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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새해… 詩 한 편의 여유 즐겨요

등록일 2022-01-27 20:08 게재일 2022-01-2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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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始)를 위한 시(詩)와 영화

새해를 시작(始作)하는 날, 설날에 읽으면 좋은 시를 찾았다. 2022년 한 해 독서 계획표에 시집을 많이 끼워 넣었다. 그중에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시인들의 시를 그동안 좀 소홀히 한 것 같아 앞에 꺼냈는데, 지금은 같은 하늘 아래 살지 않는 이육사, 윤동주, 김소월이다. 다음으로 무르익은 시인으로 정현종, 안도현의 시를 꼭꼭 씹어 보기로 했다.

△초인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날릴 때도 참아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즈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서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의 ‘광야’를 손으로 읽었다. 신석초 외 3인이 쓴 공동의 발문에서 “육사는 저세상에서도 분명 미진한 꿈으로 시를 쓰고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1904년 안동에서 태어나 호적에 기록된 이름은 원록(源祿) 본관은 진성(眞城)으로 퇴계 이황의 14대손이다. 이육사는 대구형무소에 수감 되었을 때의 죄수 번호 264번을 빌려 육사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대구 격문사건 등에 연루되어 모두 17차에 걸쳐서 옥고를 치렀고, 의열단의 일원으로 중국을 자주 내왕하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3년 가을 잠시 서울에 왔을 때 일본 관헌에게 붙잡혀, 베이징으로 송치되어 1944년 1월 베이징 감옥에서 작고하셨다. 나와 동향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랑스럽고, 또 그의 시 청포도가 포항 오천에서 쓰였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더 가까운 시인 이육사의 유고 시집을 샀다. 4900원. 오천 원도 안 되는 값으로 거룩한 시를 살 수 있다니 기뻐해야 하나 싶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의 시집 판본은 여러 가지다. 출판사 별로 다양한데 그중에 자화상이라는 출판사에서 육필 원고본을 편집해 놓아서 좋았다. 윤동주 시인이 원고지에 쓴 필체를 보고 있노라면 차분한 그의 성품이 느껴진다. 마음에 안 드는 곳에는 줄을 북북 긋고, 고쳐 썼다. 사이에 낱말을 끼워 넣기도 하고 빼기도 했다. 몇 날 며칠에 썼다고 기록하는 꼼꼼한 남학생이 보였다.

정지용 시인이 써 준 서문에 윤동주의 동생 일주군과의 필담이 있다. 무슨 연애 같은 것이 있었나 하고 물으니, 형이 하도 말이 없어 모른다고 했다. 술과 담배도 하는 것을 보지 못했고, 인색하지 않았냐 하니까 누가 달라면 책이나 샤쓰든 거져 주더란다. 순하디순했는데 중학교 때 축구 선수였다는 이야기도 했다. 말주변도 사귐성도 없었지만, 그의 방에는 항상 친구들로 붐볐다 하니 사람 좋은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의 시를 입속에서 읊조리면 사람 냄새가 난다. 선한 사람의 향기가.

△경성우체국에서 보낸 편지

진달래꽃 초판본이 새로 나왔다는 소식이 꽃잎에 실려 내게 당도했다. 소와다리 출판사에서 기획한 패키지 상품이다. 소식을 듣자마자 나도 얼른 주문을 넣었다. 어제(2016년 4월 20일) 주문했는데 오늘(21일) 도착했다.

시인 김소월은 이렇게 빨리 자신의 시가 내게로 온 걸 알까? 하루 만에 경성에서 포항까지 소포가 배달된다는 걸 들으시면 기절초풍하겠지. 누런 봉투에 우표가 두 장 붙었고 직인이 찍혔다. 날짜가 25. 12. 26 이라고 찍힌 건 아마도 시집이 나온 날이 그날일 것이다. 책과 함께 보내온 엽서 한 장. 경성 시내 명동 쪽 번화가 풍경 사진이다. 하얀 두루마기 입은 어르신이 뒷짐 지고 섰고 그 앞을 기모노를 입은 여인들이 지나간다. 일본인지 착각이 들 정도다. 엽서 뒷면에 이런 글귀가 써 있다. ‘그때쯤은 독립을 했을런지요, 제 시는 사랑을 받고 있나요’라고 펜 글씨체로 소월 시인이 물어온다. 목울대가 울렁한다.

우린 독립된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가. 나는 자유한가. 비요일에 멀리서 보낸 소월의 편지를 읽는다. (2016년 4월 21일 일기)

 

임인년 새해 첫 명절 설이 다가온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독자 여러분들의 복된 한해를 가원한다. 사진은 안성용 사진작가의 ‘포항 동빈내항’ 작품.
임인년 새해 첫 명절 설이 다가온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독자 여러분들의 복된 한해를 가원한다. 사진은 안성용 사진작가의 ‘포항 동빈내항’ 작품.

△섬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낼 수 있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정현종 시 ‘방문객’ 중)

내 최애 드라마에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집이 나왔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남편의 옷장에서 이 시집을 발견하고 읽는다. 그 시집은 남편의 옛 여자가 헤어지며 준 선물이다. 행복하지 말라는 메모와 함께.

한 사람이 온다는 건 진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에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지난한 과거와 복잡한 현재와 불안정한 미래까지 껴안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누군가를 만나면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 떠오른다. 이런 인연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신이 내게 내려보낸 선물이다. 그래서 매일 아침 성경 한 장을 읽고 감사기도를 한다. 오늘도 내게 좋은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안동

안도현 시인은 예천 사람이다. 예천은 안동 사투리를 쓰는 안동문화권이다. 그래서 육사처럼 일가친척으로 느껴진다. 안동은 작가를 많이 배출했다. 동화 작가 권정생, 안동소주라는 시집을 낸 안상학 시인, 그보다 훨씬 일찍 태어난 퇴계 이황도 많은 책을 쓴 작가이시다. 그들 시에 안동이 자주 언급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다.

안도현 시인의 최근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에 ‘안동’이라는 제목의 시를 써서 안동사람이라고 자랑한다. 안동시 평화동 낡은 아파트에 어머니가 둥지를 틀고 계셔서 자식들은 이제 예천이 아닌 안동으로 모인다. 2021년에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명절에 안동에 세배 갈 곳이 없어졌다.

포항시 장성동 낡은 아파트에서 안도현의 시로 시(始)를 위한 시(詩)를 대신한다. /김순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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