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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등록일 2025-10-15 15:32 게재일 2025-10-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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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훈

아무래도 흘러간 날들 중엔 흘려보낸 날들이 더 많은 것 같아서, 아무리 노력해도 혹은 내버려두어도 당신의 뒷모습이 표정보다 더 오래 남는다 다 그리기도 전에 자리를 터는 피사체를 보면서, 시간과 질감을 한 획에 그리는 놀이만 손에 익히면서, 벌건 숯이 어느 날 더 하얗게 잠들기까지 품고만 있는 것 외의 다른 방법을 모르면서, 우리는 결국 꺼져야 다시 만날 이른 봄의 밤바람이 될 거면서,

……..

‘흘려보낸 날들’이란 당신에 대한 기억들을 떠나보내는 날 아닐까. 당신의 표정은 점차 “다 그리기도 전에” 사라져서 ‘뒷모습’만 바라보아야 하는, 그래서 그 뒷모습을 추상화 그리듯 “시간과 질감을 한 획에 그리”게 되는 그런 날. 그 날은 “벌건 숯이” 점차 “하얗게 잠들”어 가는 시간, 그 시간 동안 시인은 당신의 뒷모습을 “품고만 있”다. 불이 다 꺼졌을 때 비로소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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