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차영
해안 절벽 아래서
어둠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성난 야수 소리가 들린다
불안을 열고 바라보니
절벽 밑은 하얀 눈 수북이 쌓여
아무것도 찾을 수 없고
수평선 끝에서 바람 등에 올라 달려오는
시커먼 흑등고래가 사정없이 바위에 부딪쳐
피를 눈처럼 쏟아내고 있다
폭설 속에서
뽀얗고 까만 사나운 꼬리로
용오름 피워내며 포효하는
굶주린 백호 한 마리
바다의 목덜미 앙칼지게 물고 솟아올라
새가슴을 가진 나에게로 뛰어든다
스무 살의 내가 살아나고 있다
…..
어떤 풍경은 삶을 다시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북돋는다. 위의 시의 풍경이 그렇다. 파도 소리일까, “성난 야수 소리”는. 이 소리를 듣고 수평선 끝을 바라다보니 바위에 부딪쳐 피를 쏟는 ‘흑등고래’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이 흑등고래는 파도에 대한 환시 아니겠는가. 또한 시인은 용오름을 백호의 꼬리로 비유하고 있기도 하다. 이 맹렬한 동물들의 풍경이 “새가슴을 가진 나”에게 팔팔한 젊음의 피를 수혈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