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지기(知己)의, 부음을 들었다그가 밥그릇 하나를 비웠다하루 세끼 신성한 의식을 엄숙히 집전하던 그는세상 골목을, 지친 그림자 끌고 다니며 머릴 조아렸다결코 넘치는 법 없던 그의 밥그릇따뜻한 밥이 담겨지는 동안은 그래도늘 행방불명이던 삶이 증명되었다이제, 식탁 위엔 그의 수저가 없다그는 지상 최대의 소신공양을 끝내고자신의 그릇을 온전히 다 비워냈던가움푹 패인 빈 그릇에웃자란 적막이 봉분처럼 수북하다친구의 부음을 들은 시인이 삶과 죽음에 대해 관조하는 작품이다. 그렇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란 따뜻한 한 그릇의 밥을 채워가는 일인지 모른다. 인생이란 최선을 다해 살다가 빈 밥그릇 내려놓고 가버리는 것인지 모른다. 인생이 그럴진대 무얼 그리 더 많이 가질려고 상처주고 상처받으며 살아야하는 건지 한 번은 겸허히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볼일이다.시인
2012-02-17
엄마가 쌀을 빻아왔다 고목나무보다 느린 걸음으로 골목을 돌아오신 것이다가으내 들일로 참깻대가 된 손에 찹살가루 버무린다 엄마는 내년쯤 돌아가실 예정팥 한층 쌀가루 한층 설설뿌리시며 야 떡 먹구 싶냐, 파도 부서진 물보라 처마에 쌓인다늦은 눈, 봄눈이 내리는 시골집 마당을 떠올려보자. 하얗게 내리는 눈을 맞으며 눈처럼 하얀 찹쌀가루를 빻아 오신 늙으신 어머니, 그 쌀가루에 팥 한 층 올려 시루떡을 안치는 어머니, 이제는 돌아가실 날이 멀지 않은 어머니지만 봄눈 내리는 날 아들에게 떡을 해 권하는 어머니의 따스하고 정겨운 사랑과 정성이 눈물겹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걸어온 길이다.시인
2012-02-16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조용히 울고 있었다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그는 몰랐다인간 존재의 비극적인 생명인식을 형상화한 신경림의 초기 시에 속하는,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갈대를 흔드는 것이 바람도 달빛도 아닌 울음이라는 것은 인간존재의 근원이 슬픔에서 기인된다는 시인의 기본적인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 시인의 말처럼 우리네 삶이 어쩌면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은 아닐까.시인
2012-02-15
매운 바람매어 놓은소.울지도 못하고비치적거리다간 데 없는 …멍에 벗은몸.끊긴매듭 한 마디소슬하게 남았다심우도(尋牛圖)는 소를 찾는 동자가 망과 고삐를 들고 산 속을 헤매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처음 수행을 하려고 발심(發心)한 수행자가 아직은 선(禪)이 무엇인지 참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찾겠다는 열의로 공부에 임하는 모습인데. 결국은 자기 자신을 찾고자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시인의 간결한 언어들에서 치열함이 묻어나는 작품이다.시인
2012-02-14
지난 봄 새순 말려 띄운작설(雀舌)을,늦가을 해어름에 비로소 뜯네기다려도 올 이 없는 산 중 삶인데고이고이 간직해온 심사는 뭘까뒤뜰엔 산수유 열매가 붉어메꿩 몇 마리 부리 쪼는데찌르레기 샘물 찍어 하늘 바래듯늦가을 홀로 앉아 차를 마시네기다려도 올 이 없는 외진 산방(山房)에가을 산과 대좌하여 드는 작설은지난 봄 이슬에 젖은 찻잎이오늘은 서릿발에향기도 차네새봄의 작설 한 줌을 늦가을 산방에서 울궈 마시며 시인은 외로움과 기다림에 눈을 감는다.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아득한 그리움 끝을 물고 새들은 날아갈 것이고 쓸쓸히 가을꽃들도 떨어질 것이다. 서릿발 차가운 시간을 건너가는 머언 기다림은 무엇을,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아침이다.시인
2012-02-13
봄날 기우는 해가따가우면 얼마나 따갑겠느냐해를 정면으로 받으며 걷는 길산불이 나면불은 이쯤에서 끊기리(…)봄꽃 나는 마음이여그 마음 끊기지 않아숲과 숲 사이에 난 길 임도갈 데까지 갔다가 돌아오는해 기우는 봄날해 기우는 봄날 봄꽃 피어 서러운 임도를 걸으며 시인은 생의 한 길을 생각하고 있다. 산야에 피어나는 봄꽃처럼 한 때는 하르르 피어나던 청춘의 봄이 있었지만 이제는 나이 들어 기우는 자신을 보고 있다. 나이는 들었어도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마음의 봄꽃을 어이하리. 쉬 꺼지지 않는 불꽃을 어이하리. 이게 인생이다.시인
2012-02-10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눈물 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일제 강점기의 한(恨) 많은 삶을 산 어느 여인의 일생을 제재로 상실과 비애로 점철되는 우리 민중들의 비극적인 삶을 적은 백석의 대표작이다. 이러한 비극적이고 한스러운 삶이 어디 일제 때 뿐이겠는가. 경우와 정도가 조금씩 달라도 우리네 삶도 이런 아픔을 안고 건너가고 있는 건 아닐까. 읽을 때마다 명치끝이 먹먹해지고 까닭모를 서러움에 먼 데를 쳐다보게 해주는 시이다.시인
2012-02-09
육계장을 끓이면서 간을 보다가소주를 꺼내 마신다 간보는 게안주가 되어 한 잔 술에 간 한번 본다아버지는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나를무릎에 앉히고 고복수의 짝사랑을 노래시키곤 했다나는 가수가 되어 술자리마다 이끌려 다니면서안주가 되는 노래라도 불렀지만 아버지의취기가 절정일 때면 식구들은 숨거나 도망을 갔다(…)간 보는 일은폭력 후에 스며오는 자괴감을 맛보는 일유년시절의 아픈 기억들이 서사의 근간을 이루는 이 시에서 시인은 그 상처와 아픔의 시간들을 뒤돌아보면서 자신이 현재에 처한 처지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추억에는 아득히 눈물이 묻어나기도 하고 스스로를 위무하는 시인의 따스한 마음을 훔쳐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시인
2012-02-08
배꽃 가지반쯤 가리고달이 가네경주군 내동면혹은 외동면불국사 터를 잡은그 언저리로배꽃 가지반쯤 가리고달이 가네
2012-02-07
목련꽃이 온 힘 다해문 여는 날 아침 나는목댕기 매며 몸의 문을 걸어 닫았다차가운 하늘 한 쪽이목련나무에 찔리는 걸 보았다언제였던가 처음으로목댕기하고 세상으로 나가던 날아버지 따라몇 굽이 꼬아 새 길을 끌어내려배꼽을 덮던 날바람은 사정없이 내 몸의 온 틈새를 뒤적이며 스몄다그때도 목련꽃이 하늘에 하얀 입술을 대던 날이었다미색 물방울무늬 소보록이 박힌 목댕기몸으로 스미는 바람새 봄날 궁금해진 햇빛들짤막하게 날아가는 것이 보인다새봄에 대한 기대와 함께 희망이 비쳐나는 시이다. 그랬다. 청춘의 시절 처음으로 세상에 나가는 나에게 아버지는 여러가지 조심하고 경계해야할 것들과 지켜야할 것들을 가르쳐주신 적이 있다. 몸에 정신에 헛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목댕기를 단단히 졸라매듯이 정신과 마음의 문을 단단히 단속하라고 하신 것이 기억난다. 목련꽃이 피어나던 이른 봄날이었다.시인
2012-02-06
혈통에 새겨진 지도를 따라먼 곳을 배경으로 하여마지막 집에 온 듯처음엔 불빛이 한 점차츰 수천의 지등(紙燈)같이호흡 속에 떠오른다(…)그리고 꿈에서 깨어난 손길로 말해다오마구, 자유롭게, 목적지 없이 날아가고 날아오는 것 같이 느껴지는 새들의 행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가계에, 그들의 혈통에 새겨진 그들의 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암흑의 공간을 날아 한 점 불빛을 찾기도 하고 별을 보며 꿈을 꾸고 희망을 가지기도 하는 새들의 비행을 바라보라. 세상 어느 것 하나 마구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균형과 조화의 극치 아닌 것이 없다.시인
2012-02-03
하늘의 북소리 받아 저 화염의 세상 속으로 밀어 넣어야 하는데내 시여, 너는 아직 멀었다자기 몸 허물어먼 길 가는 영혼을 위해아궁이를 놓아둔다젖은 눈빛, 그걸 들여다보는 것은생(生)의 욕망을 내려놓는 일꺼져가는 몸의 아궁이끝내 돌아가야 할 문이다문(門) 하나 나를 보고 있다새로운 세계,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열망이 훨훨 타오르고 있다. 자기를 태워 초월의 세계에 이르고자 하는 이른바 소신공양의 과정을 거쳐야 그 세계에 이르른다고 시인은 보고 있다. 육체의 세계는 욕망과 고통의 세계다. 탈육체의 세계 곧 현실을 벗어버리는 경지에 이르러서야 성취되는 그런 영원의 세계에 대한 열망이 뜨거운 작품이다.시인
2012-02-02
목련이 목련을 반성하는 데는꼬박 일 년이 걸린다詩가,詩에 저항하는 몸짓이듯이순순히 이룬 사랑의 일보직전을 되돌리는 데는꼬박 한 생이 걸린다생을 관조하는 시인의 눈이 깊고 멀다. 목련이 목련을 반성하는데 꼬박 일년이 걸린다는 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년을 기다려 최선을 다해 피워 올린 며칠 동안의 개화마저도 반성하고자하는 마음의 품새가 넓고 깊다. 순순히 이룬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시인의 말에 가만히 귀기울인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진지해질 것인가.시인
2012-02-01
바람이 불고 귀가 순해지는 어느 날이면 한적한 시골에서 동네 노자(子)들의 지붕이나 고치며 끄적끄적 살아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정처없는 것들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어느 산모퉁이 하얀 꽃으로 피거나 그 꽃의 그림자로 흔들려도 좋겠다고 생각해본다.남은 이승의 끄트머리라도 그리 보내는 것이 그나마 실속 있겠다고 생각해본다.거북등처럼 붙어있던 껍질을 벗고 민달팽이 맨몸으로 어느 우거진 풀숲의 그늘을 슬슬 기어 다니고 그러다보면 달이 중천에 떠 있기도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시절은 그 시절의 바람이 또 불지 않겠는가.이순(耳順), 귀가 순해진다는 인생 60을 일컫는 말이다. 아무리 고령화사회가 도래했다하더라도 인생 60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욕망과 패기로 열정을 다해왔던 지난 시간들을 뒤돌아보며 이제는 어느 산모퉁이의 하얀 꽃으로 피어 바람에 흔들리는 여유와 관조의 정신이 이 시 전체에 깔려있어서 참으로 편안하고 안정된 시인의 마음을 읽는다. 욕심을 다버리고 자연의 한 부분으로 돌아가겠다는 겸허한 마음을 본다.시인
2012-01-31
내 머리통은 왜 저기 저렇게주인을 떠나 뒹굴고 있나길가에, 비닐봉지 옆에, 쓰레기에 치여분칠한 이목구비는 왜 햇빛 아래 젖어 있나동서남북을 바꾸나 흥얼거리나내용물은 왜 유통기한이 지나도 썩지 않나정수리가 뚫린 채왜 머리통은 산산조각이 나지도 않고다만 우그러지며 피를 흘리나현재의 자신에게는 머리통이 없다라고 말하며 시작하는 이 시에서 시인은 자기자신을 겸허하게 성찰하고 있다. 현실과 불화하며 길가에 비닐봉지에 쓰레기에 치여 버려진 자신의 머리통은 곧 자기의 정신 영역이 아닐 수 없다. 현실과 조화하지 못하는 자신은 정수리가 뚫린 채 우그러지며 피를 흘리고 있다. 진정한 자신에게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이 느껴지는 작품이다.시인
2012-01-30
“오매, 단풍 들것네”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아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오매 단풍 들것네”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오매, 단풍 들것네”구수한 사투리를 섞은 향토적인 서정이 물씬 풍기는 오래된 시이다. 마음을 붉게 물들이는 가을을 발견한 놀라움과 기쁨, 곧 추석이 오고 바람이 모질게 불어올 것을 걱정하는 누이의 걱정이 스며 우리의 전통적인 여인상을 느낄 수 있게한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깨끗하고 고운 가을의 빛깔과 소리에 우리의 감관(感官)을 조용히 열어볼 일이다.시인
2012-01-27
폐경이 된 여자아직 비린내가 싱싱한방금 소낙비 지난 자리 같은물의 자궁 밖으로 기어나오는 달팽이의 등 뒤에 눈 감은 강이 있고해 저문 산이 있다왈칵 불 꺼진해와 달의 박물관우물 속에 빠뜨린 그림자에서 푸른 싹이 돋는다굽이굽이 당신의 밤도 이쯤에서맑게 일렁이는 유리창 하나 내었으면 좋겠다햇볕도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 곳달팽이가 천천히 겹겹의 그늘을 벗는다뿌리부터 축축하게 젖은기어코 당신이다생의 유통기한이라고 말하면 웃기는 말이 되는 걸까. 폐경이 이르른 여자, 햇볕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 그 곳에 나이 먹은 인생들이 있다. 활발하게 유통되던 인생들의 축축한 뿌리가 스린 곳이다. 그러나 거기에도 달팽이가 기어다니고 푸른 싹이 돋는다. 평화롭고 원숙한 아름다움과 또다른 생명이 움트는 곳이다. 내리막길이 아니라 또 다른 오르막길이 놓여있고 아름다운 도전이 있는 곳이다시인
2012-01-26
누가 또 먼 길 떠날 채비 하는가 보다들녘에 옷깃 여밀 바람 솔기 풀어놓고연습이 필요했던 삶까지도 모두 놓아 버리고내 수의(壽衣)엔 기필코 주머니를 달 것이다빈손이 허전하면 거기 깊이 찔러 넣고조금은 거드름 피우며 느릿느릿 가리라일회용 아닌 여정이 가당키나 하든가천지에 꽃 피고 지는 것도 순간의 탄식내 사랑 아나키스트여 부디 홀로 가시라일제에 항거한 아나키스트들의 삶이란 늘 극한 시련과 죽음이 전제되어 있었으리라. 그들의 여정은 늘 `일회용`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한히 자유스럽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쟁이 있었다. 비록 죽음이 다가선다 해도 수의에 주머니를 달고 거기에 손을 찌르고 거드름을 피우며 느릿느릿 가겠다는 자유의지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이러한 여유나 태연함은 조선의 선비정신이나 자유를 추구하는 자연인의 정신이 묻어나는 정신적 유산이 아닐 수없다.시인
2012-01-12
속창 다 빼고 빈 몸 허공에 내걸렸다원망 따위는 없다지독한 목마름은 먼 나라 얘기먼지 뒤집어써도 그만바람에 흔들려도 알 바 아니다바짝 마르면 마를수록맑은 울음 울 뿐산사의 추녀 끝 풍경소리가 날리어 가는 쪽에 목어가 헤엄치고 있다. 속창을 다 빼고 빈 몸으로 허공을 향해 저어가고 있다. 지독한 목마름도 원망도 없이 어디론가 목어는 헤엄쳐가고 있다. 인생이란 어쩌면 절집의 한켠에서 어딘가로 헤엄쳐가는 목어와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를 비우고 또 비우고 차오르는 욕망과 집착을 벗어버리고 무욕의 정신 하나로 헤엄쳐가는 것이 우리의 한 생이 아닐까.시인
2012-01-10
등본 속으로 겹겹이 눈이 치고말소와 등재가 거듭되는 동안아버지와 나는갑종 혹은 1종 등짝을 맞고 삼 년씩나라에 나갔다가 등본으로 돌아왔다살아서, 다리 잃지 않고푸른 스탬프 찍힌 이마로 돌아와제자리에 꽂혔다가끔 A4 용지에 프린트되기도 하는 나의 가계내 이름자 아래위로 걸쳐져 있는부양의 몫이 겨울처럼 무겁다아득한 물가로 다시 눈이 치는데저 눈을 헤치고 보충대로 아이를 보낸 아침구룡포 읍사무소 양철 캐비넷 속세로 먹물로 응고되어 있는알 수 없는 번호에 물려 다니며치료되지 않는 희망이 아직은 달라붙어 있는서랍 속의 가계를 생각한다질기고도 아프다거친 눈발 속 또 체부가 오고 있다삼대(三代)가 수행하는 국방의 의무를 이야기하는 위의 작품은 한 개인의 가계를 잇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현대사는 많은 가계를 지켜주지 못했다. 전쟁과 혼란과 탄압, 가난과 궁핍 속에서 개인의 일상은 여지없이 파괴되고 짓밟히고 어려움에 봉착해 온 것이다. 필자의 이 졸시도 그런 점에서 주변의 여러 삶들과 닮아있지 않을까 하는 아픈 생각을 해본다.시인
2012-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