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발을 처음 샀다새로 신은 신이어서 정말 기분 좋았다어릴 적 나는 할머니 손잡고 죽변 장엘 갔다할머니는 한 아름 월동추를 팔았고 나는 아이스케키를 사 먹었다할머니는 월동추를 판 돈으로 소주를 한 곱뿌 드셨다할머니는 기분이 좋았다손주 놈 신도 샀고소주도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할머니는 걸어서집으로 오셨다집에서 할머니는 손주에게새 신을 신겼다
2011-08-08
숨어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들리지 않아 아름답고 보이지 않아 아름답다소란스러운 장바닥에서도 아름답고,한적한 시골 번잡한 도시에서도 아름답다보이지 않는 데서 힘을 더하고들리지 않는 데서 꿈을 보태면서, 그러나드러나는 순간.숨어 있는 것들은 아름다움을 잃는다처음 드러나 흉터는 더 흉해 보이고비로소 보여 얼룩은 더 추해 보인다힘도 잃고 꿈도 잃는다숨어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보이지 않는 데서 힘을 더하고들리지 않는 데서 꿈을 보태면서숨어 있을 때만, 숨어있는 것들은 아름답다빛을 받아 반짝이거나,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그 외적인 아름다움이 표출되는 수많은 것들의 세상에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반면에 빛을 받지 못하거나 물리적 환경이 남에게 드러나지 않고 소외되거나 감춰져버린 것들, 이 시에서 말하는 숨어있는 것들도 우리 주변에는 많이 공존하고 있다. 그것들은 어둡고 보이지 않기에 더럽고 흉스럽고 추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드러나지 않으므로 더 힘이 있고 꿈을 가지고 있으며 더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것들이 너무도 많이 공존하고 있다. 우리 마음의 눈을 크게 뜨면 보이지 않을까.시인
2011-08-04
여기서부터 멀 - 다칸칸마다 밤이 깊은푸른 기차를 타고대꽃이 피는 마을까지백년이 걸린다5행의 짧은 시이지만 절제된 언어의 상상력이 뛰어난 시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고자 하는 이데아의 세계를 향해 푸른 기차는 가고 있는지 모른다. 제목의 죽편은 옹이진 마디와 마디를 수직이 아닌 수평의 공간으로서 푸른 기차의 칸칸을 연상케하는 참으로 재밌는 작품이다. 대꽃 피는 마을까지 이르는데는 백년이 아니라 영원히 이르를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지 모른다.시인
2011-08-03
저녁이 오면 도시는 냄새의 감옥이 된다인사동이나 청진동, 충무로, 신림동,청량리, 영등포 역전이나 신촌 뒷골목저녁의 통로로 걸어가보라떼지어 몰려오고 떼지어 몰려가는냄새의 폭주족그들의 성정 몹시 사나워서날선 입과 손톱으로행인의 얼굴 할퀴고 공복을 차고목덜미 물었다 뱉는다냄새는 홀로 있을 때 은근하여향기도 맛도 그윽해지는 것을,냄새가 냄새를 만나 집단으로 몰려다니다보면때로 치명적인 독저녁 6시, 나는 마비된 감각으로냄새의 숲 사이 비틀비틀 걸어간다자연에서의 저녁 6시는 노을이 스민 사물들이 고요히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평화롭고 안온한 시간이다. 그러나 도심에서의 저녁 6시는 타락한 도시문명의 후미진 공간으로 진입하는 시간이다. 이 시에서의 `냄새`란 인간의 절제와 이성을 상실한 도시인의 야성을 의미한다. 이미 상실해버렸거나 상실되어가고 고갈되어가는 인간의 아름다운 본성을, 밝고 건강한 인간의 정체성을 옹호하고자 하는 시인정신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시인
2011-08-02
살아 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그와떠난 이의 범람만 있을 나, 줄 것이 없다연습삼아 헤어 질 때 손을 흔들어 주었다가벼운 바람에도 펄럭, 내 몸을 넓게 펴햇빛 곱실곱실 기는, 꽃은 가장 크게 입여는돋은 잎에서 사과 떨어지듯, 잘 익은 사과를받듯, 땅은 허리 굽혀 받아라그런 날 배우처럼 예쁘게 그와 눈 맞추며살랑 바람처럼 손을 흔든다 잘 가라,그는 내 몸의 수의를 걸치고 나는 그를 입고결국 나는 그를 물려받을 것이다야트막한 언덕에 사과꽃이 하얗다. 과원지기들은 소복한 사과꽃을 따주어서 가을의 결실을 예약한다. 그렇다 사과꽃이 떨어져 둥치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면, 결코 가을의 빨간 사과를 기약할 수 없는 일이다. 죽음은 또 다른 결실에 이를 수 있다는 진리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시이다. 잠시의 결별이 더 풍성한 결실을 가져다주는 일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견된다.시인
2011-08-01
지상의 동물들이 망하기 시작한 건 이빨로 해결해도 될 일을 혀로 해결하면서 부터이다 이빨로 물어뜯어 씹어 삼킬 일을 자꾸 세 치 혓바닥 안에서 궁글려 녹이고 있고, 녹녹하게 잘 녹지 않는 것들을 한번 더 부드럽고 달콤하게 둥글려 쥐도 새도 모르게 꿀꺽 삼키고 있다 제 할 일을 사사건건 떠넘기는 이빨 때문에 세 치 혀는 그래서 일이 무척 많아졌다 한 때의 조상이 사냥개였던 저 늙은 개 역시 목덜미를 물어 한번에 제압할 일을 혀에게 다 떠넘기고 있다 컹컹 이제 아무 위엄도 없는 울음을 짖고 있다 무섭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는 저 개처럼 무엇이든 제압할 일이 생기면 오랫동안 그 앞에서 무릎 꿇고 그의 발꿈치나 핥아주고 있다행동으로 결행해야할 일들을 말로 해버리는 세태에 대한, 그 경박함에 야유를 보내는 작품이다. 우리는 때로 몸으로 부딪히거나 구체적인 행동으로 일을 해결해야하는 경우를 만난다. 피하지 말고 당당히 행동해야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적절히 말로 어물쩍 넘겨버리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런 우리들의 태도에 회초리를 들이대는 작품이다.시인
2011-07-28
북강은 어둑해졌다강 가의 누이는 강냉이를 삶으며아직은 빛 속인 남산을 본다산 아래 동생은기름진 밥상을 앞에 두었다잠들기 전에먼 곳의 누이가 먼저 흐느끼고더 먼 곳의 동생도 운다누가 북강에서남산을 보는가또 누가 남산에서북강을 바라보는가분단 60년의 아픔이 절절히 스민 감동적인 시이다. 이념과 사상이 달라도 어쩔 수 없는 한 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무엇이 이토록 가슴 저미는 아픔을 지속케 하는가. 끝없이 기다림과 그리움에 가슴이 멍들게 하는가. 이제 그들은 만나야한다. 아무 조건 없이 그들은 하나가 되어야할 일이다.시인
2011-07-22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그대가 피는 것인데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그대가 꽃 피는 것이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너와 나, 자연 혹은 우주와 나,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긴밀한 관계에 의해 연관되어있는지 이 짧은 시 한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대 혼자서 피워 올린 그대의 꽃과 거기에 찾아든 꽃벌 한 마리지만 그것은 결코 혼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운명 같은 것, 인연이라고 하는 어떤 질긴 줄이 서로에게 걸쳐져 있어서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깊은 연관성을 가지는 것이리라. 사랑은 더더욱 그런 것이리라.시인
2011-07-21
땅거미 지는 섬진강 따라쌍계사 십 리 벚꽃 길가지마다 층층그 꽃그늘 아래 퍼질고 앉아펑펑 울고 싶은 봄날옥색 저고리 다려 입고꽃놀이 한번 가고 싶다던당신, 어디 있나요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이렇게 절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고향과 어머니. 이것은 아무래도 도시적이기 보다는 농경사회에서 비롯된 오래 정착된 구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농경문화적 정서와 가치가 소외되고 붕괴되어가는 현대인들의 가슴에 시인은 가만히 고향과 어머니를 일으켜세우고 있다. 깊은 울림과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시인
2011-07-20
닭들이 두 다리 가지런히 하고한 방향으로 누워있다부리 끝이 파랗다사랑 한번 못해보고습관처럼 알만 낳다가가슴에 알 한번 품어보지 못하고어미 노릇 못해본 저것들생떼 같은 목숨깃털로 서로 덮어주며구덩이 속에 모로 누워 있다포크레인 부산하던 소리도뻣뻣하게 굳어 있다지난해부터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구제역과 함께 조류들의 수난은 예삿일이 아니다. 조류독감으로 떼로 매립되는 닭들에게서 인생의 보편적인 진리를 건드려내는 시인의 눈이 참 따스하다. 그래, 일생동안 폼 나게, 멋지게 한번 살아보지 못하고 자식 농사에 등이 휘어진 이 땅의 어머니들을, 그들의 쓸쓸한 노년과 죽음을 생각게하는 감동적인 시이다.시인
2011-07-19
쉰 살은 한정 드는 쇠기러기 조선 나이오늘은 나도 짚 두 가닥으로 묶은 간고기 한손 사 들고쇠기러기처럼 죽을힘 다해 옛집으로 돌아가겠네콩 파고 가던 뿌뜰이처럼 간고기는 버리고소리끼 없이 비린내만 들고 가처마 낮은 사람들 마을 처처에 걸어두겠네북극성 같은 생의 첫 고요에 걸어 두겠네시인은 온전한 향수를 통해 생의 진정한 가치를 확인하고 있다. 향수는 옛것에 대한 단순한 그리움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와의 단절을 통해 현재의 삶을 가로막는 모순과 위선에서 벗어나게 한다. 농민시인으로 활동하는 그의 시에는 농민의 현실적 고통과 구조적인 모순에 대한 분노와 함께 싸워서 이겨나가려고 하는 희망과 신념같은 것이 깔려 있다.시인
2011-07-18
아내를 들어 올리는데마른 풀단처럼 가볍다수컷인 내가여기저기 사냥터로 끌고 다녔고새끼 두 마리가 몸을 찢고 나와꿰맨 적이 있다먹이를 구하다가 지치고 병든컹컹 우는 암사자를 업고병원으로 뛰는데누가 속을 파먹었는지헌 가죽부대처럼 가볍다한 생의 반려자인 아내. 일상 속에서의 그 사랑의 무게나 소중함은 잊고 살아가는 것이 다반사다. 아이를 낳고 어려운 가정의 경제를 챙겨가며 점점 낡아 가고 헐어 가는 아내가 어느날 쓰러져 들쳐업고 병원으로 뚸어가??시인은 비로소 아내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헌 가죽부대처럼 가볍다라는 말에서 남편으로서의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한꺼번에 묻어나고 있다.시인
2011-07-14
20년 전 부천시 약대 시유지에는황토로 벽돌을 만드는 벽돌공장 근처에벽돌만으로 지은 둥지가 있었다주로 추석연휴 동안 친구들을 동원해밤낮 없이 다 지어 놓으면 시청 철거반이와서 보고는 다 지어 놓은 집을 부술 수가 없어돌아가면 집짓기에 성공하는 것이다짓다 만 집은 그 벽돌을 다 실어가 버렸다창문은 비닐로 가려놓으면 되었다혹 돈을 많이 번 집이 있어 둥지가 비게 되면몇 만원에 거래가 이루어졌다언제부터 그렇게 둥지가 비기 시작했다사람들은 둥지를 버리고 집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집은 사흘 동안에는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태어나 죽을 때까지 사람들은 집을 지으며집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우리는 일생동안 집을 짓다가 가는지도 모른다. 점점 더 크고 아름다운 집을 얻으려 애쓰고 우리의 재화와 관심을 쏟아 부어 넣는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 더 나은 집을 또 추구하다가 나중에는 시인의 말처럼 집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사람이 집을 누리고 사용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잘 꾸며지고 가꾸어진 집이 사람을 거느리고 사람을 달고 사는 꼴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집은 우리의 한 생애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한 가지 도구이거나 연장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시인
2011-07-06
물오른 단풍나무 가지 끝이서서히 홍조를 띄며 술렁인다온 산이 따라서 파동친다구름이 산에 들다가잠시 멈춘 사이버들강아지 보송보송한 털 속으로빨려드는 파동의 은은한빛을 본다신의 축복처럼 조용히 눈이 내린다조용히 다가오는 봄을 관조하고 있는 시인은 되살아오는 자연의 세밀한 부분들에서 신의 축복을 느낀다. 지금 우리 사위에 우거져 출렁이는 저 푸른 숲들을 보자 얼마나 풍성하고 아름다운가. 신은 우리에게 때를 따라 엄청난 자연의 축복을 베풀어주고 있다.시인
2011-07-04
객사에 누워 뒤척이는 새벽벌레들이 운다벌레들이 푸른 울음판을 두드려울려내는 청명한 소리들이쌓이고 쌓이면서반야봉 하나를 뒤덮고마침내 그 봉우리 하나를 통째로 떠메고조금씩 떠나는 게 보인다새벽이 깊을수록 더 깊어진 울음의 강이산을 싣고 흐르는 게 보인다아래쪽 산자락을 잘팍잘팍 적시면서벌레 소리에 떠가는 산골짜기의 절간까지, 싸리나무 일주문까지벌레들이 울음소리로 떠메고남해 바다로 가고 있는 게 보인다.벌레들이 울음소리를 떠메고 남해바다로 가고 있는 것을 본 시인은 삶의 무게를 떠메고 어딘가로 가고있는 우리의 생애를 보고 있다. 새벽이 깊을수록 더 깊어지는 울음의 강은 시인이 지리산 반야봉에서 바라본 섬진강 물뿐이겠는가. 푸르른 숲이 인간의 마을까지 내려와 조금은 덮일 법도 한 여항간(閭巷間)에 흐르는, 질기게도 흐르는 우리네 눈물을, 이 아침 젖은 눈으로 다시 본다.시인
2011-07-01
매받이는 사냥을 나가기 한 달 전부터가죽장갑을 낀 손에 나를 앉히고낯을 익혔다조금씩 먹이를 줄였고사냥의 전야나는 주려, 눈이 사납다그는 안다적당히 배가 고파야 꿩을 잡는다배가 부르면내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꿩을 잡을 수 있을 만큼의날아 도망갈 수 없을 만큼의 힘매받이는 안다결국 돌아와야 하는 나의 운명과돌아서지 못하게 하는 야성이 만나는바로 그곳에서꿩이 튀어오른다꿩사냥을 위해 날아갔던 매, 길들여지고 묶여있는 그에게는 어쩌면 돌와와야한다는 , 짐지워진 운명이 있을 것이다. 시인은 그가 필생의 업으로 여기고 있는 시를 꿩에 비유하고 있다. 돌아옴과 운명, 떠남과 야성이라는 두 힘이 부딪히는 그곳은 꿩이 날아오르는 곳이고 시가 생성되는 순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든 존재들에게는 대상을 감촉하고 환원하는 자신들 고유의 더듬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시인
2011-06-30
뜨겁게 목숨을 사르고 사모침은 돌로 섰네겨레와 더불어 푸르를이 증언의 언덕 위에감감히하늘을 덮어쌓이는 꽃잎, 꽃잎이 시조는 ` 눈 내리는 군묘지에서`라는 부제가 붙은 시이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젊은이들의 넋을 기린 시로서 많이 알려진 시이다. 지금은 비록 차가운 비석으로 서 있는 뜨거운 목숨이지만 겨레와 더불어 영원히 푸르를 것이라는 시인의 비원이 담겨있다. 청사(靑史)에 길이 빛날 이러한 일들을 우리는 눈 맞고 서있는 비석이나 거기에 얽힌 눈물겨운 서사(敍事)를 한번쯤 생각해보고 추모할 일이다.시인
2011-06-29
육신의 아픈 기억은쉽게 지우진다그러나마음의 상처는덧나기 일쑤이다떠났다가도 돌아와서깊은 밤 나를 쳐다보곤 한다나를 쳐다볼 뿐만 아니라때론 슬프게 흐느끼고때론 분노로 떨게 하고절망을 안겨 주기도 한다육신의 아픔은 감각이지만마음의 상처는삶의 본질과 닿아 있기 때문일까그것을 한이라 하는가육신의 아픔은 의술로 다스릴 수 있고 완쾌가 가능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쉬 치유되지 않으며 완치가 되지 않는다. 마음의 상처는 오랫동안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더 깊어지기도 하는 것이리라. 때론 슬픔에 흐느끼게 하기도 하고 분노에 떨게 하기도 하며 깊은 절망에 빠져들게도 하는 것이리라. 우리의 자존이나 정체성에 대한 상처, 쉽게 지워지지 않는 그것을 시인은 한(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시인
2011-06-28
새벽 산길 도망갈 길 없는막다른 모퉁이에서 마주친 바람그에게선 산하를 떠돌다 온 행려의 냄새가 났다온몸 부딪쳐 쌀뜨물 같은 안개 속에 누워있는새벽의 부시시한 머리채 흔들어저마다의 색과 형체를 깨우는 것보이는 것을 흔들어 보이지 않는저의 육체를 증명하는 것가난한 골목과 닭장집과 공장 굴뚝을 지나마침내 허허벌판에서저를 지우고 저가 지나온 길을 지우고마침내 아직 가보지 못한먼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몇 해 전 엄청난 육체적 아픔을 겪은 시인이 투병 중에 쓴 시이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시를 써온 시인은 병상에서 자기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고 있다. 애증과 아픔으로 점철된 시간이 흘러온 길과 시간을 쓸어안으면서 다시 일어나 힘차게 걸어가야할 길을 바라보는 것이다.시인
2011-06-24
초록이 섬짓골목길에 들어선다토방 언저리에꾸벅꾸벅 졸고 있는하얀 머릿발정오의넝쿨장미긴 담뱃대 드리우고바람이그늘 휘젓자사립문 삐그덕여름 사냥에 든다고요한 유월 정오 무렵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절대 평화의 시간들, 그 속에 흐르는 잔잔한 생명의 파동, 아름다운 평상의 풍경이다. 유월은 불볕과 짙은 녹음과 나른함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속엔 말없이 죽어간 원혼들이 짙붉은 장미꽃으로 피어오르는 깊디깊은 계절이다.시인
2011-06-23