목원에서 청정한 공기를 마음껏 맛봤다면, 이제 발길을 분천역 산타마을로 옮길 시간이다.여기선 아이들은 물론 어른도 너나없이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선물이 가득 든 커다란 자루를 멘 흰 수염 할아버지 산타클로스를 믿었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 때문일 터.여기에 눈까지 내리는 날이면 핀란드나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어느 한적한 산골 마을 풍경이 봉화군에서도 그대로 연출된다. 눈싸움을 하며 뛰어다니는 가족 단위 여행자들의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산타마을 방문을 권하는 봉화군 관계자의 자랑을 들어보자.“백두대간 협곡열차, 낙동강 세평하늘길, 분천역 인근 빼어난 경치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새로운 관광명소로 만들 목적으로 2014년 조성이 시작됐다. 산타열차와 눈썰매장, 레일바이크와 산타우체국 등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이전 겨울이면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아줬다. 그 결과 한국관광공사 주관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고, 2015~2016년 한국지역진흥재단의 겨울 여행지 선호도 조사에서 2위에 올랐다. 또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지이기도 하다. 코로나19가 빨리 진정 국면에 들어서서 그런 영광이 재현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기자가 봉화군을 여행한 때는 지지난해 늦여름. 그때도 분천역 산타마을은 ‘여름 무더위를 이기게 해줄 산타마을의 겨울 풍경’이란 콘셉트로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그 여행에서 ‘겨울이 오면 또 한 번 분천역을 찾아 산타마을의 진면목을 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다. 동행한 선배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이곳은 여름과 겨울 구분 없이 가족과 연인이 즐거움과 웃음을 나눌 수 있는 관광지다.최근 봉화군은 산타마을을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더욱 많은 곳으로 진화시키려는 청사진을 사람들 앞에 내놓았다.앞으로 3년간 25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분천역 산타마을을 ‘한국의 겨울왕국’으로 자리매김 시키겠다는 게 봉화군의 계획. 이를 위해 올해는 산타의 집,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산타클로스의 길, 순환산책로 등의 시설이 들어선다.이어 다양한 세대의 입맛을 고려한 식당들이 영업을 시작하고, 기념품 가게를 포함한 편의시설도 대폭 확충될 예정. 여기에 더해 “가상현실 체험관이 신설되고, 주차장도 넓힐 것”이란 게 봉화군청의 설명이다.보다 편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봉화를 즐길 수 있도록 관광 관련 인프라는 오늘도 진화 중이다. 봉화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에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2-09

온 가족 모여하던 윷놀이 온택트로 즐겨볼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속에 민족 대명절 설날이 다가왔다. 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해 정부가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를 시행하면서 예년과 다른 설연휴 풍경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온 가족이 모여 안부를 전하고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나눠먹고, 윷놀이 같은 놀이도 하며 흥겹게 보냈던 설날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어려울 것 같다. 실내에서 아이들과 놀 수 있는 블록 놀이와 실내 완구, 보드게임, 유아동 도서 등의 판매량도 덩달아 늘고 있다. 온택트로 즐길 수 있는 놀이와 보드게임을 소개한다.1. 진진가진진가는 ‘진짜 진짜 가짜’라는 뜻으로 무엇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리는 게임을 말한다.① 문제출제자를 정한다.(예 : 할아버지)② 문제를 낸다. (예: 할아버지께서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일까요?)③ 보기 3가지를 말한다. 이중에 진짜 2개, 가짜 1개를 섞는다.(예: 1. 과메기 2. 버섯 3. 사탕)④ 나머지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것 중 가짜 하나를 고른다.⑤ 정답을 공개한다.가족이 돌아가면서 문제출제자가 되고 가장 많이 맞춘 사람이 승리하는 걸로 하면 재미있다. 진진가게임을 통해 가족에 대해 더 알게 되는 시간이 될 수 있다.2. 라온라온은 한글 자모음을 이용하여 단어를 만드는 보드게임이다. 30여가지가 넘는 방법으로 라온을 즐길 수 있고 한글을 읽기 시작하는 어린이부터 할 수 있다.최근에는 라온 보드게임을 이용하여 온라인으로 ‘라온재결합 최강가전’이 열리기도 했다. 10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했고 예선 본선 준결승전 결승전까지 치루었다. 주목할 점은 각자 온라인으로 접속해 보드게임 대회를 했다는 점이다. 선수에게 배정된 타일을 보고 자기 차례가 되면 단어를 재결합하여 말하면서 채팅창에 남기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심판은 선수가 말한 것대로 타일을 놓는다. 자신의 타일을 먼저 털어내는 사람이 이기는 방식이다. 라온 보드게임 역시 간단한 준비물(종이, 매직, 가위)만 있으면 집에서도 쉽게 즐길 수 있다.A4용지를 가로 5칸 세로 5칸이 되게 접고 자음 중 12개만 모음 중 8개를 적고 칸대로 오린다. 게임준비는 이것으로 끝. 게임을 진행하는 사람이 주제를 말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자음모음 종이타일을 이용해 단어를 만든다. 단어를 만들 때 마다 점수를 얻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다.3. 빙고게임종이와 펜을 준비, 가로·세로로 몇줄을 치고(보통 5x5가 많이 쓰인다) 거기다가 숫자나 특정 주제의 단어 등을 아무렇게나 써 넣은 후 서로 번갈아가며 숫자나 단어 등을 불러서 자기가 적은 것일 경우 동그라미를 친다. 그렇게 해서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한 줄(또는 여러줄)을 만들면 이기는 게임으로 완성시 빙고를 외치면 된다. ‘설날’ ‘코로나’ 등 공통의 관심사나 이슈들을 주제로 빙고게임을 즐길 수 있다.4. 도전!골든벨티비 프로그램 ‘도전! 골든벨’은 학교를 방문하여 100명의 학생들이 50문제에 도전하는 퀴즈 프로그램으로,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50문제를 모두 맞힐 경우 골든벨을 울리게 되며 골든벨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새겨진다. ‘도전 골든벨!’이라는 보드게임도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문제들이 담겨진 ‘도전골든벨 주니어 버전’과 도전골든벨 프로그램에 나왔던 기출문제가 담긴 ‘도전골든벨 ox퀴즈게임’ 두 종류가 있다. 직접 보드게임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책이나 관심 있는 분야(예: 동물, 인물, 세계여러나라 등등)의 문제를 출제해서 아나운서처럼 퀴즈를 내어보기도 하고 맞춰보기도 하는 등 가족 골든벨 게임을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5. 카드라인동물카드라인 동물은 동물카드를 보고 수명, 길이, 무게 등의 기준으로 나열하는 게임을 말한다.게임을 시작할 때 어떤 기준으로 게임을 할지 정하고 시작하게 된다. 수명을 기준으로 게임을 한다고 예를 들어보겠다. 각자 동물카드 3장씩 나눠갖고 테이블 가운데 동물카드 한 장을 내려 놓는다. 게임이 시작되고 자신의 차례가 되면 가진 카드 중 한 장을 골라서 기준카드의 동물보다 수명이 짧을 것 같으면 기준카드의 왼쪽, 수명이 길 것 같으면 기준카드의 오른쪽에 내려놓게 된다. 뒤집어서 정답을 확인하고 맞으면 자신의 차례가 넘어가고 틀리면 카드더미에서 카드를 가져오게 된다. 게임이 진행되고 가장 먼저 자신의 카드를 내려 놓는 사람이 이기게 된다.기준에 따라 예측하여 오름차순으로 나열하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유아, 저학년 아이들과 할 때는 친척들이 사는 곳을 가까운부터 먼 곳까지 말해보기, 가족, 친지들의 나이순서대로 예측해서 나열해보기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6. 브레인스틱을 할용한 윷놀이설날에 윷놀이가 빠지면 섭섭하다. 온라인으로 윷놀이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윷놀이 할 때 사용하는 윷가치는 4개이고 던져서 나온대로 말을 움직인다. 하지만 10개의 나무젓가락이 있으면 윷가치를 던지지 않고 뽑는 방식으로 윷놀이를 진행할 수 있다. 필자가 시각장애인 윷놀이 대회의 진행을 도우면서 알게 된 윷놀이 방식이다. 시각장애인 윷놀이의 윷가치는 브레인스틱이라는 것을 주로 활용한다. 하지만 가정에서 할 때는 사지 않고 나무젓가락에 숫자를 적어서 할 수 있다. 나무젓가락 10개에 1~10까지 적어주고 자신의 차례가 되면 섞은 다음 3개를 뽑는다. 3개의 숫자의 더해 나온 합의 끝자리수가 1·6·9이면 도, 2·7·0이면 개, 3·8이면 걸, 4면 윷, 5는 모가 된다. 윷놀이하는 방법은 똑같고 윷놀이판은 말을 놓는 곳마다 이름이 적혀 있어(간 칸마다 이름이 적혀 있는 윷놀이판을 참고한다) 말로 어느 칸까지 갈지 정확한 자리를 말할 수 있다.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면 네이버에 ‘보드게임 키키쌤’이라고 검색하면 된다. 보드게임 키키쌤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Zoom을 활용한 보드게임에 들어가면 위 게임들의 방법이 사진과 함께 자세히 설명돼 있다.

2021-02-09

새생명을얻고태어나는헌옷사랑

60년대 70년대만 해도 집집마다 아이들이 대여섯 명 이상이었다. 칠 남매, 팔 남매, 아이가 더 많은 집은 십남매도 예사로웠으니 그야말로 베이비붐 시대였다. 온 나라가 가난에 허덕이는 것이 마치 아이들 때문이라는 듯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을 내세우며 ‘둘만 낳아서 잘 기르자’는 캠페인을 벌이기에 앞장섰다. 나중에는 둘도 많다며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자고 외치는 사이, 사회 전반에 아이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먹을 입이 많아서 생활은 곤궁하고 옷차림은 남루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엄마들은 틈만 나면 양말 꿰매는 게 일이었고 첫째가 입던 옷을 둘째와 셋째가 물려받는 게 예사였다. 오죽하면 옷 도둑이 다 설치고 다녔을까.헌옷 수거업체를 찾았다. 사람 좋은 얼굴을 한 김재원 대표님이 따끈한 믹스커피를 주었다. 아파트나 주택, 혹은 의류상가와 공장에서 밀려나온 옷들이 넓은 공장에 태산처럼 쌓여 있었다. 롤러가 돌아가며 헌옷을 실어 나르자 헌옷을 종류별로 분류하는 직원들이 바지는 바지대로, 점퍼는 점퍼대로, 가방은 가방대로 골라내어 제각각의 박스에 나누어 담았다. 종류별로 분류된 의류들이 네모반듯한 모양으로 포장되어 지게차에 실려 가고, 공장 한편에 포장된 물건들이 블록처럼 차곡차곡 쌓였다.믹스커피를 마시며 언제부터 그 일을 했느냐고 물었다. 대표님은 헌옷수거만 15년이라며, 소줏잔 기울여가며 해야 할 얘기를 맨숭맨숭한 정신으로 하자니 말문이 막힌다며 웃었다. 양복 만드는 기술을 배우겠다고 해동라사를 찾아갔던 스무 살의 청년이 파란만장한 인생의 고비를 다 넘기고 재활용업체에 앉아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니까 옷으로 시작된 삶이 이순에 이르도록 옷을 만지고 있다는 얘기다. 15년 동안 마시고 산 먼지가 얼마일까. 옷 도둑이 설치고 형제들의 옷을 물려받아 입던 시절이 그리 멀지 않은데 이제는 옷이 가장 싼 시대가 되었다. 옷이 떨어져서 못 입는 게 아니라 싫증나고 유행이 지나서, 작아서 못 입게 된 옷이 멀쩡한 채로 버려진다. 이런 변화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서?“우리 주위에 헌옷수거함이 생긴 게 언제예요?”“1997년에 외환위기를 맞으며 주위에 어려운 사람이 많이 생겼고, 헌옷이라도 모아서 불우이웃을 돕자고 시작한 것이 헌옷수거였어요.”아파트와 주택가에 철판으로 만든 사각형 수거함이 놓이고, 주부들은 아이들이 자라서 더 이상 입을 수 없게 된 옷과 장롱을 비좁게 하는 헌옷을 정리해서 비닐에 차곡차곡 담아냈다. 어차피 버려야 할 옷이 재활용되어 누군가를 도울 수 있으니 멀쩡한 옷을 버려도 흰밥을 버리는 것처럼 마음이 무겁지 않았다. 그렇게 아 름다운 취지로 시작된 헌옷수거가 민간업체로 넘어가며 재활용업체가 생기고 헌옷을 외국으로 수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었다. 이제 헌옷은 다른 나라로 가서 새 주인을 만나 새롭게 태어나고, 외화를 벌어들이는 주요한 물자가 되었다. 옷을 나눠 입는다는 아름다운 취지가 글로벌화 되어 가난한 나라를 돕는다는 얘기가 될 것 같다. 먼지가 풀풀 나는 일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자원을 재생산하는 일이고, 사람들은 자신이 입다 버린 옷이 재활용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자원은 매우 중요한 것이니.“어떤 연유로 헌옷에 눈을 돌리게 되었어요?”“유아용 의료총판을 하다 부도를 맞았어요.”김재원 대표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곤 곡절 많은 삶의 여정을 들려주었다. 고급 양복을 만들겠다고 해동라사를 찾았던 꿈 많은 청년이 기성복에 눈을 뜨며 유아복 의류판매를 하게 되었고, 대구 경북 총판의 일을 하다 보니 대리점이 40여 개로 불어나 있더란다. 인생이 무난하게 만 흘러가는 게 아녀서 본사가 부도를 맞으며 그에게도 직접적인 피해가 들이닥치더라고 했다. 40여 개의 대리점에서 반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오래 거래를 해오던 대리점 점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반품을 받다 보니 나중에 빚이 산더미처럼 불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더라고 했다. 그때 대리점에서 받아야 할 외상값도 많았는데 대표님은 수금 장부를 찢어 없앴다고 한다. 왜 그랬느냐고 물으니 서로가 어려운 시점이어서 차마 점주들에게 외상값 내놓으라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 했다. 부도를 낸 본사 잘못이지 대리점 점주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어려운 지경에 처하고도 남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그 마음이 세상을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지만, 정작 그가 짊어진 어려움은 누가 구해줄지.“빚도 많고 일자리도 잃고, 난감했겠어요.”“기가 막혔죠. 생각다 못해서 의류업체인 동해섬유를 찾아갔어요.”생전 처음 가는 곳이었고, 동해섬유의 사장님도 처음 본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초면의 사장님에게 부도를 맞고 다 털어먹었는데 재고라도 있으면 팔아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사장님이 8톤 트럭을 부르더니 차량 가득 물건을 싣고는 가져가서 팔아보라 하더란다. 남자 사각 팬티를 수입했는데 팔지 못하고 쌓아둔 물건이라며. 이름도 모르고 물건값도 없는 사람인데 뭘 믿고 물건을 주느냐고 물으니 사장님 하시는 말씀이, 다 털어먹었으니 물건값 줄 여력도 없지 않느냐며 팔아서 갚으라고 하더란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외상 장부를 찢어버린 사람의 심성을 알아보신 것인지.김재원 대표는 동해섬유 사장님이 아무 조건 없이 내준 물건을 싣고 시장으로 갔더란다. 다행히 장사 물을 먹고 산 관록이 있어서 대표님은 사각팬티 한 차를 일주일 만에 다 팔았다. 사람이 죽으란 법이 없는지, 정신만 차리면 살아날 방법을 찾을 수 있는지. 동해섬유 사장님의 배려로 사각팬티를 두 차나 더 팔고 나서야 겨우 물건값을 치르고 생활비가 생기더라고 했다. 놀라운 실적이었다.“일자리가 안정된 것이 그때부터인가요?”“고군분투하며 뛰어다니다 보니 표 안 나게 조금씩 나아지더군요.”사각팬티를 팔던 중, 일을 도와달라는 지인의 부탁을 받고 보루 공장으로 갔더란다. 보루를 만지며 내내 했던 생각이 헌옷이었는데, 장사를 하던 기질과 다져진 바탕이 있어서 김재원 대표는 작게나마 독립해서 자신만의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외국으로 수출을 하면 헌옷장사도 해봄직한 사업이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는 구청과 시청, 부녀회의 모임을 찾아다녔다. 부녀회 회원들에게 외국으로 수출한다며 헌옷을 자신에게 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진심 어린 호소가 통했던지 부녀회의 승낙을 받고 헌옷을 수거하게 되었다. 헌옷 수거함인 철통을 살 돈이 없어서 번개시장에서 얻어온 냉장고 박스에 헌옷을 모았다. 수출의 길을 열려니 자본이 필요했다. 가까이 지내는 형이 대출을 받아와서 동업을 하다 나중에 각자 독립하게 되었다.그 숱한 어려움을 겪고도 고난이 끝나지 않았던지 재활용업체의 일이 겨우 안정될 무렵에, 대표님은 너무도 큰 슬픔을 겪고 말았다. 여섯 살배기 막내가 짐을 운반하는 지게차에 부딪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사고를 낸 사람이 직원이어서 대표님은 막내 잃은 슬픔을 뒤로 하고 그 사람을 감옥에서 빼내기 위해 탄원서를 썼다. 자신이 읽어도 눈물이 흐르더라는 그 마음의 아픔을 누가 알까.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대표님의 진실함이 여러 번의 좌절을 겪으면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삶이 제 아무리 고단한 역경을 안겨준다 해도 열심히 살려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니.“이제는 위기를 다 건넌 셈인가요?”“아직도 불안하죠. 나라의 정책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폐기물에 해당하는 헌옷을 상품화시켜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옷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수출을 하니까 세계정세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고 긴장을 살짝 드러냈다. 사는 게 늘 그렇지.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고, 간혹 삶은 잔인할 정도로 가혹하게 사람을 몰아붙이기도 하니 사회의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고말고. 이 시대의 혼돈이 그렇지 않은가. 가게를 얻어서 장사를 시작한 소상공인들이 설마하니 코로나가 덮쳐서 그들을 초토화시켜버릴 거라고 짐작이나 했을라고.대표님의 얘기를 듣고 있으려니, 인간의 삶이란 게 도무지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있나 보다는 생각이 든다. 해동라사에서 시작된 옷에 대한 인연이 유아복 총판으로 이어지고, 걸레를 취급하는 보루 공장에서 동해섬유 사장님이 내주신 사각팬티를 파는 상황에 이르다 헌옷 수거업체로 정착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의 중심에 옷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 기이한 운명 같다. 옷과 맺어진 그 질기고도 기막힌 인연을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 필연이라고 해야 할까. /글 장정옥 소설가(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

2021-02-09

소설·수필·시… 떠나고 싶다면 책장을 넘겨라

어릴 적, 설이 다가오는 시기에는 집집마다 설 준비로 바빴다. 엿을 고고, 가래떡을 뽑고, 집안 대청소도 했다. 고향 떠나있던 자식들이 돌아오고, 친척들이 인사를 올 것이기에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다. 올 설은 거리두기 하는 시기이다. 소설과 수필로 연휴를 채우고 백석의 시로 그날의 분위기를 대신 느껴보길 바란다.△‘여우난골족’/ 백석 시·홍성찬 풀어쓰고 그림이 그림책은 1935년 잡지 ‘조광’에 처음 발표된 백석의 대표시를 그린 것이다. 명절날 엄마, 아빠를 따라 큰집에 가 친척들을 만나 음식을 나눠먹고 즐겁게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는 풍경이 그려진다.어린 ‘나’의 시점으로 구수하게 풀어낸 이야기가 대하드라마처럼 느껴지는 것은 시인이 선택한 평안북도 정주 사투리 덕분이다.백석의 고향 정서와 풍습이 잘 드러나도록 홍성찬 작가는 연변산골마을에서 설을 쇠며 그림책의 뼈대를 잡았다.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평안도 실향민들의 도움을 받았다. 판소리 사설처럼 구성지게 넘어가는 장단으로 평범한 우리 어른들의 삶과 고향의 밤을 잘 보여준다.사실 백석의 시에 나오는 평안도사투리를 읽을 때는 다 이해하지 못한 느낌들이 그림책으로 펴내며 풀어놓아서 또 그림과 함께 읽으니 다 이해가 됐다. 그래도 어린이들이 다 이해하지 못 한 낱말은 뒷장에 사투리 사전처럼 적어두어 친절하게 찾아보도록 했다. 송기떡과 무이징게국, 텅납새는 처음 듣는 말이라 설명을 읽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코로나로 북적거리지 못 할 이번 설 분위기를 그림책을 통해 느껴본다.△ ‘행복한 고구마’/ 목성균 수필선목성균 작가는 글이 한창 피어날 즈음 돌아가셨다. 본인도 놀라셨겠지만 그분의 1집을 받아들고 좋아했던, 곧 뵈러 가자고 했던 우리들의 말들이 허공에 뿌려지게 되어 참 많이 놀랐었다.‘행복한 고구마’는 작가의 1집, 2집, 유고집에서 골라 따로 엮은 수필이다. 어떤 이는 목성균의 수필을 소설이라고도 한다. 그림이 훤히 그려지고 이야기의 힘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세한도가 딱 그런 글이다. 사기등잔은 수필의 정석이라 처음 글을 배우는 이들에게 교과서처럼 읽히고, 어떤 직무위기는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수필가들 속에서만 불려지던 목성균이란 이름이 전국에 알려지게 된 것은 KBS ‘아침마당’ 덕분이다. 어느 날 아침에 그 프로그램에 나와서 강의를 하던 분이 자신이 좋아하는 글이 있다고 잠시 언급한 것이 누비처네였다. 작가의 젊은 시절, 아버지가 부친 아기 포대기 값에 얽힌 이야기이다. 그 누비처네로 첫 아이를 업고 처가댁에 다니러 가던 달밤을 눈에 선하게 표현해놓았다. 목성균의 글 속엔 우리네 고향이 살아 흐른다. 설날에 읽으면 더없이 좋은 글이다.△‘안녕 주정뱅이’/권여선 단편소설집서울 사는 수정이가 집 근처 강가에 그늘막을 치고 한나절 이 책을 읽는다고 올렸길래 ‘제목이 익숙한데 우리 집에 있는 책 같아.’라고 말하고, 그 날 밤 침대에서 읽으려고 꺼내와 폈다. 첫 장을 넘기는데 어째 익숙한 듯 한 배경과 인물들, 몇 장 더 넘기자 밑줄이 좍좍 그어져있다. 내가 읽었던 책이었다.권여선의 글은 문장이 참 좋다. “분자에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놓고 분모에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놓으면 그 사람의 값이 나오는 식이지. 아무리 장점이 많아도 단점이 더 많으면 1보다 작고 그 역이면 1보다 크고.” 모든 인간은 1보다 크거나 작게 만드는 단순함, 그러나 절묘한 문장이 마음을 친다.사람의 얼굴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또 놀랍다. ‘작은 눈, 작은 코, 작은 입에 광대뼈가 조금 도드라져 작은 언덕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 같은 느낌을 주는 얼굴이었다.’ 그러다 몇 장 넘기면 ‘문정은 그토록 이상한 눈빛을 누구에게서도 본 적이 없었다. 작은 언덕이 있는 작은 마을에 이제 아무도 살지 않아요, 하고 말하는 눈빛이었다.’‘삶에서 취소할 수 있는 건 간 한 가지도 없다.’라고 썼다. 우린 살면서 약속도 얼마나 쉽게 취소하는가. ‘안녕 주정뱅이’ 속에 단편 하나하나가 조곤조곤 속삭인다. 읽는 내내 행복했다.△‘악마의 사전’/엠브로스 비어스 지음이 책은 다년간 잡지에 발표한 것을 모아 1906년에 간행한 책이다. 세상에 나온 지 100년도 더 된 책이다. 아직도 살아서 팔리는 책이니 고전의 반열에 올려야 하겠지만 고전목록에 이 책을 끼워 넣은 것을 보지는 못 했다.이 책과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큰아이가 중학생이 되던 해에 나도 다시 대학생이 되기로 했다. 편입을 하고 강의를 들으며 조카뻘 되는 학우들과 공부를 하니 더 열심히 해야만 했다. 교수님이 하는 모든 말에 귀 기울이고 받아 적었다. 간간이 언급한 책 제목도 적어뒀다가 사서 읽었다. 그 중에 이 책의 제목도 있었다.그날 집에 돌아와 얼른 검색해보고 주문했다. 작은 크기만큼 값도 저렴했다. 하지만 내용은 가격처럼 가볍지 않았다. 작가의 냉소적이고 예리한 시선으로 세상을 풍자한 낱말 풀이 책이었다.지금에야 자신만의 사전이 넘쳐나지만 100년도 더 전에 이런 책을 썼다니 시대를 많이도 앞선 사람이었다.단숨에 읽고는 다음 수업시간에 교수님께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고맙다고 인사를 드렸다. 자신이 말을 했었나 하시며 웃으셨고, 강의하면서 수많은 책을 말했을 텐데 그 책을 사서 읽었다고 감사인사를 하는 학생은 처음이라며 밥을 사주셨다.그 후 나도 독서회 수업마다 이 책을 학생들에게 전파했다. 좋은 것은 많은 이들과 나눠야 더 좋은 법이니까.△ ‘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을 만나라’/최도성 지음10년 전 즈음, 스페인에 가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더랬다. 여행가이드북일 거라고 생각하고 샀다가 책장을 넘기면서 스페인과 세계의 역사가 들어있어서 놀랐다. 특히 내가 사실이라고 믿었던 일들이 사실이 아닌, 그래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어서 더 재밌었다.그 중에 우리나라와 스페인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흔히 한국을 처음 방문한 사람이 풍랑을 만나 표류 중에 한국을 찾은 박연이나 하멜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실은 스페인 신부로 일본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일본군을 따라 1593년 조선 땅을 밟은 세스페데스 일행이다.그는 편지로 로마교황청에 임진왜란과 거북선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철갑을 두르고 입에서 불을 뿜는 거북선이 백전백승하면서 일본군을 꼼짝 못하게 하며, 이순신 장군의 위업과 활약상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증명했다. 세스페데스의 고향인 스페인 라만차 지역 톨레도 근교의 비야누에바 데 알카르데테라는 마을에 가면 그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진해로’라는 거리도 있다.스페인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책을 읽게 했고, 책을 읽으며 그 마음을 다지자 드디어 나는 2017년 봄에 스페인 여행을 하게 되었다.코로나도 곧 지나가리니, 그대 어디든 가고 싶다면 가고 싶은 곳에 관한 책을 사라. 곧 그곳에 가게 될 것이니./김순희(수필가)

2021-02-09

아름다운 경북의 명소 언택트 관광으로 즐겨요

1년 넘게 지속하고 있는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도 여전히 시계는 돌고 돌아 2021년, 하얀 소의 해가 찾아왔다.‘신년소망’. ‘새해다짐’. 항상 우리는 무엇인가를 바라고, 또 목표를 정하는 것으로 설을 맞이해 왔다.이번 신축년 역시 설 자체가 가져다주는 설렘과 희망이라는 감정은 사그라지지 않는듯하다. 평온한 가정, 건강한 몸과 마음, 성공적인 취업과 진학, 금연, 금주, 저축 등 각양각색의 소망과 다짐은 얼핏 비슷해 보이면서도 어느 것 하나 쉽게 우위를 점하지 않은 채 모두의 맘 속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다른 점도 있는 것 같다.이는 아마 ‘코로나19의 퇴치’가 신년 소망의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비슷한 이유에서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로 인해 가족 및 친지와의 만남이 막혀버리며 생겨버린 고민 “이번 설 기간을 어떻게 보내지?”란 물음도 시민 대부분이 가지는 생각일 것이다.물론 설에도 쉬지 못하고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들을 비롯해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존경, 또 존경한다는 말씀을 드린다. 그럼 최선은 뭘까. 가장 좋은 것은 모두를 위해 거리두기를 준수하고 만남을 자제하는 등 방역수칙을 따르는 것. 다만 설을 맞아 야외를 찾아 답답한 마음을 풀고 싶다면,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가 꼽은 비대면 관광지 23선을 추천한다.□ 동해안권포항 ‘이가리닻 전망대’서 인생샷을걷는 재미는 경주 ‘감포 깍지길’서동해와 맞닿아 있는 포항·경주·영덕·울진·울릉은 대부분 바다와 연관된 곳이 언택트 관광지로 꼽혔다.먼저 포항은 ‘이가리닻 전망대’. 정확한 주소는 포항시 북구 청하면 이가리 산 67-3이다. 포항 칠포해수욕장을 지나 북쪽으로 해안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온다. 닻 모양을 한 바다 전망대로, 이가리 간이해수욕장 인근에서 노지캠핑이 가능하다. 숨겨진 일출 및 인생샷 명소로 꼽힌다.경주는 ‘감포 깍지길’이 선정됐다. 탁 트인 겨울 바다와 힐링을 부르는 숲이 함께하는 바닷길로, 전촌항부터 송대말등대까지를 잇는 둘레길을 걷다 보면 마음에 휴식을 얻을 수 있다. ‘사람과 바다가 깍지를 낀 길’이라는 뜻을 지녀 붙여진 이름으로 8개 구간이 있으며, 코스마다 독특한 절경으로 걷는 재미가 일품이다.영덕은 영해면 괴시리 상대산에 자리한 정자인 ‘관어대’를 추천한다. 발아래 대진해수욕장과 고래불해수욕장을 내려다볼 수 있으며, 푸른 바다와 함께 소나무 정기를 받은 강과 드넓은 들판도 전망할 수 있다.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삼은(三隱)의 한 사람인 목은 이색이 직접 이름을 붙인 곳으로도 유명하다.울진은 촛대바위. 바다와 강이 만나는 풍경이 절경을 이루는 망양정과 체험콘텐츠가 많은 엑스포공원이 인근에 있다. 길쭉한 바위 꼭대기서 자라는 소나무가 마치 불타는 촛불과 닮아 촛대바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도로변이라 차를 타고 지나며 보면 딱이다.울릉은 신령수길이 선정됐다. 울릉도에서 유일하게 평지를 이루고 있는 나리분지에 자리한 힐링로드다. 원시림 속 기이한 나무들을 바라보고 걷고 있으면 이 세상의 풍경이 아닌 듯하다. 신령수길 끝에는 길 이름과 똑같은 신령수라는 약수터가 있다.□ 중·남부권구미 ‘연악산 산림욕장’서 자연 만끽김천 ‘사명대사공원’엔 볼거리 가득중·남부권은 자연을 흠뻑 느낄 수 있는 곳 위주로 선정됐다. 우선 구미는 ‘연악산 산림욕장’을 가면 된다. 지난해 11월에 개장한 친환경 숲속 쉼터로 해먹, 황토풀 등이 완비돼 있어 지친 몸과 마음을 휴식하는데 제격이다. 역사와 문화·자연자원적 가치가 높은 무을면 상송리 연악산 일원에 있으며, 지척에 수다사라는 절이 있다.구미 연악산 산림욕장과 동일하게 지난해 11월 개관한 삼성현역사문화공원 인근 ‘동의한방촌’은 경산의 언택트 관광지로 꼽혔다. 휴양형 관광지로 한방문화체험관과 약초정원, 치유숲, 명상원, 치유산책로 등 힐링시설이 가득하다.다음으로 김천은 ‘사명대사공원’. 직지사 아래 자리한 김천의 뉴 랜드마크 문화 복합 공간으로, 시립박물관과 함께 5층 목탑 평화의 탑 등 야외 볼거리가 풍성하다.이어 영천은 실외 위주의 다양한 관광 및 체험이 가능한 ‘임고서원’이, 칠곡은 완만한 임도로 겨울 산행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비대면 여행지인 가산산성이 선정됐다.청도에는 ‘신화랑풍류마을’이 있다. 힐빙(힐링+웰빙)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오토캠핑장과 산책로 등이 조성돼 있다.고령에서 선정된 지산동고분군은 다른 곳과는 차별화를 꾀했다. 야외에서 비대면으로 청정한 자연과 함께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함께 느낄 수 있다.교육적인 느낌과 함께 역사 트레킹으로 눈길을 끈다. 마지막으로 성주에는 ‘성주호둘레길’이 선정됐다. 개방형 관광지로 성주호 주변 한적한 길을 따라 걸으며 산책할 수 있다.□ 북부권안동 ‘예끼마을’서 다양한 체험 즐겨800m 고지 군위 ‘화산마을’ 차박 가능도청 소재지 안동의 언택트 관광지는 ‘예끼마을’이 뽑혔다. 예술과 끼가 있는 마을로 밀폐공간이 아닌 트래킹 위주의 여행이 가능하며 선성수상길, 선성현문화단지 등 다양한 체험공간이 있다.안동과 인접한 예천은 ‘소백산 하늘자락 공원’으로 가면 된다. 예천 상부댐 주변에 조성된 신규 공원으로 23.5m의 하늘자락 전망대에서는 소백산의 자연경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상주는 백화산 옆을 흐르는 구수천을 따라 반야사 옛터로 이어지는 산길인 ‘백화산 호국의길’이 선정됐다. 세심석, 출렁다리, 임천석대, 농다리를 지나 반야사로 회귀하는 약 10㎞의 등산길이다.‘소백산국립공원’은 영주의 대표 언택트 관광지다. 겨울 설경이 특히 유명하며 자연을 즐길 수 있어 젊은층도 많이 찾고있다.문경의 경우는 탁 트인 야외 관광지이자 인근 오미자테마터널 포토존에서 인생샷도 남길 수 있는 ‘고모산성’이, 군위는 해발 800m 고지에 위치한 마을로 환상적인 운무를 내려다볼 수 있고 차박 스팟으로도 유명한 ‘화산마을’이, 의성은 천년숲길을 따라 걸으며 보는 설경이 아름다운 ‘고운사’가 이름을 올렸다.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명소로 그 자체가 힐링 여행지인 청송. 청송에서는 그중에서도 얼음골이 겨울철 비대면 관광지로 이름을 올렸다.영앙은 30년생의 국내최대 자작나무 숲 군락지로 사람의 손이 거의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죽파리 자작나무숲’이, 마지막으로 봉화는 백두대간탐방열차와 산타레일바이크, 산타우체국 등으로 유명한 ‘분천 산타마을’이 선정됐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2021-02-09

면역력 강화에 탁월한 풍기인삼으로 마음 전해

코로나19로 인해 개인 건강과 면역력 강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식품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중 으뜸으로 꼽히는 것은 바로 인삼이다.인삼은 과학적으로도 약리적 효과, 건강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기능 식품으로도 널리 알려진 상태다.이 가운데 국내 최초 재배인삼 시배지인 풍기인삼에 대한 관심이 높다.풍기인삼은 수삼을 비롯해 홍삼 등 현대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다양한 가공식품을 생산해 소비자들의 마음을 훔치고 있다.코로나19 시대 최적의 선물로 부상한 풍기인삼에 대해 알아본다.◇인삼(人蔘)의 우리말과 한자 명칭인삼의 우리나라 고유 명칭은 심이다.현재 이 명칭은 심마니의 은어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심봤다’, ‘심마니’, 여성 산삼 채취인 ‘심메마니’ 등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한의학서인 동의보감, 제중신편, 방약합편에서는 인삼을 심이라 표기하고 있다.최초로 인삼이란 명칭이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서적은 한나라 위서의 춘추위운두추, 예위두위에 인삼이란 기록이 나오고 있다.◇풍기인삼 역사풍기인삼은 조선 중종조 신재 주제붕 선생이 산삼에만 의존하던 것을 인위적으로 재배, 그 수요를 충족하고자 전국에 인삼이 자생하는 토양과 기후가 비슷한 곳을 찾아다녔다.1541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뒤 풍기의 토양, 기후를 조사한 결과 산삼이 많이 자생할 뿐 아니라 인삼재배로서 가장 적합한 곳임을 발견하고 산삼종자를 채취해 인삼재배를 시작한 것이 재배인삼의 시작이다.◇풍기인삼 특징영주 지역은 소백산 기슭의 풍부한 유기물과 대륙성 한랭기후와 배수가 잘되는 사질양토로서 인삼이 생육하기 좋은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풍기인삼이 미국의 화기삼, 중국의 전칠삼 등 다른 나라 삼 보다 우수한 것은 인삼 생육에 적합한 지리적 여건 때문이다.풍기인삼이 많이 재배되는 경작지의 위도는 북위 36°∼38°로 타국 삼의 생육기간 120일에서 130일보다 긴 180일간으로 인삼 발육을 충분하게 해 주기 때문에 내부조직이 단단하고 치밀해 인삼 고유의 향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다.◇풍기인삼 자연환경적 특성풍기지방 해발은 약 200m로 인삼의 생육에 가장 적합한 20도 이하의 신선한 날씨가 이어진다. 지하 30cm정도에는 자갈과 모래가 많아 배수가 잘돼 생육에 적합하다. 풍기지방은 죽령을 통해 일년내내 바람이 불어 시설에 따른 통풍 문제점이 자연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특징이다.◇인삼 효능많은 연구결과 인삼을 장기적으로 복용하는 사람은 체내에서 병 발생에 대한 위험도를 감소시켜 효과적으로 병을 예방 할 수 있다.현대 의학적 효능을 살펴보면 당뇨병, 암, 동맥경화 및 고혈압, 빈혈, 노화방지, 피로 및 스트레스 해소 등에 효능이 있다.한방적 효능으로 신체허약 개선, 강장효과, 간 기능강화, 체력증진 등이 있다.◇풍기인삼 종류△수삼(水蔘)수삼은 밭에서 캐내 말리지 않은 인삼으로 70∼75% 내외의 수분을 함유하고 있다. 모든 인삼제품의 원료가 되는 것으로 대개 4∼6년근에 채굴 수확하고 있다.△홍삼(紅蔘)수삼을 장기간 저장할 목적으로 수증기로 찐 다음 건조시킨 담적황갈색 제품이다. 증삼 건조 과정을 거쳐 수분함량이 14% 이하가 되도록 가공한다.△미삼(尾蔘)백삼, 태극삼 등 제조 과정에서 나온 잔뿌리를 말린 것으로 사포닌 함량이 가장 풍부하다.△백삼(白蔘)4∼6년근 수삼을 원료로 대부분 껍질을 살짝 벗겨 내고 햇볕에 말려 제조한 것으로 수분 함량이 14% 이하가 되도록 가공한 원형유지 인삼 제품이다.△태극삼(太極蔘)원형유지 가공인삼 제품으로 홍삼과 백삼의 중간제품이다. 직립형태며 수삼을 뜨거운 물 속에 일정시간 담구어 표피로부터 동체 일부를 호화시켜 건조한 것이다.◇인삼가공 제품절편삼, 홍삼절편삼, 홍삼차, 홍삼정과, 홍삼정, 홍삼타브렛, 홍삼액, 홍삼분말, 인삼분말, 홍삼정, 홍삼캡슐, 황금홍삼비누, 홍삼벌꿀비누, 홍삼제리, 홍삼캔디 등이 있다.인삼가공식품 홍삼진액.◇홍삼이란홍삼은 품질인증을 받은 6년근 인삼을 특수제조 가공 기술인 Bio Red Ginseng System으로 72시간 이상을 숙열해 원액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인삼의 주 약리 작용을 하는 Ginsenoside가 열분해에 의한 부분 구조 변화로 인체에 유익한 체력증강, 노화억제성분, 항암작용, 항당뇨성분, 간 기능 해독성분, 중금속 해독성분 등 10여종 이상의 새로운 성분이 생성된다.◇홍삼 약리효능, 인삼과 차이① 제조과정에서 인체에 유해한 새로운 특수 성분 생성. ② 홍삼은 인체에 유익한 성분 함량이 인삼보다 높다. ③ 홍삼은 약리 효능이 우수하다. ④ 홍삼은 중성화된 성분으로 인삼복용시 발열성에 의한 부작용이 없고 소화 흡수가 잘된다.◇현대과학에서 본 인삼 효능 효과인삼을 신비의 영약이라고 부르는 것은 예로부터 여러가지 질병 치료와 병 회복 촉진에 놀라운 효험을 발휘하는 효능 때문이다.이러한 인삼의 효능에 대해 세계 각국 과학자들이 인삼 약효성분과 약리적 효능을 탐구하기 위해 여러 측면에서 광범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지금까지 과학적으로 밝혀진 대표적 효능에는 신체조절기능의 항상성 유지작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작용에 근거해 항피로 및 항스트레스 작용, 항당뇨 작용, 혈압조절 작용, 항암작용, 동맥경화 및 고혈압의 예방, 두뇌기능 강화, 위장 기능 강화, 면역기능 강화, 항바이러스 작용 등이 보고되고 있다.◇풍기인삼의 미래 가치성영주시는 미래 인삼산업의 가치 향상과 미래 먹을거리를 위해 2021영주세계풍기인삼엑스포를 준비 중이다.엑스포는 인삼의 생명력 가치, 인삼의 인류 행복 가치, 인삼의 미래산업 가치 등 3가지의 기준을 두고 있다.인삼의 생명력 가치는 인류 에너지원으로써 인삼이 가지는 가치를 재조명하는 생명 엑스포, 인삼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을 다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체험 엑스포에 두고 있다. 인삼의 인류 행복 가치는 인류의 건강과 행복한 삶의 희망을 제시하는 힐링 엑스포, 인삼을 통해 포용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회적 엑스포다. 인삼의 미래 산업 가치는 첨단 기술로 점차 진화하는 인삼을 체험할 수 있는 과학 엑스포, 인류를 위한 미래 인삼관련 기술과 정보를 공유하고 확산시키는 산업 엑스포를 개최해 영주시를 세계속의 인삼 도시로 성장시킨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김세동기자 kimsdyj@kbmaeil.com

2021-02-04

“세상에 절대 굴복하지 않고 음악의 한 길 걸어갈 겁니다”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벽과 바닥엔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다. 두 청년이 입은 옷도 얼핏 보기에 비싼 건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밝고 환하다. 꿈이 있기에 가질 수 있는 미소다. 월세가 15만 원이라는 포항 꿈틀로의 허름한 ‘뮤직 테라피(Music Therapy·음악을 통한 치유)’ 작업실. 하지만 거기선 15억 원, 아니 150억 원의 원대한 꿈이 움트고 있다.김명진(29)과 윤관(28)은 그럴듯한 학력도, 사회적·문화적 배경도 갖추지 못한 젊은 뮤지션이다. 그럼에도 자긍심과 자존심은 어지간한 유명 음악인도 흉내 내기 어려울 정도로 단단하고 높다.지금은 수조 원의 재산을 가진 세계 최고 부자이자 유명인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의 꿈이 시작된 곳도 버려진 낡은 창고였다.한때 전 세계 청춘들의 심장을 들었다 놓았다했던 불세출의 영국 밴드 ‘비틀스’ 역시 그 출발은 항구도시 리버풀의 조그만 선술집 무대였다.미리부터 몸을 사리며 안전한 주식을 사서 안정적인 미래를 꿈꾸는 건 예나 지금이나 청춘의 몫이 아니다.무릇 스스로를 젊은이라고 믿는다면 불안정한 앞날을 두려워하지 않고 거친 바다로 위험한 항해를 떠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바로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왔다.음악을 통해 희망과 용기를 얻고, 그 힘으로 노래를 만들어 세상 사람들을 위무하고 싶은 청년 김명진과 윤관. 그들이 노래한다.지나칠 수 있는 거리지만알게 되면 내가 보일 거야거리의 노래가 들릴 거야…-뮤직 테라피의 ‘꿈틀로’ 중에서김명진과 윤관의 노래를 듣다보니 그들의 삶도 궁금해졌다. 그럴 때는 만나야 한다. 청춘을 만난다는 건 청춘의 에너지를 선물 받는 것이기도 하기에. 아래는 오래 지속될 ‘젊음의 힘’을 간직한 두 사람의 이야기다.-먼저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둘 모두 포항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시절부터 친구다. 우리는 체계적으로 음악을 공부한 적이 없다. 대학도 다니지 않았다. 그랬기에 스승이 없다. 하지만, 무엇이건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독학도 가능하지 않은가?-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한 시기는.△10대 때다. 그때 이미 ‘나중에 우리가 크면 함께 음악을 하자’고 약속했다. 의기투합한 것이다. 하지만 생활인으로 살다보니 약속의 실현이 늦어졌다. 더 늦어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5월 꿈틀로에 조그만 작업실을 얻었다.-음악하면서 밥을 번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물론이다. 음악 활동만으로 좋은 자동차 사고, 좋은 집을 산다는 건 소수 뮤지션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우리도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 막노동, 부동산 영업, 전단지 배포, 어린이 대상 관광가이드, 조선소 근무, 심지어 포항 도구에서 말똥 치우는 일도 했다. 농담처럼 그렇게 말한다. 도둑질 빼곤 다 해봤다고.(웃음)-꿈틀로에 정착한 과정을 간단히 설명한다면.△(윤관) 고등학교 때부터 영일대해수욕장에서 2년간 거리공연을 했다. 노래 연습을 위해 명진이와 1주일에 7번, 그러니까 매일 노래방에 가서 영업이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노래를 불렀다. 제대로 된 연습실을 빌릴 처지가 되지 못했으니까. 그래도 음악이 좋았다.△(김명진) 서울에서 영업 일을 하고 있을 때 CCM(기독교 정신을 담아낸 대중음악) 콘테스트에서 작곡 부문 2위를 했다. 잊었던 약속과 꿈이 떠올랐다. 부랴부랴 하던 일을 정리하고 포항으로 내려와 작업실을 계약했다. 이제 9개월이 됐다.-지방자치단체나 문화재단 차원에서 어떤 지원이 있었으면 하는가.△음악인들이 조금 나은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녹음실을 갖춘 스튜디오를 만들어 저렴하게 대여해주면 좋겠다. 그런 시스템이 우리 같이 가난한 뮤지션들의 의욕을 북돋아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포항만 해도 학원 운영이나 막노동, 오토바이를 이용한 배달 일 등을 하며 음악과의 인연을 놓지 않고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꿈틀로 일대 상인들의 삶을 노래에 담고 있다고 들었다.△발라드 등의 기존 장르를 답습하기보단 우리만의 음악을 해보자는 뜻이 강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그걸 노래로 만드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현재까지 10명 이상 사람들의 인생이 우리 손에서 음악으로 탄생했다. 이를 알게 된 포항문화재단이 ‘꿈틀로 상인들의 삶을 노래로 제작해보면 어떻겠냐’는 요청을 해왔고 이에 응했다.-노래로 만든 꿈틀로 상인의 인생 중 기억에 남는 것은.△‘더 신촌스 덮죽’ 주인 아주머니의 사연이다. 그 아주머니는 음식에 관해서라면 엄청난 연습벌레이자 공부벌레다. 자신이 원하는 맛이 나올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손님인데, 그들을 위해 시간과 땀을 아끼지 않는 게 뭐 어려운가?’라는 생각을 가진 분이다. 그 성실함과 열정을 보면서 우리도 많은 것을 느꼈다. 우리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도 그래야하지 않겠나?-좋아하는 뮤지션은 누군가.△(김명진) 가수보다는 작곡가를 좋아한다. ‘테디’와 ‘블랙아이드 필승’은 현재 한국의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목하고 있다.△(윤관) 어릴 때부터 김광석을 좋아했다. 그의 담담하고도 슬픈 서정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김광석 노래 부르는 것도 즐긴다. 그의 전달력과 표현력은 정말이지 최고다.-당신들이 지향하는 음악은.△음악 그 자체가 우리 지향점이다. 트로트부터 클래식까지 가리지 않고 듣는다. 판소리와 창(唱)도 좋아한다. 오페라와 팝페라(오페라에 대중음악 형식을 결합한 장르)도 관심 영역이다. 수천만 원짜리 스피커와 앰프, 최고급 턴테이블에 집착하는 것도 나쁠 건 없다. 그것도 하나의 취미일 수 있으니까. 그러나 우린 싸구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도 진실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뮤직 러버’(음악을 그 자체로 사랑하는 사람)가 되고 싶다.-음악이 왜 좋은가.△인간을 상상 속으로 이끌어준다. 또한 일상을 사는 소시민들에게 ‘저 너머 세계’를 꿈꾸게 해준다. 또한 음악은 세상과 우리를 이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해준다고 믿는다. 노래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 그 열망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게 만들어준다.-향후 당신들이 그려갈 미래는.△20년, 30년 꾸준히 하다보면 빌보드 차트(Billboard chart)에도 오를 수 있지 않겠나.(웃음) 대기업에 취직하지 않아도 좋고, 주식으로 큰돈을 벌지 않아도 좋다. 가난해도 좋다. 오십 살, 아니 육십 살이 될 때까지 음악을 하며 살 것이다. 왜냐고? 그게 어떤 일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니까./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2-03

역사 공부하듯… 고대왕국의 옛 흔적 따라 떠나볼까

인간에겐 지금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고난이나 어려움이 세상 무엇보다 크고 아프게 느껴진다. 그건 사람의 한계이기도 하다.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사태’. 2021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겐 그보다 더 큰 비극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당연하다.그러나 과연 그럴까? 지금 숨 쉬며 살아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아득한 먼 옛날. 문자로 기록되지도 못한 시절부터 인간은 언제나 고통과 수난 속에서 살았다. 그걸 당신이 인정하건 그렇지 않건.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더 멀리는 중동과 아프리카에 고대국가가 존재했다. 의학기술이 현대처럼 발달했을 턱이 없다. 그래서다. 같은 물을 마시던 마을과 도시 전체가 요즘이라면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수인성 전염병으로 ‘몰살’당하기도 한다.이른바 의료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과 서유럽, 한국과 일본이라면 콜레라와 장티푸스 따위야 지금은 병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그러나 고대엔 그 병으로 인해 왕과 왕비도 죽었다.그럼에도 인간은 그러한 병(病)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그것들에 대항할 백신을 만들고 치료제를 개발해왔다. 그게 인류의 역사다. 어떠한 병원균과 바이러스에게도 온전히 항복하지 않았던.고대왕국의 유적지를 어슬렁거려본 여행자는 안다. 거기서 보고 듣게 되는 건 장구한 역사가 선물하는 낭만만이 아니라, 각종 질병으로 고통 받던 백성들의 비명까지란 걸. 그런데, 그게 마냥 고통스럽고 아프기만 한 기억이고 기록일까?◆ 의성, 조문국의 옛 흔적 사이를 거닐며….의성엔 사라진 고대왕국의 흔적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대부분의 영남 사람들 기억엔 고대왕국이라 하면 신라만이 뚜렷하게 떠오를 터. 하지만 때론 사라진 것들도 아름다울 수 있는 법. 강력했던 인근 국가 신라에 2천 년 전 복속(服屬)된 의성 일대의 조문국(召文國)을 ‘두산백과’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삼한시대 초기 경북 의성군 금성면 일대에서 세력을 형성했던 부족국가로 규모가 작은 나라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185년 신라 벌휴왕 때 파진찬 구도와 일길찬 구수혜가 조문국을 정벌해 군(郡)으로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조문국에 대한 기록이 전해진다. 금성면 일대에는 조문국 지배자들의 묘로 추정되는 대형 고분들이 있다.”‘코로나19’가 경상북도 일대를 침탈해 들어오기 직전이다. 의성을 찾아 찬바람 부는 금성산 고분군 일대를 거닐었다. 혼자였고 쓸쓸했다.‘내 눈앞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크고 작은 저 무덤들의 주인은 누구였을까?’라는 물음이 절로 떠올랐다.아무도 정확한 답을 줄 수 없기에 막막하고 허망해 보이는 질문 앞에 선 기자의 머릿속으로 김천에서 태어나 대구 영남대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에게 문학을 강의했던 이동순(71) 시인의 시 한 편이 흘러갔다. 멀지 않은 강원도를 여행하며 썼을 것으로 보이는 ‘아우라지 술집’이었다.그해 여름 아우라지 술집 토방에서우리는 경월소주를 마셨다구운 피라미를 씹으며 내다보는 창 밖에종일 장맛비는 내리고깜깜한 어둠에 잠긴 조양강에서남북 물줄기들이 서로 어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수염이 생선가시같이 억센뱃사공 영감의 구성진 정선 아라리를 들으며우리는 물길 따라 무수히 흘러간그의 고단한 생애를 되살리고 있었다.사발 그릇 깨어지면 두셋 쪽이 나지만삼팔선 깨어지면 한 덩이로 뭉치지요한순간 노랫소리가 아주 고요히강나루 쪽으로 반짝이며 떠가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흐릿한 십 촉 전등 아래 깊어 가는 밤쓴 소주에 취한 눈 반쯤 감으면물 아우라지고사랑 아우라지고우리나라도 얼떨결에 아우라져 버리는강원도 여랑 땅 아우라지 술집.◆ 기록된 역사와 기록되지 못한 옛이야기 속에서남한의 강과 북한의 강이 어우러져 함께 흐르는 통일세상을 꿈꾸던 노시인의 간절한 바람이 가감 없이 전해지는 절창 ‘아우라지 술집’은, 조문국이란 나라가 존재했던 1천900년 전 고대와 21세기 현대도 결국은 어떤 사슬과 관계망으로 어우러져 우리의 인식 속에 함께 존재한다는 걸 알게 해줬다.아주 미세한 흔적만을 남긴 채 사라진 고대왕국. 그 왕국에서 울고 웃었던 사람들이 묻힌 고분 위에 하얀 눈이 쌓였다.봄이 턱밑까지 다가온 늦겨울. 존재와 소멸, 고대와 현대, 기록된 역사와 기록되지 못한 옛이야기를 떠올리며 걷기에 이보다 더 좋은 여행지가 있을까?의성군청 관계자는 아래와 같은 말로 금성면 고분군 방문을 제의한다.“금성면 대리리, 학미리, 탑리리 일대엔 조문국의 370여 기 고분들이 관광객들을 반깁니다. 제1호 고분인 경덕왕릉 앞엔 ‘고분 전시관’이 있어 역사에 관심 있는 학생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줄 겁니다. 지난 2009년 발굴된 대리리 2호분 내부엔 출토 유물도 전시돼 있습니다. 지금도 아름답지만 작약 활짝 피는 봄에도 좋으니 꼭 한 번 와주세요.”◆ 가야산 만물상과 ‘성밖숲’이 손짓하는 성주군으로대구에서 지척인 성주군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참외’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당도가 높고 아삭거리는 식감으로 전국 미식가들에게 사랑 받는.그런데, 성주엔 대면과 접촉을 최소할 할 수 있는 빼어난 여행지도 적지 않다. 초여름엔 맛좋은 참외로 전국을 매료시키는 성주군. 이 계절엔 최상의 ‘언택트 관광지’로도 역할하고 있다. 성주군이 ‘성주 8경’ 중 하나로 내세우는 ‘성(城)밖숲’의 설경은 겨울 여행을 선택한 이들에게 놀라움과 평화로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성주군청의 이야기를 들어보자.“경산리 성밖숲은 성주읍성 밖에 조성한 숲이다. 수령이 300~500년에 이르는 왕버들 53그루가 웅장함을 자랑한다. ‘경산지(京山志)’와 ‘성산지(星山誌)’의 기록에 따르면 이곳 아이들이 이유 없이 죽어가는 등 흉한 일이 이어지자, 사람들이 정성을 모아 이를 방지하기 위해 조성됐다고 한다. 성밖숲은 노거수 왕버들로만 구성된 단순림(單純林)으로 학술적 가치도 있다.”왕버들이 하늘거리는 성밖숲은 여름엔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줌으로써 사람들에게 휴식의 공간을 제공한다. 보랏빛 맥문동에 반하는 여행자도 적지 않다.하지만, 겨울날 왕버들도 관광객들에게 서정과 낭만을 안겨준다는 차원에서 보자면 여름날의 역할 못지않다. 취향에 따라 방문 시기를 선택할 수 있기에 오히려 더 좋다.성밖숲에서 늦겨울 운치를 즐겼다면, 이제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보자. 경치 좋은 성주군에서도 군민들이 엄지를 보여주며 최고로 손꼽는 가야산 만물상이다. 성주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의 설명부터 읽어보자.“만물상은 북녘 금강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성주 가야산 만물상은 2010년까지 약 40년간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던 탓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금강산 만물상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원시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절경이 겨울 산행객들에게 반긴다.”말 그대로 ‘기암괴석(奇巖怪石)’ 가득한 가야산에선 고래와 두꺼비, 불상(佛像)과 코끼리를 닮은 바위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등산을 좋아하는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이라면 손잡고 함께 올라보는 게 어떨까?/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2-02

무지갯빛 연연(鳶鳶)마다 희망을 싣고…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연을 쫓는 아이’에 연싸움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집 아들인 아미르가 연을 날리고 하인의 아들 하산은 수십 리 길을 달려가서 줄이 끊긴 연을 찾아온다. 하산은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연을 찾아올 수 있다고 한다. 아미르에게 있어서 하산은 친구이면서 하인이고, 하산에게는 아미르가 도련님이면서 친구다. 신분의 차이가 사람의 입장을 만드는 교훈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마을에 연 날리기 대회가 열리고 아미르와 하산이 한 조가 되어서 참가한다. 바람을 따라 연이 새처럼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하산의 기지로 그들은 연싸움에서 승리한다. 어느 날 실이 끊긴 연을 찾으러 간 하산이 아쉐프 일당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숨어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아미르는 두려움에 질려 곤경에 빠진 하산을 모른 척하고 자리를 피한다. 그 일이 두고두고 아미르를 괴롭히며 죄책감을 갖게 한다. 아미르는 죄책감을 벗어던지기 위해 생일선물로 받은 시계를 하산의 침대에 감추고 모함을 한다. 그 일로 하산과 그의 아버지가 쫓겨나고, 그 일이 아미르에게 영원히 씻지 못할 고통과 죄의식으로 각인된다.연 날리기는 고려시대 이전부터 시작된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세시풍속이다. 식구들과 둘러앉아 연을 만들어서 천변이나 강가의 모래밭 같은 넓은 곳으로 나가서 연싸움을 벌이거나 연 묘기를 선보이며 가족들의 건강과 꿈, 희망을 기원하며 소망을 빌었다.이렇듯 우리 민족의 정서를 아름답게 수놓은 ‘연(鳶)’을 만드는 명인이 있다. 세계 연 날리기 대회를 통해서 한국 전통 연의 우수성을 알리고 세계 각국의 연을 소개하는 일에 앞장서는 그의 사무실에는 연을 보관한 방이 따로 있다. 그 방에는 태극무늬와 나비문양이 그려진 연과 달구벌의 시조인 독수리연 등, 여러 형태의 문양이 담긴 많은 방패연이 걸려 있다. 댓살과 한지를 이용하여 전통 기법으로 만든 연이었다. 탁자에 놓인 독수리연의 한가운데 둥근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것은 특이하게 방패연에만 있는 방구멍이라고 했다.“저 구멍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해주세요.”“방구멍은 바람의 저항을 줄여서 연을 잘 날게 하는 우리나라만의 과학적인 기법입니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연이 바람과 잘 융화되어 가볍게 날 수 있는 것도 그 방구멍이 바람의 길을 내주기 때문입니다.”연 한가운데 자리 잡은 방구멍이 바람에게 길을 내주며 맞바람의 저항을 줄이기 때문에 강풍에서도 연이 상하지 않고 유연하게 날 수 있다던가. 유선형으로 휘어진 머릿살과 바람이 잘 타는 한지, 댓살의 탄성이 바람의 강약을 조절해서 연을 자유롭게 날도록 해준다며, 명인은 방패연이 매우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연놀이는 고려시대 이전부터 전해온 우리의 전통 민속놀이이다. 고려시대 백운거사 이규보의 한시에 ‘유월의 염천에는 연을 보기 어렵더니/가을에 접어든 지 사흘 만에 쌀쌀해졌네/이웃 아이들 모여서 부산하게 떠들며/좋아라 하늘 높이 지연을 날리네.’ 연놀이는 군사적으로 활용되기도 했는데, 이순신 장군이 섬과 육지를 잇는 통신 수단으로 비연을 이용했다고 한다. 장군이 들쭉바지기연을 날리면 군수품 조달을 뜻하고, 까만 외당가리연을 날리면 새벽 공격명령을 알리고, 삼봉산의 문양이 있는 연을 날리면 삼봉산에 집결하라는 명령이라고 한다. 통영은 물론이고 연날리기 고수들이 그 방법을 많이 응용한다고 전한다.“연이 우리 민족에게 어떤 의미일까요?”“연에 실은 꿈과 희망을 하늘 높이 띄워서 자연에게 물어보는 것이죠.”그러면서 명인은 “날아라 훨훨, 하늘 높이 훨훨 날아라, 연실에 매달려 양귀 휘날리며 날으는 방패연아~” 하고 동심 어린 노래를 불렀다. 직접 작시를 했기 때문에 저작권료도 나온다고 슬쩍 자랑을 한다.연은 일 년의 무사고를 비는 액막이나 풍요의 기원과 복을 불러들이는 기복의 의미를 담기도 한다. 명인의 저서 ‘한국전통 지연(紙鳶)’에 의하면, 액막이연의 유래가 특히 재미있다. 매년 정월 초하루부터 연놀이를 하다 열나흗날 밤에 액막이연을 띄우는데, 연에 ‘액(厄)’자를 쓰거나 주소와 성명, 생년월일, 혹은 송액의 한시를 쓰기도 하고, 동전이나 솜뭉치를 매달아서 불을 붙여 띄우는 것으로 나쁜 액을 날려 보내며 한해의 풍요를 빌었다. 이는 달집태우기와 같은 맥락이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끊임없이 외세의 침입에 시달리면서도 연놀이 같은 민속놀이로 복을 빌 줄 아는 낭만을 간직하고 있었다.“대구는 연놀이 행사를 어디서 합니까?”“금호강변으로 가야죠. 대구는 연 날릴 곳이 없으니.”황의습 명인은 대구가 분지이고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연 날릴 곳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연 날리기 세계대회를 들판이 넓은 의성에서 치른다고. 연간 300-400개의 연을 만들어 학교 교육을 통하여 전통지연의 유래를 알리는 것과 동시에 각종 연 날리기 행사 시연과 전시회 등, 다양한 활동으로 지연 전승자들을 배출한다.“연을 만들며 어떤 기원을 담으시는지 궁금합니다.”“연 날리기를 통해서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의 얼을 되살리고 계승 발전시켜서, 후세대대로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습니다.”자라나는 세대들이 우리의 전통지연에 관심을 갖고 호연지기를 키웠으면 하는 마음을 방패연에 담아서 하늘 높이 띄우는 명인에게는 연 날리기만큼 열심히 해온 일이 또 있다. 그게 바로 교도소 교정교화 활동이다. 명인은 연을 만드는 장인임과 동시에 재소자와 출소자들의 교화와 봉사에 힘쓰는 법무부 교정 자문위원장이고,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산학협력 교수이기도 하다.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 회장으로 자원봉사를 했다. 연과 쉽게 연결되지 않는 교도소라는 공간성이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거기서 어떤 일을 하세요?”“법무부 교정위원, 교정자문위원, 징벌위원, 교정옴부즈만 활동을 했어요. 재소자들과 상담도 하고, 정신교육도 하고 대구, 경주, 청송 안동교도소 등, 재소자들이 필수적으로 받게 되어 있는 교육 과정에서 강의도 하고, 수용자를 위한 문화공연을 합니다.”교도소로 친구 면허를 갔다가 우연히 시작한 일이 무려 30여 년간 일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전통지연 명인이 되면서 촉박한 시간 때문에 교도소 활동을 줄이고 ‘보은의 집’만 운영하고 있다. 무연고 출소자들이 머물 수 있는 ‘보은의 집’은 형량을 마치고 사회에 나온 이들을 잠시 머물게 해주는 곳이다. 단순하고 순수해서 사회성이 더 어두웠던 그들이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취업을 알선하고, 정신교육도 한다던가. 대학에서 교정학을 전공했고 재소자들을 위한 봉사가 본업이었던 명인의 삶이, 전승자들과 아이들에게 연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연을 만난 게 언제였어요?”“1981년입니다.”일본인이 쓴 책을 읽고 연을 만났다. 세계적인 석학인 그 작가는 21세기가 오면 그 나라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서 성장해야만 국제경쟁력이 생긴다며 한국을 문화적인 은혜의 나라이고, 스승의 나라라고 표현했더란다. 그 말에 감화를 받아서 명인은 연을 만들게 되었다. 명인은 오방색을 갖춘 호랑나비와 우주로 음양의 조화를 이룬 연을 만들어서 한국예술문화 전통지연 1호의 명인으로 인정받았다.“연을 하나 만드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열흘에서 보름쯤.”한지를 먼저 다듬질해서 연을 만들어 그림을 그리는데, 수십 번 반복해서 색칠을 한 후에야 연이 완성된다. 형태적 분류에 따라 호랑나비 태극방패연과 송액영복 가오리연, 호랑나비 줄연과 같은 창작연이 있고, 문양적 분류에 따라 꼭지연과 반달연, 치마연, 동이연, 초연, 박이연, 발연, 방패연이 있다. 연 날리기 대회에서는 줄연을 많이 날린다. 조선 후기 학자인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연싸움을 위해 비단실과 무명실로 만든 연줄에 돌가루와 구리가루로 가미를 먹였다는 기록이 있다.문방구에서 산 가오리연에 공책이나 만화책을 오려서 꼬리를 잇던 날이 있었다. 연을 높이 들고 뛰어간다. 꼬리가 길어서 날아오르지 못하나 해서 꼬리를 떼어버린다. 그러자 연이 기다렸다는 듯 사뿐 떠오른다. 연은 풍속 5m의 바람만 있어도 날아오른다고 한다. 연이 그렇게 가벼운 바람으로도 높이 날 수 있는 것은 제 몸이 그만큼 가볍기 때문일 것이다. 연이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은 바로 제 몸을 가벼이 하라는 말없는 가르침일지도 모른다./글 장정옥 소설가(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

2021-02-02

“포항 숙박문화 새롭고 젊게 바꿔 볼래요“

서른셋.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많은 나이도 아니다.청년의 도전의식을 가진 33세 여성이 자신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영업해온 낡은 숙박시설을 깔끔하게 리모델링해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신세대 숙박업소를 만들었다.포항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인 죽도시장 안에 자리했던 대구여인숙을 ‘오다가다 게스트하우스’로 탈바꿈시킨 이현진 대표가 바로 그 사람.21세기를 사는 20~30대 한국 청년들 중 해외여행 한 번 해보지 않은 이들을 이제 찾아보기 쉽지 않다.그들이 유럽 여행에서 주로 이용하는 숙박시설이 바로 게스트하우스.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을 지녔고, 또래 여행자들을 만나 우정을 나누는 매력 가득한 공간이다. 유용한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덤.2000년대 들어서며 한국에도 다양한 형태의 게스트하우스가 등장했다. 서울과 제주도는 물론, 그 외의 도시에서도 호텔이나 모텔, 여관과는 구별되는 독특함을 지닌 게스트하우스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포항에도 ‘오다가다’를 포함한 몇 군데 게스트하우스가 있고, 이 숙소들은 전국 각지에서 포항으로 여행 온 청년들의 편안함 쉼터가 돼주고 있다.겨울비가 내리던 지난주. ‘오다가다’ 이현진 대표를 만났다. 아래 그날 오고간 이야기의 알맹이를 옮긴다.□ 젊은 여행자 이현진, 포항과 만나다이현진 대표는 대학 시절부터 혼자서 기차를 이용해 전국일주를 다니던 ‘용감한 여행자’였다.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동해는 물론 남해와 제주도까지 종횡무진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는 필리핀 등 아시아 여러 국가와 멀고먼 북유럽 덴마크까지 이 대표의 다녀온 여행지 리스트에 올랐다.그랬던 그녀가 2007년 포항과 만난다. 구룡포 바닷속 풍경이 단숨에 이 대표를 매료시켰다. 그 기억을 잊지 못해 2012년 포항에 직장을 잡았다. ‘해양 생태복원’과 관련된 회사였다.그게 포항 정착이었으니 벌써 9년째다. 회사를 그만두고도 포항에 머물고 싶었던 이현진 대표는 결국 게스트하우스 창업을 계획한다. 그녀가 말하는 포항의 매력을 들어보자.“바다가 너무 아름답다. 또한 바닷가 어디서라도 서울보다 훨씬 싼 비용으로 주거를 해결할 수 있다. 거기에다 인근 산들도 근사하다. 포항에서라면 출퇴근길도 여행처럼 느껴진다. ‘삶이 곧 여행’이란 말이 실감으로 다가오는 도시다.”□ 허물어져가는 여인숙, 매력적인 게스트하우스로 변신30대 초반의 이 대표에겐 많은 돈도, 건축과 관련된 전문 지식도 없었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바칠 태도가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게 죽도시장 내 대구여인숙을 오다가다 게스트하우스로 새롭게 탄생시키는 작업.그녀에겐 필리핀에서 다이빙 강사로 생활하며 게스트하우스를 관리했던 경험이 있었다. 이 대표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를 일, 휴식,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게스트하우스 운영은 그 세가지와도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죽도시장 오거리 뒷골목.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대구여인숙 앞에 섰다. 처음엔 낡고 오래된 건물을 새롭게 재탄생시킨다는 기대감이 컸지만, 리모델링이 진행되면서 현실적인 난관에 부딪치기도 했다. 건물 안팎에서 물이 샜고, 전기가 차단되는 일까지.그러나 앞서 말한 젊음의 열정과 땀방울을 아끼지 않는다면 못해낼 일이 있었겠는가? 당연한 답변이지만 없었다.적지 않은 어려움과의 싸움 끝에 2019년 겨울에 오다가가 게스트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허물어져가는 여인숙을 감각적 인테리어로 꾸며진 게스트하우스로 변모시킨 이현진 대표는 ‘게스트하우스의 매력이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여관이나 모텔과 달리 여행자들이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거죠. 이전 세대의 숙소는 주로 잠을 자는데 사용됐지만, 오늘날 게스트하우스는 그 공간 안에 문화적인 요소를 결합할 수도 있고, 홀로 떠나온 여행에서 일행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여행에서의 낭만이 최대화될 수 있는 숙소 아닐까요?(웃음)”오다가다 게스트하우스에 묵어간 손님들은 개성 넘치는 인테리어와 소품 칭찬에 입을 모은다. 전체적 분위기나 장식품 등의 아이디어는 이 대표의 여행 경험에서 나왔다. 덴마크에 살고 있는 동생의 아이디어와 아기자기한 소품 공수(空輸)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요즘도 청년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빈티지 스타일(Vintage style)의 소품을 적절하게 활용하기 위해 계속 고민 중이다. 여기에 몇몇 공간은 옛 모습을 그대로 살려 혹시 모를 중년층 손님의 방문 시 추억까지 되살려준다는 게 이현진 대표의 복안.그래서일까? 오다가가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문 여행자들은 드라마 ‘호텔 델루나’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촬영장 같은 분위기가 난다며 좋아한다고. 커튼 하나에도 세심하게 신경 쓴 보람은 손님들의 이런 반응에서 빛을 발한다.□ ‘포항 사랑꾼’이 알려주는 알짜 포항여행 정보포항이 좋아 삶의 3분의1을 동해 곁에서 살아온 사람. 오다가다 게스트하우스의 젊은 주인 이현진은 누가 뭐래도 포항 사랑꾼이다.만약 젊은 연인이 낭만을 찾아 포항에 왔다면 ‘요트 투어’와 ‘운하 산책’을 추천하고 싶다고 이 대표는 말한다. 특히 석양 무렵의 요트 투어가 좋단다. 포항운하를 따라 걸어보는 것도 연인간의 정을 더욱 애틋하게 만들어준다.길 따라 곳곳에 자리한 포토 존에서의 사진 촬영은 청춘남녀에게 주어지는 보너스. 형산강 둑길을 따라 철마다 피어나는 유채꽃과 핑크뮬리, 국화와 코스모스도 근사하다.포항이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가 될 수 있도록 관광 인프라를 개선하는 건 이현진 대표의 바람. 아직은 포항 여행의 진면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안타깝다는 것은 이 대표가 전하는 아쉬움이다.현재 이현진 대표는 ‘코로나19 사태’ 종식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 조그만 공연을 열고, 나이 지긋한 주변 상인들을 위한 이벤트도 하고 싶다고 말한다. 또한 오다가다 게스트하우스가 ‘문화 콘텐츠 개발자’가 되기를 꿈꾼다. 작지만 오래 기억될 여행 기념품 제작·판매도 그 연장선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아래와 같은 옹골찬 비전을 들려주는 그녀의 미래가 주목된다.“이제 겨우 1년 된 게스트하우스지만, 앞으로의 10년을 기대해주면 좋겠다. 지금처럼 우리 숙소를 찾는 여행자들이 행복해지고, 더불어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갈 것이다. 코로나19는 빨리 사라지고, 여행자들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