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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봄의 절반...박 정 수

경칩(驚蟄) 지나 춘분(春分) 의료원과 성당 사이 텃밭에 계분을 뿌리는 부부 냄새는 금방이라도 비를 몰고 올 것만 같다 췌장을 잘라낸 지난 해 여름처럼 헐거워진 땅의 틈을 밀고도 밭고랑의 봄은 좀처럼 서두르질 않는다 아내는 멀찍이 마음을 기댄 채 꽃몰이를 하는 듯 어깨에서도 바람이 일고 남편을 향한 기도처럼 계분을 뿌리듯 자신을 뿌린다 흩어지는 독한 냄새 암세포를 밀어내며 봄은 피고 약봉지 안 캡슐에 담기는 성당의 종소리, 삽자루의 오전은 천천히 건너가고 아내의 장화 신은 발을 뒤따라 남자는 가벼운 발자국 찾느라 콧날이 찡한 봄 한 움큼을 삼킨다 남자의 절반을 일구며 계분더미에 앉은 나비 같은 여자가 웃는다 후드득 몰려오는 빗방울을 닮아가는 파종의 시간, 봄의 절반을 빠져나온 성당의 종소리는 아주 멀리까지 젖고엄동을 견딘 땅에 경칩 지나 춘분이 오면 새 생명의 움이 돋는다. 텃밭에 선 부부. 거름을 뿌리고 그 봄을 반가이 맞아 여러 준비에 바쁘다. 또 한 봄을 맞이하는 아내의 병력. 그녀에게 절반은 남편이다. 남편에게 절반도 역시 아내이리라. 봄밭에 파종하는 씨앗은 싹을 틔울 것이다. 부부의 소망처럼 그들의 아픔도 치유되리라는 믿음이 따스하게 깔려있는 작품이다.시인

2012-03-19

닫힌 문을 위하여...김 추 인

문입니다. 보이다가 사라지는 것 그것이 문입니다.문은 맨 처음 점이다가 선이다가 광장이 되지 못하고처음의 그 소실점 밖으로 사라집니다문은 크다가 스러지고 화사하다가 어둡고멀다가 안 보이다가 잠기어 침묵하다가 어느 한순간빗장 내려지고환히 열리는 때도 있습니다만 어느 한순간에또 감쪽같이 눈앞에서 퇴장합니다문은 문이다가 문 밖으로의 사라짐 혹은 문 안으로 사라짐에 대해절대 설명하는 일은 없고 감각으로 책정되는문이 강의록만 있을 뿐문득 내 마지막 문을 나서면 그 뒤는? 허방입니까?그 무목적성의 텅 빈 충만, 그 부대낌 없는 불안을 어찌 견딜지요이 지상에 문이 단 하나였다면오늘의 개인의 세계의 이 진화는 과연 왔을지요나 다시 올 겁니다 알 수 없는 문의 감옥, 이 지상으로오일장처럼 설렘으로 가득 찬 문. 문. 문평생을 문을 열고 나오고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이 우리네 한 생이 아닐까. 문은 묶임과 풀림의 경계이고 장치가 아닐 수 없다. 문밖에 나오면서 느끼는 자유로움과 문 안에 듦으로서 느끼는 안온함이랄까 안정감 같은 것. 시인은 그에 보테어 오일장처럼 설렘으로 가득한 문을 통하여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있다. 참으로 순진하고 맑은 마음의 한 자락을 본다.시인

2012-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