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언제나 정답던 이 호젓한 언덕, 이 울타리, 지평선 아스라이 시야를 가로막아 주네. 저 너머 끝없는 공간, 초인적인 침묵과 깊디깊은 정적을 앉아 상상하노라면, 어느새 마음은 두려움에서 멀어져 있네. 이 초목들 사이로 바람 소리 귓전을 두드리면, 문득 난 무한한 고요를 이 소리에 견주어 보네. 이윽고 내 뇌리를 스치는 영원함, 스러져 버린 계절들, 또 나를 맞아 숨 쉬는 계절, 이 소리, 그리하여 이 무한 속에 나의 상념은 빠져드네. 이 바다에선 조난당해도 내겐 기꺼우리. 19세기 초에 활동한 이탈리아 낭만주의 시인 레오파르디. 그는 이탈리아 국민 시인으로 칭송받는다고. 위의 시는 그의 낭만주의를 잘 보여준다. 눈앞엔 울타리가 시야를 가로막지만, 시인의 눈은 그 너머 “끝없는 공간”을 상상한다. “무한한 고요” 속에서 영원함을 느끼며 자신을 둘러싼 계절이 숨 쉬고 있음을 인지한다. 이 상상의 세계는 무한한 바다와 같은데, 시인은 기꺼이 이 바다에서 조난당하기를 선택한다. 문학평론가
2025-01-13
대답 좀 해보세요! 나는 아버지를 흔들어 봅니다 통로마다 어둠이 있고 아버지는 묵언으로 삽니다 꽉 잠긴 아버지는 늘 한군데만 지키고 서 있습니다 답답합니다 그것은 소음에 진저리치며 두통을 앓기도 합니다 가족력은 아닙니다 비밀에도 층계가 있습니다 가족 사이 층계가 많아질수록 아버지는 점점 완고해집니다 그러다 스스로 층계에 갇혀 비밀번호를 잃어버린 아버지, 아직도 번호를 찾지 못했습니다 황폐해진 대문을 열어 가끔 갇힌 고양이를 풀어주곤 합니다 아버지의 궁전에는 비밀이 녹슬어 갑니다 녹슨 열쇠도 보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대답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저기 계신다. 예전보다 더 말이 없으시다. 무엇인가를, 어떤 비밀을 지키려고 하시는 듯이. 시인은 그 비밀에 접근하려고 하지만 “비밀에도 층계가 있”어서 들어가기 버겁다. ‘아버지’는 “층계에 갇혀 비밀번호를 잃어버린” 것, 비밀을 드러내놓으시지 않는다. 다만 갇힌 고양이와 대화하시는 아버지. 노쇠해진 아버지를 둔 분들도 아버지의 침묵과 맞닥뜨릴 때가 있을 테다. 이 침묵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문학평론가
2025-01-12
(전략) 내장이 캄캄하도록 시커먼 블랙커피를 마신 날 잠은 오지 않고 늦가을 기러기들이 물어다놓은 별들이 밤새처럼 지저귀는 가지 위에서 바람의 육질로 슬슬 갈아낸 검은 먹지에 이가 시린 하얀 송곳 글씨로 한 점 의혹 없이 전모를 드러낸 별자리 살얼음 잡힌 김칫독 싱건지국물 같이 짱짱한 섣달 무명 다듬잇돌 같이 차디찬 별을 품고 누웠는데 밤새는 밤새도록 새빨간 간(肝)만 쏙쏙 빼 먹었다 곶감처럼 늦가을 새까만 밤하늘. 시인이 마시는 블랙커피의 색깔과 같다. 시인은 지금 가을 밤하늘을 마시고 있는 것. 마음이 어둡다. 하나 바람의 육질로 슬슬 갈아낸 먹지” 같은 가을밤 하늘엔 “하얀 송곳 글씨” 같은 별들을 “기러기들이 물어다놓”고, 시인의 마음은 그 차디찬 별들을 품는다. 그러자 별들은 밤새처럼 지저귀며 시인의 “새빨간 간”을 곶감 빼먹듯 쏙쏙 밤새도록 빼 먹고, 시인의 마음은 더욱 아픈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5-01-09
병원에 다녀왔다 명절 지나 입원한 지인의 몸살감기 속을 다녀왔다 공업사에 다녀왔다 계절이 바뀌고 기온이 달라지니 20년 된 애마가 고장 났다 고달픔 속을 다녀왔다 아침에 거울을 보니 얼굴에 세월이 묻어 있다 주름이 하나 더 보인다 어느 속을 다녀와야 될까 사람도 자동차도 거울도 지금 환절기를 앓는 중 얼굴에 묻어 있는 세월과 함께 늘어난 주름을 확인하는 시기. 감기몸살을 앓는 시기. 몸과 마음이 고장 나는 시기. 이 “타고 넘는” 시기가 지나면 다시 평온하고 건강한 삶이 올까. 하나 계절은 영원히 순환하지만, 슬프게도 삶은 순환하면서 끝을 향해 나간다. 주름은 다시 펴지지 않으며 낡은 ‘애마’는 고쳐도 새로워지진 않는다. 하지만 시인은 비관에 빠지지 않는다. 애써 이 시기를 ‘환절기’라고 지칭하면서. 문학평론가
2025-01-08
만남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려면 동해안 방파제도 좋지만 해안선 절벽을 따라 기찻길을 걸어볼 일이다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보며 바다에 바짝 붙은 레일 위를 하염없이 걷다가 아래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잠시 앉아 기슭에 와 닿는 부딪힘이 얼마나 무량한지 그렇게 땅이 잉태한 생명 얼마나 꿈틀거리는지 물보라 피어오르는 언덕의 허리 뒤트는 소나무와 우루루 몰려오는 바다를 맞아볼 일이다 동해안을 달리는 기차에서 바다의 풍경을 보곤 했지만, 이때 바다를 만났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시인은 그 기찻길을 걸어보며 아래의 바다를 근거리에서 볼 것을 제안한다. 바다가 “우루루 몰려오는” 것을. 그러면 “기슭에 와 부딪”치는 바다의 ‘무량함’을 느낄 수 있으며, “땅이 잉태한 생명”-바다-의 꿈틀거림을 느낄 수 있다는 것. 힘들고 지치는 삶이 계속되는 사람이라면, 시인의 제안을 실천해볼 만하겠다. 문학평론가
2025-01-07
머리가 춤을 춘다 금암초등학교, 중앙여중, 대학문에 걸린 얼굴이 내려다본다 환한 빛에 갇힌 젊은 날들이다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두근거리는 기대가 스크린 앞에 그는 서 있다 ‘박재된 환영이 되어버린’ 갇힌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어 꿈은 바스러지고 쌓았던 기대가 넘어지면 조그만 손가락으로 그리던 이게 뭐지? 그때 보여준 환한 웃음이 나이가 지긋해진 이들이라면, “환한 빛에 갇힌 젊은 날”을 추억할 때가 많을 것이다. 특히 “꿈은 바스러지고/쌓았던 기대가 넘어지”고 만 이들은 더욱 그럴 테다. 이제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이들. 필자 같은 이 같은. 환영은 박제되어 버렸고 “두근거리는 기대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게 된 삶. 다만 미래를 가졌던 시절을 추억하는 삶. 그러나 추억이 다시 미래를 세울 수 있지도 않을까, 일말의 희망을 갖는 삶. 문학평론가
2025-01-06
꿈틀꿈틀은 나의 유일한 저항 수단 아무리 걸어 봐도 먼 내일 햇볕은 눈물겨운 분신의 최적 조건 밟히고 말려지는 건 가문의 오래된 장례법 차마 눈 뜨고도 못 볼 일 많아 눈 감고 어둠 속으로 기어들기도 했다 가끔, 풀잎에 기대어 나비를 꿈꾸기도 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한 끗 차이 오늘도 비명 한번 없이 쥐똥나무 꽃향기 쪽으로 직진 중이다 뼈 없는 설움이 깊다 ‘꿈틀꿈틀’ 몸을 비틀며 땅위를 기어가는 지렁이. 서민 역시 이렇게 기어가다 “밟히고 말려지”며 사라지는 삶을 살지 않는가. 서민 역시 나비가 되어 날아가기를 꿈꾸지만, “눈 감고 어둠 속으로 기어”들곤 하는 것이다. 서민이란 누군가. 지렁이처럼 “뼈 없는”, 재산도 ‘빽’도 없는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비명 하나 없이” 묵묵히 지금도 “꽃향기 쪽으로 직진”한다. 그것만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듯이. 문학평론가
2025-01-05
한껏 몸을 이완시키고새어 나오는 수만 갈래의 생각을빗소리에 조용히 내려놓습니다벌거벗은 모습을 거울 앞에 비추듯상념 속에 떠돌던 내가어색하게 마주 앉은 지점입니다생각은 빗방울 숫자보다 많습니다모서리가 부서진 비의 다정을 듣습니다발각되고 싶지 않은 길 하나 만들어잡념을 쑤셔 넣고 꿀떡 삼키겠습니다(후략)나이가 들면서 “수만 갈래의 생각”에 정신이 산란해지곤 하지 않는가. 위의 시는 이 ‘잡념’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방도를 보여준다. 비 오는 날, “한껏 몸을 이완시키고”“모서리가 부서진 비의 다정을” 들으며 빗소리 앞에 자신을 세우고 자신의 나신을 거울 앞에 들여다보듯 응시해 보라는 것. 그러면 “발각되고 싶지 않은 길 하나 만들”어 그 길 안에 “잡념을 쑤셔 놓고 꿀떡 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5-01-02
나 저 깊은 밤의 끝에 대해 말하려 하네 나 저 깊은 어둠의 끝에 대해 깊은 밤에 대해 말하려 하네 사랑하는 이여 내 집에 오려거든 부디 등불 하나 가져다주오 그리고 창문 하나를 행복 가득한 골목의 사람들을 내가 엿볼 수 있게 1967년 32세의 나이로 요절한 이란 여성 시인 파로흐자드의 시. 우울에 빠진 여성의 삶을 드러낸 시인으로 유명하다고. 위의 시 역시 극한에 다다른 우울을 슬픈 이미지로 보여준다. 마음의 밤은 깊어 어둠은 끝에 다다랐다. 시인은 “사랑하는 이”에게 호소한다. ‘내 집’에 올 때 “등불 하나”와 “창문 하나를” 가져와달라고. 그의 마음엔 창문 하나 없었던 것, 그래서 “행복 가득한 골목”을 볼 수도 없었다는 것. 문학평론가
2025-01-01
나뭇가지 속 식물의 수액 속에서 박동하는 저 힘은 시詩 속에도 깃들어 있다 단지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을 뿐. 입맞춤 속에서 욕망 속에서 도사리고 있는 저 힘은 시 속에도 움트고 있다, 단지 숨죽인 채 잠잠히 있을 뿐. 나폴레옹의 꿈속에서 러시아와 설원을 정복하라고 부추기며 꿈틀대는 저 힘은 시 속에도 존재하고 있다. 단지 꼼짝 않고, 가만히 있을 뿐. 폴란드의 현대 시인 자가에프스키의 시. 시인은 시를 식물과 같은 존재로 생각한다. 식물은 수동적이고 아무 움직임도 없는 존재로 보이지만, 그 “수액 속에”는 박동하는 힘이 꿈틀댄다. 시도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는 그런 힘을 가졌다. 시 속에는 입맞춤을 통해 통하는 사랑처럼 욕망의 힘이 흐르고, 나폴레옹에게 러시아 정복의 야망을 부추겼던 꿈처럼 시의 힘은 세상을 정복하는 거대한 힘으로 나타날 테다. 문학평론가
2024-12-30
중심은 늘 먼 데 있었네 나는 변방의 자식 태생과 부모를 원망하고 형제를 배척했네 주변을 경계하며 외로 존재했네 그럴수록 나는 더 변방, 변방의 변방으로 밀려났네 빈방의 어둠 속에서 탄식만을 읊었네 살면서 오래 중심을 기웃대며 넘보기도 하고 밤잠 설치며 코피를 쏟기도 했지만 다행히 나는 실패했네 중심은 닿을 수도 머물 수도 없는 가없는 높이 같아서, 한때 중심의 신도였으나 이제 변방의 기수로 자처하네 먼 하늘 해설피 열리는 풍경과 새들의 합창이 경쾌한 소음이 되는 눈부신 변방 어쩔 수 없는 변방의 자식이었네 태생 때문에라도 중심에서 밀려나 변방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중심으로 들어가고 싶은 그들의 욕망이 삶을 더 불행하게 만든다. 중심에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내줄 생각이 없기에. 변방에서 살아온 시인 역시 중심에 들어가는 데 실패했지만, 그는 그 실패가 다행이었음을 깨닫는다. 변방에서의 삶을 긍정하면, 저 먼 하늘 풍경과 새들의 경쾌한 합창을 즐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문학평론가
2024-12-29
골똘히 걷다가 휘영청 밝게 뜬 super moon을 봅니다 여태껏 본 달 중 가장 크고 멋진 달입니다 마냥 들뜬 나는 입을 열고 쏟아내고 싶은 수다가 있었습니다 귀를 열고 듣고 싶은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념 없이 혼자였습니다 필자도 ‘슈퍼 문’을 보고 그 아름다움과 황홀함에 넋을 잃고는 그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떠벌이고 싶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주위에 마음 편히 그 아름다움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대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더욱 사무치는 고독감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시인도 이러한 경험을 했던 것이리라. 자연이 가끔씩 제공해주는 기막힌 아름다운 현상에 인간은 더욱 초라해지는 모습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오늘날이다. 문학평론가
2024-12-26
모여 있는 이유를/ 한 번쯤 물어야 한다 백 년 전 황토현이 그랬고/ 아우내 장터가 그랬고/ 지구의 모처들이 그랬듯 자작나무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있다 모여든다는 것/ 장미 넝쿨이 담장으로/ 폭죽 터지듯 피는 여름이 그렇고/ 다랑논과 밭이 그렇고/ 넓이를 따지지 않는 계절이 그렇다 자작나무 숲을 보면/ 세상의 것들 대부분/ 차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산다/ 서로 같은 처지를 곁에 두고/ 희끗희끗 위로하고/ 위로받고 있다 왜 모든 존재자들은 모여 있는 것일까. 시인은 묻는다. 저 자작나무들을 보라. 자발적으로 모여 있지 않는가. 여름 담장의 장미 넝쿨도 그렇다. 논과 밭, ‘아우내 장터’, 계절 자체, “세상의 것들 대부분”이 그렇다. 시인의 대답은 “같은 처지를 곁에 두고” “위로하고/위로받”기 위해서라는 것. 하지만 이 모임은 무기력하지 않다. 장미넝쿨은 “폭죽 터지듯” 붉고, “백 년 전 황토현”에서는 혁명의 힘이 되지 않았던가. 문학평론가
2024-12-25
욕설 한번 되게 먹여 주리라 벼르던 사람이 초인종 누르고 현관문을 연다 들어서는 순간 결심을 놓쳐 버리고 ‘어서 와’라며 조금 반겨 버리고 말았다가빠지던 숨을 고르다가 마침 씻고 있던 딸기 한 알 그 입안에 넣어 주고 말았다 나도 모르는 비겁한 순발력이었다 함부로 웃음을 내놓진 않았지만 제대로 역정을 내놓지도 못했다 마친 딸기를 씻던 중이어서. 아마 욕설을 퍼부으려고 한 대상은 시인의 남편 아닐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인은 그에게 단단히 화가 났다. 하지만 집에 들어온 그에게 욕은 하지 못하고 씻고 있던 딸기 한 알을 그이의 “입안에 넣어 주고 말았다”고.‘딸기는 힘이 세다’라고 할까. 신선한 과일을 씻는 행위와 욕설은 어울릴 수 없는 일, 게다가 딸기는 남에게 먹이고 싶을 만큼 맛있지 않는가. 화를 누르고 기쁨을 나누게 하는 딸기의 힘! 문학평론가
2024-12-23
순백의 어둠 속, 눈의 거대한 침묵 속에서, 한 아이가 한숨 쉬며 비통하게 말하는 중이었다. “오, 그들이 저 위 둥지 속 하얀 새를 죽여서, 솜털이 가슴팍에서 퍼덕거리며 떨어지고 있어요.” 그리고 여전히 솜털은 저 거무스름한 광채 사이로 떨어졌다. 눈새 때문에 울고 있는 아이 위로. 1차 세계 대전에서 39세 나이로 전사한 영국 시인 에드워드 토마스의 시. 이 시가 보여주는 아이의 시적인 상상력은 폭력에 노출된 세계에서 형성된 것 같다. 눈(雪)을 ‘그들’이 죽인 ‘하얀 새’의 “퍼덕거리며 떨어지”는 ‘솜털’로 보는 상상력. ‘그들’은 누구인가. 적의 군대일까? 여하튼 신은 “거대한 침묵” 속에 있고, “순백의 어둠 속” “거무스름한 광채”는 이 세계의 폭력성을 암울하게 드러내는 상징적 색채이다. 문학평론가
2024-12-22
발이 닿지 않아서 바닥이 사라져서 좋습니다 흔들려서 흔들리기 좋아서 한시도 멈추지 않아서 멈출 수가 없어서 앞으로 뒤로 꼭 그만큼만 가고 그만큼만 돌아와서 물러나도 더 물러설 수 없어서 물러난 곳이 하늘이어서 공중에 매달려서 날 수 있어서 아주 잠시 나비가 되어서 아이가 되고 놀이가 되고 구름이 되어서 그리고 지상에 닿았을 때 잠시, 어지러워서 좋습니다. 땅에 “발이 닿지 않”고 싶을 때가 있다. “나비가 되”거나 “구름이 되어서” 말이다. 이는 아이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위의 시는 이 마음을 그네 타기를 통해 매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른은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가야만 한다는 강박 속에서 산다. 하지만 앞뒤로 흔들리는 그네를 타면, 어른들도 하늘로 잠시나마 물러서서 “공중에 매달려서/날 수 있”게 해준다. 우리에게 황홀의 시간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4-12-19
이 한겨울에 우리 다시 만나니 슬프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여 눈물과 미소로 너를 바라본다 용기 내줘서 고마워 살아있는 네가 눈부셔 우린 꼭 이겨낼 거야 저들에겐 총이 우리에겐 빛이 (중략) 저들에겐 탐욕이 우리에겐 영혼이 저들에겐 총칼이 우리에겐 사랑이 저들에겐 파멸이 우리에겐 희망이 우리 인생의 ‘별의 시간’에 다치지 말고 지치지 말고 빛으로 모이자, 될 때까지 모이자 44년 만에 갑자기 비상계엄이 선포되면서, 총을 든 군인이 민의 기관인 국회를 침탈했다. 이후 열린 여의도 탄핵 집회에서 이 시를 처음 접했다. “저들에겐 총이”라는 말이 비유가 아닌 현실이 되었음이 지금도 가슴을 아프게 친다. 하나 탐욕을 위해 국민에게 겨눠진 그 ‘총칼’을, ‘우리’가 사랑과 희망으로 “빛으로 모”일 때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시인의 전언 역시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문학평론가
2024-12-18
니체를 풀밭에서 침실로 옮긴다 달그림자 찌걱거리는 소리 니체가 나체(裸體)로 날바닥에 눕는다 니체를, 벌거숭이별 하나를 어떻게 안착시켜야 오늘 밤 잠이 잘 올까 니체의 나신(裸身)을 끌어안고 침대에 덜컹 눕는다 한밤중에 핀 쑥부쟁이 꽃들이 쿵쾅쿵쾅 온몸에 폭죽 터진다 니체가 꽃핀다 니체는 거짓을 벗어던지고자 한 고독하고 독창적인 ‘사상가-시인’이다. 시인은 이 니체를 사랑한다. 풀밭 하늘 위에 ‘벌거숭이별’로 둥둥 떠 있는 니체를 옮겨 자신의 침실로 옮기는 것을 보면. 그는 이 별을 이곳에 안착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니체의 나신을 끌어안는다. 그러자 ‘온몸에’ ‘쑥부쟁이 꽃들’이 폭죽처럼 터진다. 시인의 온몸에 니체가 꽃피는 것이다. 사상에 대한 사랑을 감각적으로 보여준 흥미로운 시. 문학평론가
2024-12-17
손짓보다 계곡물이 먼저 건너간 곳에 커다란 나무가 벗은 한여름을 모아 누군가 낙엽하트를 만들어 놓았다 버석한 사랑 속으로 어른 두셋 풍덩 뛰어들 수 있는 큰 하트를 참 부지런한 사람도 다 있군 무심코 중얼거리는데 사랑의 장례를 치른 거라며 너는 사랑무덤이라고 했다 지나간 사랑을 낙엽으로 덮으면 타올랐다 온도를 다독일 수 있으려나 들여다본 네 눈 속에도 사랑이 지고 있었다 한여름 속에 함께 누웠던 네가 나를 두고 걸어 들어가 사랑무덤에 홀로 눕는다 여름이 지나고, 이제 겨울 앞. 낙엽이 졌다. 누군가 만든 커다란 ‘낙엽하트’를 ‘너’는 ‘사랑무덤’이라 지칭한다. 한창 타올랐던 여름의 사랑은 이제 지고, 그 사랑의 흔적을 가지고 지나간 사랑을 기념하듯 하트를 만들었기 때문. 그 하트 밑에서 사랑의 열기는 천천히 식어갈 터, 화자는 그런 말을 하는 ‘너’의 눈에서 지고 있는 사랑을 읽는다. 나아가 ‘네’가 그 사랑무덤에 홀로 들어갈 것임을 슬프게도 감지한다. 문학평론가
2024-12-16
어머니 당신의 희디흰 대리석 발 앞에 꽃을 놓아 드리려고 꽃을 땄습니다 (중략) 당신이 수천 개 뿌리 끝 마디마디에 스며들어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자란다고 안심했습니다 평화로운 새벽 흠 없이 하얀 새벽별이 있어 시작되는 모든 것의 선봉에서 빛난다고 마음을 놓았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이별로 화석화된 가락 따스한 채로 굳은 가축의 젖 어머니 전 당신의 연속입니다 몽골의 현대 시인 바오긴의 시. 시인의 어머니는 그가 어릴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어머니의 조각상일까. 시인은 그녀의 “이별로 화석화 된” “대리석 발 앞에/꽃을 놓아드”리고는, 어머니의 육화라고 여겨진 그 꽃이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자”란다고 상상한다. “하얀 새벽별”은 “모든 것의 선봉에서” 빛나는 어머니의 혼. 이 별빛을 받으며 그는 어머니가 물리는 ‘젖’을 느끼고, 자신이 “당신의/연속”임을 깨닫는다. 문학평론가
2024-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