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율리
아이는 열두 컷 편지를 가졌다 그것은 열두 잎을 가진 나무의 이야기
(중략)
살구나무가 좋아
저녁으로 사람들이 고인다고 아이가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거기, 내가 화분마다 물을 준다 고장 난 시계태엽을 돌리고 저녁도 없이 밤을 부른다
어둠이 발등에 차린 밥상, 물컹한 가지 조림을 먹고 찬물을 마신다 찬물은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식탁 끝이, 언제부터 절벽이었나 생각할 때
멀리서 달려오는 편지가 내게 팔베개를 한다
별을 그리면 손바닥만 하게 커지는
그 저녁이 우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나무라 불러야 하나
열두 컷 그림 속에서 잎사귀만 한 아이가 손을 흔든다
….
‘살구나무’를 좋아하는 아이는 나무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그 그림에 ‘나’는 물을 준다. “고장 난 시계태엽을 돌”려 꿈의 밤을 다시 불러오려고. 현실의 밤은 찬물 같다. 그 밤에 앉는 식탁 끝은 절벽이 되었다. 하여, 시인은 나무 그림 속 아이로부터 “멀리서 달려오는 편지가” “우리 속으로 들어”와 팔베개를 해주길 기다린다. “열두 잎을 가진 나무의 이야기”를 담은, “별을 그리면 손바닥만 하게 커지는” 편지를.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