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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빨강합니다

등록일 2025-10-20 10:05 게재일 2025-10-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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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흠

나는 당신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오직 당신에게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키워온 말입니다 아직은 익지 않았습니다 내가 할 말은 세상에 없는 첫 향기일 것입니다 어떤 냄새와도 다른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마음입니다

비슷한 말이 있기는 합니다만 껍질만 닮았습니다 보고 싶다는 말이나 사랑한다는 말은 저온 창고의 과일들처럼 이미 죽은 말입니다 나는 당신께 살아 있는 말을 건네러 왔습니다 나는 처음을 꺼냅니다 나는 당신을 빨강합니다 이토록 싱싱한 나의 빨강을 당신께 드립니다

 

…..

시에 따르면 말을 키운다는 것은 싱싱한 빨간 사과를 키우는 일이다. 이미 따서 ‘저온창고’에 저장한 사과 같은 말도 있다. “보고 싶다는 말이나 사랑한다는 말”이 그렇다. 시인은 그러한 상투어에서 벗어나 사과의 빨강과 같은 말을 마음속으로 키운다. “아직 익지 않았”기에 보여주지 못했던 말. 이제 시인은 “세상에 없는 첫 향기”일 “살아 있는 말”을 꺼내 ‘당신’에게 건넨다. “나는 당신을 빨강함니다”라는 말.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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