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 .1969 포항 죽도시장 人 스토리<br/>건어물과 함께 70년… 중앙건어물 최병숙·김종하 모자
옛 어른들은 허투루 버려지는 밥 한 톨, 김치 한 조각도 안타까워했다. 벼와 배추를 기르는 농부의 수고와 그걸 밥과 김치로 만든 이들이 흘린 땀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이다.
비단 농산물만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가 맥주에 곁들이는 안주로 쉽게 접하는 마른 오징어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반찬으로 즐겨 먹는 마른 멸치 등의 건어물도 많은 이들의 고생스런 손길을 거쳐 술상과 밥상에 오른다.
간단치 않은 그 과정을 생각한다면 음식을 함부로 버리는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포항 죽도시장엔 1970년대 후반 노점에서 시작해 50년 가까이 건어물을 팔아온 할머니가 있다. 중앙건어물 최병숙(75) 대표다.
최 대표의 아들인 김종하(52)씨는 대학에서 토목을 전공했다. 졸업 후엔 중견 건설업체에 취직해 스키장과 골프장이 만들어지는 현장에서 전공을 살려 일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누구도 피해갈 수 없었던 IMF의 광풍을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당시 종하 씨는 갓 결혼한 상태. 국내는 물론 해외 출장까지 잦았던 직장을 정리하고, 죽도시장으로 내려와 어머니를 돕겠다고 결심했다.
모자(母子)가 본격적으로 손발을 맞춰 일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그로부터 22년의 시간이 흘렀다. 두 사람의 경력을 합하면 건어물과 함께 살아온 게 벌써 70여 년이다.
부모님께서 1970년대 후반 노점에서 시작해 50년 가까이 건어물을 팔아 오셨어요. IMF의 광풍에 아버지마저 몸져 누우신 바람에 2000년부터 어머니와 손발을 맞춰 일하기 시작했죠. 오랜 기간 경상도와 전라도 수산시장을 가리지 않고 전국을 무수히 돌아다니며 보다 저렴하게 좋은 물건을 구입해 판매하는 노하우를 터득했죠. 코로나19 이전보다 매출이 30%가량 줄었지만 최선을 다해 좋은 물건을 구해 손님에게 권하고, 까다로운 고객도 친절하게 응대하고, 포장에도 신경을 씁니다. 이것이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이익을 남기는 장사의 원칙이랍니다.
△ 멀리서 경매가 열리는 날엔 새벽 3시에 일어나야
건어물 판매와는 무관한 일을 하던 서른 살의 김종하 씨는 의지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 건 배우고, 관행처럼 이어져온 경직된 장사 방식도 바꾸겠다는 결심을 했다. 포항으로 돌아온 직후 1~2년은 각종 해산물이 경매되는 경상도와 전라도 수산시장을 가리지 않고 무수히 돌아다녔다. 경험의 축적을 통해 목표에 이르고자 한 것이다.
-건어물 상점의 변화를 위해 어떤 일을 했던 건가.
“어머니가 장사를 시작하던 시절엔 가져다주는 물건을 받아서 팔기만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활로가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보다 저렴하게 좋은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이윤도 늘고, 동시에 손님들의 만족도도 높아질 것 아닌가.
외가가 부산 남포동에서 건어물 상점을 크게 한다. 일을 시작한 초기엔 그 인프라를 보고 배우기 시작했다. 건어물이 어떻게 유통되는지 정확히 알기 위해 꽤 오랜 기간 전국을 돌아다녔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드는 건 피해갈 수 없었을 것 같다.
“보통 해산물 경매는 오전 9시에 시작된다. 2시간 전에는 현장에 도착해 구입할 물건을 살펴서 정해둬야 한다. 그래야 중매인에게 구입을 부탁할 수 있으니까. 먼 지역에서 경매가 열리는 날은 새벽 3시에 일어난다. 일을 마치는 시간? 그건 손님이 정하는 것이지 내가 정하지 못한다.(웃음) 가능하면 저녁 8시 전에는 마치려고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바쁠 땐 하루 14~15시간 일하는 셈이다.”
중앙건어물의 ‘큰 대표’는 최병숙 씨다. 그러면 김종하 씨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위와 같은 노력이 있었으니 이젠 중앙건어물 ‘작은 대표’라 칭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을 듯하다.
20년 이상을 다뤄온 물건이 말린 해산물이니 김 대표는 이제 자타공인 ‘건어물 전문가’다. 그래서 독자를 대신해 이런 요구를 해봤다.
“좋은 건어물 고르는 방법 좀 귀띔해 주시죠.”
답변은 금방 돌아왔다.
“안동이나 영천 등 내륙에 사는 분들은 이전부터 봐온 게 있어 색깔이 노르스름한 건어물을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근데 그건 유통망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을 때 이야깁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지만, 바다에서 막 건져 올려 말린 게 맛있는 건어물이 됩니다. 싱싱하고 신선한 걸 건조·가공한 게 좋지요.”
△ 건어물계의 스테디셀러는 누가 뭐래도 ‘멸치’
유행이나 세태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오랜 기간 꾸준히 잘 팔리는 책이나 물품을 스테디셀러(Steady seller)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건어물계의 스테디셀러는 뭘까? 멸치다.
-죽도시장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건어물은 뭔지.
“죽도시장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건어물이 멸치다. 통영과 여수 멸치가 품질이 좋다. 멸치로 우려낸 국물, 멸치볶음, 멸치젓갈….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하루에 한 번쯤은 먹게 되는 게 멸치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중앙건어물에선 한 달에 멸치가 얼마나 거래되나.
“햇멸치가 나오는 7월쯤이면 한 달에 1억 원 정도가 팔리기도 한다. 대형 마트와 각 지역 부녀회 등에서 대량으로 공동구매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간단히 말해 부녀회원 1천 명이 한 사람당 2박스만 구입해도 2천 박스가 판매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공동구매의 경우엔 이문이 박하다. 판매 대금의 2% 정도가 우리 수익이니 1억 원어치를 팔아도 어머니와 내가 손에 쥐는 건 200만 원 정도다. 그래도 좋은 물건을 소비자에게 넘길 땐 기쁜 마음이 크다.”
‘코로나19 사태’의 파도는 건어물 판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앙건어물도 함께 일해 온 직원을 어쩔 수 없이 내보내고 물건 구입과 배달은 김 대표가, 죽도시장에서의 판매는 어머니가 전담해 맡고 있다. 코로나19 이전보다 매출이 30%가량 줄었다고 한다.
중앙건어물의 경우엔 판로 다양화와 다각화로 긴 시간 이어진 위기를 견디고 있지만, 소규모 건어물 가게는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폐업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들어 마른 멸치와 오징어를 사가던 조그만 식당과 주점이 문을 닫는 경우가 빈번한 탓이다. 비극적이게도 경제는 이처럼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 어려운 시절이지만 그래도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두어 달 전통·재래시장을 드나들며 느낀 게 적지 않다. 거기서 만난 상인들의 절대다수는 정말이지 부지런히, 그리고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들은 큰 욕심도 없어 보였다. 그저 아이들이 정직하게 커주고, 부모가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제 몸을 아끼지 않는 ‘진짜 서민들’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건 취재와 인터뷰를 통해 거둔 소중한 수확이다.
김종하 대표는 말했다. “어지간한 월급쟁이보다는 수입이 낫다”고. 그러나, 그 수입이란 돈을 쓰러 다닐 시간이 없을 정도로 휴일도 잊고 오랜 시간 땀 흘린 결과다. 그러니 부러워할 것도, 시기할 이유도 없을 것 같다.
-가슴 속에 새긴 장사의 원칙이 있는지.
“거창할 것 없다. 내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한다. 물론 장사는 이익을 남기기 위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익을 남기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내 몸이 힘들더라도 최선을 다해 좋은 물건을 구해 손님에게 권하고, 까다로운 고객도 친절하게 응대하고, 포장에도 신경을 쓴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의 마음일 것이다.”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 김 대표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꿈을 가지고 살아가느냐”고.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었다. 그의 솔직하고 소박한 꿈이 기자의 가슴을 쳤다.
“젊었을 땐 맹목적으로 앞만 보고 달렸다. 이제야 욕심이 조금씩 사라지고, 나도 여유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죽도시장엔 힘들고 어렵게 사는 분들이 적지 않다. 노점을 하는 할머니들, 평생 밤낮 없이 일만 해온 어르신들이 조금은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되면 좋겠다. 물론 나와 어머니도 그렇게 살고 싶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