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신
사라지는 것들이 도착하는 곳이 분명 있다
수북해진 그곳은 하나의 세계다
불리지 않아서 잃어버린 이름들을 기다린다
이름이 꼭 없어도 좋다고 생각해
이 세상은 당연히 외로운 거야
잃어버린 것들을 버려진 것들이라 할 때
버려진 것들끼리의 유대에서 악마가 태어난다
(중략)
목덜미가 뻐근해지거나
어깨가 무거워지거나
무릎이 휘청대거나
팔다리가 묵직해진다거나
아예 흘러 버릴 것만 같아
바닥이 될 것 같다면
내 몸의 바깥에서
사라졌던 사람들이 돌아오겠다고
이 세계의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둬
….
‘나’ 안에서 사라진 이들이 있다. 이름마저 잊은 사람들. 하나 그들은 정말로 사라진 걸까, “잃어버린 이름들을” 가진 이들은 어딘가에 모여 유대를 맺고 있는 것 아닐까. “바닥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 그것은 ‘나’에게서 버려진 자들이 나를 짓누르는 복수를 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하나 그것은 복수가 아니라 내 몸 안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 “이 세계의 바깥에서/문을 두드리고 있는 거”일지도 모른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