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사람의 머리에 칩을 삽입한다 그 순간, 인간은 상품이 된다 이를 666 바코드라 부르며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큐 300이 넘는 자만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지배받는 계급을 거부한 이들은 금지된 출산을 감행한다 ai위원회는 인간에게 가격을 매긴다 팔릴 수 있는 인간만이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머리에 칩을 거부한 사람들은 겨울에도 열매 맺는 사과나무 몇 그루를 들고 에덴을 향해 떠난다 ….. 소위 인공지능 시대다. 생각하는 기계가 우리들의 생각과 일을 대신해줄 것이라고, 하나 여전히 인간이 상품이 되는 자본주의 세상. 능력 없는 인간들은 일자리를 가지지 못하고, 인공지능을 개발할 수 있는, 머리 좋은 극소수 사람들만 일자리를 얻을 터, 팔리지 못하는 인간들은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하여 “머리에 칩을 거부한 사람들은” 새로운 에덴을 찾아 이 시대에서 탈출하려 하지 않겠는가. <문학평론가>
2025-05-21
울고 있으면 따뜻해진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 흐린 발소리로 나를 다녀간다 불의 검은 뼈를 뽑아 나의 영혼을 꺾어 버렸다 심야버스가 지나간다 상처가 보였다 뒤돌아보면 처음이란 언제나 캄캄하다 꽃이 피면 나는 꽃을 보내지 않겠다 이것은 결심에 가깝다 단순한 것을 첫눈이라 부르게 되었다 … 대개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깊은 통증을 가져온다. 울어야 따뜻해질 수 있는 기억. 첫사랑은 “불의 검은 뼈”가 뽑혀나가는, “나의 영혼을 꺾어 버”린 사건이기 때문. 삶에서 처음 경험하게 되는 사랑의 상처. 그 기억은 “언제나 캄캄”한 어둠에 둘러싸여 있다. 하여 시인은 꽃이 피더라도 첫사랑에 꽃을 보내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다만 첫사랑에는 어떤 아름다움이 있다. 밤에 내리는 첫눈이 보여주는 단순함과 같은. <문학평론가>
2025-05-20
대나무는 자신의 가장 외곽에 있다 끝이다 싶은 곳에 끝을 끄을고 한 마디를 더 뽑아올리는 게 대나무다 끝은 대나무의 생장점 그는 뱀처럼 허물을 벗으며 제 몸을 얻는다 뱀의 혀처럼 갈라지고 갈라져서 새잎을 뽑아낸다 만약 생장이 다하였다면 거기에 마디가 있을 것이다 마디는 최종점이자 시작점, 공중을 차지하가 위해 그는 마디와 마디 사이를 비워놓는다 그 사이에 꽉 찬 공란을 젖처럼 빨며 뻗어간다 풀인가 나무인가 알다가도 모르겠다 자신이 자신의 첨단이 된 자들을 보라 … 시인은 사물에 대한 사색과 관찰을 통해 삶의 통찰을 얻곤 한다. 위의 시는 대나무로부터 “자신이 자신의 첨단이” 되는 법을 읽어낸다. 끝에서 “한 마다를 더 뽑아올”리고는 “뱀의 혀처럼 갈라”져서 “새잎을 뽑아”내는 방식으로 대나무는 첨단을 살아간다는 것. 나아가 대나무는 정말 끝에 다다랐을 땐 새로운 마디를 시작한다. 마디와 마디 사이 “공란을 젖처럼 빨”면서. 시인이 전범으로 삼아야 할 대나무의 삶. <문학평론가>
2025-05-19
나의 손은 머리보다 구체적으로 하루를 기억한다 (중략) 오늘 하루, 내 손이 닿지 못한 것 참 많다 물기 거두어진 엄마의 얼굴과 사과 같은 아이의 얼굴 바람이 만지는 대로 일렁이는 나무 햇빛이 눌러주는 대로 빛나던 이파리와 이슬이 앉았다 떠난 풀잎 뱀이 쓸고 간 부드러운 흙무더기도 닿을 수 없는 허공을 눈으로 더듬으며 밤길을 휘젖는데 담장을 삐져나온 장미 가시가 손을 찌른다 붉어진 손끝에 하루가 자란다 … 시인은 ‘머리’보다 촉각에 따라 마음에 기억을 새긴다고 한다. 하니 반성도 만지지 못한 것에 따라 이루어진다. 오늘 만지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엄마의 얼굴, 아이의 얼굴, 나무와 이파리, 흙무더기···. 모두 생명과 관계있는 것들. 생명의 기억을 점차 잃어버리고 있는 시인에게 앞길은 어둡기만 해서 더듬거리며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인을 나무라듯 그의 손을 찌른 장미가시가, 그의 하루를 반성으로 성장시킨다. <문학평론가>
2025-05-18
나는 남을 좇는 것도, 남을 이끄는 것도 싫다 복종은 어떠냐고? 싫다! 게다가 당치 않은 소리-남을 지배하다니! 스스로 공포를 조장하는 자가 아니면 어찌 남을 공포에 떨게 할 수 있을까. 남을 공포에 떨게 할 수 있는 자만이 남을 이끌 수도 있으니 스스로 나 자신을 이끌어가는 것조차 나는 싫다! 숲과-바다의 생물들처럼 천천히 시간을 들여 길을 잃고 헤매며 사랑스러운 미로 속에 웅크리고 앉아 생각에 빠져들다 마침내는 저 멀리로부터 집으로 유혹당하는 것을 나는 사랑한다. 나를 나 자신에게 유혹하는 것을 나는 사랑한다. … 철학자 니체는 시인이기도 했다. 위의 시는 그가 자유를 사랑한 시인이었음을 보여준다. 공포를 조장하는 권력에 대한 철저한 거부, 그것은 지배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다. 그래서 니체는 자기가 자신을 지배하여 이끄는 것도 거부한다. 천천히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 그가 살아가고자 하는 삶, 하여 그에겐 미로가 사랑스럽다. 이 미로 안에서야말로 “저 멀리로부터 집으로 유혹당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기에. <문학평론가>
2025-05-15
검은 얼굴의 아이가 있어 조류를 타고 해변까지 밀려온 대륙의 아이가 있어 뿔뿔이 흘러가는 하늘에 흰 수리는 원을 그리며 비행하고 있어 거듭 얼굴이 풀어져 뭍으로 오르려는 눈꺼풀이 흩어져 반복의 역사는 번복되는 아이들로 가득해 창창한 것은 검은 눈물로 적셔지는 땅도 있어 (중략) 국경을 물고 가는 새야 하늘을 균일하게 나누면 새들로부터 망명한 낙원이 있을까 한참을 뛰어가도 숨이 차지 않는 해변이 있어 검은 얼굴의 아이가 부르던 난민의 노래가 밀려 나가는 ….. 시리아 내전을 피하려는 난민을 태우고 유럽을 향해 바다를 떠돌다 난파된 보트, 그 보트에 타고 있던 세 살 아이의 시신이 터키 해변까지 밀려와 발견된 일이 있다. 어른이 만든 참혹한 세상에 희생당한 무구한 죽음. 목숨을 빼앗긴 ‘검은 얼굴의 아이’ 위로 아이의 시신을 먹으려고 비행하는 수리는 이 세상의 폭력을 상징한다. 시인은 아이가 저승에서라도 수리로부터 벗어난 낙원으로 망명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문학평론가>
2025-05-14
내가 모 심는 이 땅은 한때 오야까마의 땅이었고 천 년 전에는 하천이었을 것이나 신라의 포구였다가 고구려의 것이 되고 오래 백제의 것이었을 텐데 어느 양반이 내 땅이라고 소리쳤을 테고 곡식을 심어 거둔 백성이 아마도 천 년은 훨씬 넘을 텐데 나라가 바뀌고 일뽄새 달라지고 주인이 수백 번 바뀌어도 땅은 그 자리 그곳에 남아 있다 변하지 않는다 땅의 주인은 땅이다 …. 이 지구의 땅이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는 인간은 땅을 함부로 대하며 소유해왔다. 이 땅 위에서 인간은 나라를 세우고 전쟁을 벌이며 농사를 지어 목숨을 연장해왔다. 목숨을 제공해주는 땅을 제 것으로 가지려는 욕심이 살육의 전쟁을 일으키고 땅을 갈취하는 인간의 역사를 이루었던 것. 하나 위의 시는 선언한다. 이러한 역사의 변화 속에서도 땅은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있다고. “땅의 주인은 땅이”기에. <문학평론가>
2025-05-13
엄마가 아파트 문 앞에 정물처럼 서 있다 열쇠 번호가 생각이 안 나 못 들어갔다고 한다 평생을 살았던 집 왜 엄마는 갑자기 번호가 생각나지 않았을까 텅, 텅, 잠깐씩 어디선가 문 닫히는 소리 들리고 고요한 세상의 정적 속에서 엄마는 얼마나, 이 세상이 막막했을까 …….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기억은 이젠 비밀번호다. 아파트 문 비밀번호, 핸드폰, 은행 비밀번호…. 그 번호를 잊은 ‘엄마’는 “평생을 살았던” 자신의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어디선가 문 닫히는 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세상, 엄마는 “정물처럼 서”서 막막해한다. 그 막막함은 이 세상이 번호로 닫혀 있는 관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노년은 이 관문을 열 수 없다는 두려움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문학평론가>
2025-05-12
다리 하나를 잃은 의자가 한 달째 골목길에 서 있다 눈을 맞고 겨울비를 맞으며 지나가는 차들은 사람을 대하듯 조심한다 우두커니 서 있는 불구(不具) 밀양 표충사 처마 아래 이른 봄볕을 쬐던 누런 고양이 다리 하나를 잃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듯 저물도록 기울어져 있다 … 우리는 사물들을 쓰다 버리는 것으로 여긴다. 이러한 태도는 동물, 사람으로까지 확장되곤 한다. 저 다리 하나 잃고 골목길에 버려진 의자가 배제된 자를 상징하는 듯 보이는 것은 이유가 있다. “사람을 대하듯 조심”하며 차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 하여 그 의자는 “다리 하나를 잃”는 고양이의 모습으로 전이되고, “저물도록 기울어”지는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을 맞아줄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는 듯이 보인다…. <문학평론가>
2025-05-11
다만 거친 언어가 빚어낸 어리석은 욕망이겠으나 그대는 아름다움 위에 선 칼날 의미를 향해 목놓아 부는 내 간절한 바람 가난한 순례자의 영혼 쉬어갈 집도 절도 황홀한 기억도 모두 베어져 쓰러지고 정념에 들끓던 추억마저 불타올라 흔적 없이 날려가 버렸으니 기어이 그대 없으니 고통 사라지네 다만 메마른 어두움과 슬픔 황량한 바람 소리 마음에 흘러들어 마냥 깊어지네 … 그대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삶을 고통에 빠뜨린다. 그 바람은 실현될 수 없기에. 하여 “그대는 아름다움 위에 선 칼날”처럼 상처를 주고, “가난한 순례자의 영혼”은 쉴 곳을 잃는다. ‘황홀한 기억’마저도 “모두 베어져 쓰러지고” 추억은 정념으로 불타버리는 것. 그대가 마음에서 없어지면 고통은 사라질 터이나, 그때 남은 것은 깊어지는 “메마른 어두움과 슬픔”과 “마음에 흘러”드는 “황량한 바람소리”뿐이다. <문학평론가>
2025-05-08
당신의 폐가 가득 차고 스스로 펼쳐진다. 분홍 피의 날개, 그리고 당신의 뼈들은 스스로 비워 텅 빈 것이 된다. 당신이 숨을 들이쉴 때 당신은 풍선처럼 떠오르고, 당신의 가슴은 가벼워지고도 커진다. 순수한 기쁨, 순수한 헬륨으로 두근대면서. 햇살의 하얀 바람이 당신을 관통하며 불고, 당신 위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당신은 대지를 둥근 보석처럼, 사랑으로 반짝이는 푸른 바다로 본다. 당신이 이럴 수 있는 것은 꿈에서만이다. 깨어났을 때, 당신의 마음은 겁먹은 주먹이 되고, 미세 먼지가 당신이 들이쉬는 공기를 막는다. 태양은 당신 머리의 두꺼운 분홍 테두리에 뜨거운 납의 무게로 곧장 내리누른다. 그것은 늘 총이 발사되기 직전의 순간이다. 당신은 거듭 일어나려 애쓰지만 그러지 못한다. ………. SF 소설로 저명한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 그녀는 시를 왕성히 쓰는 시인이기도 하다. 위의 시는 꿈과 현실의 차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꿈에서만” 가능한 자유. “당신 자신의 몸 안에서” “스스로 펼쳐”지는 날개로 날며 보석 같은 대지와 “반짝이는 푸른 바다”의 아름다움을 내려다볼 수 있는. 반면 꿈에서 깨어났을 땐, 태양이 “뜨거운 납의 무게로 곧장 내리”눌러 일어나지도 못하는 세계가 들이닥친다. <문학평론가>
2025-05-06
며칠 전까지 꽃잎 날리던 나뭇가지에 지금은 연구 잎사귀가 꽂혀 있다. 향기 머물던 자리엔 누군가 서성인 발자국이 얼룩덜룩하다. 오래전 어머니가 상추 가꾸던 텃밭에 오늘은 내가 쑥갓을 심는다. 흙에 버려져 반쯤 파묻힌 플라스틱 통에서는 민들레가 피어났다. (중략) 어디에도 빈틈은 없다. 꿰맨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어제의 갈피를 오늘이 뚫듯, 오늘의 간극은 내일의 에테르로 메꿔진다. 꽃 진 자리에 곧 새똥 같은 열매가 돋으니, 지워졌다 새겨지는 오랜 내력이 인류세가 지난 다음에도 계속될 것 같다. 그러니 지금 헐렁헐렁한 틈도 참을 만하고, 내가 곧 지워져도 괜찮다. 고개를 끄덕끄덕, 살래살래, 갸우뚱… 어쨌든, 다 좋다. ………. 시간에 빈틈은 없다. 시간 속에 빈틈이 생기긴 하나, 시간은 “꿰맨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곧 그 빈틈을 메꾸기 때문. “오래전 어머니가 상추 가꾸던 텃밭”에, 오늘엔 “내가 쑥갓을 심”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시간은 “어제의 갈피를 오늘이 뚫”으며 이어지고, 인류세 이후에도 “지워졌다 새겨지는” 내력은 지속될 테다. 하여 시인은 “내가 곧 지워져도” 시간은 이어질 것이어서,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5-05-01
다섯 평밖에 안 되는 텃밭 이랑이 구불구불한 건 성격이 구불구불한 내가 괭이질해서 생긴 일 고추잠자리가 구불구불하게 날아다니는 건 고추밭 이랑이 구불구불해서 생긴 일 (중략) 어릴 적 고향에서 고추밭 매러 가시던 부모님 따라가서 고추에 앉은 고추잠자리 잡으려던 순간 똑바로 날아가 버리던 건 이랑이 똑발라서 생겼던 일 수백 평 비탈밭 이랑이 길고 길었는데도 이쪽에서 저쪽까지 똑발랐던 건 쟁기질하시던 부모님의 성격이 똑발라서 생겼던 일 … 마음은 노동의 자세를 만들고 그 자세는 노동 산물의 형태를 만든다. 시인은 자신이 괭이질한 텃밭 이랑이 구불구불한 건 자신의 “성격이 구불구불”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런데 이랑이 구불구불하자 고추잠자리도 “구불구불하게 날아다”니게 되었다는 것. 반면 옛적 부모님이 갈았던 이랑은 똑발랐으며, 그래서 고추잠자리도 “똑바로 날아”갔다고. 일하는 자의 마음은 이렇듯 대지와 생명체의 삶을 결정짓는다. <문학평론가>
2025-04-30
반쯤 허물린 담장을 경계로 서 있는 벚꽃 나무 아래 이 빠진 항아리가 빗물을 삭히고 있네 그 안으로 벚꽃 잎이 날아드네 한때는 간장으로 된장으로 고추장으로 속을 채웠을 그가 금이 가고 깨어진 몸으로 이름 모를 풀들을 키우고 있네 곁에 선 철쭉의 젓 몽우리를 딴딴하게 하네 그 환한 것들의 뒤란을 오글오글 타오르게 하네 … 이제 노쇠하여 ‘이 빠진’ 낡은 항아리. 한때는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을 담고 있었지만 이젠 빗물만 삭히고 있는. 하나 저 “금이 가고 깨어진 몸” 안으로도 “벚꽃 잎이 날아드”는 것, 존재의 아름다움은 쓸모를 다한 존재자에게도 방문한다. 그러자 저 깨어진 몸이 하고 있는 일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이름 모를 풀들을 키우고” “철쭉의 젓 몽우리를 딴딴하게 하”면서 “뒤란을 오글오글 타오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5-04-28
꽃나무의 표정이 흐릿해지는 사월 초저녁, 떨어지는 꽃잎이 뭇별을 띄워낸다. 잎을 다 떨구고 나서도 꽃나무가 꽃나무로 남듯, 이목구비가 잘 떠오르지 않는 사람도 사랑의 발음을 온전히 지우지는 못한다. 어디선가 그도 나처럼 저녁의 흐릿한 표정을 살펴 가며 기억나지 않는 눈코입귀를 성기게 새겨가고 있으리라. 떨어진 꽃잎까지 다 게워낸 후에야 아득한 훗날을 꿈꾸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의 저 꽃나무 같은. … 별이 뜨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의 봄날. 그 시간엔 지나간 일들이 기억나고, 그대의 얼굴은 흐릿하지만 지울 수 없는 사랑의 잔영이 떠오른다. 떨어져나간 사랑의 시간들은 지금 떨어지고 있는 저 꽃잎 같고ㅈ 하나 이 시간엔 헤어진 그대도 ‘나’의 “눈코잎귀를/성기게 새겨가고 있”을 터, 이별의 아픔은 어떤 믿음으로 전환된다. 꽃잎을 다 떨어뜨린 이후의 꽃나무처럼 “아득한 훗날을 꿈”꿀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문학평론가>
2025-04-27
오늘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우리의 별 볼 일 없는 이들/ 그 끔찍한 얼굴의/ 아름다움이/ 나를 흔들어 그러하라 하네. 까무잡잡한 여인들,/ 일당 노동자들-/ 나이 들어 경험 많은-/ 푸르딩딩 늙은 떡갈나무 같은 얼굴을 하고선/ 옷을 벗어던지며/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그리고 나란히 함께 하는/ 그대들 얼굴도 나를 흔드네-/ 앞장선 시민들-/ 하지만 같은/ 방식은 아니게. … 20세기 미국 대표시인 윌리엄스의 시. 그가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해 말해준다. 시는 예쁜 모습에 매혹되어 쓰는 것이 아니라 ‘끔찍한 얼굴’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쓰는 것. 가난하고 일에 지친 이들의 “늙은 떡갈나무 같은” 얼굴에서 말이다. 그들이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시인을 흔든다. 거리의 시위에서 “나란히 함께”,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앞장선 시민들”의 얼굴 역시 시를 끌어 올린다. <문학평론가>
2025-04-24
다리를 다쳐 얼마간 전동 휠체어 신세를 졌다 (중략)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시는 것도 전동 휠체어에 앉아서 했다 자판을 가로지르는 두 손, 컵의 온기와 섞여드는 손의 온기, 발의 감각과 페달의 감각이 하나가 되어갔다 내 가장자리는 어디일까 전동 휠체어와 노트북과 컵의 가장자리까지를 나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피부를 지닌 존재로서 철이나 플라스틱이나 세라믹과 연결된 이 몸을 …. ‘나’라고 한정지을 수 있는 ‘가장자리’는 어디까질까. 나와 연동되어 움직이는 사물들도 “나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사물 역시 “피부를 가진 존재”이기에, 사물과 접속할 때 나와 사물의 ‘온기’가 섞여들며 “감각이 하나가 되어”가기 때문이다. 인간과 사물 사이의 경계는 무엇인가. 둘 사이의 경계를 뚜렷이 나눌 수 없다면, 사물은 단순한 이용 대상이 아닌 것이다. 사물은 인간과 섞여드는 나름의 주체이기에. <문학평론가>
2025-04-23
개미는 턱 힘이 세다 이를 악물고 살았기 때문이다 시냇물도 여울목에 다다르면 몸이 거칠다 몇 번이라도 꺾이며 밀려온 탓이다 산들바람마저 폭풍의 언덕에선 머릿결이 난폭하다 사람계곡을 헤매다 기어코 홀로 선 절벽 울부짖다 ….. 선하고 순한 존재자들은 거칠게 살 수밖에 없다. 세계가 그렇게 놔두지 않기 때문. 그래서 가녀리다고 그들을 무시하면 안 된다. 저 작은 개미 역시 “이를 악물고/살”아야 했기에 “턱 힘이”이 세지 않는가. 살살 흐르던 시냇물도 여울목에선 거세지고, 부드러운 산들바람 역시 난폭해질 때가 있는 것. 산하를 부드럽게 비추어주던 달도 “사람계곡을 헤매다” 보면, ‘기어코’ 절벽에 홀로 서서는 붉게 울부짖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5-04-22
미역국 대신 비타민 한 알 챙겨 먹고 야간자율학습하는 딸 마중을 간다 너무 빨리 도착한 손이 문자를 읽고 차 한 대 없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태어난 날 교문 앞에서 기다려주는 것 친구들이 해준 과자목걸이 주렁주렁 매달고 나타난 딸과 종종 아빠가 자가용을 태워준다는 친구를 골목 입구까지 택시로 데려다주는 것 그리하여 자꾸 차를 얻어 타기 미안해 오늘은 그냥 버스 타고 갈래요 하던 딸에게 조금은 미안함을 덜어주는 것 엄마가 끓여 준 미역국을 먹지 않고 등교하여 급식으로 나온 미역국을 안 먹었다는 말에 바지 주머니 속 손수건 만지작거리다가 슬며시 잡아본 딸의 손이 생크림케이크처럼 보드랍다 ….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는 말을 진실로 느끼게 해주는 삶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시. “차 한 대 없는” 시인이 딸에게 소소한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과 생일날 “엄마가 끓여 준 미역국을 먹지 않”아서 “급식으로 나온 미역국을 안 먹었다는” 아이의 마음이 찡하게 교차한다. 그 교차를 시인도 알고 있다. 딸의 손을 “슬며시 잡아”보는 것을 보면. 그러자 삶을 기리는 보드라운 생크림케이크가 불을 밝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5-04-21
유유자적 요트 위에서 지는 해를 구경한다 뱃전에 매단 등에 소리 없이 불이 오고 우리는 근심 하나씩 바다에 떨궈 갔다 세월에 밀려나도 당당한 너를 보며 통영에서 비운 서녘이 내려놓은 한 편의 시가 친구야 황혼에 드니 일몰이 더 찬란하다 … 시인은 ‘유유자적’ ‘지는 해’를 구경하면서 아마 자신의 삶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저 일몰은 “세월에 밀려나”고 있는 삶의 시간을 뜨겁고 아름답게 비춘다. 하여, 시인은 삶의 저녁에 들어서며 얻게 된 근심을 저 당당하게 사라지는 일몰의 “바다에 떨궈” 갈 수 있었던 것, 나아가 그는 황혼의 시간인 “일몰이 더 찬란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저 찬란함이야말로 삶이 얻게 되는 ‘한 편의 시’임을 발견하면서. <문학평론가>
2025-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