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고 싶었던 건 못 쓰고 그 곁 느티가 눈에 들어왔다 나무 아래에서 멍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사람이 보였다 그는 아프다 그의 생을 모르지만 그가 아프다는 것을 안다 나는 느티가 그의 나무라고 생각했다 그는 소소라는 고양이를 키운다 그와 고양이는 나무 둘레를 매일 돌고 가지는 어느덧 푸르렀다 모두는 나무 그림자 속에서 출렁인다 못 받는 공 사랑할 수 없는 사랑···.여기 아닌 것 알 수 없는 둘레를 돌다가 먼 하루가 끝날 것 같았다 ….. 느티나무 둘레를 그의 고양이와 함께 도는 ‘그’, 마음이 아픈 사람이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왜 나무 둘레를 도는 걸까. 나무는 푸르른 가지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이 그림자 속에서 출렁일 수 있기 때문 아닐까. 하여 ‘그’는 ‘느티’를 “멍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며 자신의 나무로 삼아서, 나무 그림자의 물결 위에 마음을 태워 “여기 아닌 것 알 수 없는 둘레를” 항해하며 마음을 치유하려 하는 것이겠다. <문학평론가>
2025-12-04
코트를 꺼내 입고 거리를 나섰다. 바깥 주머니에서 영수증이 나왔다. 구겨진 가게가 나왔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상점도 나왔다. 낯선 사람들의 이름만 있는 종이를 찡그린 손. 잉크를 떨어뜨리듯 걸었다. 번져가기만 할 뿐 도무지 결집되지 않는 오후, 쓸모 있는 것을 찾는 안주머니에서 닻이 나온다. 흉터처럼 흉측하여 보는 것만으로 아파오는… 바람이 인파를 지우는 사이, 역 출구는 전면 폐쇄됐고 거치대엔 낡고 인장이 낮은 자전거가 묶인 채 담배 연기를 받아냈다. ……….. 우리 삶의 닻은 어디 있는가. 모든 것이 “번져가기만 할 뿐” “결집되지 않는” 삶에서. 시인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상점”만이 서 있고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만 이루어지는 거리를 걸으며 표류한다. 출구는 폐쇄되고 어디론가 우리를 데려다줄 수 있는 자전거는 묶여 있는 상황. 하여 지금 쓸모 있는 것은 자신의 삶을 그래도 지탱해주고 있는 닻인 것, 그 닻이 “보는 것만으로 아파오는” 흉터처럼 흉측할지라도. <문학평론가>
2025-12-03
껍데기만 남은 노인이 모자를 푹 눌러쓰고 휴대폰을 주물럭거린다 그의 아내의 손인 양 주물럭주물럭 전동차는 역마다 쉬어가는데 노인은 손을 놓지 않는다 죽은 아내의 문자라도 보려는가 생전의 웃음을 보려는가 전동차는 찰카닥찰카닥 섰다 가고 노인은 아내의 모습이 휴대폰 창에서 흔들릴 때마다 꽉 쥔다 옆구리를 쿡 찌르기도 하고 얼굴을 만져보기도 하고 가슴에 꼭 안아보기도 한다 종로3가에서 노인이 내린다 전동차는 텅 빈 노인석을 공손히 들고 한 발짝 한 발짝 떠난다 …. 노인이 아내의 손을 만지고 있는 양, “휴대폰을 주물럭거”리는 것을 보면 그 폰에는 죽은 아내의 사진이 담겨 있나보다. 이제 휴대폰 안에 모든 걸 저장하는 시대이니까, 저 노인도 이 시대의 삶의 양식 안에 있는 것이다. 애도와 그리움은 이 시대에 걸맞은 형태로 이루어진다. 하나 “아내의 모습이 창에서 흔들릴 때마다 꽉”쥐며 “가슴에 꼭 안아보기도” 하는 모습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동일한 사랑을 보여준다. <문학평론가>
2025-12-02
욕망이 홍수처럼 도시를 덮쳤다 증권거래소의 전광판이 산산이 부서지고 욕망은 으르렁거리며 거칠게 바닥을 뒤덮었다 에스컬레이터를 넘쳐흘러 교차로에서 물보라를 일으켰다 욕망은 형체가 없어 문틈과 열괴 구멍을 비집고 스며들어 순식간에 모든 방을 잠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욕망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사라졌다 살아남은 자들은 욕망에 흠뻑 젖어 있었다 밤이 되자 거리 곳곳에서 화톳불이 타오르고 사람들이 속삭였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우리는 그저 행복을 원했을 뿐인데 그 외엔 아무것도 탐하지 않았는데 이윽고 모두가 잠들었다 잠시 후 차가운 비가 내려 화톳불을 삼켰다 …. 자본주의 주식 시장은 햇볕을 비추어주기고 하지만 홍수를 뿌리기도 한다. 즉 자연과 같은 것이다. 도시의 사람들은 “그저 행복을 원”하면서 이 시장에 참여하지만 곧 거센 욕망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사라져버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욕망의 물보라에 흠뻑 젖어 있다. 실패한 이들은 “거리 곳곳에” 화톳불을 피워 “왜 이렇게 된 걸까” 속삭이지만, 그들이 잠들자 그 화톳불마저 시장의 차가운 비가 꺼뜨리고 만다. <문학평론가>
2025-12-01
가만히 돌을 들어 올리면 옹기종기 붙어있는 새까만 눈들 눈 먼 별 하나 보고 싶어 눈빛처럼 까만 밤 기다리고 있었는지 가녀린 촉수를 뻗어 반짝이는 물비늘을 끌어당긴다 산내 천 냇가에서 천둥벌거숭이로 뛰놀던 어린 꿈 닮은 천진난만한 눈빛들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그 꿈들을 따버리는 일이라니 차마 끓을 수가 없다 ….. 미물도 희망이 있고 의지가 있을지 모른다. 시에 따르면 우리가 즐겨 먹는 다슬기도 그렇다. 아마 바닷가일 듯하다. 돌을 들어 올리니 발견한 다슬기에서 “눈 먼 별 하나 보”려고 하늘을 향해 “옹기종기 붙어있는 새까만 눈”을 시인은 읽는다. 그 눈은 냇가에서 뛰놀던 시인의 어릴 적 꿈 품은 눈빛과 닮아 있었다고. 이 꿈을 위해 “가녀린 촉수를 뻗어/반짝이는 물비늘을 끌어당”기는 다슬기의 모습이 안타깝다. <문학평론가>
2025-11-30
더러는 휘어지고/ 더러는 꺾인 겨울 연밭/ 얼키설키 몸을 포갠 적요를 바라본다 뼈대만 남은 앙상한 몸/ 비정상적인 커다란 발/ 성난 듯 허망한 듯 어딘가를 바라보는 강렬한 시선/ 쓰러질 듯 위태롭게 걸어가는 자코메티 빈한한 실존 앞에 명치끝이 아프다 살아간다는 것은 직립을 포기하지 않는 힘/ 걸어간다는 것은 세상을 다르게 보는 일/ 바라본다는 것은 미지를 향한 모험 (중략) 군더더기 없는 깡마른 몸으로/ 너머를 응시하면서 성큼성큼 걸어간다 생은 직진이니까 …………. 자코메티의 작품 ‘걸어가는 사람’. 시인은 이 작품을 “적요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내면과 겹쳐 놓으면서 그 의미를 생각한다. 그는 “뼈대만 남은” 조각품과 “위태롭게 걸어가는” 자코메티를 동일시한다. 그 깡마름과 위태로움은 ‘빈한한 실존’에 놓인 인간의 운명을 보여주지만, 한편 그 ‘성큼성큼’한 걸음은 직립을 포기하지 않고 세상을 다르게 보며 미지를 향한 모험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정수’를 보여준다. <문학평론가>
2025-11-27
언덕을 넘어서면 거대한 도시가 있다 거대한 도시는 웅장한 탄생을 기다린다 거대한 도시는 웅장한 숨을 쉬고 있다 거대한 도시는 한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다 거대한 도시는 엄청난 고통과 죽음과 탄생이 숨어 있고 거대한 도시는 새로운 세상을 위해 다른 음모를 꿈꾸고 있다 거대한 도시는 거대한 세상을 향해 무섭도록 돌진한다 공룡 속 같은 거대한 도시, 거대한 도시는 수많은 여자와 남자와 수많은 거물과 음악과 수많은 희로애락이 숨어 있다 거대한 도시는 밤새 잠들어 있던 도시를 깨운다 거대한 도시는 용트림하듯 도시에서 나온다 거대한 도시는 다시 반란의 꿈을 꾼다 … 위 시의 언덕 너머 ‘거대한 도시’는 바로 우리가 사는 도시 안에 있는 것일 테다. 도시가 가진 잠재성-‘웅장한 숨’-이 거대한 도시인 것이다. 우리가 지나치며 사는 도시의 잠재성, 그것은 수많은 이들의 “고통과 죽음과 탄생이 숨어 있”는 곳에 존재한다. 그 잠재성은 현재의 도시에서 용트림하며 나와 도시의 잠을 깨운다. 그 잠깸은 역설적으로 “웅장한 탄생을 기다”리며 “다시 반란의 꿈을” 꾸는 것을 의미한다. <문학평론가>
2025-11-25
눈 덜 녹은 가지 위 엷게 불거진 홍매화는 이월 살살한 눈길에도 농농하였다 눈 녹으면 꽃 활짝 필까 꽃 피면 그 눈 녹을까 행여 붕대를 풀면 상처라도 드러날까 한 치의 겨울 한 치의 봄 지긋이 감은 눈동자 차마 정색한 봄 겨울과 봄 사이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 바람도 잠시 기다리는 가지의 떨림도 잠시 멈추었다 ….. 시의 제목이 ‘첫사랑’인 것을 보면, 위 시의 ‘홍매화’는 첫사랑에 대한 기억인 듯싶다. 덜 녹은 눈이 덮여 있는 그 기억은 아직 피지 못한 상태다. 마음이 겨울인 시인은 봄이 오면 그 기억 활짝 피어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아직 첫사랑의 상처가 덜 아물었기에 그 상처를 가린 붕대를 풀 수 없어서다. 이렇듯 첫사랑은 여전히 아픔을 주는 물음표를 달고 있지만, 결국 봄이 와 느낌표로 피어나리라고 그는 믿는다. <문학평론가>
2025-11-24
오늘 밤, 비가 왔다. 거리엔 젖은 풀 냄새, 이어, 또다시, 우리의 어깨 위엔 열기의 손, 우리에게서 시간은 아무것도 빼앗지 않으리라 말하려는 듯이. 그러나 저기 벌판이 편도나무와 부딪치고 있는 곳에, 보아라, 한 마리 야수가 나뭇잎들 가로질러 어제에서 오늘로 뛰어올랐구나. 그리고 우리는 멈춘다. 세상 밖이구나. 아직도 신성한, 어제의 수액이 흘러나오는 벼락 맞은 여름이여, 나뭇가지여. 난 너에게 다가가, 검게 탄 나뭇등걸에서 마침내 널 뽑아내고 있구나. …. 프랑스 현대 시인 본푸아의 시. 어렵지만 강렬하게 읽힌다. 비가 왔지만 다시 열기가 ‘우리’를 찾아 왔다. 시간은 아무것도 빼앗지 않았다. 하나 과거가 야수처럼 “어제에서 오늘로 뛰어올”라온 모습이 저기 있다. 벼락 맞아 “검게 탄 나뭇등걸”이 그것, 그 모습에서 미래로의 시간은 멈추고, “신성한, 어제의 수액이 흘러나”온다. 이에 세상은 ‘세상 밖’에 순간 존재하고, 시인은 이 모습에서 벼락을, 시를 뽑아낸다. <문학평론가>
2025-11-23
우리 눈 높이 위에 있는 음악이다 바람이 멎은 후 꽃나무 사이 풍경처럼 삭막한 음악이다 표정만한 가벼운 몸 둘레에 따스한 얼굴 더 소중한 그 무엇을 소망하는 얼굴이다 우리 시야보다 먼데 있는 종소리다 귀를 막고 숨어도 들려오는 종소리다 하여, 이후에 찾아 올 몇몇 친구 이미 묘비에 잠든 이 사랑하는 이 모두 한결같이 들려주고 싶은 음악이여 얼굴의 미소여 저 제야의 종소리는 무슨 연유일까 사랑한다는 한 마디의 유언은 …….. 2007년 작고한 김영태 시인의 시. 위의 시는 1959년 ‘사상계’에 발표된 그의 데뷔작 중 한 편으로, 시각적 이미지를 청각적 이미지와 중첩시켜 표현하고 있다. 雪景을 “귀 막고 숨어도 들려오는 종소리”로 비유하니. 나아가 시인은 이 음악을 “그 무엇을 소망하는 얼굴”로 전환시키고 “묘비에 잠든” “몇몇 친구”의 귀환을 상상한다. 하여 설경은 제야의 종소리로, “사랑한다는 한 마디의 유언”으로 의미화된다. <문학평론가>
2025-11-20
잃어버린 것은 셀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잃어버린 것을 자꾸만 다르게 기억하는구나 몇 사람이 모였지만 우리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몇 사람이 모여서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 아무것도 기다릴 수 없는 계절이 온다 당신을 빨리 감기 했으면서 다 봤다고 말했다 그래서 늘 문밖엔 장면들이 도착해 있다 …… 꽃이 활짝 핀 시절이 있었다. 아름다웠던 시절. 그 시절은 지나갔으나 그 시절 함께 했던 이들 몇이 모였다. 하나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우리들. 이젠 아름다움을, 그 무엇도 “기다리지 않”고 “기다릴 수 없는 계절”을 맞이하고 있는. 잃어버린 시절은 “다르게 기억”된다. 그것은 “셀 수 없는 것”이기에. “빨리 감기”로 영화 장면 보듯 떠올려지는 그 시절, “늘 문밖”에 도착해 있는 당신의 장면들에 대한 기억처럼. <문학평론가>
2025-11-19
그 골목은 벗겨진 담쟁이 줄기처럼 늘어져 있었다 산비탈에는 또르륵 또르륵 고라니가 뱉어낸 울음이 굴러다녔다 골목의 기울기로 저녁의 질감을 읽어내던 달빛은 가끔 탱자나무 가시에 걸려 오래 머물렀다 담쟁이 줄기를 묶어 제기를 차면 너풀너풀 땅거미가 내려오던 저녁 이동하는 궤도를 따라 땅거미가 번식하는 기형의 골목 저 사슴 보여? 너는 고라니를 사슴이라 했고 나를 부를 때 다른 이름을 불러도 내가 대답했다 탱자꽃이나 달빛이나 애써 구분하지 않아도 그 골목은 길게 잘 자랐다 …….. 뒷골목이 점차 사라지는 시대. 나이 든 이라면 미로같이 뒤엉킨 골목길에서 유년을 보낸 이가 적지 않을 테다. 필자도 그랬다. 이 시를 읽으며 “벗겨진 담쟁이 줄기처럼 늘어져 있”던 유년의 골목을 떠올렸다. “땅거미가 번식하는 기형의 골목”이라는 표현도 당시 골목의 인상을 잘 이미지화시켰다. 어떤 정확한 명칭이 필요 없던, “구분하지 않아도” “길게 자 자랐”던 골목. 이젠 ‘오래된 안녕’이 되어버린 유년. <문학평론가>
2025-11-18
꽃은 벼랑에 매달려 핀다 새는 벼랑에서 한 걸음, 더 간 곳에 있다 꽃과 새는 서로 연민한다 떨어진 꽃자리 새는 앉지 않는다 새가 진 자리 꽃 또한 터 잡지 아니한다 …. 벼랑에 ‘매달려’ 존재해야 하는 존재자들이 있다. 위 시의 꽃과 새가 그렇다. 하나 그 매달린 이들은 이웃이 되곤 한다. 이들은 서로의 곤궁함과 눈물을 이해한다. 하여 서로를 연민한다. 연민은 존중을 낳는다. 결국 고생하다 삶을 마친 이들이 ‘진 자리’를 탐하지 않는 것으로 이 존중은 표현된다. 새가 “떨어진 꽃자리”에 앉지 않고 꽃이 “새가 진 자리”에 “터 잡지 아니”하듯이. 힘든 이들의 존재론을 보여주는 시. <문학평론가>
2025-11-17
넌 아주 단순한 글을/ 쓰고 싶어,/ 사랑에 대해/ 고통에 대해/ 당신이 읽으면서/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글을 읽는 내내/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그리하여 내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일 수 있도록,/ 내 글은 나만의 유일한 것이지만/ 당신의 마음으로 들어갈 테고/ 그리하여 결국/ 당신은 생각하겠지,/ 아니, 깨닫게 되겠지,/ 그동안 내내/ 당신 자신이/ 그 단어들을 배열하고 있었음을,/ 그동안 내내/ 당신 자신이/ 당신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이야기하고 있었음을. …….. 2019년 타계한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의 시. 제목에서 시인은 “단순한 글을 쓰고 싶”다고 밝혔는데, 이 시 역시 단순하게 진술되어 있다. 하나 시의 힘에 대해 명료하게 전달하면서 “가슴으로 느”껴지는 발견을 주는 시. 시는 시인의 “유일한 것”이지만, 그것은 독자의 마음으로 들어가 독자 자신이 시의 단어들을 배열하도록 이끈다. 그럼으로써 독자는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이야기를 읽게 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5-11-16
눈(眼)이 눈물을 덮어주지 않으면 흐르는 눈물은 보살핌 하나 없이, 영원히 흐르기만 할 것이다. 가죽이 상처를 덮어주지 않으면 아픔은 보살핌 하나 없이, 영원히 아프기만 할 것이다. 목숨이 세월을 덮어주지 않으면 세월은 보살핌 하나 없이, 영원히 있어야만 할 것이다. 내 생성(生成)의 거룩한 바늘들을 다 털어 모다 다 털어 덮어주리라, 덮어야 할 것들을 …. 소설가로 잘 알려진 천승세의 시. 위의 시는 한 인간의 세계 사랑을 보여주는데, 무엇보다 시적 발상이 뛰어나다. 눈이 눈물을 덮어주기에 흐르는 눈물은 멈출 수 있었다니. 가죽이 상처를 덮어주었기에 상처는 아물 수 있었으며, 목숨이 세월을 덮어주었기에 세월은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다니. 작가는 다짐한다. “내 생성의 거룩한 비늘들을 다 털어” 아픈 것들을 덮어 보살피겠다고. 그 비늘들이란 문학일 테다. <문학평론가>
2025-11-13
백수는 사랑을 하고 사랑은 백지를 탐하게 하고 백지 안에는 사랑을 꾸며 써야 하고 그럼에도 은유하지 않고 사랑의 시를 쓰고 (이것은 과연 감탄할 기백인가 알량한 고집인가) 시는 이렇게나 믿을 만한 것이 없고 믿음이 없으면 배반을 하게 되고 배반은 한평생 백수처럼 할 짓이 못되고 할 짓이 없으면 혼자임을 구걸하고 구걸은 울부짖는 혼자가 되고 혼자는 요컨대 백수임이 틀림없고 그러다가 백수가 백수가 아니게 되면 (이 시는 짧게 끝나야 한다) 사랑을 시인하게 되고 …. 1996년생 시인의 시로 MZ세대의 감성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시 아닌가 한다. 이 젊은 ‘백수’는 시를 왜 쓰게 되었는가. 누군가를 사랑해서다. 그 누군가에게 보낼 사랑의 시를 쓰고 싶어 백지를 탐하게 되고, 하나 이 사랑의 시가 꾸밈이 아닌지 의심하여 시를 배반하지만 배반은 혼자-백수-로 돌아오게 하고, 백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국 다시 시를 붙잡고 “사랑을 시인하게 되”는 역설의 연쇄를 담고 있는 시. <문학평론가>
2025-11-12
퇴근도 아닌 출근길 2호선 지하철에서 모르는 옆 좌석의 여자가 내 어깨에 기대어 깊은 잠에 빠져 있다 귀찮아 몇 번이고 그녀의 머리를 바로 세워 놓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또 내 어깨에 머리를 떨구고 잔다 바로 세우는 것을 포기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여러 번 남의 어깨를 빌려 잠든 적이 있었다 빌리고 고맙다고 인사하지 않았고 빌린 어깨를 갚지도 않았다 오늘 바로 이 여자에게 그간 빌렸던 어깨를 갚는 날인가 보다 …… 누구나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이가 졸음에 겨워 내 어깨에 자꾸 머리를 기대는 경험을 해보았을 테다. 하나 사실 나 역시 타인에게 머리를 기댄 적이 있을 터, 그처럼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우리 자신도 모르는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던 것. 고맙다는 인사도 건네지 않고 도움을 갚지도 않은 채로. 그러니 우리가 알게 모르게 도움 받았듯이, 타인에게 소소한 도움을 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시의 전언. <문학평론가>
2025-11-11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던 한여름의 밤 스치는 신선함 속에서, 나는 보았다 도로 위에 쥐포처럼 납작이 깔려 죽은 고양이 한 마리를 도로 위에 핏자국을 길게 흘리고 죽은 고양이 한 마리를 목각인형처럼 우두커니 한참을 서 있다 짓이겨져 나온 고양이의 핏발 선 눈앞에 한참을 서 있다 고양이를 들고 걸었다 사람이 볼 수도 해칠 수도 없는 수풀을 향해 사람이 떠들 수도 놀릴 수도 없는 수풀을 향해 축 늘어진 고양이를 들고 걸었다 비척이는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와 손을 씻는데 차가운 수돗물에 하늘하늘 씻겨 나가는 고양이의 피는 물줄기를 연붉은빛으로 물들이며 씻겨 나가는 고양이의 피는 나의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 따뜻했더랬다 …… 사람에게 놀림만 받다가 영문도 모른 채 로드킬을 당한 고양이. 그 고양이의 눈은 사람을 증오라도 하듯 핏발이 서 있다. 죽음 이후에도 방치되어 있는 고양이의 주검. 시인은 고양이 시신을 사람들이 닿지 않는 수풀에 묻어준다. 사람 세상에서 떨어져 평안을 얻으라고. 집에 돌아와 손에 묻은 고양이의 피를 씻으며 시인은 이 피 역시 사람 피처럼 따듯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 피에도 생명이 담겨 있었기에. <문학평론가>
2025-11-10
꽃 내음들이 우리를/ 잠시나마 운명의 주인으로 만든다. 어느 오후, 반쯤 열린 대문이/ 푸르른 하늘과 해를 들어오라 유혹하고/ 왠지 기쁨의 정조./ 창문으로 날아드는 한 마리 새와/ 어떤 예상치 않은 순간. 고독과 침묵 속에/ 존재하는 것은 우리 셋./ 방문, 인간, 신비. 시간과 기억들은/ 지름길로 오지 않고,/ 빛과 바람을 타고 온다./ 우리는 조용한 바다 위로/ 미소 지으며 걸어간다. 그 집은 달콤하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아름답다./ 그리고 한순간,/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리. …. 195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페인 시인 히메네스의 시. 시에 따르면 “어떤 예상치 않은 순간”, 가령 ‘꽃 내음’이 자연의 문을 여는 때가 있다. 이 열린 문으로 하늘과 해가 들어오고, 창문으로 한 마리 새가 날아든다. “우리를/ 잠시나마 운명의 주인으로 만”드는 이 순간엔, 우리는 바다 위를 조용히 “미소지으며 걸어”가며 “빛과 바람을 타고” 오는 “시간과 기억들”을 맞이하고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5-11-09
오늘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 족해 중얼거리며 거울을 보내 분 뚜껑을 열고 조용히 나를 지우기 시작하네 오늘 하루 걷고 먹고 말한 모든 것이 나를 지워가던 일 귀갓길에서 모란의 몰락을 보았네 오늘은 아주 조금 나를 걷어낸 것으로 족해 거울 앞에서 얼룩진 부분부터 지우네 저녁은 지워지지 않네 …. “사람이 되기 위해” “거울을 보”며 분칠로 “나를 지우”며 살아가는 삶. 현대인의 삶. 시의 화자에게는 일상 속에서 “걷고 먹고/말한 모든” 행위는 “나를 지우”면서 이루어진다. 그래야 ‘사람’이라는 이 세상 세인의 보편 표상을 보이는 삶을 살 수 있다. 하나 그것은 “귀갓길에서” 본 모란처럼 몰락하는 삶이다. ‘오늘’의 사회생활에서 묻게 된 얼룩을 아무리 지워도, 모란이 드러낸 몰락의 이미지는 지워지지 않는다. <문학평론가>
2025-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