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학
태엽이 풀려 지금 정지한 벽시계
12에 멈춘 초침과 2에 멈춘 분침 사이로
벚꽃이 피어나더니 꽃잎이 휘날리고
벚꽃이 피면 뭘해요
어차피 내가 걸을 길이 없는데
울 수도 없어요
꽃잎이 너무 환해서
시계 속이 너무 어두워서
길이 없는 곳에서도 꽃잎은 날리죠
꼼짝없이 하얗게 갇혀 있네요
당신과 당신의 그림자 사이에
첫번째 편지와 두번째 편지 사이에
여기저기 있던 당신
내 시계에서 다 죽어버렸네요
…..
“태엽이 풀려” 벽시계가 정지하고, 시인의 시간도 정지한다. 정지된 시간의 사이에는, 벚꽃 지며 휘날리고 있다. 정지된 시간은 “당신과 당신의 그림자 사이”이기도 한 “첫번째 편지와 두번째 편지 사이”의, 환하게 피었다가 속절없이 사라져가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여기저기 있던 당신”은 “다 죽어버”리고, 시인은 그 “너무 어두운” 사이 시간 속에 “하얗게 갇혀 있”다. “걸을 길도 없는” 꽃잎 흩날리는 곳에서.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