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방법은 단순하다네 당신을 나에게 밀착시키는 것 정의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는 듯 그 정의를 당신에게 몸으로 줄 수 있다는 듯 당신의 머리칼을 뒤적이며 쓰다듬을 때 내 손에 아름다운 무언가가 만들어지네 더는 알지 못하네 오직 당신과 편히 있고 싶고 가끔은 내 마음을 누르는 알 수 없는 의무감 그리고 평안히 있고 싶을 뿐 … 가모네다는 현재 생존하는 스페인 시인. 많은 시인이 사랑에 관해 새로운 통찰을 보여주듯이, 위의 시도 사랑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이끈다. ‘사랑하는 방법’이란 몸을 밀착시키는 것이며, 이 밀착을 통해 ‘정의’를 몸으로 주는 거란 생각은 새롭다. 또한 애인의 머리칼을 쓰다듬을 때 “아름다운 무언가가 만들어”진다는 생각도. 사랑하는 이와 같이 있으면 의무감과 평안함의 신비로운 공존이 가능해진다는 것도. <문학평론가>
2025-08-20
사라지는 것들이 도착하는 곳이 분명 있다 수북해진 그곳은 하나의 세계다 불리지 않아서 잃어버린 이름들을 기다린다 이름이 꼭 없어도 좋다고 생각해 이 세상은 당연히 외로운 거야 잃어버린 것들을 버려진 것들이라 할 때 버려진 것들끼리의 유대에서 악마가 태어난다 (중략) 목덜미가 뻐근해지거나 어깨가 무거워지거나 무릎이 휘청대거나 팔다리가 묵직해진다거나 아예 흘러 버릴 것만 같아 바닥이 될 것 같다면 내 몸의 바깥에서 사라졌던 사람들이 돌아오겠다고 이 세계의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둬 …. ‘나’ 안에서 사라진 이들이 있다. 이름마저 잊은 사람들. 하나 그들은 정말로 사라진 걸까, “잃어버린 이름들을” 가진 이들은 어딘가에 모여 유대를 맺고 있는 것 아닐까. “바닥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 그것은 ‘나’에게서 버려진 자들이 나를 짓누르는 복수를 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하나 그것은 복수가 아니라 내 몸 안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 “이 세계의 바깥에서/문을 두드리고 있는 거”일지도 모른다. <문학평론가>
2025-08-19
우산은 접었다 다시 펼치는 추억 같은 것 망가진 살대 밑에서 어쩌면 살짝 은밀한 어쩌면 살짝 부끄러운 젊은 그때를 펼쳤다 다시 접는 참 사소한 슬픔 같은 것 …. 위의 시에 따르면 추억은 우산과 같다. 쓸쓸함을 불러일으키는 비가 올 때, 그 추억은 펼쳐진다. 그 우산은 망가져 있다. 우리가 떠올리는 ‘젊은 그때’의 추억은, 이제는 잃어버린 것,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상기되는 것이어서, ‘사소한 슬픔’을 불러일으키기에. 또한 펼쳐진 추억의 ‘망가진 살대’ 밑에는 ‘은밀’하거나 ‘부끄러운’ 비밀도 ‘살짝’ 드러나지 않는가. 우리가 우산을 다시 접는 것은 그 때문이겠다. <문학평론가>
2025-08-18
순이야, 누이야! 근로하는 청년, 용감한 사나이의 연인아! 생각해보아라, 오늘은 네 귀중한 청년인 용감한 사나이가 젊은 날을 싸움에 보내든 그 손으로 지금은 젊은 피로 벽돌담에다 달력을 그리겠구나! 그리고 이 추운 밤 가느다란 그 다리가 피아노줄 같이 떨리겠구나. 또 이거 봐라, 어서, 이 사나이도 네 커다란 오빠를···. 남은 것이라고는 때 묻은 넥타이 하나뿐이 아니냐! 오오 눈보라는 트럭처럼 길거리를 달아나는구나 자 좋다 바로 종로 네거리가 아니냐! 어서 너와 나는 번개같이 손을 잡고, 또 다음 일을 계획하러 또 남은 동무와 함께 검은 골목으로 들어가자 네 사나이를 찾고 또 근로하는 모-든 여자의 연인인 용감한 청년을 찾으러···. 그리하여 끝나지 않은 새로운 용의와 계획으로 젊은 날을 보내라 … 임화 시인은 일제강점기 이름을 날린 저항적인 시인. 1929년에 발표된 위의 시는 당시 일제 권력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을 그려냈다. 화자와 그의 누이동생, 그녀의 애인, 세 명이 등장한다. 애인은 감옥에서 추위에 떨며 나갈 날을 기다리고, 오빠와 누이동생은 권력의 감시망을 피하며 검은 골목으로 들어가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이 계획이란 조선의 해방을 도모하는, 그리하여 애인을 되찾기 위한 계획일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5-08-17
늦가을 강바람 속으로 매순간 힘없이 메마른 숨결의 손을 놓는 나뭇잎들과 같이 지금 돌연 내가 죽어 없어진다 해도 저 강물은 계속 흐를 것이다 간혹 물 위에 떠가는 낙엽이나 갈대 부스러기처럼 내 죽음이 쓸쓸히 노을의 저편으로 흘러가도 강은 이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바로 눈앞으로 흐르는 강물이란 강물 다 지나가버려도 강의 호흡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듯, 영영 떠내려가버릴 것 같은 죽은 나뭇잎들 푸르름의 기억을 되살려 나무의 뿌리로 되돌아오듯, 내 육신의 죽음이 진정 나를 죽게 할 수 있을까 ….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유하 시인의 1990년대 발표된 시. 위의 시는 삶과 죽음에 대해 아름답게 명상한다. 한 개체의 죽음과 무관하게, 강물이 계속 흐르듯이 세계는 자기 갈 길을 갈 것이다. 이리 보면 우리의 삶은 허망하지 않은가. 하나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나뭇잎이 썩어 다시 뿌리로 되돌아가듯이 인간 역시 그렇지 않을까라고 시인은 생각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죽음이 진정 무로 회귀하는 것일까라고. <문학평론가>
2025-08-13
이 외로운 언덕은 내게 언제나 사랑스러웠지, 아득한 지평선의 이곳저곳을 시야에서 가리는 이 산울타리도 하지만 가만히 앉아 그 너머 끝없는 공간과 초월적인 침묵, 더없이 깊은 고요함을 바라보노라면 나는 상상 속에 잠기고, 심장이 두려움에 떨려 온다. 초목 사이로 속삭이는 바람 소리가 들릴 때면, 저 무한한 침묵을 이 목소리와 비교해 본다. 그러면 영원과 이미 죽은 계절들, 살아 있는 현재의 계절과 그 소리가 마음속에 떠오른다. 그렇게 광활함 속에 나의 상상은 빠져들고 이 바다에서의 난파는 달콤하구나. … 레오파르디는 19세기 초반에 활동한 이탈리아 최초의 근대 시인. 콜레라에 걸려 1837년 3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위의 시는 그의 시 중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는 시라고. 시인은 산울타리 너머의 “끝없는 공간과 초월적인 침묵”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 침묵의 영원과 현재의 바람 소리, “이미 죽은 계절들”을 마음속에서 융합하고는, 이 바다 같은 “광활함 속에”서 ‘달콤’하게 난파하는 자신을 한껏 느낀다. <문학평론가>
2025-08-12
나는 바닥에 소복이 쌓이고 나 같은 것들과 휩쓸려 다니면서 철쭉 사이로 빠지고 차도로 뛰어들고 바퀴를 따라 펄럭이다가 즉사하고 아스팔트에 핏자국을 남기고, 바람을 따라 아파트 14층까지 날아오르고 모르는 집 창을 기웃거리고 잠옷 바람의 여자와 마주치고 더 높이 올라갔다가 까마득히 뛰어내리고 가벼운 것들은 춤출 수 있다 나비처럼 새처럼 가벼운 것들은 망가지고 깨지고 산산조각 나고 짓밟히고 죽을 수 있다 비로소 사방으로 내려앉아 꽃이 될 수 있다 … 꽃잎에 대한 인상적인 이미지화다. 시인은 아름답게 피어 있는 꽃잎이 아니라 땅에 떨어진 이후의 꽃잎이 살아가는 행로에 주목한다. 꽃잎은 가벼운 존재여서 여기저기 흩날리는데, 그 행로는 그야말로 고통이다. “망가지고 깨지고 산산조각 나고 짓밟히”는 삶을 살아야 하니까. 하나 그러한 고난을 통과하면서 “나비처럼 새처럼” 춤을 출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는 것, ‘비로소’ 꽃잎은 “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5-08-11
알량한 지식이나 생각으로는 진실에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다 진실에 접근한다 하더라도 접근하는 순간 진실은 얼굴을 바꾸고 돌아앉기 십상입니다. 쉽게 논하는 진실은 어쩌면 시대적이거나 사회적이거나 혹은 인간의 생리적인 우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진실도 역시 살아있는 것이라서 잡으려 들수록 도망가기도 하고 알아볼 수 없도록 위장할지도 모릅니다. 진실은 잡을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맞는 말인지도 모르지요. 진실 붙잡으려고 애쓰지 마십시다. ….. 시인의 말에 동감한다. 이것이 진실이라고 쉽게 믿거나 강변하는 이가 있다. 그 진실이 진실이라는 보증은 자기 자신이 선다. 결국 자기 자신이 믿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것, 우상이 그러하듯이. 필자도 진실이라는 우상에 포획되곤 했던 사람이다. 곧 그것이 허위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우상. 진실은 붙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손아귀에서 빠져나간다. 하나 진실을 붙잡으려는 노력까지 포기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문학평론가>
2025-08-10
그대를 꽃이라고 부른다. 불처럼 타는 가슴 여기저기 때리며 큰 못을 박는 이따위 더러운 돈, 진실로 하루 세끼 라면값도 안 되는 몇 푼 때문이 아니라, 이제는 비로소 정정당당하게 정정당당하게 한 번쯤 일해 보기 위하여 싸우고 소리높여 죽은 그대를 속삭이듯 꽃이라고 부른다. 침묵 속에서 혹은 저 이름모를 무수한 봉제공장바닥에서 살을 누비듯이 헝겊을 누비고 단추를 달고 눈물을 삼키는 친구들은 그대여, 아직도 부르르 주먹만 살고, 적수공권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피투성이 음침한 거리 먼지 낀 하늘 아래 날마다 다시 살아 그 가슴에 잘 타는 기름을 붓고, 또다시 온몸에 불을 붙이는 그대를 입을 모아 꽃이라고 부른다. ….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과 함께 자신을 불태워 1970년 당시 노동자의 현실을 세상에 알렸던 전태일. 여전히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고 있는 현 한국에서 그 이름은 여전히 울림을 준다. 그를 기리는 위의 시는 1984년 발간된 시집에 실려 있지만 낯설지 않다. 권리를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이 전태일을 꽃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모든 노동자를 위해 자신을 불태운 그가 불꽃처럼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2025-08-07
바람 빠져 시든 풍선처럼 가슴에 달고 사는 훈장 하나 삼십 년 지기 기관지 확장증 분필 가루 마시며 지킨 교단 허파 가득 바람 든 욕심 잔기침 대수롭지 않게 여긴 무심 그렇다면 그것도 일종의 직업병 잔뜩 성난 코로나 습격에도 끄떡없이 견뎌준 고마운 내 풍선 다시 빵빵할 일 있을까마는 바람 가득한 날들의 추억은 은퇴선물 너도 풍선 터질 듯 잔뜩 꽃바람 든 적 있니? 가슴에 달고 사는 훈장 하나 있니? 가슴 터져도 좋으니 펌프질하는 사랑은 있니? … ‘기관지 확장증’이라는 병을 처음 알았다. “잔기침 대수롭지 않게 여긴 무심”으로 병이 심화되었다는 것을 보면 시인도 몰랐나 보다. 이 병을 얻게 된 것은 분필 가루 마시며 교단을 지켜왔기 때문, 그래서 시인에게 이 병은 직업병이다. 하나 시인은 생각을 전환시킨다. 병을 얻어 은퇴하지만 “바람 가득한 날들의 추억”이 선물처럼 남았다는 것, “가슴 터”지도록 “펌프질하는 사랑”으로 가득했던 날들의 추억이. <문학평론가>
2025-08-06
‘재밌지만, 쓸데없다.’ 그랬다 그의 일기는, 그 안에는 날마다 그의 움직임들 기록되었고 오로지 그의 사랑들만 탐구되었는데; 그는 알았다. 물론, 어떤 행동도 보답받지 못했다는 것을, 전리품은 전혀 없었다: 비록 그의 눈은 넓은 아름다움을 동작 하나 혹은 정지 하나에서 볼 수 있었지만, 그것이 기대할 필요는 없었다 내장의 순간적인 박수 너머로 지속되는 아무 급여도. 그는 몇 해 살았는데 한 번도 놀라지 않았다: 그의 멍청한, 거짓말하는 종족 일원은 잘 해명해 넘겼다 그들의 악덕을: 깨달았다 그것이 그 혼자 재능이라는 것을: 세계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는 것; 그가 자기 자신의 것으로 보지 않았던 얼굴을. … 20세기 중후반 영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라킨의 시. 작가는 사랑과 아름다움을 “동작 하나 혹은 정지 하나에서” 투시하고 탐구하며 일기로 기록하는 이. 어떤 보답도, 박수도, 급여도 지급되지 않지만. 한편 그의 “거짓말하는 종족 일원은” 자신을 변호하고 해명하기 위해 글을 쓴다. 하나 진정한 작가는 “세계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본다. 자기 자신의 시각으로 보지 않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세계의 정면을. <문학평론가>
2025-08-05
몸 안에서 다른 몸이 일어설 때 아이를 밴 여자가 헛구역질을 하면서 쏟아지는 모욕을 걸을 때 모든 물음이 창처럼 옆구리를 관통할 때 오래된 술잔을 거부할 때 지평선이 활활 타오를 때 (중략) 갈 수 없는 먼 곳이 울먹이며 다가올 때 적이 친구가 되고 친구가 적이 될 때 다시 사랑이 시작될 때 모든 시작을 사랑할 때 여자가 드디어 강물을 낳을 때 … 혁명은 정치적 영역만이 아니라 하나의 삶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시적인 이미지로만 표현할 수 있는 ‘나의 혁명’. 시에 따르면 온갖 모욕을 뚫고 나갈 때, 오래된 생각을 거부하고 제기된 새 물음들의 창날에 옆구리를 내어주면서 마음의 “지평선이 활활 타오를 때” ‘나의 혁명’은 일어난다. 그것은 “시작을 사랑”함으로써 “다시 사랑이 시작”되는 것, 이때 비로소 “여자가 드디어 강물을 낳”으며 혁명은 시작된다. <문학평론가>
2025-08-04
조금 먹고 조금 싸며 살겠다고 직장을 뛰쳐나간 동료가 있었지 회사를 나간 그는 끝내 다른 회사에서 마늘만 먹고 있다는데 참는 자에게 복은 온다고 오래도록 참았지만 여전히 마늘만 먹고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하며 정해진 시간에 지문을 찍고 맘껏 숲을 누비고 싶은데 그렇게 살면 사람 되긴 영 그른 건지 사람이 될지 안 될지 모르면서 마늘만 먹고 그런데 동굴을 뛰쳐나간 호랑이는 어떻게 되었대? … 단군신화에 나오는 호랑이와 곰. 우리는 곰의 후손일까 호랑이의 후손일까. 한국 민담이나 민화에 호랑이가 자주 나오는 걸 보면, 인간되기를 거부하고 동굴을 뛰쳐나간 호랑이의 후손 아닐까. 21세기 한국에서 호랑이의 후손들은 동굴 속에서 마늘을 먹으며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사람 되길 기다리며, “정해진 시간에 지문을 찍”으며. 하나 동굴을 뛰쳐나가 “맘껏 숲을 누비고 싶은” 마음은 더욱 들끓고 있는. <문학평론가>
2025-08-03
목덜미 쪽으로도 등줄기 쪽으로도 닿을 수 없는 제2흉추 자리 부근에 그대가 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아무리 팔을 비틀어도 닿지 않는, 그 자리가 시려올 때마다 나는 벽에 시대어 선더 내 심장의 뒤쪽 …. ‘그대’는 가까이 있지만 멀리 있다. 그대의 존재는 그의 몸속, “제2흉추 자리 부근”에 있다. 시인의 마음 중추에 자리 잡고 있는 것. 하나 그대는 그대에 대한 기억 또는 그리움이 만든 존재, 정작 그대는 멀리 떠나 있는 것이다. ‘먼 그대’이기에 그대는 시인의 흉추에 자리하기 된 것, 그대 있는 그 자리가 시리다. 하지만, 목욕할 때 경험하겠지만, 아무리 “팔을 비틀어도/닿지 않는” 자리가 바로 그 자리인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5-07-31
바람이 들락대는/ 허공에 산다 일생 창자를 녹여/ 실로 엮은 집 밤이면/ 별들이 줄을 내리는/ 어둠 한 채 쿵쿵 심장을 두드리는/ 오지 않는/ 너의 발소리 불룩한 그리움을 입다심하는/ 수인번호 선명한/ 나의 집 …… 시인에게는, 그가 죄수가 되어 갇혀 사는 또 다른 집이 있다. 마음의 집이 그것. 거미의 집과 닮아 있는 집. 하여 그의 마음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을 터, 거미집에서처럼 “바람이 들락대”며 “별이 줄을 내”리고 있다. 그는 그 집에서 “오지 않는/너의 발소리”를 ‘쿵쿵’ 뛰는 심장 소리로 들으며 그리움에 사로잡혀 산다. 그 집은 바로 그 그리움이 실을 자아내어 만든 것 아닐까, 거미가 “창자를 녹여” 집을 엮듯이. <문학평론가>
2025-07-29
어찌 당신은 비쟈 마을로 놀러 오지 않나요? 빈랑나무 위 햇빛을 보면, 빛이 고개를 들고 누구의 발인지 옥처럼 파랗고 대나무 잎은 밭을 가린다. 바람은 바람길로, 구름은 구름길로 물길은 슬픈데, 옥수수꽃은 활짝 달빛 아래 나루에 머문, 저 배는 오늘 밤 제때 저 달을 실어 갈 수 있을까? 먼 길을 온 손님의 꿈속에서도 먼 길이지 너의 옷이 너무 희어, 볼 수가 없고 여기 안개가 짙어 흐릿하니 누구의 사랑이 더 진한지 알 수 있을까? … 얼마 전 ‘한막뜨’라는 시인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1940년 한센 병으로 28살에 요절한 시인으로 베트남의 국민시인이라고. 한국에서의 김소월이나 윤동주의 위상을 지닌 시인인 듯하다. 위의 시는 그의 대표시로 노래로도 만들어져 베트남인의 오랜 사랑을 받았다고. 달빛 아래 안개 낀 마을 풍경의 몽롱하고도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통해 사랑하는 마음에 깔린 불안과 방황, 황홀과 초조를 동시에 보여주는 시. <문학평론가>
2025-07-28
아파트가 세상인 세상에서 계단 오르기만 한 운동이 어디 있냐지만 있을 때 잘 하라는 말은 있을 때 흘려듣는 말이기도 해서 아직은 건강하니까 다만 계단은 오르기만 하는 거라고 이 나이에 내려가기로 치면 무릎이 절단난다고 있을 때 잘 하라는 말은 없을 때 사무치는 말이기도 해서 뭘 더 챙기겠다고 뭘 더 올라가 보겠다고 … 정말 “흘려듣는 말”이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 말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어 본 사람은 그 말이 얼마나 “없을 때 사무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자기 몸도 그렇다. 몸이 건강할 때에는 몸의 소중함을 모른다. 하나 건강을 잃게 된 이는 ‘자신의 몸에 잘할 걸’이라는 회한에 사무칠 테다. 하여 “아파트가 세상인 세상”에서라도 시인은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계단 오르기”를 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5-07-27
오늘을 오늘처럼 사는 처세술서 한 권쯤 갈아 마셔야 가늘게 산다 마르지 않은 수많은 어제들 말리느라 건조해져 어제조차 건너올 수 없다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 이제부터 당신은 모르는 사람 어제를 닮은 키 큰 플라타너스 마른 잎사귀를 한 걸음 밟는다 부스러기 섬들 다시 돋아나는데 펄펄 우는 폭우에 펄쳐질 나는 무지갯빛 우산, 아직 펑펑 젖은 무덤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 사람은 오는데 사랑은 없고 … 독특한 제목이다.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다니. 시의 마지막 행이 제목의 의미를 말해준다. 비는 그쳤지만 우산은 펴들고 있듯이, 사랑이 끝났는데 ‘무지갯빛’ 사랑이 오기를 기다린다는. 폭우처럼 시인에게 쏟아졌던 사랑에 여전히 그가 젖어 있기에. 하나 “젖은 무덤”처럼 사랑은 죽어 있는 것이다. 그에게 오고 있는 당신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고, 사랑을 말리는 삶은 “건조해져 어제조차 건너올 수 없”기에. <문학평론가>
2025-07-24
잠들기 위해 숫자를 센다 열아홉, 스물 스물아홉 다음도 다시, 스물 스물에 묶여 있는 입에서 밤이 조금씩 덜컹거려도 끝내 입은 안 닫히고, 내가 포장한 선물의 포장을 헤치듯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풀면 일시에 지난 시간이 검은 모래로 되살아난다 모두가 자기 말만 하는 모래밭에서 나는 옆으로 걷기만 하고,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아도 나는 옆으로 걸어야 한다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입 주변이 하얗게 일어날 때까지 … 어릴 적 잠을 청하기 위해 숫자를 세곤 했다. 이 시의 화자는 어른인데도 숫자를 세며 잠을 청한다. 불면 때문이리라. 어린 아이와는 달리 좀처럼 그는 자지 못한다. “밤이 조금씩 덜컹거리”기라도 하면 “검은 모래로 되살아”나는 지난 시간 때문에 입이 닫히지 않아서다. “모두가 자기 말만 하는 모래밭”세상에서, 모래를 게워내는 게처럼 “옆으로 걸어야” 하는 삶은, 온통 검은 모래의 기억들로만 채워지기에. <문학평론가>
2025-07-23
봄은 생강나무꽃으로만 오는 것은 아니어서 어디서 본 듯한 노부부의 어깨에 노랗게 내려앉는 저 봄 우거진 숲을 쓸쓸히 지나왔겠거니 뒤돌아보는 눈빛이 따듯해서 하마터면 울 뻔했다 무량한 눈빛이 메마른 가지에서 붐빈다 다정한 은빛 머리카락처럼 순정한 목련꽃도 피었다 봄이다 … 신생의 계절인 봄. 봄이 오면 노란 생강나무꽃이 가장 먼저 피겠지만, 봄은 “노부부의 어깨”에도 노랗게 내려앉는다. 노부부에게도 봄엔 신생이 일어나는 것. 하나 그 신생은 발랄하진 않다. 뒤돌아보는 노부부의 무량하고 따뜻한 눈빛에서 쓸쓸함도 느껴지기 때문. 하여 시인은 “하마터면 울 뻔했다”고 한다. 봄은 노란 꽃만이 아니라 노부부의 “은빛 머리카락처럼” 하얀 꽃으로도 온다. 순정한 목련꽃의 봄도 있다. <문학평론가>
2025-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