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것 같은데 끝나지 않은 사람 서는 대신 누워버린 사람 누워서 종일을 걷는 사람 아무리 걸어도 빨간불인 사람 그릇에 떨어진 동전의 힘으로 사는 건지 모르는 사람 아직 지지 않은 사람 지치지 않는 사람 몸과 고무가 하나지만 여름에는 고무다리가 옥수수 잎처럼 더 자라는 사람 (중략) 배달 오토바이처럼 한번씩 바닥에 뒤집혔다가도 끝내, 끝내지 않는 사람 …… 예전엔 다리 잃은 장애인이 고무다리를 붙이고 바퀴 달린 판자 위에 엎드려 시장이나 역 주변을 돌며 구걸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던 바, 시인은 이 장애인 걸인으로부터 어떤 숭고한 생명력을 보았던 듯싶다. 그 장애인의 모습을 보면 “끝난 것 같”지만, 그는 결코 “끝내지 않고”, 세상이나 운명에 “지지 않”으며, 그것도 “누워서 종일을” 걸어도 “지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시인은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5-09-14
처마 및 기어들어 빗방울만 바라보며 책가방 움켜쥐고 혼자 떨고 서 있는데 우산 든 여학생 미소 풀꽃처럼 다가온다 받을까 망설이다 데리러 곧 온다고 수줍어 낯 붉히며 차마 받지 못하는데 굵어진 빗줄기 사이로 작아지는 뒷모습 소나기 삼 형제도 거짓말을 하는 걸까 밤 깊은 빗길 속에 속옷조차 젖어들 녘 부를 이 없는 이 마음 누구에게 전할까 … 위의 시는 자유시의 질감으로 읽히는 연시조다. 마지막 행이 전통적인 시조의 종장처럼 여운을 남기긴 한다. 나이 지긋한 시조 시인이 풋풋한 소년 시절을 떠올리는 시로, 시가 연출한 장면이 예뻐서 여기 올린다. 풀꽃 같은 미소를 띠고 우산을 들고 다가온 여학생의 호의에 ‘감히’ 응하지 못하고, 결국 비를 쫄딱 맞으며 길을 걸어야 했던 소년의 우스우면서도 귀여운 모습이 독자의 옛날을 떠올리게 하지 않을까. <문학평론가>
2025-09-11
내가 약탈했던 시인들에게 용서를 구하노라 모든 나라의, 모든 시대의 시인들이여 나는 오로지 당신들의 단어들, 당신들의 문체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른 방식이었다, 형제들이여 그것은 당신들에게 바치는 커다란 존경인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여기, 우리 사이에 사람을 이끄는 끈 자체인 단어들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로 다 이어져 있기 때문이니라 고맙다. ….. 미롱은 캐나다 퀘벡주 출신 시인. 1996년 그가 죽었을 때 최초로 퀘벡 작가를 위한 국장이 열렸다고. 위의 시에 따르면, 모든 나라의 단어들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로” “다 이어져 있”다. 필자가 지금 불어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위의 시를 읽고 있듯이. 하여 시인은 모든 나라와 시대의 시인들의 단어들과 문체들을 ‘약탈’하여 ‘다른 방식’으로 가지는 이다. 하나 그것은 그들에 대한 ‘커다란 존경’의 행위라는 것. <문학평론가>
2025-09-10
아직 오지 않는 흰 구름을 기다립니다 내가 타야 할 기차입니다 오기만 한다면 단숨에 그리로 갈 것이기에 구름의 발을 믿습니다 이곳은 별들의 무덤입니다 조각난 별들이 퍼즐처럼 맞춰 달라 보챕니다 제 자리로 가서 반짝이고 싶다 합니다 죄의 값보다 무서운 돈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덤불 속에서 겨우 빠져나와 바람 한줄기 잠시 머무는 역에 이르렀습니다 하얗고 곧은 사람들이 사는 은사시나무 마을에서 흰 구름이 떠났다고 합니다 별의 눈이 되어 거기에서 만날 우리 … 위의 시에 따르면 우리는 “죄의 값보다 무서운 돈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별들의 무덤”인 ‘덤불’에서 살고 있다. 시인은 이 숨 막히는 곳에서 빠져나와 “하얗고 곧은 사람들이 사는 은사시나무 마을”로 가려고 한다. 그 마을에서 떠난 ‘흰 구름’을 타고 ‘거기’로 갈 수 있으리라 믿기에. 지금 시인이 도달한 곳은 “바람 한줄기 잠시 머무는 역”, 여기서 그는 저 마을에서 ‘별의 눈’이 될 수 있으리라 희망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5-09-09
엄마가 죽었을 대 엄마의 말씨가 남았다 이내, 이내 이내가 어미의 시간처럼 돌아왔다 밥 짓는 손끝에서 아궁이 불꽃처럼 말이 피어올랐다 그 말은 내 귀에 박히고 내 입에서 다시 불러졌다 나는 엄마의 사라진 시간을 아로새긴다 불꽃처럼, 이내 …. 위의 시를 읽고 뜻을 알고 있다고 여겼던 ‘이내’를 사전에서 찾아봐야 했다. ‘곧’이라는 시간적 의미만이 아니라 ‘가까이’라는 공간적 의미도 있는 오묘한 말이었다. 이 시에서 ‘죽은’ ‘엄마’가 자주 입에 올렸던 ‘이내’는 “아궁이 불꽃처럼” 피어오르며 “어미의 시간처럼 돌아”와 시인의 말이 된다. “엄마의 사라진 시간”이 시인에게 ‘불꽃처럼’ 아로새겨진 것, 이로써 ‘엄마’는 시인과 같이 사는 ‘이내’의 존재가 된다. <문학평론가>
2025-09-07
정이랑 “벗어 봐요” 지나가는 나에게 속삭이던 너, 못 들은 척 했었지 겹겹이 입고 있다가 때가 되면 벗을 줄 아는 너, 맨몸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는구나 허공을 떠받치고 있는 가지들이 눈부시구나 몇 날 며칠을 혼자 서 있어야 껴입은 욕심을 버릴 수 있겠니, 모든 걸 떨쳐버리고 오롯이 바람 한 점만 걸칠 수 있겠니, 이 시간 이후부터 나의 자화상을 너로 삼기로 했다 …. 겨울이 되어 옷 벗은 나무. 시인이 이 나무의 모습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것은 나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나무의 꼿꼿함 때문이다. 물론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영혼의 문제다. 자신의 맨 영혼을 세상에 드러냈을 때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 “오롯이 바람 한 점만 걸칠 수 있”는 영혼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잎 떨군 가지처럼 “허공을 떠받치”며 자유에 도달한 영혼, 시인은 이 나무의 영혼이 되고자 한다. <문학평론가>
알을 깨고 나온 누에의 몸털처럼 갓 우화한 어린 날개의 깃털처럼 대숲을 빠져나온 바람처럼 자유롭게 한바탕 울음을 쏟은 구름처럼 홀가분하게 별들의 소리가 선명해지는 자정의 몽유처럼 꿈꾸며 노닐자 육신의 틀을 벗은 혼령처럼 입자의 틀을 벗은 파동처럼 시공의 틀을 벗은 양자처럼 달을 품은 백학의 날개처럼 춤추며 노닐자. … ‘소요유’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노니는 경지를 뜻하는 장자의 말. 위의 시는 이 ‘소요유’ 사상을 시적 이미지로 제시한다. 갓 태어난 이들처럼 자유로운 존재로 돌아가자는, 바람을 타고 날개를 흔들며 날아가는 백학처럼 “춤추며 노닐자”는 시인의 제안은 눈물 날 정도로 마음에 박힌다. 우리는 여전히 무엇인가에 갇혀 살아가고 있기에. 하나 시의 도움으로 ‘소요유’의 마음만은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문학평론가>
2025-09-04
레스토랑에서/ 나와 함께/ 수프를 먹은 건/ 새들입니다 투명한 부리를 훔치며/ 일어서더니/ 차례차례/ 박쥐우산을 펼쳐/ 석양 속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홰 위에서 홀로/ 비 소식을 듣는 건/ 나입니다 웨이터가 / 새장 문을 열고/ 발자국을 모두/ 어둠 쪽으로 쓸어냅니다 ….. 일본의 현역시인 루리코의 시. 직접 꾼 꿈을 환상적인 시로 변환하여 발표했다고. 위의 시도 꿈과 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시인과 함께 레스토랑에서 새들이 식사를 하고 식사를 마친 새들은 석양 속으로 들어간다. 시인도 조류가 된 걸까, “홰 위에서” “비 소식을 듣는”다니. 발자국을 “어둠 쪽으로 쓸어”내는 웨이터는 ‘시간’의 화신일까. 의미 해석의 정답은 없어서, 여러 가지로 읽어볼 수 있는 재미를 주는 시. <문학평론가>
2025-09-03
개가 죽어/ 개 없는 개집 앞에 개가 죽어/ 개 없는 주인이 서 있다 잎사귀 하나 없는 백목련 가지 위에 주먹만 한/ 백골들이/ 허공을 찢어 발기며 불거져 나오는 4월 어떤 구녕이 아이는 발라 먹고 백골만 뱉는 것일까 번번이 새끼를 죽여서 낳던 개는/ 이 나무 아래서/ 맞아 죽었다 어서 맞고/ 자고 싶던 개 … 제목이 ‘봄밤’이지만 참혹한 이미지가 펼쳐지는 시. 자연은 삶과 죽음이 중첩되면서 유지된다. 자연 속의 죽음을 조명하는 것 역시 진실의 일면, 시인은 아름다움 뒤에 죽음이 있음을 끔찍한 이미지로 보여준다. 피어난 하얀 목련꽃을 살이 다 발라지고 남은 아기의 백골로 나타내고 있으니. 맞으면서 어서 죽기만 바라며 죽은 개의 모습은 어떤가. 죽음의 자연에 더한 인간의 잔혹한 폭력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문학평론가>
2025-09-02
사람이 죽는 순간 몸 바깥으로 빠져나온 영혼은 광속光速보다 더 빠르게 움직인다고 해요 그 사람 다음 세상이 결정되기 전까지 빠르게 우주 속으로 돌아간다 해요 사람들은 사십구제祭로 망자를 위로하지만 이미 떠난 사람, 그 사람은 여기 없어요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이면 동물, 식물이면 식물, 생명을 가진 모든 만물도 그러하대요 생명들이 무수히 사라지는 속도를 느껴보세요 살아가면서 문득 오싹한 바람을 느껴보신 적 있으신지요 나이 드신 사람은 더 자주 느낀답니다 … 죽은 이의 영혼은 죽은 후 49일 동안 삶에 대한 미련으로 이승을 떠돈다는 통념을 뒤집는 시. 그 영혼은 죽자마자 “광속보다 더 빠르게” “우주 속으로 돌아간다”는 것. 사람만이 아니라 생명체 모두가 그렇다고. 우리가 “문득 오싹한 바람을/느”끼는 것은 그 영혼의 귀환 속도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우리의 영혼은 사는 동안에도 이 세상을 떠나 고향인 저 세상으로 가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문학평론가>
2025-09-01
한 뼘이나 남았을까 오후의 겨울 햇살 내 목숨 한 뼘이나 남았을까 너를 향한 그리움 그리고 풀꽃 사랑 무궁이라 믿었거늘 갈수록 야위어가는 내 마음 이제 한 뼘 혹은 두 뼘 아니면 아예 어둠 어둠 속에서 부스스 일어나 창을 열고 우주로 떠난다 풀꽃에게로 떠난다. ….. 시인은 예전엔 “무궁이라 믿었”던 “내 마음”의 활력이 소진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마치 지고 있는 겨울 햇살이 “한 뼘이나 남았을” 정도처럼, 어둠을 향해 사라지고 있는 활력. 결국 마음은 어둠으로 빨려들었으나, 시인은 “부스스 일어나” 다시 창 밖 “우주로 떠”날 수 있었다. 이 반전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창 밖 저기 피어있는 ‘풀꽃’이 바로 우주의 일부이자 무궁한 우주 자체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문학평론가>
2025-08-31
바닥에 버려진 꽃들, 납작하다 뿌리가 없고 줄기가 없는 저 꽃들은 밟혀도 결코 지는 법 없다 한때 누군가의 입안에서 다듬어지고 둥글어지던, 달콤함과 향기는 모두 내어주고 딱딱하게 굳어간 때가 새까맣게 묻은 저 검은 꽃 누군가를 버린 적 있다 납작 바닥에 엎드려 우는 걸 보았다 방금 버려진 듯한 꽃 하나 내 신발에 질척하게 달라붙는다 끈적한 꽃, 한 번만 더 꽃을 피워보잔다 … 나도 어떤 무심함으로, 별 의식 없이 “누군가를 버린 적 있”지 않던가. 시인도 그런 경험이 있다고 한다. 하나 시인은 한 발 더 나아간다. 납작하게 “바닥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힌 꽃, 하여 “달콤함과 향기는” 사라지고 “딱딱하게 굳어간” 그 꽃은 “결코 지는 법 없”다는 시적 인식으로 말이다. 그 인식은 시인이 버린 ‘누군가’가 그의 마음 바닥에 있는 “신발에 질척하게 달라붙”기에 가질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문학평론가>
2025-08-28
창밖이 일시에 소리들로 와글와글 활짝 성능 좋은 스피커 열어놓은 듯 비 온 뒤 짱짱 귀가 열리는 저 아이들 소리, 온갖 새소리들···. 우중충 하늘의 장막 걷힌 날은 너나없이 반짝 우울을 걷어내듯 소리가 소리를 물고 꽃처럼 활짝, 빗속에 숨었다 놀러 나온 소리들 동네가 한바탕 말잔치 벌였다 더욱이 여기는 소리들로 넘쳐 나는 하늘과 땅이 열린 한적한 시골, 그럴수록 듣지 못하는 소리 더 잘 들려 사방 하느님과 독대하는 소리 귀 먹먹 대낮에도 장닭이 홰를 치고 우는 봄날도 환한 봄날! … 비 개인 봄날 아침, 화창해진 세상이 주는 환희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위의 시는 소리로 표현했다. 아침 창밖에 들리는 ‘아이들 소리’와 ‘온갖 새소리들’로. “빗속에 숨었다 놀러 나온”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들도 시인을 우울로부터 벗어나게 이끈다. 이러한 환한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것은 시인이 시골에 있어서다. 이곳은 “하늘과 땅이 열린 한적한” 곳, 하여 “하느님과 독대”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2025-08-26
광주리에 담긴 사과 새들새들 곯았다 더 작아져 쪼글쪼글해진 사과는 굳은살처럼 각질이 두터워 칼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쪼글쪼글해진다는 것은 팽팽히 잡고 있던 끈 놓치지 않고 더 깊어져 제 속으로 들어가 밑바닥에 닿아 보겠다는 것 아닌가 사람도 오래되면 내장에 구김이 지고 눈동자에도 주름이 잡힌다지 그 주름의 힘으로 비록 말라비틀어져도 더 깊이 생의 바닥에 닿을 수 있다지 새금새금 단내를 짙게 풍긴다지 …. “작아져 쪼글쪼글해진 사과”처럼 사람도 나이 들면 몸-‘내장’-에 주름이 잡히리라. 영혼과 정신-‘눈동자’-에도. 시에 따르면 이 주름은 팽팽함의 포기가 아니다. 다만 자신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밑바닥에 닿아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뿐이다. 의지는 힘을 발산시킨다. 힘이 응축된 주름은, “비록 말라비틀어져도” “생의 바닥에 닿을 수 있”도록 힘쓴다. 주름진 사과가 더 삶의 단내를 풍기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2025-08-25
해안 절벽 아래서 어둠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성난 야수 소리가 들린다 불안을 열고 바라보니 절벽 밑은 하얀 눈 수북이 쌓여 아무것도 찾을 수 없고 수평선 끝에서 바람 등에 올라 달려오는 시커먼 흑등고래가 사정없이 바위에 부딪쳐 피를 눈처럼 쏟아내고 있다 폭설 속에서 뽀얗고 까만 사나운 꼬리로 용오름 피워내며 포효하는 굶주린 백호 한 마리 바다의 목덜미 앙칼지게 물고 솟아올라 새가슴을 가진 나에게로 뛰어든다 스무 살의 내가 살아나고 있다 ….. 어떤 풍경은 삶을 다시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북돋는다. 위의 시의 풍경이 그렇다. 파도 소리일까, “성난 야수 소리”는. 이 소리를 듣고 수평선 끝을 바라다보니 바위에 부딪쳐 피를 쏟는 ‘흑등고래’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이 흑등고래는 파도에 대한 환시 아니겠는가. 또한 시인은 용오름을 백호의 꼬리로 비유하고 있기도 하다. 이 맹렬한 동물들의 풍경이 “새가슴을 가진 나”에게 팔팔한 젊음의 피를 수혈한다. <문학평론가>
2025-08-24
당신은 내 머리에 초록 잎사귀를 꽂아 주세요 나는 붉은 열매를 당신 재킷 주머니에 꽂을게요 저 눈부신 첫눈의 아침을 우리가 나란히 손잡고 걸어가다니요 오랜 전생부터 꿈꿔 온 이 삶, 얼마나 슬프고 아름다웠던지 이미 잊었지만 당신의 미소와 목소리로 모든 걸 알아챘답니다 거친 들판 찬비를 맞더라도 이제, 초록 잎 붉은 열매 총총한 한 그루 나무가 되기로 해요 … 연시를 만나기 힘든 시대다. ‘나’를 ‘당신’에게 주는 사랑이 이해되지 않기 때문, 그래서 위의 시와 같은 연시를 보면 더 반가운 마음이 든다. 당신이 “내 머리에 초록 잎사귀를 꽂아 주”고, ‘나는’ “당신 재킷 주머니에” “붉은 열매를” 꽂아 주면서, 둘은 같이 “찬비를 맞더라도” 하나의 나무가 되어 완성된다. 시인은 이 완성이 “전생부터 꿈꿔 온” 것이라고. 지금 만난 당신이 전생의 연인이었음을 직감했나 보다. <문학평론가>
2025-08-21
내가 사랑하는 방법은 단순하다네 당신을 나에게 밀착시키는 것 정의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는 듯 그 정의를 당신에게 몸으로 줄 수 있다는 듯 당신의 머리칼을 뒤적이며 쓰다듬을 때 내 손에 아름다운 무언가가 만들어지네 더는 알지 못하네 오직 당신과 편히 있고 싶고 가끔은 내 마음을 누르는 알 수 없는 의무감 그리고 평안히 있고 싶을 뿐 … 가모네다는 현재 생존하는 스페인 시인. 많은 시인이 사랑에 관해 새로운 통찰을 보여주듯이, 위의 시도 사랑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이끈다. ‘사랑하는 방법’이란 몸을 밀착시키는 것이며, 이 밀착을 통해 ‘정의’를 몸으로 주는 거란 생각은 새롭다. 또한 애인의 머리칼을 쓰다듬을 때 “아름다운 무언가가 만들어”진다는 생각도. 사랑하는 이와 같이 있으면 의무감과 평안함의 신비로운 공존이 가능해진다는 것도. <문학평론가>
2025-08-20
사라지는 것들이 도착하는 곳이 분명 있다 수북해진 그곳은 하나의 세계다 불리지 않아서 잃어버린 이름들을 기다린다 이름이 꼭 없어도 좋다고 생각해 이 세상은 당연히 외로운 거야 잃어버린 것들을 버려진 것들이라 할 때 버려진 것들끼리의 유대에서 악마가 태어난다 (중략) 목덜미가 뻐근해지거나 어깨가 무거워지거나 무릎이 휘청대거나 팔다리가 묵직해진다거나 아예 흘러 버릴 것만 같아 바닥이 될 것 같다면 내 몸의 바깥에서 사라졌던 사람들이 돌아오겠다고 이 세계의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둬 …. ‘나’ 안에서 사라진 이들이 있다. 이름마저 잊은 사람들. 하나 그들은 정말로 사라진 걸까, “잃어버린 이름들을” 가진 이들은 어딘가에 모여 유대를 맺고 있는 것 아닐까. “바닥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 그것은 ‘나’에게서 버려진 자들이 나를 짓누르는 복수를 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하나 그것은 복수가 아니라 내 몸 안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 “이 세계의 바깥에서/문을 두드리고 있는 거”일지도 모른다. <문학평론가>
2025-08-19
우산은 접었다 다시 펼치는 추억 같은 것 망가진 살대 밑에서 어쩌면 살짝 은밀한 어쩌면 살짝 부끄러운 젊은 그때를 펼쳤다 다시 접는 참 사소한 슬픔 같은 것 …. 위의 시에 따르면 추억은 우산과 같다. 쓸쓸함을 불러일으키는 비가 올 때, 그 추억은 펼쳐진다. 그 우산은 망가져 있다. 우리가 떠올리는 ‘젊은 그때’의 추억은, 이제는 잃어버린 것,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상기되는 것이어서, ‘사소한 슬픔’을 불러일으키기에. 또한 펼쳐진 추억의 ‘망가진 살대’ 밑에는 ‘은밀’하거나 ‘부끄러운’ 비밀도 ‘살짝’ 드러나지 않는가. 우리가 우산을 다시 접는 것은 그 때문이겠다. <문학평론가>
2025-08-18
순이야, 누이야! 근로하는 청년, 용감한 사나이의 연인아! 생각해보아라, 오늘은 네 귀중한 청년인 용감한 사나이가 젊은 날을 싸움에 보내든 그 손으로 지금은 젊은 피로 벽돌담에다 달력을 그리겠구나! 그리고 이 추운 밤 가느다란 그 다리가 피아노줄 같이 떨리겠구나. 또 이거 봐라, 어서, 이 사나이도 네 커다란 오빠를···. 남은 것이라고는 때 묻은 넥타이 하나뿐이 아니냐! 오오 눈보라는 트럭처럼 길거리를 달아나는구나 자 좋다 바로 종로 네거리가 아니냐! 어서 너와 나는 번개같이 손을 잡고, 또 다음 일을 계획하러 또 남은 동무와 함께 검은 골목으로 들어가자 네 사나이를 찾고 또 근로하는 모-든 여자의 연인인 용감한 청년을 찾으러···. 그리하여 끝나지 않은 새로운 용의와 계획으로 젊은 날을 보내라 … 임화 시인은 일제강점기 이름을 날린 저항적인 시인. 1929년에 발표된 위의 시는 당시 일제 권력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을 그려냈다. 화자와 그의 누이동생, 그녀의 애인, 세 명이 등장한다. 애인은 감옥에서 추위에 떨며 나갈 날을 기다리고, 오빠와 누이동생은 권력의 감시망을 피하며 검은 골목으로 들어가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이 계획이란 조선의 해방을 도모하는, 그리하여 애인을 되찾기 위한 계획일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5-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