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모
처마 및 기어들어 빗방울만 바라보며
책가방 움켜쥐고 혼자 떨고 서 있는데
우산 든 여학생 미소 풀꽃처럼 다가온다
받을까 망설이다 데리러 곧 온다고
수줍어 낯 붉히며 차마 받지 못하는데
굵어진 빗줄기 사이로 작아지는 뒷모습
소나기 삼 형제도 거짓말을 하는 걸까
밤 깊은 빗길 속에 속옷조차 젖어들 녘
부를 이 없는 이 마음 누구에게 전할까
…
위의 시는 자유시의 질감으로 읽히는 연시조다. 마지막 행이 전통적인 시조의 종장처럼 여운을 남기긴 한다. 나이 지긋한 시조 시인이 풋풋한 소년 시절을 떠올리는 시로, 시가 연출한 장면이 예뻐서 여기 올린다. 풀꽃 같은 미소를 띠고 우산을 들고 다가온 여학생의 호의에 ‘감히’ 응하지 못하고, 결국 비를 쫄딱 맞으며 길을 걸어야 했던 소년의 우스우면서도 귀여운 모습이 독자의 옛날을 떠올리게 하지 않을까.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