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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불면증

등록일 2026-02-12 14:19 게재일 2026-02-1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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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고영범 옮김)

정신이 잠들지 못한다, 기껏해야 누워 있기나 할 뿐

속은 뒤틀리고 깨어 있는 채로, 마지막 공격처럼

몰아닥치는 눈소리를 들으면서.

 

정신은 희망한다 체호프가 이 자리에 있어서 뭐라도

처방해줬으면-발레리안 진정제 세 방울, 장미수

한 컵-아무거라도.

 

정신은 여길 나가서 눈 속으로

가고 싶어한다. 털 많은 짐승 무리와 함께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뛰어다니고 싶어한다.

 

달빛 아래서, 눈밭을 가로질러, 발자국도 다른

흔적도,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정신이 오늘밤 앓고 있다.

20세기 후반 미국 단편소설을 대표하는 카버의 시. 필자의 현재를 이 시가 너무 잘 보여주고 있어서 여기에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현대인의 정신은 수많은 틀 속에 갇힌 채 어떤 의무의 중압에 의해 짓눌려 있다. 하여 불면으로 “누워 있기나 할 뿐”인 현대인의 우울한 정신은 “여길 나가” 야생의 눈밭으로 들어가 짐승과 함께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활짝 웃으며 뛰어다니고 싶”은 욕망으로 뒤척인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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