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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분)

등록일 2025-10-12 16:21 게재일 2025-10-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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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현

지금은 냉동실에 칸칸이 쟁여진

검정 비닐봉지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쟁여둔 것조차 잊었다가

아차, 유통기한 넘겼나 싶어 봉지들을 꺼낸다

그게 먹다 남긴 고등어 토막일지

오래전 넣어둔 조랭이떡일지는 뒤집어봐야 안다

장을 새로 본 양지머리를 집어넣어도

부지불식간에 색과 향을 잃고 만다

살얼음을 뒤집어쓴 채 침묵하는 그것

검정 비닐봉지 속을 헤쳐

유예된 지금을 찌개 냄비에 붓고 끓인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도처에 서식한다

해진 가죽 소파 위 쿠션처럼 얹혀 있다가

장롱 속 남편의 넥타이처럼 물끄러미 바라보고

베란다 화분들 사이에서 슬며시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바글바글 김이 오르는 지금이란 잡탕찌게를

국자로 떠 담는다

(하략)

 

…..

‘지금’은 과거와 연결된 시간이겠으나, 과거는 냉동고 속 음식들처럼 얼어붙어 있다. 과거는 ‘지금’이 되고 싶으나 되지 못한 것들, 시인은 얼어붙은 과거들이 ‘지금’이 될 수 있도록, “유예된 지금을 찌개 냄비에 붓고 끓”인다. 하여 이 ‘지금’이란 찌개는 ‘잡탕찌개’가 된다. “어제의 지금”과 “내일의 지금”이 뒤섞인 잡탕찌개. ‘지금’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통해, 시인은 ‘지금’이 집 안 “도처에 서식”하고 있으며, 언제나 ‘임박’해 있다는 것 역시 발견한다. 시 쓰기란 시간을 발견하여 ‘지금’이란 찌개를 만드는 일이겠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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